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보다 더 놀라운 아프리카 문명들

Origins of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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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 역사에는 많은 작은 왕국들이 생겨났고, 그 중 일부는 이집트에 버금가는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 가장 강력했고 특징적인 아프리카 문명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지구상에서 아시아 대륙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대륙입니다.
인접섬들을 포함하여 약 3037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고 지구 전체 육지의 20.4%를 차지할 만큼 광대한 대륙이지만
넓은 사막과 야생의 초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내전으로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대륙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의 역사에는 수백 개의 작은 왕국들이 생겨났고
그 중 일부는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거대한 국가들은 아프리카를 통합하고 부유한 무역로를 관리했으며 다양한 문화를 지배했습니다.
오늘은 이 아프리카 대륙에 존재했던 어쩌면 고대 이집트 만큼이나 강력하고 발달했던 10개의 문명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럽에서 기독교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강력한 왕국이 등장했습니다.
오늘날 에티오피아의 악숨제국은 막강한 무역과 해군력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동북부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상인들이 나열강을 지나 알렉산드리아를 향하면서 악숨은 7세기까지 홍해 연안을 지배했으며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다른 강대국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유일의 문자 개해지를 창안하여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 모았습니다.
당시 페르시아의 한 작가는 악숨을 가리켜 세계 4대 강국 중 하나라고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인상적인 아프리카 문명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 나이지리아의 독특한 정착지였던 베넹 왕국은 에도족이 서아프리카 열대오림의 나무를 베어내어 넓은 경작지를 개관하면서 시작되었으며
1400년대에 이르러 이 작은 정착촌은 강력한 왕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오바라고 불리는 베넹의 통치자들은 멋진 궁전에 황동을 사용하는 특별한 취향을 가졌습니다.
베넹 사람들은 예술품, 동상, 참혹한 전투 장면을 묘사한 명판에도 황동을 사용했으며
무역과 관련해서는 베넹이 니제르강 근처에 위치한 북쪽의 아프리카 왕국들과 교육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국의 남쪽 끝에는 대서양이 있어 선박을 이용해 산호구슬, 부추, 표범가죽과 같은 상품을 교육할 수 있었습니다.
14세기에 유럽과의 무역이 시작되었고 영국이 베넹의 자원을 빼앗기 위해 침략하여 제국을 불태우면서 결국 베넹 제국은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거대한 금광이 있던 고대 가난은 애완견도 귀금속으로 만든 목걸이를 차고 다닐 정도로 엄청나게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전략적 계획, 강력한 지도자, 풍부한 천연 자원을 바탕으로 가난은 곧 아프리카 대륙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세력이 되었습니다.
가난은 유럽인 및 북아프리카와 교육하면서 금과 상아를 대가로 책, 옷감, 말을 수입했으며 소금도 수요가 많은 큰 교육품이었습니다.
아랍 사업가들은 종종 가나에 입국하여 무역을 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고군분투했고
그러다 간혹 가나에서 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된 사람은 특별한 나무와 물을 섞은 매운 음료를 마셔야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혼합물을 토하면 무죄로 간주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유죄로 간주되어 왕의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많은 외세의 침략을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는 결국 서기 1240년의 그 종말을 맞이했으며
무역에서 고립되고 라이벌에 의해 약화된 왕국은 성장하는 만리 제국에 흡수되고 말았습니다.
만리 제국은 13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번성했던 아프리카의 주요 문명이었습니다.
일명 라이온킹이라고 불리던 순디아타 케이타가 세운 이 제국은 현재의 서아프리카 근처에 위치했습니다.
라이온킹도 인상적인 통치자였지만 제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가진
만사무사 시절의 제국은 가장 번성했습니다. 그의 재산은 무려 4천억 달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일론 머스크 조차 부끄러워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만사무사는 만리의 수도인 틴북트를 아프리카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어
아프리카 전역에서 학자들이 찾아와 공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베넨과 마찬가지로 만리도 니젤 강변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하여
무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1593년 모로코의 침략자들에게 약탈당했고
이로 인해 제국은 점차 약화되었으며 만리는 곧 중요한 정치적 실체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 신비한 문명의 첫 흔적은 1928년 나이지리아 주석 광고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도자기, 암석 페인트, 도구 조각을 발견하면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이 문명이
얼마나 발전했었는지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원전 900년부터 서기 200년까지 존재했던 녹 문화는
현대 사법체계가 체계화되기 수세기 전에 이미 복잡한 사법체계를 구축했었는데 여러 종류의 법원을 통해 절도, 살인, 간통, 가족 분쟁 등의 문제를 처리했습니다.
녹 문명 사람들은 실물 크기의 테라코타 조각상을 최초로 제작한 민족이기도 하며
그들이 만든 조각상은 긴머리, 아몬드 모양의 눈, 갈라진 입술을 가진 외계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묘사했습니다.
또한 녹 문명은 금속 세공 기술도 엄청나게 발달하여 작은 칼이나 창, 팔찌 등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기 200년의 녹 문명의 인구는 뚜렷한 이유 없이 급격히 감소했는데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이는 아마도 기근, 자연 자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 기후 변화 등이 그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밖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쿠시 왕국은 현재의 수단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으며 한때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쿠시족도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고 피라미드를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기괴한 신들을 숭배했습니다.
하지만 두 문화 사이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는데 이집트인들이 철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동안 쿠시족에게 철은 엄청난 자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쿠시 사회에서 여성은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여왕이 왕의 뒤를 잇는 경우가 많았고 실제로 쿠시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 중 하나는 여성 통치자를 기르기 위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쿠시는 아프리카의 다양한 문화권의 예술작품에서 궁수로 자주 묘사되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쿠시가 악숨의 에자나에 의해 침략당한 후 일명 발라나 문화라고 알려진 엑스그룹이라는 새로운 사회가 쿠시 왕국을 점령하면서 그들의 문화가 쇠퇴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송화의 제국은 서아프리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토가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있었으며
800년 가까이 지속된 이 왕국은 15세기부터 16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 중 하나로 손꼽혔습니다.
다른 아프리카 문명과 마찬가지로 송화의 제국은 대부분의 풀을 무역을 통해 얻었는데 약 20만 명의 군대가 영토를 따라 배치되어 시안이 매우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천 개의 문화가 송화의 제국에 지배하여 있었으며 중앙 집권적인 정보관료제에 의해 모두 통합되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화폐도 만들어지면서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고 통합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해져버린 영토로 인해 결국 제국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송화의 제국은 끊임없는 내전에 휩싸였고 한때 강대했던 제국은 16세기 말에는 여러 개의 작은 왕국으로 분열되어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소말리아에 위치했다고 여겨지는 푼트는 아프리카의 아틀란티스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문명과는 달리 이 신들의 땅의 사람들은 짙은 붉은 피부색과 긴 머리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시민들은 주로 물 위에 기둥을 세운 갈대 오두막에서 살았습니다.
이집트와 푼트 사이의 무역거래는 흔했으며 하첩스투 여왕의 유명한 탐험 중에 나무를 거래한 것이 이집트와 푼트 사이의 최초의 교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향과 상아는 물론 인간 난쟁이와 피그미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상품이 푼트와 교환되었습니다.
푼트의 정확한 위치는 여전히 논쟁 중이지만 푸르고 울창한 곳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당시 선원들은 홍해를 건너거나 작은 돛담배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표류하다가 이곳에 도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푼트가 이집트 문학부터 종교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역사가들은 푼트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줄루 제국의 부상은 결혼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줄루 왕국의 시작은 센장 가노카 추정의 사생아 샤카 줄루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몇 차례의 살인미수와 피비린내 나는 가족 분쟁을 피한 후 샤카는 결국 줄루족의 족장이 되었으며
획기적인 군사 전술을 사용하여 줄루 제국을 부유하고 유명한 제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줄루 제국의 가장 큰 업적은 식민지 시대의 가장 두려운 아프리카 문명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샤카 줄루는 이클로하창을 도입하고 황소 진영을 만들어 전사들을 잘 훈련시켜 결국 영국의 침략을 물리쳤습니다.
줄루족은 강력하지만 폭력적인 제국으로 성장했고 1900년대에 이르러 케이프 식민지에 흡수되었으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줄루족의 일부는 현대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향성하고 있습니다.
펜니키아의 초기 정착지였던 고대 도시국가 카르타고는 현대 튀니지에 위치했으며 지중해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카르타고는 전략적인 위치와 풍부한 무역 덕분에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카르타고 사람들은 가구 제작에 매우 능숙했기 때문에 포메니 쿠션, 매트리스, 침대 등 값비싼 사치품 제작으로 유명했으며
한때 로마의 가구 제작자들이 카르타고의 디자인을 모방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카르타고는 또한 복잡한 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과 헌법을 제정했으며
방대한 도서관을 설립하여 관리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카르타고의 문헌은 대부분 소실되었거나
독아프리카의 누미디아 왕에게 선물로 주어졌으며
단지 그리스어로 번역된 농업기술 매뉴얼 한 것만 남아있습니다.
결국 카르타고는 로마 제국의 확장에 의해 불타고 약탈당했습니다.
그러나 카르타고 도시국가는 아프리카에서 부위한 무역제국이자 강력한 상업세력으로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