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그리고 음악” 저자 이종구 한양대음대 명예교수 문화사 강좌 | 44강 | 단군조선에서부터 꽃 피운 기생문화 &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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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양대학교 음악장 명교수
이종입니다
오늘 강의 주제는
생입니다 세상에는 기생에 대해서
웃음을 팔고 교태를
부리며 노류 장화처럼 담장 밑에 꽃양
누구도 쉽게 만지고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표현합니다이 같이 세상에는 기생에
대한 한 생각만이
있어서 체를 파악하는 것이 부족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기생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이 문제를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기생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기생의 역사는 아마도
인류가 시작할 때부터 뭐
존재했죠 그러나 공식적인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고조선 때 제나라의 환공의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670년
제나라의 수도 임치 일곱 곳의 여시
그러니까 여자 시장이
있었습니다 한 곳에 100명의 기생이
있었다고 하니까 모두 700명이 임치
아는 그 도시에
있었는데 점점 상황을 이루자
2천명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이 기생들은 합법적으로 국가
기관인 조종에 수입원이 되는 하나의
산업 있습니다 한반도의 오래된
이야기를 는 젊은 시절 화랑 김유신이
천관녀 기생에게 빠졌었다는 이야기가
있죠 고려시대 문인 이노가 진 파한
집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어머님의 훈육에 따라서
기생집 출입을 금하던 중에 어느날
술에 취한 채 말을 타고 집에 가며
졸던 사이에 평소 버릇대로 말이
그녀의 집앞에
멈췄습니다 그러자 정신을 차 김유신은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말을 목
그러자 정신을 차린 김유신은 그
자리에서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었다고
하죠 그뒤
천관녀는 김유신의 무정함을 원망하면서
사라는
사가를지었습니다 그리고 비구니가
되어서 절에서 지내다가 늙어서
병사했다
합니다이 이야기를 쓴
이공은 관를
상하면서과
같은을지었습니다 정많은 공자가 꽃
아래
인나니 원망 품은 미녀는 말 앞에서
울었더라 말이 도리어 예정을 하라
옛길을
기억하는데 노은 무슨 죄라 부질없이
채찍질 한편 강에서 비을 연서
거에게 의 명작 비파행 쓰게 한 강남
기생 설도 아는 유명한 시인도
있습니다 그녀의 춘망 사라는 신은
우리말로 봄을 기다리며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조남사 라디오 드라마
동심 초에서 그 주제가를 시인 김한서
설도 이시 춘망사 번역해서 작곡과
김성태를 하여금 노래를 만들어 한
시대를 풍면 노래가 있습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뭐라 마과 마을 맺지 못하고 한
가대의 풀리만 맺으려는 고라는 노래가
바로 설도의 편으로 구성된 춘망사 중
세 번째
노래였습니다 시인 김완선은 김소월
시인의 스승이었던
분입니다 청구
영원에 매화 예던 거래 봄이 찾아오니
혔던 가지에 피죽도
하다마는 설이 난 분분하니 필동 말동
하여라 이런 시를 읊은 시인이 우리
기생 중에
있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신이라는
문신이 지연 경수당 전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논계 같은 국의
여분은 만대 역사에 빛나는 우리 라의
자랑입니다 주라도
촉성 계라는
기생은 외장 청정 목을 안고 진주
난에
떨어져 비록 술취한 사람이 부르는
노라 하더라도 우리는 이런 노래를
들으면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시인 변은 개라는 시에서
그의 절개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거한 종교보다
깊고 불붙은 정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에 양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생이라면 누구니 누구도
황진이가 가장 유명합니다 음악적인
재능도 뛰어나지만 공부를 많이해서
훌륭한 학자를
들었었죠 또 를 많이 남긴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고향인
개성에서는 송도 절이라 하니 철학자
서경덕과 아름다운 자연
박연폭포 그리고 기생 황진이를
말합니다 그녀는 어디를은 선비들과
어깨를 겨고 대화를 했으며 뛰어난
가곡을 많이
창작했습니다 성격도
활달해서 남성에게 굴복 당하지 않고
오히려 굴복 시켰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30년간 벽면 앞에서
수도를 하던 지족 선사를 찾아가서
미색으로 실험을 했는데 굴복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죠 반면 당대 제일의 철학가
있었던 서경덕 게는 오히려 검은 고을
들고 찾아가 스스로 유혹하다가 그의
높은 인격에 복해서 평생 모했다고
니다 많은 일러와 함께 그녀가 지은
유명한 노래들은 조선후기 김천택이라는
사람이 지은 청구 영원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이 악보집은 오늘날까지도 어
전해져서 연주되고 있습니다 이러 기생
제도는 어떻게 생겨나고 또 어떻게
변했을까요 중국에는 상나라 군인들이
동이족을 정보라면 잡힌 족과 그에
저항하는 가족까지 모두 노예로
잡았고 여자는 기생이나 가위로
삼았다고
합니다 또 주나라와 당나라 때 전종
로가 되면 자연히 천민으로 취급되서
가축처럼 노예 시장에서 거래됐다고
하니 기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천민의 영역 안에 있었던 기생
이었으니 그들은 라는 타고난 흙수저의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고조선의 금 8조에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집에 노비로
삼는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부여와
고구려에서는 전쟁포로 그리고 사용자의
가족들을 모두 노비로 삼았다고
합니다 또 옥조와 동해 같은 이혼
나라를 침략해서 정복된 사람들도 모두
천민으로 만들어서 그중 여자들은
갑이나 기생으로 발려 나갔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노비라는 계층의
기생은 국가나 민족간의 전쟁 포로나
형벌 제도에 의해서
생겨났습니다 고구려와 백제 역시
형벌에 의한 노비 제도가 존재해서
간통한 부인을 노비로 삼았다는 관습이
있습니다 또 대역이나 당의 몰락
등으로 얻어진 사람은 국가의 노비 즉
공비가
됐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신분이 높지
않았던 사람은 노비가 되었으면
당연하고 또 종법에 따라서 그의
자식까지도 노비로 이어지는 이런 산비
제도도
있었습니다 신분 제도상 이런 천민의
영역에든 사람들은 노비와 기생 비구니
무당 광대 뭐
천한 당시로 천하다고 생각했었던 그런
직업 이해는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매춘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던 국가
공원이었습니다 여기에 속하는 약방
기생은 의원이나 해민 소속의 의녀로
오늘날로 말한다면 의사 또는 약사
혹은 간호사
중 행위를 맡은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서 약방 기생이라
했습니다 포르나 대역죄인으로 잡혔다
해도 뛰어난 의수를 가졌다면 이런
부류에 넣어서 그 재능을 살렸다고
합니다 상방 기생은 상원의 침선비
가르키는 말로 궁중에서 의복을 짓고
또 관려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이 근무처는 당연히
궁중이나
기생은 직급에 따라 1패 2패 3패로
나눴습니다 1패 기생은 오직 임금님
전에서만 음악과 춤을 수행하고 또
앞서 말씀드린 약방 기생과 상방
기생도 여기에
해당했습니다 일패 기생은 궁중의
장원에서 근무하며 국고에서 급료를
받는 공식적인
공원이었습니다
기생은 와 민기를 나는데 기는
문무백관을 상대하고 민기는 일반 양반
중 하치를
상대했습니다 이들이 근무지도 또한
지방
화였습니다 그러니 오늘날로 말하면
지방공무원
셈인데요 원칙적으로 매춘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지방 장관에게는 관례대로
성접대를 했다고 합니다 알기쉽게 춘의
어머니같은
들이었죠 삼태
기생은 일반 평민을 상대하는 기생으로
노래와 춤 매춘을
병행했습니다이
생에게는 윤리적인 비난이나 인간적
대우를 체념한 반인 반수의 삶이
그들이 선택이 하닌
명이었습니다 한편 투기를 거으로
금하고 처첩 저도가 있었던 당시에는
꿈꾸는 일부 부인들이이 기생의 삶을
부러워 했다고도
하죠 삼패 기생이라 하더라도 선비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시와 문학을 말하고
유학과 예약을 논하는 그런 교양의
자리에서 뒤지지 않도록 필수적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들 삼패 기생은
노래를 자하는 가기 춤을 잘 추는
무기 악기를 잘 타는 금기 실을
잘지는식이 외지에 나간 관리나
군인들에게 현지 천으로 서라고 또
잠자리도 제공했었던
방기 그리고 오직 몸만 팔았었던 창기
등 천민이 행할 수는 모든 구진 일은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예술의 중점을 던 기생과 매춘이 직업
있었던 윤년은 엄격하게
구별했습니다 성종 실록에도 유녀의
음전한 짓을 금지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고급 기생들은 각자 자신의
집도 있고 또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또 결혼도
했습니다 일패 기생의 경우 군거 일을
하지만 때때로 양반들이 그녀들을 따로
부르거나 교회로 나가서 춤과 음악을
즐기고 학문이나 시 글 그림에 대한
이야기 을 나눴다고
하는데이 양반들이 하더라도 어지간한
명망이 없으면은 일패 기생을 부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된
고객이 상류층이 있기 때문에 춤 노래
시조 화해 학문 등의 교육은 그들의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기생은 신분상 계급상
최하위에 속하는 천민 여성이었지만
청의 남성과 교류하는
직업이었기 어렸을
때부터 기생 교육 기관은 교방서 이런
여러 가지 교육을 체계적으로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1908년 일제 강정기 들어서서 충과
노래를 공연하는 기생과 성매매만 하는
창기를 구별해서 영업을 했는데 처음엔
그랬는데 점점 성매매 쪽으로
시대가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경찰성관계
오직 조합의 지시에 따라서 성매매를
중심으로 한 일을 했으며 오늘날
우리들에게 기생과 창가 같다는 인식을
은연 중에 하게 되는 그런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기생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한양대학교 막당 명역 이종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