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께서 입멸하신 후 인도 웨살리의 한 승원에서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기존의 율에 어긋나는 열 가지 행동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유행 길에 이를 목격하게 된 야사 (耶舍, Yasa) 비구가 출가자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며 이의를 제기합니다.
이를 계기로 불교승단 전체에 큰 파문이 일어납니다. 바로 유명한 십사비법 논쟁입니다. 십사비법 논쟁이란 당시 스님들이 지키던 계율에 어긋나는 열가지 일에 대해 불법에 맞지 않는다는 논쟁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이중에서도 금과 은 즉 화폐를 출가자가 보시받일 수 있느냐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매우 상징적인 논쟁입니다. 이 논쟁을 통해 열가지의 일은 모두 계율에 어긋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통해 사회의 변화속에서 소소한 계율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놓고 입장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선택을 하는 방향으로 불교사는 전개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박수]
예 안녕하세요 어 방금 소개받은
이필원이라고 합니다 어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어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요 어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같이 나눌 주제는 144 비법 논쟁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데 제가 금방
실장님 말씀하셨지만 율장 정공이
아니고 저는 초기불교 전공인데 주로
교학
체계하에서 를 주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율장 관련된 내용을 여러분들과
장과 관련된 건 아니죠 사실은 일장의
정신에서 바라봐야 될 주제를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게 되어서 조금
부담이 되긴 합니다 어 여러분들께서
14 비법 논쟁에 대해서 이미 들어
보신 분들 계시겠군요 아니면 오늘이
자리에서 처음 들어보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먼저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면요 불교라고 하는 종교는
기본적으로 단일 교단으로 시작을 했죠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 가르침을 펴시면 시작이 된
종교가 불교라고 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되게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 시작점이
명확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이 된 거예요 다른 기타 종교들은
자연 발생적인 어떤 종교적 흐름을
통해 가지고 고등 종교로 발전을 해
왔다고 한다면 불교라고 하는 종교는
그 시발점이 매우 명확하게 어 설정이
되어 있다라고 하는 점입니다 어
부처님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 불교는
안정적으로 발전을 거듭해 오게 되고요
부처님께서 어 열반 하시자마자 아 마
카사파 존자가 중심이 되어서 제 1차
결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어 이때는
경과 유를 이젠 어 중심으로 해서
결집이 이루어지게 되죠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확정하고
그것을 서로 합의하는 절차가
일정에에
그 결집이 부르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원어로는 쌍기이라고 하고요 어
번역하면 합성이 됩니다 그래서 어 다
같이 모여 가지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 확정된 내용들을 합성하면서 정리한
내용이다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제
2차 결집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부처님
열반 후 대략 100여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로 오늘
주제 인겁니다 외산리 지역에서 어
활동하고 있던 지족 출신의 비구
스님들께서 열가지 율과 관련된 좀
논쟁거리가 될 만한 내용들을 어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던 거죠 이것에
대해서 야사 하는 스님이 어
공식적으로 문지 제기를함으로써 어
결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때는 율과
관련된 내용만 결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불교 교단이 하나의 단일
교단일기 있니다 제 3차 결집은
아쇼카 황제 때죠 마우리아 왕조 제
3대 아쇼카 황제 때 3차 결집이
이루어지는데 이때는 우리가 상좌부
결집이 불러요 즉 상자부수기 그리
결집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쿠시
왕조 때 제 3대 황제인 카니슈카
황제 때 제 4차 결집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때의 결집을 우리는 제 4차
결집 혹은 설일 집이라고 부릅니다이
결집이 인도에서 이루어진 차에 걸친
집입니다 보시다시피이 결집이 하는 걸
통해 가지고 어 이젠
불교가 분열도 되고요 또 그 각각의
부파이 더욱더 발전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럼 제 2차 결집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들하고 같이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불교의 제일 가치 를 이야기한다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
아무래도 저는 화합이라고 하는 가치가
제일 갈치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의 모임을
화합 중이라고 불렀어요 화합하는
무리들의 모임인 거죠 승가의 제일
원칙은 화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무관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나 모르겠습니다 어 다섯
가지 죄를 지으면 어 사후에 무관
지옥에 빠지는 는 업이 있다라고 하는
거죠 첫 번째가 어머니를 죽인 죄 두
번째가 아버지를 죽인 죄 세 번째가
깨달은 아라한을 죽인 죄네 번째가
부처님 몸에서 피를 나게 한 죄
그리고 다섯 번째가 바로이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죄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이 승가의 화합을 얼마나
강조하셨는지 우리가 엿볼 수가 있게
되는 대목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이 승가의
화합은 부처님 당시에서 도 사실은
사소한 다툼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이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대화 다다가
주창한 오사에 대한 이야기인 거죠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어
부처님께서 계실 때 데바닷타 반역
사건은 매우 유명한 사건입니다
파성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승가를
깨뜨리는 일이 처음 발생을 하게
됩니다 500명의 대바 아다를
지지하는 스님들이 이제 별도로 어
포살을 진행을 하게 되면서이 승
화합된 승가가 깨지게 됩니다 물론 어
부처님과 사리프 존자 마모 갈라나
존자의 노력에 의해서이 부분은 일단락
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코삼비 아고 하는 지역에서
스님들이 사소한 계율과 관련돼서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어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큰 사건으로 이젠
변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개입을 하시게 됩니다 어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스님들을 대상으로 어
화합을 어 종용하는 가르침을
주시지만이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안 들어요 그러니까 이제 부처님께서
그 승가를 떠나서 홀로 숲으로
들어가시게 됩니다이 소식이 재가자들이
알려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이
재가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않는 스님들에게 어찌
우리가 공양을 올릴 수 있겠는가라고
해서 어이 스님들에게 탁발 공양 을
올리지 않게 됩니다 자 그러면 밥을
굶게 되는 거잖아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며칠 지속되니이 스님들이 어
자신이 잘못했다고 시인을 하게 됩니다
근데 재가자들이 우리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 아니고 부처님께 나아가서
용서를 구하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고이 스님들이 부처님을 찾아뵙고 어
용서를 구하게 되면서 일단락이 되게
됩니다 자 여기서 보게 되면요 제일
중요한게 뭐예요 수행을 한다 해도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겁니다 부처님께서 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죠 어떠한 경우가 있어도
생산업에 종사하지 말아라 재가자들의
탁발에 의지하며 살아가라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예요 승가
자체에서 어떤 그 자정적 역할을 못
하게 될 때는 재가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은 것이다라고 볼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건강한 상식을 지낸
재가자들의
눈치를 보아라이 얘기를 스님들께 자주
하십니다 그니까 건강한 상식을 갖고
있는 재가자들이 승단을 깨끗하게
만드는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한 거죠 자 그리고 세
번째는 그 수행법과 관련된 갈등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구 따라 니까야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어 불교 수행에 가장 큰 두 기둥이
있다고 하면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얘기하게 되겠죠 그래서이 사마타 위빠
산화를 통해서 어 우리가 아라이 되게
되는데
어이 수행법을 지지하는 스님들이 또
있게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마타를 지지해 나는 위빠사나를 지지해
하는 스님들이 있게 되는데 서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또는 실천하고 있는
수행법이 최고다라고 하는 것 때문에
이게 말다툼이 시작이 된 겁니다
근데이 말다툼이 생각보다 좀 이것도
커지게 돼요 그래서 어이 말다툼이이
지게 된 것은 그 수행을 통해서
성자의 개의를 성취한 분들은 개입을
안 했었죠 물론 어이 이제 유학의
단계에서도 이젠 막 수행을 배우는
분들 사이에서 일어난 논쟁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이 논쟁을 마하 준다라고
하는 그 장로께서 개입을 하시면서
수습을 하시게 됩니다이 두 가지
수행법은 어 어느 것이나이 세상에서
만나기 힘든 수행법이다 그러니까
그러니깐 어느 수행법이 다 훌륭한
가르침이다 하는 말로 두 수행법을
이젠 융합하는 관점에서이 문제를
해결하게 됩니다 이것 말고도 사소한
문제들이 계속적으로 발생을 하는
내용들을 우리가 경전이나 장을 통해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까 논쟁이란
말을 말씀을
하셨는데 불교는 논쟁의 역사다 예
일정 부분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이
논쟁은 빨 여로는 위하다 합니다 아
론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근데
수다니 바다라고 하는 경전에 보게
되면
부처님께서이 논쟁에 대해서 얼마나
비판적이지 우리가 확인해 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논쟁에 참여하지 않으셨던
분이고요 논쟁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논쟁을
하러 온 사람에게 어떻게 하셨는가
부처님께서는 항상 진리의 관점에서 어
말씀을 하신 거예요
논쟁이라고 하게 되면 이거 긍정적으로
보게 되면 우리가 논쟁을 통해서
배워야 될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보통
논쟁은 자신의 욕망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이긴 자와
진자는 어 진자의 구분이 생기게 되는
거고이긴 자는 우월감에 젖어들게 되고
진자는 패배감에 젖어들게 돼서
분노심을 일으키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
이제 수타니파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 그런데 지금
불교사에서 보게 되면 이런 논쟁의
역사가 지속되게 됩니다 이것은 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우리가 해석해 볼
수가 있겠는데 누가 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해석한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논쟁이 발생했다 고도 우리가
이해해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계율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어
우리가 지금 실천하고 있는 있는
계율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의
정신에 부합하고 있는가 이런 부분에
대한 내용도 논쟁의 한 주제가 될
수가 있겠죠 어 제 1차결집 때 아까
말씀드린 제 1차결집 때 경과 율이
재정이 되면서 확립이 되면서 그 율과
관련된 하나의 원칙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것이 불제 불 개변 있니다 불제 즉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것은 불 개변
바꾸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부분인
거죠이 원칙이 장을 이해하는 대원칙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깐 시대가 변하면서 장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구성원들 사이에서
의견 차이가 발생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14 비법 논쟁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겠습니다 자 인도 불교가 분열되기
된 배경 자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지금 우리가 살펴볼 14 비법 논쟁을
통해 가지고 분열이 발생했다고 하는
어 빨리 그 연대기에서 이야기하는
주장이 있고요 또 하나는 다른
문헌에서는 대천의 오사를 이야기합니다
대천의 오사 그래서 마하데바 아고
하는 스님이 아라한이 갖고 있는 다섯
가지 특징을 이야기한 것을 토대로 어
근본 분열이 발생했다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14 비법 논쟁을 통해서
분열이 이루어지게 됐다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어 학자들이 잘 받아들여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설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여하튼 어 마하 밤사
디바 밤사 같은 문헌에서는 분명하게이
일을 계기로 해서 대중부
상자부수기 하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
보시는 것처럼 어이 시 일은 고다마
부다의 열반 후 100년 후 그
외산리 아고 하는 지역입니다 외산리
하는 지역은 지금 비하르 주에 속해
있는 곳으로 어 겐지스 강에 보면
하류 지방에 해당이 된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당시 외산리 어 굉장히
부유한 그 아뭐 상업이 발달한
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물산이 풍부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죠
대표적으로 북인도 일 때에서 불교가
거점 도시로 어 많이 활동했던 지역이
바로 외산리 지역이고 그다음에
마가다국의 어 라자가 그리고
코살라국의 그 수도 인 사와디이
지역들이 이제 부처님께서 주로 활동을
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지역이기도 하죠 그마만큼
외산리 아고 하는 지역은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그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있던
바지 족의 스님들이 열 가지 그
계율과 저촉될 수 있는 내용들을
새롭게 그 실천하고 있었던 거죠
이것을 계기로 해서 이젠 그 본격적인
논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계율에 대한 이해 차이의 큰 차이점은
핵심 쟁점은 이렇습니다 계율 해석의
엄격성이 하는 부분이 있고요 두
번째는 그 어느 정도까지 우리가 어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둘 것이냐라고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고요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이젠이 십 논쟁을
바라볼 때 소유라고 하는 관점을
토대로 해서이 사건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근데이 열 가지 사건이 계율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다 소유와 관련된
내용은 아니에요 열 가지 가운데 이따
살펴보겠지만 금은 수납이 하는 것이
이젠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출가자가 금과은
말하자면 오늘로 보면 돈을 보시로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고 하는 부분인
거죠 여기에 대해서 와지 족에 있는
스님들은 이것을 허용하고 있었던
부분인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 야사
아고 하는 스님이 이것은 유 정신이
어긋난다고 해서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게 됩니다
자 내용을 잠깐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웨슬리의 한승원의 와지 족
초신의 비구들이 기존의 유에 어긋나는
열 가지 행동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유행 길에 나섰던
야사 하는 스님께서 어 이것을 알게
되고 출가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며 이일을 공식적으로 제기를
하게 됩니다이를 계기로 불교 승단
전체에 큰 파문이 일어난 것이이
사건의 발달 되게 됩니다 어 문헌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이 사건을 계기로
승단이 근본 분열하게 되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할만큼이 사건은
당시 불교계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거 같습니다 어이 일을 계기로
아까 말씀드렸던 마하 사와 디파
사에서는
상자부터 분열되기 되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이 14
이 14 논쟁은 결국 비법으로 규정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어이 지족 출신의
비구 스님들을 따르고 있었던 1만
명의 스님들이 별도로 결집을 하면서
대중부 성립되게 되었다라고 하는
기록이 이제 빨리 연대기 문헌에서 어
나오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14가 근본 분열의 지적인
원인이 되었다라고 하는 점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문헌에서는
그냥이 논쟁이 비법으로 규정이 되면서
와지 족의 스님들이 이것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끝나게 돼 버려요 그래서 어
이후에 분열이 나왔다라고 하는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걸
계기로 제 어 근본 분열이 발생했다고
하는 설에 대해서는 어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 14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4는 바로이 보시는 열
가지입니다 염정 이지정 취락 안정
주처 수정 등에서 열 번째 문전까지
있게 되는데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염정은 소금의 경우 약용의 경우는
소유가 허용되지만 이게 식용의 소금은
어 소유가 불어가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이 와즈 족에 있는 스님들께서는
뿔로 된 용기에 그 보관하고 있는
식용의 그 소금 같은 경우에는 저장이
가능하다라고 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 것이죠 이지정 출학 관정은 공양과
관련된 이야기이고 주차장과 수위정보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구주은 그
화상 즉 아사리 이렇게서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관습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될
것이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 관련된
내용입니다 생 화합전은 우유가 응고가
되기 이전 단계의 것을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 그 그리고 수정은 발효가
되기 직전에 음료 그간 수리되기
직전에 음료는 허용이 되는가 안
되는가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아 아 아홉 번째네요 브릭
루니 4단점 같은 경우에는 그 좌구
보시를 받게 됐을 때 테두리가 없는
좌구 사용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 원래
그 새롭게 공공 받은 그 좌구 같은
경우에는 한쪽을 잘라 가지고 이전에
천을 사용 했던 좌우의 천을 덧 떼는
방식으로이 집착의 마음을 덜어내는
이런 방식을 쓰게 되거든요 그런데
이게 테두리가 없게 되면 이걸 사용
이렇게 하기가 좀 곤란하잖아요
그래서이 테두리가 없는 좌우를 허용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런 이야기가 아홉
번째입니다 열 번째는 금은 수납인
거죠 그래서 어 화폐를 우리가 공양물
대신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관련된
내용입니다 쉽게 말하면이 열 가지는
출가자의 의식주와 관련된
내용이다 우리가 정리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14는 비구들의
의식주생활 전반에 걸친 열 가지
행동에 해당하는 사항인데요 어이 열
가지 행동들이 각각 율에 비추어 봤을
때 이것이 적합하냐 적합하지 않냐라고
하는 부분인 거예요 어 모두
부정하다는 판정 결과가 이젠
결과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이것을 14
비법이라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어이
14 논쟁에서 핵심이 되는 사항들은
이젠 정법이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정법이 하는 내용은 이젠 카바라 하는
말을 번역을 한 건데 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계율은 이젠 새롭게
제정하거나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소소개팅 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소속해
무엇인지 아한 존재가 묻지 않음으로
인해서 소속의 규정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래서 마가 가섭 전자서 우리가
그것을 정할 수 없으니 부처님께서
정하신 계율은 무조건 다 지키는
것으로 하자라고 정하게 된 거죠
그러면 이젠 계율은 확정되어 있는
거예요 근데 이것을 해석을 해서 좀
더 유연성 있게 적용하는 것의
가능성은 이젠 이후 스님들에게 달려
있게 되는 거죠 그것을 정법이 부르는
겁니다 말하자면 헌법은 정해져 있는
거죠 근데 시행령이 하는 것을 우리가
따로 만들게 되잖아요 근데이 시행령은
헌법의 정신에 부합해야만 되는 거죠
그 테두리 안에서만 우리가 다양한
시행 세척이나 규정을 만들 수가 있게
되는 것처럼이 계율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요이 계율을 현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 정법이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편법과 달라요 편법과 달리이 정법은
당시 출가 수행자들이
공론을 통해서 의견을 조정을 통해
가지고 어 정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어 출가 수행자들의 구체적인 생활
양식에 있어서 유래 정신에 부합하는
어떤 방식들을 찾아가는 내용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열 번째 금은전 같은
경우에 출가자는 그 말하자면 돈을
보시의 물로 받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어 바지속에 있는 스님들은
승원 중심에 큰 물 항아리를 설치해
놓고 거기에다가
재가자들이 금과 은을 던져 놓는 거죠
그러면 나중에 그것을 수습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이제 이걸 가지고 비구들
그리 나누어 갖게 되는 거죠 이거
직접 손으로 받은 거 아니잖아요 그죠
예 그리고 물이라고 하는 어떤 능 그
기능이 뭐예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어떤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까 그런 것들을 통해 가지고 율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던 금과 은을
직접 손으로 받아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계율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든 것이 정법이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괜찮은 방법이죠
예 근데이
정법을
그 사용함에 있어서 이제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럼 어느 정도까지는 허용이
되고 정도를 넘어서면 안 되는
것이냐라고 하는이 허용의 범위가 이젠
문제가 될 수밖에 없겠죠 여기 나오는
것처럼 경유에 비춰 상응한다 할 때의
상응 어 까삐 아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정법인연이 정도는 인정해도 좋다라고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가 어 이와
같이 행하면 개를 범하는 것은 아니다
아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결과적으로 이와 같이 행하면 문제가
없다라고 하는 쪽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출가 수행자들 같은
경우는 공양을 받을
때 내가 이것을 마시고 싶다라고 말을
하면 안 돼요 어 이걸 마시고 싶다고
말하는데 목이 말라도 이거는 항상
공양 받은 것만 드셔야 되거든요 그럼
옆에 있는 재가자가 아 스님께서 지금
물이 드시고 싶으시나 알 눈치를 채고
가져다가 스님 드시지요라고 해야지만
드실 수 있어요 예 이거 그냥 드시면
안 되는 거예요 그까 옆에 있는
재가자가 눈치가 없으면 어떻게
돼요 못 마셔요
예 과일도 마찬가지거든요 수회에 과일
나면서 과일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냥
주사가 출가자는 못 드십니다 예
재가자가 없으면 못 드세요 가서 그
주어 가지고 드시면 이건 계율을
위반하게 됩니다 그럼 옆에 있는
재가자가 있는데 말을 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뭐죠 재가자가 정말 눈치가
좋은 친구야 되는 거예요 눈치를 주면
아 스님께서 저 과일이 드시고
싶구나라고 알고서 얼른 주어서 물에
씻어 가지고 공양을 올려야 되는
거거든요 근데 눈치를 줬는데도 모르면
아 이러 이제 못 드시는 거죠
그래서이 승가에 보시 된 물건을
관리하는 사람을 정인이 라고 불러요
깨끗할 정자의 사람인자 예 그래서이
정법이 발달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찰의
금과 은을 보시하는 그런 또는
음식물을 보시하는 어 경우들이
발생하게 되면 이것을 관리할 수 있는
재가자가 필요했던 거죠 이것을 정인이
부르고이 정인은 그 재산을 관리하면서
적절한 때 스님들께 음식도 공양하고
약품도 공양 올리고 옷도 새롭게
만들어서 공양 올리고 사원 을
정비하는 등 이렇게 활 사용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이 용어는 죄가 되는
행동을 어떤 특수한 조작을 행하여
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로이 정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근데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정법이
발달하면 할수록이 허용 범위에 대해서
출가자 사이에서 이견이 이제 발생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 불멸 후에는
기존의 유을 판단 기준으로 해서
비구들의 행동이 어 율에 적합한가
적합하지 않은가를 이제 판단하는 것이
주된 논쟁의 원인이 되게 됩니다 십사
논쟁의 배경에는 그래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생활 양식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하는 입장과 기존의 어떤
유를 어 우리가 온전히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했던 스님들 사이의
대립이다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럼이 14장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 그 앙드레 바로 교수
같은 분은 이런 주목할 만한 내용을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즉 어 당시에
불교는 이른바 신흥종교 이잖아요 근데
신흥 종교임도 불구하고 불교라는
종교는 굉장히 독특한게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어 불가 1년
남짓해 북인도에서 가장 주목받는
종교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시간적으로
따져보게 되면 그 천 명의 제자를
얻게 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가 깨달음 얻고 난 다음에 3
4개월 정도밖에 안 걸려요 그리고
마가다국의 빈비라 왕이 제자가 바로
됩니다 왕으로서 처음으로 제 제자가
되게 되게 되는 거죠 그리고 북인도
때 대부분의 왕들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데 그 시간이 그 오래 걸리지
않는다라고 하는 점입니다 어 그마만큼
불교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발전을
하게 된 것이죠
그러다 보니까이 불교는 적극적으로
전법에 열심이었던
종교였다 왜 열심히 였느냐 이것은
부처님의 전도 선언에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는데 이익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신 거거든요 근데
이익과 행복의 내용은 바로 깨달음을
얻는 부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전법사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셨고 전법의 중요성을 많이 말씀하
죠 그래서 불어나 존자 같은 분들이
불교를 개척하는데 이젠 그 외 외지역
지역에서 그 불교를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분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죠 그래서 당시 부처님 열반
이후에도 전법사은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젠 중인도
지역까지 널리 그리고 외방 지역으로
널리 스님들이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근데이 전법에 열심이었던 스님들은
굉장히 엄격한 그 유 정신 을 갖추고
있었던 스님들이 하는 거죠 이에
반해서 어 이젠 불교의 중심지이
역할을 했던 도시들에서는 이젠
자연스럽게 말하자면 성지가 되는 거죠
불교도들에게 그러면 그곳은 많은 순례
그들이 참여를 하게 되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대규모 승원이 만들어지게
되는 거죠이 승원은 도시에 주로
건립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사찰의
사 그 숲에 어 산에 많이 가했다면
부처님 당시에는 승원이 도시의 자리를
많이 잡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깐이
도시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스님들은 보다 더 계율에 있어서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고이 둘의
대립이 어 논쟁의 핵심이다 이제
낭두의 바로 교수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어 또한 해석은 맞 뭐 같은
해석의 범주인 거죠 그래서이 계율과
관련돼 가지고 어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야 된다 하는 그 스님들과 어
그것과 무관하게 어이 부처님의
말씀하신 계율을 엄격하게 지켜야
된다라고 하는 이러한 스님들 사이의
갈등 이것이 14 논쟁의 배경이다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자 그러면이
논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음악]
되는가라는 기본적으로 의식주와 관련된
내용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근데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사실은은 수납
있니다 이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즉 개인이 출가자가 사적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고 하는
부분과 연관된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 비구 야사가 어 자신에게
나누어진 금과 은을 거부하게 되는 거
이것은 출가 사문의 생활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어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문제
제가 되는 것인데요이 일은 과거의
일이다라고 우리가 치부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사실 어 시대가
변하면서 다양한 그 불교의 움직임도
변하게 됩니다 어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종교는 더욱더
세속화되고 되는 것이죠 어 이건 비단
불교만 아닙니다 그래서 다양한 다른
종교들도이 과학 기술의 발달과 물질
문명의 발달은 그
종교의 나쁘게 표현하면 세속화
세속화를 재촉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도 역사적으로 보게 되면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불교도 변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교가 그
흐름을 주도한다 주도한다는게 아니고
흐름을 따라간다고 하는 부분인 거예요
사실은 부처님 당시에는 우리가 그
경전의 내용을 통해서 보게 되면
불교가 시대의 흐름을 어떻게 보면
선도하는 측면이 더 강했다고 볼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젠 부처님
사후에 불교의 어떤 흐름들을 보게
되면 시대의 흐름을 불교가
이끌기보다는 불교가 그 시대의 흐름을
뒤따라 가기에 바빴다고 어 볼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은 거 같아요 물론
그 반대인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근데 그런 것들이 지역을 떠나
가지고이 불교가 세계 종교로 성장할
때 더욱더 두드러지게 그런 모습들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불교가 이런 시대의 흐름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하는 부분인 거예요
원정을 통해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메시지는 바로 그 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그 스님들의 소유 문제는
계속 지적이 되고 있는 내용이죠
스님들께서 분명히 생활을 하셔야
되니깐 일정한 그 재화가 필요한
것이고 또 다양한 그 주변 물품들이
필요합니다 그근데 이것이 세속인과
더불어서 우리 재가 이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부분은 지금도 사실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스님들께서 큰 차를 몰고 다니면
우리는 얘기합니다 스님께서 이렇게 큰
차 몰고 다녀도 돼 이런 얘기를 비불
그도이 불교인 테 엄청
질문해요 예 예전에 방송에서 그
우리가 그 해민 스님 사건도 사실은
그 연장 선사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논쟁의 핵심인 금은 수납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에게 화두를 던져
주고 있는 문제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는 출가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욱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가라고 하는 말은요 말
그대로 집에 집 있는 상태에서 집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 이게 출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근데 여기서
집이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로
소유인 거죠 물질적 정신적 소유의
삶에서 소유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출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화장
장작의 비유의 경이라고 하는 안골 아
이것도 안구 들라에 나오는 이야기이긴
한데 여기에서 보게 되면 스님들을
모아놓고 굉장히 심하게 경책을 하세요
야물 하십니다 어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생활 방식이 남에게 음식을
빌어먹는 것인데 그대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그 삶을
선택을 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세상의 명리를 탐하는 출가자가 세상의
명리를 탐하게 되면 출가의 즐거움도
모를 뿐더러 제가의 즐거움도 모르게
된다 그것은 마치 시체를 태우고 남은
장작을 아무리 공공도 사람들이 쓰지
않는 것과 같다 출가자가 명리를
탐하는 것은 바로 그와 같다라고 하는
방식으로 굉장히 심하게 남을 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들을 우리가
비춰 봤을 때 그 출가자의 소유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되는가
이것은 재가자의 역할이라 그보다는
오히려 출가 스님들의 역할이라고 더
우리가 봐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오늘날 그 성직자라고
하는 표현을 종종 사용합니다 저는
성직자라고 하는 표현을 가능함
불교계는 사용하지 않는게 좋겠다라는
입장입니다 수행자라는 정말 아름다운
용어가 있거든요 어 수타니파타 보게
되면 그 까시 바라도 와자라 하는
바라문 부처님의 대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탁발 공양을
나가셨는데이 사람이 얘기하는 거죠
나는 농사 지어서 밥 먹고 삽니다
당신도 농사 지으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하자 부처님께서 나도 농사를 짓습니다
하면서 그 농사의 이야기를 이제
수행의 관점에서 풀어 주십니다이
이야기를 듣고이 까시 바라드와자
감동을 해서 부처님께 이 공양물을
당신께 올리겠습니다 하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죠 저는 가르침의 대가를 받지
않습니다 예 가르침의 대가를 받
받으면 성직이 그걸 갖고 먹고 사는
것이니까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가르침의
대가를 절대 안 받으셨던 분이에요 어
공양은 재가자가 공덕을 짓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그 경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대가 준비한 공물은
훌륭한 수행자의 게 공양을 하면
그대에게 큰 복락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리고 당신은 공양을
받지 않고 그냥 가신다고요 당신께서
설법 하시는 내용은 사람들에게 설법은
목적 없이 하시는 거예요 어떤 대가
없이 그래서 유일한 목적은 뭐예요 그
설법을 듣는 사람들이 설법을 듣고
깨닫는데 있는 거예요 이것이 부처님
설법의 목적성인 거예요 그걸 갖고
공양을 안 받으시는 거죠 그러니까
불교는 성직이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수행자라는 아름다운 말이 있는데 왜
굳이 우리가이 아름다운 용어를 버리고
성직자라는 말을 써야 되는가 이것도
또한 오늘 14 비복 논쟁과 관련돼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이 14 비법 논쟁과 관련돼서는
뭐 더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볼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요 어 그런데
오늘은 그런 내용들 보다는이 14
비법 논쟁 가운데 어 출가자의 소유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제가 갖고 있는
몇 가지 생각들 그리고 경전에 있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 시간이 대충 맞았나
모르겠습니다 제가 시기가 없어 가지고
예 오늘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