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식 강사의 미술로 보는 동양사 강좌 10강 | 고대 미술사로 본 남성성과 여성성

우리역사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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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30. #우리역사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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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바로알기#박선식#미술#동양사#문화사#한민족#고대사#반구대암각화#청동#농경문#서왕모도#남산근
역시 이것은 고려의 화가들이 그린 유명한 수월관음도인데요.
이거는 길이가 엄청나게 길죠.
10m 이상으로 제가 알고 있는데
그래서 보관 자체가 굉장히 어렵고요.
근데 이러한 엄청난 대작을 일본이 가져갔어요.
현재 일본에 있어요.
참 안타까운데
이 수월관음도의 머리를 보면 역시 이렇게 엄청난 꽃다발로 장식이 되어 있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경신사라고 하는 신사에 이게 있는데
제가 흥미를 느끼는 것이
일본의 신사에 불교적인 물건뿐만 아니라
소위 일본의 신도, 신교
이러한 관련된 물건들이 지속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의 신교의 특징이 뭐냐면
우리 수은 최지우 선생과 그분의 조상인 고은 최치원 선생께서 말씀하신
유불선 3교 융합이 신도에도 똑같이 적용되더라고요.
다만 그들은 유불선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유불신, 선, 신선선자를 귀신신자로 바꾸거나
유승도, 불자를 스님승자, 중승자를 써가지고
유승, 끝에 선을 또 길도자, 도교할 때 도자
유승도, 유불신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이건 제가 일본의 신도 자료, 함으로 된 자료를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말하는 유불선 융합이나
일본에서 말하는 유승도 또는 유불신의 융합이 다른 게 있을까?
다르다면 표현하는 이름이 다르겠죠.
어쨌든 일본의 신사에 우리 고려시대에 걸작이라고 하는 수월관음도가 있다는 거죠.
그 수월관음도에는 머리에 이렇게 생명태동을 상징하는 꽃이 많이 묘사가 돼있다는 거죠.
역시 도낭의 덧구리에서 보게 되는 보살 입상번
보살 입상이 새겨져 있는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깃발에 보면 역시 머리에 꽃이 화려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북 영천에 있는 은혜사의 딸린 부속암자인 운부암에 보면
금동보살 좌상에 보면 역시 이렇게 꽃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불교의 어떤 미술 조각품에도 이런 생명태동과 연관된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어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많이 보던 우리의 옷에도
옷과 장식물에도 꽃은 여전히 중요한 소재였다.
이 그림은 유명한 이당 김은호 선생이 그린
어여머리의 여인이라고 하는 1952년도에 만든 작품인데
참고적으로 이 그림을 그릴 때 마땅한 모델이 없어서
자기 아내, 자기 부인을 이렇게 앉혀놓고
궁중에서 어렵게 빌려온 옷과 장식물을
자기 아내에게 쓰게 하고서는 그렸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이당 선생이 비록 친일 작가라고 하는 오명이 있긴 하지만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기가 머릿속으로 그냥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한 사실주의의 구현을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궁궐에 가서 부탁을 해서 옷과 장식물을 빌려오고
또 자기 아내에게 직접 이 옷을 착장을 시켜서
그림의 적확성을 높이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친일성 여부를 떠나서 한 예술가의 기본적인 태도가
무엇이냐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이당 김은호 선생을 추앙하거나
뭐 이렇게 일방적으로 편드는 건 아니에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이 꽃골에 어떤 꾸밈 장식이 명확하게 있다는 거죠.
이것은 한국의 전근대 사회에서 궁중 여성이나 민가의 혼녀,
혼인하는 여성들에게 무조건 반상의 구별 없이
자 많은 분들이 착각을 하는데
머슴 살던 사람들은 사모관대를 못했겠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즐거워야 될 날에 사모관대나
쪽뚜리 쓰고 어여머리 하는 것은 허락이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못사는 집안 사진에도 다 보면
사모관대에 원삼 쪽뚜리 한 사진이 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때 이들에게 허용된 활머리, 이걸 활머리라고 합니다.
활머리, 활삼이겠죠? 활머리.
이거를 일명 떡우지, 큰 머리라고 하는데
이거와 꽃, 쪽뚜리, 그다음에 오건잠, 이걸 오건잠이에요.
오건잠의 장식이 잘 표현이 됐다 이거죠.
여기서 제가 정리를 하기 전에
천전 위에서 보게 되는 이 연속된 마른목골이
어떤 생명의 영속성을 나타낸다고 제가
그렇게 비슷하게 표현한 걸로 기억이 나는데
이러한 영속성의 미술적인 의미가
우리만의 한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보면, 이러한 책자를 보면
일본의 전통적인 부적이 그려져 있는데
부적에 보면 이 모습이 우리 천전 위의 그것과 거의
맥락을 갖지 않은 연속된 지속성을 보이고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삶을 위협하는 그런 요소에 대해서
지속적이고도 아주 영속적인 저항이라든지
그것에 대한 해소를 나타내는 미술적인 표현이 뭐냐면
거듭댐이라는 거예요. 거듭댐.
쉽게 말해서 단타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연타로 막아내야 된다 이거죠. 연타로.
예를 들어서 코로나가 지나갔으니까 끝이야.
이래서는 안 되고 코로나가 다시 올 거야.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준비를 계속해야 돼.
계속 연타로 막아내는 자세.
그래야 문화가 지속되고 삶이 지속됩니다.
그런 것처럼 천전 위의 이런 연속된 형상이 주는 어떤 메시지는
인간사회의 행복이 됐든 불행이 됐든
그것을 막는 노력, 그것을 얻어내는 노력 자체는
단기적인 이례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지속성이 있어야겠다.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길림 지역에서의 인물상을 보면
이것을 여성으로 보는 일부 연구자들이 있어요.
그런데 여성으로 볼 경우에
여성의 머리 위에 있는 장식물이 해석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측면이 있어요.
어떤 식으로도 해석은 이루어지겠지만
꽃 모양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요동 지역에서의 인물 암각화가 갖는 의미는
생명태도와는 별도로 또 다른 의미로서
새겨진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앞서 시간에서 많이 이야기 드린 것처럼
작품 하나에는 심리적 고백이 반영이 되어 있다라고 하는
르네위그의 이러한 예술적 견해를 생각해본다면
어떤 도상이 갖는 의미는 분명히 저마다 달리 반영이 되어 있는 건 분명해요.
전사미술 문화의 결과에 있어서 여성성은 원역적인 상징성을 지니는 것인데
이것은 놀랍게도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의 암각화에서도
천전의 도상이 똑같이 나오고
이것은 제가 최초로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 중에 혹시 이것을 무슨 학술적으로 쓴다면 그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제가 이미 논문을 써놓은 상태고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제 방송이 갖는 의미는 뭐냐면 공개된 강의는 일종의 공시효과가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 방송을 본 다음에 힌트를 얻어서 학술 논문을 쓰시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이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천전의 암각화에서 보이는 이런 도상이 분명히 보이고 있고요.
그리고 일본의 토에서도 역시 연속성이 확인이 되고 있고
놀라운 사실은 콜로라도에 있는 암각화에도 연속성이 발견되는 여성상이 있다는 거예요.
반구천 암각화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될 텐데
반구천 암각화의 성격을 크게 거시적으로 자리매김을 시도해보자면
대공리 암각화 소구역과 천전의 암각화 소구역으로 저는 구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대공리 암각화와 천전의 암각화는 시기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결코 같이 이야기할 수 없다고 봤거든요.
그러나 저는 첫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불과 2km도 안 된 지역이기 때문에 천전 위에 사는 사람이든 대공리에 사는 사람이든
그 두 사람들은 대공리에 가서는 대공리 암각화를 봤을 것이고
천전 위에 가서는 천전의 암각화를 봤을 것이라는 거죠.
그 시기는 아마 오래전부터 가능했을 거예요.
물론 하나가 신석기 후기고 하나가 청동기 시대라고 하면 시차가 예를 들어서 500에서 1500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시기 이후에는 같이 본 거죠.
쉽게 말해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있던 시기에는
그 시기에는 대공리나 천전이가 같은 지역 사람들의 그냥 미술품인 거예요.
그렇다면 그 의미가 다르냐 이거죠.
다르지 않다는 거죠.
그래서 대공리 암각화에 있는 것은 남성성이 부각된 거고
강렬한 생업 현장, 고래잡이와 같은 강렬한 생업 현장이 표현된 것이고
연속된 마루 목걸이 특징인 천전이 암각화는 거듭된 생명 지속성을 표현한 것이고 여성성이 부각된 것이다.
왜냐, 머리에 꽃 모양의 장식을 한 여성이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죠.
이러한 여성성의 미술적 표현은 이미 앞서서 한 번 얘기했지만
이러한 상고조선의 청동기 문화의 결과로서 이야기되는 폐식에도 확인되는데
이 폐식의 테둘레가 사실은 여성성을 의미한다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저의 일방적인 견해가 아니라 유럽의 고구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아몬드형의 둥근 타원형이 사실은 여성의 생식기랑 거의 같은 모티프, 미술적 동기를 갖고 있다고
이미 연구 논문에서 밝혀진 바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여성의 소중한 그 부분과 연상되는 곳에 이런 인물 형상이 있을까.
이것은 아기가 나오는 곳이 거기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죽을 때 죽어가는 여우가 자기 태어난 곳을 향해서 머리를 든다라고 하는
수구초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에게는 늘 어떤 모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이 있어요.
나이가 70, 80이 돼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이거죠.
그렇기 때문에 인물형 폐식이 왜 여성의 원형성을 의미하는 타원 구조 속에 있는가라는 것은
모성에 대한 간절하고 애틋한 그리움의 반영이 아닐까 해석을 할 여지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좀 전에 설명한 폐식이 나온 12대 영자의 지역에서는 이런 소위 욘영식 동검.
저는 이게 비파형 동검이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한 번 드린 것 같은데 비파는 우리 악기도 아니고 비파처럼 생기지도 않았어요.
비파는 아랫부분이 둥글고 이렇게 돌기가 있지가 않아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욘영식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불순한 의미를 가졌다고 하면서 흥분을 하시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욘영이 한때 우리 상고초선의 땅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욘영식이라고 해서 뭐가 잘못됐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오히려 비파형 단검이라는 표현 자체가 우리의 자존심을 생각하지 않은 표현인 거죠.
아까도 말한 것처럼 여성을 상징하는 타원 형상의 인물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모성애에 대한 간절한 어떤 그리움의 반영일 수가 있겠다.
그리고 이건 제가 직접 파주에서 지표조사를 하고 연구 논문으로 발표한 건데요.
알굽대 바이널입니다.
이 알굽대 바이널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걸 별자리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그거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수 있어요.
별자리로 해석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심리학 관련된 책에는 써 있어요.
내가 동서 남북 중에 동쪽으로 가는 것은 동쪽이 좋아서 그냥 간 게 아니라 동쪽으로 가야 할 특별한 사유가 있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는 것뿐이에요.
그리고 내가 오늘 정장을 비슷하게 입었다는 것은 그만한 사유가 있는 거예요.
선사 시기에 별자리가 중요했다면 별자리가 중요한 이유를 밝혀줘야 돼요.
선사 시기에 별자리가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그런데 놀랍게 별로 찾아지지가 않아요.
선사 시기에는 주로 시급한 문제가 뭐냐면 당면 과제가 뭐냐면 내가 양손에 석기나 돌창을 들고 수렵에 성공하느냐 마느냐 이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수렵과 별자리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농사라면 별자리가 상관이 있어요.
항문은 항상 상식에서 출발하는 거지 비상식에서 출발하는 건 아니거든요.
겉모습이 좋고 말하기 좋아서 항문을 한다면 그건 사상 무각입니다.
얼마 안 가서 와르르 무너지게 돼 있어요. 근거가 부실하기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선사 시대에 엄청나게 많이 패어있는 이런 저는 성혈이라고 안 하고 알금이라고 하는데
이 알금이 이렇게 많은 것은 별자리라기보다는 뭔가를 간절하게 반하는 것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천전지 암각가에서 연속 마룻목걸이 주는 의미랑 똑같다는 거죠.
그러면 이렇게 해서 연속된 것을 표현해서 뭘 얻겠다는 거냐? 그 자체인 거죠.
연속 그 자체를 희망했다라는 거죠. 선사 인내는.
오늘 하루도 잘 견뎠다면 내일도 하루도 잘 견디고 싶다.
그래서 우리 자신들이 잘 털없이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바란다.
이런 어떤 소박한 연속성에 대한 기원, 바람 이런 것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준비한 내용이 좀 복잡해서 제가 끝낼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왔는데 마감이 됐습니다.
전번 회에서 계속되는 제 설명이 다른 미술사 강의랑은 달리 약간 좀 생소하고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실 수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아 이게 부담스럽다 이렇게 느껴질 분도 계시겠지만
그래서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다시피 매번 설명을 할 때 앞에 했던 얘기를 조금씩은 계속 되풀이한다.
소위 교육학에서 말하는 나선식 교수 방법을 그래서 활용한다는 측면을 좀 연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