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또한 지나가리라? 우리가 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 [원영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저자 강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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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암 주지 원영스님은 제행무상에 대해 설명합니다. 모든 것이 순간마다 변화하기 때문에 모두가 무상하다는 뜻인데요. 이 '무상하다'는 것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으나, 제대로 이해하면 보리심을 내며 정진하는 삶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보다 쉬운 불교 교리 이해를 위해 책을 교재로 저자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저자 원영스님과 함께 읽어보아요 ~
#원영스님 #이제서야이해되는불교 #제행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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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의 저자 원영입니다.
오늘도 여러분과 즐겁게 불교 공부를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허망한 꿈, 무상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
재행무상에 대해서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행무상이라고 하면 글쎄요.
이 단어가 주는 어감 자체가 조금은 뭐랄까 정말 허망하고 무상하다.
이 무상이라는 것의 약간의 비관적인 의미도 느낌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재행무상이라는 것은요. 모든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해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일체의 모든 만물이 생겼다가 또 사라지고 변화하고
한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그런 가르침을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당면에 있는 현실이나 또 처에 있는 조건에 따라서 그 결과물은 달라지게 마련이죠.
그러니까 시간적인 변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변화한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면 단순히 어떻게 변화하는가
내 주변에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내가 머물고 있는 집 또 거울을 보면 나라고 하는 존재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늘 이렇게 인지하지 못하고 생각을 안 하고 살고 있죠.
예를 들면 간단하게 우리가 흔히 사용할 수 있는 물을 한번 볼까요?
물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 물을 이렇게 한여름에 더운 날씨에다가 밖에 내다놓으면
그 물은 시간이 조금 흐름에 따라서 점점 변화가 생기겠죠.
우리 눈의 육안으로는 금방은 그 변화를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나고 나면 그 물이 고인물이니까 그릇에 담아놓으면 썩게 되고
그리고 또 더 시간이 지나게 되면 거기에서 날파리도 생기고 뭔가 벌레도 생기고
또 나중에는 우리가 보기에도 흉할 만큼 물의 색깔도 아주 탁해집니다.
거기에서 많은 변화들이 생기는 거죠.
이렇게 더운 날씨에 높은 온도에 두면 그 물이 변화하듯이
마찬가지로 이것을 온도를 내려서 겨울에 밖에 내놨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아주 춥고 뭐랄까 그냥 이렇게 비가 오다가도 갑자기 눈으로 바뀌는 그런 날씨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그러면 이 물은 머지않아서 금방 얼어버리겠죠.
이 이야기는 더운 곳에 두면 물이 썩고 오염이 되고 더러워지고 그러면서 탁해지고
그리고 벌레가 생기고 추운 곳에 두면 이 물의 형태조차도 바뀌고 얼음이 되어버리는
이러한 것도 일련의 우리가 여름과 겨울을 예를 들어서 이야기를 했지만
그냥 이렇게 가까이 내 물을 냉장고에만 넣어도 냉동실에만 넣어도 온도의 변화에 따라서
물은 많은 차이를 나타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물은 시간에 따라서 변화하죠.
우리의 육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로병사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이 세상에 부모님의 결합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이후에 보면 끊임없이 변화하죠. 성장을 하고 응애응애하고 울었던 아이가
자라나서 또 친구들을 만나고 그리고 성인이 되고 그리고 세월이 막 흘러서
나중에는 병도 들고 늙기도 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습니다.
이렇게 생로병사의 상황을 보더라도 인간이란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겠죠. 죽음 뒤에 죽은 한 다음에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그 또한 죽음 자체의 사라고 하는 생로병사의 사 자체만 가지고 봤을 때는
이것은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 사대로 흩어지지 않느냐
물로 흩어지고 흙으로 흩어지고 바람으로 흩어지고 불로 흩어지고
이 모든 것들이 흩어지는 것이니까 없어지는 거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도 자 보세요.
죽고 난 다음에 우리는 화장을 하거나 매장을 하거나 이런 장래의식을 거칩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이러한 의식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그야말로 호흡이 끊어지면 죽는 것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그래서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생사가 호흡지간에 있다라는 이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죽음이 말하자면 호흡이 끊어지면
심정지가 오면 그 이후에 죽음이라고 이야기하죠.
그 이후에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거나 하는 것들은
일종의 죽음에 대한 어떤 살아남은 자들의 의식인 것이지
그 살았던 그 사람의 죽음 자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죽음 그 죽은 사람의 사체를 그대로 호흡이 끊어진 것을 놓아두면
그러면 저절로 또 색깔이 변화하면서 물도 나오고 그리고 악취도 심하게 나겠죠.
그러면서 나중에는 또 흙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점점 변화된다는 거예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죽음이라는 것 자체만 보아도
이것은 다른 쪽으로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이지
모든 것이 사후에 사라진다라든지 다른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이거 뭐 저는 그 사후의 세계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릅니다만
일단 죽음 그 자체만 가지고 볼 때는 이것은 변화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재행 무상 이것은 생로병사 인간의 생로병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제가 드리고 싶어서 이러한 예를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의 마음만 보아도 알 수가 있어요.
우리의 마음은 뭔가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가 또 어떤 때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가
또 설레기도 했다가 그 사람이 한참 좋았다가 또 한참 오랫동안 가까이 지내면
또 그 마음이 좀 옅어졌다가 또 어떠한 것을 계기로 해서 또 싫어졌다가 미워졌다가
그리고 나중에는 그 사람과 소원해지는 그런 관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마음은 늘 수시로 변합니다. 길게 놓고 보았을 때 변하는 것도 있고
짧은 순간에도 뭐 이게 좋았다가 싫었다가 마음에 들었다가 안 들었다가
어느 날 들어보니 저 스님은 굉장히 불교 강의가 좋네 재밌네 이렇게 생각했다가
그 다음에 딱 보았을 때 좀 별로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이것은 다 자기 마음의 변화인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렇게 물의 변화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생로병사
그리고 자연의 변화라든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걸 보면 사계절의 변화
우리가 겨울에 낙엽이 다 지고 그냥 잎이 하나도 없다고 해서
그 나무가 없어졌다거나 죽었다거나 끝났다거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지 않습니까?
왜냐하면 그 나무는 이듬해 다시 새싹이 튈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죠.
생로병사도 마찬가지고 또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주도 마찬가지예요. 성주개공이라고 하는 그런 과정을 거치는데
우주가 생성이 되었다가 그리고 또 한동안 머물렀다가 점점 변화했다가
그리고 사라졌다가 하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죠.
제가 궁금한 것은 그 옛날 2600년 전에 부처님이 어떻게 그러한 것을 아셨을까
되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깨달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굉장히 초월적인
그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처님의 어떤 탁월한 견해? 관점? 이것은 굉장히 놀라울 지경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오늘 공부하는 재행무상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인간이라고 하는 이 범위를 넘어서서
인간이 살아가는 생존해가는 대자연 그리고 우주
우리가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 세계는 말하자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잠시도 머물지 않고 정지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늘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재행무상입니다.
무상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54페이지의 허망한 꿈 무상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했는데요.
생로병사를 통해서 이야기를 말씀을 드렸지만
제가 여기 책에서는 소설을 먼저 꺼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운몽이라든지 춘원 이광수의 꿈이라든지 이 소설 유사한 소설이죠.
말하자면 구운몽을 바탕으로 해서 춘원 이광수의 꿈이라고 하는 소설이 탄생을 했기 때문에
그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 조신이라고 하는 승녀가 어떤 여인을 사모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그 꿈
그리고 또 관세원 보살님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다가 실제로 잠이 들었는데
그 잠 속에서 꿈 속에서 그 여인과 한 생을 살죠.
그 한 생을 살고 나서 정말 실감나게 한 생을 살고 돌아와 보니 꿈에서 깬 거예요.
죽음에 임박해서 꿈에서 발버둥치다가 깼습니다.
그러고 나서 인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것을 느끼고
다시 정진을 열심히 해서 나중에 아주 큰 스님이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조신의 꿈 얘기를 하고 이어서 57페이지의 생주이멸과 성주개공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독소라고 하는 그런 혼자 웃는다.
홀로 독자의 미소질 웃음소자.
이 웃음소자를 써서 독소라고 하는 혼자 웃는다라고 하는 의미의 글을 여기에 옮겨 놓았는데요.
인생을 달관한 자의 어떤 느낌이랄까요? 표현이랄까요?
그런 것들이 이 책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 글 속에 제가 오늘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곡식이 많은 집에는 먹을 사람이 없고
아들 많은 집에서는 굶주릴까 시름 안에
높은 관직에 앉은 이는 어리석기만 한데
제주 있는 이는 제주를 펼 길이 없구나
충만한 복을 다 갖춘 집은 틈을 고
지극한 돈은 늘 더디기 마련이네
아비가 절약하면 자식이 탕진하고
아내가 지혜롭다 싶으면 남편이 꼭 어리석네
달이 가득 차면 구름이 자주 끼고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그 꽃을 떨구네
무릇 세상 만사가 모두 이런 것이니
나 홀로 웃는 이유를 아느니 없다네
다산 신문집에 나오는 독소 혼자 웃는다는 글입니다.
그래요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죠.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것은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요즘에 우리 청년들이 힘들어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리고 슬프게도 개천에 용나는 일은 요즘 세상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다 없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그 이유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비애가 없는 그런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무상함을 통절이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각성하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또 이어서 미국의 시인 렌터 윌슨 스미스의
글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하는 시도
여기에서 이제 인용을 했는데요.
세상에 허망한 이치
무상이란 단어에는 부정적인 느낌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의 개념에는
부정의 느낌도 긍정의 느낌도 없다.
현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 파악일 뿐이다.
이 이야기를 제가 책장을 넘기다 보니까 눈에 띕니다.
실제로 그렇죠.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은 변화한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지
허망하다 좌절감이라든지 괴로움이라든지
이런 것들까지 무상함 속에 다 담고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이제 통념적으로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바탕위에
불교의 개념을 일상에서 사용할 때 무상이라고 하는 개념에는
많은 부분들이 슬픔과 그리고 또 뭔가 좌절과
그리고 허망함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해서 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일본의 사세구에 대한 이야기도 좀 했습니다.
일본의 장수들이 죽기 전에 남기는 그 사세구
이 세상을 버리면서 떠나면서 남기는 그 사세구도
말하자면 되게 허망하다 인생이 무상하다라고 하는
그런 관점과 개념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인용을 했는데요.
특히나 일본의 장군들 장수들 같은 경우
우리나라나 전세계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렇게 장군들 같은 경우에는 권력과 명예와
수많은 것들을 힘과 이 권세를 추구하는 그런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누구보다도 더 물론 겉으로는 만 백성을 위한다라고 하는
그러한 표면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굉장히 욕망이 강하고 권세욕이 강한 그런 자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쨌거나 양면적인 입장이 있긴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 생을 떠날 때는
자신이 일생동안 추구하던 그 명예와 권세와 권력들
이런 것들이 다 쓸데없는 것이다.
이렇게 그 마음 자기들이 느끼는 말을 담아서
시로 남긴 것이 바로 사세구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렌터 윌슨 스미스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고 하는 그런 시도 인용을 했습니다.
이 시를 많은 분들은 그냥 이 또한 다 지나간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 또한 다 지나간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괜찮아 너의 미래는 좋아질 거야
이러한 의미로 이 시를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볼 때는 이 글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지나간다
라고 하는 관점은 철저하게 재행 무상을 그대로 표현한
시가 아닌가 싶어서 여러분들께 소개를 했습니다.
행운이 너에게 미소를 짓고 하루하루가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차
근심 걱정 없는 날들이 스쳐갈 때면
새 속에 기쁨에 젖어 안식하지 않도록
이 말을 깊이 생각하고 가슴에 품어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너의 진실한 노력이 명예와 영광 그리고 지상의 모든 귀한 것들을
내게 가져와 웃음을 선사할 때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지속될 일도 가장 웅대한 일도
지상에서 잠깐 스쳐가는 한 순간의 불과함을 기억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이 지금 힘든 일
특히나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 국민들이 많은 분들이 아마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나 올해는 홍수가 있고 강이 범람하고 많은 분들이 피해를 입었고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먼저 또 가신 분들 명을 달리 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명복을 빌고요.
왕생 극락 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왕생 극락하시고 그리고 살아있는 분들은 다시 힘을 내서 일어서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시가 이렇게 많이 인용되면서
여러분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했죠.
저는 오늘 제 행보상의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지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기운 내시고 다시 복구 작업 잘 하시고
주변에 있는 많은 분들도 복구 작업에 참여를 하시고
그래서 우리 모두 자비로운 손길을 느낄 수 있게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체코 프라하 광장의 천문 시계를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일인데요.
그 시계가 굉장히 인기가 많고 아주 유명한 시계라고 하더군요.
1410년에 설계된 그런 시계인데
가서 보니까 저 시계가 무슨 뭐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그냥 겉모습으로 보면 근사하긴 한데
뭐가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사람들이 막 모여드는 거예요.
6시쯤 되니까 가까이 오니까 사람들이 굉장히 그 광장에 많이 모였습니다.
모두가 다 이 천문 시계를 보기 위해서 모였는데요.
거기 가서 보니까 해골이 종을 치고요.
모래 시계를 뒤집어서 이렇게 시간을 알려줍니다.
말하자면 이 초침이 6시 정각에 딱 되니까
그때 해골이 나와서 종을 치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잘은 모르지만 십일사도라고 해서
그 밖에서 나와서 이렇게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모습 또 해골이 나와서 종을 치는 모습
그리고 또 모래 시계가 이렇게 뒤집히는 모습
이런 것들을 보면요.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너의 명도 짧아진다.
이렇게 알려주는 것 같아요.
너의 죽음이 오고 있다.
지금 너에게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알려주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해골이 나와서 이렇게 종을 치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체코프라에 있는 천문 시계를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그게 이제 물론 잘 설계되었고
멋있고 아주 많은 상징적인 의미들을 담고 있는 시계이기 때문이겠지만
제가 가서 보니까 가르침을 주는 것 같아요.
상징적인 의미를 통해서 해골이라든지 모래시계라든지
그리고 십일사도라든지 또 옆에서 놉니다.
어떤 사람이 막 놀아요.
이제 그만 좀 하고 너 열심히 살아야 돼.
이렇게 놀고 즐기는 이런 인간들에게
너의 삶의 모습을 즉시 해봐.
네가 그렇게 놀 때가 아니야.
이렇게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마치 저는 이것을 보면서 저번 시간에 이야기를 해드렸죠.
코끼리가 쫓아왔을 때 안수정 등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이 등줄을 타고 밑에 내려갔는데
거기 흰쥐, 검은쥐가 갉아먹고 있고
밑에는 동룡이 있고 뱀이 우글거리고
그 절제절명의 그 상황에서
위에서 흰쥐와 검은쥐가 갉아먹고 있는데
위에서 꿀이 똑똑 떨어져요.
그 꿀에 정신이 팔려있는 인간의 모습
오용락에 끄달린 인간의 모습을 그때 말씀을 드렸는데
이 천문시계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그 시계를 통해서도
이 세상이 얼마나 무상한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라고 하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자 그럼 이렇게 이 많은 것들은 무상함을 알려주는데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무상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무상하기 때문이에요.
느끼는 나도 무상하고 느끼게 하는 저들도 무상하고
모든 것들이 나와 이 대상이 모두가 무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잘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예를 들어서 제가 KTX 이야기를 했어요.
기차 이야기를
기차를 타고 지방에 여러분들이 KTX를 타고
부산에 가기로 했다, 대전에 가기로 했다
그랬을 때 기차를 타잖아요.
타는데 기차가 서서히 출발합니다.
그때는 내가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막 달리고 있을 때 알 수가 있습니다.
바깥 풍경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내가 달리는 속도로
옆에 있는 것들도 같이 달린다고 생각을 해봐요.
그러면 내가 지금 가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기차가 가고 있는지를 몰라요.
가만히 있을 때 동시에 출발한다.
예를 들어서 기찻길이 두 개가 있어서
나는 이리로 가고 옆에 있는 차는 저쪽 반대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을 해봐요.
그러면 동시에 움직이는데 어느 것이 움직이는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옆에도 가고 있고 나도 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기차가 지금 가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다는 얘기예요.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이 무상하기 때문에
너도 무상하고 나도 무상하니까 이 무상함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지구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자전을 한다고 하잖아요.
엄청난 속도로 자전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데 공전을 또 하는 거예요.
자전도 하면서 공전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도 돌고 남도 돌고 지구도 돌고 다 같이 도는 거예요.
엄청 빠른 속도로 그런데 우리는 같이 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돌고 있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무상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모든 것들이 다 무상하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것에는 약간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까운 이들이 돌아가시면
아 참 삶이 무상하구나 이렇게 느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다리만 건너면 친구의 사돈의 아니면 친구의 사촌의
아니면 내 아이의 친구의 어머니의 이렇게 조금만 한 다리만 건너면
그때 당시에 장례식장에 갔을 때는 무상함을 느끼고
내 아이에게도 잘해줘야지 내 친구한테도 잘해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돌아오면 금방 얄미운 거예요.
게임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면 얄밉고 이렇게 느낄 수가 있단 말이죠.
무상함이라는 것은 정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 많이 느낄 수 있지만
죽음을 통해서 또 조금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금방 또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이것은 참 우리가 어떤 혈연관계의 중요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자비심의 어떤 확대를 조금 더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가까운 지척, 지인들, 가족들
이 범위가 굉장히 좁은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당시에 끼사굿담이라고 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죽은 아이를 못 보내서 너무 안타까워하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이를 좀 살려달라고 했던 그 끼사굿담이 부처님께 찾아가서
말씀을 듣기를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 가서 겨자실을 얻어와라
라고 하는 그 명을 받았죠.
그래서 집집마다 그건 굉장히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집집마다 찾아갔어요.
죽은 아이를 안고 그러나 이 여인이 찾아간 모든 집에는
단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는 그런 집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여인은 알게 되죠.
이 세상에 죽지 않은 사람은 없구나.
누군가 죽지 않은 그런 집은 없구나 그렇게 뒤늦게 압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왜 나에게 그런 집에 가서 겨자실을 구해오라고 하셨는지
뒤늦게 알고 나서 이 여인이 생각이 바뀌게 되죠.
그리고 가서 부처님께 말씀을 드리고 부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겠습니다.
하고 나중에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그런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제가 이 책에 적어놓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무상한 세상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풀리 끝에 이슬 방울이 해가 뜨면 재빨리 말라버려서 잠시도 가지 않듯이
우리의 삶도 또한 이슬 방울 같다.
마치 큰 빗방울이 물에 떨어져 물거품이 생겼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잠시도 가지 않듯이 우리의 삶도 또한 물거품 같다.
마치 물 위에 막대기로 그은 선이 그자마자 사라져 잠시도 가지 않듯이
우리의 삶도 또한 물 위에 그린 선과 같다.
마치 산의 계곡물이 재빨리 흘러 모든 것을 휩쓸어가며
잠시도 순간도 1초도 머물지 않고 돌진하며 소용돌이 치며 흐르듯이
우리의 삶도 또한 산의 계곡물과 같다.
이와 같이 사람의 삶은 이슬과 같고 물거품 같고
물 위에 그은 선과 같고 산의 계곡물과 같다.
인생은 짧고 제한되어 있고 보잘것 없고 괴로움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진리를 깨달아라, 선을 행하라.
태어난 모든 것들에게 불멸이란 없다.
그러므로 비구들이여 장차 후회하지 않도록 고요한 곳에서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가르침이다.
이렇듯 부처님께서는 안구따란 입가에서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실체와 세상 만물을 알게 함으로써 나아가서 보리심을 바라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중생에 대한 자비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그 가르침이 바로 재행무상이라는 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해서 재행무상이라고 하는 이야기, 재행무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재행무상시 생멸법이라고 해서 설산 동자 이야기까지 말씀을 드렸는데요.
설산 동자가 재행무상시 생멸법이라고 하는 단어를 듣고
이어서 그 이후의 단어가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 싶어서 자기 몸을 던져서 희생해가면서
그 다음 단어 재행무상시 생멸법, 생멸멸이 정멸일악이라고 하는 이 사국의 개송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헌신했다는 이야기까지 말씀을 책을 통해서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부처님도 늙는다라고 하는 글을 이야기 하나 더 해서 이 책에 썼는데요.
부처님께서도 나중에는 주름지고 우리가 인류의 아주 위대한 스승이시잖아요.
뭐랄까 이제는 거의 신격화되어서 부처님이라고 하는 존재는 모든 것을 다 이루게 해줄 그런 분으로 인식을 하고 있지만
부처님도 똑같이 연로하시고 그러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디가니까요 16권에 나오는 이야기
나는 이제 아주 연로하여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오직 나 자신만을 의지하고 나는 그대들을 떠난다.
부지런히 마음 챙김을 가지고 개행에 굳건히 주어라. 차분히 가라앉은 생각으로 그대들의 마음을 지켜라.
가르침과 개행에 부지런히 머무는 사람은 유뇌를 벗어나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행무상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은 사실 이렇게 특별한 가르침이 없어도 눈을 조금만 돌리면 다 알 수가 있고
거울을 통해서 내 모습만 보아도 우리는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무상하다고 하는 것에 머물지 말고 무상한 것을 안 위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
변화하고 허망하고 꿈같고 이러한 세상에 거기에 허망하네 이렇게 하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더 열심히 자신의 수행도 하고 최선을 다해서 이웃들을 돕고
허망한 인생이기 때문에 그 허망한 위치로 더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고
자신을 던질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고 헌신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고 정진해라.
이러한 가르침을 그러한 결론을 낳는 것이 바로 이 재행무상이라고 하는 가르침의 결과물 또는 결론이 아닌가 저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모두 이 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요.
부지런히 정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공부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