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영, 영성이 사라진 종교에 미래는 없다 : 종교의 세속화에 대한 뼈있는 일침 [붓다빅퀘스천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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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귀한 자리에 50주년 기념하는 특별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깊이 감사를 드리고요.
저녁 식사 시간인데도 많이들 오셔서 자리를 함께해 주셔서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서울대 종교학과에서 종교심리학과 신비주의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불광하고 종교 무뇌력 시리즈라는 제목으로 종교 이후의 종교 내안의 엑스터시를 찾아서 라는 제목의 교양서를 올해 초에 출간을 했습니다.
그 책의 주요한 내용은 21세기라고 하는 것, 지금 대한민국이 특히 그런데요.
굉장히 저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는 측면에서 오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은 탈종교 시대에 종교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라고 하는 사실 거창한 제목인데요.
이 제목 관련해서 크게 다섯 가지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일단은 탈종교 시대라고 저희가 얘기를 많이 하는데 탈종교 시대의 특징을 세속화하고 무종교인의 증가라고 하는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고요.
그다음에 이런 전체적인 탈종교 시대가 전개되는 현대사회의 특징으로서 현대사회와 개인의 부각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현대사회에서 어떤 변화들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고
그게 어떻게 개인이라고 하는 삶의 주체로서 개인을 내세우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가.
그다음에 이런 상황을 반영해서 종교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정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교 변화, 최근에 종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개인들의 욕구 혹은 종교적인 열망을 영성, 마음, 발달이라는 말로 말씀드리고요.
그다음에 새로운 종교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변화한 시기에 종교가 뭘 해야 되는가.
종교의 새로운 의미와 역할에 관한 얘기.
그다음에 한국사회의 미래 종교 이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초대를 받고 보니까 저도 그렇지만 뒤에 우리 홍 교수님께서 하시는 내용은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되게 무게가 있는 내용들이라 분위기를 밝게 하기가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또 하나 이게 탈정기 시대라고 하는 얘기도 뭔가 하여튼 위기가 오고 위기 속에서 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하는
굉장히 절박한 내용의 말씀을 드리려고 하니까 이것보다 훨씬 더 즐겁고 편안하게 말씀드릴 주제들도 많은데
이렇게 요청을 받았으니까 가급적 편안하게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을 어쨌든 1시간 안에 다 말씀드리고 질의응답도 있다고 하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시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서 그냥 우스갯소리를 한마디만 하고 가려고 합니다.
제가 종교학을 전공하니까 사실은 한국에서 종교학을 듣고 종교에 관한 얘기를 듣고 싶으실 때
우리나라가 다 종교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종교에 관해서 얘기 듣고 싶으면 스님도 불러야 되고 목사님도 부르고 원불교 같으면 교우님도 부르고 이렇게 다 불러야 되는데
저처럼 종교학자를 부르면 한 번에 다 해결이 되니까 많이들 불러주세요.
그렇죠. 요즘 말로 가성비가 굉장히 좋아서 많이 불러다니는데
다녔던 강연 중에서 제가 제일 어렵고 힘들었던 강연은 제가 박사학위 받고 한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미산 스님이 김포 승가대학에 계셨을 때 승가대학에서 종교학 수업 마치면서 특강을 해달라고 해서 저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울대에서 김포 승가대학까지 차를 몰고 멀리 이렇게 특강을 하러 갔었어요.
보통 평평한 강의실인데 강의실에 들어가니까 백분의 스님들이 앉아계시는 거예요.
백분의 스님들이 앉아계시는데 이렇게 크게 세 분단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제일 오른쪽에는 비군의 스님들이 한 40분, 50분 앉아계시고
가운데는 비무장지대처럼 아무도 안 앉아계시고 왼쪽에는 비구 스님들이 앉아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 비구 스님들이 제가 이렇게 소개받아서 올라가는데 비구 스님들 중에 한 10분 정도는
그 책상하고 의자인데 그 의자에 가부자를 하시고 눈을 감고 계시는 거예요.
소개를 받고 올라가는데 눈도 안 뜨시고 눈 감고 계셔서 제가 정말 당황했어요.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이제 유머를 구사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유머가 갑자기 떠오른 게 뭐냐면
초대해 주신 미산스님도 스님이시고 계시는 분이 다 스님이시니까
그날 그 강의장에서 머리카락이 제가 제일 긴 거예요.
저도 모르게 강의를 다녀봤지만 머리카락이 제일 긴 게 이번이 처음인데 이렇게 얘기하는데
한 분도 안 웃으시는 거예요.
내용 들어가기 전에 한 분도 안 웃으시니까 등에서 식은땀이 쭈욱 흐르면서 말이 꼬이기 시작을 하는데요.
어떻게 강의인지 모르게 버벅대고 있으니까 한 40분 지나니까 미선생님이 내려오라고 그러더라고요.
다 끝났다고 그래서 서울대로 다시 차를 몰고 88도로를 타고 오는데요.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서 너무 그래서 그 이후로도 혹시나 학교에서 안 좋은 일 있거나
강연이 잘 안 되거나 이런 일이 있으면요.
저녁에 김포승가대교에서 강연하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오늘 만약 제가 이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생님들을 편안하게 즐겁게 해드렸다고 하면
다 김포승가대교에서 스님들이 저를 단련시켜준 덕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이제 내용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탈종교시대 세속화 무종교인인데요.
일단 세속화라고 하는 것은 예전에는 종교적인 교리가
우리 삶의 대부분의 영역들을 지배하고 운영하는 원리였다고 하면
이제 정치, 교육 그다음에 법률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종교적 교리 혹은 종교적 세계관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 하는 게 세속화입니다.
이 세속화와 더불어서 가장 크게 다시 말해서 종교의 영향력이
사회에서 잃게 되면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화 중에 하나가
종교인이 줄어드는 겁니다.
여기 보시면 2007년도 전세계 인구의 종교 분포입니다.
보시면 이렇게 가톨릭, 제가 볼 때는 제일 오른쪽인데요.
거기에 보면 가톨릭부터 시작해가지고 기독교가
단일 종교 전통으로는 제일 많고
그다음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이런 순으로 되는데요.
저기 보시면 난 릴리저스라고 해서 종교가 없는 사람이
2007년도에 전세계의 11%였다는 뜻입니다.
그다음에 이거는 2015년 통계인데요.
여기 보시면 기독교, 무슬림 그다음에 16%가
언어필리에이티드라고 하는 거는 어떤 종교 조직에도
내가 소속돼 있다고 밝히지 않는 사람들
어떤 종교 조직과도 연관이 없는 사람이 16%로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거의 뭐죠? 한 8년 만에
11.77%에서 16%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고 하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년에도
여전히 전세계에서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 정도 되는 거죠? 84% 정도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요. 정말로 놀랍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요.
보시면 이거는 통계청에서 2015년도에 인구 센서스 조사했을 때
보시면 어떻게 됩니까? 2005년도에 무종교인이 47%였는데요.
2015년에는 56%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10년 만에 과반수 이상이 무종교인으로 변했다는 거죠.
그다음에 이것보다 더 최근의 통계인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21년이죠. 15년 이후로 6년이 지났을 때
무종교인이 몇 퍼센트가 됐습니까? 60%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60%가 됐다는 거는
10명 중에 6명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하는 거죠.
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요.
보시면 84년부터 2021년까지 거의 30년, 40년 가까이 변화 양상인데요.
보시면 제일 마지막이 21년이죠.
21년에 16, 17%라는 게 불교가 개신교하고 거의 비슷한
종교 없음이 60%인데요.
여기 보시면 오른쪽 그림이 슬라이드가 조정되면서
연두색이 슬라이드 조정한 쪽으로 안 따라가서
볼 수 없는 숫자에서 제가 가린 건 아닙니다.
원래 보면 19세에서 20대가 결국은 여기 보시면 78%입니다.
그러니까 2021년에 60대 이상이 무종교인이 41%인데
거의 10대, 20대는 2배 가까이 무종교인이 많다는 거죠.
다시 말하면 젊을수록 종교를 안 믿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20대의 78%는 종교가 없다라고
자기 스스로를 정체성을 규정하는 거죠.
그런데 이 내용을 보시면 더 놀랍습니다.
왜 사람들한테 종교를 가지지 않으세요?
무종교인이 종교를 갖지 않는 이유를
97년부터 21년까지 갤럽이 조사를 하니까
제일 왼쪽에 붉은색으로 되어있는 게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종교에 대한 불신, 실망,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데
관심이 없다는 건 말 그대로 진짜 관심이 없는 겁니다.
종교에 대해서 일말의 관심이 없다는 뜻이고
종교에 대한 불신, 실망은 애증.
다시 말하자면 종교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종교 어떤 측면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는 종교를 안 가져요.
그 다음에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건
내가 너무 바빠서 종교가 좋다는 건 알지만
바빠서 종교를 안 가져요.
그런데 이 비율이 어떻게 변합니까?
점점점점 무관심의 비율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21년 조사에서는 불신, 실망이나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보다
두 배 이상 어떻게 됐습니까?
무관심한 비중이 높아졌죠.
그리고 이제 당연히 자세한 내용으로 넘어가면
정말 이 숫자가 다 가려졌군요.
연령별로 보면 제일 밑이죠.
연령별의 10대에서 20대의 비율 중에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다고 하는 비율이 거의 60% 가까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20대는 정말로 종교에 대해서
78%가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에 종교를 안 갖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고 하는 거죠.
이게 그러니까 단순히 종교를 믿지 않는다에 그치지 않고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 자체가 아예 종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라고 하는 거죠.
아예 관심이 없다.
그리고 아예 관심이 없는 젊은 세대가
어쨌든 점점점점 많아진다는 거죠.
이것과 비례해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조사도 이렇게 해보면
1984년부터 2021년까지에서
위에가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는 게 어떻게 됐습니까?
이렇게 줄어들었다는 거고요.
그 밑에는 어떻게 됩니까?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하는 게 54%까지
완전히 역전됐다라고 하는 거죠.
거의 한 40년 만에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늘고 있다에서
감소하고 있다라고 역전이 됐는 거고요.
그다음에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종교가 진짜 사회의 전체적으로 종교가
도움을 주는가라고 하는 물음에도 어떻게 됩니까?
이 매우 중요하다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가
정확하게 반대로 두 배로 이렇게 역전이 됐다는 얘기죠.
이 모든 것들은 결국은 뭘 가르쳐줍니까?
한국의 이렇게 다종교 상황, 동서양의 종교가 고루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들어서 압도적으로 무종교인의 수가 빨리 늘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종교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관심하고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고
그다음에 종교가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라고 생각하는 비율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 거죠.
이게 사실은 한국의 다종교 상황에서 전례없었던 변화인 거죠.
그리고 보시면 이게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종교인이 늘고 있는데
이 무종교인이 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단순히 종교 신자의 감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제도화된, 조직화된 종교를 유지하게 되는 직업 종교의, 직업 종교 사제들의 희망자들
혹은 출가자 수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는 거죠.
보시면 조계종의 출가자 수 추이잖아요.
보시면 2000년도에 528분, 그러니까 비구승, 비군위승 이렇게 해서
스님들이 양쪽 다 합쳐서 528분이었으면 2020년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61명, 그러니까 작년의 경우에는 80몇 분 정도로 살짝 늘었다고 얘기하지만
어쨌든 2000년도 초반에 비하면 어떻게 보면 거의 10분의 1 혹은 15% 정도로
급격하게 출가 희망자가 줄었다고 하는 거죠.
이게 이렇게 되면 결국 어떻게 얘기됩니까?
제도화된 종교 혹은 조직화된 종교가 과거와 달리 21세기에 특히 대한민국에서
무종교인이 60%가 됐을 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내용 자체가 굉장히 힘든 상황으로 변하고 있답니다.
전례 없는 변화라는 게 그런 뜻입니다.
그다음 두 번째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세속화와 무종교인의 증가라고 하는 것을
어쨌든 한편으로는 더 뒷받침하고 더 가속화시키게 되고
그다음에 이런 종교의 변화와 무관하게 현대사회 자체가 변하고 있는 양상들
왜냐하면 앞으로 종교가 미래사회 혹은 현대에 어떻게 될 것인가라고 물어보면
현대사회의 변화라고 하는 맥락 속에서 파악을 해야 되니까요.
이걸 살펴보면 현대사회의 개인의 부각입니다.
현대사회라는 게 정말 전례 없는 방식으로 여러 측면에서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경제 교육, 정치적 권리, 평균 수명의 연장
놀랍죠? 연세 드신 분이 저렇게 해변에서 높이 뛸 수 있다고 하는 게 놀랍긴 한데
어쨌든 굉장한 변화가 있다는 것, 첫 번째 경제적 풍요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한 30, 40년 전에는 아침 인사가 뭐였습니까?
아침 식사는 하셨습니까? 라고 하는 것은
아침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에피소드고 사건이고 중요한 일이었다는 건데
지금은 아침 식사하셨냐고 누가 물어보니까
지방을 몸에서 분리하기 위해서 다이어트하고 간헐적 단식부터 해서 온갖 음식을 줄죠.
예전처럼 또 사람들이 뷔페도 자주 안 가잖아요.
뷔페 가서 그 모든 음식들을 싸고 먹는 걸 안 하죠.
그다음에 저희 슈퍼마켓 혹은 이마트 같은데 가보시면 샴푸의 종류, 치약의 종류, 칫솔의 종류라는 게
너무 다종다양해서 도대체 뭘 써야 될지도 모를 정도로 너무너무 풍요로운 사회가 됐다고 하는 거죠.
현대가 있으신 분들은 다 기억하시잖아요.
예전에 비누 가지고 세수하는 것도 힘든 시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풍요로워졌다는 거죠.
문맥률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바람지도 글을 읽게 되는 시대가 됐다고 볼 수도 있네요.
어쨌든 모두가 문맥률의 조사라고 하는 게 한국 사회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을 만큼 글 읽는 사람들 수가 많아졌습니다.
그치만 해방 이후만 하더라도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글 읽는 사람보다 더 많았던 시대니까
불과 50, 60년 사이에 교육 수준, 우리나라처럼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사회가 없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정말 높은 교육 수준의 재고가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졌다고 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보시면 민주주의부터 시작을 해주고 평등의식, 개인이라는 게 얼마나 첨부인권을 가지고 자기 삶의 주인인가라고 하는
이런 인식들이 민주주의 교육, 여성 해방, 페미니즘 움직임입니다마는
이 모든 것들이 동시에 굉장히 농도 짙게 진행이 됐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뒤에 보시면 패러다임의 전환이죠.
저희가 초등학교 때 보면 이소비 이야기인 거죠.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 나오잖아요.
그걸 보시면 개미와 배짱이 중에 누가 바람직한 곤충입니까?
개미가 그렇죠. 여름에 띵가띵가하고 놀다가 결국은 겨울에 가서 먹을 게 없어서 개미한테 음식을 얻어 먹으러 가고
주지 않으면 추운 겨울에 얼어 죽는다는 얘기였으니까 개미가 아주 훌륭하고
배짱이는 안 좋은, 여름에 즐겁게 지내면 안 된다고 하는 건데
요즘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지금 제일 많이 하고 싶어하는 직업이 뭡니까?
엔터테인먼트죠. 사실은 BTS는 물론 엄청나게 열심히 연습해서 그 정도 포지션까지 올라갔습니다만
BTS는 요즘으로 보면 개미하고 배짱이 중에 배짱이에 가까운 직업인 거죠.
그다음에 친구들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하잖아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직업군 중에 1등이라고 하는데
이 직업도 사실은 보면 개미보다는 배짱이에 가까운 직업인 거죠.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선수, 운동 선수, 연예인 이 모든 직업들이
불과 20-30년 전에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각광받지 않는 직업이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보시면 현대사회라고 하는 거요. 앞서 말씀드린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합쳐져서
엄청난 선택의 자유, 정말 압도적인 선택의 자유를 개인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뭘 살까부터 그다음에 결혼할까 말까.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을까 말까.
예전 같으면 당연히 했어야 될 행동들을 누구나 다 자기가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그것도 결정하는.
심지어 직업조차도요. 먹방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뭐 한 10년, 15년 전에 라면을 한 30개 끓여가지고 카메라를 틀어놓고
그거 30개 라면을 한 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으면 너가 한 자리에 천만원도 넘게 벌 수 있다.
이런 거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죠. 이게 직업이 될 수가 없었지만
지금 어떻게 됩니까? 이게 가능해진 시대가 됐다고.
그러니까 결혼부터 직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의 고정불변의 정체성이라는 게
예전과 달리 완벽하게 새롭게 정의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거죠.
그래서 21세기를 뭐라고 말합니까? 내가 나를 만드는 시대.
내가 발견한 삶의 의미에 따라서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하고.
그다음에도 동시에 뭐죠? 그거를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을 져야 됩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에 대한 선택의 결과도 개인이 져야 되고.
그다음에 직업부터 시작해가지고 결혼의 여부까지 모든 것들을 책임져야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이 모든 변화와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변화와 발전이 더 빨리 일어났습니다.
더 빨리, 더 압축적으로 그리고 놀랍게도 급속도로 이 모든 것들이.
그래서 이게 유교전쟁이잖아요. 유교전쟁이 한 70년 전쯤에 정부가 파괴된 상태에서
이렇게 놀라운 자본주의적으로 발전한 사회로 변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인문학자가 그 말씀하시더라고요.
한국의 세대 차이라고 하는 것은 인류 역사로 보면 전근대가 있고 근대가 있고 포스트 모던이 있다고 하면
한국은 이 모든 세대가 한꺼번에 다 있다고요. 한꺼번에 다.
그래서 한국의 세대 차이는 단순히 근대인들 사이의 세대 차이, 나이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전근대가 존재하고 그 다음에 현대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지금 MZ세대 같으면 포스트 모던한 시대가 이 작은 나라에 함께 모여 있으니까
세대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라고요.
그 점에서 한국이 놀라울 정도로 빠른 변화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보면
개인에게 엄청난 스테레스를 준다는 거죠.
제가 뒤에도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마는
대학생들이 대학에서 제가 가르치고 있으니까 특히 한국의 대학생들, 서울대도 대표적입니다마는
학생들은 1학년 들어와서부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뭘 해야 될지를 알 수가 없어서.
그 다음에 어떤 직업이 앞으로 10년, 20년, 30년 오래 갈지를 알 수가 없죠.
그래서 학생들이 제일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 뭡니까?
20기에서는 의사선생님 외에 의사선생님은 연령과 무관하게 자격증이 주어지니까
그 다음에 인문계 쪽이나 사회대 쪽은 어떤 겁니까?
이것도 변호사 자격증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런 거죠.
이 두 직업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오자마자부터 준비를 하기 시작하는 거죠.
이게 결국은 한국사회 혹은 현대사회가 갖는 불확실성을 어쨌든 나름 젊은 친구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건데요.
바로 이런 상황에 종교도 함께 있다라고 하는 거죠.
종교도 있다라고 하는 그거를 본격적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말씀을 드리다 보니 목이 말라서 물을 좀 마셔야 되겠는데요.
혹시 우리 선생님이 앞에 두 가지 말씀드린 것 중에 나중에 질문도 저희가 받을 수 있지만
제가 물을 마시는 동안 혹시 질문 하실 선생님 계십니까?
그러면 질문 안 하시더라도 제가 물을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무거운 주제를 제가 말씀드리다 보니까 편하게 계시라는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네요.
그러면 종교를 둘러싼 본격적인 변화의 세 가지 측면, 영성, 마음, 발달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60% 우리나라에서 60%가 무종교인인데요.
제가 강연 갈 때마다 무종교인들 손 들어라고 얘기를 미리 조사를 합니다.
조사를 해보면 갈수록 무종교인이 많아집니다.
서울대에서 행정대학원 같은 데서 고위공직자 공기관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와서 1년 동안 교육받을 때 제가 해마다 강연을 가는데요.
이분들이 해마다 갈 때마다 연령이 최소한 40대부터 60대 초반까지 있으신데
무종교인의 비율이 해마다 늘어납니다.
심지어 그분들은 무종교인이 젊지 않은 나이인데도 80%에 육박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거는 80%에 육박하는 무종교인들한테 다시 물어봅니다.
우리 종교가 없으신 80% 중에서 나는 유문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이 죽으면 그걸로 다 사라지는 거지.
죽어서 혼백이 있다든지 저쪽 세상이 있다든지 이승이 있다든지 저승이 있다든지 저승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런 생각도 갖지 않는다라고 하는
정말 아주 절대적인 의미에서 유문론적으로 손들으라고 하면 그 80% 중에서 10분의 1도 손들지 않습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요. 이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는 무종교인 중에서도 대부분은 어떤 사람인 거죠.
종교적 정치성이 불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종교를 가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개인적인 종교를 가지고 있게 돼요.
제가 강의하면서 학생들 수업할 때도 항상 첫 번째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고 학생들한테 종교적 배경에 대해서 자기소개할 때 얘기하라고 하거든요.
제가 들었던 가장 흥미롭고 놀라운 자기소개는 뭐냐면 어떤 친구가 몇 년 전에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올해는 저희가 가톨릭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올해는 저희가 가톨릭이래요. 그래서 그게 무슨 얘기냐 하니까 가족이 1년마다 종교를 바꾸고 있어요.
그래서 사찰도 갔다가 기진교 교회도 갔다가 그런데 올해는 성당을 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를 순례를 하는 거죠.
이게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지만 이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나 가능한 얘기인 거죠.
물론 한 종교가 절대적으로 옳은 진리라고 생각하는지 종교인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불쾌한 일이잖아요.
마치 쇼핑하듯이 종교들이 돌아다니니까.
어쨌든 중요한 얘기는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무종교인이 종교적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고 하는 말씀.
그래서 그게 염성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미국은 대표적이지만 미국에서도 우리나라랑 비슷하죠.
당신이 종교 있어요. 그러면 종교가 없다고 얘기하면 유문은 전혀. 그게 아니잖아요.
그럼 이분들이 어떻게 이걸 표현하냐고 하면 당신이 종교 있어요. 그러면 I am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고 표현하는 거죠.
나는 종교적이지는 않고 영적이에요라고 하는 말을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종교성과 영성이라는 게 구분됩니다.
그러면 종교성이라고 하는 게 뭡니까?
제도화된, 조직화된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종교 속에 들어가서 종교성을 구현하는 사람들.
영성이라고 하는 거는 내가 제도화된 종교의 소속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간이 유물론적인 존재로 죽으면 다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유물론적인 세계 혹은 보이는 세계를 벗어난 더 큰 차원과의 관계가 있고
이 관계를 내가 직접 체험해서 알아가는 영적 여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을
스스로를 영적이다 혹은 영성을 추구한다고 표현하는 거죠.
그 점에서 영성이라고 하는 게 새롭게 등장을 하고
이런 현상을 보고 저희 같은 종교학자들이
이게 종교성과 영성이야?
그러면 이 영적인 걸 추구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되지?
이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이지 않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이라는 말로는 다 커버가 안 되니까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는 말의 spiritual, but not religious라는 말도 있지만
우리나라 최준식 선생님이 한 종교를 넘어선 종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종교인데 어떤 종교? Religion of no religion.
무종교의 종교라는 표현이 있는 거죠.
그러면 무종교의 종교면 앞에 있는 religion은 뭡니까?
제도화된 조직화된 형태의 뒤에는 no religion 그러니까 그런 종교고
그 다음에 뒤에는 no religion은 뭡니까?
그 제도화된 조직화된 종교 영역 바깥에서 어쨌든 영성
옛날에는 종교성이라고 표현됐던 것들을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노력들을 이렇게 표현하게 된 거죠.
그래서 그 얘가 템플스테이죠.
2002년도에 월드컵을 계기로 템플스테이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템플스테이 참여자가
우리나라에서 600만 명을 넘어선다고 조계정 통계에 따르면
640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하는데요.
이 640만 명의 템플스테이 참여자가 국내인, 외국인 합쳐서 늘어날 동안에
그 도는 기간 동안에 불교인의 수는 어떻게 됐습니까?
300만 명이 줄었습니다.
그러니까 템플스테이를 640만 명이 갔는데
그 도는 기간 동안에 300만 명이 줄었다는 거죠.
그런데 이 템플스테이라는 게 자기 돈과 자기 시간을 내서
어쨌든 단기추가처럼 불교의 수행문화와
불교의 컨텍스트라든지 자항을 경험하겠다는 건데요.
이분들이 뭘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까?
자기 존재의 더 깊은 차원을 직접 발견하기 위해서 그렇다라고 하는 거죠.
그 다음에 산테하고 오슬렛길도 코로나 전에 한국에 엄청나게 많이들 가셨잖아요.
이건 템플스테이보다 더 힘든 곳이죠.
가서 한 달 넘게 발에서 피가 나도록 수백 킬로를 걷는 거예요.
그런데 이분들이 가톨릭 신도에서 산테하고 오슬렛길을 가는 게 아니죠.
뭘 하려고요?
종교 오슬렛길, 기독교의 3대 종교 성지인 오슬렛길을 혼자 걸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에 대한 존재의 더 깊은 정체성을
직접 발견하기 위해서 이 일들을 하셨다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두 번째가 마음입니다.
21세기는 한국이 대표적입니다라고 하면 대표적입니다만
인간이 내가 누군지를 직접 발견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합니까?
가장 자기 내면으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자신의 무의식에 대해서
내가 누군지에 대한 자기 정체성을 자기 마음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이걸 찾을 거예요.
그래서 사실 21세기가 무슨 학문의 시대가 됐습니까?
심리학의 시대가 된 거잖아요.
얼마나 많은 심리학 조술들이 사실은 인간이 현대인들이
엄청나게 많은 스트레스로부터 자기 발견을 통해서 치유하고
이걸로 회복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심리학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굉장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이게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힐링과 치유의 시도라고 하는 게 힐링, 웰리스 이런 말들이
엄청나게 퍼져있는 거죠.
그리고 대표적으로 힐링, 마음을 치유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아까 템플스토리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종교, 전통이 수천 년 동안 발전시켜온 명상이라고 하는 기법입니다.
제가 서울대에서 수업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명상과 수행이라는 수업입니다.
서울대에 명상과 수행이라는 수업이 있습니다.
명상과 수행이라는 수업이 있는데요.
예전에는 선과 종교 수행이라고 하는 불교의 전통 내에서
선 수행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고 하는 걸 가르쳤는데
이게 실제로는 대부분 이론 수업이었는데
선을 한두 번 외부 특강 강사를 모셔다가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학생들이 이걸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 이게 명상에 관한 이론적 수업
특히 불교 전통에만 국한된 이론적 수업에서
선 수행, 선을 포함한 명상 수행의 수업으로 변하게 되면서
몇 년 전부터는 저하고 도교 전공하는 두 선생님이 한 학기씩 교대로 가르치는데요.
나만의 명상법을 개발하는 수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한 학기에 100명 이상씩 수업을 들어옵니다. 학생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자기 소개서에 이 수업 왜 듣지라고 접어내면요.
다 뭡니까? 우울증이나 그만 먹고 싶고요.
학교 와가지고 스트레스가 너무나 많은데
명상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테크닉을 통해서
나의 심리적 건강들을 찾고 싶어서 이 수업을 들어옵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와가지고요. 놀라운 게 그겁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론 수업, 실기 수업을 해서
한 학기 동안에 나만의 명상법을 찾아내는데
보시면 이 명상과 수행을 들으러 온 친구들의 90% 이상이 무종교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 친구들은요.
명상이라고 하는 기법 자체가 종교 전통에 수천 년 동안 개발시켜온 것조차도 모릅니다.
굉장히 놀라운 일인 거죠.
그 점에서 사실은 이 마음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영성
물론 이 친구들은 영적인 축구를 하기 위해서 이 수업을 들어온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마음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나 자신을 명상이라고 하는 종교 전통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다 빼내고
어쨌든 심리치유의 기법으로서의 명상을 활용하는 분위기나 현상이
현대사회, 한국을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 아주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다음에 마지막이 사실은 발달입니다.
앞에 두 가지가 다 연결됩니다.
어쨌든 영성이라고 하는 것도 내가 보이지 않는 차원과 더 큰 관계라고 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직접 회복함으로써 내가 더 큰 차원의 일부라고 하는
자기 정책성들을 만들어간다고 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그거를 어떻게 해요?
심리적인 방식을 통해서 내 마음에 더 깊은 차원들을
명상을 통해서든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발견하겠다는 뜻이고
그 발견의 과정이 결국은 인간을 더 성숙하게 만들고
더 발달시켜서 더 온전한 존재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거죠.
여기 보시면 어쨌든 발전의 과정이고
종교성의 표현도 이렇게 점점 개인이 주체가 돼서
더 큰 자기의 정책성들을 직접 체험하고 발견하겠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특정한 종교전통의 교율이라든지 믿음체계, 신행체계에 자기를 다 묶지 않고
이것들을 넘나들면서 추구하는 움직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고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여기 앞으로 말씀드릴 내용 중에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메슬로라는 사람이 욕구의 위기이론,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서 안전, 사람과 소속감, 자기 존중의 느낌
그다음에 이런 모든 것들이 충분히 아랫단계 욕구들이 충족되고 나서야
그다음에 자아실현까지 욕구들이 단계적으로 올라간다고 하면
사실은 이 얘기가 물론 욕구가 위계적으로 가치에 따라서 판단한다고 하는 의미보다도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걸 인류 역사에 개입을 시키면
우리가 30년 전에는 아침 식사하셨나요? 라고 물어보는 것과
아침 식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가 우리 삶의 굉장히 개인에게 있어서나 공동체에서 중요한 과제였다고 하면
지금 그걸 물어보지 않는다는 게 무슨 얘기죠?
생리적인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이런 것들이 다 넘어서서
자기 심리학을 통해서 나의 자존감을 찾고
그다음에 자기가 발견한 삶의 의미에 따라서 자기 삶을 만들게 되는
인류 역사의 어떤 의미에서 보면 최초의 시대가 됐다는 거죠.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다음에 내가 양반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인종이 흑인이어서 이런 거가 다 사라진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삶 속에서 구현시키려고 해요.
그다음에 레슬로는 자아실현의 욕구의 가장 핵심 부분에 뭐가 있다고 얘기하냐면
자아 초월의 욕구라고 얘기합니다.
사실은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진정한 의미에서 자아실현이 된다고 하는 것은
예수나 북다나 노자나 공자처럼 인류의 성인들이 보여줬던 작은 나를 벗어나서
더 큰 차원 속에 자기 정체성을 만들게 되는 자아 초월의 욕구까지 간다고 하면
결론이겠습니다만 21세기의 탈정교 시대의 종교라고 하는 것이
바로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사랑에 대한 욕구를 넘어서서
나를 발견하고 그다음에 나를 초월하게 되는 그게 어떤 방식이고요.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교리에 묶이지 않고
자기 스스로 모든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최초의 시대가 됐다고 하는 거죠.
실제로 사람들이 그걸 하고 있다라고 하는 거죠.
이거는 어쨌든 종교성이라고 하는 거가 아까 레슬로가 얘기한 것처럼
어린아이 때의 신앙이 따로 있고 어린이의 신앙이 따로 있는 것처럼
인간의 개인의 지적 수준, 사람의 경험의 수준이 높아지게 되면
교리에 대한 이해, 종교성의 표출, 종교성의 구현의 방식에 대한 이해도
당연히 달라진다는 얘기고요.
그래서 이게 집단적으로 얘기하면 아까 말씀드린 거죠.
인류 전체가 경제적으로 인권과 권리라는 측면에서
그다음에 수명의 연장이라든지 교육 수준의 향상 때문에
이 인류 전체가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 전체가
종교를 통해서 뭘 도달하고 싶어 한다고 하는
그 욕구 자체가 아주 급격하게 변했다고 하는 걸 말씀드립니다.
이제 저희가 두 챕터 남았는데요.
거의 결론 부분입니다.
빨리 진행을 하고 질문들을 받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차원에서 새로운 종교의 정체성이라는 게요.
구한말에 유교가 500년 동안 조선시대라고 하는 이름으로
얼마나 우주천부터 시작해주고 지상에 이르기까지 위계를 만들었잖아요.
거기 위계라는 게 남자, 여성, 그다음에 계급적 질서 같은
온건한 질서체계를 만들었다고 하면
거기에서 주류가 되지 못했던 사람들한테 기독교가 와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복음을 전해주죠.
복된 소식인데 그게 뭡니까?
하느님의 사랑받은 아들, 딸로서 거의 똑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불러라고 했죠.
그 점에서 여성들이나 노비들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들한테
엄청난 해방의 복음이었고
그리고 실제로 기독교, 개신교, 천주교가 와서
열심히 노력한 게 뭡니까? 교육과 의료죠.
인간들을 무지에서 깨어나게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사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바를
기독교가 잘 성취를 시켜줬기 때문에
전 세계의 종교, 특히 기독교의 선교 역사에서
한국처럼 기독교가 성공적으로
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훌륭한 일들을 많이 했던 겁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 전체적으로 탈종교 시대가 급격하게 진행됐고
무종교인도 늘어났지만 코로나 시대 어떻게 됐습니까?
코로나에 교회에서 집회하는 여러 가지 사안을 놓고
엄청나게 교회 혹은 종교 전체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이라든지 평가가 달라졌다고 하는
그리고 이미지 회복, 이게 개신교에서 조사한 겁니다.
예를 보시면 윤리와 도덕, 실천, 약자구제미, 봉사, 정부와 소통, 사회통합, 인권의 약자 보호
결국은 뭡니까?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의미라고 하는 걸 바꾸지 않으면
기독교인들이 볼 때에도 기독교 교회 혹은 교회나 개신교가
이미지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죠.
이런 관점에서 제가 말씀드리는 게
앞서 말씀드린 영성, 마음, 발달이라고 하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주제라고 하면
공동체의 관점에서 보면 종교라는 게 이런 일들을 해야 된다고 하는 거죠.
여기 교회에서 주차장 개방하는 겁니다.
보통 우리 보시면 교회, 종교시설 들어오면 사람들이 싫어하죠.
왜? 주말에 주차공제 시비 붙는 것도 싫은데
교회가 주민들한테 주차장을 교회에서 공동체하고
그다음에 산사음악회도 마찬가지죠.
불교인들을 대상으로 음악회를 하는 게 아니라
문화행사로서 고전당한 사찰에 와서 문화행사들을 즐겨요.
다시 말하자면 종교시설을 종교인과 무관하게
어쨌든 교회의 공정성을 높인다는 거죠.
동시에 옆에는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이라고 하는
미국의 사회운동가인데 이분은 반식을 해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건데 이 얘기를 왜 하냐고 하면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에 노년층이 너무너무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사실 노년층이 수면도 길어졌지만
어쨌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정리해야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종교의 그런 특정한 교리에 입각한 게 아니더라도
종교가 할 일들이 이렇게 엄청나게 사회적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많다는 거죠.
그다음에 보시면 종교가 이렇게 종교인이, 무종교인이 늘어났는데
이 무종교인이 아까 말씀드렸듯이 다 유문자가 아니기 때문에
종교적인 열망이 있고 종교를 가지고 싶어해요.
종교를 가지고 싶어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대표적으로 다큐멘터리가 있었습니다만
현대인들의 위안을 갖고 싶어하고 공동체를 회복하고 싶어하고
사람들의 교류를 갖고 싶어하는 종교적인 열망을
나쁜 방식으로 구현시키게 되는 종교들도 많이 등장하게 된다는 거죠.
그다음에도 동시에 이 종교가 여전히 독선적인 태도를 가지고
남의 종교 혹은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하고 갈등들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현상들이 여전히 있죠.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나라의 60%의 무종교인들은 종교에 대해 애초에 무관심했지만
이런 일부 종교 혹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작용, 사회적 부작용을 보게 되면
종교에 대해서 가차없이 비판할 뿐만 아니라
종교 전체에 대한 이미지로 굳히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90% 학생이 명상과 수행을 들어온 90% 학생체가
종교를 가질 생각을 아예 안 하겠다는 현상까지 발생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는 이런 경쟁적 환경 속에서 다종교 상황이라는 게
사실은 종교인, 무종교인 사이에 그다음에 종교인과 종교인 사이에
상호존중이라든지 하는 모습들을 잘 보여주지 않게 되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처하게 될 겁니다.
결국은 제가 강조드리고 싶은 것은 겸손과 열림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변해야 된다고 하면 어쨌든 자기 종교의 가르침, 자기 종교의 신행,
자기 종교 조직에 대해서 확신하고 독선적인 태도가 아니라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열려 있고
그다음에 무종교인의 용성 추구라든지 종교적인 열망에 대해서 열려 있고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열려 있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21세기 대한민국의 다종교 상황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미래가 제가 볼 때 굉장히 어둡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입니다.
한국사회와 미래의 종교를 이렇게 얘기를 하면
어쨌든 종교라고 하는 게 과거의 가르침입니다.
2,500년 전, 2,000년 전 종교의 장시자들의 가르침이
어쨌든 수천 년 동안 효과와 의미를 가지고 가져왔다고 하면
지금 이 시대는 그게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예전에는 강과됐던 새로운 측면들이
전체적인 관점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그래서 대표적으로 첫 번째 지성윤리명상입니다.
불교 전통에 얘기하는 개종의 사막이죠.
종교 활동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지적인 측면,
그다음에 윤리적인 행위라고 하는 측면,
그다음에 명상이라고 하는 자기 존재의 더 깊은 차원들을
직관하는 이 세 분야가 공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는 얘기고요.
그다음에 초월과 사회적 삶의 조화입니다.
아까 말씀처럼 먹고 사는 게 문제고
안전이 문제인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어요.
그러니까 종교가 어떻게 합니까?
살아있는 삶의 기간 동안에도 위안을 주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위안이 죽은 다음에
저쪽 세상에서 이루어진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서는 더 이상 천국, 지옥, 극락과 같은 얘기,
접촉 차원의 얘기로 이쪽 삶의 태도라든지
방식을 바꾸게 하는 종교적 가르침이 통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어떤 친구들한테요? 젊은 친구들한테요.
젊은 친구들한테 인생이 고다라고 얘기하면
인생이 고라고 생각하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고라고 생각하더라도 선생님들이
혹은 우리 윗세대가 느꼈던 그 고하고
이 친구들이 느꼈던 고의 내용과 종류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런 가르침.
그다음에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친구들한테 너희들은 죄인이고
예수 이름으로만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얘기를
이 젊은 친구들이 제가 죄인이라고요? 왜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 말 자체를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세상과
그다음에 종교가 지향하는 초월적 세상이
두 개가 절묘하게 혹은 조화롭게 균형 있게
균형을 이루는 사회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세 번째는 개인과 집단입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조직, 전체를 위해서
개인의 권리라든지 인권이라든지 무시가 되고
당연히 중요하지 않은 걸로 치부가 됐다고 하면
이제는 뭐죠?
개인이 집단을 위해서 희생되는 것도 없어야 되지만
동시에 지금 현대사회에서는 문제가 뭡니까?
아까 말씀처럼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너무 부각된 나머지
이 개인이 자기 삶의 모든 선택의, 결정의 책임을 지은 구조로 가게 됐습니다.
굉장히 젊은 친구들이 대표죠.
그래서 이 젊은 친구들이 그런 관계에 대한 욕구,
심리적인 욕구가 있기 때문에 뭘 합니까?
제가 한강에서 운동 삼아 자전거를 열심히 타는데요.
몇 년 전부터 젊은 친구들이 짝을 지어서
달리기를 그렇게 많이 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는 뭐라고 생각했냐면요.
젊은 친구들이 남녀가 짝을 지어서 10명씩 숙명해서 달리기를 해서
어느 대학에 체육교육부 학생들이 체력 단련차 나왔다고 처음에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아니고 뭡니까?
당근으로 어디서 만나가지고 몇 킬로 한 끼 뛰는 모임인 거예요.
서로 본 적이 없는 친구들인데 그냥 거의 모여가지고
나중에 가만히 살펴보니까 젊은 친구만 있는 게 아니라
40대도 있고 50대도 있고 나이 드신 아주머니도 계시고 아저씨도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얘기죠?
달리기를 하고 싶은 개인이 함께 모여서 그렇게 달리기를 하는 거죠.
그 점에서 보면 관계에 대한 열망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높이 생기는 거죠.
개인이 주체가 됐지만 개인이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고
그다음에 바로 부정적인 신종교가 그 대목을 파고드는 거죠.
그래서 종교 교유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뭘 가르칩니까?
비판 없이 들어주고 인간적으로 교류하는 모임들을 아주 초창기에 강력하게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그 다음에 이제 종교적 교리, 종교적인 정체성도 부여하게 되고
그때 가면 종교적인 교리나 정체성의 부여 자체가 자기 삶하고 마음에 안 들더라도 어떻게 됩니까?
거기를 떠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그 관계를.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개인과 집단의 양자가 잘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이게 마지막입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요. 모든 점에서 엄청난 긴장과 갈등입니다.
세대, 남녀, 정치적으로 보수 진보.
이 모든 것들에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하지 않게 되면
심지어 종교가 이런 문제들을 더 갈등을 부추기고 더 격화시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무종교인이 더 철저하게 종교를 벌이게 된다고 하는 거죠.
종교의 이름으로 나쁜 일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하면 그게 비록 소수일지라도
종교가 없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게 종교 전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게 되고
종교에 대해서 더 멀리하게 돼서 무종교인, 탈종교 시대가 더 급격합니다.
그래서 종교라고 하는 게 결국은 지상을 죽어서 저쪽 세상이 아니라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함께 더불어 천국을 지향하는 거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있는 그림이죠.
여기 아마 교회 건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종교성 대단하죠.
천국이 어떤 거냐고 물어봤을 때 그렇죠.
천국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행복하게 기독교의 대표적으로 착한 사마래의 비유가 그런 거고
그다음에 15도에서 마지막 그림이 입전수수 시장에 가서 깨닫고
자신의 불성을 알아차린 존재가 마지막으로 해야 될 일이 뭡니까?
시장에 가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한테 도움의 손길을 내는 거죠.
한국의 종교는 바로 이 일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이제 마지막 슬라이드인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뭡니까?
지금 종교학자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죽어서 천국 가거나
다시는 이 세상에 안 태어나는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 종교를 믿어야 된다고 하면
젊은 친구들한테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구원 받기 위해서 너는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만
혹은 구원 받기 위해서 불교의 8정도 사성제를 인식하고
모든 욕망을 다 버려야지만 네가 해탈할 수 있다.
이런 가르침들은 젊은 친구들한테 받아들여지지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강연 주제도 무겁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종교적 가르침 자체가 너무 현대사에서 무거운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깔깔거리고 웃고 즐거워할 수 있는 종교활동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사찰에 갔는데 교회에 갔는데 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 욕망을 버리지 않고서는 이 번뇌와 사바의 세계를 절대 떠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선생님들이 괜찮을지도 몰라도
젊은 친구들이 가면 너무 무겁고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종교시설에서 종교가 과거에 너무 과하게 진지한
옛날에는 진지하지 않을 수 없었잖아요.
아침도 먹기 힘든데 어떻게 유머가 저절로 나오고 웃음이 저절로 나오겠어.
그치만 지금은 웃음을 고양이만 웃을 게 아니라
개하고 고양이처럼 서로 다른 존재가 웃는 그런 사회로 변해야지만
깔깔 웃게 만들어줘야지만 한국종교가 이탈종교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 진지하고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도 하여튼 오늘은 제 말씀이 너무 진지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