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가장 무서운 절대 가면 안되는 미국 병원

MysteryTube미스터리튜브
219 팔로워
158 비디오 조회수·2024. 12. 29.
1926년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의 한 한적한 도시 외곽 지역에서 작은 병원 하나가 개헌했습니다.
웨이버리 힐스라고 불리던 이 병원은 결핵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치료하기 위한 특수 병동을 갖추고 있었는데요.
토마스 헤이스라는 루이빌의 사업가위에 설립된 이 병원은 당시 전염성 때문에 마땅히 치료할 정소를 찾지 못하고 있던
많은 결핵 환자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며 짧은 시간 안에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곳에 입원한 환자들은 울창한 삶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와 함께 수준 높은 의료진들의 진료를 받으며 만족스러운 병원 생활을 누릴 수 있었는데요.
그러나 이 환자들 중 대부분은 이 병원의 지하에 데스터널이라고 불리는 의문의 통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과연 웨이버리 힐스에 입원한 결핵 환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20세기 초에 결핵은 그야말로 팬데믹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도시물을 밀집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이 질병은 매년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며 한때는 전세계 사망몰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는데요.
공개 중으로 감염이 된다는 결핵의 특징은 우리가 최근에 겪은 코로나19와 유사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만드는 측면도 있지만
치명률만 놓고 보자면 두 질병은 비교를 하기 힘들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가장 극심하던 시기인 지난 2011년,
외신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2억 명 이상이 감염됐던 코로나의 치명률이 약 2% 정도라고 발표했는데요.
결핵은 시기나 장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특정 시기에는 치명률이 40%에 달했던 때도 존재했을 정도로 몹시 위험한 질병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 중 하나는 결핵의 치료제가 매우 더디게 개발이 됐다는 사실인데요.
의료보건 전문가들은 결핵이 이미 1800년대 후반부터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지만
결핵의 치료제는 1940년대에 스트레프토마이신이라고 불리는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출시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결핵에 감염된 사람들은 감염의 위험으로 인해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 밖에는 다른 손 쓸 방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요.
웨이보리 힐스와 같은 결핵 전문 병원들은 이러한 환자를 돕기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핵 전문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주로 치료보다는 요양에 가까운 회복 활동을 펼쳤는데요.
이곳에서 환자들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햇살을 쬐며 같은 증세를 앓는 환자들과 만나
삶에 대한 희망을 나누며 서로가 회복되기를 바라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업가들 중에는 이 같은 환자들의 희망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었는데요.
웨이보리 힐스를 설립한 토마스 헤이스 또한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광산업으로 큰 돈을 번 헤이스는 더 큰 부를 이루기 위해 웨이보리 힐스를 개원해 환자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는데요.
고급스러운 시설을 갖춘 그의 병원은 상당히 저렴한 요금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노동자 계층부터 자산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헤이스가 봉사료에 가까운 요금만 받고 병원을 운영한다는 사실은 지역신문을 통해 알려지며 그를 유명한 선행가로 만들어주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헤이스의 이 같은 선행 뒤에는 끔찍한 목적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환자들을 이용해 인체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인데요.
헤이스는 결핵환자가 높은 확률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해 그들의 남은 목숨을 제약회사나 의사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웨이보리 힐스에서 진행된 가장 악명높은 실험 중 하나는 흉곽 성형수술이었는데요.
결핵환자들이 가슴의 답답함을 호소한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수술은 외과 시술로 결핵을 치료하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습니다.
가슴을 절개하고 갈비뼈를 제거한 뒤에 폐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풍선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수술은
지금의 의료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실험적인 성격의 수술이었는데요.
당시에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의사들은 이 같은 수술을 진행함에 있어서 환자들에게 마취조차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수술을 받은 환자 대다수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정신질환자가 되거나 수술의 후유증과 합병증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하는데요.
루이빌 외곽의 한적한 숲속의 자리를 잡은 탓에 웨이보리 힐스의 이 같은 반응은 오랫동안 외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 터널을 데스 터널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담력을 테스트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 중 일부는 이 터널에서 발자국 소리나 서늘한 기운을 느낄 뿐만이 아니라
벽을 타고 기어다니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는데요.
영매사들은 사람들이 이 장소에서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이 절대 우연이 아니며
그것이 크리퍼라는 원혼 집합체와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매사들은 웨이보리 힐스에 존재하는 크리퍼가 한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이곳에 입원한 뒤에 살아서 돌아올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원망이 뒤섞여 탄생한 존재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곳을 방문한 몇몇 영매사들이 크리퍼를 제거하기 위해 재령의식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둘 수 없었는지 크리퍼에 대한 목격 소식은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들려오고 있습니다.
데스 터널과 함께 웨이보리 힐스에서 가장 유명한 구역 중 하나는 바로 502호실인데요.
이곳은 병원이 운영되던 초창기에 간호사들의 휴게실로 사용되던 장소였지만
출입 금지 구역으로 지정돼 오랜 시간 동안 버려져 있던 장소였습니다.
이 장소가 출입 금지 구역이 된 데에는 한 가지 사연이 있었는데요.
웨이보리 힐스가 운영될 당시 간호사들은 저렴한 급료를 받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교대 근무에 투입이 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들에게는 병원일 외에는 자신의 삶을 살 여유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산을 앞두고 휴가를 거절당한 한 간호사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끝낸 것이었습니다.
유서에서 그녀는 아직 태어나지 못한 자신의 아이와 자신을 죽게 만든 이 병원을
죽어서도 저주할 것이라는 내용을 남겼는데요.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웨이보리 힐스 502호에서는
간호사의 형상을 한 이상물체가 목격됐다는 보고가 종종 들려오기도 하는데요.
일부 사람들은 간호사 대신 어둠 속에서 아기의 울음과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고
웨이보리 힐스에서 벌어진 비극은 1961년 병원이 폐쇄되면서 종지부를 짓게 되는데요.
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병원이 개원한 1926년부터 1961년까지 약 8000여 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이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폐허가 된 이 장소는 오늘날까지도 영적체험에 관심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는데요.
이곳을 방문한 한 인터넷 방송인이 실종되기도 하는 등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공포스러운 일화를 만들어내며
지역 주민들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결핵 전문 병원 웨이보리 힐스와 그곳에 숨겨져 있던 비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회사들이 웨이보리 힐스의 인체 실험을 의뢰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