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독립전쟁사(부제 : 무스타파 케말과 투르크 민족의 승리)

저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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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비디오 조회수·2024. 11. 1.
제국 해체의 위기 순간에, 무스타파 케말을 중심으로 펼쳐진 터키 민족주의자들을 독립운동사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입니다. 현재는 튀르키예이지만 독립 당시는 터키였기 때문에 터키로 설명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영상은 AI기반 자막프로그램인 vrew의 도움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스티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터키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위키백과입니다.
그런데 한글 위키가 아니고 영어 위키입니다.
영어 위키인데 좀 보기 어려우니까요.
이거를 한글로 바꿔서 한국어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터키 독립운동사에 대한 위키백과의 설명이 없기 때문에
터키 독립전쟁으로 보는 건데요.
사실 이걸로 봐도 크게 다른 게 없기 때문에
이걸로 설명을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충분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씩 보면서 제가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터키 독립운동이 언제 시작하냐 하면
여기는 이제 계열을 쭉 말을 해놓은 거고요.
사실상 제1차 세계대전이 모스만 제국의 패전으로 종료되면서 시작된 거죠.
그래서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1918년 10월
정확히는 이 무드로스 휴전협정이 체결되는 1918년 10월 30일부터입니다.
모스만 제국과 연합국 사이에 무드로스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많은 분들께서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이 먼저 항복을 하고
모스만 제국이 항복한 걸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또 계시지만
사실은 모스만 제국이 먼저 항복을 한 겁니다.
그리고 무드로스 휴전협정이 체결된 약 2주 후인 11일 날
독일이 항복하면서 콩페인요 휴전협정이 체결되거든요.
그렇게 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이 되는 거고요.
이 무드로스 휴전협정의 가장 큰 문제가 뭐였냐면
바로 모스만 제국의 군대가 해체되었다는 겁니다.
아예 동원해제가 되었고 해군과 공군이 연합국에 인계되었고
여러 가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게 뭐냐면
터키 해협을 통제하는 권리가 연합국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입니다.
터키 해협하면 두 개가 있죠.
다르다니엘스 해협하고 보스포로스 해협이 있습니다.
다르다니엘스 보스포로스 해협이 이렇게 있는데
이 해협의 통제권을 모스만 제국이 상실했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연합국의 반식민지화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정도로 국권이 침탈당한 것이었기 때문에
터키에 있는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이 무드로스 휴전협정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바로 민족주의자들의 봉기가 시작되는 것이죠.
그 내용들이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는데요.
그런데 정말 중요했던 것은 1918년 11월 13일
그러니까 무드로스 협정이 체결된 지 불과 2주 후에
프랑스의 여단이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해서 사실상 점령해 버립니다.
이스탄불이죠.
그렇게 되니까 무드로스 협정에서 있지도 않은 이스탄불 점령이 일어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민족주의자들이 봉기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지금 그 내용들이 이렇게 쭉 써져 있는 거고요.
그 저항의 중심에 쓴 인물이 바로 무스타파 케말입니다.
1918년 당시 무스타파 케말의 모습인데요.
상당히 다소곳한 모습으로 서 있네요.
이렇게가 한 가지 측면이고요.
그 다음에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봐야 될 측면이 여기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진 않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봐야 될 것이 바로 오수만 제국이 패배했으니까
오수만 제국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에 대한 협상 문제였습니다.
그거는 1919년 항복한 이듬해져 1월부터 파리 강화 회의에서 논의하게 됩니다.
연합국들이 논의를 하게 되겠죠.
그래서 이탈리아 같은 경우에는 여기 6위를 자기네들이 아나톨리아 반도 밑에 남부를 차지하겠다 이렇게 주장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커 협정에 따라서 프랑스는 이쪽 시리아 지역
그리고 영국은 이라크나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쪽 지역을 우리가 먹겠다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가 톡 튀어나와 가지고 그리스도 주장을 하죠.
왜냐하면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 측에 참전해서 승전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위대한 이상 이거를 통해서 이거는 영어로 한번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로 보면은 메갈리 이데아라고 많이 합니다.
메갈리 이데아 하면은 위대한 이념 이 정도로 해석이 되는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그리스주의라고 우리가 번역을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가 대그리스주의를 통해서 자기네들도 땅을 먹겠다 아나톨리아 반도 땅을 먹겠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그 주장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죠.
그리스가 주장할 수 있었던 그 이유가 뭐냐면 그거는 제가 다른 지도로 한번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지도는 펠로포네소스 전쟁 지도입니다.
BC 431년 지도인데 노란색으로 아테네와 그 동맹들 세력의 영역을 표시해 놓고 있습니다.
노란색이 비단 발산반도나 트라키아 쪽 뿐만 아니라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연안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는 여기가 원래부터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우리 땅이었다 라고 주장을 한 거죠.
그리고 다음 지도는 비잔티움 지도 인데요.
6세기 유스티니아노스 황제 시기에 이 빨간색에 있는 몽땅다 이 안에 있는 몽땅다가 유스티니아노스 황제의 땅이었죠.
비잔티움 그러니까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가 우리 땅이었다.
그러다가 11세기에는 이렇게 비록 줄어들게 되지만 옅은 분홍색으로
그리고 14세기에는 좀 더 트라키아나 발칸반도 쪽 일부만 가지고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고
결국에는 1453년에 콩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에게 함락되면서 우리가 이때 오스만 제국에게 우리 땅을 빼앗긴 거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되겠다 이런 의미죠.
그 이후에 오스만 제국이 비잔티움 제국을 먹은 후에 1683년에 이렇게 확장된 영토를 가지고 있다가
그 후에 최대 영토 이후에 조금 조금씩 땅을 빼앗기죠.
그러다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1914년 당시에는 유럽 영토는 거의 다 잃었고요.
여기 아프리카 땅도 잃고 이렇게 트라키아 지역하고 아나톨리아 반도 에스포타미아 지역 일부 이렇게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이렇게 축소된 상태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패배를 하니까
그러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가 그동안 잃었던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는 땅을 우리가 몽땅 다 회복하겠다 라고 주장한 거죠.
그게 바로 대그리스주의입니다.
그런데 그거를 프랑스 파리에서 주장을 한 건데 그 사람이 누구냐면은 바로 이 사람입니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 정치가고요. 지도자다. 총리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대표단을 이끌고 대그리스주의를 주장을 한 건데 이 주장이 먹힙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아까 그 지도로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스만 제국을 분할해서 영국과 프랑스는 이쪽 아랍 지역을 먹기로 했으니까
이쪽을 누가 대신 좀 통제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걸 그리스가 해주면 좋겠다 생각을 한 거죠.
영국과 프랑스는 그런데 문제는 이탈리아는 다르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탈리아는 그리스가 여기서 커지게 되면 대국으로 성장을 하게 되면 우리가 바로 옆 나라인데 우리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리스가 이렇게 땅을 먹는 것은 우리가 용인할 수 없다 이렇게 반대를 합니다.
그래서 파리 강화 회의에서는 결정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듬해인 1920년에 있었던 세브르 조약에서 결국에는 우스만 제국하고 연합국이 도장을 찍으면서 국경을 확정하게 되는 것인데요.
그 내용이 여기에 이렇게 나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를 일단 제가 표로 한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여러분 보시기 편하게 한번 다시 정리를 해보면
1918년 10월 30일에 무드로스 휴전협정이 먼저 체결이 되어서 우스만 제국이 항복을 하고
그 다음에 1918년 11월 13일 날에 무드로스 휴전협정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연합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봉기했고
그리고 또 다른 측면으로 1919년 1월 달에 파리 강화 회의에서 각국이 우스만 제국의 분할을 주장하면서 영토를 요청했는데
그 중에 그리스도 낑겨서 대그리스주의를 앞세워서 주장을 펼쳤다.
그렇게 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그 주장을 받아줬지만 이탈리아가 반대해서 조약이 체결하는 데까지는 가지는 못했고
대신에 영국과 프랑스가 그리스군이 5월 달에 스미르나, 지금의 이지미르입니다.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에 있는 여기 해안도시로 상륙하는 걸 도와줍니다.
그러면서 그리스 터키 전쟁이 발발을 하는 거거든요.
지금 다음 지도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보시면 스미르나가 여기입니다.
아테네가 여기 있죠.
여기 이제 블랙시의 흑해고요.
여기가 아나톨리아 반도입니다.
여기 출발해서 이렇게 배 타고 가서 스미르나, 이지미르에 상륙하는 거죠.
이 지도가 그러니까 파리 강화에 의해서 베네젤루스가 주장했던 바입니다.
보시면 이 검정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이게 다 우리가 먹겠다, 그리스가 먹겠다 하고 주장했던 땅입니다.
아나톨리아 북부 그리고 서부 해안까지 몽땅 다 차지하고 있죠.
그 내용의 영어로 쓰여져 있는 거고요.
다만 그중에서 여기 스트라이프 되어 있는 이쪽은 좀 충돌이 있었던 곳입니다.
컨플릭트 누구랑이냐면 그리스는 당연히 여기도 우리가 먹겠다, 우리 땅이었다 했는데 프랑스가 거절합니다.
프랑스가 여기까지 먹는 건 좀 심하지.
그래서 그리크 앤드 프렌치가 주장이 컨플릭트, 충돌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넘어가서 실제로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발을 해서 이지미르에 이렇게 3일 정도 항해를 해서 도착을 합니다.
하루, 하루 항해를 해서 도착을 하죠.
보시면 이렇게 그리스군이 1919년 5월 14일 날 출발해서 15일 날 스미르나에 상륙을 해서
그리스 터키 전쟁이 발발을 하는 것이고요.
이때부터 위로 북상을 하는 거죠.
왜냐하면 이쪽하고 연결을 해야 되니까요.
바로 쳐들어가지는 않고 북쪽 이스탄불이랑 연결하기 위해서 북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동시에 어떤 일이 있었냐.
바로 무스타파케말의 삼순 상륙이 있었습니다.
삼순 상륙이 있으면서 터키 독립운동이 시작이 되는데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무드로스 협정이나 이스탄불 점령으로 각지에서 봉기가 막 일어나고 있으니까
당시에는 거의 연합국의 꼭두각시 정권이 되어있던 우수만 제국이 반란을 진압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무스타파케말한테
네가 이쪽에 삼순에 가서 여기서 반란군들을 다 좀 정리를 해라.
그러면서 무스타파케말이 파견을 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언제 도착하냐면 5월 19일 날 도착을 하게 되는데요.
5월 16일 날 이스탄불을 떠나서 배를 타고 휘웅 날아가서 삼순에 도착을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반란군을 진압할 그런 임무를 띄고 왔는데
실상 한 것은 터키 민족주의자들을 규합하는 일을 여기서 무스타파케말이 하는 거죠.
그래서 우수만 제국의 반기를 연합국의 반기를 뜰 준비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에 보면 에르주름 시바스 회의가 이렇게 있었다.
여기서 사람들을 모아내는 거죠.
보시면 시바스는 여기고 에르주름은 여기입니다.
그래서 우수만 제국이 영향을 하고 있는 서부 말고 동쪽
아나톨리아 동쪽을 중심으로 해서 독립 결의를 하게 되고요.
결국에 앙카라 정부를 수립하게 되는 것인데요.
결국에는 이듬해 대국민의회 우리가 앙카라 정부라고 하는 것을 수립하게 됩니다.
그 내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스미르나에 상륙한 그리스인들
여기가 상륙한 사진입니다.
보시면 이즈미르 해안거리를 행진하는 그리스다.
상륙했습니다. 그리스 군대입니다.
여기는 우수만 제국의 사람들이겠네요.
그리스인도 있고 터키인도 있을 겁니다.
섞여서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내려보면 이렇게 이즈미르에 상륙하게 되니까 시위가 발생을 하는 거죠.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이거는 용납할 수 없어 그러면서 시위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자 그리고 넘어가서 그러면서 무스타바 케말이 저항군을 조직을 하는데
어디에서 바로 시바스나 에르주름에서 회의하고 있는 그런 모습들입니다.
대회를 개최해서 통합을 하고자 했고
결국에는 이때 당시에 무스타바 케말이 주장했던 그 땅들이 어느 정도인지 이렇게 나와 있는 겁니다.
쭉쭉 내려가서 그런 내용들이고요.
대국민의회가 여기서 설립한 그 모습이네요.
이쪽 여기입니다.
앙카라 정부가 성립하는 1920년 4월 23일의 모습입니다.
이게 이제 이 설명이고요.
자 또 쭉쭉 내려가서
그래서 이 앙카라 정부가 자기네들이 원했던 부역들을 여기에 설명을 하고 있는 건데요.
보시면 안 커지나?
네 커지네요.
앙고라, 이제 앙카라입니다.
이 앙카라 거버먼트가 주장하는 우리 땅이 원래는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있는데 케말 리스트라고 하거든요.
이 앙카라 정부 사람들을 케말을 따르는 사람들, 민족주의자들
케말 리스트의 인플루언스 영향하에 있었던 땅이 이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이미 다 그리스한테 넘겨진 상태고
여기는 프렌치한테 넘겨진 상태고 남부는
그리고 동쪽은 아르메니아한테 넘어간 상태죠.
그래서 이 터키 독립전쟁의 전역, 전선이 3개로 보시면 됩니다.
서부 전선에서는 그리스랑 싸웠고
남부 전선에서는 프렌치랑 싸웠고
동부 전선에서는 아르메니아랑 싸웠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거죠.
얘네들을 바깥으로 다 밀어내는 전쟁을 펼친 겁니다.
이렇게 보시면 되고요.
그렇게 해서 쭉쭉 내려서 세브르 조약을 체결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꼭 봐야 될 게 먼저 대국민의회가 설립되기도 전에
전투가 벌써 펼쳐지게 됩니다.
어디서 펼쳐지냐?
남부 전선에서 먼저 전투가 펼쳐지게 됩니다.
그래서 마라슈 전투, 우르파 전투, 안테프 전투가
1919년 7월부터 1921년 4월까지
프랑스를 상대로 펼쳐지게 되는데요.
그 전투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말고 이 지도를 보겠습니다.
터키 독립전쟁 지도를 여러 개를 볼 텐데요.
전부를 한꺼번에 표시하고 있는 지도가 없기 때문에
제가 여러 개의 지도로 보여드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양해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쪽에서 펼쳐진 전투는 여깁니다.
이쪽에서 전투가 펼쳐진 건데요.
보시면 마라슈, 우르파, 안테프
마라슈, 우르파, 안테프가 어디냐?
따로 보시면 여깁니다.
우르파가 이쪽이고요.
아나톨리아 반도 남쪽
그리고 가지, 안테프라고 되는데
여기가 안테프입니다.
그리고 마라슈도 이쪽 근처입니다.
남부 전선에서 먼저 전투가 펼쳐졌다 그랬는데
여기서 프랑스가 이기지 못하죠.
대부분 터키가 이깁니다.
그렇지만 아직 전투가 완전히 남부 전선이 끝난 건 아니고요.
21년 4월까지 계속됩니다.
그 사이에 앙카라 대국민의회가 성립됐고
그 다음에 세브르 조약이 체결이 되게 됩니다.
앙카라 정부가 수립됐지만
오수만 제국하고 연합국하고 세브르 조약을
1920년 8월에 체결을 하게 되는 것이죠.
이 설명입니다.
그래서 세브르 조약을 좀 보면
1920년 비준되지 않은 세브르 조약이다.
세브르 조약을 오수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
메흐메트 육세인데
이 사람하고 연합국하고 체결을 합니다.
메흐메트 육세를 한번 볼까요?
얼굴을
이쪽에 있습니다.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오수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입니다.
이 사람이 연합국하고 세브르 조약을 체결하면서
굴욕적인 영토를 상실하게 되는데요.
그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쪽 남부전선은 시리아한테 다 넘기고
알렉산드레타
여기가 안티오크죠.
과타이 지방 이쪽을 다 넘기고
동부는 아르메니아한테
에르주름이랑 트레비존
여기까지 다 넘깁니다.
서부전선에서는 스미르나
이쪽을 어떻게 하기로 하냐면
여기가 주민투표를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미르나 지역이랑
이쪽은 주민투표로
만약에 쿠르 디스탄이 이기면
쿠르스탄이 땅이 되는 거고요.
여기 스미르나에서도
만약에 그리스가 이기면
그러면 그리스 땅이 되겠다.
이렇게 세브르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거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터키 민족주의자들은 당연히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세브르 조약을 체결하기 전에
한 3개월 전에 동부전선에서
아르메니아 군이 동부를 침략을 시작합니다.
세브르 조약이 당연히
하루아침에 이뤄진 조약이 아니죠.
그 이전에 이미 아르메니아하고
연합군하고
니네 땅 요만큼 줄게 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아르메니아가 그래 여긴 우리 땅이야
그러면서 넘어오게 됩니다.
이것도 지도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도로 보면 여기죠.
이렇게 넘어오니까
터키는 맞서서 싸울 수밖에 없죠.
그래서 세브르 조약이 체결된 다음에
동부전선에서 샤르캄슈 전투
카르스 전투
이런 전투를 통해서 터키가 이깁니다.
카르스가 여기네요.
여기까지 밀어냅니다.
그리고 바로 12월 달에
귀인샤 평화협장을 체결해서
이제 너희들은 더 이상
아나툴리아 반도로 넘어오지 마라
아르메니아는 그렇게 해서 협정을 체결하면서
동부전선은 마무리가 됩니다.
하지만 동부전선이 마무리됐지만
서부전선은 아직까지 전투 중이었죠.
서부전선은 이듬해 1월부터 9월 13일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는데요.
제1, 2차 이노니 전투
아파온 카라이사르 에스키쉐이르 전투
이름이 어려우니까요.
에스키쉐이르 전투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주 분수령이 됐던 사카리아 전투까지
이렇게 전투를 펼치게 되는데
이것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지도로 보면요.
여기가 1, 2차 이노니 전투입니다.
여기, 여기고요.
그 다음에 에스키쉐이르 전투가 그 밑에 여기고요.
이 둠루프나르 전투는
이거는 이제 1922년
그 다음 해에 펼쳐지는 전투이기 때문에
이건 나중에 보고요.
이 전투를 치르고 나서
배틀로브 사카리아 전투
강 이름입니다.
사카리아 전투가 여기서 펼쳐지게 되는 건데
왜냐하면 이즈미리에 상륙한 그리스가
결국에는 원했던 거는
앙카라 정부를 무너뜨리는 거기 때문에
진군을 했겠죠.
진군을 했는데
앙카라 정부가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
바로 사카리아 강이었기 때문입니다.
보시면 다음 지도
이걸로 보시면 여기가 사카리아 강입니다.
고원부터 이렇게 출발해가지고
블랙시로 이렇게 흙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인데요.
앙카라가 여기 있으니까
그리스군이 이렇게 진군을 했겠죠.
강을 놓고 수비를 하면 좋으니까
여기서 전투가 벌어진 거죠.
위키백과 읽어보면
전선이 100km 정도 됐다고 합니다.
엄청 긴 전선이 형성이 되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 전투에서
전투 지형 자체가 터키가 유리했기 때문에
그리스가 패배하고 일단 퇴각하게 됩니다.
이 지도로 다시 보면
패배하고 이렇게 퇴각을 하죠.
근데 딱 봐도 병참선이 너무 깁니다.
이기기가 어려워요.
그리스가 처음에 이즈미르에 상륙할 때는
영국이나 프랑스가 도와줘서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잘 상륙을 합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또 계속 도와줬어야 되는데
자기네들도 1차 세계대전으로 피해 많이 받는데
계속 지원하지 않고 그리스가 혼자 스스로 한 거죠.
그래서 이 배틀 오브 사카리아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아 이제 그리스가 이기기가 어렵겠구나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휴전협정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요.
이르메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그 내용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사이에 남부전선이 먼저 정리가 되는데요.
남부전선 아까 위에서 보시면
여기 1921년 4월 안테프 전투가 있은 후에
10월에 결국에는 남부전선에서
터키 프랑스 간의 앙카라 협정이 체결되면서
프랑스가 이기기 어렵다.
우리는 여기 남부전선에서 철수할게.
이렇게 해서 조약을 체결하는데요.
여기입니다.
트리트 오브 앙카라 조약을 통해서 철수를 하는 것이죠.
안티호크 여기는 양국의 협상으로는
비무장 지대로 남겨놓기로 합니다.
그리고 철수를 했죠.
자 위키백가로 보면 그 설명들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파이팅 이게 싸웠던 얘기죠.
남부전선이 있었고 프랑스랑 했겠죠.
남부전선 말씀을 드린 내용들이고요.
그리고 동부전선이 있었고
넘어가고요.
영국 이야기입니다.
영국군과 교전했다.
크게 봤을 때는 동부전선이 또 있고요.
이것도 말씀드린 내용이고
쭉쭉 내려가지고
서부전선이 또 있었습니다.
사실상 이 서부전선이 가장 큰 전선이죠.
서부전선에서 이것도 말씀을 드린 내용들입니다.
이렇게 그리스군이 전진하고 있는 모습이고요.
이거는 무스타바케말 1차 인원위 전투에서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보시면 되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대공세가 남는데요.
서부전선만 남았으니까
서부전선을 어떻게 공략할 거냐
1922년 8월부터 대공세 작전이 시작이 되는데
터키의 작전입니다.
등루프니르 전투
그리고 결국엔 이지미르를 탈환한다
그 내용인데요.
이것도 지도로 먼저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도로 보면요.
등루프니르가 여기입니다.
여기서 전투를 펼쳐서
투르키시 무브먼트죠.
여기 고동색 이기고 난 다음에
그 여세를 몰아서
바로 이지미르까지 가서
여기를 다시 탈환을 하고
그리스군을 다시 배타고 쫓아내버립니다.
그렇게 해서 터키가 서부전선에서도 승리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승리를 했으니까
그 다음 달에
무다니아 휴전협정을 체결을 해서
그리스 터키 간에 서로 군사행동을 하지 말자라고 하면서
협정을 맺게 됩니다.
그 내용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겁니다.
내려보면
무다니아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적대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되어 있죠.
이 카툰을 하나 보고 갈까요?
이 카툰은 정치 만화인데요.
무스타바 케말이 아나톨리아 반도
여기가 아나톨리아 반도겠죠.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폭탄 들고 저리 꺼져 하고 있고
그리스군이 그리스군인가요?
뭐 그리크킹 맞네요.
콘스탄틴이었나 봅니다.
왕이 사람이 이렇게 도망가고 있는
그런 모습을 그려놓은 카툰입니다.
자 넘어가서요.
그래서 결국에는
무다니아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난 다음에
로잔주약을 체결하게 되는 것이죠.
로잔주약은 1923년에 세브르주약을 대체하여
로잔주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면서 터키의 독립이 보장되었다고 하는데요.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시면 여기가 그리스 땅이 될지도 몰랐는데
결국 국경이 이렇게까지 넘어가면서
동트라키아 지역을 터키가 차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는 비무장 지대로 하기로 하고
그 다음에 해협 관리는 공동으로
상선들이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협정도 하고
그리고 동부전선도 깨끗해졌죠.
동부전선은 아르메니아가 다 몰아내졌습니다.
그러면서 아라라산이 여기 있네요.
아라라산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노아의 방주가 최종 도착했던 그 산이죠.
아라라산
그리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 이렇게 흐르고요.
남부전선에서는 프랑코 터키시 어그리먼트에 의해서
양국 간의 협정에 따라서 이렇게 국경을 근거지만
실제로 로잔조약에도 채택이 돼서
그런데 양국 간의 협정에서는 비무장 지대로 하기로 했지만
여기는 결국에 프랑스형 시리아로 포함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아나톨리아 반도를
그 앙카라 정부가 무스타파 케말이 다 차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로잔조약의 지도죠.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터키 공화국이 수립됩니다.
이걸 볼까요.
언제 수립되냐면
10월 29일 날 터키 공화국이 선포되는 것이죠.
1923년 10월 29일에 공화국이 정식 선포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설명이 쭉 나와 있는 건데요.
이거를 보면 미국 신문입니다.
텍사스주에 있는 신문이 터키에 있는 조지 워싱턴이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 독립전쟁을 이끌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니까요.
그 모습을 빗대서 무스타파 케말이 민족주의자들을 이끌고
연합국이나 그리스 다 몰아냈다.
이렇게 표현한 그림이고요.
마지막으로 영향을 보면 아르메니언 학살
이것도 1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건데
이 내용도 설명이 있고요.
우리가 보면 그리스와 터키의 인구 교환이 있었다.
이걸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뭐냐면 그리스에도 터키인들이 수십만 명이 살고 있었고
터키에도 그리스인들이 수십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잔조약이 체결되면서
이렇게 인구를 교환하기로 했거든요.
그래서 그리스에 있는 터키인들은 아나톨리아 반도로 넘어가야 됐고
여기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은 거꾸로 다 그리스로 넘어갔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수가 수십만 명에 수백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수백만 명까지는 아니지만
읽어보면 수십만 명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때 당시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버리기도 했죠.
같은 동네에서 이사가기도 어려운데
전혀 생판 딴 곳으로 가야 됐으니
쉬운 일이 분명히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있었다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게 해서 여기 터키 공화국 선포까지
이번 시간을 통해서 한번
그 터키 독립운동사에 대해서 한번 말씀을 드려봤는데요.
제가 여러분들 보시기 편하게
터키 독립운동사에 있었던 전쟁들의 핵심 비교표를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터키 전쟁은 터키 독립 전쟁의 일부다.
터키 독립 전쟁이야말로 터키 그리스 전쟁을 포함한
터키 독립을 위한 종합적인 전쟁이었다.
주요 전선은 서부전선에서는 그리스랑 싸웠고
동부전선에서는 아르메니아랑 싸웠고
남부전선에서는 프랑스와 싸웠다.
기타 영국이랑도 잠깐 싸웠다.
그리고 기간은 1919년부터 22년까지
터키 독립 전쟁은 23년까지 있었다.
대결 구도는 그리스 대그리스주의 대
터키 민족주의자 간의 전투였고요.
그 다음에 터키 독립 전쟁은 터키 민족주의자 대 연합국
연합국이라 함은 그리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이런 국가들 간의 대결이었다.
그래서 목표는 대그리스주의에 따른 영토 확장 그리스의 목표죠.
그리고 터키의 목표는 그리스군의 철수
독립 전쟁은 당연히 터키 독립의 국제적 인정을 목표로 한 전쟁이었다.
전쟁 결과는 터키가 승리했다.
몽땅 두 개 다.
그래서 결국에 그리스는 철수했고 로잔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결국에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끝났다.
이렇게 한번 정리를 해보면
나중에 잘 기억이 안 나시면
요 표만 핵심 비교표만 보셔도 구분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영상은 이 정도로 마치고요.
다음 시간에는 독립운동사를 좀 공부를 해보니까 상당히 재미있어서
다른 국가의 독립운동사도 한번 다뤄볼까 합니다.
다른 국가가 어떤 국가인지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고요.
다음에 말씀드리면서 다음 시간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