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60대 사업가 엄마가 아들 위해 매일 했던 일!(함서경 대표, 17만 인플루언서)[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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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 인플루언서이자 40년 이상 성공한 여성사업가로 활동중인 함서경 대표를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으로 만났습니다. 성공한 60대 사업가 엄마가 아들 위해 매일 했던 일을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00:00 주제 및 전문가 소개
00:50 40년 현역 여성사업가
02:12 사업가 아버지의 영향
05:33 사업 시작과 계기
09:17 무역으로 이어진 활동
10:53 아들과 인스타그램 같이 한 이유
13:44 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
15:49 40년 현역 사업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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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조선일보 교육섹션 조선에듀 편집장
교육전문 유튜브 채널 '교육대기자TV' 운영자
'대한민국 교육키워드7', '자녀교육 절대공식' 등 4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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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 #부자 #아들
옛날에는 부모님이 창업을 사업가
집안의 사업가 아들이 자녀들이
나온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나
전국민이 창업을 할 수 있는 그런
디지털 시대가 되었다라는 걸 아들한테
얘기를 했고 항상 지금도 어떤 생각
하냐면은 제 아들이 24살인데 우리
아들보다 내가 디지털의 어떤 지식이
서야겠다 그럼 왜
그러실까요 대기자 t 안녕하세요 은배
부모에게 자녀 교육 경험담을 들어보는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시간입니다
오늘은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과
어머님을 만나러 청담동에 나와
있는데요 패션계에서는 꽤나 알려진
분이십니다 지금 만나러
가시죠 안녕하세요 40년 동안 패션
사업을 하고 있는 함서 경입니다
지금도 굉장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40여년 사업가로
어떤 인생이었어네 바쁘게 달려온
인생이죠네 그러니까 꽉 차게 사른
삶인 거 같아네 그 시대에 여자
혼자서 사업을 한다는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어요 시대적으로
여성이 대학 졸업하면 결혼을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네 저처럼 이렇게
나와서 사업을 한다는 건 어떤 도전이
있었죠 저항도 있었고 이러는데 저는
이제 아버님이 아버님이 예 굉장히
오픈
마인드이다 아버님이 아버님이 이제
강릉에서 목재소를 하셨어요 근데 자기
자기개발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한 20대들의 마인드를
가지셨어요 어 그러셨어요 앞서
나가셨네요 굉장히 앞서 나가셔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모범생이 공부를 잘하는 딸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이
왜라는 말을 한 번도 지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항상 이렇게 언니는 미스
강원이고 여동생은 장학생이 아
예쁘면서 공부도 잘하는 근데 저는
사실은 칭찬할 구성이 없었거든요 근데
아버님이 늘
너는 너무 예쁘다 너무 스마트하다
너는 큰 사업가가 될 것 같다 늘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 당시에는
그런 말씀 하시는 아버님이 많지
않았을 것 같은데 본 적이 없어요 저
그렇죠 어떤면 때문에 사업가로 성장할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건
잘 모르는데 항상 그렇게 야단을
맞아본 기억이 없어요 학교에서 제가
잘못하고 와도 저를 야단 치는게
아니라 학교에 가서 그게 그래 야단칠
일이냐 이럴 정도로 해서 지나서
보니까 네 제가 어떻게 그 어려운
그런 일을 도전하고 살았는가음 그걸
이제 돌아보니 아 자존감이 내가
높았구나 그 뿌리는 아버님의 멘트였다
아버님이 그게 실력으로 이어졌던 거
같아요 사업에 첫 출발은 언제 셨을요
어 2살에 강릉에서 어 이제 옷장사를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뭐 여성이
나와서 직업을 갖는다는게 어려운
상황이었죠 장사를 했는데 23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어 가정이
굉장히 어려워졌고 그때 제가 이제
가장 언니 오빠가 계셨지만 어 가장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겠다 세워야 되겠다
그것이 아마 아버님이 저에게 준 어떤
그런 것이 아닌가 메시지가 아닌가
이런 어 책임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다 봐요 대표님께서 그렇죠
아버님이 왜 이렇게 칭찬할 구석이
없는 그 자녀를 이렇게 많이 격려하고
그 하셨나 생각해 보니 나한테 그
역할을 주기 위해서 그러지 않았는가
그래서 제가 거기서 이제 장사를 여러
개를 했거든 여기서 하는 것마다
그래도 잘
되고어요네 워낙 수환이 있으시니까
근데 아무래도 이제 그 당시에 이제
옷 입는 것도 좋아하고 여성이 할 수
있는 그 직종이 이제 옷가게 그래서
두 평짜리 옷가게로 시작했는데 밥을
먹고 살았어요 그래서 길가는 사람이
지나가다 보면은 새 가게가 생기면 아
역시 너였구나 이럴 정도로 아 대표님
거였구나 그렇게 하다가 아 큰 돈을
벌어야겠다 27살에 500만 원을
갖고 서울을 옵니다 큰 물에서 활동을
해야 되겠다 싶으셨나 봐요 예
아무래도 서울에 가야지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사람이
꿈이라는게 알고 본만큼 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아까 정식적으로
21살에 장사를 시작했다는데 친구가
조선호텔 거기 미용사 있어요 그때
제가 고속 버스를 타고 만나러
왔었거든요 그때 제가 그 밑에 반도
조선 아
케이트라나다 하는 그 의료 그거를
제가 발견하게 됐 거죠 아
그러면서 제가 이제 그걸 보따리로 어
이렇게 이민 가방에 사서 갔다가 이제
파는 일을 원래는 했었고요 어
강릉에서 파신 거예요 서울에서 사서
제가 그 호텔에서 그 커피숍에서 그
당시에 여성 기업인으로서 굉장히
유명하신 분이 계셨어요 근데 그분이
이제 외국인들하고 미팅하는 거를
봤어요 보면서 제가 이제 그렇게 좋은
호텔이 강에서 본 적도 없고 또
멋있는 이렇게 수을 입고 외국인들하고
이렇게 비 미팅을 하는 모습을 여성이
하는 모습이 저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당시에 전형적인
커리어 후면을 보고 롤모델로
삼으셨나이다 그때 제 내리에 굉장히
크게 박혔어요 연고는 없으셨을
거잖아요 서울에 연고는 없었는데
이모님이 이제 자녀 이모 우리
사촌들이 서울로 유약을 하고 있었어요
이모가 이제 의사를 갖고 직업이
있으시니까 그래서 구종 한양 아파트에
예 를 보냈는데 제가 이제 거기로
방이 남으니까 그 첫 출발이 중요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지나서 보니까
내가 첫 번째 깃발을 어디서 꽂느냐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왜냐면
우리가 미국의 이민간 사람들이 이런
말이 있잖아요네 그 공항에 누가
데리로 나오느냐음 택시 드라이버가
데리고 나오면 그다음에 그 사람이
택시를 하고 있대요 세탁수 하는
친구가 데리로 나오면 세탁소를 하고
있다는 거야 그런 말이 있듯이 저희
출발이 깃발이 구정 한양에 꽂혔기
때문 저의 기준은 거기가 돼버린
거예요 그럼 여기서 어떻게든 더
승부를 걸어야 되겠다 예 그 제가
본게 그 당시는 이제 갤러리아
백화점이 한양 슈퍼 있어요 아
그랬어요 예 그게 몇 년 거의 3
40년 된 얘기니까 아 86년도
그때는 우리 강릉에서 제레 시장에
가서 장을 볼 때거든요 네네 그래서
여기서는 백화점에서 시자 두 부를
사더라 그래서 그런 모습이 굉장히
신기했고 어 전혀 내가 생각하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구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거를 그런 거는 이제
보면서
아 내가 더 큰 꿈을 부자들의 어떤
그런 어 그 사람들이 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던 거죠 그
원동력이 사업에 이어지던 거 같아요
그렇죠 그 당시는 아쿠 정동이 다른
쇼핑 에리아가 없었어요 그때는 명동이
가장 양장점에서 옷 맞춰 입던
시절이니까 제가 명동으로 잡았던
이유는 저희 언니가 이제 패션 국제
복장하고
옛날에 그런 거 이제 영화배우를
옛날에 꿈을 꿔서 서울에 언니가
왔었기 때문에 시니까 미스 강이니
명동에서 이제 언니가 가게를 했었어요
옷가게를 어릴 때 한번 봤던 기억이
있어서 아 명동이 최고다 최고에서
계속 깃발을
꽂으셨군요 이렇게 성 성장하고 성공
굉장히 중요하죠 거기 명동의 사보
요틀 1층 거기에 두 평짜리
가게를 그 돈으로 도저히 얻을 수
없는데 집주인은 이제 한 달 정도
쫓아 다니면서 월세로 얻어서 나중에
한 1년 후에 그거를 사는 그 골리
골리 권을 사는 거죠 결국은 이제
그걸 이제
사사하다가 아 내가이 소매를 소매를
엄청 돈을 벌었든 그때
벌었는데네 더 큰 돈을 벌려면 도매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그때
저한테 조언을 해 주셨던 분들이 악구
정동이 시작이 되니까 그쪽에 가서
가게를 해라 부자가 거기 많으니까
이런 조언을 했어요 근데 제가 그때
동대문 시장으로 갔거든요
왜냐면 은 우리나라 전체를 알 수
있고 악구 정동에 가게를 열으면 구종
손님에 대해서만 알 수 있는 거예요
아 그럼 더 큰 시장에서 더 많은
소비자들 만나야 되겠다 그렇죠
우리나라 전체 시장을 상대로 해야겠다
예 그래서 제가 동대문 제일평화
시장이라고 역시 이제 동대문에 가서도
줄세워 놓고 왜 그게 가능했나 그은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가 수입이
자유화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제
국내 옷밖에 없었던 시절이에요 근데
제가 수출하고 남은 재고를 사다
보니까 그 당시에 우리가 지금 알
만한 그런 브랜드 든요 그러니까 뭐
연예인들 차도 그 옷밖에 살 데가
없는 거예요 살 데가 거기밖에
없으니까 아 그 몫을 잡으셨네요 없
그렇죠 그러니까 결국은 제가 을인데
갑이 돼서 늘 팔란 거예요 줄 세워
놓고 거기 있으면서 제가 이제 다시
처음으로 신사동에 회사를 차려 갖고
나와요 잘됐는데 왜냐면은 거기를 이제
직원한테 놔두고 저는 이런 생각한
거죠 똑같은 물건이라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라는
상품을 파는데 동대문에서
8,000원을 받는다 그러면 제가 뭐
허시는 무역에서 사무실에 인테리어가
잘 돼 있 데다가 딱 갖다 놓으면은
16,000원 받을 수 있거든요 아
브랜딩을 하셨네요 예 예 그다음에
계속 승승 장고 하셨네요 그때부터
이제 제가 무역이 거 일본 무역부
시작을 했죠 지금도 하시죠 지금도
하고 있어요 예 무역은 또 어떤
트렌드를 읽으셨을 그때는 이제 그
우리나라가 거의 미국 브랜드가
한국에서을 해서 만들어 갈 때거든요
중국 시장이 그때는 열리지 않았어요
근데 어느 날 자고 나니까 중국의
시작이 된 거야 미국 바이어나 다른
나라 바이어가 중국으로 이동하는
시점이 된 거예네 그럼 다시 말해서
제가 그 물건을 살 데가 없는 거죠
그래서 이제 그 바이어를 쫓아서 제가
홍콩을 갑니다 왜 홍콩을 가냐면 어
그때는 이제 금융 인프라가 제대로 안
돼 있어 갖고 홍콩이 중개무역 하는
되잖아요 세계 금융이네 이제 싱가폴과
허브 허 허브 다이렉트로 하기가 좀
힘든
시대네네 그래서 제가 그 바이어를
쫓아서 간 거죠 물건을 찾지 영어를
잘하셨을까요 사실 저는 제가 뭘
잘하는 거는 중요하지 않았어요네 내가
그것을 가야겠다는 거 제가 사실
무역을 시작할 때는 일본 무역부
시작했는데 그때도 일본 말을 몰랐고
홍콩을 갈 때도 사실은 땡큐 한
마디만 알고 왔어요 제가 생각하는
언어라는 거는 우리가 말로 하는
언어도 있지만 눈 빛과 몸짓과이 모든
것이 언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간절함과 간절함 그래서 그걸 갖고
이제 사실 어렵죠 굉장히 열악한
상황이었는데 어쨌든 제가 가야 할
어떤 목표나 그 끝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은 하나도 어려움이라고
생각 안 하고 항상 굉장히 멋있는
모습 나의 미래를 항상 그리면서
왜냐면 저는 될 때까지 할 거니까요
지금도 굉장히 다양한 도전을
이어오시고 계시잖아요 사실 저는
대표님을 인스타 릴수 먼저 예 그
60 인스스 잘하는
있을까이도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어요
릴스 같은 경우 제가 원래는 비라
해서 기업대 기업 제가 이탈리에서
머플러를 수입해서 국내 패션 브랜드에
제가 납품을 했었 일을 한 30년
했거든요 네네 근데 이제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여러 가지 상황이 많이
바뀌고 빠르게 변하더라고요 그걸 제가
직감을 했고네 그러면서 제가 퍼널
브랜딩이 굉장히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제가 또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날처럼 뭐 이렇게 컨테이너 베이스로
많은 물량을 수입하고 이런게 굉장히
힘든 분이에요 그래서 아 내가
다이렉트로 소비하지데 팔아도 그 정도
내가 이익은 가져갈 수 있겠구나 내가
잘 브랜딩이 됐을 경우에 그러면 제가
이제 브랜딩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뭐
snss 하는데 그중에서 인스타가
가장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예 그래서
제가 그 2년 전에네 그걸 이제
시작을 했고 옛날에는 부모님이 창업을
사업가 집안의 사업가 아들이 자녀들이
나오는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누구나
전 국민이 창업을 할 수 있는 그런
디지털 시대가 되었다라는 걸 아들한테
얘기를 했고 아들이 어떤 리스크가
없이 무자본 창업을 할 수 있는
거는네네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내가 무엇을 팔 건지 어떤 그런 것을
SNS 통해서 자기가 그걸 잘할 수
있다는 거를 브랜딩이 돼 와야 된다
그래서 제가 먼저 하고 제가
13,000 팔로워까지
먼저 했을 때 아들이 창업을 하겠다고
해니까 제가 그러면 인스타를 시작을
해라 왜 시작을 해야 되는지 이해를
잘 못 했어요 아들이 처음에는 네네
그래서 대표님이 알려 주셨어요
알려줬죠 어떻게 알려줬다면
12만원으로네 어 한 10억 이상을
하는 사람음 또 간호사 출신이면서
22만원으로 80억을 하는 사람
만나게 했죠네네 만나게 하니까 우리
아들이 깜짝 놀린 거야 이런 이론
세상이 있구나 혼자서 인스타 하나를
잘 키우면 네가 비즈니스를 하는데
어떤 거도 네가 할 수 1인 창업으로
굉장히 진짜 100억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노래했다 네네 그래서 이제
엄마 말만 하면 믿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걸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한 거죠음 현명하시네요 예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아 이게
가능하구나 해서 자기가 자기 계정
살림 20살에는 살림 계정 살림이란
거는 가구도 팔 수 있고 여러
가지겠죠 식품도 되고 다 되잖아 네네
저는 이제 무역하는 사람이고 우리
아들이 이제 무역을 하길 바라기
때문에 해 소싱을 해갖고 해에서 이제
수입을 해서네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졌잖아요 그래서 제가
살림이라 개정을 하는게 좋겠다 이래서
아이가 잘했어요 근데 대부분 현실에서
반대 아아 대표님 엄 아들이 SNS
하고 부모님을 전혀 모르는 세상인데
오히려 반 되셨네요 예 저 같은
경우는 항상 지금도 어떤 생각
하냐면은 제 아들이 24살인데 우리
아들보다 내 가 디지털의 어떤 지식이
앞서야겠다 그럼 왜
그러실까요 우리가 제 주변을 보면은
참 오래전부터 부모하고 자녀 가는
소통이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나이 갭이 굉장히
크잖아요 당연히 내 자녀고 엄마라
해서 소통이 된다고 생각면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자녀를 잘
이해한다는 거 응응 이해를 해야만
공감해 줄 수 있고 소통이 가능하다
생각하거든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같이
독서 모임도 일요일마다 쭉 같이
나타내고 같은 책을 읽고 네네 그런
주제로 대화도 하고음 그리고 제가
배운 어떤 뭐 디지털 앱이 있으면 거
사용해 보는 굉장히 좋다 그런 것도
서로가 이제 쉐어하고음 이러다 보니까
공통 분모가 굉장히 많았죠 서로가
대화할 수 있는 네네 대화할 수 있는
거리를 내가 공부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누기도 하고 그렇죠 근데 요즘에 어
자녀들이 거의 다 디지털에
익숙하니까이 부분에서 내가 좀 공부를
하고 먼저 해 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신 거 같아요 그렇죠 저 같은
경우는 사실은 사업도 40년 했지만
네 한 우리가 최고 경영자 과장이라는
대학원 거기도 열군데 이상을 나왔고
배움을 끈 이제 이제 멈추지 않았던
거예 그것이 저희 성장을 가져오지
않았나 그리고 이제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난 다음에는 뭐 부모 교육이라
그가 대화법이 아든 저도 이제 엄마가
처음 되어 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서나 부모로부터 엄마가 되는
자격증을 갖고 부모가 된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은 무면허 운전
수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배워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엄마라는
사람이 그래서 제가 그거 한 10년
정도 지금도 제가 시간 날 때마다
유튜브를 통해서 아동 심리라는 부모
교육의 전문가라는 이런 분들을 이제
찾아 갖고네 늘 보고 있어요 저희
채널 자주 보시겠죠 예 어떤
엄마였어요 그 유초등 뭐 중학교 뭐
이런 과정에서 저 같은 경우는 제가
원래 이렇게 모범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23살부터
철이 들고 나서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문제는 어느 시점에
내가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잘 살아야
겠다라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있는 거
같아요 그때부터 배워도 늦지
않더라고요 예 그래서 그걸 제가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 아이한테 어떤
세상적인 잣대로 너는 이러니까 이래야
된다 그걸 강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 뭐 소위 말하는 학습에 대해서
관여하거나 전혀 없어어 아 그러신 거
같아요 근데 딱 한가지는 네 냐면
제가 사업하면서 가장 도움을 받았던게
어 신문을
읽는다던가네 또 책을 제가 학창
시절에는 책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근데
사업을 하다 보니까 아 내가 뭘
배워야겠구나 성공한 사업가의 스토리
그런 책을부터 시작을 했죠 제가 근데
결국은 이제 지금은 보니까 내가
공부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이걸 이제 알게 된 거예요 생존 교육
그거를 굉장히 저는 중요하게 생각해서
아이한테도
어 책만큼은 좋아하는 아이로 그래서
그 환경을 만들어 준 거 같아요 제가
드라마를 재밌는 걸 보면서 너
들어가서 공부해라 숙제해라 이거는 좀
아닌 거 같아 갖고 월드컵 때 이제
이제 우리 남편이 이제 출장 갔다
오더니 리모컨이 어디 갔냐고 그래서
아니 막 못 찾으니까 아니 이걸 빨리
봐야 된는데 갖다 버리라고 습관적으로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진짜 갖다
버렸거든요 리모컨을 아니 그 TV
TV 그러니까 기다고
생각하고 서 이제 그때부터 책을
집으로 거실은 책으로 거은 책으로
환경 자체를 그래서 제가 사업 했기
때문에 도움이 아주머니가 같이
사셨는데 밥은 안 해도 아주 아이가
세내 살할 때 책을 읽어 달라 할 때
그거는 읽어 줘야
된다 대학을 바로 선택하기보다는
사업에 대해서 한다는 부분을 응원해
주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네네 일단
사실 그것도 보통의 부모님이라면네
대한공 가라 응원하긴 좀
어려운 수 있 어머님이 직접 그렇게
하셔서 예 됐잖아요 자기가 겪은
경험이다 보니까 예 그런 거에 대해서
전혀 어떤 어 반대를 하지 않으시고
반대는 없었던 거 같아요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