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네 사이에 왜 나라가 껴있는 걸까...?

지식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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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살펴보면 대뜸 국경 사이에 작은
나라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
나라의 이름은 안도라 공국으로
수백년에서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
역사와 영토를 오래도록 지켜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안도라의 굉장히
특이한 점은 스페인의 우리엘 주교와
프랑스 대통령이 공동 군주로 군림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입니다이
안도라라베야
[음악]
중세 초기인 8세기 무렵 당시 프랑크
왕국은 베리아 반도를 통치하던 이슬람
세력 아란 달러스 지속적인 충도를
빚고 있었습니다 결국 프랑크 왕국의
왕이었던 카롤로스 아란달 그스 위협을
최대한 막아서는 한편 이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초 기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이곳 국경 지역에 여러 작은 백국
공국을 설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이
완충지대를 이베리아 반도의 국경을
의미하는 마르카 히스파니아 불렀죠
그리고 안도라 내에서 전에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현 안도라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이 완충 지역에서 남쪽에
이슬람 세력 맞서싸워 공을 인정받았고
결국 85년에 자유 현장을 부여받아
자치권을 확립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안도라는 그 주변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귀족인 우르
백작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안도라는 우르 백작 가문의
통치 아래 수세기를 이어가게 되었죠
이후 88년이 되어 당시 우르
백적이었던 보렐 이스는 우르 will
주교였던 살라에게 안도라 양도하였고
그 대신에 주교가 통치하고 있던
세르다 near 지역의 일부를 교환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이
교환으로 인해 안도라는 이제 더 이상
귀족이 아닌 교회에 의한 통치를 받기
시작했고 교회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안도라는 귀족의 통치를 받는 다른
영주들 다 상대적으로 더욱 높은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열러 1세기가 지나고
우르 백작 가문은 점차 안도라 재획
득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안도라는 군사력도
부족하고 고립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우르의 주교는 이러한 가문의 야망에
큰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주교는 안도라 근처에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던 카보의 영주와 접속하여
안도라 함께 지킬 것을
요청하였고 는 이러한 주교의 요청을
수락하기로 결정했고 그 대신 주교는
안도라 영주와 공동으로 통치한다
서역을 맺어 이렇게 안도라는 공동
통치 체제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12세기 중반쯤에
되어 당시 카보의 영주의 딸은
카스텔로 자작과 결혼하였고 그렇게
안도라는 주교와 카스텔로 자작의 공동
통치로 변화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그들
사이에서 나온 딸인 에르메 센다는
프랑스 남부의 푸아 백작인 로저
베르나를 이세와 결혼하였고 이렇게
안도라는 다시 주교와 푸어 백작의
공동 통치 체제로 변화하였고 그리고
자연스럽게도 100년도 훨씬 전에
카보의 영주와 우르 주교가 서역으로
맺은 협력 관계는 후대에 이르러 그
결속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세대를 거듭하며 카스탈도
자작 그리고 푸아 백작이 이르기까지의
안도라 통치 가문의 변화는 이러한
결속력 약화에 기름을 부어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13세기 무렵
당시 푸아 백작은 안도라 온전히
통치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렇게 우뢰 주교와의 갈등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양측간의 갈등이
갈수록 격화되자 당시 아라고 왕국의
국왕인 페로 삼세가 지역내 안정을
위해서 중재 나섰고 그 그렇게 우르를
주교와 푸아 백작은 국왕의 중제 하에
안도라의 관한 공식적인 협정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1978년과
1988년에 두차례 협정으로 인해
안도라는 과거 양식 간의 단순한
사역을 통한 관계를 넘어서 부왕의
승인을 받은 완전히 공식적인 공동
군주 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고
안도라는 더욱 명확하게 자치권을 확인
받으며 왕국으로부터 반 독립적인
영토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에는 각각 강력한
권력을 가진 백작 가문과 주교의 존재
덕분에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었고
안도라는 세대를 거듭하면서도 그
독립성을 꾸준히 유지해 나갔습니다
그러던 1607년 당시 프랑스의 왕인
악리 사세가 난대없이 프랑스의 국왕과
의료 주교가 안도라의 공동 군주가
된다는 칙령을 발표합니다 대체 어째서
공동 군주의 주체가 푸아 백작이 아닌
프랑스의 국왕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었을까요 저거 1441년 당시
푸아 백작은 이곳 나바라 왕국의
공주였던 레오노르 결혼하였는데 이후
그들의 손자가 나바라의 국광이 되며
이렇게 안도라의 군주는 나바라의 왕이
맞는 것으로 한 번 더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1500 9년이 되어 프랑스의 국왕
악리 3세가 자식도 없이 사망하게
되었는데 당시 악리 3세의 형제나
조카들도 모두 질병이나 암살로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왕위는 악리 3세와 아주 아주 먼친
책이었던 나바라의 국왕 앙리가 승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나바라의
국왕이 앙리 사세로 프랑스의 국왕을
겸임하게 되었고 이렇게 1607년
친경 발표로 인해 안도라 공국의 공동
군주 자리는 프랑스 국왕의 것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었습니다
카보의 영주에서 카스텔로 자작으로
그리고 푸아 백작으로 그리고 나바라의
왕 으로 그리고 프랑스의 국왕으로
이어지는 한편의 대서사시가 만들어진
것이었죠 이후 안도라는 스페인의 우엘
주교와 프랑스 국왕의 공동 군주
체제를 이어나갔고 이러한 체제는
18세기 말까지 계속해서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합니다
이러한 혁명의 결과로 나폴레옹이 국가
원수가 되었고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전쟁을 치러 많은 영토로
택한 나폴레옹은 병합한이 지역들을
1812년에 네개 행정구역으로
재편하였다 구역에 통합되며 독립적인
지의 및 공동 군주 체제를 한 순간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2년
뒤인 1814년에 나폴레옹이 다시
패망하고 유럽을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는 빈 체자 수립되며 안도라
또한 공동 군주 국으로 다시금
되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세기
동안 프랑스가 1848년의 혁명과
프르 생과의 전쟁을 거치며 공화국을
수립하면서 그간 국왕이 맡아오던
안도라 군주의 지위는 대통령이
넘겨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향후
90년 동안 안도라는 비교적 자치를
잘 유지해오고 있었으나 1934년이
되어 말도 안 는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러시아 출신의
귀족이라고 주장하는 보리스 스코시
프라는 인물이 안도라의 방문한 이후
난데없이 안도라의 국왕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는 안도라
조세 편한 처로 만들고 외국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공략을 내세우며 안도라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1934년 7월
6일 스스로 안도라의 국왕인 보리
1세라고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게다가
이틀 뒤에 그는 한술 더떠 우엘
주교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선포했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보리스의 행동에
우엘 주교는 황당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주교는
스페인 당국에이 망난이 좀 제발 치워
달라고 요청했고 보리스는 7월
20일에 스페인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이후 스페인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정말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사건이었죠 이러한
사건 이후에도 다행히 안도라는 공동
군주국을 유지해 나갔고 2차대전 기간
동안에도 험준하고 고립된 지형 군사력
부제 낮은 전략적 가치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강대국들의 합병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나체에 장악
당하고 빛이 프랑스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전력적 중요성이 없던
안도라는 정부의 침략 대상이 되지
않았고 올랜 공동 군주 전통과 문화를
인정받아 계속해서 독립적 지혜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안도라는 전후
20세기 동안 자국의 산맥을 활용한
스키 산업 금융 부분에서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세계 매을 통한 조세
피난처 역할을 수행하며 경제력을
키워나가는 등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물론 오늘날
기준으로는 포괄적 개혁을 통해
OECD 조세피난처 국가 목록에서
빠진 상태이긴 합니다 그리고
1993년엔 마침내에 가입하여
공식적으로 국가 주의를 인정받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그 주의를 하게
유지해 나가고 있습니다 현시점
안도라는 약 8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공식 언어는
카탈로니아지만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프랑스인들과 왕래가 많아이 세 국가의
언어도 일상적으로 잘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안도라는 8만이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국가이기 때문에 대학교도 존재하고
있고 매년 천만 명에 가까운 여행객을
위한 백화점과 면세점이 웅장한 산맥이
보이는 풍경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이
작은 영토 안에서 웬만큼 필요한
인프라는 대부분 갖추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또 또한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안도라는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정부의 수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프랑스
대통령과 우료 주교는 이제는 거의
상징적인 주위로만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물론 공동 군주들은 국제조약 서명이나
특정 관료에 대한 임명 등 일부
헌법적인 의무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이
또한 대부분이 안도라의 총리나 의회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공동
군주가 내부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리고 여기까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있는 신비한 공국 안도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식한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