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그리고 음악” 저자 이종구 한양대음대 명예교수 문화사 강좌 7강 | 우리 사학계는 왜? 고조선 화폐의 이름을 못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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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음학당 명예교수
이종구 있니다 지난
시간에는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식주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아울로 고조선의
무기와 고조선이 한나라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이 의식주를 뛰어넘는
돈 즉 경제적 매체에 대한
말씀으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인간의 가치관으로 볼
때 세상 모든 만물에는 경제 거래
가치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성질이
있습니다이 개념을 구체화하고 수치화한
실질적인 것이 바로
돈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청동기
시대부터 철기 문화를 거치면서 구체화
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돈이라는 어원이 좀 재밌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인 있어서 어떤
것을 정설로 받아들여야 할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돌고 돈다 해서
돈이라는 프리와
함께 귀금속이나 한약제 같은 거를 달
때 쓰는 그 무게 단위인 돈에서
나왔다는 그런 설도 있고 또 고조선의
화서 떤
명도전 도자 칼도에서 나왔거나 이것을
줄인 말이라는 그런 설도
있습니다 조선의 경제 권역이 한이
지도는 사실상 명도전 발굴
지역입니다 한반도에서 만주를 거쳐
요동 요소 하북성 그리고 내몽골의
대흥한방 지역에서이 명도전이
나왔습니다
한때이 명도전 중국의 협회다 해서
고조선의 경제권이 중국의 예속되다
하는 그런 논리가
있었습니다 명도전이 발견된이 지역
지도를 보신 분들도 그 출토 지역이
오늘날 중국의 요령과 문고를 포함하고
있으니 중국 돈이라 했었던 과거 일본
사람들의 주장이 맞지 않느냐 하는분
실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역사의 영토와
현재의 국경은 반드시 구별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근대사로
비유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남한과 북한은 해방과
더불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전쟁까지
했죠 하지만 우리 뇌리 속에는 북한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다
하는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주적은
여전히 북한이 우리는 60만 북한은
120만 대군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조선시대와 고려
시대는 만주를 우리 땅으로 여기서
언젠가 통일해 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고
또 고구려와 백제는 옛 고조선의 땅을
잊지 못해서 만주와 요동 요서를
침없이 공격도 하고 지배도 거듭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 국경은 오늘날에
선처럼 아주
엄했다 나라에 비해서 전쟁이
적었 한 왕가 서면 500년 이상을
할 수 있었던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바로 이런 사실을 증명하고
있죠 그래서 역사의 체계도 비교적
단순합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제가 언젠가 독일의 예를
들었었는데 오늘은 프랑스의를 한번
들어보도록
하죠 프랑스는 본뒤 갈리아 사람들이
모여서 살다가 오랫 동안 로마
제국에 정복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없었던
것이죠 그런데 로마로부터 해방된
뒤에도 나라 이름도 없이 지내다가
476년 야 비로소 프랑크 왕국이
성립되면서 국경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가까지 내전과 종교
전쟁에 휘말리면서 17세기 경에 겨우
절대 왕정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프랑스의 국토는 수십번의
그 변화가
있었고 그 이후
20세기에도 프랑스의 국경이 변화가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긴 역사를 가진
나라라면 어느 나라에서나 전쟁은 있게
마련이고 국경의 변화 또한 생겨납니다
그러기에 현재의 국경은 긴 역사 에서
볼 때 힘의 논리에 따라서 변경할 수
있는 한시적인 경계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국경과 역사적
영토는 분명히 달라야 하며 저는 지금
고조선의 화폐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영토를
말하는 것이
맞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국경이나
바로 전 왕주 있었던 조선 시대의
국경 개념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사정을
혼돈해 가지고 중국에 가서 뭐 고토
회복 운는 회복하면서 피켓을 들고
다니는 일도 역시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인터넷에서도 명도전 전국 시대의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던 화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와 같이 고조선의 화폐로 쓰였다는
것이 지금 정설입니다
명도전 손칼 모양의 청동
화폐로서 그 한가운데 발근 명자가
장식되어 있어서 명도전이
합니다 과거 국정 교과서에서는 어
명도전 사진을 아주 크게 확대해 놨기
때문에 무슨 살상용 무게 같이
보였습니다만 사실은 로 찍어낸 그렇게
날카롭지도 않은 작은 화폐
있을뿐입니다 명도전 하나의 무게는
현재 100원짜리 동전 세계의 무게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명도전이 이름은 일본 학자가
붙였고 연나라 화폐라고 규정한 것은
중국
학자였습니다 그러나이 화폐의 실질적
주인이었던 우리 측에서는 아무런
주장도 내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과거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명도전이 중국 연나라의 화폐다 했었던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내서 근거로는
연나라 지역에서 명도전이 많이
발굴되었으며
보세요 명도전이 발굴된 지역과는 단
한 군데도 일치하는 곳이
없습니다 연나라는 대흥한방 산맥
서쪽에 있고 명도전이 발굴된 지역은
그 오른쪽 요소 요동 만주 한반도에
있습니다 그러니 명도전 분명히 고조선
지역에서 발굴되었고 고조선 지역에서
유통되었던 고조선의 화폐입니다
여기서 잠시 연나라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이 이제 전국 치용 중에
하나입니다 주나라 무왕 때 섬서성
출신의 한우라 사람이 동이족을
끌어들여 가지고 동쪽으로 옮겨서 세운
나라였었소 그 주민들이 거의
시였습니다
식민 사학자인 이병도
선생조이 한후의 세력을 한시 조선이라
했었던
것이죠 연나라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664 북방에서 사용이 내자고 공격을
하자 연나라의
장공이 이웃나라 제나라의 원군을
청해서 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이 또한 고조선의
부족이었다 연 나라뿐만 아니라 상나라
빈번히 침입을
했습니다이 나라의 위치는 지금 연산
산맥 부근이에요
그래서 그 산맥의 이름을 따서 나라
이름도 연이라 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수도는 연경이
있어요 지금의 북경 있니다 그
조선시대에 북경 가는 일을 우리는
연행 간다
그랬었죠 고조선의 그 청동기 문화는
참으로 다른 고대 국가보다 월등이
뛰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되는
청동검은 매끈하게 디자인된 아주
세련된
칼이었다 거울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그런
제품이었습니다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고조선에 청동 화폐가 없었다
하는 것은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겠죠
명도전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재도전이 있습니다이 재도전은 제나라
땅 즉 산동 지방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그 형태가 명도전
닮았습니다 산동 지역은 제가 이미 전
시간에 말씀드린 바처럼 고조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주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재도전은 명도전 짝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이
명도전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었던
고조선은 연산 산맥을 넘어 자주
상나라 은나라를
침입했습니다 제가 상나라은 나라라고
말씀드렸는데이 두 나라는 같은
나라이지만 업무력 말한다면 그 전기
즉 서기전
1700 35년
1452년지 310년 간을 상
나라라고 했고 그 후
333년은 나라라고
했습니다 규원사화 고조선을 세운지
600년이 지났을 때쯤 북쪽에 살던
골이 일어나서 자주 반란을 일으켜
부여후 등 여러 그 고조선의 제후들이
힘을 합해서 5년 만에 겨우
평정했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이 때문에 고조선의
세력이 크게 약화가 됐고
북방은 방치하고 서남방 쪽의 경영에만
몰두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이때
북방에서 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신흥
세력으로는 구려국 남국 부여국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고조선의
11개 제후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를 가진 그러나 고조선의
나라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조선
사람들은 기후가 올라고 기름진 땅을
찾아서 호시탐탐 난방으로
진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상나라
10대 중정 때에 상나라의 수도인
박을
격파했습니다 이에 상나라는 수도를
오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23대
단군이 상나라 땅에 들어가서 고조선의
도까지 설치하자 상나라는 일을 두고
볼 수가 없어 군사를 일으켜서 침을
했지만 고조선의 나무가 이을
대했습니다 그 후 밀군 때도 다시
상나라를 치니 상나라의 19대 왕
반경은 수도 경을 버리고 언사로
달아났습니다 이때부터 상나라의 이름을
은으로
바꿨고 그 후 지리하게 다섯 차례나도
이처럼 은나라의 결정적인 타격을 준
고조선은 이후에도 계속 중국으로
진출했습니다 이때 그 수도는
성이었습니다 낙이라는 말은 나라라는
뜻을 가진 조선 말인데이를 한자로
옮겼으면 세 지역에 같은 이름이
있었습니다 물론 시대는 다르지만 그
하나가 지금 말씀드린 은라
의이고 또 하나는 고구려 때의
한반도에 있었던 낭 국이 있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중국 연속 지방에 있었던 군
다시 말하면 한사군의 한 군을
가르키는
이름이었습니다 은나라 때의 성이
어디인지는 잘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재 신채호 선생은
고조선의 서쪽 수도가 쪽인 개성이라
하고
있습니다이를 뒷받침할만한 문으로 요사
지리지에 이르기를 개성은 주나라 때
조선의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고조선 사람들이 나라에 많이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상나라를 건국할 때
고조선이 도와줬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한나라의 마지막 었던 거리 실정을
해서 그 국력이 약해졌을 때 고조선의
달 장군이 장군 해문 장군 나무를
보내서 한나라를 공격해서
승리했습니다 많은 고조선 사람들이
이미 이곳에 살고 있었지만 달 단군
이후 두홀 단군 때까지 570여 년간
고조선 사람들이 많이 이주를 해서 그
지방에서 농사도 짓고 양 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두홀 단군이 은나라의
재후 있었던 고죽 남쪽으로 몰아내고
난하 어구에 있었던 엄도 그라는
곳으로 도을
옮겼습니다이 도은 번안 조선 즉
고조선의 한 지방 수도 있었던
것이죠 음독은 험독이라고도 하는데
사기 조선 열전에 험독 창녀가
있었다라고 하고 또 응소 말하기를
조선왕 위만이 도한 곳이 험독 있데
물길이 험해서 험독이라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만이 조선의 서쪽에 있었던
번안의 재우가 되었다는 것이지 고조선
전체의 단군이 되었다는 말은 아닌
것이죠 또 동의 민족이 음독을 수도로
정하면서 연산 산맥을 넘어가 오늘날에
천진 지방과 북경 지방을 지배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한편 한서 지리는 창녀라는
땅의 그
북쪽에는 한 사람이 지키면 만 사람이
달려들어도 빼앗지 못하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창 독의 위치가
오늘날 연산산맥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한 사람이 지키면 만 명이
달려들어도 빼앗지 못한다는 말은 연산
산맥에 높고 가파른 지세를 뜻하는
것입니다 자이 사진을 한번
보실까요 산동의 옛 사람들이라는 중국
사이트에 있는
그림입니다 고조선의 무리가 지금
이주하는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족 과
동광인테리어
5천년 전 중국 티베트를 사용하는
민족이
하화족이 동이족과 좌에서 전투를
버렸는데 동이족이 이겨서 하화족
합병했고 세력이 커져 가지고 동쪽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니까 동족과 하화족
족이 서로 밀고 당기는 그런 전투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한편 하화 족은 고조선의
침략이 계속되자 조선을 맥 쪽이다
하고 욕설로
표현했습니다 맥이라는 것은 상상속의
동물로서 멧돼지 같은 크기에 코뿔소의
모양이며 코끼리 모양의 머리를 갖다
붙인듯한 한마디로 여러 짐승을 그
뒤죽박죽 섞 같은 그런 귀한 모습을
한
동물입니다이 고조선이 서쪽에서 다가온
하화족
부딪히면서 그들과 동서 오늘날에 중국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화족 얼마나 고조선을
무서워 했으면 멀쩡한 조선 사람을 맥
이라고까지
했을까요 이에 대해서
사에는 옛적부터 부여 사람들이
요임금 윤이라 하던 개유 지방에
들어가서 그 지방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되지만 직업 없이 수렵 생활을 하면서
가죽옷을 입고 다니니 사람들이 맥이라
하였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생겨난 욕창이
후일 고조 선임을
가리키는 일반 대명사로 변해서 수많은
중국 서적의 조선 예맥 부여 예맥
고구려 예맥
동맥인 같이 그냥 기분에 따라서
함부로 불렀다는 사실도 알아둘
만합니다 자 다시이 그림을
보실까요이
조상인 상고 그러니까 옛날
토기의 몸체는 두껍고 상대적으로
거칠지만 채색 문의에 비해서 훨씬
커서 실용성이
뛰어났습니다 자이
그림은 중국 사태에서 내려받은
것인데요 맥족 하나의 짐승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고조선 사람들이
예의가 바르다는 것을 또한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조선은 진한 조선 번한 조선 마한
조선을 로 구성된 연맹국 있습니다
그중 지난해 수도는 아사달이 있었는데
지금의 하빈로
추정하고 서기전
1285년 백악산 아사달로 선도했으며
지금의 장춘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기전 425년
또다시 오늘날에 심양으로 수도를
옮기니 조선시대에는 이곳을 장이라
했습니다 이때부터 이 땅에 북부여가
독립을 하면서 고조선에 많은 국토
변화가
생겼습니다 단군조선의 남쪽은 마한
조선이라 했는데 그 서울은
백가강단
평양입니다 서기전 2333년 터 단군
단군 조선이 사실상 망한 서기전
238년지 한 번도 마한의 수도는
변한 일이 없습니다
번조선의 수도는 험독 하성 탕지 개평
한성 등으로 다섯 곳을 옮겨
다녔으며이를 오덕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중국 당이 가까워서 중국으로
많은 백성들이 이민 이주를 했고
여기다가 내란 일어난 데다가 후에
강한 한나라가
건설되면서이 연산산맥 삼 오던
고조선은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동아시아를
호령하던 고조선은 요동반도 일부와
평안 남북도로 영토가
축소되었다 다시 신흥 고구려에게
패망한 이후 역사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자 다시 사진을 보실까요고
고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강화도의
고인돌
유명하죠 그리고
황해남도 은천군 정동에 있는
고인돌로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맨 오른쪽에이 그림은 북한에서
발굴한 청동 이인 교회 장식품입니다
고조선 때 오곡이 풍성하게 이어
백성들이 모두가 기뻐하며 도리가 지어
불렀다고 합니다이 도리가
드리 노래라도 하는데요 드리는 노래
치는 노래 가를
말합니다 도가의 가사는 다과
같습니다 하늘에는 아침에
솟아 밝은 빛으로 비추어
빛나고 나라에는 거룩한 분이 계시어
덕의 가르침을 리
치네의라 달
조종으로 많고 만한 사람들마다 가혹한
정치를 보지
못하네 빛나게 밝게 노래하며 길이길이
태평하게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돈 이야기로부터
고조선이 중국을 침략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한양대학교 학대학
명예교수 이종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