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우리의 근본이 되는 역사, 소름 돋는 역사 이전의 시대 총정리 통합본

역사돋보기
152 팔로워
채널에 가입하여 혜택을 누려보세요.
https://www.youtube.com/channel/UCvsJc7Xq0m_TdSs-YGfPg1Q/join
인류의 역사 몰아보기 통합본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통합본
#몰아보기
#문명
#지구
#빅뱅
#인류
#공룡
#선사시대
#역사
#역사이야기
#역사다큐멘터리
도서 리뷰 및 기타 협업 제의 있으신 분 연락 주세요.
[email protected]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독보기 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부터가 역사의 시작 이라고 보시나요
보통은 인간이 글자를 만들고 쓰기 시작한 시점을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사시대란 역사 이전의 시대 즉 인류문명이 글자를 쓰기
시작하기 전의 시대라는 뜻이죠 비록 인류가 글자를 쓰지 않았던
선사시대에도 어쨌든 생물학적으로 는 인간이 왔잖아요
그들의 삶 또한 역사라고 충분히 볼 수도 있겠죠
역사의 범위를 우주의 빅뱅에서부터 인류의 기원까지 포함하는 방식
을 장르적으로 비키스토리라고 부른답니다.
칼세이건 유발하라리 등에 의해서 크게 각광을 받은 분야인데
그렇다면 우리 인류는 어떻게 탄생 했는지 그 인류의 기원을 다룬 인류의
역사 짧게 스키밍 해보겠습니다.
인류의 시작은 곧 포유류의 시작 이기 때문에 포유류 이전 공룡의
시대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지구의 지질시대와 생물의 진화 단계는 크게 시원생대 고생대 중생
대 신생대로 나뉩니다.
물론 각 시대별로 그 내에서도 세분화 되기도 하고요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환경의 변화입니다.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이전 시대에 살고 있던 생물들은 멸종하거나
아니면 변이되어 살아남거나 둘 중 하나였죠
동시에 지구의 생태계를 지배하는 생물들도 변화합니다.
먼저 최초의 시대인 시원생대 뜬 최초의 생명이 40억년 전에 탄생
했고
20억년 전에 세포가 탄생했으며 10억년 전부터는 동물이 나타났습니다.
이때 동물은 거의 대부분 바다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시원생대 마지막 시기에 바다 속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나
해양 생물체들이 대량 매몰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대규모 산사태는 지구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었고
이 시기에 하나의 거대한 판이었던 지구의 지질이 조금씩 분열되기
시작해
오늘날의 대륙을 만들었고요
동시에 거의 대부분 바다 속에 살던 생물들이
바다와 육지 두 곳을 모두 오가는 생물들도 나타나고
육지에만 정착한 생물들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대단히 중요한 진화가 있었으니
시원생대에서 고생대로 넘어가는 환경 변화에서
양분이 사라지자 기존의 단세포 생물들은 사라질 위기에 놓입니다.
양분이 부족한 단세포 생물들은 무리를 짓기 시작했고
양분이 모자란 부분을 서로가 채워주면서
여러개의 단세포가 결합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dna의 일부를 서로가 교환 하고
이 교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마침내 다세포 생물이 등장한 겁니다.
이후 생명체는 dna를 분리시키고 다시 결합시키는 과정을 되풀이
하였고 이 중 생식세포는 정자와 난자로
분리되면서 암수가 구분되었죠.
한때 같은 몸이었던 관성으로 이 암수는
서로를 결합하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젠 고생대 그 중에서도 고생대 말기
이른바 폐름기에 주목해보겠습니다.
폐름기에는 지구 역사상 가장 끔찍 했던 화산폭발이 있었다고 합니다.
시베리아 대륙에서 시작된 화산 폭발은
지구상의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건 물론
화산재와 유해가스 산성비가 지구를 뒤덮었죠.
수중생물 97%가 사라졌고 육지생물 70%가 사라졌습니다.
폐름기에 화산폭발 이후 지구는 중생도로 접어들었고요.
화산폭발로 인해 지구에는 그 어떤 생명도 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화산폭발 때 살아남은 일부 식물 들이 확산되었습니다.
식물은 더 큰 식물을 만들어내고 더 커져서 숲을 이루고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됐습니다.
숲과 흙이라는 터전은 새로운 생태계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그렇게 고생대가 끝이 나고 새로 시작한 중생대를 지배던 생물체는
파충류 그중에서도 공룡이었습니다.
공룡들은 지금의 인류보다 더 오랜 세월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했는데
그러나 공룡들도 멸종의 위기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공룡 멸망의 원인은 운석 충돌이죠.
미국 애리조나주에는 거대한 운석 이 떨어진 흔적이 있습니다.
운석 흔적을 조사해보면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시기쯤으로 추정되는데
이리듐 성분이 많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리듐은 지구상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우주적 원소입니다.
즉 우주에서 이리듐을 머금은 거대한 무언가가 지구로 떨어졌고
그 시기가 중생대 말기의 백악기라는 거죠.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자 공룡 등의 거대한 파충류는 살아남을 수가 없었으나
몸집이 작은 포유류는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생대가 끝나고 신생대라는 새로운 세대의 주인은
몸집이 작은 포유류였죠.
포유류는 몸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생체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몸집과 형태도 다양해졌습니다.
그리고 포유류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합니다.
이 시기에 인류도 등장하죠.
빙하기가 끝나고 온화한 지금의 기후가 정착되자
맘모스 등의 몸집이 큰 거대 포유류 동물들은 멸종해버렸고
최종적으로 이 시대의 주인으로 굴려만 포유류는 인류였죠.
이제부터 진짜 인류의 등장입니다.
인류의 시작은 영장류라고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영장류가 어떻게 인류로 진화할 수 있었을까요?
공룡을 멸종시킨 대사건 이후 인류의 조상인 영장류는 숲에 모여 살았습니다.
원래 아프리카는 숲이 우거진 공간이었습니다.
먹을 열매는 많고 포식자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었던 숲이라는 지형 덕분에
영장류는 그 개체의 종을 다양화 시키며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갔죠.
영장류는 진화를 거듭하며 어느 한 지점에서 침팬지와 인간으로 갈립니다.
침팬지의 DNA가 인류 DNA와 99%에 일치한다고 하죠.
단 침팬지와 인류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바로 직립보행입니다.
침팬지가 이족보행을 못하는 건 아니지만
나무가 많은 숲에서 거주하는 침팬지는 나무를 타기 위해 네 발을 이용합니다.
반면 인류는 두 다리로 걷죠.
그렇다면 사족보행의 침팬지와 이족보행의 인류를 나눈 기점은 언제였을까요?
약 500만 년 전 동아프리카인 어마어마한 지각변동과 화산폭발이 일어납니다.
당시의 지각변동은 오늘날에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그 흔적을 증명하고 있는데
지각변동과 화산폭발로 인해 길고 높은 산맥이 형성됩니다.
이 산맥으로 인해 아프리카는 동부와 서부로 나뉘는데요.
서부는 울창한 숲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동부는 화산폭발로 인해 숲이 다 사라지고 평평한 초원만 남게 됩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가 형성되며 인류와 침팬지의 공통조상
사일렌트러프스 차덴시스는 서부와 동부로 찢어졌고
서로 다른 거주환경에 따라 진화했습니다.
서부 숲에 거주하고 있던 영장류는 계속 나무를 타며 살아갈 수 있었지만
동부의 초원지대에 거주하게 된 영장류는 더 이상 나무를 탈 수가 없었으며
굳이 네 발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던 거죠.
오히려 초원에서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게 훨씬 효율적이잖아요.
비로소 영장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했고 이 시점이 바로 인류의 탄생입니다.
발굴되는 화석을 봐도 아프리카 동부에서는 직립이 가능한 영장류의 유골이 대거 출토되며
서부에서는 침팬지의 유골이 대거 출토되고 있습니다.
즉 영장류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첫 단계는 뇌의 용량의 증가가 아니라 이족보행이었죠.
사실 공룡 중에서도 이족보행을 하던 공룡이 있기는 있었죠.
그러나 공룡은 하나같이 허리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족보행을 했던 영장류는 허리를 고추 세우기 시작했는데
허리가 구부정하면 목구멍이 좁아지기 때문에 음성이 발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영장류가 허리를 세우면서 음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신체 구조가 갖추어졌고
더 나아가 언어의 발달까지 이어졌던 거죠.
최초의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영장류와 인류 그 중간지기에 있는 과도기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겠습니다.
지금의 아프리카 에티오파의 북동부 마을 아파르에서는
330만 년 전에 셀람이라는 유골과 318만 년 전에 루시라는 유골이 출토되었습니다.
두 화석 유골 모두 상체는 유인원의 골격이며 하체는 인간의 골격을 띄고 있죠.
인간의 하체 골격이라는 점은 직립보행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시사하며
셀람과 루시를 일컬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학명이 명명됐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류까지는 아니지만 직립을 주로 하던 유인원 정도로 보고 있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침팬지보다 뇌용량이 크고
침팬지와 인류 사이 중 굳이 하나만 고르라면 인류에 더 가까우나
또 완벽한 인류라고 보기에는 힘들죠.
그 이유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류에 비해서
유년기의 성장속도가 빠르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큰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뇌가 충분히 커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유년기의 성장속도가 영장류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죠.
반면 영장류는 뇌가 충분히 커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유년기의 발달속도가 빠른거구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그 사이에 있던 존재였습니다.
정식적으로 인류로 인정하는 종부터는 학명에 호모라는 명칭을 붙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호모하빌리스와 호모에릭투스로 진화합니다.
제대로 된 인류의 시작으로 보는 시점은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약 250만 년 전부터입니다.
당시 도구는 물론 석기였구요.
석기라는 도구를 이용하며 사냥을 시작했고
도구의 사용에 따라 두뇌도 커졌겠죠.
이른바 구석기 시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최초로 도구를 사용했던 종은 호모하빌리스였습니다.
인류로 인정하는 종부터는 학명에 호모를 붙이는데
호모하빌리스보다 조금 더 발달한 종이 호모에릭투스죠.
지금의 아프리카 케냐 투르카나 호수에서
투르카나 소년 화석이 발굴됐습니다.
투르카나 소년은 이전까지의 화석 유골과 다르게
뼈 전신이 발굴되어 완전한 신체로 조립할 수 있었는데
연구 결과 투르카나 소년 화석의 뇌 용량은
현생 인류보다는 작지만
골격만큼은 인류와 거의 유사했습니다.
성장판에 흔적이 있어서 호모에릭투스는 인류처럼 성장할 수 있었으나
유소년의 발달 속도는 여전히 현생 인류와 불일치했습니다.
어쨌든 도구를 사용한다는 건 획기적인 변화였는데
일반적으로는 뇌가 커지면서 인류의 조성이 도구를 사용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죠.
뇌는 아무런 자극 없이 커지지 않는답니다.
도구를 사용하면서 뇌가 커졌고
호모에릭투스는 도구를 사용해 수렵 생활을 이어나갔죠.
더군다나 호모에릭투스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몸에 털이 무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출된 땀이 쉽게 증발할 수 있었고
체력적인 면에서 털이 많은 동물들보다 월등히 뛰어났습니다.
이렇게 인류는 생태계 먹이 사슬에서 상층부에 해당하는 층으로 점점 올라가는데
호모에릭투스의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만한 특징은
바로 불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불을 통해 구운 요리는 날 것보다 소화가 용이하기 때문에
인류의 이와 내장은 점점 작아졌죠.
단 불을 피운다는 것이 개인의 노력으로 되지 않으며
피운 불마저도 여럿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즉 불은 모닥불을 만들어냈고
호모에릭투스는 모닥불을 가운데 둔 채 의사소통을 하며
함께 사는 법을 습득하는 사회적 동물로 나아가고 있었죠.
이렇듯 인류의 시작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류가 지구 곳곳에 퍼져 있잖아요.
그렇다면 아프리카에 있는 호모에릭투스가 아프리카를 뛰쳐나올 차례인데
그 전에 생명체의 본질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 보겠습니다.
지구의 환경은 계속해서 변했고 앞으로도 변할 겁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진화의 방식을 결정하는데
한때 생명체들의 요람이 넘쳐나고 습하며 강수량도 풍부했던 아프리카가
점차 건조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아프리카가 생명체가 살기에 부적합한 땅이 되어갈수록
아프리카 주변의 추웠던 곳이 따뜻해지고
딱딱했던 토지가 더 부드러운 토지로 변해
반대로 생명체가 살아가기 적합한 땅이 되었죠.
동물들은 당연지사, 살기 적합한 곳으로 떠나갔고
동물을 사냥하며 살아가던 인류는 사냥감을 찾아 따라 나섰습니다.
비로소 아프리카를 탈출하는 거죠.
그렇게 전세계로 퍼져나가 인도네시아에서는 호빗이 생겨났고
중국에서는 북경 원인이 나타났으며
유럽에서는 하이델베리크인들이 정착했죠.
하이델베리크인들은 네안데르탈인들의 전신인데
이 네안데르탈인들은 과일이나 뿌리를 전혀 먹지 않고
육식만 하던 종이었습니다.
심지어 생선조차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네안데르탈인들의 식습관을 고려해봤을 때
그들의 주 거주지는 내륙지방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죠.
반면 육식은 물론 바닷가에 주로 거주하며
어로생활을 하던 하이델베리크인들의 분개종이 있었습니다.
바로 호모사피엔스죠.
하이델베리크인들은 내륙지방에 주로 거주하며
육식 외에 그 어떤 식생활도 하지 않은 네안데르탈인들과
바닷가에 거주하며 잡식을 하던 호모사피엔스로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러던 중 신생대 제4기의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더 이상 호모사피엔스는 바닷가에 거주할 수가 없었죠.
그들은 거주지 탐방을 위해 내륙지방으로 밀려들어왔고
네안데르탈인들과 필환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들을 몰아 냅니다.
정복의 비결은 바로 도구의 활용이었습니다.
항상 크고 털많은 동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네안데르탈인들의 석기는 무겁고 둔탁했지만
어로 생활을 했던 호모사피엔스는 가볍고 날카로우며
무엇보다 투척이 가능한 석기가 있었습니다.
대략 6만 년 전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들의 생존권 투쟁에서
네안데르탈인들은 계속 밀려나가다가 어느 순간 멸종했죠.
이후 사피엔스들은 비단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정착한 지역의 기후에 맞게 잘 적응하며 지금의 인류로 이어졌습니다.
다른 종들과 달리 호모사피엔스가 지금의 인류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건
비단 도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만은 아닙니다.
도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경쟁자를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이슬지언정
영소칼이라는 보장은 없죠.
당시 호모사피엔스의 거주재를 살펴보면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석기들이 대거 매장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사냥의 용도가 아니라 장식의 용도로 석기를 활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순간 호모사피엔스들은 이전의 인류종들과는 다르게 문화라는 개념이 생긴 겁니다.
문화를 만든 호모사피엔스들은 해당 문화를 후손들에게 전승시키기 시작했고
서서히 문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지금의 인류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거죠.
인류종의 최종 진화 형태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현승 인류를 가리킵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 지금의 인류종에 도달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최종 빙화기를 거치고 온화한 기후에 다시 적응하며
1만 년 전 농사를 시작하며 신석기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점차 농업 생산력이 늘고 생산물이 많아지면서 계급이 발생했죠.
인류는 문자를 만들기 시작했고 작은 규모의 도시 국가를 형성하기도 했죠.
이것이 청동기 시대이고 청동기 시대에서 더 발전하면
인류의 생활은 점차 고도화되고 마침내 문명을 이룩하는 철기 시대에 이르게 됩니다.
인류의 문명이 오는 날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역사를 진행시킨 원동력으로
두 개의 가장 중요한 물질이 있었습니다.
바로 철과 금이었습니다.
최초로 문명이 형성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간 인류 문명의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칼, 창, 화살, 총, 대포, 전차 등 형체만 다를 뿐
인류의 여러 문명들은 패권을 차지하고 우뚝 군림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싸움을 계속했습니다.
무력으로만 문명의 숙인을 매기던 세계에서는 결국 가장 강한 무기가 제일 중요했고
강한 무기의 핵심 원료는 철이었죠.
철로 만든 농기구가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사회적 계급을 탄생시켰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중장 범용과 중세 시대의 기사 귀족들에겐 철질 갑옷이 권력의 상징이었으며
몽골의 유목 민족들은 철로 된 등자를 발명해내 세계를 제패했으며
철을 원료로 산업혁명이 일어나 근대가 시작되었고
근대식 무기들이 탄생하면서 전쟁의 양상은 한층 더 잔인해지고 파괴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근대 이후 인류 문명의 역사를 전개한 두 번째 물질은 금, 이른바 자본이었습니다.
철과 금이 결부되어 인간과 민족 그리고 국가의 이기심과 욕망을 극대화시켰고
사실 모든 전쟁의 이면에는 다 자본이 얽혀있기 마련이죠.
양차 세계대전 모두 발발 직전 국가 간 자본과 얽힌 거대한 흔들림이 있었고
양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남 전쟁, 닉스 쇼크, 석유파동,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경제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현대사로 올수록 더더욱 우리 인류의 역사에 타격을 주어 방향을 바꾼 힘은 금, 즉 자본이었죠.
이렇게 인류의 탄생 과정을 빠르게 살펴봤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스스로를 진화시켜나갔습니다.
물론 그중엔 진화하지 못해 도태되는 경우도 있었고
인류는 가장 진화 적응력이 뛰어났던 거죠.
인류는 우리 인간은 그리고 우리 인간이 만든 문명은
진화와 적응에 가장 예민한 동물입니다.
인류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적응하고 버티며 진화해서
그 결과 지금의 우리가 탄생했습니다.
우리 dna는 어떤 환경에서든 조금만 더 힘내서 버티고 적응하면
더 진화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그럼 역사돋보기였습니다.
저희 역사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