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기억'을 공간으로 표현하는 방법 ft. 장누벨, 다니엘리베스킨트 ..

조수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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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비디오 조회수·2024. 12. 9.
유대인들이 겪었었던 상처들을 표현하고
바닥에 있는 고개를 밟고 지나가면
쇠가 부딪히면서 깽깽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비명소리처럼
9.11 프로젝트를 레벨스킨트가 했잖아요.
그렇죠.
그것도 좀 의미있게 보셨을 것 같아요.
아픈 기억들도 직접 목도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그런 공간들이
앞으로도 많아져야 되지 않을까
저는 조선총독부 건물 박살낸 건
잘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그 조선총독부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문화적 기억을
없애고 한 거기 때문에
저는 어떤 생각이냐면
이거를 고스란히 띄워서 어디 딴 데 갖다 놓자.
저도 그 생각했어요.
안녕하세요. 조수빈입니다.
오늘은 좀 특별한 질문으로 시작하려고 하는데요.
기억도 건축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에게는 세월이 흘러도 잊지 못할
그런 기억 하나쯤은 있으시죠?
오늘 저는 그 기억을 건축으로 해석한
특별한 공간에 나와 있는데요.
건축이라는 게 예쁜 공간을 만드는 거기도 하지만
그 안에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담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건축이 과연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또 그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기억은
어떻게 승화되는지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린 어둠 그곳에 다시 희망을 세워요
성벽에 평소나게 비워둔 공간의 백두님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 저를 특별한 공간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이 공간을 지은 건축가분이신데요.
우리 구독자님들한테 자기소개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건축가 백희성입니다.
안녕하세요.
굉장히 짧게 얘기하셨는데
사실 여러 가지 이력이 있으시면 눈에 딱 들어왔던 게
장루벨 건축사에서 서비스에서 일을 하셨고
주로 건축에 기억을 담는 작업을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가 건축을 하는 방식이
보통은 벽돌로 건물을 짓는다
혹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건물을 짓는다고 생각하는데
저희는 그런 재료가 아니라
사람의 기억 혹은 도시의 기억
혹은 사물을 담긴 기억을 가지고
모티브로 해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팀입니다.
사실 제가 공간을 좋아하고 건축을 좋아해서
많은 분들 인터뷰 같은 걸 많이 보는데
이런 얘기하셨어요.
건축이라는 게 감정, 기억을 담는 작업이다.
기억을 담는 작업이다.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사람의 기억을 담는다는 거는
그 사람이 갖고 있었던 어떤 추억이나
그 사람이 갖고 있었던 어떤 삶에 대한 전반적인 기억들을
저희가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거고
여기 같은 경우는 클라이언트께서
사람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억 중에 하나인
성경을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성경이요?
네. 성경에 남겨있는 그런 기억들 중에 중요한 몇 가지 이야기로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성경에 남겨져 있는 기억으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의뢰를 하셔서
저도 처음에 엄청 당황했고
그래서 이거 진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가라는 고민도 했었는데
이분이 얘기하시는 성경 속의 구루턱이라는 개념으로
건물을 하나씩 하나씩 이 공간에 만들게 됐습니다.
저희도 공간도 하나하나 구경하면서 아직 건축 중인데요.
저희가 기억과 건축, 건축가마다 컨셉이 다 다르거든요.
토마스 헤더윅 같은 경우는 인간다운 건축, 사랑이 담긴 건축
어떤 사람의 소통이 중요하다. 다 비슷한 얘기지만
백희성 건축가님은 기억을 어떻게 풀어내셨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제가 여기 와보니까요. 나무가 심으신 건가요?
아니요. 클라이언트께서 이 나무를 보고 선택하셨대요.
이 땅을?
네. 왜냐하면 저게 상수리나무인데 저도 몰랐는데
성경에서 상수리나무가 구루턱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걸 보시고 나서 이 땅에다가 성경의 이야기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처음 하신 거고 저희한테 오신 거여서
저희도 처음에 봤을 때 이 나무가 사계절 모습을 다 다르게 하는데
너무 아름다워요.
그래서 이거를 중심으로 해서
지금이 너무 예쁜데요?
지금이 제일 덜 예쁠 때입니다.
이걸 중심으로 해서 건물 하나씩 하나씩 앉히고
거기 안에 성경이 담겨있는 기억을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저희한테 의뢰를 하신 거죠.
인간의 기억을 담는 작업을 하는데
인간의 기억을 가장 많이 담은 건 성경이다.
그런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이 땅의 가장 오래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건 상수리나무입니다.
저는 성경의 기억을 담았다고 해서
무슨 십자가가 많을 줄 알았는데
저는 하나도 없습니다.
일단은 하나도 안 보이고요.
상수리나무에서 시작하는 성경,
인간의 기억을 담은 메시지가 흘러오는데
정면에 보이는 공간이 도서관이라고
모양이 왜 저렇게 생겼어요?
저기는 앞뒤가 다 뻥 뚫려 있는데
각 나라에서 모았던 성경 책들
그리고 성경에 관련된 기독교적 서적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으로 만드신 거예요.
그 도서관에 성경의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처럼
말씀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을 연출하고 싶어 하셔서
저희가 양쪽으로 뻗어나가게끔 그렇게 디자인을 했거든요.
그런데 천장을 빗각으로 표현하셨잖아요.
양쪽은 다 유리로 펴져 있고
빗각으로 하신 이유가 있어요?
사실 빗각으로 한 이유는
약간 집의 형태를 만들고 싶었었는데
클라이트랑 말씀을 하면서
조금 집의 형태지만 부족한 집으로 만들자.
성경이라는 게 사실 인간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신의 기억이잖아요.
신이 남겨놓은 기억이니까
부족한 집을 통해서
인간이 생각하는 겸허함을 표현하자.
완벽하게 만드는 집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집으로 해서
나머지 부분은 마치 자연이나 하늘에 이어져 있는 것처럼
또 방문한 사람들이 채우고
그렇게 하자. 부족한 집을 만들자.
이런 생각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경에서 기억이 채워지기 전의 사람의 모습?
들어가 볼까요?
밖에서 봤을 때는 작아 보였는데
엄청 높죠?
층무근이 몇 미터예요?
7.8m, 5.8m입니다.
여기 위에도 책들이 더 채워질 거고요.
앞으로?
앞으로 더 채워질 거고
지금은 클라이언트께서 모아오신
여러 나라의 성경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서적들이 많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지만
종교를 떠나서 가장 오래된 책.
맞습니다.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오래된.
이건 파키스탄.
저도 처음 봤습니다.
이걸 수집하셨나 보다.
여행을 가실 때마다
현지에서 성경 책을 하나씩 하나씩 다 구매해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여기가 되게
아직 완공되면 다시 한번 와서
책 얘기도 하면 참 좋겠네요.
옛날 책도 엄청 많습니다.
지금 기억을 담는 건축을 하시는데
사실 인간의 기억을 잘 담은 도구가 책이고
가장 오래된 기억들이 모여있는 장소고요.
앞으로 더 많은 기억들이 채워질 공간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아까 그 메인이 아닌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가 딱 보여지게 되어있죠.
저희가 지금 정리가 안 돼 있는데
현장이라서
어디서 보든 상수리나무가 보이게끔
모든 건물에서?
네.
그래서 잘 상수리나무가 보일 수 있게끔
그렇게 디자인을 했고요.
크라이트께서 상수리나무가 이 땅에
가장 먼저 자의 잡은 주인이라고 얘기를 해주셔서
저희도 저 상수리나무를 항상 조심했었어요.
백기성 건축가님이 이런데요.
집을 지으러 가면
어릴 때 무슨 기억 있으세요?
기억나는 거 있으세요?
정신과 상담받듯이 얘기하시는데
그 얘기 좀 해주세요.
제가 재밌게 들었던 게
어릴 때 엄마가 빨간 다라이에서
목욕해 주던 기억을 갖고 계신
한옥에 산 경험이 있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집을 지으셨죠?
저희가 사실 처음에 설계를 할 때
저는 도면을 안 그려요.
도면을 안 그리고
처음에는 한 한 달 동안 계속 대화를 하거든요.
대화를 해서
가장 어렸을 때 좋았던 추억이 뭐냐
이걸 물어보는데
심리 상담하듯이
네. 그런데 너무 재밌는 게요.
하루는 어떤 분이 땅을 가져오셨는데
제가 그 땅을 그대로 이렇게 설명했어요.
그 땅이 언덕이 뒤에 있고
앞에는 개울이 있고
조금 멀리는 큰 산이 보이거든요.
제가 이렇게 여쭤봤거든요.
옛날에 작은 언덕이 뒤에 있고
개천이고 멀리 산이 보이는데 사셨어요.
그 분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알았어요? 이러는 거예요.
지금 가져오신 땅이 그 땅이잖아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어린 시절 갖고 있던 기억을 찾아오는군요.
가장 자기가 행복했던 추억을 찾아서
지금에 맞는 공간을 찾아오세요. 대부분.
집 얘기를 하시니까
제 기억도 하나 좀 말씀 드리고 싶은데
제가 조스빈 큐레이션을 올린 영상이 있어요.
어느날 제주도에 관광을 갔다가
지나고 있는데
제가 어릴 때 태어난 집이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영상 올린 게 있거든요.
그게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너무 반가우면서도
또 이제는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사라질 거잖아요.
내가 가능하다면
저걸 남긴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도에 짓는다면
아나운서님은 상위 0.01%세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자기가 태어난 집에
지금도 그 태어난 집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0.01%밖에 안 돼요.
저도 없어요.
다 개발되고 다 없어지고
새로 건물 지어져서
자기 태어난 집을 다시 볼 수 있는 분들이
조사에 의하면 0.01%라고 하더라고요.
아나운서님은 아직 가능성이 있으시니까
그 집을 꼭 다시 가져오시길 바랍니다.
만약에요.
그럴리는 없지만
제가 그 집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진짜 살아야 돼.
이대로는 못 살겠는 거예요.
그래서 의뢰를 한다면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실 것 같으세요?
아나운서님이 어렸을 때
부모님들하고 어떻게 뛰어다니고 놀았는지
그런 것들을 입체적으로 조사할 거예요.
그래서 그 요소들을 지키고
나머지 편리한 공간들은 바꾸고
가장 중요한 것들
예를 들면 아이가 마당에서
엄마가 항상 신발 벗고 들어가야지 하는데
신발 신고 뛰어 들어가고 했던 장면이 있으면
그 집에서 그 기억이 좋다고 하면
사실 마당서부터 집에 올라간 과정들이
정말 옛날의 느낌들이 살아 있어야 돼요.
어떤 거는 원형을 남기기도 하고요.
그렇죠.
성경의 기억을 모티브로
상수리나부가 중심이 되는 기억의 공간
아직은 여러분 건축 중입니다.
아직 미완성된 공간이죠.
한 군데 더 가볼 수가 있죠?
한번 가보실까요?
가보겠습니다.
저쪽은 도서관이었고요.
여기는 어떤 공간인가요?
이제 많이 오시는 분들이
음료도 마시고 좀 쉴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마련한 거고요.
아마 카페로 이용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그런데 왜 디자인을 이런 식으로 잡으셨어요?
여기 안에 들어왔을 때도
건물 안에 들어와 있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다 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만들고 싶어서 이렇게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딱 네모난 공간이잖아요.
박스 느낌이란 말이에요.
빗각 모양을 잡으실 때처럼
형태를 어떻게 잡으셨는지
단정한 형태를 원하셨어요.
깨끗한
왜냐하면 저게 도드라져야 되니까
저 이외의 건물들은 다
숨을 죽여줬으면 좋겠다 하셔서
또 재미있는 건 여기서 보니까요.
저 상수리나무가 또 다른 각도에서
좀 성스럽게 보이고
아까 저 도서관이 반석을 모티브로 했다고
얘기하셨잖아요.
딱 여기 오니까 진짜 뭔가
재단을 바치는
재단의 느낌도 있고 독특합니다.
저는 좋은 건축이라는 건
전문가는 알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왜 그 건물이 이곳에 있어야 되는지
설명하는 공간
설명이 되고
두 번째는 같은 공간이지만
내가 어느 각도, 어느 위치에 서느냐에 따라서
새롭게 보일 수 있는 공간
여기서 만가지 풍경을 느낄 수 있다면
만가지 기억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 공간이 그 공간이에요.
왜냐하면 저희가 여기서 오는데
먼 거리로 온 게 아닌데
그 과정에서 보인 풍경은 다 달랐어요.
다 다르죠.
그러면서 다 보이고
이렇게 기억을 건축에 담는
국내에서 그런 작업을 하고 계시고
세계적인 건축가들도 많잖아요.
네, 그렇죠.
저는 장루벨 사무소에서 일을 하실 때
장루벨이 파리에 지은 박물관이죠.
캐브론니.
캐브론니 아프리카 박물관이죠.
그 박물관이 파리에 지은 박물관이
어떤 프랑스 박물관 기준을 만들었다고도 해요.
맞아요.
어떤 면에서 그럴까요?
제가 장루벨 선생님이랑 작업할 때
이 분한테 물어 줘봤더니
이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Institution.
프랑스로 직관입니다.
이 분은 건축 직관으로 보세요.
빛의 건축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캐브론니라는 아프리카 박물관은
사실은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고 나면
자기의 이름을 따서
뭔가 기념비적인 건물을 짓는 게
프랑스에서는 약간 전통입니다.
그런데 자크시락 대통령이
예전부터 사실은 노예 무역부터 해서
아프리카에 핍박을 많이 받았었는데
어떻게 보면 프랑스로서는
감추고 싶은 기억이잖아요.
그거를 되게 많이 회유하고
우리가 아프리카의 문화에 대해서
존중하고 이해해야 된다고 해서
그 박물관을 장루벨한테 의뢰를 했고
장루벨이 그걸 짓게 된 거죠.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던 게
어떻게 보면 침략의 역사잖아요.
그렇죠. 드러낸 거죠.
그거를 투명한 그런 유리라고 해야 되나?
투명한 걸로, 직선으로든 아주 과감하게
다 보여줘 버리는 거죠.
다 보여줄게.
우리는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그걸 승화시킬 능력이 있는 국가야.
이런 걸 보여주는 느낌.
사실 일본도 그런 방식으로 한다고 하면
아마 정말 인정받게 되지 않을까.
감추고 싶은 기억들을 감추면 감출수록
더 곪아서 더 크게 터지거든요.
오히려 드러내서 보여주면
모두가 다 인정하게 되는 거죠.
저는 왜 이런 질문을 하냐면
이전에 건축가님이 작업하시는 거는
주로 아름다웠던 기억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많이 했었는데
우리가 살다 보면 좋은 기억만 있는 게 아니라
때로는 슬프고 트라우마라고 해야 되나요?
아픈 기억들이 많은데
해외 건축가들은 보니까
그런 걸 정면으로 다루는 작업들이 꽤 있는 거예요.
장르별도 그렇고.
다니엘 레베스킨트.
베를린은 유대인 기념관.
그것도 건물에 온갖 상처들이 있죠.
유대인들이 겪었었던 상처들을 표현하고
바닥에 있는 금속으로 돼 있는
사람 얼굴 모양에 이만한 사이즈의
얼굴 모양이 있는데 다 달라요.
거기를 밟고 지나가면
쇠가 부딪히면서 깽깽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비명소리처럼 들려요.
들어가면 창이 길게 찢어져 있고
빛이 들어오는데 밖에 차도여서
차 소리들이 약간 기괴한 소리로 들려와요.
홀로코스트처럼 사람들이 절규하는 소리처럼 들리죠.
제가 재미있었던 게
다니엘 레베스킨트가 부모님의 유대인
피해자였던 거예요.
홀로코스트에 피해를 받았던 사람인데
보통 우리 집안에 그런 게 있으면
우리도 사실 근현대에서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았잖아요.
너무 많았죠.
시시하거나 묻어두거나 이런 게 많은데
어떻게 보면 부모의 상처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랐는데
정면으로 다른다.
그 사람의 건축물을 보면
90도로 된 선은 별로 없다는 거예요.
다 사선입니다.
다 사선으로 된 게 어떻게 보면
그런 상처에서 기인된 건데
작품으로 승화된 얘가 아닌가.
그리고 같은 건축가가 한 작업인데
뉴욕에 폐로 피해를 입은
9.11 프로젝트를 다니엘 레베스킨트가 했잖아요.
그것도 좀 의미 있게 보셨을 것 같아요.
그것도 의미 있게 봤고
또 거기에 보면 추모기념관 있잖아요.
검은색 바닥에 물이 채워져 있고
끊임없이 물이 들어가고
저 밑으로 얼마나 깊은지 모르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
그런 거 보면 진짜 감동적이죠.
그리고 아픈 기억들도
이거를 직접 목도하고 당당하게 맞서는
그런 공간들이 앞으로도 많아져야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만약에 우리한테
같은 프로젝트가 주어졌다면
우리는 거기다 뭔가를 다시 지어서
덮어버리는 걸 생각했을 텐데
아예 그라운드 제로를 만들어버리는
저는 이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우리는 사실
역사가 짧고
또 찬란했던 문화가 박살난 게 아니라
있던 문화가 그라운드 제로가 되어버리고
전쟁으로
전체가 다
전체가 제로돼서
누구도 여기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하기 쉽지 않은 상태가 된 거죠.
그러니까 지어올린 거고
또 경제발전이 일어나다 보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마음 한켠에 있는 아픈 기억들
이런 것들을 케어할 시간이 없었던 거예요.
이제서야 조금조금씩 탈이 나고 있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뭔가 있으면
아픔이 있으면
딱 지우는 작업에 익숙했던 것 같아요.
소독약 뿌리고 상처 반창고 붙여서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게 올바른 얘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국립박물관으로 썼던
조선총독부를 아예 폭파하는 장면을
화면으로 딱 보여주잖아요.
지금 와서는
그게 바른 접근이었냐 하는
전문가 분들 이야기도 엇갈리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어느 정도
문화적으로 성숙을 했으니까
그런 식의 건축들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세요?
그렇죠.
이게 좀 애매하긴 한데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
저는 조선총독부 건물 박살낸 건
잘했다고 생각하긴 하거든요.
왜냐하면 조선총독부 이전에
우리가 갖고 있었던 문화적 기억을
없애고 한 거기 때문에
물론 저는 그때 학생이었기 때문에
저는 어떤 생각이냐면
이걸 고스란히 띄워서
어디 딴 데 갖다 놓자.
저도 그 생각했어요.
그러고 싶었는데
혹은 그 당시에 제가 아니라
어떤 전문가 분들은
땅을 깊게 파서
걔를 쫙 밑에다 집어넣고
유리로 덮어서 그 위를 걸어다니자.
그런데 지금 아예 폭파해버려서 없죠.
그런데 당시에는
제가 생각했을 때는
우리는 굉장히 속도감 있게
경제 발전하는 과정이었고
역사의 일시가 이런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토론의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그 당시에는
사회 문화가 폭파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가 나름대로는 위안이 되는
카탈시스가 일어났죠.
지금은 어떨까요?
지금은 대한민국이 많이 바뀌었고
좋은 건축가들도 계속 나오고 있잖아요.
앞으로는 좀 많이 달라...
지금 이미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워낙에 한국에 좋은 건축가들도 많으시고요.
해외에서 건축사무소도 보면
한국분들이 주력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엄청 많아요.
결국에는 저는 시간 문제인 것 같아요.
한국 K-아키텍쳐도
K-POP이나 K-무비나 이런 것처럼
한류 문화에 중심이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좋은 기억은 남겨서 좋다는 거는
이루 말할 필요가 없고
때로는 9.11 테러처럼 아픈 기억이라도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상처가 다시 되는 게 아니라
방문한 사람들이 다시 희망과 연대감을 느끼는 그런 공간.
많이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추억들
건축은 기억을 갖는 듯
감정과 시간의 흔적을 품어
아름답든 아프든 잊지 말아요
그곳에 다시 희망을 세워요
성병의 구루턱이
겸손하게 띄워둔 공간의 의미
빛과 바람 하늘을 담으며
공간의 이야기를 기억해봐요
건축은 기억을 갖는 그릇
감정과 시간의 흔적을 품어
아름답든 아프든 잊지 말아요
그곳에 다시 희망을 세워요
좋은 기억과 아픈 기억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길이 열려요
모든 건물이 말해주는 이야기
그곳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들
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그 위에 사랑과 희망을 짓는 거죠
건축은 기억을 갖는 그릇
감정과 시간의 흔적을 품어
아름답든 아프든 잊지 말아요
그곳에 다시 희망을 세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