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그리고 음악” 저자 이종구 한양대음대 명예교수 문화사 강좌 | 46강 | 뇌물의 위력에 시달린 이순신 장군

우리역사바로알기
147 팔로워
본 강의의 내용은 (사)우리역사바로알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동영상은 국민들의 소중한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후원계좌 : KB국민 361-01-0024-405 (사)우리역사바로알기
#우리역사바로알기 #이종구 #백제그리고음악 #몽골 #세종대왕 #뇌물 #이순신장군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음악대 명예교수
이종구
있니다
일본인들은 가톨릭 교회가 들어온
시기에 대해서 중국의 마테르 치보 약
30년 빠른
1549년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예수의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오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예수회는
교육 선교 파괴를 앞세우며 종교
개혁을 반대하는
단체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행한
그들의 만행 때문에 상당수가 예수회를
공포의 대상으로 봤습니다 반면
일부에서는 또 아주 모범적인 가톨릭
교회다라고 생각을 해서 그 평가는
지금도 일본 학에서 논쟁
거리입니다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이 하비에르는
만약 일본에 간다면 무슬림도 없고
유태인도 없어서 선교 활동하기 아주
좋은 나라다라는 말을 듣고 이에
일본으로 연락을 해서 여러 대명의
환영을 받으면서 입국을
했습니다 어찌나 신자가 많았던지 세례
성사를 집전하다 팔이 아플 정도라고
했습니다 임진한 때 최초로 조선에
상륙한소서
행장도이 예수의 광신자 있습니다
대명이라는 일본 전국 시대 무사
집단의 그
영주로서 지역마다
존재였습니다 당시 여러 명들의 최고
책임자
풍신수길은 명나라의 침략을 전제로
명나라를 침략하다 하면서 조선 보고
어 길을 내라고 했던 그 침략의
야망가
있죠 그는 그의 상관이었던 직전
신장인 대명의 자
신속은 예수의 신부들을
추방시켰다 반대했던 이유는 대체로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세국 쟁과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 풍신수길의 뜻대로 임진
외란이
발발하자 일본군은 부산에서 동중서 세
갈라로 나눠 진격을
했죠로는 부산에서 조령을 넘어 충주를
거쳐서 한양에 도달하는
길이었고는
장산중 넘어서
충주에서 중로 그과 합에는
코스였으나 김해에서 추풍령을 넘어
청주 죽산은 거쳐서 한양에 이르는
그런
루트였다 nor 이끄는 장수는 예수의
광신자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소소
행장이
있습니다 그는 크리스트의 번식 발음인
기리시탄 대명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선 바다를
건너서 부산진 동래성을 점검했고
동부사 송상현의 목을
잘랐습니다 그 후 그들은 서울을
점령한 궁성을 태고 다시 평양을
점령했으며 교황의 십자가를 군기로
삼아서 짐승처럼 사람을 죽였고 또
코와 귀를
갔습니다 그들은 코와 귀를 리품
실적으로 삼았던 야차
있죠 같이 출정한 가등 청정이 흑전
다 훨씬 더 잔인 했습니다 아무리
전쟁이라고 하지만 무고한 양민이
여인이나 어린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죽여서 코를 배워가는 그
잔인성 때문에 조선의 어린아이까지
기독교인이란 마주 혼비 백선을
했습니다 그는 임진의이 정유재란 때
에도 스페인 예수의 신부 세스페데스가
참전시키자 이들을 죽이고 또 죽여서
기독교인의 잔인성을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말을 잘
듣거나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조선인 포로 2천명을 일본으로 끌고
가서 기독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한편 임진 하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최고
명장이자 한동안
함경도에서서 한직으로 지내다가
1979년에 2월에 훈련은 봉사가
된도 여러 관직을 지냈고
1983년 여진족 토벌에 공을 세어서
훈련은 군이
됐습니다 그뒤 사복시 주부 직을 지낸
후 임진 내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에 진도 군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채 부임하기 전에 다시
전라좌수사로
임명돼 부임후 외구의 침략을 염려해서
영내 각 진의 군비를
점검했습니다 이때 세계 최초로
평가되는 철갑선을 만들었습니다
전라 좌수 치한 후 이듬에 건조한이
거북선는 지자 현자 등의 발사 시험이
있었습니다 조선에는 1646년 개량한
여러 종류의 화포가 있었는데요 천자
지자 현포 황포 등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때 20만 대군으로
일본이 임진을 일으켰죠 그나 의
주제는 임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순천 외성의 전투와
노량 대체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나마
살피겠습니다
1998년에 외근과 조선의 그
공방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그 그의
가을 일본의 풍신수길이 죽자 덕천가강
실권을
잡으면서 조선으로 간 약들을 일제 수
했습니다 가등 청정이 도진
의은 조선 함대의 봉권 밖에 있었기
때문에 철수가 비교적 쉬웠으나 오늘날
순천시 성에 있었던 소소 행장은
이순신의 함대에 막에서 도망갈 길이
없었습니다소서
행장은 순천 외성에서 탈출하라고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이 정보를 미리
입수한 조선 군에 의해서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이때소서 행장은 먼저
명나라 제독 유정에게 뇌물을 보내고
테로를 열어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는 명나라 도덕 진리에
뇌물 공세로 펴서 퇴로를
애원했고 또한 우리 이순신 장군에게
접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이런 뇌물 따이가 통할 리가
없죠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뇌물을 먹은
명나라 지인에게 왜군을 같이 섬멸
하자라고
했습니다소서 행장은 명나라 장군들과
관계의 그 미량만 믿고서 수차례 십여
척의 배로서 선발대를 삼아서 조선
함대의 봉쇄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이순신장군의 함대에 막혀서
외성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명나라 장군 진린 뇌물을
먹은 상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요지부동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소서 행장은 명나라 군대에게
제차 뇌물을 주는 한편 사천에 썼던
외장 도진 의원과 고성에 있었던 이파
통화에 구원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이와 같은 외군 관의 교신을 명나라
도덕 진인은 무긴 하고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은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후일 마침내
진리는 설득해서 출전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소서 행장은 구원
요청을 어 도진 의용 아게 요청을
해서 500척 왜군을 이끌고 사천
아빠대로
향했습니다 광주양지초등학교
마주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곤양
죽도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진인의
함대와 좌우 협공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10월 18일 조류를 틈타서
남해도서 노량 해협으로 들어오는
500여 척의 일본 함대를
공격했습니다 편 불반 즉 조각배
돌려보내지 않겠다 는 결한 태도로
이순신 장군은 전쟁에
임했습니다 이에 일본 함대는 큰
타격을 입고 남해 관음포 피신했다가
다시 회향을 했죠 통제사 이순신장군은
스스로 선봉이 돼서 일본 함대를 맞아
결국은 적함 200 개척을 불태우는
승리의 순간을
맞았습니다이 치열한 야간 전투가
계속되고 날이 밝던 11월 19일
새벽에 이순신 장군은 싸움을 독려하던
중 왼쪽 가슴에 적의 탄환을 맡고
전사했습니다 전사 후
1604년에 선무공신 1등에
녹음되었다 시호가
내려졌으며 유생들의 발리로
1706년 충남아산의 현충사를
세웠습니다 현충사는 공 이순신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으로 지금도 여기에는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장군이 임진한 7년 동안
군중에서 쓴
일기입니다이 난중일기에 따르면 그는
진중 생활 속에서도 시가를 읊었고 히
달은 밤
감상해서 을 못이를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이 난중 일기에는 한산 도가가
수록되 있는데요 우리 모두 아는
이순신장군의 명작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장군으로서 우국 충정과 고독한 심해가
비장하게 표현되어
있지요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류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끝나니
이신은 이순신 장군의 한문으로 쓴
시를
이상이라는 20세기 시인이 번역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뭐 거의 다 알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원문의 마지막 행에
일성호가는 말이 나옵니다 이순신장군의
한문
원문에는 하 적 수라 해서 강적 즉
막연하게 오랑캐의 필리라 한 것을
이인상 시인은 호가는 특정한 악기
이름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호가는 악기 이름입니다
원래이 악기의
이름은가 즉
외자입찰 몽골에서 만주를 통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하는
그런
악기입니다이 가의 앞에 오랑캐를
뜻하는 호를 붙여서 호가하고 한
것입니다 자 지금 보시는이 악기들이
호감입니다이 지공이 모두 세 개죠
하나 둘
셋이 지공이 세 개인 악기는 모두
사람의 목소리 음역에 맞춰졌으면
불면서 노래도 하고 또 콧김으로
연주할 수 있습니다 소리는 부드럽고
두꺼우며 깊이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이학길 연주하지
않고 없어져서
이순신장군의 한산 도가에이 호가란
악기가 나온다는 사실 그조차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도이 학기를 연주하고
제작하는 사람이 몇명 되지
않습니다 거의 세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악기가이 인데요 이은상 시신이
그나마이
한산도에 사용해서 몇몇 사람들이이를
악기로 기억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뇌물의 위력에
시달린 이순신 장군이라는 제목으로
임진란 당시의 한일관계와 한산 도가에
나오는 가라는 악기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한양대학교 학대학
명예교수 이종습니다
감사합니다 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