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태조 이성계가 아닌 왕이 되기 전 이성계의 진정한 위대함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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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서 도포기
이영입니다네 이번 영상의 주제는 바로
이성계 있니다이 선계가 누구인가요
하면 홉은 아니 열의 열은 아마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박수]
이성계다음왕이 되고 나서가 아니라
왕이 되기 전 조선을 건국하기 전에
고려 시대 군인이었던 시절에 정말
전설적인 활약 상들이 있거든요 정말이
한국 역사에서 바다에 이순신이
있었다면은 육지에서 이성계가 있다고
할 정도로 사실 전적 수만 따져 놓고
비교했을 때 이순신보다 승전 횟수가
이성계가 더 많습니다 단 한 번도
인생에서 패배한 적이 없었던 육지에서
만큼은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성계의
그 전설적인 활약 상대를 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이성계의
가은부동산
계 고조 화지 때부터 함경도에서
정착해 살면서 그 지역이 유지가
되었는데 어 당시 고려은 는 원나라
간섭 기였다 고려의 국토와 자주권을
어느 정도 회복은 해 주었지만 일정
부분의 영토를 빼앗아 갔거든요이
함경도 쪽은 천영이는 고의 2북 그
함경도 쪽은 쌍성 총관부 아는이 간접
통치 기구를 설치를 해서 어 간접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이 쌍성 총관부
수장은 당연히 쌍성 총관이 있고요 그
쌍성 총관은 고려인이 임명 되기는
했으나 왜 우리 일제 강점기 때도
친일파가 있었듯이 원나라 간섭기 때도
친원파 있었거든요 반드시 시 그
친원파 고려인을 쌍성 총관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자 그래서 이성기 전설적인
전투 첫 번째는 쌍성총관부 파란입이
자 쌍성 총관은 원나라가 임명한
고려인이 파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이
쌍성총관부 관할하던 지역 내의 대도호
대유는 이성계의 가문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봤을 때 원나라는
쇠락을 하고 있었고 언젠가 곧 무너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때 고려의
국왕이 누구였냐 야 공민왕이 있습니다
공민왕은이 반원 자주 계약을 진행을
하고 있었고 쌍성 총괄부 탈환을
도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자춘이 어
고려 공민왕에게 사람을 보내서 만약
공민왕이 쌍성총관부를 공격을 하면은
우리가 내부에서 호응을 해주겠다라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쌍성
총관이이자 춘가 그 이성계의 가문과는
경쟁관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연히 공식적으로는 오피셜하게
쌍성총관부를 다스려야 하는게 쌍송
총관이 이제만 백성들에게 더 영향력이
큰 인물은 이상기 아버지 이자춘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이 국민이
쌍성총관부를 공격을 했을 당시에 어
상승 총관부 내부에서 이자춘 이성계
부자가 호을 해 준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국민당은 쌍성총관부를 탈아 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게 이제 이성계가
전면 역사의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되는 사건인데이 쌍성총관부 자체는
어떻게 보면은 이성계가 주인공이었다
그보다는 이성계 아버지였던 이자춘이
주인공이었으면 자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면서 이성계와 이자춘 부자는
이제 공민왕 치하 고려의 군부
장군으로 이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때
부터가 이제 진짜 본격적으로 이성계의
어 활약 상들이 이어지게
되는데요 다음 전쟁은 2차 홍건적이
아닙니다 1361년 이고요 공민학 때
두 차를 걸쳐서 중국에 있던 홍건적이
침공을 해 온 적이 있거든요 이때 2
차가 제일 위험했는데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공민왕은 경상북도 안동으로
아지 피난을 올 정도였습니다 안동에
와 있던 공민왕은 개경을 타락하기
위해서 고려했던 군대를 박박 긁고
모아서 무려 20만 명의 병력을
모으고 개경 탈전 에 보냈는데요이
당시 선봉장에 섰던게 이성기
있습니다이 이성계는이 함경도에서 그
운영하던 자기만의 어떤 그 군벌
기병대가 있었어요 이성계가 이제
기병대를 이끌고 고려 개경을 향해서
최전선에서 나가서 이성계가 말을
타면서 단숨에 병사 1명에서 여덟
명을 해치운 다음에 홀로 말을 타고
고려 성벽을 뛰어넘자 그 뒤를 따르던
이성계의 기병대가 같이 고려 개경의
성벽을 무너뜨리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개경 탈원전 당시 가장 먼저
개경에 입성했던게 이성 와 이성계의
기병대였다 겁니다 이렇게 이성계가
넘어가니까 나머지 고려 정규군이
한꺼번에 투입이 되면서 개경을
탈환하는데 성공을 했던 거죠 자 다음
세 번째 이성계의 전투 활약상
나하추의 침입 나하추의 침입 이거는
2차 홍건적이 난 바로 이듬해
1362년 일어난 일입니다 나하추는
누구냐면요네 몽골인 있니다 그런데
요동 지방의 원나라 정보와는 다소
별도로 존재하던이 요동 지방의 몽골인
군벌이 있습니다이 나하추 과거에 공민
에 쌍성총관부를 탈아 났을 때
도주했던 옛 쌍성총관부 자녀 병력과
연합을 해서 고려를 침공해 옵니다
이거를 막으러 투입된게 바로 이성계
있고요이 나하추의 침입이 이성계가
총사령관이 되어서 나갔던 전투 첫
번째 전투였습니다이 나추 부하들 중에
붉은 꼬리 깃털을 달고 있던 장수가
있었다고 해요이 붉은 꼬리 깃털을 단
장수가 워낙 그 무력에 강했던 나머지
고려 병사들에게는이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하는데 이성계가 그 그
공포의 대상이었던 붉은 깃털을 단
몽골인 장수와 삼국지 전투 1대일
일길 토를 버리게 됩니다 굉장히
위험천만하고 이성계는 낭만까지 했는데
결국은이 이성계의 주특기가 뭐죠 활이
활을 써서 그 붉은 깃털을 단 장수를
사살을 했고 나하추 장군 다섯 명을
추가적으로 보냈는데 이성교 혼자서 그
다섯 명의 몽골인 장수들을 다
해치웠다고 합니다 나하추 깜짝
놀랐다고 해요 자 나하추 이제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서 전면전을
치르기 위해서 몽골인들은 가장 뭘
잘합니까 기병으로 싸우는 야전이 능하
있죠 그래서 나하추는 일부러 자기에게
유리한 지형에서 싸우기 위해서
이성계가 이끌고 있던 고려군을
평야지대로 유인을 합니다 함흥
평야지대로 유인을 해요 이성계는 그게
유인인증센터
승리는 이성계 아 나주를 쳤네요
이성계가 이겼습니다 세상에 몽골인들을
상대로 기병전 이성계 가이긴 겁니다
이때 나하추 이상계의 기병대 운영수
보고 굉장히 감탄했다고 하죠 자네
번째 덕흥군의 침입합니다 이건
1364년 일입니다 지난 영상에서
기황우 편을 다뤘는데 기황우 편을 잘
보신 분이라면 덕흥군이 누군지
기억하실 것 같은데요 국민당이 반원
자주 개혁을 펼치니까 그리고이이이
고려 내 있던 기차를 포함한이
권문세족들이 다 숙청을 했죠 근데
기철이 누구의 오빠였으면 몽골의 황우
있던 기 황우의 오빠였어 공민왕이
반원 자주 개혁을 펼치니까 이 기황우
입장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자기 오빠까지 죽였으니 고려
국왕을 공민왕에 덕풍군 교체하기
위해서 덕훈 군에게 일만의 병력을
주고 고려를 침공하게 했습니다 이때
또 막으러 갔던 장수가 최영 장군이랑
이성계 장군이에요 아 최영 이성계가
둘이 붙었는데 뭐 뭐 말해 뭐
하겠습니까 당연히 고려군이 승리를
했고 덕군 군의 침입을 막아 냈는데
1만 명의 병사를 데리고 와서
살아돌아간 숫자는 기병 17기 밖에
안 됐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이제
최현과 이성계가 거의 뭐 이제 아빠
아들 관계로 지냈다고 하죠 그리고
이제 뭐 여러 차례 이성계가 싸워서
승리한이 전적들을 굉장히 많은데 제가
대표적인 전투들 소개해 드리고 있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거 이성계
전쟁사의 꽃 바로 황산 대처입니다
1380년 일이에요 고려는 고려 후기
때부터 대규모로이 외구의 침공을
받아왔습니다 외구의 침공이 얼마나
잦았던 고려의 지리 고려의 지형에
대해서 고려인들 다도 더 바삭했던게
외구이었다고 해요 외구의 침입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해안과 약탈을
당했다고 생각하는데 의 내륙 지방까지
탈탈 털렸습니다 그 외구 침공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외국이 쳐들어왔던
사건이 1380년에 침입이 있습니다이
대규모로 들어온 외국이 고려 국토를
막 유린을 하면서 다 돌면서 그
지리산 한반도 남부에 있는 지리산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고려 군대는 그 어떤
군대도 외구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해요
이때 마지막으로 투입된게 이성계
있거든요 외구이 이제 남원에 집결에
있다라는 소식을 듣고 이성계가
남원으로 투입이 됩니다 그리고 전투를
버리기 시작하죠 처음에는 이성계의
전술은 늘 똑같거든요 먼저 보병과
보병이 붙으면 그 사이 이성계가 직접
이끄는 기병대가 우회에서 적군의
측면을 공격하는 방식이 이성계의 기병
전술이 똑같이이 보병과 보병에 싸울
때 이성계가 측면을 돌아 가지고
외구의 측면을 계속 공격해 압박을
하면서이 외구의 황산이 산까지 남원
가면 황산이 산이 있거든요이
지리산에서 이어지는 산입니다 그
황산지 몰아내는데 성공합니다 몰라는
냈지만 외국이 황산이 산으로 도주했고
때문에 고지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산 위에 있기 때문에 그 견고한
방어벽을 구축을 하고 항전을 하니까이
마지막 결정타를 고려군이 못 내리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이성계가 이제
부하들에게 산에 올라가서 외구
지나해라고 지시를 내리는데 병사들이
올라가려고 했는데 황산이 너무 험준한
겁니다 너무 가파르고 절벽들 많고
이래서 병사들이 와서 이성계에게 아
장군 못 올라갑니다라고 하자 이성계가
어휴 답답한 것들 이러면서 자기 두
번째 아들이었던 이방과 이게 야 네가
직접 가서 황선 올라가라고 합니다
훗날에 이대왕 정종이 되는 사람이죠
이성기 이방과 올라가려고 했는데
이방과 봐도 이건 아닌 거야 아 이건
도저히 못 올라가 사람이 그래서 다시
내려와 가지고 이성계에게 아버지 이거
아닌 거 같은데요 이거 못 올라가요
절대 그러니까 이성계가 어휴 야 내가
뛸게 하면서 이성계가 직접 최전선에서
말을 타고 그 험준한 황산을 거쳐서
공격해 들어갑니다 길을 뚫어요 그래서
이제 황산에서 다시 한번이 격전이
치러지는데 뭐 이성계가 두 번이나
낙마사고로 당하고 다리에 화살을
입어서 부상을 입을 정도로 엄청난
난전이 펼쳐집니다 자 그때 이성계가이
병사들의 사기가 조금 떨어질 것
같으니까 이렇게 외쳤다고 하죠 나는
적과 싸우다 죽겠다 겁이 나면
도망가라 이러면서이 최이 최고
사령관이 가장 열심히 싸우는데
병사들이 어떻게 겁을 먹거나 사기가
떨어지겠습니다 정말 다 같이 열심히
싸웠고 그때 외부 적정이었던 아지
발도가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성계와 이성계의 의동생이었던
이지란이 두 사람이 화살을 써서 아지
발도를 사살을 했고 적장을 잃은 외구
혼비 백산에서 이리저리 흩어지다
도주하는 과정에서 그 험한 가파른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해요 그래서
전제 에서 싸우다가 죽은 수보다이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은 외구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게 이성계
전쟁사에서 가장 흉금을 전투였던 황산
대첩이 이때 살아남은 외구의 수는
고작 70명이었다고 합니다 황산
대첩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들은요
역사 도포기 팬들은 아시겠지만 우리
코리아 배가 분들 하는 기행 역사가
있었습니다 기행 컨텐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남원 편이 있습니다 그 남원
편에 제가 직접이 황산 대첩
격전지였던 황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예 궁금하신 분들은 어 코리아
배그모드 남원 편을 참고해 주세요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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