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며듣는소설 가을에 또 올께. 엄마 밥 먹으러! | '명자가 왔다' 권혜수 | #책읽어주는남자 #책과함께하는하루단잠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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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며듣는이야기 #잠자리소설
하루의 끝, 조용한 밤.
당신을 깊은 이야기 속으로 이끄는 오디오북 채널, 책과 함께하는 하루 '단잠'입니다.
🛏️ 잠들기 전,
🚶♀️ 혼자만의 감성 산책 시간,
🎧 눈은 쉬고 싶지만 마음은 이야기를 원할 때—
언제든 이곳에 들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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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00:00:00 인트로
00:01:03 본문낭독
00:43:03 단잠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평
00:46:27 클로징 음악 "Where the night Rests quietly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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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요약
AI 생성권회수 작가의 <명자가 왔다>는 고단한 삶을 살아온 딸 명자와 그녀를 조건 없이 품어주는 어머니 월평댁의 애틋한 사랑을 다룹니다. 남편의 죽음과 생계의 무게로 지친 명자가 고향 집과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을 그려낸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오늘 읽어드릴 소설은 권회수 작가의 단편소설 명자가 왔다 입니다.
이 소설은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신이 모든 인간들을 다 보살펴줄 수가 없어서 신의 대리인으로 보낸 사람이 어머니라고요.
명자에겐 어머니가 어떤 존재일까요? 또 어머니에겐 딸인 명자는 어떤 존재일까요?
따뜻한 이야기를 찾으셨나요? 그럼 오늘 소설을 끝까지 들어봐주세요.
끝까지 감상하시는 모든 분들께 행운과 넘치는 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작품 낭독을 시작할게요.
명자가 왔다. 권회수
명자가 왔다. 쌀뜨물에 된장끼를 해서 시금치국을 끓여 저녁상을 들고 앉다가
엄마! 하는 소리에 내다보던 월평댁이 맨발로 마당에 내린다.
워메! 니가 어쩐일이다냐? 어쩐일이여? 내일 근무는 어찍하고?
걱정마 엄마. 나 안 잘렸어. 명자가 웃는다.
월평댁이 혼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전화를 했을 때 명자 목소리에 힘만 조금 없어도
월평댁은 직장에 무슨 일이 생겼나 가슴부터 덜컥한다. 마당에서 하얗게 웃는데
어느새 명자 눈가에도 주름이 잡힌다. 지난번에는 보이지 않던 주름이다.
저것도 늙어가네. 딸 눈가에 주름살이 먼저 보이는 것도 어미 마음이기 때문인가.
명자는 한 손에는 쇼핑백 다른 손에는 묵직한 검은 비닐봉지를 들었다.
월평댁이 짐꾸러미를 받아 마루에 놓는다. 오면 온다고 기별을 하지.
엄마! 또 마을앞에 나와 까마까마 기다릴까봐. 갑자기 오니까 더 반갑자네.
할 일 없는 늙은이 기다리는 것도 재미지. 멋이냐? 이거이다. 추어탕거리 사왔어요.
아이고야. 내일같이 사면 되잼. 뭐하려고 힘들기. 내가 엄마 끓여드리려고.
그려 그려 고맙다. 얼른 들가자. 배고프겠다. 월평댁이 마루 위로 명자 손을 잡아 끈다.
월평댁은 우선 아직도 살아서 있는 힘대로 파닥대는 미꾸라지 봉지를 냉장고에 놓고
고사리며 대파, 부추도 야채칸에 넣는다. 이건 무엇이냐? 아직 식지 않은 따끈따끈한 봉지가 하나 손에 잡힌다.
엄마 좋아하는 파시루떡. 고속버스에서 내리니 마침 5일장이었다.
꽤 걸어야 하는 장터로 가서 방금 시루에서 찌는 걸 기다려 사왔다.
이런 걸 모으려고? 네 아버지 지사떡도 아직 남았는디. 월평댁은 떡 중에 고사떡을 제일 좋아한다.
잡곡도 팥을 좋아한다. 가만있자. 굴비 하나 구해야겠다.
썰렁한 밥상에 도저히 딸을 그대로 앉힐 수가 없는 월평댁이 냉동실 문을 연다.
그냥 있는 걸로 먹어요. 밥하고 국만 있으면 되지. 깻잎 있지?
명자는 월평댁 손으로 차곡차곡 된장에 박은 짭짤하고 담백한 맛의 깻잎 반찬을 좋아했다.
늘 곁에 두고 먹으면서도 이상하게 그 맛이 늘 그립다. 언제나 변치 않는 맛이 있고 그 음식을 그리울 때마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변치 않는 맛은 재료는 물론 그 맛을 다뤄 상해내는 사람의 손맛이 한결같아야 가능하다.
명자 입에는 월평댁의 손맛이 그랬다. 아니다. 시장효도 조가만 있거라잉.
월평댁이 기어이 냉장고에서 굴비 두 마리를 꺼내 프라이팬에 튀긴다.
기름 튀는 소리와 냄새에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만드는 훈기가 집안에 퍼진다.
그러는 사이에도 월평댁은 냉장고를 뒤져 주섬주섬 밑반찬을 내놓는다.
혼자 먹을 땐 국이나 찌개에 밥 한 공기 말아 후룩후룩 먹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깻잎, 갈치젓, 마늘장아찌가 나왔다.
봄을 넘긴 해묵은 김장김치도 꺼내 손으로 쭉쭉 찢어놓았다. 참말로 뭔일이냐?
손으로 굴비살을 발라 밥위에 놓아주며 월평댁이 아무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묻는다.
내가 먹을게. 엄마도 얼른 드세요. 오메, 맛있어본거?
시원하면서도 새콤하게 곰삭은 김치 맛에 명자가 온몸을 떤다.
어렸을 때도 명자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 때나 산길에서 앙증맞은 들꽃을 볼 때
혹은 지푸른 가을 하늘에 길게 그려진 하얀 비행기 구름을 볼 때 온 마음과 몸으로 그에 반응하는 아이였다.
가끔 사탕이 생기면 저어 먹기도 아까울 텐데 싫다는 월평댁을 따라달며 입에 넣어주곤 했다.
때로는 그게 너무 야살스러워 월평댁이 혼을 내기도 했었다. 사람이 좀 천연스러워야 한다고.
명자는 세 딸 중에서도 천생 여자였다.
사십이 넘고 삶의 곡절이 신산스러운데도 명자의 그 성격만은 변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명자의 그런 변하지 않는 성격이 월평댁에게 위안을 든다.
내 딸이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주겠구나 싶어지는 것이다.
맞딸 금자가 죽은 제 아버지 외양을 닮았다면 명자는 자그마한 몸피가 천생 월평댁이었다.
어렸을 때 별명이 콩순이었다. 나아 놓으니 한 주먹도 안 되는 것이 머리가 콩알같이 여물어 신기하게 또글또글 했다.
콩알만한 입을 쪼옥쪼옥 벌리며 그 작은 것이 얼마나 배내 짓을 또랑하게 하는지
산바라지를 한 채 고모가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째 왔냥께? 잉 휴관했어? 잘했다. 매칠을? 3일간? 푹 쉬도 못하겄구만.
어깨는야? 그만하네. 명자는 구청 소속의 환경미화원이다.
비질이란 게 늘 어깨를 써야 하는 일이라 명자는 어깨가 좋지 않다.
특히 힘을 주는 오른쪽이 안 좋다. 이따금 월평댁이 지어주는 한약도 먹고
일틈틈이 침도 맞고 물리치료도 하는 모양인데 쉴 수가 없으니 매양 그 타령인 모양이다.
그래도 신분이 공무원이어서 든든하다. 월평댁은 전화만 하면 명자에게 그랬다.
밥은 먹었냐? 그러면 엄만 또 밥? 하면 명자도 웃는다.
거르지 말고 따순밥 먹어. 다 먹자고 하는 일인디.
남편 잃고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이와 사는 고된 딸에게
월평댁은 이 말을 늘 먼저 할 수밖에 없다. 월평댁에게도 명자에게도 아직도 밥은 그만큼 중요했다.
조금 전 느닷없이 들어선 명자를 보고 월평댁 가슴이 철렁했던 것도 그 밥줄이 끊어졌을까 봐서 했다.
큰엄리는 잘 계시지라? 속없는 큰엄리야. 술하고 담배. 소리만 있으면 뭔 걱정이 있는 인생이다냐.
또 싸우는갑네? 명자가 웃는다. 아랫 윗집에서 만날 타시락대는 늙은 동서관이 명자는 귀엽다.
싸우기는 그렇다는 야그지. 밥을 먹다 말고 명자가 하품을 깨문다.
차 안에서 내내 잤는데 또 졸리네?
집에서부터 강냉이 튀밥 한 봉지와 물 한 병을 가방에 넣어 차에 오른 뒤
명자는 창가 자리에서 오는 내내 그걸 먹다 자다 했다.
그러는 명자를 양복을 입은 옆자리의 중년 남자가 흘깃거렸다.
자고 눈 뜨면 또 먹고. 남자가 보기엔 세상에 본대 없고 예의 없고 무지한 여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자는 상관하지 않고 유리창에 이마를 박으며 자고 또 잤다.
사이사이에 강냉이 튀밥을 바사악 소리를 죽여먹었다.
그 남자를 다시 볼 것도 아닌데 고단하게 내발로 안 움직여도 달려가 주고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까지 내주는 차 속의 이 다디단 잠을
강냉이 튀밥이 주는 그 아련하고 푸근한 향수를 왜 남의 시선 따위에 뺏기겠는가?
명자에게 친정으로 가는 차 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휴식과 해방의 공간이었다.
명자는 이 차에만 오르면 모든 것이 신기하게 다 잊혔다.
남의 시선을 받아가며 거리를 쓰는 일도 아이들 치닫거리도 앞날에 대한 막막한 불안도 이 공간에는 없다.
그냥 포근하고 아늑했다.
게다가 달려가면 어머니 월평댁이 있다.
튀밥도 명자에겐 변치 않는 향수의 맛이었다.
어렸을 적 월평댁이 장에 가는 길에 강냉이나 잡곡을 튀기려고 챙길라 치면
명자는 어김없이 자루를 들고 앞장서 나섰다.
어쩌다 튀밥 장수가 리어카에 튀밥 기계를 싣고 마을로 들어오면
온 마을이 튀밥 터지는 소리로 뻥뻥 축제 같았었다.
그럴 때면 입담 좋은 큰어머니 용래 댁의 맛깔난 야사가 어김없이 곁들여졌다.
옛적에는 집에서 튀밥을 어찌케 튀겼는 줄 알아?
먼저 밥을 해서 꼬두밥 맹키말려 글고는 깨끗한 모래를 가져다 얼개미에 내리제
얼개미에 내린 고운 모래를 가마솥에 달구고는 하나하나 뜯어말리놓은 밥을
달군 모래에 넣고 젓으면 밥태기가 톡톡 불가짐서 희컨 튀밥이 송글송글 올라와
금세 가마솥에 가득 차불제. 얼마나 옹글지고 이쁜디.
근데 그때를 조심해야여. 이쁘다고 조금이라도 한눈팔다가는 아주 다 망쳐분께.
그랑께 아무리 뜨가도 얼룽얼룽 바가지로 퍼서 얼개미로 모래를 내리 뿌려야제.
글 안오면 모다 씹검댕이 맨들어 불어. 옛날 사람들이 얼마나 실기로 웃는디.
튀밥을 먹으면 수줍게 샛길로 물러나 있던 기억들이 바로 어제의 일인양 큰길로 헐헐 달려나왔다.
저녁상을 물리고 월평땡이 곧장 명자가 누울 잠자리를 준비했다.
모기향을 피우고 광주의 큰 며느리가 사준 삼배 혼이불을 씌운 요와 삼배 여름이불을 내렸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이불과 요는 까슬까슬 기분좋은 촉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친정이 오면 딸들은 나이가 몇 살이건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가 아닌 그저 엄마의 딸로 어려진다.
불혹이 넘은 딸에게 팔순이 가까운 어머니가 이불자리를 깔아줘도 흉물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엄마 미안해. 나 먼저 잘게. 옷을 입은 채 요 위에 눕더니 가물가물 잠에 빠져들어가며 명자가 말했다.
엄마 큰어머니하고 많이 싸워. 죽으면 싸우지도 못하잖아.
싸울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그제 명자는 스르르 잠에 떨어졌다.
월평댁은 옷을 벗겨줄까 망설이다 그만둔다. 오랜만에 한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밤늦도록 도란도란 얘기라도 나눌 생각에 차있던 월평댁은 갑자기 할 일을 잃고 막막해진다.
명자는 한 마을의 지석이와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다. 마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귀하던 시절.
이태 차이는 졌지만 둘은 나란히 걸어 읍내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석이는 위로 누나 셋을 낳은 뒤 얻은 아들이라 천하의 귀한 아들이었다.
지석이 밑으로 아들을 하나 더 얻기는 했지만 오죽하면 지석이 엄마가 시집 온 지 30년 만에 아들을 낳아 놓고 고추가 떨어질까봐 만지기도 겁난다고 했을까.
지석이는 반에서 첫째 둘째를 다툴 만큼 공부도 잘한다고 했고 글도 잘 쓴다고 했다. 무슨 상인지 그 부모가 걸핏하면 상탄 자랑을 했다.
안방 벽이 상장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월평댁이 아는 건 지석이가 계집애처럼 하얀 얼굴에 몸이 호리호리하고 청승맞게 하모니카를 잘 분다는 거였다.
월평댁 눈엔 그 몸피와 하얀 얼굴이 남의 자식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영 맛득지 않았다. 남자가 손도 잔 큼지막하고 장군 같아야지 하는 것이 월평댁 생각이었다.
오메 누구 애간장을 녹이려고 밤중에 저러고 분다냐. 밤에 그것도 휘영청 달밝은 밤에 커졌다 작아졌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들리는 하모니카 소리에 월평댁이 다 탄식을 했다.
지석이 부른 하모니카 소리는 하나같이 구슬프고 청승맞았다. 참, 니 신세도 헌억인 다 글름갑다. 하필이면 그 청승맞은 소리가 명자의 애간장을 녹였다.
지석의 하모니카 소리는 들꽃 하나에도 그 몸과 마음을 다 뺏기는 여린 명자의 넋을 빼고도 남았다. 처음에는 몰랐다.
학교 다닐 때는 누가 먼저 집에 오거나 학교에 가거나 해서 철저히 아무 일도 없는 척했고 지방대학 1년을 마치고 지석이 군해를 갔을 때 고등학교 2학년 학생 몸으로 명자가 면회를 다녔는지 어쨌는지도 양쪽 부모들은 까마득히 몰랐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자는 제가 졸업한 학교 서무과에서 근무했다. 담임선생이 그 영미함과 애발음을 눈여겨받은 탓이었다. 가벼운 몸살기처럼 피곤해하고 여름인데도 오스스 추위를 타던 명자가 어느 날 아침을 먹다가 느닷없이 입덧을 했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아본 여자로서 월병댁은 단박에 그것이 입덧이라는 걸 알았지만 상대가 지석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직장이나 읍내의 누구려니 했다. 누구여? 숟가락을 탁 놓으며 월병댁이 물은 첫마디였다. 누구냐니께? 지석이.
지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월병댁은 하필이면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고개를 못 들 일이었지만 한 동네에서 바람이 났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처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도 다음 문제였다. 상대가 지석이라는 것에 월병댁은 하이고 주저앉아버렸던 것이다. 가슴에 선득한 바람이 지나가면서 머리끝이 서는 것 같았다.
왜 그토록 싫고 절망스럽고 놀랐는지 월병댁도 알 수 없었다. 지석이 집에서는 명자가 꼬리를 쳤다고 억장 무너진 집에 다시 억장 뒤집어 놓는 소리를 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감내해야 했다. 처녀가 아이배인 덤터기를 거스라니 썼다.
이제 자금실에서는 다른데 시집을 보내기는 다 틀렸다. 월병댁은 참말로 같이 죽든지 명자를 야반도주라도 시켜 감쪽같이 어디 멀리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고 어쨌든 명자를 지석이와 결혼시켜야 했다.
배 속의 아이 때문에 결정은 시간을 다퉜다. 괘씸하게도 지석의 태도는 저희 부모의 반대에 묻혀서 엉거주춤했다. 명자는 당차게도 결혼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 아이를 낳겠다고 우겼다. 그러나 월병댁이 드러눕고 믿었던 지석이까지 엉거주춤하자 결국 앞장서 악의를 지우러 나섰다.
군 제대를 한 지석이 명자를 데리고 읍내 병원으로 갔다. 이른 가을인데도 병원 앞 가게에는 귤이 나와 있었다. 아직 푸릇푸릇한 기가 있는 그 귤이 명자의 발걸음을 잡았다. 그러나 악의를 지우러 가면서 제 손으로 사 먹을 수도 없고 지석이에게 사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명자는 그냥 우두커니 귤 앞에 서 있었다.
귤 먹고 싶어? 먹어 사줄게. 싫어 애 제사 지낼 일 있어? 명자의 완강한 도리질에도 지석은 귤을 샀다. 그리고는 명자를 끌고 분식집으로 갔다. 명자야 이 귤 먹고 병원에 들어가자.
한마디 하려던 명자는 오뎅 국물 냄새에 울컥 입덧이 올라와 헛구역질 나는 입을 막으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속고치는 눈물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명자는 그냥 아득히 서러웠다. 뒤따라 나온 지석이 병원으로 들어가는 명자를 가로막았다.
명자야 우리 아기나 차. 명자는 지석을 바라보았다. 아 얼마나 듣고 싶던 말인가. 그 뒤에 억겁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좋았다. 아기를 낳고 이 남자와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눈물 크렁한 눈으로 명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었다.
결혼을 치르게 됐다. 정말 치른다는 말이 딱 맞았다. 양쪽 집안이 다 불만스럽고 시뜻한 결혼이었다. 머시매가 저 품새로 어떻게 처자식을 먹여 살리나. 월평택이 도무지 지석이에게 믿음이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쪽 집에서는 명자의 간열임과 야지랑스러움을 싫어했다.
과연 결혼하면서부터 명자의 인생은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첫 애를 풀고 지석이 대학 공부를 마칠 때까지는 자금실 시댁에 있었지만 졸업을 하고는 서울로 살림을 옮겼다.
그때부터 명자는 요구르트 장사, 보험 외판원, 식당 종업원, 학습지 교사 안 해본 것이 없었다. 월평택을 닮아 명자는 강했다. 글을 쓴답시고 지석은 직장도 썩썩 구하지 않고 책상 앞에서 세월을 보냈다.
월평택이 단 두 번 서울 걸음을 했는데 지석은 북대기 같은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었다. 고시공부를 하듯 고시원이나 절에 들어가 있기도 하는 눈치였다. 말새 야무진 월평택이지만 그 삶에는 입을 댈 수가 없었다.
사돈이 한 이웃에 있어서였고 딸 명자가 애련해서였다. 어떻게든 그 딸의 삶이 덜 고단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느 행가는 지석이 드디어 당선이라는 것이 되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게 명자 결혼한 지 8년 만이었다. 그렇다고 지석이 시원하게 가장이 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명자가 가장 역할을 했다.
지석이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한 달이 아니고 한 해였다. 그러나 월평택은 묻지 못했다. 명자 말로는 우리 식구 안 굶긴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명자의 시댁은 지금 자금실에 없다.
지석과는 딴판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는 안 하고 건들건들 나다니던 동생 지호가 느닷없이 읍내에 중국집을 낸다고 고깃배를 팔고 밭을 팔아 제 부모를 끌고 나간 것이다. 명자는 이튿날 해가 따가워질 때까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월평택은 아침 일찍부터 추어탕을 끓이기 시작했다. 푹 고온 미꾸라지를 뼈를 발라내고 된장을 풀고 무거지와 고사리, 대파를 많이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밀가루를 묻힌 부추를 넣는 것이 월평택식 추어탕이었다. 추어탕을 끓이는 한편으로 월평택은 도토리묵도 쑤었다.
사먹는 도토리묵은 차진 맛이라고는 없이 물컹 씹히는 것이 꼭 풀대중 맛이라 월평택 입에는 질색이다. 월평택이 쑤는 도토리묵은 야들야들하면서도 흐트러지지 않고 쫀득쫀득 찰싹 입에 붙는 맛이며 도토리 특유의 향이 녹진하게 살아있다.
묵은 힘겹게 쑤고 나면 자칫 되거나 물기일수인데 월평택 솜씨는 거의 한결같았다. 숙달된 감으로 물양을 잘 맞추고 오래 끓이고 소금기와 참기름도 약간 넣어 쑤는 것이 월평택 비법이다.
점심때가 다 되어 추어탕이 끓여졌다. 그래도 명자가 깨질 않아 묵까지 식혀놓고 머리위에 해가 한참 이울어서야 월평택이 명자를 깨웠다.
명자야 밥먹고 또 자그라. 명자는 겨우 일어나 밥상앞에 앉았다. 엄마 미안해 내가 끓여드리려고 했는데. 뭔소리 추어탕 허면 이 장막다리제? 암헌 장막다리 추어탕을 누가 당하간디?
오메 엄마한테도 이름이 있었네. 하도 오래 안불러서 엄마한테 이름이 있는가도 잊어버렸는데. 난 엄마이름이 월평땡인줄만 알았지. 장막딸 장막딸 거 이름 부르니까 좋다.
어렸을 때는 엄마 이름이 촌스러워서 생활기록부 같은데 엄마 이름 쓸 때마다 애들 안보게 가리고 쓰고 엄니도 엄마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근사하냐. 앞으로 장막딸 여사라고 부를까?
뭐 그래주면 좋제. 장막딸 여사님 엄니가 아주 달라보여부러 먼여간에 유쾌하게 웃어보기도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언제 묵까지 쑤셨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명자의 온몸을 자극한다.
명자는 상추와 오이를 곁들여 양념장에 묻힌 도토리묵부터 한 점 입에 넣는다. 월평땡은 꼭 묵을 들기름에 묻혔다. 식구들이 많이 모이면 믹서에 들깨를 갈아 들기름과 섞어 묻히기도 했다. 그러면 막 짜낸 들기름처럼 묵맛이 더 진하고 고소했다.
얼른 추탕도 묵어보제. 아따 엄니도 추어탕 아니 추탕이라고 해야 제맛이제. 추탕 묵어불면 묵을 몸무근게 글제. 명자는 묵 한 접시와 추어탕 한 뚝배기를 잠자리에서 앉은 채로 다 먹었다. 그 자그마한 몸 어디로 추어탕이 저렇게 들어가는지 월평땡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하 장막달표 추탕 짱이다 짱. 그냥 속에 찌든 서울떼국을 한방에 날려부네. 한 그릇 더 줄까? 많이 먹을 땐 국대접으로 세대접을 먹던 아이다. 어렸을 때도 추어탕을 끓이면 밥대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도 밤중에 살그머니 정지에 들어가 생쥐처럼 달그락달그락 식은 국을 퍼먹곤 했다.
아니 이따 먹을게요. 아고 뱉어져. 장막달녀사 딸 쪼까 살려내시오. 맛을 한바꾸 돌아불면 금세 꺼져. 옛날 생각난다. 그 배골튼 시절에 머시머시 해도 심타게 허는 거이 추탕이었어야.
아무리 죽었다가도 논고랑에서 미꾸라지 잡아다 실가리 넣고 푹푹 끓이 묵고 나면 심히 기냥솟제. 없니? 나 또 졸려. 명자눈이 어느새 거물거물하다. 그려도 쪼까 배 꺼지면 자그라.
월병댁이 추어탕과 묵을 가지고 용래댁 집으로 내려간 뒤 명자는 무릎을 안고 오독하니 말 위에 나앉았다. 명자의 풀린 눈이 담이 없는 마당 끝에 선 앵두나무와 고협나무, 그 아래에 덩쿠를 치고 지나가는 호박, 자식들이 고향집에 모일 때 보신탕이나 추어탕을 끓이려고 걸어둔 가마솥,
굳이 씨를 뿌리지 않아도 해마다 제 스스로 올라오는 들깨와 마당 한쪽을 널찍하게 차지한 장독대 곁의 봉숭아, 백일홍, 맨드라미, 채송화를 무연히 스치고 지나간다. 고협나무는 명자 기억이 시작될 때부터 거기 있었다.
너무 고목이라 몇 해 열매가 부실하더니 올해는 가지가 무겁게 오롱조롱 달렸다. 그 풍경들이 거기 있어서 보는 것이지 명자는 옛날처럼 그 풍경에 온몸과 마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꽃은 맛도 좋지. 명자가 들릴듯 말듯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잔바람에 물결이 일렁이듯 명자의 노래가 일앙을 이룬다.
지석이 하모니카로 잘 불던 노래였다. 지석은 소설에 두 번이나 당선이 되었지만 명자의 고달픈 일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석의 처음 당선은 자신의 대학을 나온 지방지의 신춘문이었다.
그러고 나서도 중앙일간지의 당선이라는 험난한 벽을 다시 한번 넘어야 했다. 주유의 관심도 원고 청탁도 당선된 처음 얼마간이었다. 정작 지석을 더 힘들게 한 것은 당선 뒤였다.
잠시 입양이 되었다가 다시 고아처럼 내동댕이 쳐진 것 같았다. 그 뒤 장편도 두 번 냈지만 초판에 그쳤다. 지석은 가장으로서의 책물을 감당하기 위해 아이들 논술도 가르쳐보고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자서전을 쓰기도 했다.
명자야 문학이 널 고생만 시킨다면 소설 쓰지 말고 그냥 이렇게 살아버릴까? 죽기 얼마 전 지석은 명자를 붙잡고 꺾어 울었다. 명자도 함께 울었다.
지석은 여리고 순결한 남자였다. 그 순결을 지켜주기 위해 명자는 환경미화원이 되었다. 죽던 날 지석은 강원도 정선이 고향인 동료 작가의 부모님 집에서 세 사람이 이틀 밤 자고 오기로 했다며 등산복 차림으로 오전에 집을 나갔다.
명자는 일을 나가 있어서 대중 준비만 해주었을 뿐 그의 외출을 보지 못했다. 명자는 내키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말리지 못했다. 지석이 가는 것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찜찜한 마음은 며칠 전 꿈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꼬리와 잔등을 보이며 검은 소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버짐 먹은 것처럼 지저분한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아주 꽉 마른 소는 보기에도 불길하고 섬뜩했다. 그 소 위에 누군가 올라탔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남자라는 것만이 감지됐다.
소는 사람을 털어내려고 격렬하게 온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남자는 잔등을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계속 사람을 털어내려고 소는 몸을 흔들며 주위를 돌았고 그 진동만큼 올라탄 남자의 붙잡는 힘도 악세졌다. 어느 순간 소가 냅다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소의 목을 움켜잡고 소 위에 붙어가는 쉬파리처럼 소 등에 납작 엎드렸다. 소는 끝내 남자를 털어내지 못하고 어디론가 달려 사라졌다. 도무지 해독이 불가능한 꿈의 내용이 며칠째 명자는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밤 9시쯤에 지속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많이 취한 목소리였다. 명자야 사랑해. 평소에 이름은 잘 불렀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참 오랜만에 들어보았다. 명자는 웃었다. 알았어 나도 사랑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는 가파르게 끊어졌다.
10시쯤 다시 전화가 왔다. 수화기소에서 시가 먼저 들려왔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풀의 나무 한잎같이 쬐끔한 여자. 그 한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명자는 송수화기를 잡고 하품을 깨물면서도 지석의 느리고 긴 시가 끝나기를 잠잠히 기다렸다. 지석이 기분 좋게 술을 먹고 들어온 날이면 명자를 현관에 세워놓고 가끔 들려주던 시였다. 명자야 고마워. 명자야 나 집에 갈래. 지석이 느닷없이 떼쓰는 소리를 했다.
지금? 응 지금. 안돼 내일 와. 거기서 여기가 어디라고 이 시간에 와? 명자가 달랬다. 아니야 나 택시 타고 집에 갈래. 그때 명자에게 떠오른 것은 먼저 만만치 않을 택시 비였다. 이 30만원은 좋게 될 것이었다. 술김의 소리겠지만 술김인 만큼 정말 그 돈을 들여 올지도 알 수 없었다.
명자야 나 갈래. 집에 갈래. 너 보고 싶어서 갈래. 알았어. 택시 타고 와. 지석의 소리가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너무 애절해서 명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들이 있는데 설마 그 먼 길을 혼자서 오기야 하리야 싶었다.
전화가 끊어졌다. 이상하게 불안했다. 평소 술이 많이 취했을 때의 불안과 그 강도가 달랐다. 명자 쪽에서 전화를 다시 걸었다. 그러나 서너 번을 걸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지석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같이 간 친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다.
없는데요. 잠깐 바람쐬러 나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술을 좀 많이 마셨거든요. 비교적 술이 덜 취한 친구는 너털 웃음을 치며 태평했다. 명자는 지석을 좀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술김에 어디 그냥 쓰러졌을까봐 염려가 되었다.
많은 아내들이 그렇겠지만 서울에서는 매놀에 빠지거나 아리랑치기 같은 걸 당할까봐 불안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아내들이 그런 불안을 불식시키며 술 취한 남편들은 보란듯이 잘도 집으로 돌아온다. 적어도 그때까지 명자의 불안은 거기까지였다. 모든 게 기우나 불안으로 끝나리라는 것.
그래서 내일 또 같은 기우를 되풀이하리라는 것. 그리고 너무 피곤해서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로 깜빡 잠이 들었었던 것 같다. 아득히 또 전화벨이 울렸다. 퍼뜩 뻑뻑한 눈꺼풀을 짓뜨면서 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 5분이었다. 조금 전 명자와 통화를 했던 작가였다. 수진이 아빠입니다. 해놓고 친구는 전화기 저쪽에서 한참 말을 하지 못했다. 명자는 무슨 일인지 먼저 물어보지 못했다. 이미 명자는 전화기 저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온몸으로 써늘하게 예감하고 있었다.
송수화기를 잡은 손에서 힘이 하얗게 빠져나갔다. 한참이 지나서 친구가 말했다. 로기 엄마, 지석이가 죽었습니다. 지금 정선병원인데 서울로 가겠습니다.
그곳 병원 앰뷸런스로 서울의 대학병원에 도착한 것이 아침 6시 무렵이었다. 높은 도로에서 강으로 굴러 돌 사이에 박혔다는데 의외로 시신은 얼굴에 타박상만 조금 있을 뿐 깨끗했다.
지석은 그날 밤 어느 화가가 화실로 사용하는 폐교에서 술을 마셨다. 도착한 저녁 무렵부터 전화를 한 그때까지 화가까지 넷이서 소주 11명을 마셨다고 했다. 술을 마시다 지석은 몹시 답답해하며 밖으로 나갔다는데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거나 바람만 쐬고 곧 들어오려니 했다.
그러다 명자의 전화가 왔고 비로소 지석이 한참이나 안 들어왔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일행이 지석을 찾아 나섰다. 운동장이며 빈 교실을 사사시 뒤져도 지석이 없자 불길한 예감에 일행은 술이 다 깨버렸다.
누군가의 긴급한 제안으로 119에 전화를 했다. 119 대원들은 그들의 동물적인 육감과 경험으로 한 시간 만에 지석을 찾아냈다. 정선 읍내의 병원으로 옮겼을 때까지만 해도 지석은 희미하게 살아있었다고 했다. 사람을 알아보았고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명색이 종합병원이라고는 해도 빈약한 시설에 응급의사만으로는 다급한 생명을 바쳐줄 수가 없었다. 지석은 그날 밤 정말로 서울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로 나갔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도로가 하필이면 급커브 길이었고 평소에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었다.
그곳에 서서 손을 흔들다 하이빔을 켜고 무섭게 휙 지나가는 덤프트럭 같은 것에 순간적으로 밀려 밑으로 굴러떨어진 것 같다는 것이 119 대원들의 추정이었다. 아무리 술김이어도 왜 하필이면 거기로 가서 차를 잡으려 했는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그토록 떨어뜨리려고 몸부림치는 소희 등에 그는 끝내 그렇게 매달려갔다. 그날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는 지석을 보내며 묘비에 긴 글을 남겼다.
자네 동백꽃을 보았는가? 밑동이 붙은 다섯 장의 꽃잎이 가장 아름답게 잎을 벌린 순간 동백꽃 봉오리는 툭 하고 통채로 떨어지지. 그래서 동백은 두 번 핀다고 하네. 떨어진 땅에서 또 한 번 핀다고. 절화하듯 너무 일찍 가버린 자네. 부디 우리 가슴에서 다시 피게나.
명자는 두 번 지석이 죽은 그 현장에 가서 시린 하늘 아래 목 놓아 울어보았다. 명자는 스르르 그대로 말 위에 쓰러져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늦은 저녁 밥상이 놓였을 때에야 잠에서 깨어났다.
엄니, 나 또 졸리네. 왜 이러지? 저녁을 먹고 명자는 또 잠이 들었다. 큰엄니한테 한 번 내려가 봐야제? 명자는 듣지 못했다. 그날 밤도 월병택은 명자와 도라안도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자는 명자의 손을 토막잠이 깰 때마다 잡아보곤 했을 뿐이다.
추어탕 세 그릇만을 먹고 이튿날 명자는 잠깐 용래 댁한테 들른 뒤 사흘만에 서울로 올라갔다. 월평택은 올망졸망 봉지 봉지 싸서 명자 손에 들려주었다. 차비도 찔러 넣어주었다. 터미널에 내리면 택시 타. 지하철 탄다고 무거운 거 들고 층층대에 오르내리지 말고. 알었제?
올 때마다 월평택이 당부하는 말이다. 그러나 명자는 무거워 낑낑대면서도 짐을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것이다.
엄리가 해주는 따뜻한 밥이 있어. 너무 좋다. 나 엄리밥 먹으러 왔어. 아 잠도 실컷 잤네. 이제 기운난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명자가 말했다. 그 밥밖에 해줄 것이 없어서 월평택은 마음이 시렸다.
같은 자식이라도 아롱이 다롱이라고. 명자에 대한 월평택 마음은 다른 자식들과 또 다른 데가 있었다. 명자 때는 이상하게 젖이 안 나왔다.
그래 쌀을 빠 백설기를 쪄서 말려 절구에 빠은 뒤 한의원처럼 봉다리를 만들어 매달아 놓고 하루에 세 번씩 암죽을 쑤어 먹여야 했다. 젊은 거에 청숙맞게 너무 자주 산소에 댕기지 말어.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를 보며 월평택이 간절히 당부를 했다. 그러나 월평택은 명자를 바로 보고 말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명자는 지석의 무덤에 갈 것이고 월평택은 그걸 너무 잘 알아서 했다. 가을에 또 올게 엄마 밥 먹으러 버스에 오르며 명자가 말했다.
짠한 이야기였죠.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시린 것이 엄마에게 찾아온 명자나 그런 딸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엄마에게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고향은 어머니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곳에 가면 어머니가 계시고 아버지가 계시고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자꾸 더 더 어려져만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명자처럼 아기가 되어서 계속 잠자고 먹고 또 잠자고 사랑하는 사람과 어렵게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 줄만 알았던 딸이 이젠 홀몸이 되어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애처롭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딸과 도란도란 얘기도 하면서 밤을 지새우기를 기대했지만 집에 와서 잠만 내리자는 딸이 너무 안 돼 보여서 깨우지도 못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을 걸 생각하니 그 마음을 몰라주었던 그때의 내가 너무나 미워 보입니다. 왜 우린 어머니에게 그토록 나쁜 딸이고 모진 아들이었을까요?
명자에게 감정이입이 된 저는 너무나 행복합니다. 비록 사랑하는 사람을 불시에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현실이 팍팍한 고생길이어도 이 순간만큼은 참 행복합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밥과 추어탕을 배불리 먹을 수 있고 어머니의 달콤한 잔소리가 있고 내 잠자리를 펴주는 어머니의 손길이 있어서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
긴 긴 시간을 들여 힘들게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도 나는 그 길 끝에서 나를 반겨줄 어머니가 있어서 하나도 고생스럽지가 않았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미안한 것은 내가 혼자가 되어서 행복하게 잘 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 그게 미안할 뿐입니다.
명자는 어머니를 찾아서 마치 태아가 된 것 마냥 먹고 자고 먹기만 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어느 휴양지라고 이보다도 편하게 쉴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세상 편한 이불 속이고 고향의 흙이고 맛있는 밥이며 눈부신 햇빛입니다. 명자는 그런 어머니에게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갑니다.
이젠 새롭게 힘을 낼 겁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녀에겐 든든한 어머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을에 다시 올 것입니다. 엄마의 밥을 먹으러. 휴식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감사하며 오늘 작품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감상평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