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청년들은 무너지고 있는가 - 선악이 뒤집힌 ‘이상한 나라’의 진실 | 김규나 작가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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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0. 23.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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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에 빠진 한국 사회 풍자
청년 범죄와 윤리의식, 교육 부재 지적
선악 기준 붕괴와 문학·문화의 책임 비판
자유 억압·사상 통제, 전체주의 경고
진실을 묻는 시민, 깨어 있는 3.5%의 힘
김규나 작가 저서
소설로 읽는 세상 https://naver.me/GtJML0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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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2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622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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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자유라는 것이 사실은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행동의 자유, 신앙의 자유까지 그죠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가 점점 그 생각을 통제하고 있어요
1984를 봤을 때 ‘설마 이런 세상이 오겠어‘라고 했는데
오히려 지금 1984보다 더한 세상이 눈앞에 아른거리죠
우리 청년들이 태극기도 들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김일성 만세‘를 불러도 되고
‘중공기‘를 흔들어도 되는데
‘태극기‘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경찰이 막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뭐냐 하면 결국은
‘너 그거 생각하지 마, 말하지 마‘
‘그냥 입 다물고 살아 ‘
지금 이거 계속 압력 넣고 있는 거거든요
지금부터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한 번 들어가 보려고 하는데요
네
빅토리아 시대의 지배층의 모순을 풍자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빗대어
사회 현실을 비판하신 적이 있는데
작가님이 보시기에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국민들처럼 보이시는지 궁금합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빅토리아 시대의 귀족들
권력자들의 모순을 통렬이 풍자했죠
동화 속에 보면 교훈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귀족
‘저놈의 목을 쳐라‘ 밑도 끝도 없이 외치는 권력자
그리고 ‘티(tea)파티‘인데 ‘차‘가 없어요
그런 파티를 계속해서 끊임없이 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도
전부 다 이상한 나라에 빠져버린
앨리스가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어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
그런 걸 외치는 시대가 있었어요, 문재인 시대에
그런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땀 흘려서 달려놓고서는
‘우리 모두 다 이긴 거야‘ 이렇게 하면서
그러니까 ‘앨리스야 네가 상을 내놔‘ 막 이러면서
엘리스 사탕을 뺏어먹고 이러잖아요
문서 다 위조하고 부정 입학시키고 이러면서
자기들은 공정하게 경쟁한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맨 앞자리에 서서 지금 달려가고 있잖아요
앨리스가 처한 그런 이상한 세계보다
더 한 지금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라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상식도 없고 법칙도 없고 규칙도 없고 그런 사회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풍자하시는 거죠
엘리스가 ‘이건 전부 말도 안 돼‘ 이러면서 깨어나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국민들께서도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세상이야‘라고 다 깨어나서
지금의 이 부조리하고 불의하고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을 좀 뒤바꿀 수 있는
그런 계기가 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한국 청년이 캄보디아에 고수익 쫓아 갔다가
살해 당한 사건이 있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단순히 실태를 몰라서 간 경우도 있겠지만
일부는 사전에 범죄를 인지하고 갔거나
아니면 현지 적응을 잘해서
오히려 범죄에 가담한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심지어는 친구나 후배를 끌어들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그러는데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지금 우리 청년들의 윤리의식
아니면 도덕관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죄를 지은 청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속에 ‘라스콜리니코프‘인데요
그는 자신이 굉장히 특별한 인간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인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어마어마하게 펼치잖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스콜리니코프는
인간적인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참회하면서 진정한 인간의 길로 들어서죠
지금 우리의 현실도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돈, 자극 그다음에 즉각적인 쾌락 이런 거는 뒤로 감추고
개인의 자유 선택 이런 걸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고
‘사는 거 다 그런 거 아니야‘ 이러면서
죄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수용하는
그런 경향이 좀 많아요
그것이 지금 우리 현재의 가장 큰 깊은 병이기는 하죠
그런데 저는 이번 캄보디아 문제에서만큼은
조금 좀 달리 생각을 하는 게
지금 죄를 지은 젊은이들이 무조건 나쁘다
이렇게만 규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배경에는 전체적인 책임이 있는 거죠
‘인생 콩팥법칙‘이라고 하는데요
콩팥? 신장 이게 아니라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는 거‘ 이런 건데
우리가 학교 교육이나 가정에서의 밥상 교육을 통해서
열심히 노력하면 이만큼의 결과가 있고
네가 이렇게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고 혼이 나야 되는 거야
이런 거에 대한 어떤 교육이 많이 부재하기 때문에
일확천금을 꿈꾸고 죄악에 빠지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단순히 청년들을 비판하거나
또는 무조건 보호하거나 이래서는
우리가 지금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이 들고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했다고 그래요
‘인간에게는 자기 안의 악을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청년들에게 그런 마인드를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개인의 잘못이나 책임에 대해서는
엄격히 책임을 물어야 되겠지만
사실 국가적 사회적으로도 어떤 제도적 장치나
교육이라든지 이런 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돈만 벌면 되고 성공하면 된다는 사고방식
그리고 승자가 곧 정의라는 인식이
이런 문제를 야기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 부분을 좀 조심스럽게 얘기해야 될 것 같아요
저는 성공과 승리는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승자 독식‘이라든가 ‘성공 제일주의‘ 이런 걸 자꾸 얘기를 하면서
승리하고 성공하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죄를 지은 것 같은 그런 류로 자꾸만
사회가 몰아가는 부분이 있는데요
저는 이런 것들보다 피땀 흘려서 노력해서
정당하게 얻은 것이 사실은 성공이어야 되는 거거든요
자녀 입시 비리에 연루된 우리 부모 유명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뿌림의 양심‘ 내가 뿌린 다음에
뭔가 거두어야 한다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된다라고 생각해요
내가 뿌리지 않았는데
공짜로 열매를 얻으려고 하는 그런 욕심
그런 것들은 잘못돼 있다
다만 내가 열심히 노력한 데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부해도 된다
그런 마인드를 우리가 청년들에게 심어주고
그래야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듭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선과 악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점점 흐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성공과 출세를 무조건 악마시하고
감정과 피해 의식 이런 것을 자꾸만 부추기기 때문에
자꾸만 어떤 사회의 선과 악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어떤 기준이 자꾸 무너진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저는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는데
남 탓하지 말라는 거
세상엔 공짜 없다라는 거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거
저는 인생에서 이 세 가지만 지킨다면
남한테 피해 주지도 않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지금 이 세상은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하고 있냐 하면
누가 더 많이 잘 우느냐
내가 얼마만큼 힘들었는지를 얼마만큼 더 설득하느냐
내가 누구에게 짓밟혀 있느냐
그것을 얼마만큼 어필하느냐 이런 거에 대해서
많은 플러스를 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강한 것은 악한 것이고
약한거 ‘그것이 선한 거다‘라고 잘못 오도가 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선과 악이 자꾸만 뒤집히는 거고
사람들이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 해가지고
살아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우리나라 문학이 지금 잘못돼 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도 그건데요
우리나라는 문학의 기준이 ‘참여 문학‘입니다
그러니까 ‘사르트르‘가 ‘참여 문학‘을 주창했잖아요
근데 사르트르의 스승인 ‘메를로퐁티‘가
그 사람이 주장한 거는 뭐냐 하면
‘보다 발전적인 사회를 위해서는 폭력도 허용해야 된다‘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 시위하고 촛불집회 광란이 있었고 하던 게
전부 다 한국 작가 문단에서 일어난 것들이에요
중심이 ‘백낙청‘씨잖아요
도스트예프스키의 ‘악령‘에도 보면은요
그런 것이 그런 말이 나와요
‘절대적인 선을 위해선 모든 수단이 정당화된다‘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그런 세계를 위해서
끊임없이 지금 진실과 선과 이런 것들을 호도하면서
잘못된 개념을 우리 청년들과 우리 사람들에게 대중에게
지금 계속해서 선동하고 세뇌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는데
드라마, 영화, 웹툰 같은 것들이에요
폭력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가해자나 범죄자에게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선과 악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해져요
남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곧 정의야‘
이렇게 주장하는 작품들이 막 쏟아져 나오고 있잖아요
제가 굉장히 우려했던 드라마 중에 하나가
송혜교라는 배우가 나왔던 ‘글로리‘예요
학교 폭력에 대해서 그걸 당했던 그 여자가
복수를 차례차례 해 나가는 건데
그 복수가 정당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럴 때 우리가 정말 질문을 해야 돼요
‘이 공감 괜찮나?‘
우리가 보면서 ‘정당해, 저건 저럴만해‘라고 자꾸만 익숙하게
거기에 공감하게끔 만들어서 결국은 글로리까지 온 것 같아요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이미 자유를 빼앗겼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생각의 자유는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하고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생각의 자유라는 것이 사실은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행동의 자유, 신앙의 자유까지 그죠
이런 것들의 출발점이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 나라가 점점 그 생각을 통제하고 있어요
1984에서 이미 그렇게 예견한 것처럼
1984를 봤을 때 ‘설마 이런 세상이 오겠어‘라고 했는데
오히려 지금 1984보다 더한 세상이 눈앞에 아른거리죠
우리 청년들이 태극기도 들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김일성 만세‘를 불러도 되고
‘중공기‘를 흔들어도 되는데
‘태극기‘를 들고 다니지 못하게 경찰이 막더라고요
왜 그렇죠? 이해가 안되는데요
사회가 혼란해진대요
경찰이 직접 얘기하는 거는
‘그렇게 되면 여기 거리가 혼란해지기 때문에 안되고‘
‘내리고 가세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한민국에서 이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이냐 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로 ‘진압했다‘라는 말을 한 줄 썼다고
100만 원 약식기소 때리고
이런 것들이 뭐냐 하면 결국은
‘너 그거 생각하지 마, 말하지 마‘
‘너 그렇게 하면 귀찮잖아‘
지금 내가 너를 감옥에 넣지는 않지만
‘너 재판해야 되고 하려면 돈 내야 되고 귀찮지?‘
‘그냥 입 다물고 살아 ‘
지금 이거 계속 압력 넣고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1984의 빅브라더 시대가 계속 오고 있는데
1984에서도 가장 먼저 통제한 게 언어거든요
‘전쟁하는 부‘를 ‘평화부‘라고 얘기를 하고
거짓말하는 언론을 ‘진실부‘라고 얘기를 하고
이렇게 이름을 다 바꾸고
어쨌든 결국 그 앞에서는 아닌 척하고
이중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를
계속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전체주의화 돼가고 있고
이중사고를 우리에게 자꾸 강요한다는 것은
그들만의 자유를 더 확대시키고 있다는 거잖아요
자신들은 마음대로 표현하고
자신들은 마음대로 억압하고 제한하고 하면서
우리의 어떤 자유를 점점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니까
온 힘을 다해서 자유를 지켜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CCP OUT‘ 말씀하셨는데
공산주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입니까?
제가 계속 얘기하는 것이 자유와 책임인데요
인간의 어떤 자유로운 본성과 책임을 억압하는 체제가
저는 공산주의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동물이에요
하지만 거기에는 책임을 갖는 것이 인간이죠
동물과 다른,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싶고
더 많이 벌고 싶고 더 많이 성취하고 싶고
이런 욕망을 짓누르는 것 ‘하지 마, 너 그거 하지 마‘
‘우리 둘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놀고 똑같이 먹자‘
그게 지금 공산주의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뭐냐 하면은요
밤새워 공부해 가지고 시험에서 100점 맞은 아이하고
팽팽 놀아서 빵점 맞은 아이하고 똑같이 50점 주자는 거예요
그러면은 누가 좋겠어요
100점 맞은 아이가 그걸 동의할까요?
빵점 맞은 아이는 좋죠
그러면서 빵점 맞은 아이는 뭐라고 하냐면
근데 ‘너랑 나랑 똑같이 50점인데 내가 너보다 힘이 세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 대장할 거야‘
지금 이거 하고 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똑같이 먹고 똑같이 일하고
같이 먹는 게 ‘뭐가 나빠‘라고 잘못 생각하시거든요
이거는 정말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바라는 사회는
노력하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노력하고
거기에 대한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자기가 얻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마음대로 놀고 일하지 말고
대신에 굶으라는 거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가장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소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는 부패한 권력 그리고 법치의 남용이라고 생각해요
법과 제도가 원래는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잖아요
근데 특정 정치 세력의 어떤 도구화가 되어버려서
개인을 지금 억압하고 있는 상태고요
둘째는 무관심, 침묵, 방관
대부분 제 주변 사람들 보면 ‘아 무슨 상관이야‘ 이래요
‘잘하겠지‘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가 있죠
자유는 누군가 지켜주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불편함을 얘기하고 발언하고
깨어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얼마만큼 자유를 빼앗기고 살고 있는지
그 말씀이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방법을 말씀하신 거라고 보면 되겠네요
글을 쓸 때마다 제가 자주 외치는 구호가 있어요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유 대한민국이여‘
자유와 책임에 대해서 끊임없이 우리가 고민하고
지금 우리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얼마만큼 소중한 것인지 알아야 된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근데 예전에 어느 한 탈북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지도를 놓고 봤을 때
단지 이렇게 휴전선이 그어져 있잖아요
단지 이렇게 0.5mm 그 차이로
남한 너네들은 온갖 자유를 다 누리고 사는데
그 자유의 소중함을 너네들은 너무 모르고 산다
정말 답답하다 라고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전통 보수 가치나
자유주의 원칙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요
작가님께서는 이런 흐름과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정말 반가운 현상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저는 1차 탄핵을 겪으면서부터
굉장히 암울하게 봤어요
‘아 이 나라는 이제 끝났구나‘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진실을 찾아서 이렇게 들고 일어났다는 것은
굉장한 희망이다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저는 어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추‘ 하나가 이렇게 가면 다시 이쪽으로 오잖아요
그런 것처럼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현상이 한쪽 끝으로 가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려는 그런 현상
그런 힘을 가진 것이 자연인데
좌파주의적인 어떤 집단 사고
그런 거가 너무나 만연해 있다 보니까
그 반작용으로 당연히 어떤 그 균형을 찾기 위해서
우리 젊은 친구들이 당연히 대안적인 흐름을
찾아 나선 게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모든 식물이나 동물 생명들은
따뜻하고 밝고 환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걸 찾는 게 저는 본능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자면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에 보면
조, 베스, 매그 이쁜 아가씨들 나오잖아요
그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책임지는 선택을 하면서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아름답게 일궈가는 어떤 그런 것들
바른 거, 옳은 거, 착한 거, 이런 것을 찾아가는
본능이 우리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점점 향해서 갈 거라고 희망하고 있습니다
제가 잘 쓰는 말이 뭐냐면
인간은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고통을 이겨내는 존재라고 저는 말을 하거든요
그래서 칼럼을 쓰면서도 제가 의도한 것은
단순히 현실 비판 정치 비판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가 희망을 찾아내고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일어서는 힘을 보여주는
그런 길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둡고 혼란스러운 그런 현실 속에서도
우리가 인간의 작은 선한 것 착한 거 옳은 것
이런 것들을 발견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작가로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제가 좌파적인 문학과 작가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강의 소설도 마찬가지고요
굉장히 어둡거든요
그리고 아까 말한 ‘5·18‘이나 ‘4·3 사건‘을 얘기한 것도
거기서 분노를 일으켜요
‘국가가 우리를 죽였어, 너희를 죽였어‘
그러니까 ‘어떻게? 너 화나지‘
‘우리 같이 일어나자‘ 이거거든요
그거는 파괴하자는 거죠
그게 아니거든요
그것을 바탕으로 배경으로 소설을 썼더라도
우리가 뭔가 같이 손을 잡고 그 불의함 그것을 딛고 일어나서
다 같이 화해하고 화합하고 사랑하자가 돼야지요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서 제가 비판을 하는 것이고요
문학은 단순히 어떤 이상주의여서는 안되겠지만
용감함과 지혜
이런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매개로
우리가 사용해야 된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작가가 바로 그런 일을 해야 되는 거고
그래서 좋아하는 소설의 주인공들도 어떤 역경 속에서도
어떤 불의함 속에서도
넘어진 땅을 딛고서 일어서는 힘을 가진 주인공
그리고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든 인생이지만
내가 다시 희망을 찾아서 ‘내일 또 살아내야지‘ 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요한 스칼렛‘처럼
문학이 우리에게 그런 힘을 줘야 되는
그런 역할을 해야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맨 마지막 소제목을 보니까 진실을 마주할 시간에서
평범한 아멜리아의 작은 호기심과 끈질긴 질문
그것이 정의의 시작이었다 이런 문장이 아주 인상적인데요
이 문장이 작가님의 핵심 메시지로 봐도 되겠습니까?
칼럼을 마치면서 쓴 글입니다
지금 정권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고요
이게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 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소설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굉장히 겉으로는 평화롭고 선량해 보이는 그런 어떤 마을에서
그 마을 사람들이 사실은 알고 보니까
거대한 어떤 부패와 은폐가 존재했다는 얘기거든요
이장이나 그런 사람들의 권력
그런 지위 위에 서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람이 있고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은폐하고
선량한 시민처럼 위장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 모든 거를 다 알면서도 자신의 생계와 이익을 위해서
침묵하고 외면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억울하게 가해자의 누명을 쓰고
인생을 빼앗긴 주인공이 거기에 나오거든요
근데 그 사건의 전모가 다 드러나는 그 계기가 뭐냐 하면
그들과 아무런 커넥션이 없는
외부에서 이사 온 아주 평범한
‘아멜리아‘라는 웨이트리스였어요
그 아멜리아의 호기심과 질문이었어요
그러니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을 접했을 때
우리가 아멜리아처럼 ‘왜?‘라고 질문하는 거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지?‘ 하고
계속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때에만
저들이 감춰놓은 진실, 우리가 눈 감고 있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도 지금 이 현실에 그냥 순응하고
길들여지지 말고 ‘왜?‘라고 자꾸만 묻고
진실을 파헤쳐 가고 그렇게 하면
우리가 지금 갇혀 있는 ‘적폐‘라고 그럴까요?
불의한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많은 분들도 깨어나셔서
동조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을 통해서 독자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메시지입니까?
문학의 어떤 그런 힘을 얘기하고 할 때
잘 인용하는 것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인데요
‘오랑‘이라는 도시에 페스트 전염병이 창궐을 해가지고
그 도시가 폐쇄가 되거든요
죽음이 너무나 만연하니까
다 손 놓고 있고 공권력은 다 무너지고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리외‘라는 의사가 주축이 돼 가지고
자기가 할 일을 합니다
의사니까 아픈 사람 있으면 돌봐주고
예방할 거 있으면 예방하고
이런 일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 사람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요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가지고 자율보건대가 구축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중심으로 해서 조금 조금씩
폐쇄된 도시를 견뎌 나가는 그런 이야기인데
결국은 끝내 내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품격과 척추를 꼿꼿하게 세우고
희망을 찾아나가는 그런 소설이 정말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그런 소설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저의 문학적인 꿈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은 하나의 인생을 살지만
소설을 읽는 사람은
수만 개의 인생을 경험하면서 산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소설을 접하면서
주인공들의 경험과 선택을 따라가고
다양한 삶과 사고를 체험하면서
우리가 좀 더 의미 있는 삶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