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9만 명은 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 당했을까? 방구석에서 랜선 해외여행 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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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해외여행 답사하기 – 카자흐스탄 편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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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서 돋보기입니다 해외로
훌쩍 여행을 떠나 버리고 싶은데 바쁜
현대사회에 치어 가다 살다 보면
여건이 녹록치 않았던 적 많으시죠
그래서 유튜브로 아마 간접적으로
여행을 시켜 드리고자 랜선으로 해외
역사 여행을 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여행은 정말 정말 갈일이 많이
없고 가기 힘들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바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있니다 갈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카자흐스탄이 의외로 카자흐스탄과 한국
사이에 직항이 있답니다 리나라
인천에서 카자흐스탄의 수도인
아스타나와 카자흐스탄 제 2의 도시인
알마티 그지 직항으로 갈 수가 있죠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는
1998년에 카자흐스탄의 수도로
정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로
악명 높은 나자르 바이프 1998년
수도를 아스타나로 옮겼는데 아스타나
역사적으로 깊은 도시가 아니고 급하게
부랴부랴 수도로 개발된 도시인지라
사실 수도이기 해도 아스타나에 딱히
볼 관광지가 많은 건 아닙니다 그
아마 누르 아스타나 모스크라고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슬람
모스크 사원이 있긴 하지만
2005년에 건설되었던 현대식 이슬람
사이랍니다 수도 아스타나는 현대적인
공간인만큼 역사적 관광지는 없다시피
하다고 여기셔서 될 거 같은데요 어
바이테렉 타워나 아스타나 서커스
공연장 칸 샤티르 백화점 평화와 화해
궁전 국립 예술대학교 등 독특한 현대
건축물들을 구경하실 수는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건축 학도들은 아스타나를
방문하면 참 좋아 하군요 역사적인
장소를 원하시는 분은 아스타나에 있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국립 박물관을
방문하시면 되며 박물관의 건축 역시
현대건 축구을 도입한 아주 매력적인
건물이랍니다 사실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수도 아스타나 아니라
알마티 있니다 알마티 제 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수도보호통 도시죠
알마티는 1925년부터 카자흐스탄의
소련에 속해 있었던 카자흐 소비에트
자치 공화국 시절의 수도였으며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카자흐스탄에 독립하고 나서도 계속
카자흐스탄에 수도였습니다 그러다
1998년 카자흐스탄의 초대 대통령
나자르 바이프 알마티의 지리적 위치가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며
중북부 지역인 아스타나로 수도를
옮겼던 겁니다 알마티는 현재도 과연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 듣게 관광을
위한 도시 인프라가 아주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알마티를 여행 가시는
분들은 대부분 자연 경관 투어를
하시는데요 우선 천산 삼매 깊은 곳에
에메랄드 옥색 빛의 영롱한 색깔을
뽐내는 빅 알마티 오스가 굉장히
유명하고요 그리고 빅 알마티 호수
근처에는 천산산맥의 설산에서 스키를
탈 수 있는 심블 아크라 스키
리조트가 있어서 스키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알마티 시내에는
이슬람 사원인 알마티 센트럴 모스크와
러시아 정교의 성당인 젠코브 성당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으로 관광지가 되고
있고요 시의 중심부에는 독립 광장이
있습니다 알마티의 독립광장 혹은
공화국 광장은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광장으로 물론 카자흐스탄의
수도인 아스타나에 독립 독립 정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카자흐스탄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카자흐스탄의
수은 알마티 있기 때문에 알마티 더
실제성이 높다고 볼 수 있겠죠 또한
수도 아스타나에 카자흐스탄 공화국
국립 박물관이 있다면 알마티에
카자흐스탄 중앙 박물관이라는 또
하나의 규모가 큰 박물관이
있답니다 사실 수도 아스타나 최대
도시 알마티 현대 도시이다 보니까
역사적 유적지는 많이 없는 도시입니다
역사 답사를 원하시는 분은 조금
고생하더라도 카자스탄 남부를 가셔야
합니다 이곳이 옛 실크로드의 한
구간이었던 한때 실크로드가 지나갔던
길과 그 주변의 도시들은 실크로드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중앙아시아의
사막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들이
있으나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
실크로드가 더 이상 역사만큼이나 잘
사용되지 않자 도시들은 하나도 해갔고
지금은 황량한 흔적들만 남아 있어서
볼거리는 약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카자흐스탄 남부의 옛 실크로드 길은
황량하고 건조한 사망만 있는 건
아니고
멀리 천산산맥을 병풍으로 과거 유목
민족이었던 카자흐 인들이 유목 생활을
했던 푸르고 광활한 초원 지대도
감상하 수 있습니다 뭐 기차 여행을
많이 하시기도 하고 카자스탄 남부
여행은 다서 혼자 여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어서 패키지로 많이
가기도 하죠 카자흐스탄의 남부
실크로드 도시 중 가장 잘 알려진
곳은 투르키스탄 있니다 카자흐 한국의
수도였던 곳이죠 카자흐 한국은 카자
델이 1465년 건국한 카자 델이
세운 최초이자 유일한 왕 조였습니다
본디 카자흐 인들은 우즈베키스탄의
지배를 받았으나 이내 우즈베키스탄으로
터 독립해 현 카자흐스탄의 남부
지금엔 투르키스탄 지역을 수도로 삼고
카자흐 한국을 수립했습니다 18세기
카자흐 한국은 몽골계 유목 제국
중가르 제국과 대립하다가 중가르
제국과 싸우기 위하여 러시아 제국에
도움을 받습니다 정작 중가르 제국이
청나라에게 멸망 당하고는 이후부터
러시아가 카자 한국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죠 카자 한국 일부에서
러시아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들이
있다라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고 끝내
카자 한국은 1847년 완전히
멸망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훗날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고 옛 카자흐 한국의 영토에
그러니까 지금의 카자흐스탄에는
1925년 카자흐 소비에트 자치
공화국이 들어섰고 수도가 알마티로
정해지면서 카자흐스탄의 중심부는 남부
투르키스탄 동부 알마티로 옮겨졌던
겁니다 그러니까 카자흐스탄의 역사적
첫 수도는 투르키스탄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투르키스탄는 유네스코
세임 의 유선에 지정된 아흐메트
야사위 영묘가 있습니다 아흐메트
야사위 아직 카자 한국이 들어서기도
300년 전이었던 12세기경 현
카자스탄 남부지방에서 태어난 이슬람
교도로 중앙아시아는 중동과 또 다른
중앙아시아만의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획기적인 역할을 했던
종교 지도자였습니다 중앙아시아만의
이슬람 종파인 수피즘 만든 장본인이며
오느 날 중앙아시아의 때 이슬람을
제대로 정착시킨 사람은 아흐메트
야사위 아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죽은 곳이 투르키스탄이며 티무르
제국을 건설한 티무르가 그를 기리고자
투르키스탄 아흐메트 야사위 영묘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답니다 아울러 투르키스탄 더
남쪽으로 그렇게 멀지않은 곳에
오트라르 있습니다 징기스칸의 몽골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오트라르
많이 들어보셨죠 몽골 초원을 제패하고
대몽골 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은
중앙아시아의 때에 자리를 잡았던
호라즘 왕국과 뭐 처음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했으나 호라즘 왕국에
동쪽 끝 제후국이 있던 오트라르
영주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징기스칸이 보낸 몽골 사제단을
습격하고 재산을 탈취한 일이
있었습니다 분노한 징기스칸은 20만의
병력을 이끌고 코라진 왕국으로
쳐들어가 가장 먼저 오트라르 공격했고
어마어마한 대학살을 자행한 끝에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진게스트하우스
아르의 성벽이나 유적 흔적들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역덕 그이 가고 싶어
하는 곳 중 하나죠
만약 저에게 카자흐스탄의 도시 중 딱
한 군데만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저는 고민없이 카자흐스탄
동부의 우슈토베 고를 겁니다
알마티에서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건
아닌 우슈토베 바로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당시 고려인이 처음으로 정착했던
마을이었습니다 1937년 소련의
스탈린은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우리 한인들 17만 명을 중앙아시아
때로 강제해 주 시켰습니다 2주 통
부후 집합 명령 때까지는 고작
일주일밖에 주어지지 않았고요 한인들을
열차 가축 한에 타기해서 전염병이
퍼지기도 했죠 가는 길에서만 약 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정차하는
역마다 한인들의 시체는 열차 밖으로
던져졌고 오늘날까지도 그 시신의
숫자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죠
죽을 고비를 넘겨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낯선 환경과 기후 풍토병으로 견디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저항하는 조선인들 중 약
2,500명이 체포되었고 이들 중
일부는 처형되거나 수용소로 끌려 갔죠
강제 이주된 조선인 17만 명 중
가장 많은 9만 명 이상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 되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이 내린 곳이
우슈토베 있습니다 독립운동과 홍범도
장군도 우슈토베 강제 해주 당했습니다
이렇게 중앙아시아로 강제 해주 된
우리 한인들을 고려인이라는 소련
정부는 고려인들에게 이주 비용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죠 강제로
끌려온 고려인들이 중앙을 시 때
정착할 수 있는 시설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소련 정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고려인들을 떨쳐 놓고는
방치해 버린 겁니다 기본적인 생활
기반조사 마련되지 않아 고려인들의
현지인들의 헛간에서 잠을 자거나
토구로 파서 잠자리를 해결해야 했죠
하지만 고려인들은 견뎌냈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생존력과 농업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고려인들은 황무지 개관에
성공했죠 어떤 작물도 자할 수 없었던
척박한 중앙아시아 황무지에서
고려인들은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우슈토베 경우도 아무것도 없던 마을이
지금의 도시로 커진 건 고려인들의
성공적인 농업 덕분이었습니다 오늘
날에도 우슈토베 가면 고려인 마을이
크게 있으며 강제 2주 당하셨던
1세대 분들의 무덤이나 강제 2주
기념비 등이 있으니 언젠간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네요 저와 함께한
카자스탄 랜선 여행 재미있으셨나요
저는 또 다른 지역 랜선 여행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역서 덕이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