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후로 온 줄" 탈북녀가 비행기에서 한반도 보고 기절한 뻔한 이유|유현주 1부

달란트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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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영상은 11월 14일에 촬영되었습니다. (시청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튜브 '고운여성 유현주' 바로가기: https://youtube.com/channel/UCCdCoTXjNVtyNK3TsR1JwRA?feature=shared
00:55 "타임머신 탄 줄.." 탈북녀가 비행기에서 한반도 보고 충격받은 이유
16:40 "이걸 이렇게 쓴다고.." 탈북녀가 한국에 오자마자 보고 경악한 물건
#탈북민 #북한 #탈북스토리 #북한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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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한 명이 갑작스럽게 저한테 남한에 가자는 제안을 하는 겁니다.
여기 지금 아가씨들처럼 한국에 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500명 가까이 베트남으로 들어오기 전 국가로 출방을 보내겠다고 한 거예요.
근데 이건 북한으로 보내겠다는 말과 똑같은 거거든요.
그래서 탔는데도 이게 정말 대한민국 가는 게 맞을까 두려움도 있었어요.
딱 내리다 보니까 정말 대한민국의 도로가 쫙 보이고 아파트 고층 건물들이 쫙 보이는데
나는 내가 타고 온 것이 비행기가 아니다. 타임머신 같다.
버스에 타자마자 버스 기사님들이 버스에 타면서
검은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자리에 앉으시라고
버스 기사님! 버스 세워주시오! 세워주시오!
유현주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유현주님 모시고 또 여러분들이 관심 많아하시는
탈북이라든지 아니면 북한 관련된 이슈 좀 달아볼 텐데요.
저희 채널에 처음 나오셔서 간단하게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한민국에서 20년 차 자유를 만끽하면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는 탈북방송인
누가 봐도 형편없이 고운 녀석 유현주입니다. 반갑습니다.
와, 20년 차면 완전히 대한민국 국민이 다 되셨겠네요. 진짜.
네. 2000년대 초반이죠. 2004년도에 탈북을 했고요.
20대 초반부터 중국을 통해서 밀수로 들어온 한국 비디오물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것이 저의 탈북 동기가 되었어요.
어려서부터 저희는 세뇌교육을 통해서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고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널려있고
벌벅고 굶주리고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이다.
그거를 늘 노랫말처럼 들어봤기 때문에
어버이 장군님 계시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온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정말 저희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본 드라마 속의 거지 들은 완전 멋있었고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연애를 하다가 헤어지게 되면
둘 중에 한 사람은 비행기 타고 해외를 떠나더라고요.
그리고 더 기가 막힌 건 몇 년 뒤에는 선글라스를 뒤집어 쓰고 나타나더라고요.
성공한 모습도.
그런데 그 비행기를 타고 갔다 온 당사자는 그냥 평범한 시민이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높은 고위 국간부나 아니면 국가대표 선수나 중앙예술단체도
해외 공연을 자주 못 간단 말이죠.
저희는 비행기는 테레비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이고
그림책에서만 볼 수 있는 물건인데 남한 사람들은 아무나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 꼬랑지를 잡을 수가 있고 해외 공기를 마실 수가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물론 드라마 속에 남한의 모든 실상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남한의 실상이 보이잖아요. 배경이 보이잖아요.
그걸 보면서 제가 살고 있는 북한이 보이는 거예요.
북한이 보이니까 그 북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제 자신이 보이는 거예요.
어땠을 것 같아요? 상대적 박탈감에 두는 거예요.
너무 행복하고 나는 우월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한 사회를 보니까
제가 살고 있는 북한 사회는 21세기가 아니구나. 조선시대.
그래서 처음에는 솔직히 20대 때고 하니까 호기심에 하나 둘 보기 시작했고
보다 보니까 재밌고 보다 보니까 대리만족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저렇게 살 수 없으니 대리만족이라도 하자.
그런 마음으로 그 비싼 돈 주고 몰래 몰래 숨을 죽이면서 봤는데
보다 보니까 대리만족이 안 되더라고요.
왜? 화면이 꺼지는 순간 현실로 돌아오는 게 숨이 막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됐고
나는 왜 이런 세상에 우리 엄마 아버지는 나를 이 땅에다 태어나게 했을까?
왜 남한에도 낳게 못 했을까? 계속 내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도
그 사회에서 답을 못 찾았어요. 그래서 우리 그런 말 있잖아요.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라.
중이 떠나라. 맞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 체세에서 이제는 더 살아갈 이유를 못 찾겠고
희망도 없다라는 것을 깨달았던.
그래서 차라리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시도를 해보자.
이것은 나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아니겠나라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어요.
먼 훗날 탈북을 안 하고 그 사회에서 살았으면
내가 그때 갔을까 그때 갔을까 먼 훗날에 져졌을 텐데
미안해지지 않으려면 지금 한 번 시도해보자.
그런 마음으로 탈북을 했는데
정작 마음먹었다 해서 탈북을 한다고 해서
또 무조건 성공하고 무조건 남한으로 오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죠.
정말 간절히 간절히 바라면 뭔가 이뤄진다고 하잖아요.
친구 중에 한 명이 갑작스럽게 저한테 남한에 가자는 제안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같이 드라마도 본 친구이긴 하지만
그렇게 남한에 가자는 이 정치적인 발언을 함부로 한다는 건
혹시 녹음기를 틀어놓은 게 아닌가.
혹시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네. 함정에 빠뜨리려고.
그래서 저는 11년째 의무교육을 받고
아버지 장군님 품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게 모자라가지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냐라고 딱 떠봤어요.
그렇게 딱 얘기를 던졌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웃더니 현지야 나 믿어 하면서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는 거예요.
중국 핸드폰이고 자기 사촌동생이 몇 년 전에 행불이 됐었는데
대한민국 대구에서 살고 있더라.
네가 믿지 않을까 봐 미리 통화를 시켜줄게.
그게 통화가 가능해? 남한하고, 남조선하고 통화가 된다고 했더니
국경 지역 일대에서는 중국 핸드폰에 진화가 터지니까
통화가 가능하다 해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통화까지 해서 확인을 시켰고
그래서 오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근데 왜 나냐 했더니
원래는 그 친구 혼자 오기로 했었는데
혼자 가다니까 용기가 안 났대요.
그래서 가장 남한에 가자고 하면 콜 할 사람이 있는 거예요.
가장 날라리 같은 생각을 하고 저라면 왠지 오케이 할 것 같더래요.
그래서 저한테 왔고 그래서 저도 나도 정말 가고 싶었다.
오케이 해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도망간 걸로 먹고
4개월 만에 우리 자유대한민국의 품에 무사히 안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단 한 번의 북송 없이 직행으로
4개월 만에 대한민국에 왔다는 것은 정말 저한테는 천운이고 축복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중국으로 일단 가신 거죠? 국경을 넘어가시고
그 다음에 어떤 경로로 오시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는 중국만 넘으면 바로 한국 가는 줄 알았는데
중국에서는 탈북민들을 일단 난민으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우리는 불법으로 넘어온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되고
중국에서는 저희들을 잡으면 무조건 또 북한에 북송을 시키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국 내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일단 진입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중국에서는 안 되고 또 중국을 경유해서 베트남을 가야 되고
또 우리 원래 넘어가니까 브로커가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미리 그 노선을 얘기하더라고요.
중국 국경지역인 난닝까지 갈 것이고
난닝에서 또 넘어서 베트남을 갈 것이고
또 베트남에서 또 있다가 바로 또 캄보디아로 가서
캄보디아에서 최종적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순차적으로 이렇게 브로커들이 계속 바뀌더라고요.
연길까지 바뀌고 또 연길에서 북경까지 또 다른 사람 바뀌고
이렇게 바톤토치 하듯이 그렇게 해서 가는데
변방에서 연길까지 들어갈 때 초서가 몇 개가 있는데
그때는 버스를 타고 시골이다 보니까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돼요.
그런데 브로커가 이런 주의사항을 얘기해 주더라고요.
중간에 초소에서 변방대에서 오를 수 있다.
그러면 너희들은 절대로 그 사람들하고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일일이 검문검색을 하지 않고
그냥 랜덤으로 붙어보고 조금 무심스러운 사람한테 중국말을 걸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딱 이렇게 보아하니
북한에서 좀 그렇게 굶으면서 고생스럽게 살았는 것 같지는 않다.
피부들이 다 뽀샤시하니까 그냥 자는 척 쇼만 하게 되면 그냥 지나갈 거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그 사람 눈 마주치면
당연히 자연스럽게 회피하게 될 거잖아요.
눈 내리깔고 범죄자처럼.
일부러 그러면 피하는 사람한테 말 걸 거 아니에요.
그런데 처음부터 오래전부터 잤던 것처럼 연기를 해야 된다.
연기력이 좋으셨네.
그런데 그냥 자고 자는 척하고 있지만
정작 제 옆을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들은 저는 평생 잊을 수가 없죠.
따박따박 소리가 가끔은 한동안 뚜부덕뚜부덕 소리만 나도
자꾸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트라우마처럼 남았는데
그래도 그런 위험한 과정들을 무사히 넘기고
대한민국에 오게 되어서 저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보니까 2004년 당시 베트남과 우리 정부의 공조로
전세기를 타고 오신 그런 특별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여기 대해서 좀 말씀해 주세요.
그러니까 브로커가 얘기한 적으로 중국 얘기해준 대로
중국에서 또 베트남 가서 베트남에 있다가
저희는 베트남에 가게 되면 또 베트남에서 바로 또 이렇게 국경.
중국에서는 하룻밤 자고 나고 그냥 바로바로 쉬지 않고
베트남 국경까지 갔기 때문에 그래서 베트남에서도 또 갔다가
이렇게 바로바로 한 달 내에 한국에 도착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베트남에 딱 들어가니까 한국 교민들이 저희를 마중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오토바이 타고 들어갔는데 거기 가니까
자기 인적 사항들 적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적고 언제 왔고 어쩌고 저쩌고 이렇게 다 썼어요.
그런데 그렇게 다 쓰고 나서 저희는 언제 한국에 갑니까?
라고 했더니 많이 기다려야 돼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많이? 몇 시간이요? 그랬더니 몇 시간 기다리면
또 우리가 이동하나 또 다른 사람 바톤토치
그 사람에 이끌려서 가야 되나라고 물어봤는데 웃더라고요.
그랬더니 여기 지금 아가씨들처럼 한국에 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500명 가까이 돼. 그래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최대 오래 있는 사람들이
한 8개월 9개월 정도 되니까
당신들도 이 공간에서 사옥이었는데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바깥에 못 나간다. 우리는 불법치료이고
우리는 당신들을 보호하고 안가해서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일단 이 안에 있으면 잡혀갈 걱정은 없다.
먹을 거 다 갖다 해주고 제공을 해주니까
그런데 그 공간에서 8개월 9개월이
1년 가까이 여기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숨이 꼭 막히는 거예요. 제가 처음에 탈북을 한 시기가 3월달이거든요.
얼음 위로 달렸어요. 3월달은 따뜻한 봄이지만
북한 한경도 쪽은 겨울이란 말이에요.
그 추운 지역에서 한 열흘 만에 갑자기
영상 40도 찜통토이 거기에서 숨이 막히는데
여기서 8개월을 살아야 된다고 하니까 너무나도 기가 막혔어요.
그런데 그 안에 500명 가까이
한 4개인가 5개, 5군데에서
이렇게 한 100명 가까이씩 체류하고 있었는데
아마 여기저기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서 베트남 당국에 의해서
저희가 전부 적발이 된 거예요.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또 비상이 아니겠습니까.
국가 안보 차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불법으로 들어온 걸 자기네가 모르고 살았던 거잖습니까.
그래서 경찰들도 우리 있는 데 확인하고
당국자들도 와서 보고 그리고 우리는 분위기상
무슨 말을 하는지는 우리는 못 알아듣지만
느낌적으로 알 수 있잖아요.
뭔가 안 좋게 흘러가고 있구나.
분위기가 안 좋다.
분위기가 안 좋다, 위험하다.
그래서 그다음에 그분들이 가신 다음에
저희를 보호해주고 계신 사장님이라고 불렀는데
교민이었거든요.
그 분한테 물어봤어요.
어떻게 되는 거냐 했더니 이 사람들은
지금 주장이 뭐냐면
베트남으로 들어오기 전 국가로
추방을 보내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북한으로 보내겠다는 말과 똑같은 거거든요.
똑같아 보죠, 사실.
중국으로 간다게 되면
중국은 우리 북한으로 또 바로 북송시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건 죽으라는 건데 그렇게는 할 수 없지 않냐.
어떻게 어떤 도움을 청할 수 없느냐.
우리를 제발 좀 살려달라고 하면 안 되냐.
그래서 일단 조용해라, 자중해라.
자기도 지금 모르겠다.
일단은 이게 대한민국 정부에도
보고가 들어갈 거니까 어떻게 나서 주겠지 했는데
아니라 다를까 한 달 뒤인가 두 달 뒤에
대한민국하고 베트남 정부하고 협상이 들어갔고
그래서 인도적인 차원에서 도와달라고 했고
베트남에서는 또 그거 눈감아주는 데서 뭔가 요구했겠죠.
그런데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저희는 모르고
일단 저희는 국비리에 조용히 데려가는 조건으로
그래서 새벽 3시에 대한민국 전세기를 타게 되었고
베트남 경찰들의 에스커트석에 공항까지 가서
그러니까 일사불란하게 막 움직여지더라고요.
그다음에 여권 사진 찍고 대한민국 임시 여권이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여권을 가지고 공항을 가서 찍고
원래 우리가 출국할 때 하듯이
그 나라에서 그 도장 찍고 그렇게 하고 비행기를 타게 된 거죠.
그렇게 탔는데도 이게 정말 대한민국 가는 게 맞을까라는
또 두려움도 있었어요. 너무 행복하니까
또 한쪽으로는 간다고 해놓고 또 북한으로 데려가는 게 아닐까라는
두려움도 있었었는데 우리가 분명히 베트남에서
바로 전세기를 타고 간다라는 게 결정이 된 다음에
중국에서 몇 년 살던 사람들이 호치민 공항이 가까우니까
비행기가 낮게 보이거든요. 비행기가 아주 낮게 보여요.
우리가 김포나 인천공항 근처에서 비행기 높이 아니고 가까이서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저 등이 파란 색깔 저게 한국 비행기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파란색 비행기만 보게 되면 언젠가는 우리 저 비행기에 몸을 싣고 가겠구나.
그러면서 이 전세기가 올 날을 못 봐주게 기다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정작 그 못 봐주게 기다리던 날 그 비행기를 탔어요.
꿈이 이루어졌네.
탔는데 살짝 창문 밖으로 봤는데 비행기 꼬랑지 쪽이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안 파랗더라고요.
그래요?
네.
대안항공이 나와야 되는데 그게 안 나오고.
네. 우리가 타려고 했던 우리가 알고 있던 한국 비행기가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한국 비행기 아닌데 진짜 북한 가는 거 아니야?
한국 안 가는 거 아닌가? 이런 너무 영화를 많이 봤나 봐요.
드라마를 많이 보고 우리 납치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에.
그리고 승무원들 막 친절하게 인사하는 승무원들 보니까 말투는 딱 남한 사람인데
목에다 이렇게 빨간 인공기 같은 얘가 스카프를 딱 이렇게 들었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이 비행기 어디로 가는지 정확하게 좀 말씀해달라고 막 붙잡고 그랬어.
그랬더니 이 항공기는 무슨 무슨 몇 편 아시아나 항공이고.
아시아나 항공기.
네. 베트남에서 이륙해서 메스에 착륙하는 대한민국 어디에 착륙하는 아시아나 항공기입니다.
그러니까 또 옆에 있던 애가 아시아요? 대한민국이 아시아에 있지 구라파에 있습니까?
항공사 이름이 그렇다는 건 전혀 모르니까.
그래서 안심하십시오.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무조건 가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미 비행기 탔기 때문에 도안에 든 증거예요.
며칠 못 탈출할 수도 없고.
탈출할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운명에 맡기겠다 했는데
아니라 다를까 대한민국 용의에 딱 들어섰을 때 기장님으로 보이는 남자 목소리가 나더라고요.
여러분들 그토록 오고 싶었던 자유대한민국의 영공에 들어섰습니다.
방송 나오는데 울컥하더라고요.
내리다 보니까 정말 대한민국의 도로가 보이고 아파트 고층 건물들이 보이는데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이 자유대한민국의 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오게 됐다는 게 꿈만 같고
너무 그때 행복했던 것 같아요.
언제 오셨어요? 낮에 오셨어요? 아니면 저녁에 오셨어요?
베트남에서는 새벽에 출발했는데 도착한 건 낮시간에 들어오게 됐거든요.
한 2, 3시쯤 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친구들은 밤에 들어온 친구들은 내려다 보고
대한민국을 아까 불난 줄 알았다고 그러더라고요.
불빛이 막 밤에 보이니까.
그런데 저희는 낮이니까 불빛이 아니라 도로가 보이더라고요.
이렇게 쫙쫙 걷어있는 도로. 그다음에 고층 건물도 이렇게 보이더라고요.
저희는 또 평양이 아니라 지방이다 보니까 정말 한국의 60년대, 70년대 모습을 방불케하는
전혀 발전되지 않은 그런 도시에서 살다가
이 고층 건물 쫙쫙 뻗어있는 이런 것들을 보니까
드라마에서 보던 그대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약간 타임머신 타고 오신 그런 기분도 좀 들었겠네요.
제가 그냥 처음에 왔을 때 전 세계로 분명히 타고 왔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는 과거나라에서 미래로 갖다 준
나는 내가 타고 온 것이 비행기가 아니다. 타임머신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튼 정말 잘 오셨다라고 생각이 들고
또 오시고 나서 인천공항 딱 들어가셨을 거 아니에요?
그때 약간 그런 분위기라든지 들었던 생각은 어떠셨어요?
저희는 일단 전세기를 타고 와서 그냥 바로 이렇게 출구로 나오는
일반적으로 오지 않고 한꺼번에 많이 왔기 때문에
저희는 나갈 수도 없대요. 원래는 그렇게 나가기로 됐었는데
두 정부하고 협상하기를 비밀리에 가는 걸로 돼 있었는데
정말 자유대한민국은 비밀이 없더라고요.
분명히 저희는 비밀리에 온다고 들었거든요. 조용히.
그런데 오고 나니까 어떻게 알려졌는지 기자들이 새카맣게
지금 공방에 카메라 들고 있어서 저희가 여기로 가게 되면
얼굴 다 노출되고 하기 때문에 우리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당신들은 또 북한에 가족들도 있고 하니까 얼굴이 방송에 나가면 안 되지 않겠냐.
그래서 여러분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차원에서 여기 버스 가까이 왔고
최대한 기자들이 있는 저쪽을 얼굴 돌리지 않고 호명하는 순서대로
내리셔서 버스를 타시면 되겠습니다.
버스도 저희들을 가리게 하기 위해서 최대한 가까이 비행기에 붙어서
그렇게 해서 비행기를 올라 탔거든요.
타고 그다음에 커튼이 있더라고요. 고속도로 가는데
버스가 한 5호차인가 6호차까지 있었는데
그 오픈카드를 타고 기자들이 뭐 하나 건지려고
이거 찍고 저거 찍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그런데
이렇게 틈새로 봤거든요. 그런데 그토록 오고 싶었던 대한민국이고
그 대한민국의 거리들과 산천을 마음대로 자유롭게 보고 싶은데
그 기자들 때문에 커튼을 치고 앞만 보고 가셔야 된다고.
그래서 거기 제일 아쉬웠어요.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온 순간을
바깥을 마음대로 내다보지 못했는데 옆 하나 틈 배기로 기자들이 왔다 갔다 하는
그것만 봤었죠. 그리고 버스에 타자마자
버스기사님들이 마이크를 잡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렇게 버스에 타면서 검은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자리에 앉으시라고. 그래서 대한민국 오자마자 맛있는 간식을 주려나 보다.
이렇게 다 좋아서 그랬는데 아니에나 다를까요.
조금씩 하다가 버스기사님 버스 세워주시오.
세워주시오. 톡 나옵니다. 멀미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버스 타고 한 시간 넘게 가는데
차를 많이 안 타본 사람들이다 보니까 특히 버스를 타면 멀미를 많이 하시니까
그러니까 아까 나눠드린 비닐봉지
이렇게 토할 때 쓰라고 드린 거니까 거기에다가
마음 놓고 토하라고. 그래서 처음에는 멀미해서 토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 그걸 지켜보는데 토 냄새가 나니까
그렇게 갔다는 게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다행인 것 같아요. 그렇게 아무튼간에 이동을 하신 다음에 바로
국정원으로 가신 거죠. 국정원에서 또 어떤. 국정원으로 들어가는 게
다 그냥 생방송으로 나가버렸더라고요. 그게 상당히 이슈가 됐었나 보네요.
단체로 오시다 보니까. 단체로. 468명이라는
어마무시한 일원이 한꺼번에 들어왔는데 그것도
이틀에 걸쳐서. 왜 하필이면 같은 날 비행기 두 대 띄워서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틀에 걸쳐서 간다. 1차, 2차로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희
베트남에 있는 사람들은 어떠겠어요. 몇 차에 가고 싶을 것 같아요. 1차에 가고 싶죠.
매도 천매만두 됐다고. 그렇죠. 매도 천매만두 됐다고. 1차가 되고.
그러니까 우리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 제발 1차 1차 가. 그것도 투표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우리를 보호해 주신 사장님. 너희가 열심히 기도하면 돼. 기도하면 돼.
제발 1차. 제발 1차. 1차만 가고 혹시
2차가 발목에 잡힐 수도 있고 하니까. 그런데 저녁에
몇 시에 결론이 난다고 해서 딱 나왔는데 딱 흑적한 표정으로 와가지고
딱 오더니 저희 앞에 딱 나서니까 얼굴이 까매지는 거예요.
어머. 2차인가 했는데. 여러분. 그분들 완전 반전을
노리게 해서 일부러 어두운 표정을 하더니. 여러분.
두부도 드라마를 많이 보셨네. 그래서
비행기를 탔는데 그 비행기 탄 날이 하필이면 7월 27일인 거예요.
7월 27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한국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날이죠. 그냥
아. 그날이구나. 정전협정일이에요. 아. 그렇구나.
6.25 전쟁. 정전협정일. 7.27인데 우리는 그냥 그 날이 중요하지
않잖아요. 6.25 전쟁이 이렇게 날이 중요한 거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북한이 이걸 되게 중요하게 의미부여를 해. 왜?
자기가 이겼다고 그때. 그렇죠. 전승 존경이 돼요. 전승전. 전승전. 그래서 노래
7.27 우리의 7.27 승리의 7.27
헤이 하면서 막 완전 그 승리의 날로
기념한단 말이죠. 그런데 제가 그때 그 전세기를 탔을 때 갑자기 그 노래 가사
말이 떠오르는 거예요. 내가 승리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대한민국에 가는 전세기를 탔으니까 나야말로
승리한 거니까. 그 날이 공교롭게도 그 7.27이 되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다음날에 파란 비행기 타고 왔더라고요.
아. 2차 대화당국 타고 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