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순신의 유독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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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수 도포기 이영입니다
어 저는 역사 속의 인물들을 영웅화
하거나 신화화 하는 것을 썩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역사적 무를 신화하니 영어하면 너무
나와의 그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다
요런 느낌이 좀 있어요 그러면은
역사라는 거는 지금의 나와 좀 거리가
가까워야 되는데 이렇게 영우와
신화에서 멀어지면 다소 역사의 어떤
그 본질이 좀 흐려지지 않나 싶어
가지고 그래 속 좋아하지는 않는데
그래서 저는 항상 역사적인 물에 장단
점을 모두 파악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가 유일하게 비판할 거리를
전혀 못 찾겠을 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바로 이순신 장군
님이죠이 이순신 장군님이 임진한 7년
동안 이순신장군님의 그 해전사
기록들은 뭐 조선왕족 실력도 있고
징비록 있고 또 난중일기 뭐 이런
역사적인 사서들이 꽤 많아 가지고
꽤나 자세하게 전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유독 한가지 뭔가 미스테리
뭔가 의심 적고 뭔가 이해되지 않은
전투가 한번 있었습니다 바로 이순신의
마지막 전쟁이었던 노량
예전이었으면 좀 기억이 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노량 해전에 대해서
간략하게 좀 어 설명드리고 넘어갈게요
1592년에 일어났던 임진 열라는
1998년에이 도토미 히데요시가
죽음으로써 전쟁이 끝이납니다 도토미
히데 시가 죽으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적이었던 도쿠가와이가
일본의 덴노를 찾아가서 덴노를
설득해서 지금 당장 조선에 있는 모든
일본군 철수시키자는 설득을 했고 어
조선에 있던 모든 일본 군에게 철수
명령이 내려집니다이 당시 그 일본군은
한반도 그 조선 남해안에 각자 이제
외성을 썼고 거기서 수상전을 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철수 명령이
떨어지니까 다들 외성이 나와서 일본
본국으로 귀국을 하기 시작했죠 단 한
장군 빼고요 누구였느냐 바로 일본군
장수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죠
바로 고니시 유키 나가라는
장수였습니다 어 임지는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는 그 1군
사령관이었다 당시에는 2군
사령관이었던 사실상 임진하이 고니시
유키 나가에 의해서 뭔가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입니다 자 근데 그 당시 그
고니시 유키 나가가 어디 있었냐면
순천에 있었습니다 순천 뭐 순천이
이렇게 있으면은 순천 해안가
생각하시면 여기 이제 서울 외성을
쌓고 있었어요이 순천 분들이나 순천
여행하신 분들은 알겠지만 여기에 순천
예교 이이라고 있습니다 예교 예교
그이 뭐냐면은 고니 씨가 인지란
당시에 싸웠던 외성 있니다 여기에
이제 이제 그 예교 성에서 이게
있었는데 철수 지시가 떨어지니까
돌아가야 되잖아요 자 그 고시는 못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은 우리
이순신장군이 끄는 조선 수군과 명나라
제독 진린 제독이 끄는 명나라 수군
조명 연합 수군이 여기서 다
차단시키고 있었어요 그니까 바더로 못
나오는 거예요 지금 얘네가 받고 있어
가지고 그래서 아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해가지고 일단 고니시 유키
나가가 영화에서도 나오는 건데 그
명나라 제독이었던 진린 제독에게
뇌물을 주고 잠깐이 틈을 만든 사이에
근처에 있던 다른 일본군 장수들에게
구원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이 사천에
있었던 인근 사천에서 있었던 그
심하지 요시로 그리고 경상남도 고성에
있었던 타치바나 문의 시계 그리고
남해에 있었던 소 요시토 씨에게
구원을 와 달라라는 메시지를 전달을
했고이 고니시를 구원을 하러 곳곳에서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렇게 자 그러면 무슨 문제가
생기냐이 예교을 차단하고 있던 조명
연합 수군이 포위가 되는 역으로
포위되는이 형국이 나타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사실상 전면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이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여기가 순천 받다고 이쯤에 이제 남의
섬이 있거든요 대충 그리겠습니다이
남의사 있었습니다 뭐 이렇게 있고이
일본군에 오는 거예요 자 그래서 조명
연합 수군 이순신은 여기 그대로
차단하고 있다가는 포위된다 다 빠져
이래서 타 이렇게 빠집니다 빠져요이
남해와이 순천 사이에이 해협에 매복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매복을 하고
있다가이 지원 오는 일본군을 매복해서
공격하는게 노량 해전이 있고 이쪽이
해협이 이제 노량 해협 그리고 여기가
관음포 아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노량
해협과 관음포 ES 벌어졌던이
고니시를 구원하러 오는 일본군과 웠던
전투가 바로 노량 해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 매복을 하고 있다가
새벽쯤에이 해협을 지나가고 있던
시마즈 시로를 포함한 일본 수근의
급습을 합니다 조명 연합 수근이 어
새벽부터 시작을 해서 이제 해가 동틀
때까지 싸웠던 전투가 이제 노량
회전인요 자 그런데 제가 그림을
이렇게 그리긴 했는데 실제로가 보면은
여기 해협이 되게 좁습니다 좁다
보니까 일본분 입장에서는 그 물량을
제대로이 물량 공세를 제대로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곳입니다네
이순신 장군의 특기죠 그리고 일단은
그 조선 명나라 일본 중에서 화포의
화력은 명나라가 실로 압도적이었고
그래서이 해협에서 매복을 당한 일본분
입장에서는 그냥 일방적으로
털렸습니다네 일방적으로 털렸어요
그래서 전투가 끝났을 무렵에는 일본군
수군 배가 한 200척 정도 손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순신장군의
압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순신
정군 님이 여기 이제 매복을 해
가지고이 노량 협과 관음포 싸고 있는
사이에 예교 3에 있던 권니시는
무사히 탈출을 하기는 합니다네 이틈에
도망치기는 쳐요 자 그러면은 일본측
배는 20여척이 침몰이 됐고 그러면
우리 조명 연합수 측 피해는 어느
정도 됐을까요 일단 전사자 전사자
수는 1천명이 넘지 않았고요 그
침몰이 된 그 피해는 어 기록마다
조금 다르기는 하는데 일반적으로 구남
다섯척 내외 정도였다고 합니다 일본군
200여 척에 우리네 다섯척 밖에 안
되니까 정말 우리나라이 그 우리 조명
연합 수군의 압도적인 승 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어마어마한 기념비적인
승리이기는 했지만 그 이순신장군의
이전의 전투들의 비하면 그 이전의
전투들 비교를 해 보면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꽤 큰 전투입니다 그 이전에는
이순신 장군님의 그 조선수군의 피해가
굉장히
경미했다 전사자 수가 죽고 어 그리고
구남이 다섯척 정도 파괴됐다는 거는
이순신 정모님 치고는 꽤 큰 피해인데
그리고 그 전사자 천여명 중에서는
누구도 있었습니까 이순신 장군도
있었죠 그리고이 이순신 장군 군의
죽음이 워낙 극적이다 보니까 이순신
장군의 죽음만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뭐이 영남이라는 이월량 이라든지 뭐
여러 그 고급 지휘관들이 꽤나 많이
죽은 전사한 전투가 노량 예전이었으면
이순신장군을 포함한 조명남 수군이 그
이전의 전투들의 비해서 훨씬 더
강경하게 밀어붙였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전선에 있던 지휘관들도 어
전사할만큼 그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였다는
건데 자 노량 해전은 그 이전에
이순신 장군의 해전들과 약간 양상이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냐면 그 이전에는
그 이순신 장군의이 조선수군이
재해권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이었어요
하지만 노량 해저는 안 싸워도 되는
전투였습니다 그냥 이순신장군이 빠지게
주기만 하면은 끝나는 전투였고 조선
조정에서도 굳이 나가서 싸우려 하지
말아라고 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은 그것을 거부를 했고 계속
싸우고 나는 후퇴하는 일본군을 선별을
할 것이다 해서 싸운게 노량 해전이
있고 그러니까 노량 저는이 재해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가 아니라 도망가는
적들을 끝까지 추격해 가지고 없애
버리려는 일종의 선물전이었던 겁니다
자 그래서 정말 강경하게 밀어붙이기는
했는데 왜 그렇게까지 좀 무리를 했던
걸까요 왜 그런 지휘관들조차 전사할
정도로 강하게 밀어붙일 정도로 어떻게
보면은 이순신 정원에서 썼던 모든
전투들 중에서 가장 안해도 되는
전투였던 그런 가장 안 해도 되는
전투에서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다는게
이게 이제 제가 말씀드린 이순신
장군의 약간 미스테리다 뭔가 이순신
장군 스님스럽지 않다라는 느낌이 저는
조금
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측 일부
학자들은이 노량 회전이 이미 전의를
성실하고 도주하는 일본군을
이순신장군이 너무 과하게
밀어붙였다라고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개자식들 지들이 한짓은 생각 안 하고
그런데 그럼 이순 신군이 왜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돌격했다 대한
이유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게 바로
이순신 장군이 전쟁에 나가기 전부터
이미 스스로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는 설이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은 노량
회전에서 노량 해전은 사실상 어쨌든
임진 대란이 끝나는 전투였고 때문에
노량 회전이 끝난다는 것은 임진
대란이 끝난다는 뜻이었고 이때 만약에
이순신장군이 살아남았다 면은 조선의
왕이었던 선조가 이순신을 가만히
듣겠습니까 전쟁 도중이었다 와중에도
이순신 장군을 시기하고 질투해 가지고
백기 종군 시켰던 사람인데 전쟁이
끝나면은 그 이순신 장군을 질투한
선조가 이순신을 감 놔둘리 없고 그럴
바야 내가 정치적으로 희생 당할 바야
군인으로서 싸우다 죽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던 전투가 노량 회전이
있기 때문에 노량 회전 전투 당시
이순신 정원이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설이 가장 잘 알려져
있기는 합니다 멋있죠 멋있는데
실제로도 이순신 정에 살았더라면 어
선조가 가만 안 뒀을 겁니다 그런데
이거는 더
이순신장군스럽지 않아요 그지 않나요
이수신 장군은 자기가 죽길 때 자기가
죽은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자기 죽음 알리지
말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죽으려고 하고 나섰다 이게 조금
이해가 안 가지 않나요 그리고
이순신의 목적이 뭡니까 이순신의
목적은이 지원군을 공격하는게 아니에요
이순신의 목표는 여기 예교 성 있던
고니 시였습니다 그 고니시를 지원 못
오게끔 막았던 전투가 노량 해전인
고니시를 앞두고 일부러 죽으려고 했다
그리고 동서고금 역사 속에 그 유능한
많은 황코 하는 명장들 중에서 자기
정서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지 돌격을
하고 그리고 최고 사령관이 죽는다라는
그게이 전투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뻔히 아는데도 일부러
죽으려고 나서는 명장들은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알아요 본인이 전투
최고 사령관인 걸 전투 중에 최고
사령관이 죽으면이 전장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줍니다 부정적으로 그거를
감수하면서까지 나는 내가 영광스럽게
죽고 싶기 때문에 너희 병사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어 최고 사령관인
나도 죽어도 된다 이거는 어 이순신
장군님을 조금 평할 수 있는 내용의
관점일 수도 있고요 이순신 장원은
절대 그렇게 경솔한 사람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그렇게까지 이순신 장군님이 노량
회전에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강하게
밀어 붙였는지 대해서는 뭔가
미스테리인 거 같고요 만약에 이순신
정은님이 살아서 어 난중일기를 계속
쓰셨더라 그은 그 당시 노량 회전
전투에 나갈 때 어떤 자세와 어떤
각오로 임했는지 남기셨습니다 텐데
그런게 안 남아 있다는게 좀 아쉽고
그럼에도 노량 해전은이 7년이라는
임진 하란의 종지부를 짓는 가장
완벽한 전투였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