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베개칼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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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비디오 조회수·2026. 7. 22.
문화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AI 생성·오류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어릴 적에 저는 축지법을 하고 싶었습니다.
축지법 아시죠? 축지.
땅을 주름잡아 달리는 것처럼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꿀 만큼 빠르게 오고 가는 능력이었는데
아주 나는 듯이 빠르게 되면 비법법이라고도 했습니다.
날빗자.
실제로 조선에서도 그렇고 중국에서도 한 번에 몇백리를 신속하게 다녀오고
심지어 천리를 다녀오는 사람도 있었다는데
저는 그게 부러웠죠.
부산행 열차를 타고 가는 아들을 배웅해주고는
부산역에 미리 가서 아들을 맞이한 기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술법은 보통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초상적인 것인가 봅니다.
그런 능력을 좋은 일에 쓴 사례는 많은데
한 번도 이기적인 목적으로 썼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강회의 이인록에 보면 이 처사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그런 기인들은 명예욕도 벗어난 터라
이름조차 남기고 싶어 하지 않곤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궁금해서 조사해보니 이름은 이승이네요.
눈이 자욱하게 천지를 뒤덮은 어느 날
서산에 응거중이던 벗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오는데
친구 노처사가 밖을 보며 걱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니 큰일이네 어찌 나갈 수 있겠는가
이승은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자넨 정말로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럼 내가 책 몇 권을 성자진에 놓고 왔는데
여기서 한 300리 떨어졌을까 그걸 갖다 줄 수 있겠나
노처사는 농담삼아 해본 말이었는데
이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흔연히 일어서서 나갔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그 서산의 술자리가 파하기 전에
정말 성자진에서 노처사의 책 몇 권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사가 이런 능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를 기리고 존경했을까요
그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그런 능력이 쌓여갈수록
그의 마음을 후달리게 하는 고음은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같은 도계에 있는 도사라면
더욱 그를 자극할 수도 있었겠지요
마도사는 이처사를 깔보고 비난하고 다녔습니다.
그가 실은 능력도 없으면서
사람을 속이고 다닌다고 소문을 냈죠.
1년에 한번 도사들이 모여 담론하는 자리에서
또 마도사는 이처사의 험담을 하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이처사의 스승까지 입에 담으며 모욕을 했으니
그걸 전해들은 이처사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러던 마도사가 졸려서 잠시 평상에 누워 잠이 들었나 봅니다.
한 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마도사를 이리저리 밀치고 깨우는 것 아닙니까?
너 왜 그러느냐? 뭘 잊어먹었냐?
아이는 말했습니다.
이처사님의 비수를 찾으러 왔어요.
아! 여기 있네요.
마도사가 놀라 살펴보니
자기가 누운 바로 베개 옆에
날카로운 비수가 하나 꼽혀져 있었습니다.
마도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그 길로 바로 이처사를 찾아가 정중히 사과했다고 합니다.
어떤가요?
이것은 한 도사의 초상적 무용담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고 험담을 듣게 된 입장이라면
난 어떻게 했을까?
바로 그 질문이 남은 것이지요.
그리고 그 질문이 소중합니다.
동서고금의 좋은 설아들은 바로 그런 황금알 같은 질문 하나를 남기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