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영토권, 대마도의 영토권 저자 신용우 | 문화영토론 12강 | 고구려 건국 연도의 기원전 217년 정립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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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신종호 문화영 토론
12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제 고구려와
부요 건국신화를 분석해서 고구려 건국
연도가 과연 27년이 맞나 한번
분석해 보자 그래서 부역 동부여
북부여 고구려 건국 연도를 이렇게
분석해 건국신화를 분석해 봤어요 자
그러면 만약에 고구려 건국 년도가
기원 37년이라는
기원전 108년의 신조선 영역을 한
나라가 점령해야 돼요 그렇죠 왜 그
지금 통솔해 얘기하듯이 현도군 낙랑군
진번군 임군 여기
있으니까 그럼 한 나라가 뭐 여기
있고 여기는 뭐 다른 나라가
지배하면서 여기 있다고 얘기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까 뭐 그 그 거기
한 나라가
지배했다면 피지의 민족인 우리
한민족이 북동 부여가 마음대로 위치를
받고 그리고 꿈에 나타났다고 동부가
천도를 막 로다 이사를가 그다음에
고주은 또 고구려를 건국해 이게
남미나라 땅에서 가능한
거예요 우리가 그냥 동부여의 위치
아까 만 갈사 아 가사원 갖다가
신채호는 훈춘이라 그래요 하변에서
훈춘을 간거다 그 통설 그래는
강릉이라는 근데 이제 강릉은 갈산
아가 강릉으로 왜곡됐다 그래 갖고
훈춘이라는 소이 맞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북부여의 헐슨 골수가
고구려의 첫 수도는 의무 산이라고
삼국사기에 딱 명기가 돼서
나와요 그러면 여기가 의무려산
이거든요 여기가 의무려산 있데 이게
그럼 북야 그럼여 북부가 여기
있었다는 거거든 여기가 하빈이 여기가
훈춘이고 여기가 저 환인 우리가 흔히
고려가 여의
건국했다고이 그 식민사학자들이
얘기하던 환인이 여기서 건국했다고
근데 그게 아니다 왜 그게 아니냐
상석에 딱 나와요 고구려 초수는 의무
여산이 그리고 또이 얘기는 다음에 그
고구려 평양 얘기할 때 한번 또
나와요 그때 이제 확실하게 해
드릴게요 어쨌든간에 나중 의무 료
산이야 상사에 나와 그럼 여기서
여기로 가는데 여기 부여
땅인데 이렇게 천도로 하고 또 왕국을
세우고 동부에서 고주몽이 동부에서
이렇게 와 갖고 여기다 고를 세우고
이게 가능한가
남미나라 땅에서 힘든 얘기죠 그렇죠
그러면 두 번째는 이제 만주에 그런
부여가 존재했다 부여가 뭐 좌우지간
어쨌든 간에서 부여는 좀 일찍
생겼으니까 그러면 신조선을 부여가
멸망시킨 것으로 해서 부여와 한
나라의 전쟁에서 한 나라가 승리했으나
아니면 협의해 한사군이 한반도에
설치되어야 되는 거예요 부여는 진짜
108년 이전에 생긴 거라 그러면
만약에 37년에 생 고구려가 37년에
생긴 거라면
부여는 기원전 59년에 생겨야 되는
거예요 이게 따지면 그리고 부여는
그리고 만약에 임술 그 임술년
59년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리
고고가 217년이면 기 239명이
되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그
북부여가 아니라 그냥 부여가 훨씬
전에 어떻게
생겼다라고 가정을 하더라도 뭐 그런
가정 자체가 사실 해서 안 되는
거지만 맞 이론에 맞지 않는 거지만
어쨌든간에 거기 있었으면 한 나라가
한 사군을 여기에다
설치하려면 부요가 여기 있으면이
이거를 싸우던가 아니면 협약을 맺어서
여기다 이렇게 만들어야 될 거 아니야
근데 아직까지 역사책이 어떤
역사책에도 그런 기록이 없어 부여가
한 문제랑 전쟁 있다는게 그다음에 세
번째 한나라는 기원전 2006년에
생겨서 기호는 220년에 명
망해요 그런데 한사군은 그중에서
현도군
군치 옮기면서 지멸 에다가 44년에
고로에 병합될 때까지 지속되고 낭군은
313년 존속되었다
그 생각을 해 보세요 여기 있는
한나라는 멸망을 했는데 고로가 여기
있는데 그리고 313년 이때면 고기로
잘 나갈
때거든요 그냥 뒀어 고기로 막
충주까지 내려오고 했었잖아요 그죠
이게 가능한
얘기니까 가능한 얘기가 아니죠 313
은 중국 5 16국 시대예요 그 이게
한나라 멸망후 93년이에요 그러면 5
16국 시대니까 낙랑군이 그 중에
하나 깨워 갖고 있었던 거는 가능해요
중국 쪽에서 그러니까 그 한
사고는이 요아 동쪽이 아니라 저쪽
어디에 있었을 거예요 요아 서쪽
어디에 그렇죠 고구려 건국년도 기원전
217년 재정 뜨면 만주는 신조선
영역으로 북동 부여와 고구려 건국
등이 같은
한민족간에 소길 어차피 소길이 뭉쳐
있던 나라라 그랬잖아요 고조이라는
나라 자체가 같은 한민족 간의 그
소국들 간의 흑망 성세 이어지는 거죠
그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예요 지금
거기를 한나라가 지배하고 있으면
그거는 피지배국 무슨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독립운동하는 거라면 이해가
되죠 근데 나라가 공국 하는 건데
그게 가능한 겁니까 그거는 어려운
얘기죠 그러니까 이거는 고구려
공공연대 기원 기원전 2017년으로
보는게 옳은
거예요 그리고 전에 전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요와 훨씬 저쪽에
여기에 번조선 있었던 거죠 그 여기에
의무 려산은 여기쯤 있을 거예요
그니까 의무려산 이제 의무려산 그
고려가 도을 한 거죠 요와 바로
옆에 근데 그 연도는 기전 37년
아니라 기원전 21년이라는
겁니다 기전 217년 려 건국대를
잡고 나면요 기원전 108년 경의
고구려 영역을 알기 위해서는 180년
전부 이렇게 삼국사기 기록되 있는
그거를 180년 정도 소급을 해야
돼요 무조건 소급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고 그려 태조대왕 때까지라 다섯
왕이라 하랬으니까 태대 때까지
점차적으로 소급을 하는 거 점차적으로
점차적으로 이렇게 소급을 하다 보면
초기 역사는 특히 추모가 같은 시대로
공급된 부여 의 대소왕이나 그 아우
오이 뭐 대소왕 아우 또 오이 마리
협보 이거는 이제 고구려 그 고주몽이
같이 와서 고구려를 세운
사람들이잖아요 그다음에 부분노 개유
이런 초기 고구 그 추모왕이나 뭐
유리왕 시대의 장군들에 대한 기사들은
180년 앞당겨 봐야죠 그죠 어느왕
때 몇년이 늦춰진게
불확실하지아요 그러니까 초기
왕들과 인적 관계나 또 친구 관계
또은 뭐 공신 관계 이런 게에 있는
또는 원수 관계 대소왕이나 그 뭐
대소왕 저 동생 또 같이 고구 오이
마리 협보 또 부부나 개유 이런
장군들 이런 것들 이런 장군들이 있는
거는 180년 당겨 볼 필요가 있는
거죠 이런 거를 다 이렇게 유추해 볼
때 대무 신앙 때까지가 기원전
1080년 이전 기록을 보는게 무방한
거예요 그런 걸 다 따질 때 아마
그래서 반재 신체 선생님이 대무 신앙
때 한무제 9년 전쟁을 했다고
그러셨는지 몰라요 그리고 그게
사실인지도
몰라요 아직까지는 제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이 자리에서 대무 신앙 때
한나라 한 문제랑 9년 전쟁을
했습니다라고 말씀을 못 드리지만 단재
신체 선생님이 이미 이걸
유추하고 단재 선생님 190년 전으로
알았으니까 고려 건국이 기원전
190년 그니까 2년하고 20년
차이니까 대충 대신 때까 때쯤이라고
맞추신 거죠 어쨌든간에 삼국사기의
고구려 첫 혼술 고성이 졸본 성의
위치가 환원이 아니라 유아서적 의무
료 상과의 일대라고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렇다면 고구려 엄사면 요하나 그
근처의 강이 아닐까 즉 고주몽이
열심히 도망가는데 뒤에서 계속
쫓아와서 고주몽 죽이려 그랬던게 잡힐
뻔한 강이 그 거기 쯤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들어가요 근데 제가
뭐 요것도 확실하게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제가 아직 그 연구 중인데
그래서 제가 이제 잠시 말씀드리면
저는 이렇게 확실한 걸 연구하기
위해서 막 공부를 하다 보면 먼저
소설로 쓸게 생각이나요 그래서 사실은
요런 소설을 지금 쓰고 있어요 이런
소설을 지금 쓰고는 있는데 옛날
같으면 제가 벌써 거의 반 이상 거의
뭐 완성을 했을 텐데 요즘에 체력이
잘 안 되네요
어쨌든간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역사책에 분명히 삼국사기의 고의 첫도
골성 즉 환이 아니라 의무과 의원일
때라고 딱 나와 있어요 그리고
동명왕은 행인과 부조를 정보 했다 그
그 고주몽이 암론 유혹을 확보하고
백산 부흥과 두만강 하류에 동까지
영토를 확장했다고 돼 있어요 그리고
유리왕 11년에 부분가 180년 겨
봐야 된다 그랬죠 부 으로 신나무
한강 유역의 선적을 복속하고 양국을
점령했다 그랬어요 신나무 한강은 저
요와 저 상류에 마 여기 어디
잠깐만요 제가 예 신화물 행강 여기
있잖아요 신화물 행강 여기거든요 그
부분노 시켜서 여기까지 의료 사이니까
뭐 충분히 가능한 거죠 2대 유리왕
때니까 신화물 행을 점령 신화물 행강
유역까지 점령했다 그랬어요 그다음에
대웅 신앙은 부여왕 대소를 죽임으로써
부여를 실질적으로 복수했어요
그리고 개마고원 근처에 개마국을
점령하고 함경 대안의 다국가 평안도
7리의 남국 정했습니다 낭군이 평양
근처에 있었다는 거는 바로이 체리가
세운 낙랑국 말하는 거예요 이거를 그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낙랑국 요거 갖다
군으로 바꾼 것뿐이에요 그거를 좋다고
지금도 평양에 낭군이 썼다고 그런
학자들이 있는게 참 조금 좀 서러운
거죠 어쨌든간에 부여 경계는 서와
일대와 북쪽 경계는 관까지 그든
그니까 부여를 실적으로 점령했으니
고구려 관계를 거까지 받아도 되지만
부 고구려 부여는 이미 같이 가고
있었으니까 고구려의 경계가 서쪽은
서유화 일대 그리고 북쪽은 흥까지
아까 시라무 행강 보셨죠 까지라는
걸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거예요 그럼
고려 년도가 이렇게 됐으면 한상
위치가 어떻게 되겠어요 고려 공대가
기원전 217년 재령 되면서 기원전
108년 당시 영역이 한반도와 만주의
유화 서쪽까지 그 만주 북쪽 부여의
영역을 제외하고 만주 대부분 고려가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정의하면 되는
겁니다 이거는 이미 제가 전전
시간인가 전전전 시간에 말씀드렸잖아요
고구려 현이에서 고구려가 성장한게
아니라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현이 생긴 거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현이 생긴
거라는 거 보면서 중국
기록에 우거 유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그리고 거기에다가 한
사군을 설치했다 즉 유만 조선에 한
사군을 설치한 것이다라는 기록을 제가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유아
서쪽 유만 조선이 번 조선이 유아
서쪽에 여기 있었던 거잖아요 그렇죠
여기에 있었던
거니까 당연히 유아 서쪽에 있었던게
맞죠 그까 중국 기록 우리 기록도
아니 중국 기록이 자기네가 써놓 거야
이거 다 자기네가 쏘는 기록에
의해서도 그 고구려 한사군의
위치는 요화 서쪽이 되는
거죠 그럼 만주의
북쪽하늘 침략한 한무제가 기원전
10년에 한상을 한반도 평에 설치하기
위해서는 고구려 전쟁을 하든지 아니면
화등의 방법으로 양해를 구해야 됐는데
역사서 어디에도 아직까지는 그런 기이
발견 않아요 아까 말씀드렸던 대로
조선 상고에서 단지 신채호 선생님께서
한무제가 대무 신앙과 9년 전쟁을
했다 그래요 그런데도 결국은 그 9년
전쟁 끝에 대무 신앙이 한문제를
물리쳤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단지
신님의 기록이 사실일지라도 한무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했으므로 고구려
영영 대부에 진입하지 못한 거죠
그렇게 되면 한사군의 위치에 위치는
고려가 만주를 전유하고 있었으므로
유와 서쪽 로 비정되는 것이 다 당한
거예요 즉 바로 이건데 김종석
박사께서 그 박사 기문에 어떻게 돼
있냐면 그 지면간의 거리를 근거해서
낙양 옛날 한족의 수도주 낙양에서
각각의 한 사까지 거리를 측정하는
수학적 유치 고증 방법을 사용해서
낙랑군의
유치 또 현도군 임동근 진봉근 위치를
다 그 수학적으로 산출했다 믿을 만한
거죠 그러다 보니 남군의 위치는
여기다 임동은 여기다 진군은 여기다
현동은 여기다 아고 다 그리셨어요 그
요와 서쪽이 다 그리고
나나 나나 유역 그리고 요아 서쪽에
요에서 한참 떨어지 여기로 가는게
한상훈 위치는 맞는 거예요 몇 번
말씀드렸지만 한나라는 번조선 즉 유만
조선만 멸망시키고 여기에다가 한상을
설치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의
요화 근처에는 모든
거예요 그리고 그 기록도 제가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 중국 역사책에 있는
기록 고려 공도가 기원 2119년
올바르게 재정립 되면 한사군의 위치는
유아 수적 이런 것이 명확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한족 중국은 만주에
아무런 그 만주 문화에 영향을 못
줬기 때문에 영토 문화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으므로 영토 문화에
의한 문화형 토론에 의해서 만주의 형
토고는 우리 한민족에 귀속되는게 맞는
겁니다 니다 고려 공대 기원전
27년이라고 정립한 가장 큰 의는
만주의 영토 문화에 대한 우리
한민족의 보편적 고유성과 상속성
강조하는
거예요 고려 년도가 기원전
217년이라면 대무 신앙의 업적까지
기원전 108년 이전으로 볼 수
있으므로 종합해서 이제 말씀드리면
기원주 108년 고구려 영토는 만주를
장악하고 생활 터전으로 삼아서 한
나라는 만주에 진입도 못했고 만주의
영토 문화는 우리 한민족의 보편적
고유성과 상속성 지킨 문화가 되는
겁니다
일각에서는 민족 사학자들이 우리
영토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사군 판도를 극구 부인한 것이라고
주장해요 그러면서 한 사고는 우리
한반도 있었다 형양 뭐 여기 있었다
그런데 민족 사학자들이 그래서 우리
영도 순성 강조하기 위해서 그런게
아니에요 한반도는 원나라 때 지배
당했죠 임진란 병자호란 뭐 한일병
30년 이미 영토 순수주의 잃어버린
땅이에요
영토 순수주의 침략당하지 않고
우리끼리의 계속 지켜온 땅 이게 영토
순수 주의를 고집할 수 있는 거지
당정 부 한탄으로 36년동안 일본한테
질질질 개 돼지지 졌는데 무슨 영토
순수 주의예요 병자 한때 또
어땠습니까
병자 때 임금은 강화로 도망가려 다
도망도 못가고 남한 기어들어가 있는
바람에 그 밖에 있던 모든 백성들은
어떻게 됐어요 그 밖에 있던 백성들은
완전히 진짜 말로 입에 다물지 못할
그런 고난을
겪고이 청나라 그 병사들이 약탈 방화
그리고 안 여자 겁탈 뭐 말도
못하잖아요 그런데 무슨 영토 주의를
해요 임지는 무려 7년 동안이에요
금하고 대신 들은 전부 의주로
도망가고 짐싸고 도망갔을 때이 땅을
지킨게 누구예요이 땅 지킨 거
백성들이 그 백성들이 핍박 받아가면서
죽어가면서 목숨걸고 지켜 국토 전체가
피로 들었던 땅 땅이에요 무슨 영토
순수주의 고집하기 위해서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아니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모든 역사를 근거로 모든
문화를 근거로 해서 볼 때 문화가
역사고 역사가 문화고 그 문화가
이루어진 영토가 바로 문화 영토에
의한 영토 권자가 소유해야 할 영토다
제가
말씀드리면서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한 만도는 물론 만주가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거지 그래서 한 사구는 만주 외곽
유아 서쪽에 있었다는 거지 무슨 영토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절게
아니라는 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은 얘기예요 그다음에 고구려 공도가
기원 210으로 정립되면 두 번째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원부터 무너뜨리는
겁니다 동북공정은 고구가 현도군
고구려의 출발에 성장인 것이므로 한족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지만 현도군 설립
110년 전부터 고구려는 존재했어요
기원전
27년이 그리고 고구려 공도가 기원전
2117년이고 기원전 108년의 유아
동쪽 만주의 맹주가 돼서 한나라의
동진을 차단함으로써 만주의 한정
문화가 밟지 못하게 한 겁니다 이거는
제가 그냥 우기는게 아니라 한나라
사람 한족 자신 신들이 적은 삼국지나
한서에 고구려가 있었는데 그걸 없애고
우리가 고구려 현을 만들었다 또
유만이 그 아들 그 우가가 그를
죽이고 그 땅을 우리가 점령해서
우리가 한 사고를 거기다 만들었다
그게 다 유만 조선 그 유아 서쪽
난학 유혹이라는 거를 자기들도 스스로
적고 있잖아요 그런게 그렇게 나와도
영토 순수 주의라 평행에 있었다는
거를 반대한다고 얘기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그러고 있으니까 중국은 현도군
고구려에서 출발해서 고구려가 성장한
거고 그 고구려가 멸망했을 때
대부분의 유문이 고구려 저 한족에
동화됐다 그래서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중국이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하루빨리 고구려 건국년도 기원전
210으로 정립하고 또 실제로 충격서
책에 적혀 있는 그런
기록들을 정립해서 그런 기록들을
가지고
새 정립해서 자 봐라 너네 역사
이렇게 있지 않냐 너네는 고구려가
요에서 너네 동진을 차단함으로써는
요아 동쪽에는 발도 붙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 만주의 문화는
우리 문화고 만주의 영토 문화는 우리
영토 문화고 그 영토 문화는 영토
문화의 문화 주권자가 영토라는
문화영토 해서 그 우리
영토다 그 문화는 한쪽으로부터게
우연히 지나가던 한족들이 거기
정착하면서 전래한 문화가 아니라
우리의 순수한 우리의 영토 문화다
영토 문화 론에 의해 그 영토를
분석해 보자 영토 문화를 그 영토
문화에서 분석해 보니까 자 우리 한
조게 맞지 않냐 그러니까 문화영 문화
주권자가 영토 권자인 문화 영토로
해서 우리 땅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겁니다 몇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중국에는 이미 왜곡된 문화가 판을
치고 있어요 만주에는 괜히 문화형
토론에서 영토 규명한다 그 문화
가지고 그랬다가는 잘못하면 역습
당해요 그러니까 문화영 토론 갖고
논문을 쓰시든 문화영 토론 갖고
강의를 하시든 반드시 영토 문화론
숙지하셔서 영토 문화론 의한 문화영
토론에 의하면 만주는 우리 한민족의
영토라는 얘기를 꼭 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려 공도가 기원 2117년
정립되면 만주의 영토권 물론
동북공정의 화상까지 일거에 정리된다는
걸
말씀드리면서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마치고요 다음
시간에는 만주 수복을 위해서 동공을
필두로한 영도 공정에 대한 체계적인
대항 방안부터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음악]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