그땐 그게 위험할 줄 몰랐어요.. 한순간에 온 몸이 절단된 이유와 그 순간 잊지 못할 거울 속 내 모습

원샷한솔OneshotHansol
137 팔로워
#왼발박사 #교수 #솔터뷰
🥰 원샷한솔 (김한솔) 인스타그램 @oneshot.hs
https://www.instagram.com/oneshot.hs/
-------------
신노 미스로 인해 가지고 사고로
다쳤습니다 그때 나는 기억나는 것은
아파서 깨어나 가지고 잠깐만 입 좀
닦고음 그럼 양말로 닦으신 거네요
방금 안녕하세요 여러분 한 설입니다
오늘 엄청나게 진솔하게 이야기할 분을
모셨습니다 자기 소개 한번
부탁드릴게요 양팔 없는 왼발 박사
왼발의 기적 이범 식이라고 합니다
대구대학교 재활 상담 학과에서 우리
제자들 가르치고 있고 각 기관이나
학교 이런데 특강 다니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와 박사님 그러면은 어떤 장애를
가지고 계신 거예요 보다시피 양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왼발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박사님은 혹시 장애가 생긴지 몇
년 차 되셨어요 저는 15년 차
됐습니다 아이 15년 차가지고 저는
그거보다 조금 더 됐습니다 여살 조금
더 됐습니다 조금 더 됐다고 하면은
보통 곱하기 2 하시면 될 거
같아요 박사님도 선천적인 장애는
아니신 거 같은데 언제 장애가 생기신
거예요 저는 전기 감전 사고로
다쳤어요 벽에 붙은 콘센트 그 전기가
아닌 전기를 공급해 주는 원선에서
저는 다쳤어요 그래서
22,900v 전기 감전 사고로
다쳤습니다
22,900v 그럼 그때 상황이
기억이 나세요 정확히 충격 자체가
엄청나기 때문에 잘 기억은 잘 안나요
그때 상황 자체가 전주 이설
작업이었기 때문에 신호수 에 따라서
무전으로 전기가 끊어졌다 그 신호에
의해서 내가 올라가서 작업을 해야
되는데 신호 미스로 인해 가지고 내가
살아 있는 전기를 만들는 거예요 그
전 사실 상상이 안 되는데 주변
사람들도 사실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까지도 하지 않았을까 양손을 잡고
살아난 사람은 내 혼자밖에 없어요
처음에는 내가 그 다친 줄을 몰랐어요
그때 나는 기억나는 것은 회사 업무
차량 뒤에 실려 가지고 병원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깨어났어 그니까 온몸이
다 경직이 돼 버렸는 거 네 가지
회사 동료한테 처음으로 했 말 전선
피복 가는 칼이 있어요 허벅이 좀 째
달라 그랬어요 박사님이 쉽죠 그
피라도 좀 통할 것 같았어 아 그
정도로 어 그럼 차에 깨어나서 병원에
가서 어떤 치료를 받으시는 거예요
그렇게 감전 사고를 당하시면 병은
응급실을 딱 들어가는데 응급실 앞에
유리들이 많잖아요 유리에서 미친 내
모습을 봤는 거야 아 내가 다쳤구나
어떠 셨길래요 이제 자업 폭인데 손은
양 팔까지 다 탔어 옷이이 허벅지
이쪽으로 해서 밑으로 다 탔어
탔다는게 정말 말 그대로 누어
붙었다는 거야 그래 가지고 응급이
베드에 눕혀 놓고 하는 일이 뭔줄
알아요 연구 바르는게 다였어요 그한
피부에 가요 예 그게 다야 그래서
손을 이렇게 좀 움직이려 그랬는데
움직이는 것은 어깨 밖에 없었어
신경이 다 상했다는 거지 아 그 감전
되면서 아 한 2주 정도 그냥 사경을
헤맸지 깨어났다가 다시 기절했다가네
그러면은 언제 어떻게 절단을 하게
되신 거예요 전기는 흐르는 성질이
있잖아요네 전기가 몸으로 들어오면은
바깥으로 나가려고 그래요 몸 안에서
한 바퀴 돌면 그 사람 죽어요 나는
살았는 것이 뭐냐면 전기가 내 몸으로
들어와서 어디론가 나갔어 어디로
나갔냐면요 다리로 나갔어요 다리로
오른쪽 다리로 나갔어 그래서 살았지
그래서 이쪽 편에는 근육이 다 떨어져
나가고 나중에 뼈가 보이더라고 이제
피부라 그가 이런 거 괴사 하잖아요
괴사하는 그 살을 다 떼지 않으면
거기서 또 다른 쪽으로 또 갈 거
아니야 제거를 해야 된다는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죠 의사
선생님이 먼저 제한 하신 거예요
그리고 내가 동의를 했고 가족들 내가
설득을 했고 그럼 처음에 장애가
생기고 가장 불편한 것은 어떤
것이었어요 엄마가 항상 나를 간호를
했어요 나를 이불을 덮어 주고 밥도
먹여 주고 똥 싸마 똥도 채워주고 그
마음을 보는 나는 어떻겠어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 흘리는
것밖에 없었어요 멍하니 먼사람
바라보면서 이렇게 울고 있으면 엄마가
와서 또 눈물을 닦아 줘요 그 억센
손길이 이렇게 완 왔을 때도 내가
이렇게 손을 한번 못 잡아 준다는 거
자체 아 그래서 장애란 것이 저는
항상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어제 할
수 있었던 부분이 오늘은 소망이 되는
부분이라고 아 박사님이 그럼 현지 할
수 있는 건 어떤게 있으세요 다 할
수 있어요 못 하는 거 빼고 그럼 못
하는 거에 뭐가 있으세요 다 못 하지
아 뭐 뭐야 아니 저희 이렇게 커피도
있잖아요 커피는 잘 드시고 계세요
커피는 손으로 마셔야 된다는 그것은
고정관념이 요렇게 마실 수도 있어
어떻게 드셨어요 입으로 마셨지 잠깐만
입 좀
닦고음 생각하기 나름이야 양말이라고
생각하면 양말이 되는 것이고 손수건이
생각하면 손수건이 아 그럼 양말로
닦으신 거네요 방금 손수건으로 닦았다
그 내가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가족들한테 부담을 주기는 싫고 그래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번
찾아보려고 내 신체를 한번 바라봤어
남아 있는 거라고는 왼발 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네 왼발로 시작했죠 밥
먹는 거 발로 어떻게해요 숟가락 엄지
발가락 사이에 끼워서 밥 먹는 연습을
했 이런 건 없으세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와 이걸 내가 할 수 있게
되었구나 타자 치는 거죠 타자도
치세요 그럼의
족이랑뱅이랑 내 잡고 뛰면 되잖아
그죠 어디를 잡고 뛰면
되죠 그것도 문제네 저는 보통
팔꿈치를 잡고
뛰는데 그러면 딱 그 수술이 끝나고
거울로 내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안
봤지 안 아 보기 싫지 그러면 그때
밖에 나가는게 되게 두려웠을 것
같은데 두렵죠 당연히 그럼 어떻게
나가게 되셨어요 친구들하고 술 마시러
갔죠 그래서 처 나가신게 예 근데
그것도 이제 뭐가 성결이 돼야 되냐
하면
네
든된 부와 의족이 맞닿는 부분이잖아요
그러면 이게를 때마다 의족이 맞다면
충격이 얼마나 가겠어요 뼈를 통해서
전달되는 그 아픔은 진짜 아픔이요
처음 걸을 때는 사실 한걸음도 못
걸었어요 해지고 물집 생기고 까지고
그 과정 적응하는 것이 진짜
힘들었어요 저 너무 자연스럽게
사실셔서 그동안의 결과죠 그 연습을
하고 첫 외출이 이제 친구들과의
술자리 거예요 처음 보고 어떠셨어요
반응이 내 몸은 안 보여줬지 의수를
꼈지 아 시선이 처음에는 신경이
쓰이니까 아 쓰이지 당연히 그러면
언제부터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나는 이제 의수를 벗었어
무거우니까 그런데 잠바는 그대로 입어
이거라도 쳐야지만 내 마음이 편하니까
그러면 이제 그 잠바를 또 어떻게
먹게 되셨나요는 이제 와이프 만나면서
와이프 사모님 나도 이제 아내라
사람이 있구나 내가 사람들한테 그렇게
열등의식을 느낄 필요는 없다라는
거예요 나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내가 자존감이 없을 때는 자꾸
감추려고 그러지만 내 자존감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드러내려고 그런다
그러면 자존감이 이제 극대화되는
시기가 있으셨군요 시험에 합격해서
대구대학교 들어갈 때하면 될 거예요
전문대를 갖는 것은 47살에 갔고
대구대에 가서는 건 49살에 편의
시험 봐서 합격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있구나 서스로 내가 했는 거잖아
남이 도와서 했는 부분도 아니고
그렇죠 좀 위험했던 순간은 없으세요
넘어질 때 그냥 넘어가는 거죠 뭐 할
수가 없네 지을 수가 없으니까 늘
신경을 곤두 세우고 겠네 그렇죠 항상
몸은 긴장이 돼 있지 근데 그럼
대학생이 되셨지아요 가서 필기도 해야
되잖아요 저희가 뭐 어떻게 하셨어요
글씨로 다 쓰지 그 전에 글씨 쓰는
연습 자체를 내가 마스터를 해 놨기
때문에 근데 발로 이게 글씨가
써지세요 돼요 내 옛날에 필체가
나와요 나중에 보여 줄게요 아 뭐야
이야이야
글씨를
한솔님께네 박사님을 다시 살아가게 한
원동력은 그럼 가족인가요 처음에는
내가 살아가야 될 이유가 나 자신에
대한 불쌍함이 있어요 두 번째는
가족이었고 대구 지역에는 눈이 잘
안와요 어느 날 겨울에 침대에 누워서
바깥을 보니까 눈이
한송이 한송이 떨어지더라고요 톡
떨어지자마자 탁 녹아요 비관적인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으니까 언제
죽을까이 생각만 갖고 있고 나도
저렇게 의미없이 살다가 죽겠지 저렇게
그냥 녹아서
사라지겠지네 그러면서 생각을 했죠
내한테 다쳤을 때가 22 살이었어요
22살 범식이 너무
부상하다 그래서 끈덕지게 내려서
쌓이는 저 눈처럼 나도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내가 하는 곳에가 있을
거야 이런 하나의 이제 희망을
그렸죠음 희망을 그리면서 재활도
하고음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는
거죠 앞으로 좀 목표나 뭐 그런 거
있으세요 전 많아요 엄청 많아요 뭐가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지금 당장은
전국 종주를 하고 싶어요 아 직접
걸어서 예 을끼고 왜 하느냐 와이퍼가
아파요 간 경화야 양반도 아프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고 어떻게 보면
내가 불가 하다는 인생을 살아왔어요
같 살아온 인생 자체가 한번 더
도준을 한번 해보려고 나를 보면서
무능력한 사람은이 생 전재 없구나
아내한테도 희망도 한번 주고 장애인들
테도 희망도 주고 사회에도 희망도
주고 삶의 향기를 이렇게 좀 전하는
그런 일을 좀 많이 해보고 싶어요
나의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어떤
말로 좀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다자
성으로 하나 표현하면네 우공 이상
비바람이 치고 폭풍과 몰아쳐도
휘청거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향해서
나 한다는 그런 것이죠음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