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 ㆍ 1. 컬렉팅을 하다보면 분명 나의 선택이고, 나의 취향이고 나의 결인데 '이 작가와 저 작가는 어쩜 이리도 다를까?' 라는 생각을 했던 두 작가가 서용선 작가님과 옥승철 작가였다. 분명 두 작가의 다른 지점에 매료되 나도 컬렉팅을 한 것일텐데 애써 이유를 찾으려하지 않다가 어느날 옥승철 작가가 자신이 서용선 선생님을 무척 좋아한다고 나아가 서용선 작가의 자화상을 본인도 소장했다고해서 그 연결고리가 재미있어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두 작가가 전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누크 갤러리 덕분에 이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의미있었고, 부족하지만 공동기획으로 참여할 수 있어 기쁘다.
2. 두 작가의 2인전을 준비하며 서문을 쓰게 되었다. 그간 전시 서문을 쓰는 것을 늘 거절해왔는데 에이라운지 갤러리에서 류노아 작가의 전시 서문을 쓴 이후로 내가 소장하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 서문이라면 기꺼이 부족하더라도 쓸 수 있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 그 과정에서 두 작가님의 작업실도 가고 (과거에도 갔었지만 전시 준비로 가는 것은 또 달랐다.) 전시 제목에 대한 고민도 하면서 '카이랄'이라는 용어로 전시명을 정하게 되었다. (옥승철 작가가 좋아하는 단어다.)
화학에서 '카이랄성(Chirality)'은 거울상에 있는 두 구조가 결코 겹쳐질 수 없는 상태를 설명하는 용어로 ‘카이랄’은 그리스어로 '손'을 의미하며, 이 개념은 마치 왼손과 오른손처럼, 닮았지만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서 이 개념은 두 작가의 작품이 지닌 본질적 차이와 공명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다. 한 손은 다른 손을 완벽하게 닮았으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서로 반대의 세계에 속해 있다. 이 전시에서는 두 작가의 초상이 바로 그런 카이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적으로 겹칠 수 없는 두 작가의 세계, 그러나 이 두 세계는 그 안에서 서로를 반사하며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전시 서문 중 일부)
3. 두 작가님은 이번 전시를 위해 신작을 도전했다.
옥승철 작가는 서용선 작가님의 모습을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했고 (3번 사진의 좌측: 이 작업 진행 과정을 나 역시 봐왔는데 서용선 작가님의 나이보다 젊게 표현한 건 평소 옥승철 작가가 그리는 인물의 나이들이 사회에 막 나가는 시기인 청소년ㅡ어른 의 나이라서다. 이 작품을 보며 청년 서용선 작가를 상상해도 재미있을 것이다.)
반면 서용선 작가님 역시 "나도 옥작가가 그리는 인물 그려보지 뭐!"라고 하시며 핑크ㆍ블루 초상화를 그리셨는데 작업의 과정을 일부러 오픈하지 않은건 모두가 아는 서용선 작가님의 스타일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기에 개봉박두!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3번 사진의 우측)
이번 전시의 기획과 서문에 참여하며 내가 배운건 두 작가님의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였다. 진정으로 젊은 사람은 늘 열려있고 언제든지 도전하는 어른임을 서용선 작가님을 통해 배웠고 자신의 작업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만든 룰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것을 잉태하는 깊은 창조성을 옥승철 작가에게 배웠다.
미술사는 늘 Old & New 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만들어내는 오래된 신세계이기에 이번 두 작가의 전시를 부디 많은 분들이 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평소 현대미술 강의를 할 때마다 나 스스로 좋아서 매번 부제로 걸던 '시간을 넘나드는 캔버스'의 시각적 열매를 이렇게 전시로 마주하니 알고 보면서도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_______ 📌 《#초상_카이랄》#서용선ㆍ#옥승철 @suhyongsun_archive @aokizy
'회화의 이름: 초상-카이랄’ 전은 두 화가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비추는 두 거울을 마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 거울 속에서 나와 타인, 그리고 그 경계에 서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자아는 결코 서로 겹쳐지지 않으나, 그 안에 깃든 진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전시 서문 중 일부)
※ 이번 전시는 전시를 준비하며 진행한 모든 대화를 기록 노트처럼 만들었어요. (카톡에서의 대화까지) 전시보러 가시면 두 작가님들과 저와 누크 대표님 조정란쌤이 나눈 대화의 기록도 소책자로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날 걸면서 나머지 요기는 다 가져가서
걸면서 정화하는 건 어떨까 싶어요.
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아트 메신저 이소영 작가입니다.
오늘은 제가 좀 재밌는 2인전을 하나 소개를 할 텐데요.
바로 서영선 작가와 옥승철 작가의 2인전입니다.
제 인스타를 보신 분들은 이미 이 전시 이미지 많이 봤을 텐데
전시는 10월 19일까지고요.
멀리 사는 분들은 전시 기간 내에 방문 못 할 수도 있고
또 바빠서 방문 못 하시는 분들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유튜브에 영상으로 좀 아카이브를 해놓는다면
이 두 작가의 전시가 좀 영원히 기억되지 않을까 해서 영상을 켰습니다.
회화의 이름은 누크 갤러리에서 항상 진행하는 기획전이고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초상 카이랄입니다.
서영선 작가와 옥승철 작가
정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작가고 세대도 다른데 어떻게 함께하게 됐냐
좀 궁금하실 텐데요.
이번 전시에 저도 전시 서문을 썼고요.
공동 기획으로 함께 참여를 했습니다.
저는 전시 서문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얼마 전부터 제가 소장을 하거나
제가 좀 좋아하는 작가는 용기를 내서 전시 서문을 쓰는데요.
사실 전시 서문을 읽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읽지 않는 분들도 있어요.
본인의 편의에 따라 본인의 감상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한데요.
제 입장에서는 전시 서문은
이 전시를 보다 좀 깊이 있게
또는 또 다른 각도로
아니면 전시 기획자가 제안하는 방식대로 읽을 수 있는 문이 될 수 있어서
저는 전시 서문을 웬만하면 좀 읽는 편입니다.
읽는다고 해서 전시가 더 잘 이해된다
이렇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전시 서문을 읽으면
이 전시를 기획한 분들이
이런 생각으로 기획을 했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초상이라는 단어는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는 그 초상화의 초상이고요.
카이랄은 과연 무엇일까요?
제가 이번 영상에서 이야기를 해드릴 텐데요.
처음에 소영선 작가와 옥승철 작가를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분들이
엥? 너무 다른데? 하면서 좀 놀라셨었어요.
실제로 저는 좀 재밌는 게
저는 소영선 작가의 작품, 옥승철 작가의 작품
이 두 작가 모두 소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두 작가의 조각을 문득 보면서
어떻게 나라는 한 사람이 작품을 컬렉션하는데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도 이렇게 결이 다른 작가를 선택했지?
그런 좀 의아함과 흥미를 가지고 이 두 작품을 본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예전에 옥승철 작가를 만났는데
어떤 작가님을 좋아하냐 이런 질문에
옥승철 작가가
본인이 서영선 작가를 상당히 좋아한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두 사람의 예술 세계가 너무 다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서영선 작가님이 좋았어요? 이랬는데
이제 그런 이야기를 듣다가
옥승철 작가님 역시
서영선 작가님의 전시에서 작품을 소장해서
본인이 컬렉팅하고 있다라는 얘기를 했었고
서영선 작가님이 사용하는 그런 강렬한 색상의 대비
이런 것들이 옥승철 작가님의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반면 옥승철 작가가 서영선 작가를 이렇게 좋아한다고 많이 얘기하니까
서영선 선생님도 옥승철 작가가 자신의 팬임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전시는 제가 볼 때는
후배 작가와 선배 작가의 만남이기도 하고요.
또 선배 작가를 좋아했던 후배 작가의
어떠한 성덕 전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도 의외로 많이 있어요.
두 작가 모두 초상을 그린다는 점인데요.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이 초상입니다.
하지만 서영선 작가는 본인의 자화상
또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그리고요.
옥승철 작가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어떠한 미소년과 미소녀
혹은 그 성인, 그 사이의 나이대의
어떠한 존재들을 그려요.
가상의 존재들을 그립니다.
이 두 사람의 초상은 비슷하면서도 이렇게 좀 다른데요.
그래서 전시 제목을 카이랄이라고 지었습니다.
카이랄은 쉽게 말해서 왼손과 오른손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두 손은 닮았지만 서로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죠.
저희가 전시 전에 좀 여러 번 만났어요.
직접 작업실을 찾아가기도 했었고
카톡에서도 계속 소통을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공동기획자인 저와 누크 갤러리 대표님
또 두 명의 작가님이 함께 대화한 기록까지도
전시장에 가면 문서로 볼 수 있어요.
결국엔 우리가 초상이라는 단어를 빼놓지는 말자.
초상은 상당히 전통적인 주제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중요한 주제잖아요.
그래서 초상이라는 제목은 그대로 두고
카이랄이라는 제목을 좀 붙여서
새롭게 한번 이 용어를 생각하면서 전시를 보게 만들자.
그래서 전시 제목이 초상 카이랄이 됐습니다.
두 분의 공통점은 또 한 가지가 있는데
제가 어린이 현대미술 교육기관도 운영하고
뮤지엄 교육기관도 운영을 하다 보니까
서영선 작가의 아트선제에서의 전시
내 이름은 빨강
이 전시에서 어린이 교육을 저희가 공식으로 맡았었고
또 BPC에서 옥승철 작가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서
어린이들이 현대미술 교육을 한 적이 있어요.
두 작가 모두 최소 천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작품 감상을 하고 프로그램을 해봤다는 점이
제 입장에서는 좀 공통점이었습니다.
이 영상에서 제가 전시 서문과 전시 설치 과정
또 전시 풍경들을 보여드릴 테니까
서문의 내용과 함께 전시를 좀 깊이 있게 본다면
아마도 서영선 작가와 옥승철 작가
두 작가를 좀 흥미롭게 이해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근데 건물이 너무 멋있어요.
와 엄청 이게 몇 층이지 선생님?
너무 높다
건축주
작업이 워낙 다양하셔가지고
근데 여기 진짜 미술관 같아요. 건물이 특이해가지고
화학에서 이 카이랄성은 거울상에 있는 두 구조가
결코 겹쳐질 수 없는 상태를 설명을 합니다.
카이랄은 그리스어로 손을 의미하고요.
이 개념은 마치 왼손과 오른손처럼 닮아있지만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이 개념은
두 작가의 작품이 지닌 본질적인 차이와 공명을 설명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한 손은 다른 손을 완벽하게 닮았으나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서로 반대의 세계 속에 속해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두 작가의 초상이 바로 그런 카이랄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적으로는 겹칠 수 없는 두 작가의 세계
그러나 이 두 세계는 그 안에서 서로를 반사하며 깊은 공명을 일으킵니다.
서용성과 옥승철 두 화가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예술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바라보는 초상이라는 주제는
마치 한 쌍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다.
카이랄이라는 전시 주제는
단순히 두 작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외형적 차이를 넘어서
그들이 창작 과정에서 추구하는 깊은 본질적 의미를 사유하는 통로가 된다.
서용선의 초상화와 자아상은
인간의 본질을 향한 서용선만의 끊임없는 연구를 담고 있다.
서용선은 초상화를 그릴 때
단순히 외형적 유사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감정과 심리 상태까지도 함께 표현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서용선의 작품이 단순한 인물화에서 벗어나
존재를 표현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한다.
특히 서용선의 자아상은
그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자아상은 예술가 자신을 탐구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 중 하나이며
서용선은 이를 통해
자신의 내적 갈등과 고민
그리고 성장 과정을 꾸준히 시각화해 왔다.
서용선의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신도 있게 탐구하며
이러한 그의 예술적 시도는
관객에게도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한편 옥승철은
가상의 인물들을 창조하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에 가까운 인간의 형상을 제시한다.
그의 인물들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드러내며
디지털과 혜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미지의 제조학과 복제를 통해
원본이라는 개념을 제고하게 만든다.
또한 옥승철의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감정이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어
관객이 각기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든다.
이처럼 두 작가의 초상은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서영서는 현실 속 실존하는 인물을 통해
옥승철은 가상 속 인물을 통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에 다가간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는 모든 초상이
심지어 자화상일지라도
진정한 우리 자신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이
진정한 자아를 반영하지 못하듯
어떠한 초상도 그 인물과 최대한 가까우면서도
인물의 전부를 담아내지는 못한다.
서영성과 옥승철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차이와 유사성은
인간의 다층적인 정체성을 드러낸다.
회화의 이름, 초상, 카이날저는
두 화가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비추는
두 거울을 마주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우리는 이 거울 속에서
나와 타인
그리고 그 경계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자아는
결코 서로 겹쳐지지 않으나
그 안에 깃든 진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는다.
두 작가님 모두 이번 전시를 위해
신작을 도전했는데요.
제가 좀 재미있었던 건
옥승철 작가와 작업실에서 이야기를 할 때
서영선 작가님이 그린 자화상을 보고
이제 옥승철 작가가 새롭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고요.
보시면 서영선 작가가 자주 쓰는
도색 대비, 초록과 빨강
이 대비가
옥승철 작가의 작품에서
어떻게 새롭게 표현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좀 궁금했던 건
서영선 작가님이 과연
옥승철 작가님의 작품을 보고
어떤 신작을 하실까 궁금했는데
너무도 쿨하게
한 번 내가 옥 작가처럼 시도해보지 뭐
라고 하시면서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에요.
너무 재밌죠?
서영선 작가 특유의
작업을 했던 날짜를 기록하는
그 흔적도
저는 어떻게 느껴졌냐면
옥승철 작가는
서영선 작가의 어떠한 젊은 모습을
추출해서
이미지를 만들고
표본이 되게 했고
서영선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옥승철 작가의 그 가상의 이미지를
상당히 표현주의적으로
감정이 느껴지게 그린 것 같아서
좀 재밌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기획과
서문에 참여하면서
제가 배운 건
두 작가님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였습니다.
진정으로 젊은 사람은
늘 열려있고
언제든지 도전하는 어른임을
서영선 작가님을 통해 배웠고
자신의 작업에 확신을 가지고
자신이 만든 룰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것을 임태하는
깊은 창조성을
옥승철 작가에게 배웠습니다.
미술사는 늘
올드 앤 뉴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만들어내는
오래된 신세계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번 두 작가의 전시가
저에게는
오래된 신세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평소 현대미술 강의를 할 때마다
제가 스스로 좋아서
매번
부재로 내걸었던
시간을 넘나드는 캔버스
이 주제의
시각적인 열매를
전시로 마주하는 느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