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초정밀 기술? 다뉴세문경(정문경)의 미스터리! 초고대문명, 외계인, 오파츠? | 미스터리, 고대 유적, 유물

비밀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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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비디오 조회수·2024. 11. 1.
고조선에 초정밀 기술이 있었다?
학자들을 놀라게 한 유물은 바로, 다뉴세문경(정문경)이다.
이것은 기원전 3세기 경, 고조선 시기에 만들어진 청동 거울이다.
그런데 다뉴세문경은 세계 어느 청동 유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밀한 기술력으로, 온갖 의혹을 불러왔다.
너무 정교하고 세밀해서, 발굴 초기에는 조작된 유물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연구 결과 진품으로 드러났으며, 현재 국보 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이후 다뉴세문경의 미스터리는, 초고대문명, 오파츠, 외계인과 같은 가설이 등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현대 기술의 도움을 받아도 재현하기 어려, 미스터리 유물, 정문경(다뉴세문경).
그 안에 담긴 비밀과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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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충청남도 논산, 육군훈련소 근처에서 참호를 파던 훈련병은 땅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청동으로 만들어진 고대 유물들로 청동거울과 방울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청동거울은 1971년에 국보 141호로 지정되었고, 청동방울을 포함한 다른 유물들은 1973년에 국보 146호로 지정되었다.
그 중 국보 141호로 지정된 청동거울의 정식명칭은 정문경이다.
그런데 대중에게는 단일세문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꼬리가 여러 개 있는 세밀한 문양의 거울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정식명칭인 정문경도 곱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인 정할정자를 써서 고운 무늬 거울이라는 뜻이다.
정문경의 앞면은 매끄러운 판으로 되어 있으며 거울의 기능을 안다.
뒷면에는 두 개의 고리가 있고 무늬가 새겨져 있다.
정문경은 기원전 3세기경 고조선 시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청동은 아주 귀했고 만드는 방법도 어려웠다.
그래서 청동물건은 지배계층만이 가질 수 있었다.
특히 고조선에서 청동거울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단군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는 화농이 땅으로 내려올 때 환인으로부터 세 가지 물건을 받아왔다고 한다.
그 세 가지 물건은 칼과 방울 그리고 거울이다.
이는 천부인이라고 부르며 신물로 여겨졌다.
이렇듯 이 시기에 청동거울은 제사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었으며 종교적인 의식에 사용되었다.
정문경의 뒤에 있는 고리에 끈을 걸어 제사장의 목에 걸고 의식을 진행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청동거울로 태양의 빛을 비추며 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사람들로부터 경외감을 끌어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청동거울은 한반도 남부지역과 중국, 일본에서도 출도되는 대표적인 고대유물이다.
그런데 정문경과 같은 뛰어난 청동유물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문경을 본 학자들은 크게 놀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문경만의 특별하고 놀라운 점은 극도의 정밀함이다.
정문경의 지름은 21.2cm다.
그런데 이 안에 무려 1만 3천여 개의 선과 100여 개의 동심원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무늬의 높이는 0.007mm, 선 하나의 폭은 0.05mm다.
그리고 이 선들 사이의 간격은 0.3mm밖에 늘지 않는다.
이는 1mm 안에 머리카락 크기의 선을 3개 그려넣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이 무늬는 확대경을 대고 봐야 할 정도로 정교하고 세밀하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또 있다.
정문경은 금속을 녹여 만든 쇳물을 틀에 부어 만든 주물작품이다.
우선 틀에 무늬를 새겨 모양틀을 먼저 만들고 이 안에 청동 쇳물을 부어서 붙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세밀한 모양을 새겨 틀을 만드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난관은 또 있다.
틀을 잘 만들었더라도 청동을 부었을 때 이토록 세밀한 모양은 잘 찍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전문가들조차 주물 방식으로 이렇게 정교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다.
많은 연구진들이 정문경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복원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 시작부터 어려웠다.
우선 100여 개의 동심원과 1만 3천여 개의 선을 정교하게 그려내는 도면 작업에서부터 수차례 실패를 겪었다.
그리고 그 다음 거푸집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실패가 계속되었다.
거푸집이 깨지고 무늬가 뭉개지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수십 년을 연구한 결과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는 제작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오은 모래가 섞인 점토를 발라 구워 틀을 만든다.
그리고 이 틀에 세밀한 문양을 새긴다.
원을 그릴 때는 다치고라 불리는 현대의 컴포스와 같은 기능을 아는 도구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다음 뾰족한 도구를 이용해 남은 공간 사이사이에 선을 그려넣어 메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는 이 틀에 청동선물을 부은 다음 식히고 거푸집을 제거한다.
그러면 청동거울이 완성된다.
복원과정에서는 물론 현대의 도구와 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과정이었다.
이 방법을 사용하여 학자들은 정문경의 복원에는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현대의 기술이 들어간 복원과정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은 원본의 정교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또 있다.
정문경의 금속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황금비율이라고 할 만큼 절묘했다.
강도는 높으면서도 거울의 빛단산은 뛰어난 최적의 비율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정문경을 만든 이는 정교한 기술과 더불어 금속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청봉기 시대 말 기원전 3세기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처럼 정밀한 청봉거울을 만들 수 있었을까.
오로지 사람의 눈과 초보적인 고대기구들만 사용해서 만들었다기에는 그 정교함이 신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발굴 초기에는 후대에 만들어져 위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있었다.
또한 일부에서는 초고대 문명이나 외계인의 개입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문경은 현대과학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놀라운 유물이다.
또한 수십 년의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여전히 완전하게 재현하지 못했다.
고조선의 뛰어난 기술력과 미스터리가 담겨있는 북보 141호 정문경.
이것은 현재 송실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