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ㅣ청파교회 김기석 목사ㅣ잘잘법 1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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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하나님 #기도 #김기석 #이해
[음악]
[박수]
[음악]
[박수]
[음악]
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 내
인생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안 되고
또 우리 가족에게도 불행한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질문을 하죠
하나님 제게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제게 왜 이러세요 묻는 경우가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고가
갖고 있는 어떤 안타까움 안스러움
이런 것들이 분명히 느껴져요 왜냐면
내가 애착하고 있는 사람들 내가
애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보면은 사람은 누구나
다
아파하지 그리고 할 수만 있다고
한다면 그의 고통을 더어 주고 싶고
또 더 할 수 있다고 한다면은 그
고통을 내가 짊어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까지 하기도 합니다
근데 그 사랑의 범주는 언제나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죠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나의 삶의 문제에 하면은 어떤 대답도
얻기가 어렵습니다 조금 눈을 돌려서
세상을 바라보면은 나만 겪고 있는
고통처럼
보이지만 인류가 편으로고 있는 품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이 세상에
태어나고 성장하다가 병들고 죽고 하는
뭐 소위 얘기하는 생로병사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모두가
겪고 있는 보편적 경험이고 어떤 삶은
조금 빨리이 세상에서 삶이 중단되고
어떤 삶은 조금 더 길게
이어지지만 영원이라고 하는 시간의
관점에서 보자고 한다면은 그 모든
것들이 찰라의 지나지 않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우리의 삶의 기본적
조건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일단 몸을 가진
존재이지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다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몸을
가지고 있지만은 인간이 여타의
동물이나 다른 그 피조 세계와 다른
것은 자기를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차이라면 차이 이겠습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성찰하고 하는
자의식이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의
조건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할 때도
아주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
짐승들은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몸적
삶을 그저 살아갈 겁니다 근데 사람은
그러지 못하죠 그리고 그 몸이
빚어내고 있는 다양한 욕망에 시달리며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아주
위대한
영성가였던 전 카시안이란 분이
계신데요 카시아누스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마는 그 카시아누스 하는 분이
인간의 악덕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 기본적인 조건이 뭐냐 인간이 몸을
가진 존재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몸의 욕구가 인간을 괴롭혀요 그 첫
번째는 뭘까요 탐식 뭔가 먹어야
하지요 맛있는 거 먹고 싶은 탐식의
욕구가 있습니다 두 번째 욕구는
뭐냐면 탐색 성적인 욕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세 번째 욕구가 물
물건에 대한 욕심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게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인
것이죠 이게 없는 사람은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과도하며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겠지만은 그런데
금방 얘기했던
탐식 탐색 탐 그 세 가지의 기본적인
욕구가 좌절될 때 인간은 분노합니다
이게네 번째
악덕이라는
분노해요 내가 이렇게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누구누구
때문일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자기
속에서 원인을 찾기보다는 타자에게
원인을 찾는 경우가 제법 많이
이게네 번째 덕인데 그런데 그 앞에서
얘기했던 그 세 가지의 욕구가 내게
충족되지 않고 좌절될 때 아 그
마음이 분노가 나를 향하게 될 때
인간은 두 가지의 악덕을 드러낸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 낙담하는 겁니다 아 이게 할 수
없지 뭐 이게 내 삶이지 이게 내
팔자인가 봐 그죠 그 하고 있는 그
마음은 창조적인 관계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누군가의 우정이라 누군가의
충고 이런 것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영혼의 우울 같은 것들이
담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다음에 또 나타나는 것이 뭐냐면
나태함 있니다 그죠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어떡하겠어라고 말하면서
나태함에 빠지는 것 이게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가 자기를 향할 때
나타나는 두 가지 악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들이 다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될 때 아까 얘기했던 탐식
탐색 물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만큼 성취되었을 때 그때도
악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것이 뭐냐
첫째는
자만심입니다 아 내가 이럴 자격이
있지 내가 능력이 있으니까 내가 이걸
누릴 만한 자격이 있는 이게 이제
자만심이 그리고 또 다른 악덕은
뭐냐면은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자기와 남을 비교해
가면서 자기가 우월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여 주고
싶어 하는것 이것이 이제 오만함 혹은
교만함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이 모든 인간의 악덕 카시안의
얘기하고 있는 그 여덟 개의 덕이라고
하는 것은 다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부터 됩니다 그러니까 몸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기독교
전통은
탐식이라고 하는 거 아 그것을 뭘
가지고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냐면
그것은 그릇된 의지이기 때문에 순명을
통해서 아 악덕을 미덕으로 바꿔야
된다고 얘기합니다 내 의지를 자꾸만
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 키는
경험인 것이죠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길
바라게 될 때 인간 비로서 왜곡된
의지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라고
하는 거고 탐 세계에 대한 악덕을
이제 미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거기선
정결한 삶이죠 나를 깨끗하게 닦아내는
정결한 삶 그러니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존재로 나를 깨끗하게 닦아내기
위한 끝없는 노력을 해 가는 것이
탐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탐 물 끝없는 욕망 이것을 이겨내기
위한 것은 뭐냐 가난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유하기
원하지만 그 부유함이 어떻게 보면은
우상숭배가 되고 있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러니까 기독교 선통이
세 가지가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만들 거라고 얘기해서 뭐 가난 정결함
순명 이런 것들을 끝없이 강조하고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라고
하는게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불행한 일들을
겪기도 합니다 내 인생에 불행한 일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보다 힘 있는 어떤 존재의
힘을 길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들이 많은
신들이 있죠 신이 있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습니다 고대 세계 그
사람들은 신과 인간의 차이를 어디에서
보냐 신은 불사의 존재이죠 인간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 유한한
존재입니다 신들은 죽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들 사이에 갈등도 있지만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로마 신화나 이런
보면은 신들은 윤리적 체가 아닙니다
아주 부도덕 때도 있고 폭력적일 때도
있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신들이
언제라도 내 삶에 개입해서 뭔가
해꼬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신의 화를 두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지 그 신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 신은 나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신의 힘을
의지
나의 삶의 불행의 조건들을 없애는
삶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나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런 종교들은 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윤리적인
삶을 살든지 정결한 삶을 살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성서의 종교는 아주 매우
분명하게 우리에게 그런 삶을 요구하죠
내 삶이 하나님앞에
야 그 른 삶이라는 것은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하고 이웃에 대한 깊은
배려가 우리 속에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지요 이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얘기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내적 동기
속에는 다른 종교들이 고대세계
종교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
화를 내지 말아 달라고 얘기한다
하나님이 내게 마치 빚을 진 것처럼
나게 마땅히 잘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제법 많이 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버릇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나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사 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보다는 그것은 이제 신앙의 뭐랄까
도입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 신앙이
성숙해지면 결국 어떤 자리에 가게
되냐면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속에
모셔드리는 자리로 나가게 되죠 이게
신앙의 성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근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다 파악할 수 없는 것이 이제
분명합니다 왜냐면은 그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시거든요
는 내 성 이스라엘이 고통받는 것을
다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해서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내가 나의 손발이
되어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기합니다
모는 망설 수밖에 없죠
그들이
가를면 해 그때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밝히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근데 나는 스스로
있다는 말은 매우 철학적 론처럼
보입니다 그죠 존재론적인 진실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존재로
오해하도록 만든 번역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원래 성서의 언어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간단하게는 고자 하는 나다는 말입니다
그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존재론적으로
드러낸 분이 아니라 사건 속에서
당신을 드러내는 분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실체로서
하나님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을 계시해 주시는 분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만큼만
하나님을 이해하도록 되 있습니다
그러니까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기 그런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사건을 시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죠 그 인간의 좁은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거는 당연한 인간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그 질문하신 분이 겪었던 그
고통은 정말 마나 고통스러웠을까는 걸
이해하지만 정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찾기가
어렵고 우리가 알 수 없음을 남겨두는
것도 신앙의 일부인데 그런 사건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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