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제 교수의 발해사 강좌 15강 | 발해 남경을 밝힌다.

우리역사바로알기
147 팔로워
본 강의의 내용은 (사)우리역사바로알기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본 동영상은 국민들의 소중한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후원계좌 : KB국민 361-01-0024-405 (사)우리역사바로알기
#우리역사바로알기 #오순제 #고구려 #당 #대진국 #발해 #남경 #연해주
예 안녕하세요 우순 재겠습니다
오늘은 발해의 남경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 드렸습니다 이제 한반도 북부로
보고 있습니다 아 지금 어디로 보고
있냐면 북청 우리 북청물장수 그러죠
항정 남도 북청군 하오리 있는 청애
토성이 성이 있습니다 지금 어떻게
생겼냐면 이렇게 생겼어요
이건 성에서 본 그림이고 사진이죠
요걸 이제 이렇게 작도 했을 때 요게
이제
토성인이 지금 훼손된 겁니다 이렇게
원래는 이렇게 큰 거죠
이렇게 그래서 둘레가 지금 보시면은
아 2.1km 정도음 있고 그다음에
남대천이 흐릅니다 그 회자 이렇게
보면은 요게
남대천이여 이렇게 하천이 이렇게
흐르고 있습니다 어 그리고 이제 건물
여기서 이제 건물지와 우물터가 나왔고
바래 시대 이제 뭐 기와장이 그가
치라가 이런 여러 가지 갑옷 화살촉
마구 술의 부송 뭐 이런 여러 가지가
나왔어요 그래서 이제 현재요
크기는
중경이었던 서고성 보다는 좀 작고 어
오동성 맨 처음에 이제 있었던
거기보다 좀 큽니다 입니다 그래서
이제 요걸 남경 남부로 하고 있고요
주변에는 산성이 이렇게 세 개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기를
호위하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요게 이제 청애 토성의 그
토성 있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이제
화살촉 그다음에 요거는 이제 창이라
그가 요런 칼 요런 것들이 이제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 나온
이제 빛 그 뒷고 이렇게 비녀 이렇게
꼬지 하는 거 그다음에 런
병 그리고 이제 여기서 제일 중요한게
뭐냐 이런 구들이 나왔어요 구들
그래서
온돌이 쌍 골이죠 이렇게 두두 줄기가
요렇게 들어가고데 우물이
나왔는데이 운문이 좀
특이합니다이 가운데가 이렇게 볼록
했다가 요렇게 내려가죠 요것도 볼록
했다 이렇게 내려 여기는 이제 보면은
요렇게 둥글고 여기는 네모난 그리고
맨 끝에는 이렇게 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요 산성에 대해서 이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용전리
산성은
둘레가
730 그다음에 이제 안공 산성은 아
여기서 둘레가
352 정도가 됩니다 그 위치가
어디냐면 요게 청의 터인데 요게
남대천이 이렇게 요게 동해 바다입니다
그 여기 이제 방곡 토성 용정리 산성
그다음에 여기 이제 고분군이 여기 거
산성 렇게 이제 세 개가 이렇게
호일을 하고 있습니다 쭉 둘러서
그다음에 여기 이제 고분군이 아래
위에 이제 있고 소쿠리 평리여
그다음에 여기 절터가 하나 있습니다
이렇게 그러니까 도시 구조가 이렇게
완벽하게 나오는 거죠 그래서 이제
여기를 남경으로 아 보고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요거는 이제
용전리 산성 아까 말 첫 번째
말씀드렸던요 요기죠요 남대천에 바로
남쪽에 있는 요성을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아 이렇게 평면도는 요런
식으로 돼 있습니다 이렇게 산 위에
있죠이 요겁니다이 성벽에 아 이제
성벽을 사진을 찍은 거죠 예 요것이
있고 그다음에
이제 거산 거산은 어느 쪽에 있냐면
여기죠 예 북쪽에서 내려오는 세력을
막는 아 요게
거산인력 있습니다 그 그 밑에는 또
평리 고분군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디
있냐면 여기 보시시게
[음악]
거산이에스 있습니다 그다음에 요게 산
위에 이렇게 둘러쳐져 있고 아
양쪽으로 협축 축이라는 거 이게
뭐냐면 양쪽다 이렇게 벽처럼 럼
이렇게 올라가는 걸 갖다가 협축이라
그러고 이렇게 양면 축조 방법이죠
그다음에 이제 굽돌이 있습니다 굽돌이
뭐 이렇게 돌아가는데 렇게 계단식으로
이렇게 돼 있거든 그게 이제 뭐냐면
고구려 산성의 특징입니다 그리고 전체
둘레가 아 600m 그다음에 이제
건물지와 우물터가 발견이 됐다 요거
이제 이렇게 산이 위에 있어요
이렇게데 위에가 편합니다 이렇게
그래서 여기 이제 돼지가 있고 그
위에가 꽤 크기 때문에 이런 형태로
이렇게 성을 싼 싼 거죠 그니까
산꼭대기 다 그 이제 성벽의
모습입니다
요거는 자 그다음에 평리 고분군
그래서 요거는 거산 그러니까 지금요
산성에 여기죠요 거산의 바로 밑에
평지에 있는요 고분군에 대해서 이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거는요 평에 있는데 이게 이제 한
700기가 있습니다 굉장히 엄청나게
분포돼 있죠 여기에 이제 뭐냐면
고구리 시대 것도 나오고 있어요 뭐냐
적석총이 나오죠 바레시대 거는 석실
봉토분 석실은 뭐냐 돌로 싸서 이렇게
고분을 만든 그런 형태 우리나라에서
많이 볼 수 있죠 요거는 700기
중에서 한 50여 정도가 아 바레
시대 석실 봉토분 되어 있고 요거는
뭐냐면 이 묘실이 있고이 시신을 놓는
그다음에 그 시신 들어가는 길 길이
있겠죠 그걸 연도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 길이 이렇게 있는 단실 이렇게
하나 하나만 돼 있는 다른 거는 어떤
옆에도 있고 뒤에도 있고 뭐 이런
것들이 있는데 그것이 없고 딱 하나로
돼 있는 이렇게 그다음에 여기서 이제
도자기나 아 자 토기 같은게 나왔어요
근데 요거는 어디 거랑 비슷하냐
육정산 고분군 그니까 최초의 그
발레가 세워졌을 때 고분군 들이죠
그게 육정산 고분군 있데 도화에
있습니다 그거하고 아 비슷하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요게 이제 고분의
배치도입니다 여기 보시면 여기 까만
까맣게 색칠되어 있는 것은 발굴을 한
무덤이에요 그근데 나머지는 이제
발굴하지 않은 이렇게 무덤들이 이렇게
쭉 분포되어 있어요 그래서 발굴한 것
중에서 렇게
무덤도 있고 이렇게 좀 큰 석실
형태도 있고 아 이런 형태들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오메리
고분군이 있습니다 오메리 고분군은
어느쪽이냐면 여기입니다요 오메이 절터
있는데 쪽에 아 고분군이 또 있습니다
그게 이제 오메 고분인
요거는 신군입니다
그래서
신포군 지고 머리에 있는데 한 열기
정도가 있어요 근데 여기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아까 얘기한
석실 봉토분 그다음에 석각 아까
보셨죠 요게 석각이 런 요런 형태로
돼 있는 또 요렇게 돼 있는 석실 런
것들이 있고 그다음에 골도 있습니다
화장해 갖고 지금하고 똑같아요 이게
뼈 항아리에 담아서 이렇게 안치한
그런 것들은 납골묘 런 세 가지
형태가 있고 아 그중에 이제 하나
요거 발굴한 거를 이렇게 도면으로
이렇게 돼 있는데 요게 이제 저기
석실이 그다음에 여기 연도 이렇게
들어가는 문이죠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절터를 보겠습니다이
오메리 절터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이 오메리 절터가 있 데는
신포시 오메리 폐산 이라는데 이제
432m 기술계 있어요 그리고 이제
그 절터 규모는 남북으로 100m
동서로 5배 근데 특이한게 뭐냐
하면은 고구려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그래서 그걸
뭐라 하냐 1탑 3 금당식당 그래서
요거는 절터의
그이 기단이 2중으로 돼 있어요
이렇게 2층으로 그래서 밑에 단은 한
변이 이게 정사각형인데 12.2 밑에
위에 거는 10.5
요거는 뭐냐면 사각형 목탑 전 가운데
있습니다 이렇게 절 가운데 그래서
어떻게 생겼냐면 요겁니다
요런 목탑 터가 네한 목탑 터가 절의
정 가운데이 지금 이게
절이거나 그니까 목탑을 중심으로
있었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뭐가
나왔냐 금인데 거기 글씨가 새겨져
있어요데 금동불 금동 화로 금동
연화문 장식 토기 기와 전돌 이런
것들이 목탑 터에서 쭉 나왔어요
그리고 탑 뒤에 뭐가 있느냐 중금이
있습니다 가운데 근데 그거를 중심으로
해서 양쪽에 건물이 또 있어요 그게
뭐냐면 동금당 서금 이렇게 있고 그
서금 뒤에는 길다란 그 건물지가
있는데 그거는 이제 강당 아 이 있다
그다음에 이제 높은 봉우리에는 정자
터가 있다 그런데 이걸 보시면은
고구려의 가람 배치도는 이렇게 탑을
중심으로 해서 이렇게 금당이라는게
뭐냐하면 지금으로 얘기하면 대웅전이
그래서 대웅전이 하나 둘 세 개가
이렇게 배치돼 있는 거를 아 얘기할
수 있 그 고구려의 양식을 따랐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서 나온게 뭐냐면 이런 금동 판이
나왔다 그랬죠 여기 글씨가 쭉 새겨져
있습니다 예 근데 여기에 금덩 판에
뭐라 그러냐면 천선이라는 글씨 글자가
새겨져 있고 모화 배연 요게 이제
저기인
거죠요 연어인데 이거를 아 양원왕이나
이제 영양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이 유적에서 보면은 아래층은
고구려 층이 나오고 그 위에 거는
바래가 나오는 그래서 이제 어 그
바레 쪽에서는 부처 머리가이 출토가
돼 있어요 그래서 요거는 이제 뭐
온돌 구조 이렇게 쌍 골이죠 두 개가
이렇게 있는 그리고 이제 투구도
나왔고 요건 갑옷 편입니다 철갑어
이런 것들이 여기서 나왔다 그다음에
이제요 여기에 딸린 건물이 있습니다
요게 요건데 요거를 이제 작도한
거예요 여기서 나온게 뭐냐면 이런
연암은 종류들이 굉장히 많죠 런
것들이 나오고 그다음에 이런 토기들이
나와
게 부처 머리입니다 부처 머리가 이제
출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아주 중요한 지금 그 북한지역에서
나온 유적 중에서 아마 제일 중요한
유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다음에 이제이 경이라는 데가 왜
중요하냐 자 여기 보면 신당서 뭐라고
써 있냐면 발에 대해서 동경용원부
은 우리 배우셨죠 거기는 이제
훈춘이라 그랬죠 거기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다 근데 일본에 가는 배를 어디서
탄다 그랬어요 러시아에 아 우리
크라스키노 있는 그래서 거기를 염주
그러잖아요 거기서 배를 띄워요 지금은
이제 포시에트 고는 한구가 있는데
그다음에 이제 남경 남해 부는 실라
도이다 신라로 가는 길이다 여기
이렇게 돼 있거든요 그고 서경은
당나라로 가는 길이고 장년부는 영주도
이것도 당나라 가는 길이고 부여부
거으로 가는 길이다 이렇게 설명이 돼
있어요 근데
삼국사기에 이제 인용되어 있는
가담이라는 사람 당나라 사람인데 고군
군지하는 책을 언급하면서 뭐라하냐
책성 성부는 동경이 훈춘 와 신라의
천정궁 지금 뭐 건이라 그
군까지 여기이 몇 개가 있느냐
39개가 있었다 그니까 신라하대 거죠
예 근데 고구려 당시에 신라국 경계가
대부분 어디냐면 하예요 근데 그
당시에는
영천으로 비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쭉 그
신라하대 그 경계를 보면은 이하로
설명이 돼 있거든요 근데 대부분은
어디로 정하면 용훈 용흥강 아 비정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이 지역이 어디냐면
원산 바로 그 경 그 주의에요 그래서
당나라가 뭐라 그러냐면 대동강에서
원산만 아지 그래서 요렇게 대부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시면은 지도로 한번 보겠습니다 요게
동경에 요게 훈춘이고 지금 우리가
언급하고 있는 남경이 어디냐 여기에
북청이에요 그리고 요게 니아 여기
원산 요렇게 이제 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까지
어디냐면요 원산에서 우리 평양요 요요
대동강요 지역이이 위로는 바래
땅이었다이 밑으로는 아 신라 땅이다
이렇게 이제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
그래서 이제 신라하대 아구의 관계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721년
성도 요 하슬라 하슬라 지금
강릉입니다 하슬라에서 장정 2천명을
징발해서 국경에 북적 국경에 장성을
쐈다 그러니까 발해를 막은 거죠
그리고 이제 여기 뭐냐면 733회
당나라의 욕으로 바의 남쪽을 공격하게
했어요 그래서 이제 신라가 치로
올라갔는데 눈이 내려 갖고 어 폭소
내려서 그냥 되돌아왔습니다 실패한
거죠
735에 당나라가
강의 이남을 신라에게 주었다 뭐 중계
하니 자기가 지킬 수가 없죠 그래서
이제 대동강 이남이 신라의 땅이
그니까 대동강에서 원산만 아지 이렇게
이제 대부분 언급을 하고 있어요
그다음에요 신라 땅이 된 후에
748회 왕이 북변 감찰하고 대곡성당
14개의 구연을 설치했다 이게 지금
현재 어디냐면 황해도 지역입니다
황해도
그리고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762년 오고 휴암 한성 장세 지성
덕곡 등의 여섯 개의 성을 쌓고
태수를 두었다 이게 어디냐 지금
황해도 서군 봉산군 재령군 수환
그다음에 해주 곡산 이렇게거든요
요거를 그려 보면은 어떻게 되냐면
여기입니다
여기 곡산 수한 서흥 공산 재령 해주
그러니까요 대동강에서 예성강 사이
요기를 여기에다가 성을 싼 거예요
그러니까 일로 들어올까 봐 왜
그러냐면 이쪽은 외통에 길이 딱
하나요 근데 여기는 여러 길로 들어올
수가 있어요 여기가 이제 굉장히 위험
지역이죠 그래서 여기다가 신라가 성을
쌀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다음에 여기 보면은 한
여기 782에 패강진 두었던 패강진
여러 군데로 보고 있는데 아 황해도
아 지금 평산에 태백 산성으로 대부분
보고 있어요 근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790 하고
82년 이때 북국 여기서 북극은 이건
삼국사기 얘기입니다 발해를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통의 신라라는
말을 지금까지 쭉 써 왔는데
통일신라가 아니고 삼국사기에서 남북국
시대로 보고 있더라 이거예요 왜
발해를 북극이 얘기하 그러니까 발에다
사신을 보낸 거예요 몇 번 두 번
이렇게 아 보냈고 그다음에 이제
86년에는 아 여기 이제 태수한테
시켜서 아 3리에 그러니까 만 명을
동원해 3리의 폐강 장성을 쌓았다
그러니까 아까 그 황해도 지역에다
싸운 거예요 왜 그러냐면 밀고
내려올까 봐 이때가 뭐냐면 그 발해가
가장 팽창했던 때죠 선왕 때 그래서
그 후에 이제 뭐 후백제 그다음
후고구려 뭐 이제 광건 이렇게 이제
후상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자
여기에 한번 이제 설명을 다 해
드렸고 아 아까 말씀드렸듯이
790 812 두 번 북국의 발에
사신을 보냈어요
그러면 여기에서 여기까지는 굉장히
평화스럽다 거예요 그럼 이때가 언제냐
문항 때예요 그다음에 문항 다음에
성왕 강황 정왕 이렇게 네명의 왕
시기에는 신라와 바래가
오가면서 굉장히 평화롭게 있었다
이때이지 아까 말씀드렸던 여기
여기서부터여에서부터 이렇게 쭉 이렇게
해서 여기 경을
이렇게 신라 땅으로 사신이 왔다 갔다
했다는 거죠 예 그래서 여기 39개의
역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거를 이제
중국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나중에 3리의
폐강 장성을 쐈다 그랬죠 그거는 왜
그러냐면이 발레의 선왕이 가장
강성했던
년에 바 왕자
봉가 당나라에 가서 이제 외국 사신을
이렇게 세워요 줄을
세우는데 신라가 앞에 있으니까 그
황제한테 당나라 황제한테 뭐라냐
우리가 먼저 먼저
쓰겠습니다 신라보다 우리를 우대해
달라는 거죠 근데
거절당해 그니까 이제 원이가 안되겠다
그 황 한테 그 이렇게 표문을 씁니다
그 올리는 글 그게 바로 뭐냐면 사
불허 북극 거상 표라는 거예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동문선이라는 책에
수록이 돼 있어요 최치원이 뭐라고
거짓말을 했느냐
안가리라 속말 말갈이 고구려가
멸망당한 후에 영주에서 죄를 짓고
먼곳 오루 하로 달라나 발해를
세웠습니다이 새빨간
거짓말이거나이 가리라는
사람이 달아나서 세웠다 아니잖아요
우리가 알고 있잖아요 대중상 대조영이
그 말가이 도와줬어요 근데 그 사람이
이름은 안가이
아니에요 그런데다 또 죄를 졌대요
그러면 대중상 대중이가 죄인이야
아니거든요 장수였고 고글이
그러니까 이건 새빨 거짓말을 한
거예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면 발해를 당나라에서 그러니까
지금까지 고대에는 뭐 신선의 나라요
군자의 나라요 우리를
칭송했던 그 후로 칭송한 것은 바래
밖에 없어요 왜 해동 성국이 했어요
그 자존심강한
당나라가 뭐라 그러냐면 바다의 동쪽에
대단한 나라다 이거예요
이렇게 칭송한 나라는 발에 한 개밖에
없습니다
고구려한정식 아 잡아 당겨서 아주
이제 그 끌어내린 거죠 그런데 그거를
그대로 받아들인게 누구냐 구당서
신당서 그래서 졸지에 발해가
고구려에서 말갈 어떻게 되치기 당한
거예요 이것이 삼국 사기까지 이어지
고려 때까지 이어지면서 우리가 발해를
빼버린 거예요 삼국사기에서 그래
그래서 이게 보면은 더군다나 여진족이
세운 저기 후회가 누구냐 만주족이
그든 이걸 세운게 뭐냐면 청나라에
청나라 강의제안 원류라는 책을 썼는데
자기네는 어디서 왔느냐 여기에 보세요
숙신 음무 그리고는 발의 말가이라
그랬어요 그리고 여진 그다음에 만주족
그럼 여기서 뭐가 빠져 있죠 고구려가
빠져 있습니다 이게 어떻냐면 수시는
고조선에 속했고 음료는 부여에
속했어요 그럼 말가 어디에 속했네
고구하라
그다음이
여진이 이렇게 넘어가는데 여기서
고구려를 싹 없애고 자기네 쪽에다 딱
갖아 붙인 거예요 그럼 그러면서
만주가 졸지에 날아가 버린 거죠
그리고 발에도 날아가고 그게 그걸
이용해 먹은게 뭐냐 동북 공정이에요
이게 거의 굳어져 있어요 지금
현재로는 자 그래서 지금 보면은 거의
만주 자체를 우리가 잃어버린 상태가
되 버린 거죠 이렇게 역사가 왜곡되기
시작한 거를 여러분들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시간에는
남경에 대한 얘기 그래서 남경의 이런
오메리 절터 그다음에 이제 제일
중요한 것은 북청 저북이 청의 토성을
중심으로 해서 이러한 도시 구조가
나오고 있다는 거 이런게 이제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고이 청의 토성이 이러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는 요게 이제 야
인공위성에서 본 모습이죠 요게 이제
남대천이 그래서 아 바레이 남경이
어떤 역할을 했고 어디에 있었는지
그걸 갖다 이제 설명을 아 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