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돋보기 서울 답사기] 흥인지문(동대문) 답사-조선의 사대문에서 패션의 성지로!

역사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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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영입니다네
오늘의 답사지는 바로 동대문이라고도
부르는 흥인 지문입니다
[음악]
네 과거 역사 속에는 주요 도시들
별로 어 마을의 경기를 구분 하고 또
말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인 차원에서 각 도시별로 성벽을
불렀습니다 그런 성벽을 읍성이
하는데요 어 사실 군사적 목적으로
특화된 성은 주로 산에다가 세우죠
그래서 산성이라고 하는데 어 그래서
평지에 세워지는 읍성은 사실 군사적
목적도 있기는 하지만 어 정적 기능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보시면 되고
그니까이 읍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생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에 똑같이
읍성을 둘렀습니다 어 그런데 이제
수도 한양의 경우는 수도이기 때문에
음성이라고 부르지 않고도 도자에서
도성이 하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한양 도성 있니다 그런데 문이
있어야이 출입이 가능할 거잖아요
그래서 보통 도성과 음성에는 각
방위별로네 개의 문을 둡니다 한양
도성이 의 경우에는 어 유교에서
강조하는 덕목인의 예지네 글자 중 한
글자씩을 따와서 이름을 지었는데 그중
동대문은 인자를 따와서 흥인문 혹은
흥인 지문이라고 정했죠 많은 분들이
동대문이라는 명칭은 일제 시대 때
만들어진 명칭이라고 알고 계시는데
실제 조선 시대 당시에도 동대문이라는
했습니다 하지만 공식 명칭은 흥인문
흥인 지문이 맞기는 맞고요
동대문이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
[음악]
남대문을
숭례문이라는 돈의문
북대문 숙정문이라고 부르는데 어
동대문 유일하게 흥인 문이죠 진자가
들어가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흥인
지문 같은 경우는 4대문 중에서
유일하게 청계천이 흘러가는 곳입니다
어 강의 빠져나가는 곳이다 보니까
이곳 집안이 다소 낮은 편이요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그래 집안이 낮으면
지세가 약하다고 판단을 해서 그
이름을 하나 더 넣어서 지세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지자로 넣었다고
합니다 뭐 같은 목적으로 동대문
흥인지문은 4대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가지고 있는데요이 옹성은 전쟁시에
효과적으로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군사
방어 시설입니다 바로 반원형 모양으로
이렇게 삥 둘러져 있는이 성벽이 바로
옹성이 하는데 옹성 안에 들어가면은
성을 지키는 우리 군사들 입장에서
얼마나 공격하게 편하게 습 적군 같은
경우는 옹성의 꼼짝 없이 갇히게 돼
가지고 공격을 받게 되겠죠 집안이
약하다 보니까 이곳에 방어력이 다소
약하다는 판단하에 옹성을 둘렀고 또이
옹성 외에도 치성 같은 거를 뒀다고
하는데 치성은 뭐냐면은이 성벽이
있으면 이렇게 톡 튀어나온 부분을
지성이라고 하거든요 톡 튀어나
있으니까 면이 3면이 되잖아요 그러면
더욱더 어 3면에서 적군을 공격을 할
수가 있겠죠 하지만 현재는 남아있는
치성은 그렇게 많이는 있지 않다고
합니다
네 이렇게 톡 튀어 나온 거는 치성은
아니고요 어 옛날에는이 한양 도성이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한양 도성이
끊긴 흔적입니다
원래는 여기서 쭉 한양 도성이 이어진
거죠이 도로
따라서 흥인지문 뒤편
있니다 여기가 흥인지문
문이고 제가 있는이 인문을 와야
비로소 한양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고
지금은 이제 출입이 불가한데 저
안쪽으로 이제 옹성 내부가
보이죠 아 들어갈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좀 아쉽게 됐습니다 제
위에 물류가 보이죠 어 흥인지문 같은
경우는 루가 보이시다시피 2층입니다
루가 2층인 문은 남대문이 숭례문과
동대문은 흥인지문 밖에 없습니다
흥인지문은 4대문 가운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문입니다 62 전쟁때
약간의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거의
조선시대 그때 그 당시 모습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네 여기
보시면은 도로가 한양 도성의 성벽을
일단은 끊어 놓고 있고 그 위로 쭉
올라가다 보면은 저기 이제 낙산
쪽으로 향해 올라가는 언덕인데 한양
도성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저기는 이제 동대문
공원이라고 해서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네 저는 지금 흥인지문에서 낙산
쪽으로 이어지는 한도 를 올라가고
있습니다 낙산을 가지는 않을 거고이
낙산 쪽 가는 길에 언덕이 있는데
제가 아까 동대문 공원이라고
소개해드렸는데 제가 잘못 알았습니다
동대문 공원이 아니라 정식 명칭은
흥인지문 공원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흥인지문 공원에
올라오면 아까는 너무 가까워 가지고
흥인지문의 모습이 그렇게 잘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올라오면 좀 더
제대로 흥인 지문을 내려다볼 수가
있습니다
아 흥인지문 공원을 항상 눈으로만
봤는데 지나가다가 이렇게 올라온 건
저도 처음입니다 아 한양 도서의
성벽도 멋지지
않습니까 아마이 언덕길 올라가도
낙산으로 쭉 이어지지는 않고 중간에
도로 때문에 끊기긴 할
거예요 더 높이
올라오니까 인 지문이 더 잘
보입니다 저기 이제 온성도 보이시죠
딱 이렇게 보니까 저 옹성 안에
적군이 있을 때 적군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 딱 느낌이 오시죠네 비록이
동대문에서는 큰 전투가 있지는
않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전투가
있지는 않았지만 임진란 당시에 고니시
유키나가 한양을 무여 입성할 때
지나쳤던 문이 바로 동대문
흥인지문이었습니다
흥인지문은 다행히 숭례문 럼 일제
강점기 때도 훼손되지 않았어요 다만
일제 강점기 때 도로 놓는다고 성벽을
끊어 버렸죠 원래 흥인 지문도 없애
버리려고 했는데 흥인지문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임진 회라는 당시에
이제 고니시 유키 나가가 입성했던
문이라 그래 가지고 그 상징성 때문에
남겨놨다고
합니다 저 뭐 거의 다 올라온 거
같긴
한데 아까 낙선 쪽으로 쭉 이어지기는
해도 중간에 끊겨 있을 거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이 길이 계속 있네
아마이 길 따라 쭉 가면은 낙산이
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대로 쭉
가면은 낙산으로 갈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저는 낙산지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네 흥인지문 공원에는 또
한양 도성 박물관이라 곳이 있다고
하는데 저기도 한번 구경을 한번
가보도록 할게요
[음악]
네 저는 박물관 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
서울 모형이
있네요 우리가 지금
동대문이 이쪽입니다 이쪽 동대
보이시죠
자 이게 한양도성 윤곽선이
보이시죠 한양도성의 건설 도성은 그
위치 규모 형상 격식 등을 통해 한
나라의 위상과 통치 이념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구조물의
집이다 한양도성은 태조 이성계
세종대왕 종
순조때
걸쳐서 공 주이 되었다고 합니다
확실히 시간이 흐르면서 돌들이 점점
더 정교해지는게
보입니다 흥인지문 모형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성벽이 쭉 이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 때문에 차단이
되어
있습니다네 옛날에는 여기에 전차가
다녔죠 전차 때문에 일제가 성벽을
파괴한 것이었습니다
보시면이 쭉 내려가다 보면 지금은
없지만 옛날에는 있었던이 치성도
그대로 공원을 해놨네요 그리고
여기가 수문 있니다 수문 흥인지문은
사대문 중 유일하게 청계천이 흐르고
청계천이 나가는 곳이라고
말씀드렸죠 이게 옛날의 흥인지문의
원형 모습입니다 아 이게 바로
전차를 놓아야 돼서 한양 도선의
성벽의 일부분 허물겠다는 내용을 담은
보라고 합니다네 저는 박물관을
나왔고요 이번에는 반대편에 있는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 쪽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뒤편으로 디피도 보이죠 동대문 디지
블라자네이 흥인지문에서 바로 길만 건
면 이렇게 천천이 있습니다 대문
중에서 유일하게 하천이 흐르고 나가는
곳이죠 그리고 그 앞에 바로 이렇게
평화시장이
있습니다 원래 조선 후기 때부터
이어져온 동대문 시장은 지금의 동대문
시장이 아니라 지금의 광장 시장을
의미를 합니다 그런데 625 전쟁이
끝나고 북한의 피라미들이 어 이거
청계천에 몰려들어서 생계 유지를 위해
옷을 판매했다고 합니다 그 옷을
판매하는 무허가 판자촌이 여기에
즐비했다고 하는데
1963년에 미생과 미관상의 문제로
무어가 판자촌을 전부 헐고 의류
상인들을 한 군데다 다 모아 버렸어요
그게 바로 평화 시장입니다 그러다가
1970년에 동대문 종합시장에 생기고
1990년에는 10대와 20대를
겨냥한네 바로 쿨제이형이랑 용남이
형이 활동했던 곳이죠 밀리오 네가
생기면서 동대문은 대한민국 의류시장의
메카가 되었던 거죠
[음악]
네 저는 지금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에
와 있습니다 여기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 쪽에 들어오면은 보이십니까
지금은 청계천이 이쪽으로 흐르고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에서는이 청계천이 빠져나가던
수문이 있습니다 아까 박물관에서도
봤죠 이쪽으로 이제 청계천이 흐르다
보니까 집안이 약한 거라고 하네요 그
이렇게 옛날에게 다 성벽 있던 겁니다
네 저기도 치성이
보이죠 원래는이 치성이나 저 수문이
땅속에 파묻혀 있었는데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 만들면서 발견이 됐다고
해요네 이곳이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인데 여기는 언제 봐도 복잡하네요
진짜 많이 왔는데도 길이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네 저기 바로 DDP 보이시죠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 많은 사람들이 동대문
역사문화 공간이나 DDP 같은 걸로
생각하시는데 두 개가 다른 겁니다
DDP 동대문 디지털 플라자는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 안에 있는 겁니다 안에
있는 전 시간입니다 이라크 출신의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받은 자하디
데가 설계한
거죠 근데 이거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은 원래 서울 운동장이 있던
곳이죠 서울 운동장은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에 경성 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다가 해방
후에는 서울 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쓰였습니다데 이곳에서 김구가 어
해방 이후에 귀국을 했을 때 임시정부
환영식을 가졌던 곳이기도 하고 김구구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김구의
장례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에이 동대문 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88 올림픽 때 또
사용되었습니다 주경기장 로 그런데
워낙 이제 오래전에 만들어진
운동장이다 보니까 시설이 노후가
되어서 어 철거를 하기로 했고
2000년대에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이라 이름으로 재탄생을 했고 그때
이제 그 지성이라 어 수문이 이런게
발굴이 됐던 거죠 그리고 2014년에
DDP 자하디드 설계했던 DDP
공개가 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음악]
네 이것으로 이번 흥인 지문과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 답사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서울 사람들은이
한양도성과 밀접하게 살고 있다라는 거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다음에 더 좋은 답사지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이 형이었습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