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며듣는소설 장씨 그 양반 덕분에 이 동네는 사람 살 맛 나는 동네가 되었다니까! | '차반장 장씨' | 고정욱 단편 소설 #책읽어주는남자 #오디오북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93 팔로워
#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이번에 낭독할 작품은 이혜숙 작가의 단편 소설 "환상탈출" 입니다. 😊
즐거운 감상 되세요.
🎵단잠의 클로징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MnightSound
😉'단잠의 꿈꾸는 책방'
https://www.youtube.com/@단잠의꿈꾸는책방
✨회원 가입하셔서 '단잠'을 응원해 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WBs5r5b1MhDURiz-uTXfhA/join
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1:08 본문낭독
00:41:18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46:33 클로징 음악 "My beloved everyday life(연주)"
#오디오북소설 #한국문학낭독 #밤에듣기좋은이야기 #감성오디오북 #자기전듣는책 #잠이오는소설 #책읽어주는유튜브 #단잠을위한오디오북 #소설읽어주는채널 #audiobook #한국소설 #소설낭독 #단잠의꿈꾸는책방
오늘 읽어드릴 작품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소설입니다.
고정욱 작가의 차반장 장씨입니다. 고정욱 작가는 1992년 단편소설 선험이라는 작품으로 등단을 했는데요.
그 후 장편소설 원균 그리고 원균 또 세종로 1번지 등의 작품을 썼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오늘 읽어드릴 차반장 장씨는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어딘지 어두운 그림자가 늘 비치고 있습니다.
과연 그의 얼굴을 어둡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들어볼까요?
자 그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차반장 장씨입니다. 차반장 장씨 고정욱
외환위기로 먹고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우리 동네의 주차 상황도 혼잡 그 자체였다.
하루가 다르게 뛰는 기름값과 차량 유지비는 골목길의 자동차들을 종일 붙박이로 서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차를 한번 쓸 일이 생기면 누구나 예외 없이 등에 땀 흐르는 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차주인을 불러야 했고 서로 얼굴 붉히는 일까지 생겼다.
그날도 나는 누군가 고함 지르는 소리에 화장실에 이빨을 닦다 칫솔을 입에 뭉쳐 베란다 밖을 내다봤다.
2538 차 좀 빼줘요. 어느 집에 온 차야? 작은 오퍼상을 한다는 박씨가 출근하려다 골목 입구를 막고 있는 낯선 차 옆에 서서 고개를 외가리처럼 뽑아 돌리고 있었다.
출근을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려 나왔던 동네 사람들 며치 사태의 추위를 지켜보고 서있었다.
2538 차 좀 빼! 박씨의 말투는 점점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저러면 의뢰해. 다음 과정이 육두문자일 터.
다행히 사태는 우리 집 뒤유의 세림빌라 쪽에서 한 젊은이가 부시시한 머리로 달려나와 차를 뺌으로써 일단락 되었다.
이건 도저히 안되겠어요. 장씨 아저씨가 주차를 도와주지 않으니 동네 인심이 사나워서.
글쎄 말이에요. 그렇다고 차를 다 없앨 수도 없고. 할 수 없어요. 다시 장씨 모셔오는 수밖에.
동네의 중로는 그거였다. 주민들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장씨를 설득해 다시 주차 문제를 부탁하는 것.
박씨의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자 남았던 사람들이 각자 뚫린 입으로 한마디씩 내뱉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입에 가득 꼬인 치약물을 뱉으러 급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차반장 장씨를 내가 처음 만난 건 이 동네에 이사오던 날의 일이었다.
이사란 원래 끊임없이 자잘한 신경 쓸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곳에 눌러앉아 오래 살게 마련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주 이사를 다니는 법인가 보다.
나는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지만 더 이상의 전세방 전전은 그만두자는 아내의 오랜 수건을 풀기로 했다.
그런데 내 집이라는 20평형 다세대 주택을 간신히 장만해 이사를 오니
이것저것 손볼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이 낡은 것은 그렇다 쳐도 개수대에 물이 빠지지 않는 것이라던가
벽지가 원통 곰팡이로 세계지도를 만든 것 등은 시간을 두고 손봐야 할 것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당장 손볼 수 있는 것도 있었으니 안방의 조명이 시원치 않은 게 그거였다.
가까운 전파사에 전구를 사러 다녀오니 아내가 정색을 하며 다가왔다.
여보 방금 올라오다 이상한 남자 못 봤어?
내가 본 거라곤 작년의 사내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우리 다세대 주택의 입구에서 어정거리며 내 차를 토바보던 것뿐이었다.
남자라곤 웬 노인네가 열쇠 꾸러미를 들고
맞아 그 사람.
아 글쎄 내가 안방에서 속옷 정리하는데 와가지고는
다짜고짜 우리 키를 하나 복사해 달라는 거야.
뭐? 우리 차를?
그래 우리 차 키를 복사해서 자기한테 달래.
우리 차의 키는 아내와 내가 하나씩 나눠가지고 있었고
매사에 꼼꼼하지 못한 나는 차 열쇠를 안에 넣고 잠근 일을 몇 번 저지른 뒤
열쇠집에서 복사한 열쇠를 하나 수첩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터였다.
복사한 열쇠가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줄 수는 있었지만
다짜고짜 생면부지의 사람이 찾아와 차 열쇠를 복사해 달라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몰랐다.
자기가 이 동네 주차를 봐주고 있다는 거야?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주차장이라면 모를까.
이곳은 다세대 주택가가 아닌가.
물론 골목길이 비좁아 전에 살던 아파트에 비해서는 주차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주차장도 아닌데 담당자라니.
동네마다 상황에 따라 사는 방식이 다르다지만
이건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건 무슨 소리야?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자기한테 키를 하나씩 복사해서 맡기고 그렇게들 한데
그 사람이 뭐라고 차 키를 복사해 준단 말이야?
나원, 별 이상한 동네다 있네.
몰라.
하여간 내일 올 테니까 복사한 열쇠 달라던데.
알았어.
좀 알아보고 주더라도 주지 뭐.
그러나 그 알아본다는 일은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계단 통로 맞은편 집에 사는 여자가 인사차 건너왔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 온 이웃에게 뭐 도와줄 것 없냐며 오는 걸 보면
이 동네 사람들이 오지랖이 어느 정도 넓은지는 이미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약간은 귀찮으면서도 아직 이 동네엔 대문 열고 사는 시골의 정서가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해
마음 푸근한 면도 없지 않았다.
여자는 이런저런 말을 건네고 화분이나 그릇 등속을 옮겨주는 척하더니 물었다.
그런데 아까 혹시 차 열쇠 복사해 달라고 온 사람 없었수?
예, 안 그래도 웬 아저씨가 오셔서 그러던데요.
허허허, 그 양반이 이 동네 차 반장 장씨예요.
차 반장이요?
이 빌라에 사시나요?
아니에요.
저 골목 입구에 단독주택 하나 있죠?
그 집이라면 기억이 났다.
온통 하늘을 찌르며 솟아오른 다세대 주택군인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단층 건물로 많은 하늘을 이고 있는 집이었다.
그 집주인이에요.
할머니랑 단둘이 사는데 일가도 없나 봐요.
그 양반이 이 동네 주차난을 다 해결해주고 있다우?
그래요?
그럼 어느 집 차가 어떤 건지 다 알고 키도 전부 갖고 있으니까
누가 밤중에라도 안쪽에 있는 차 끌고 나가려고 하면 그 양반 도움이 있어야 뺀다우?
안 그러면 차 한 대 때문에 여러 집 사람들이 다 잠자다 나와야 할걸?
하긴 이 동네의 골목은 막다른 길이어서 안으로부터 차를 차곡차곡 넣어놓으면
그런 방법이라도 동원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런 일을 하시면 동네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뭐 수고비라도 걷어들이나요?
수고비는 무슨...
그냥 동네를 위해 봉사해주는 거지.
그냥요?
그럼.
그래서 얼마 전에는 신문에도 나왔어요.
훌륭한 이웃이라고.
그렇다면야 열쇠를 복사해 건네주는 건 주차 문제에 대해 신경을 끊어버릴 수 있는 첩경이었다.
그나저나 이 집 전에 살던 총각은 차가 없었는데
집엔 차가 있어서 골목이 더 비좁겠수?
뭐 서로 양보하면서 살아야지.
이에 수다스러운 아주머니가 돌아간 뒤
나는 새로 이사 온 이 동네에 왠지 정이 금방 들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새 집은 내 집이어서 좋았지만 흠도 있었으니 직장과 좀 멀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물론 멀어도 걸어다닐 것은 아니니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조금만 부지런히 출근하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내 차는 비록 낡은 국산 소형차였지만
내가 회사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있어 운행비를 따로 보조받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차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 게 나의 업무였으니
반은 내 차고 반은 회사 차인 셈이다.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새 집에서 회사까지의 교통사정이 어떤지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나서서 수색병이 정탐하듯 가봐야
출퇴근에 적합한 시간대를 짐작할 수 있으려는 깜냥에서였다.
아침 안개가 아직 거치지 않은 빌라의 현관을 나섰자
골목 안은 그야말로 자동차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차 앞으로도 차가 두 대나 더 새벽 이슬을 뽀얗게 덮은 채 버티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어제 우리 집을 찾아와 열쇠를 복사해달라던 그 장씨 생각이 났다.
주차 반장이라면서 그는 이 대목에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일단 차에 시동부터 걸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차문을 열고 들어가 시동을 켰다.
그새 날씨가 쌀쌀해졌는지 낡은 차답게 요란한 괭음을 내며 시동이 걸리자
어제 켜두었던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장씨 집 대문이 열린 것은.
출근하시오.
장씨는 아주 친숙하다는 듯 어제 이사 왔을 뿐인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지금 좀... 잠깐 기다려요.
장씨는 자동차 주인도 그러지 못할 익숙한 태도로
맨 앞에 서 있는 흰색 중형차에 들어가 시동을 걸고는 저만치 큰 길로 빼놓았다.
그리고는 바로 내 앞의 검은색 소형차도 똑같은 동작으로 올라타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장씨가 모는 그 소형차 뒷곶무늬의 흰색 수증기를 헤치며
슬금슬금 큰 길로 쫓아나오면서 나는 묘한 기분을 맛보았다.
좁은 골목길의 주차 문제도 이렇게 해결이 가능함을 알게 된 느낌이
마치 도라도 깨우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씨가 탄 소형차의 꼭무늬로 차 한 대가 빠져나갈 정도의 공간이 생기자
나는 가속기에 힘을 주어 재빨리 골목을 빠져나왔다.
핸들을 잡은 채 나를 바라보는 장씨에게 가볍게 목래를 했다.
그러자 그는 어서 가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대로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자동차들이 뜸은 뜸은 질주하고 있었다.
마음 놓고 차의 속력을 더하면서 나는 백미러로 뒤를 살폈다.
내가 빠져나가자 그 골목에 역손으로 차를 집어넣고 있는 장씨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그날 우리 사무실에서는 단연 장씨가 화제가 아닐 수 없었다.
새로 이사간 집이 어떻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주차 반장인 장씨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호사가처럼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야, 그 양반 대단한 분이네.
글쎄 말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사람은 신문 미담란에 나와야 할 사람 아냐?
그런 동네는 사람 사는 맛 나는 동네겠어.
직장 사람들은 내가 이사간 곳이 마치 홈드라마에나 나홈직한 정이 넘치는 동네쯤으로 치부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런 동네가 이 세상에 꼭 없으란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아저씨 어떻게 생겼어요?
보나마나 아주 호인으로 생기셨죠?
미쓰리의 질문에 나는 갑자기 장씨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 그였지만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안면신경마비를 앓은 적이 있는지
한쪽 눈이 작고 피부색이 거무튀튀한 그는
과거에 건설 현장 사무소장을 했다면 딱 알맞을 인상의 사람이었다.
글쎄, 뭐 달마대사 같이 생기진 않았어.
오히려 좀 어두운 인상이야.
어머, 그래요?
그럼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본 그런 달관한 얼굴이에요?
글쎄, 장씨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나이 먹은 사람 특유의 삶의 흔적인가 생각도 해보지만 잘 알 수 없었다.
그처럼 귀찮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그의 얼굴에 얼어있는 어두운 그림자는
그래서 내내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내가 귀가한 시간은 밤 열두시가 다 된 늦은 밤이었다.
경기도 일원을 도는 출장을 다녀오니 시간이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집을 향해 달려가면서 차댈 것이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장씨가 있는데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만 물에 빠진 놈이 지푸라기 잡듯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집 앞 골목길에는 자동차들이 그득했다.
외등만 켜져 있는 골목길 입구에 차 반대나 간신히 될 정도의 공간만 남아있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 공간마저 채우면 내 차는 완전히 큰 길에 코빼기를 내밀고 있는 형국이었지만 되는 수밖에.
뒷차의 범퍼에 내 차의 범퍼가 거의 닿을 정도로 해놓고는 차에서 내렸을 때
장씨가 어느새 나와 서 있었다.
이제 오슈?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삶의 유일한 목적이 골목길에 차대는 것이라도 된단 말인가?
차키는? 차키를 줘야 내일 아침에 사람들 출근할 때 차 빼낼 거 아니오?
저기 저 차는 새벽까지 나가는 차인데.
아 예.
나는 언급결에 지갑에 숨겨다니던 예비 열쇠를 시험 감독에게 컨닝하다 들켜버린 아이처럼 건네줬다.
장씨는 더 이상 욕문은 없다는 듯 조용히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얼떨떨한 느낌이 채 사라지지 않아 멍하니 섰다가 집을 향해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거의 매일 장씨의 도움을 받아 차를 넣고 빼게 되자
내 마음속에는 은근히 미안한 감정이 쌓여 망갔다.
여보, 이렇게 신세만 줘도 되는 거야?
이사 온 지 제법 시간이 지나 아내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도 뭐 음식하면 장씨 아저씨네 갖다 줘요.
저번에 당신 배 한 상자 사온 것도 좀 나눠드렸는걸?
그건 잘했네.
그래도 내가 명색인 남잔데 약주라도 한 잔 받아줘야 할 것 같은데...
사람 일은 마음 먹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작정을 하면 의외로 빨리 기회가 오고 성사되는 법인가 보다.
다음 날 나는 집에 여느 때보다 일찍 돌아왔다.
골목 안에 차들이 없는 것을 보면서 가장 안쪽으로 차를 집어넣고 들어가려던 나는
갑자기 충동적인 생각에 발길을 돌려 장씨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에서 장씨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저 안쪽 풍진 빌라에 사는 사람입니다.
아주머니는 누군가 하는 표정으로 대문을 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색을 했다.
아유, 안녕하세요?
그새 이웃이라고 낯이 익었던 게다.
예, 장선생님 계십니까?
네, 지금 안에 계시는데요.
좀 뵈었으면 해서요.
그렇게 해서 나는 부득불 싫다는 장씨를 끌고 근처의 포장마차로 갔다.
이리 앉으시지요.
허허 참,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는데 그러시네.
장씨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엉거주춤 엉덩이를 의자에 걸쳤다.
글쎄, 제가 마음이 편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술 취하면 이따 차 빼줄 수가 없어요.
밤에라도 누가 급하게 나간다면 어쩌려고.
그러니 조금만 드십시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나는 감사의 표시를 정중히 했다.
그간 차 때문에 노고가 많으셔서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감사를 표하고 싶어 이렇게 누추한 곳에나마 모신 거니까
앞으로도 잘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요, 내가 뭐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저 동네 사람끼리 다툼 없이 조용히 살 수 있게 하려고.
그렇더라도 그게 어디 쉬운 일이십니까?
자원에서 그렇게 봉사를 하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요.
장 선생님 같은 분이 많이 계셔야 우리 사회가 좀 더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거 아닙니까?
술이 몇 잔 돌자 나는 벌써 영업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답게 다변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취기가 올라가면서도 그 얼굴에 드리워진 어두운 구석을 못내 지울 수 없었다.
그건 얼핏 보아선 삶의 연륜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늘이었지만
사람을 많이 겪으며 다녀본 나는
그의 그러한 그늘이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의 그것과는 또 다름을 알 수 있다.
삶의 풍상은 두꺼운 가죽처럼 얼굴을 감싸고 있어
어떠한 충격이나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완충해내고 자극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씨의 얼굴에 있는 그늘은 뭔가 삶의 고통이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고
가슴 속에 응어리져 남아있는 그런 것이었다.
소주 두 병을 비우고 우리는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그러나 장 씨는 그저 소주 한두 잔 마셨을 뿐이고
나머지 술은 거의 내 차지여서 제법 취기가 올라왔다.
자, 장 선생님 이제 들어가십시오.
예, 잘 먹었습니다.
나는 골목 입구에서 그와 헤어지고 우리 집을 향해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골목에는 자동차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다.
어머, 이 술 냄새! 차 세워놓고 어디 갔다 온 거야?
아내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응, 차 반장인 장 씨 아저씨하고 꼭 한 잔 했어.
우리 차를 그렇게 잘 대해주는데 모른 척할 수가 있나?
아내는 더 이상 체근하지 않고 내 양복 저고리를 받아 걸어주었다.
나는 그대로 안방으로 들어가 대자로 누워버렸다.
그러면서도 장 씨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못내 찜찜함으로 남아있었다.
그날 밤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야만 했다.
여보, 어서 일어나. 골목 안에 있는 빌라에서 불났어요.
뭐, 뭐야? 우리 집?
아니, 우리 집이 아니고 저기 골목 안에.
주중에도 나는 골목을 꽉 막고 있는 자동차들 생각부터 났다.
그럼 우리 차는?
나는 창문을 열고 골목길을 내다봤다.
어느새 불자동차 여러 대가 와서 우리 빌라의 뒷집에 정신없이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와 수증기가 골목을 가득 메웠고
우앙 저항하는 사람들과 소방차에 번쩍이는 붉은 불빛
그리고 요란한 확성기 소리만 온 골목에 낭자했다.
나는 골목 입구에서 사람들을 정리하는 장 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옷을 챙겨입고 내가 밖으로 나갔을 때는 불이 한창 기승을 부리며 타오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실내 장식재를 태우는 검은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나면서
붉은 화염이 창문을 통해 삐져나와 위층을 핥으려 했다.
아이고 내 집 아이고
집주인인 듯한 여자가 땅바닥에 퍼져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 아주머니 좀 진정시키세요.
경황없는 가운데서도 수방대장이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자 아주머니 이리 오세요.
안항 며치 달려들어 여자를 멀찌감찌 끌어냈다.
기세 좋던 불은 계속 퍼붓는 물새래를 견디지 못하고
잠시 후 서서히 꼬리를 감추기 시작했다.
뒤늦게 도착한 소방차가 또 한 가닥의 물줄기를 가세하자
유리창이 그냥 깨져나가며 방 안으로 물이 빨려 들어갔다.
아휴 다행이에요. 아주머니 내 집은 불 안 붙겠어.
안학들이 통곡하던 여자의 등을 두들기며 안도에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 불은 완전히 꺼졌다.
이제 창문 밖으로는 흰 수증기만 뿜어져나왔다.
소방대원들이 들어가 현장을 확인하고 장비를 챙겨 떠나자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만하기가 다행이야.
그럼 사람 안 다쳤으니 그게 어디냐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불난 집으로 몰려갔다.
거기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이 동네가 얼마나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곳인가를 알 수 있었다.
다들 청소 도구 좀 가지고 와서 치워줍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장 씨가 한마디 하자.
사람들은 너도 나도 집으로 달려가 걸레며 양동이를 들고 오기 시작했다.
아내까지 고무장갑 낀 손으로 작은 양동이를 들고 그 집으로 뛰어갔다.
뭐 할 일이 없나 어정거리는 나에게
그때 묵직한 열쇠 꾸러미를 건네는 건 바로 장 씨였다.
저 길가에 세운 차 좀 하나씩 집어 넣어줘요.
나는 올라가서 청소 도와줄 테니
나는 얼떨결에 열 개에 가까운 열쇠 뭉치를 받아들었다.
열쇠 하나하나에는 차 번호가 적혀 있었다.
내 낯익은 열쇠도 번호와 함께 그 뭉치에 섞여 있음은 물론이었다.
큰 길가로 나가보니 낯익은 이웃사람들 차들이 갓길에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가장 앞에 세워져 있는 차에 올라앉아 시동을 걸며
나는 장 씨의 존재가 이 동네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절감해야만 했다.
다음날 퇴근하면서 올라가본 뒷집은 밤새 사람들이 합심해 정리를 해서인지
실내가 새까맣게 그을었다는 것만 빼고는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었다.
내부 수리하려는지 웬 사내들이 이리저리 방의 크기만 자로 재고 있었다.
다행히 화재보험에 들었대.
집에 들어온 내 옷을 받아 걸어주면서 아내가 일러줬다.
그거 다행이군.
그런데 이번 사고의 누가 스타인지 알아?
스타?
응, 바로 장 씨 아저씨야.
장 씨 아저씨가 불이 나자마자 신고했고
미리 차를 다 빼놔서 소방차가 바로 들어와 불을 끌 수 있었대.
하긴 이런 골목에 불이 난다면
길을 막고 있는 자동차들 때문에 화재 진압이 어려울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아까 낮에 소방서에서 와서 조사해 갔는데
그때도 그러더라고.
이런 동네 처음 봤대.
왜? 차 잘 빼준다고?
응, 출동해서 보니까 골목이 말끔하더래.
그러니 얼마나 일하기가 쉬워?
만약에 다른 동네처럼 차 빼고 어쩌고 난리쳤으면
윗집까지 불이 옮겨 붙었을 거래나?
거실에 자리 잡고 앉자.
아내가 또 쫓아와서 일렀다.
그리고 동회에서도 와가지고는
장 씨 아저씨 모범시민으로 표창해야겠다고 하고 갔어.
표창까지?
응, 우리 동네가 주차 문제 전혀 없는 동네라고 하니까
이건 이웃관이 모범적인 유대라고 하면서
표창 줄 거를 생각해 보겠대.
그래?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과연 장 씨가 그런 상을 받으려 할지가 의문이었다.
또다시 그 얼굴에 고여있던 어둠의 그림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장 씨에게 표창을 주겠다는 구상은 빠르게 부채화했던 것 같다.
구청과 동회 그리고 동네의 유직급 인사들이 모여
장 씨에게 줄 상의 등급을 논의하고
그 절차까지 얘기가 다 된 모양이었다.
여보, 이번 구민의 날에
장 씨 아저씨가 자랑스러운 구민상을 받기로 했대.
아내가 퇴근해 돌아온 나에게 그 일부터 먼저 이야기했다.
구민상이라면 제법 큰 상이네?
그럼, 부상으로 상금도 백만 원이라던데?
그래?
그러나 나는 장 씨가 그 상을 절대 받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상을 받을 마음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런 일을 저토록 열심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 씨가 상을 거부한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통반장이 갈마들면서 차자가 빌고 으르고 협박까지 해도
장 씨의 태도는 확고부동이었다.
동네에서는 사람들만 모이면
장 씨의 지나시다 싶은 태도가 화제가 되었다.
일요일 날 집에서 쉬는데
골목에서 들려오는 안학들이 수다 떠는 내용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장 씨 아저씨 너무 이상하지요?
글쎄 말이야, 뭐 나쁜 일 한 것도 아니고
잘해서 상 준다는데 왜 저러나 몰라?
혹시 더 큰 상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냐?
모르지 뭐, 대인공포증이라도 있는 건지.
어머, 그건 또 뭐유?
아, 있잖아.
사람들 많이 모인 곳에 나서기 죽어도 싫어하는 병.
그게 대인공포증이지 뭐.
어머, 그런지도 몰라?
안학들의 수다가 저 정도라면
장 씨가 겪는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는 생각에
나는 무도수를 걸치고 장 씨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계세요?
마침 장 씨는 마당에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그는 무심한 얼굴로 나를 맞았다.
화초는 그가 정성들여 가꾸는지
무척 싱싱하고 상태가 좋았다.
솜씨가 좋으십니다.
이렇게 잘 자라는 것 보니
비료 잘 주고 물 제때 주면 잘 자라는 거지요.
요즘 사람들한테 많이 시달리시지요?
내가 넌지시 묻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거 사람들 참 이상합디다.
평양감사도 제일 싫다면 고만인데
뭔 놈의 상을 주겠다고 큰 난리인지
난 상 받고 싶은 생각이 추어도 없는데 말이오.
그래도 사람들이 모두 받으시길 원하는데
받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정 상 받는 게 싫으시면
부상으로 동네 잔치를 한번 열어 다 쓰시든지요.
그럼 좀 좋습니까?
온 동네 사람들 잔치도 하고
하루 즐겁게 놀면 우유도 다 져질 텐데요.
아무튼 난 싫소.
내가 뭐 상이나 받으려는 인간 같아서.
상 받으려고 애쓴다고 상 뭐 다 주나요?
상도 돈이랑 똑같은 거 아닙니까?
쫓아다니는 사람은 못 잡고
피해 다니는 사람은 상이 쫓아오고
못 내기는 채 하시고 상 받으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나는 장 씨가 마음에 미동도 일으키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 그렇다면 난 차 관리도 안 할 거요.
예? 노는 이 소일삼아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낯 부끄럽게 하니
원 어디 하겠소?
그만둬야지.
에이 무슨 말씀을
장 선생님 안 계시면 이 동네 주차를 다 어떻게 합니까?
당장 난리가 날 텐데
글쎄 나한테 상 준다면
그런 일 더 이상 안 하겠단 말입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진정으로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라는 생각만 씁쓸하게 되시부며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정작 난리가 난 건 그날 저녁이었다.
장 씨가 차 있는 집마다 다니면서
그가 그동안 보관해 두었던 자동차 열쇠를 돌려줘 버린 것이다.
우리 집에도 와서 그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열쇠를 아내에게 건넸다.
이제 차는 알아서들 대시오.
장 씨가 들리는 집마다 사람들이 쫓아 나와
장 씨를 말리느라 온 골목이 다 수선스러웠다.
아니 아저씨 상이야 안 받으시면 그만인데
뭐 이러실 것까지 있으세요?
상 받으시라는 게 뭐 어때서 그러세요?
아저씨 안 계시면 저희들이 어떻게 차를 넣다 뺍니까?
좀 살려주세요.
마침 일요일 저녁이라
집에서 쉬던 각 집의 남자들은
모두 나와 장 씨를 붙들고 하소연이다.
내가 댁들 차를 관리해야 할 의무는 없잖소?
그 말엔 다들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십니다.
그간 저희들 잘 돌봐주시더니 왜 갑자기 그러세요?
애도 젖을 뗄 때는 살살 떼는 건데
글쎄 나는 더 이상 주차 관리는 못하니까
다들 자기 차는 자기가 알아서들 대시요.
그 말을 끝으로 장 씨는 자기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걸어버렸고
온 동네가 주차 문제로 시끄러워진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동네 여자들이 아침에 있었던 오퍼상을 한다는
박 씨의 이야기를 하면서 대책을 강구한 모양이었다.
이따 8시에 동네 남자들이 모여서 다 가기로 했어.
어딜?
어디긴 어디야 장 씨 아저씨네지.
거길 왜?
다시 한번 부탁해보래.
결국 박 씨와 나 그리고 위층 남자
이렇게 세 사람이 마누라들의 성화에 등 떠밀려
골목 앞에서 만나는 어정쩡한 그림이 그려졌다.
박 씨의 손에는 양주병도 하나 들려있었다.
잘들 다녀와요.
아내들과 동네 여자들이 격려를 뒤로하고
트레이닝복 차림의 우리 세 남자는
장 씨의 집 쪽으로 어정거리며 걸어갔다.
장 씨는 마침 저녁 식사로 반주를 했는지
불쾌한 얼굴로 작당해 찾아간 우리를 맞았다.
어쩐 일들이요?
찾아간 우리들에게 그는 무덤덤하게 물었다.
벌써 전작이 있으시군요.
우리는 장 씨 부인이 차려준 조촐한 주환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장 선생님께 저희들이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말썸씨 좋게 생긴 위층 남자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저희 골목길 인심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전에는 장 선생님 덕분에 이웃 간의 화합도 잘 이루어지고
주차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장 선생님께서 진노하신 후로
이곳 질서가 아주 엉망입니다.
맞아요. 장 선생께서 다시 나서셔야 합니다.
작은 오퍼상을 한다는 박 씨가 거들자 나도 한마디 안 낄 수 없었다.
장 선생님께 저희들이 상을 받으시라고 강요한 건 절대 악의가 아니었습니다.
장 선생님께 어떤 사연이 있으신지 잘 모르고
신뢰를 범한 주민들을 너무 오래 혼내고 계시는 겁니다.
웃음을 띄면서 내가 농담처럼 말했다.
묵묵부답이던 장 씨는 그 말을 듣고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거의 어두운 얼굴 뒤에 뭔가 있으리라는 나의 짐작은 맞았던 것이다.
남의 사연은 알아 뭘 하려고 그러셔?
장 씨는 우리가 가져간 양주를 따라 한 잔 들이키고 말문을 열었다.
까짓것. 좋시다. 얘기 못할 것도 없지.
내가 이래봬도 옛날에는 이렇게 무자식이 아니었어.
생때 같은 자식이 있었어요. 그것도 아들로.
그런데 어쩌다 내가 잡아먹었어.
우리는 장 씨의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옛날에 내가 화물차를 몰았었어.
월남에 가서들 군인들하고 기술자가 돈들 벌어올 때인데 경기가 좋았어.
트럭이 잠시도 우리 집 앞에 서 있을 새가 없었으니까.
장 씨는 운수업을 그렇게 시작해서 돈을 제법 만졌다.
트럭 수도 늘려가면서 본인이 직접 현장에서 뛰었던 것이다.
트럭이 서너 대 되니까 이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어.
하늘이 돈짱만해 보입시다.
지금 생각하면 참 건방졌어.
이 세상에 내 뜻대로 해서 안 되는 게 없는 것 같았으니까.
장 씨는 불같이 일어나는 자신의 운을 시험하고 있었다.
손을 대는 사업이 다 돈이 묻어 들어왔다.
사업체가 많아지니까 바쁩니다.
정신없이 뛰어야 하니까 집이고 아내고 자식이고 돌볼 틈이 없었어요.
그러다 그때 우리 아들을 잡아먹은 거요.
기사들 식사비용 줄인다고 집에서 장 씨의 부인이 직접 점심을 해먹였는데
부주의한 기사의 트럭이 후진하다 사고를 낸 거였다.
세 살난 놈이 빠꾸하는 트럭 뒤에 깔렸는데
장 씨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 잡는 걸 구경하면 했지.
작년의 사내가 목 놓아 우는 꼴은 볼 게 아니었다.
그러니 내가 미쳐요? 안 미쳐요?
그때 내가 트럭 빠꾸하는 거 뒤만 봐줬어도 우리 애는 안 죽었을 거요.
그거야 운명이지 어디 장 선생님 탓인가요?
아니요. 명색이 사장이라는 인간이 차 드나들 때 살펴보질 않았으니
결국 내 자식 새끼 잡아먹은 거요.
장 씨의 얼굴에 깔리던 어두운 그늘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그이기에 우리 동네 주차일을 자기 일처럼 봐줬던 것이고
상을 받는다는 건 생각도 못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건 차라리 고문이었으리라.
한동안 오열하던 그가 진정할 무렵
우리는 쓴 입맛을 다시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그것도 모르고 저희들 생각이 짧았습니다.
우리들은 장 씨의 집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이제 장 씨를 어떻게 보지요?
글쎄 말입니다.
뒤통수를 극적이며 그렇게 우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장 씨가 밝은 얼굴로 우리 집에 찾아온 건 며칠 뒤였다.
키 다시 내놓슈. 차 받을 테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란 바로 이걸 말했다.
아니 괜찮으시겠어요?
아 그럼 어떡해?
나는 어안이 벙벙해 얘의 열쇠를 그에게 건넸다.
장 씨가 사라지자 아내가 이 예상치 못했던 사건에 토를 달았다.
삼광빌라 지층사는 김 씨 아들이 유압해서 사고 날 뻔했어.
그래서 그런 걸 거야.
사람 사는 일은 이렇게 내버려둬도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 정말 장씨 같은 분 우리 동네엔 없나?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계실 것 같은데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은 그래도 주차장이 잘 정비된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주차 관련해서는 크게 신경 쓸 일이 없긴 한데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파트보다는 일반 주택에 살 때라서
골목길마다 차들이 길을 막고 서 있었죠.
그래도 지금처럼 골목을 아주 꽉꽉 채운 것은 아니라서
주차 문제로 다투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요.
요즘은 아파트가 아닌 일반 주택지 골목을 지낼 때 보면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만큼의 공간만 남겨두고
차들이 자리를 죄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밤에 어떤 급한 사정이 생겨서 나갈 일이 있어도
차를 가지고 나가지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말죠.
그러다 이웃 간에 싸우기도 하고요.
왜 차 안 빼주느냐, 새벽에 전화하면 어떻게 하느냐
뭐 이런 식으로 싸움의 발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 얘기는 제 친구가 저에게 전해준 말인데요.
그 녀석네 동네가 그렇다네요.
이 소설처럼 밤에 차들이 들어차면
제일 안쪽에 자는 아침까지 꼼짝을 못한답니다.
밤에 전화 걸어서 차 빼달라고 부탁하기도 좀 뭐하고
해서 밤에 어떤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그냥 마음 편하게 택시를 이용한다네요.
아마 이 소설의 작가도 제 친구와 비슷한 경험을 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것을 소설로라도 시원하게 해결해보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네요.
근데 정말로 장씨 같은 분이 우리 주위에 사신다면 진짜 좋을 것 같지 않나요?
마치 주차관리원처럼 알아서 척척 차를 옮겨주고 하니 얼마나 편하겠어요.
이런 분에게 상을 주어서 칭찬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마 그 동네 주민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래서 상을 주려고 했죠.
근데 이상하게도 장씨는 한사코 상을 거부합니다.
심지어는 자꾸 그렇게 상 받으라고 조르면 차 봐주는 일을 안 하겠다고까지 하죠.
그러곤 주차관리 봉사를 진짜로 그만둬 버립니다.
실로 그 동네 사람들에겐 아주 날벼락 같은 일이었죠.
그런데 그런 장씨를 두고 사람들은 장씨에게는 어떤 상을 받지 못할 만한 숨기고 싶은 병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들을 하죠.
어찌 보면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심리가 이해도 됩니다.
상도 주고 돈도 주겠다는데 그걸 거부한다면 좀 이상하긴 하죠.
그런데 알고보니 장씨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죠.
자기의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이 자신이 운영하던 트럭에 치여서 죽었다는군요.
하 참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네요.
암튼 유추해보건데 그 아들의 죽음이 장씨에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었던 것인데요.
그 이후부터 동네에서 자동차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날까봐 걱정이 돼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것이 죽은 아들에 대한 속주라도 되는 양 열심히 해왔던 것이죠.
소설 속 화자의 말처럼 상을 받거나 칭찬을 듣고 싶어서 하는 일이었다면 그렇게도 꾸준히 자기 일처럼 오래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속에서 울어나와야지만 할 수 있는 봉사였던 거죠.
우리는 가끔씩 누군가 선행을 하면 살짝 실눈을 뜨고 색안경을 끼고 그 선행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말들을 합니다.
뭔가 불순하다느니 뭔가 의도하는 게 있지 않았겠느냐든지 하는
그래서 어떨 땐 그런 뒷말들이 스트레스가 될까봐 선뜻 선행하기를 꺼리는 경우도 있겠다 싶습니다.
동네 주민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었던 장씨의 그 어두워 보였던 사연을 알고 보니 왠지 그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이 더 측근해 보이기도 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장씨가 차를 빼고 넣어주러 분주하게 다니는 모습을 기대하면서 오늘 작품 낭독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지금까지 고정욱 작가의 차반장 장씨를 읽어드렸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