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회피하는 습관을 버리면 비로소 해결되는 것 [원영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저자 강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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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암 주지 원영스님은 고통에 대해 말합니다. 스님은 스님의 개인적인 고통이 오히려 불심이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요. 고통을 이겨내려면 일단 나를 괴롭게 하는 원인을 똑바로 직면해야 합니다. 이를 회피하면 회피할 수록 고통은 커져가기 마련이죠.
보다 쉬운 불교 교리 이해를 위해 책을 교재로 저자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저자 원영스님과 함께 읽어보아요 ~
#원영스님 #이제서야이해되는불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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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원영입니다.
오늘 두 번째 시간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지난 시간에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이 책의 목차를 설명을 해드렸고요.
그리고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불교 공부를 할까 합니다.
이 책을 가지신 분들은, 이미 다 사셨다고 하는 분들은
이 책을 펼쳐서 보시면서 함께 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안 사셨다면 한 번 주문하셔서 빨리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자, 오늘 이야기의 시작은 안수정등에서부터 시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수정등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유명한 아함경에 나오는 비유인데요.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광막한, 굉장히 넓은 그런 사막에 한 사람이, 한 낙은해가 이렇게 길을 가고 있었어요.
사막이라고 하는 곳 자체가 길을 잃기 쉬운 곳이잖아요.
길을 잃기 쉬운 곳이라고 하기보다는 길을 찾기 어려운 곳이라고 해야 맞겠죠.
그런데 그 광활한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가 나요.
다그닥 다그닥 소리가 납니다.
뭔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이 뒤를 딱 돌아보니까 갑자기 엄청 큰 코끼리가 쫓아옵니다. 달려옵니다.
보니까 얼마나 무섭겠어요.
굉장히 크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 덩치 큰 코끼리가 막 달려오니까 이 땅이 막 엄청 울려대는 거예요.
이 사람은 갑자기 코끼리가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코끼리가 뒤에서 달려오면 쫓아오면 자기도 같이 뛰겠죠. 도망을 가겠죠.
아마 이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게 코끼리가 막 달려오면 주변에 다른 어떤 생물들이 있었다면 함께 막 뛰어서 도망을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코끼리가 뒤에서 쫓아오면 가만히 있으면 코끼리가 그냥 지나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긴 했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하고 가만히 있다면 그러면 그냥 지나가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경전에서는 그렇게 나오지 않고요.
코끼리가 쫓아오니까 이 사람이 먼저 뛵니다. 따라오니까 쫓아가서 뛰어요.
뛰어가는데 한참을 뛰어가 보니까 어디 숨을 곳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광활한 그런 사막이니까.
그런데 보니까 오아시스도 아닌 것이 웬 우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덩쿨이 이렇게 막 우거져 있는데 보니까 우물이에요.
다행이다 싶어서 이 사람이 코끼리가 쫓아오니까 얼른 가서 그 덩쿨을 잡고 막 우물 속으로 내려가요.
막 내려갑니다. 그런데 정말 코끼리가 도착을 해가지고 그 밖에서 우물 밖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거예요.
이 사람이 그 덩쿨을 잡고 막 이렇게 내려갔는데 내려가다 보니까 저 밑에 동룡이 이불쪽 칸이 벌리고 있는 거예요.
어디 그뿐입니까? 옆에서는 뱀들이 우글거려요. 네 마리의 뱀이 있고.
그래서 나는 죽었네. 이제 어떡하나. 나갈 수도 없고. 그리고 더 내려갈 수도 없고.
밑으로 내려가면 동룡이 있고 뱀이 있고. 위로 나가면 우물 밖에는 코끼리가 미친 듯이 우물 밖을 막 뱅글뱅글 돌고 있고.
거기에다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그 덩쿨을 흰지와 검은지가 갉아먹고 있는 거예요.
막 갉아요. 그러면 이게 언제 끊어질지 모르잖아요. 얼마나 불안합니까?
그런데 저걸 어떡하나 흰지가 갉아먹고 있고 검은지가 갉아먹고 있고 어떡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그때 어딘가에서 천장을 위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 입으로 꿀물이 한 방울 똑 하고 떨어집니다.
그래서 뭐지? 하고 했는데 보니까 꿀물이 또 똑 하고 떨어져요.
일정한 간격으로 저 위에 보니까 우물 옆에 벌통이 있는데 거기 벌집에서 이렇게 꿀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거예요.
자기가 지금 상황이 얼마나 급박해요.
지금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인데 언제 이 덩쿨이 끊어질지 모르는 이 상황인데 세상에 그 꿀이 너무 달콤한 거예요.
그죠? 너무 덥고 지친 여름날 시원한 그 꿀물을 마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시원하고 달콤하겠어요.
마찬가지로 이 사람이 지금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 거기에서 꿀물이 떨어진 거예요.
팔은 아파 죽겠고 이 덩쿨은 언제 끊어질지 모르고 나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내가 여기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이 상황에 세상에 그 꿀물이 웬 말입니까.
거기에서 우리는 지금 그 상황을 가지고 너무 어리석다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그죠?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말씀을 드렸을 때 그런 뉘앙스로 말씀을 드렸는데
저는 책 제목에 앞에 챕터의 제목에 인생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하면서 찰리 채플린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꺼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오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는 말로 시작을 했죠.
이 상황을 보았을 때 그 상황을 맞이했을 때는 비극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비극일 수 있겠죠.
그 상황에 놓여 있다면 누구나 다 비극일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대고 꿀물을 받아먹으면서 너무 좋아하는 그 사람의 모습을 생각해봐요.
얼마나 웃긴 일입니까? 그래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런 표현을 제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아원경에 나오는 인생을 묘사한 부처님의 비유 이 가운데 여러가지 상징적인 의미들이 있어요.
여기에 말하자면 동룡은 지옥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흰지 검은지는 여러분들도 듣는 동시에 이해가 가셨죠?
흰지는 낮을 이야기하고 검은지는 밤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시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시간이 똑딱 똑딱 똑딱 이렇게 가고 있다는 거죠.
그 가고 있는 모습 그것을 굉장히 상징적으로 흰지와 검은지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등나무는 무명의 줄 알지 못하는 어둠의 세계 코끼리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고요.
또 우물은 그 우물한 세상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모두가 우물 속에 사는 우물한 개구리 같은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네 마리의 뱀은 지수아풍을 이야기하고 넝쿠는 생명줄 그리고 꿀은 오용락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상징적인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시작으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이거는 우리 인생의 현주소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언뜻 생각하면 자신을 고통에 빠진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 불행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불행하게 생각되거나 고통스럽게 느낄 수 있어야 사실은 그로부터 벗어날 마음도 일어나는 법이다라는 글을 제가 뒤에 썼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했느냐 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느냐 안수정 등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느냐
이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요.
지난 시간에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내가 처해 있는 이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뭔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처한 현실이 어떠한가 내가 지금 어디가 아픈가 내가 어디에 문제가 있는가
그런데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어떤 것도 발전시킬 수도 없고 나을 수도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처해 있는지 내가 어디가 아픈지를 알아야 되는 것이죠.
그래야만 내 병의 원인도 찾고 치료도 하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
내가 처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아함경의 이야기, 비우, 안수정 등을 첫 번째 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러분들께 이제 산법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말씀을 드리는데요.
산법인은 보통 무상, 고, 무하 그리고 열반, 적정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열반, 적정을 빼고 산법인이라고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그 부분을 일체계고를 빼고 무상, 무하, 열반, 적정만 가지고 산법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네 가지가 약간 섞여 있는데
초기 불교 쪽에서는 무상, 고, 무하를 가지고 산법인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뒤에 대승불교 쪽 후대로 넘어오면 무상, 무하, 열반, 적정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산법인이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이 네 가지를 모두 아는 것이 중요하고
또 초기 불교에서는 재행무상, 무상의 개념부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안수정 등을 먼저 꺼내든 것처럼
이 세상의 처한 나의 현실, 그것을 먼저 직시해야만 불교가 시작된다.
그 직시하는 시점이 저는 고통, 괴로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저번에 강연에 오신 분들이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걸 보았습니다.
우리는 가만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듣고도 참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자비로운 마음이 심성 안에 다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제가 책에서도 썼습니다.
제가 불교를 시작하게 된 것은 죽음을 굉장히 많이 경험을 하면서
갑작스럽게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발심이 그제서야 된 것이죠.
그전까지는 그냥 머리로만 이해하던 불교를 이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데까지 하참 걸렸지만
진정으로 그 마음으로 내 느낌으로 그리고 온 몸을 다해서 온 정신을 쏟아서 그렇게 불교를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괴로움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시작을 하는 이유는 아까도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만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인식해서 거기에서부터 불교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그런데 이 괴로움의 문제는 사실 나는 지금 괴롭지 않은데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젊은이들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젊은이들의 어린 20대 청년들 10대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 아이들의 괴로움의 문제에 대해서 잠깐 이렇게 대화를 나눴는데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들의 고통을 잘 모릅니다만 우리는 모두가 다 그 시간을 거쳐왔습니다.
그들도 또한 어른들을 이해를 잘 못하긴 하겠지만 똑같이 그 나이를 또 제 나이를 어른들의 나이를 거쳐갈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괴롭다라고 하는 것이 사람마다 각각이 다른데 남의 괴로움은 그렇게 커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괴로움의 크기를 비유를 하자면 그건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모두가 다 내 괴로움이 굉장히 큰 것처럼 느끼거든요.
다만 그 괴로움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내 친구의 고통이 자기의 고통보다 더 크다라고 인식되면 오히려 제 괴로움이 줄어드는 그런 성향이 있기는 합니다.
어쨌거나 이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제가 꺼내는 이유는 나이가 많거나 나이가 적거나 상관없이 괴로움의 문제는 각자가 느끼는 그 지점에서 모두가 다 중요한 부분이라는 거죠.
나의 괴로움이 크고 너의 괴로움은 작아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너의 고통은 작고 나의 고통은 커 이렇게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답에 가깝다는 거죠.
우리는 다른 사람의 괴로움은 조금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나의 고통은 조금 더 확대시키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생각의 틀을 바꾸는 것, 이 전환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 전환점에 있어서 고통의 직면한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함으로써 그 고통이 줄어든다라고 하는 생각이 저에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이 중심을 바로 잘 잡아야 된다는 거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생을 살아가면서 사회생활을 한다거나 학교생활을 한다거나 또는 가정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친구들을 만나거나 수많은 인연들이 많이 이렇게 흩어져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굉장히 많이 휘둘리면서 삽니다.
아내의 이야기에, 남편의 이야기에, 자식의 이야기에, 부모의 이야기에 일생을 휘둘리면서 살아요.
직장 상사의 이야기에 또는 동료의 이야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스님의 이야기에 의해서도 우리는 휘둘리면서 살 수가 있겠죠.
그러나 불교의 그 고통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중심을 잡기 쉽습니다.
괴로움이 무엇인지, 내가 처한 현실이 어떠한지, 나의 고통의 크기가 어떠한지, 이 원인이 무엇인지 이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두 발을 땅에 딱 딛고 중심 잡고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괴롭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들의 고통을 깊게 느끼지 못합니다.
제가 살아온 10대, 20대가 굉장히 괴로웠어도 우리는 머리 깎고 출가해서 출가 생활하는 것 자체가 하루하루가 정말 너무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었거든요.
절집에 들어와서 사는 그 삶이 굉장히 힘들고 괴로운 삶이었어요.
어려서 가난해서 힘들었던 삶도 힘들었지만 절에 들어와서 머리 깎고 행자 생활하고 또 개받고 또 어른들 시봉하고 기도하고 이 더운 여름에 한여름에 옷을 겹겹이 몇 겹을 입고 그리고 기도를 하고 하는 그 상황이 하루하루 버텨내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삶을 산 저는 지금 이 방송을 시청하고 계시는 젊은 청년이 있다면 여러분의 고통을 제가 명확하게 모릅니다.
모르지만 다만 이 방송을 청취하는 여러분이라면 분명 시청하는 여러분이라면 분명 내 삶을 제대로 내가 지탱하면서 중심 잡고 살아가야겠다라고 하는 그러한 마음이 곧게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음 먹기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여러분 꼭 명심해서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알아요.
처음으로 경험으로 그동안의 삶에 내가 느꼈던 고통으로 그 감정으로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마음이 중요하고 정신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 그것을 다들 어르신들은 알고 있는데요.
젊은 사람들은 아직 모릅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이 감정에 끄달리거든요.
좋아하는 감정에 사랑하는 감정에 그래서 상처도 깊고 상처도 잘 받고 힘들어하고 어렵고 괴롭습니다.
그 괴로움을 그냥 이렇게 떠밀어 놓으면 안 됩니다.
이 괴로움이 언젠가 사라지겠지 몰라 이것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또는 약을 한다거나 술을 마신다거나 하는 여러가지 게임에 몰두한다거나 잠만 잔다거나
그러면서 어느 날 우울하다거나 방문을 꾹 닫고 안 나온다거나 이러한 모든 행위들이 자신의 괴로움을 직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느끼는 괴로움을 자기가 직면할 수 있어야 돼요.
이것을 싫다고 해서 외면해 버린다거나 밀어버린다거나 그러면 안 됩니다.
내 방구석에서 내가 이렇게 딱 들어앉아서 일본의 히키코모리처럼 들어앉아서 밖에 안 나오면 그만큼 나의 괴로움은 그 방에 쌓입니다.
내가 안 나오면 안 나올수록 내가 게임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무언가에 깊이 중독되면 중독될수록 나의 괴로움과 고통의 깊이는 크기는 점점 더 불어나고 쌓아진다.
그러니 여러분 정신 차리십시오.
20대 여러분 10대 여러분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오.
만약 방구석에 들어 박혀서 내가 괴로운데 뭔가 내 삶을 전환시킬 계기를 찾고자 노력하다가 어쩌다 모르게 이 방송을 시청하게 되었다면
이 방송을 청취하시는 시청하시는 여러분 정신 차리십시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괴로움을 직면하십시오.
내 고통을 직면하면 여러분들은 그 괴로움에서 머지않아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그 괴로움을 내가 인식하는 것이 그리고 불교의 시작입니다.
네 여러분 오늘은 본의 아니게 갑자기 법문톤이 되어버렸어요.
강의를 해야 되는데 제가 녹화 현장에서 저기 카메라 감독님이라고 할까요.
저분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고통 그들의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다가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 또 공감해야 되는 부분 이런저런 생각 끝에 여러분들께 이러한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방송을 시청하시는 분들은 또 갸우뚱 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사실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무슨 괴로움의 크기가 엄청 달라지고 그렇지 않습니다.
다 각자 느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요.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고통도 알고 있고 그 괴로움도 알고 있고 그렇습니다.
여러분들께 첫 번째 시간에 이렇게 괴로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은 불교 공부의 시작이 바로 괴로움이기 때문이고요.
그것을 잘 인식하시고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이 과정에서 여러분 꼭 나 자신의 모습 내 삶의 모습 이것을 명확하게 돌아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오늘 강의랄까요. 수업이랄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