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민주주의 일본" 경제 발목잡는 일본 세습정치, 결국 일본 '이렇게' 된다 (강철구 교수 / 풀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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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사 민주주의 일본" 경제 발목잡는 일본 세습정치, 결국 일본 '이렇게' 된다 (강철구 교수 / 풀버전)
✔ 본 영상은 11월 15일에 촬영되었습니다 (시청에 참고해 주세요)
🌕 강환국 작가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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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폭발적 상승에 올라타라 - https://bit.ly/4g9aB6i
00:00 인트로
00:15 조선통신사
11:31 일본의 근대화
28:30 후불제 민주주의
32:03 한일 관계
🌕 함께 보면 도움 되는 영상들
📌 https://youtu.be/D5mNiDu64O8
📌 https://youtu.be/B8uuPvAesHs
#강철구교수 #일본 #도쿠가와막부 #에도막부 #일본근대화 #메이지유신 #일본조선 #조선역사 #일본역사 #일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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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일본하고 조선하고 외국 사이에 조선통신사라고 해서 외교관들이 왔다갔다 하고 그랬잖아요.
그때 들어보니까 엄청나게 대접을 잘 우리가 받았다 이런 면도 있는 반면에
그 통신사 갔다 오신 분들의 기록을 보니까 오사카나 에도 지금의 도쿄죠.
그쪽의 경제적인 화려함과 문화 수준에 놀랐다라는 내용이 있거든요.
굉장히 일본이 조선보다 발달했던 시기가 있었던 건가요?
저는 진짜 할 말이 많습니다.
조선동신사는 할 말이 많은데 우리 학문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니까
이야기를 하면 원래 조선동신사가 과거에도 있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가 일본과 수교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잖아요.
국교가 맺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일본에서 도쿠가와가 자기가 정권을 잡고 에도 막부가 시작이 되다 보니
좀 인정을 받고 싶은 거예요.
국제적으로 좀...
그렇죠. 우리도 대통령 취임식 할 때 전 세계에서 다 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에도 막부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조선에게 그렇게 하려고 하다 보니까
조선에서 요청하는 걸 또 들어줘야 되잖아요.
야, 너희도 임진왜란 일으켜서 우리 조선인들 다 끌고 갔잖아.
그런데 우리 조선에서도 또 이런 임진왜란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결정적으로 임진왜란에 대해서
우리가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바로 지피직이 백전불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임진왜란 이후에도 일본을 좀 알아야 되고
또 무엇보다도 끌려간 조선인들을 세환을 해야 되는데
그런 거를 협상하기 위해서는 그러면 우리가 통신사를 보내고
그런 세환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1603년서부터 1811년에 이르기까지 12차례에 걸쳐서 우리가 보내요.
한 200여 년 동안에 12차례니까 한 18년에서 22년 사이에 한 번씩 보내는 거죠.
언제 보내냐면 독국아 정부가 자기 자식에게 습직을 할 때
그때 이제 축하할 경우 가는데
서울 한양에서부터 충주를 거쳐서 밀항을 거쳐서 부산을 거쳐서
고전의 대마도죠.
쯔시마를 거쳐서 시무누새끼에서 오사카, 교토, 나고야, 오다와라, 시조오까지 가고
때로는 1600년대 3번에서 4번 정도니까 니코까지 갔다 왔더라고요.
시간이 오래 걸리죠. 한 6개월에서 1년은 걸리죠.
그런데 이걸 아무나 보낼 수가 있나요?
지금도 대통령 갈 땐 BTS나 블랙핑크 데리고 가고 싶잖아요.
이때 당시도 우리도 일본 가는데 자존심 상하게 아무나 데리고 갈 수 없으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글 잘 쓰는 분들, 창 잘하는 분들, 춤도 잘 추는 분들
이렇게 해서 같이 가는 인원이 적게는 300여 명에서 많게는 한 500여 명 넘게 간단 말이에요.
그럼 아까 제가 애도시대 때의 창근교대제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창근교대제하고 다른 것은 뭐냐 하면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까 통역자가 필요하고 한국인들을 같이 모시고 갈 사람들까지 필요하단 말이에요.
외교사절이니까
그렇죠. 외교사절이니까. 그러면 1,000명에서 많게는 2,000명이 넘게 움직이는데
지금 생각해 보세요. 제가 대전에서 올라왔는데
대전에서 예를 들어서 러시아에서 한 400여 명이 행렬을 간다.
그러면 대전에서도 사람들 몰려들겠죠. 오늘날에도.
그런데 이때 당시에는 일본이 섬나라니까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외국인을 볼 수 있는 것이 조선통신사예요.
물론 뉴케에서도 오긴 오지만 조선통신사가 행렬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광경인 거죠.
볼거리 20년에 한 번 오는 거군요.
그렇죠. 한 20여 년에 한 번씩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마어마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다 나와서 본단 말이에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해행충제 책이 갔다 온 분들이 기획문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 기획문에 의하면 오사카에 도톤보리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관광지이지 않습니까.
거기에 배로 몇십 척 한국 조선에서 온 통신사들을 모시고 간단 말이에요.
그럼 양쪽으로 요도가와에서 사람들이 보느라고 기록에는 누에고추처럼 목을 다 빼고 보고 있다.
그런데 보는 행렬이 어떻게 되냐면 키가 작은 사람은 안고 조금 중간인 사람은 무릎 꿇고 정렬이 되어서 흩어짐이 없더라.
일부는 그걸 좀 보려고 하다가 강물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더라.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질서정의나 이런 것들에 감탄하는 글들이 많이 나와요.
그렇게 해서 애도까지 갔다 오게 되는데 당시에 일본인들하고 어떻게 대화를 하냐면
우리 다 한자문화권이니까 한자를 가지고 서로 필당을 나눌 수가 있죠.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일본인들이 하도 요청을 많이 해서
먹을 가는 나의 종이 팔이 아파서 일본인을 시켜서 먹을 갈았다.
글을 써서 상대방한테 주느라고 그렇게 한국 문화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한류가 그때 당시에 들어갔죠.
그래서 1990년대에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갔을 때에 일본 당시에 쇼와천왕이죠.
쇼와천왕이 궁중 만찬회를 할 때에 과거에 애도시대 때에 조선통신사가 이렇게 와서 문화를 전파해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할 정도로
일본에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대로 오사카나 도쿄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히 기록들이 많이 있죠.
신유안의 해유록이라는 책을 보면 마치 과거에 박지원이 중국을 가면서 요라일기를 쓴 것처럼
그런 기록들이 되게 자세히 나와 있고요.
2021년도에 보라라는 서점인가 거기서 해유록 책이 나와 있어서
혹시 읽어보시면 나와있을 텐데 제가 대충 요약을 하면
이분이 1719년이니까 이때 일본 통신사로 갔었는데요.
보니까 오사카나 도쿄를 가다 보니까 길거리가 너무 깨끗하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질서너무 저면하고 떠드는 사람이 없다.
자기는 통신사가 가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정돈이 되어 있고
또 척도가 규격이 정해져 있어서 예를 들어서 우리가 다다미는 1조조로 단일하거든요.
규격이 정확하게 되어 있다 보니 혹시 이쪽이 잘못되면 그것만 빼서 똑같은 규격으로 맞추다 보니까
사회가 되게 안정되어 있고 깨끗하고 반듯반듯하고 이런 모습들을 보게 된 거죠.
그리고 그 외에도 토목시설이 상당히 발달이 되어 있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서점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
서점이 많아서 책을 일반인들이 보게 되는데 공자맹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황의 퇴계집이 일본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퇴계의 이야기를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하는 일본인들이 많았고요.
조선에서는 징비록이 금서로 됐는데 일본에서는 그게 번역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되게 놀랍니다.
임진왜란의 유성용 영상대감께서 쓰신 우리 전쟁 일본을 대비해야 된다는데
우리나라는 금선데 일본인들은 보고 있는 거예요?
네. 그 책을 읽고 있고 번역이 되어서 나와 있고요.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지금 통신사들이 오사카를 통해서 도쿄로 가지 않습니까?
그때 자기네들이 갔다가 돌아오는데 보니까 한 2, 3개월 만에 돌아오는데
그 통과했을 때의 조선통신사의 모습을 책으로 써서 출판이 됐다.
돌아올 때 보니까.
상당히 놀라운 장면들이죠.
그런데 이런 좋은 부분만 있는 거예요.
오사카가 이러니 도쿄는 어떻겠어요?
도쿄는 더 놀라울 따름이죠.
그런데 되게 부정적인 것들도 있어요.
남녀가 혼욕을 하고 있는 이런 것들은 상놈이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또 조선통신사가 가는 것을 모두가 다 좋아하지는 않죠.
일본인들이 관광을 소개를 하잖아요.
오다와라 지나다 보면 후지산이 보이지 않습니까?
눈이 덮여있고 되게 멋있잖아요.
일본사람들이 자랑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저게 일본의 영이 담겨있고 후지산입니다.
막 자랑을 하니까 우리나라 조선에서 간 사람들이
저 정도야 우리나라 금수강산도 있는데
약간 비태면서도 살짝살짝 보면서 좀 불안한 부분도 있죠.
그래서 이걸 신요한이 후지산을 보고 시를 쓴 게 있습니다.
제가 이 시를 잠깐 가져왔는데 읽어도 될까요?
너무 좋은 문장이라서 후지산을 어떻게 평가를 했냐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면
통신사들이 가서 보니까 질서정연하죠.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있죠. 너무나 깨끗하죠.
이걸 보고 어떻게 짐승이 사는 이런 오랑캐가 사는 이 땅이
이렇게 아름다웠고 질서정연하냐.
이게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화가 난다는 거예요.
짐승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짐승과 같은 인간들이 2000년동안 이렇게 평화롭고
번영하고 있었다니 원망스럽다. 이렇게 표현을 했어요.
일본을 이렇게 동등하게 안 봤군요. 우리 선조님들이.
그렇죠. 왜냐하면 훈도시 있고 시루만을 숨어하는 모습 보세요.
그게 우리 성리하게 젖어있는 양반들이 볼 때
얼마나 보기가 좀 그렇겠습니까.
그런데 어쨌든 내용을 들어봤을 때는 우리가 무시하던 일본이지만
직접 가서 보니까 자연도 아름답고 질서도 정연하고
경제도 화려하고 문화도 좋네. 일본인 거잖아요.
그런데 일본의 문화에서 또 안 좋은 부분들도 있죠.
예를 들어서 1998년대 우리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문화를 개방하면서
완전 개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반대한 이유가 뭐냐면
일본의 문화가 선정적이고 퇴폐적이고 과학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런 문화가 들어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앞길이 별로 안 좋다 해서 반대를 했지 않습니까.
이런 모습들이 당시에도 보였던 것 같아요.
교수님 또 다음번에 모셔봐서 통신사와 이런 부분들도 깊게 한번 또 시간 가져보도록 할게요.
그럼 저희 이어서 일본의 근대화, 메이지 유신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은 참 미리 서구 문명도 잘 받아들이고 자기들 나름대로 번영을 해왔는데
안 좋은 모습도 있었지만 행복하게 잘 살면서 아시아에서 우리 평화롭게 잘 살면 되는데
일본이 풍랑 메이지 유신이라는 근대화, 서구화라는 것을 하면서 제국주의로 나아갔잖아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이 좀 궁금합니다.
지금 되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은 애도 265년은 평화로운 시대였었죠.
그런데 원치 않게 그런 평화가 깨질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지금 중국의 청이 1840년대 아편전쟁이 발발했잖아요.
여러가지 이야기 생략을 하고 그냥 그 자체만 이야기를 한다면 아편전쟁에서 영국이 승리를 했지 않습니까.
이게 일본에도 전에 들어왔잖아요. 1차, 2차에 다 영국에 패하다 보니까
일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저 거대한 국가가 중화민국이 저런 나라가 영국의 조그마한 섬나라한테 패배할 수 있지?
이게 이제 일본에도 들어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일본에서도 긴장을 하고 있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 라고 하는 찰나에 미국에서 갈브레스 매튜 페리라는 미 제독 함독이
구로훈에 흑선을 끌고 가나가와 현, 지금 현재 요크스가 있는 우라가 앞바다에 오게 됩니다.
흑선, 검은 흑선인데 일본 통통배에 있다가 흑선을 보니까 얼마나 놀랍겠어요.
이거는 증기로 가는 철로 만든 배인 거예요?
그렇죠. 기둥이 이렇게 큰 게 있어서요.
미국에서 온 배니까요.
일본은 나무 배 쓰고 있는데.
그런데 그 자체로 위협감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와서 요청을 하는 거죠. 막두에게 요청을 하는 거죠.
니네 문어를 개방해라. 그리고 우리가 태평양을 건너보다 보니까 물이 없어. 식량이 없어.
이거 니네 다 보급을 해줘라. 그리고 우리가 니네하고 무역할 수 있게 해줘라.
일단 청나라가 영국에 패배한 건 알잖아요.
여기서 일본이 이런 미국과 전투를 했을 경우에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지죠. 물론 조선의 입장에서 이건 우리 성리학은 선과 악의 개념이지 않습니까?
일본은 아니잖아요. 뭐예요? 힘의 논리죠. 힘이 강하냐 약하냐.
그러다 보니까 준비를 하겠다고 해서 그 다음에 1854년에 페리가 다시 한 번 옵니다.
이번에 애드만으로 와요. 애드만으로 와서 막부하고 직접 타결을 하게 되죠.
문어를 개방을 해서 화친조약을 맺게 돼요.
그러면서 항구도 개방을 하고 이게 번들에게 다 알려지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감히 오랑캐들에게 문어를 여느냐라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막부 타도가 나오는 거죠.
그것도 천엉의 칭령 없이 문어를 개방을 하게 되고
미국이 오니까 다른 나라들 가만히 있으니까 왜 너네 미국에게만 문어를 개방해 주니?
우리하고도 같이 하자 해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 그런 국가들도 다 문어를 개방을 하고요.
그때는 단순하게 화친조약이지만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뭐냐면 통상이에요.
그래서 4년 뒤인 1858년에 다시 옵니다.
그래서 그때는 통상조약을 맺어요.
그때는 안세의 5개 조약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5개 국가를 한꺼번에 다 조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트럼프가 지금 우리나라나 다 걱정하는 이유가 뭐예요?
불평등한 조약이잖아요.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익이 가는 페이브한 조약이잖아요.
이때도 마찬가지예요. 미국이 강대국이다 보니까 이게 불평등한 조약을 맺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관세를 없애는 거죠.
그럼 당연히 미국 물건이 좋은데 관세 없애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이 당연히 힘들어지죠.
취의법권 이런 것들을 요구하고 또 강제로 개항을 해서 학구다떼니 시모다앙이니 이런 데 개항을 하게 되다 보니까
그게 벌써 1858년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서 막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되죠.
그렇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이 바로 초슈에서 반발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막부 타도를 외치게 되고 초슈 야마구치현에 이때 문호를 개방할 때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막부를 타도하자고 한 데서 태어난 게 이토 히로봄이에요.
그래서 문호를 개방할 때 12살이었어요.
얘가 그거를 12살 때 느낀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어때요?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의 문무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신정부를 만드는 데 초대 총리가 이토 히로봄이가 된 거고
아베 신조, 우리나라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아베 신조가 대표적인 야마구치현 출신이죠.
그래서 야마구치현하고 현재 사시마, 카고시마가 많은 정치인들을 배출하고
일본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정치 가문이라고 보고 있죠.
어쨌든 많은 이야기를 생략은 하겠지만 초슈는 막부를 타도하길 원했었고
사시마는 막부 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개혁을 한다는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사실 두 번이 같이 하기는 어려웠는데
어찌어찌 됐든 같이 사초 동맹을 맺어서 막부를 타도하게 돼서
교도회 있잖아요. 천황이. 천황에게 가서 이야기를 합니다.
너네 지금 애도 막부고 너네 천황에게 모든 정권 양도해.
그게 이제 대정봉환이죠. 큰 정치를 천황에게 다 바쳐라고 했는데
막부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죠. 지금까지 265년을 그렇게 끌고 왔는데
그거 쉽지 않죠. 그런데 막부 생각에도 막부가 지금 힘이 딸리잖아요.
타협을 한 거죠. 그럼 내가 정치는 주지만 나머지 권력은 내가 가지고 있을게라는
나름대로 합의를 보고 대정봉환을 했어요. 했는데 나중에 그마저도 다 빼앗기게 됐죠.
그런데 그 다음에 새로운 신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막부에게 요청한 것이 있어요.
너네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행정권 그것도 다 내놔. 그게 판적봉환이거든요.
대정봉환을 했잖아요. 판적봉환은 뭐냐. 판은 일본의 영토예요.
적이라는 거 호적. 일본 국민들이죠. 이것까지 다 내놔.
그래서 천황체제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 신정부가 끌고 간 것이고
그다음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뭐냐. 새로운 정부는 출현이 됐는데
여전히 번은 남아있지 않습니까 261개가. 이 번들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단 말이에요.
이게 한꺼번에 정리가 됩니다. 소위 말하는 폐번치현이죠.
그러니까 번을 폐하고 폐한 번의 현이라는 행정력을 갖추게 돼서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번의 번주들 다이묘들을 없애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 중앙직권체제로 강력한 중앙직권체제로 왔잖아요.
중앙에서 혈령을 파견해서 공무원의 신분으로 가게 하는 거죠.
약간 우리 조선이 원래 하던 그 형태.
그런데 이 번 다이묘들이 싫을 것 같은데요.
싫죠. 그러니까 처음에는 너네 번 폐하지만 너네 이 정도의 지위는 준다 해서 번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은 줘요.
힘은 주지만 결국은 그 힘까지 없애게 되는데
그렇지만 일부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그 다이묘들의 자손들이 예를 들어 호수카와 총리라고 93년도에 일본 자유민당이 정권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고 그러잖아요.
그 호수카와 총리는 그 번의 자녀에요.
어떻게 보면 구상류층이라고 할까요.
최고의 번들의 번주들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그런 위험을 여전히 가지고 있죠.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고요.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과거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이 바로 메이주 유신을 통해서 새로운 문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신정부가 전체를 끌고 가는 거죠.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일본은 어떻게 부국 강병을 이룰 것인가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끌고 가는 과정이 바로 메이주 유신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진행이 되는 거죠.
교수님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일본이 천황체제 어떻게 보면 막부는 우리나라로 치면 왕의 권력을 사실 뺏었던 거잖아요.
여기 돼서 좋은 것 같은데 시대적 상황을 보니까 주변이 평화로우면 이들도 평화롭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어떻게 보면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에 중심이 있었던 중국이 지금 영국이라는 섬나라 오랑케들한테 무너지고 있는 상황인 거잖아요.
그러면 우리도 지금 큰일 났다. 일본도 오랑케들이 외국 애들이 쳐들어온다.
어떻게 막 우리를 지킬까 강해져야 한다. 여기에 생각이 갈 것 같거든요.
말씀하신 것처럼 부국 강병, 군사적인 거에 그러다 보니까 조금 제국주의 혹은 군국주의의 길로 가게 되는 건가요?
교수님 그렇죠. 그런 과정에서 일본이 먼저 근대화를 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일본에서는 한반도를 볼 때 한반도 흉기론이라는 이야기를 해요.
중국이라는 대륙에서 한반도가 삐져나왔잖아요. 일본이 활처럼 되어 있는데 한반도가 일본을 찌르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요? 일본이 그래서 조선을 점령해야 된다는 정한론이 나오게 되고
또 메지유신을 거치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메지유신을 찬성한 건 아니거든요.
당연히 기존에 기득권이 있는 사무라이들이라든가
나는 귀족이었고 내가 사무라이였는데 이런 것들을 다 없애고 칼도 못 차게 하고 패두령을 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불만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불만 생긴 사람들이 다 모이는 거예요. 모여서 우리 이렇게 갈 수는 없잖아.
이렇게 해서 우리 무사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줘야 되는데 그걸 어떻게 보여줄지 조선을 정복하자라는 이야기로 나와서 정한론을 외치게 된 거죠.
그런데 이제 지금 새로운 정부는 조선이라는 땅을 점령할 시간이 없어요. 일본을 먼저 부극강경을 해야 되는데
그때 당시 같이 신정부를 만들었던 사이고 다까무리라는 무사들의 힘을 빌려서 신정부와 투쟁을 하게 됩니다.
1876년에 세인안전쟁에서 톰 크루즈가 나온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 있죠.
그게 바로 그 세인안전쟁의 사이고 다까무리와 투쟁하는 그 영화예요.
그래서 새롭게 일본군이 생겼으니 군을 정비를 해야 되는데 생판 모르니까 미국에서 인디언들을 때려잡았던 톰 크루즈를 데려다 훈련을 시키면
좀 정규군으로 잘 훈련되지 않을까 해서 톰 크루즈를 데려와서 사이고 다까무리하고 싸운 게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영화인 거죠.
결국 사이고 다까무리는 마지막 사무라이로서 자결을 하고 일본 신식군대가 정식으로 되는 거죠.
그렇게 하고 나서 그다음 전쟁에 본격적으로 돌입을 한 것이 청일전쟁이었죠.
어쨌든 청일전쟁의 과정은 여차여차하고 청일전쟁을 통해서 일본이 승리를 했지 않습니까.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 승리하고 나니까 일본이 시모노사키에서 조약을 맺었거든요.
중국의 당시 청나라의 이홍장이하고 시모노사키의 조약을 맺은 사람이 이토이로봄이에요.
이토이로봄은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나옵니다.
이토이로봄하고 조약을 맺었는데 시모노사키에서 조약의 내용이 뭐냐면
조선을 독립시켜 그리고 우리 전쟁에서 이만큼 패했으니까 너네 배상해 해서 당시에 3000량인가 이 정도를 중국으로 받습니다.
청나라로부터 그게 일본 예산의 3배에 해당하는 정도의 예산이에요.
그러면 일본의 신정부가 이 예산을 가지고 뭐를 했냐면
후쿠오카에 야와타라는 곳이 있어요. 휴쇼이죠. 거기다 제철소를 만들어요.
제철소가 왜 필요합니까? 제철소가 있어야 철을 만들어서 무기를 만들 수 있죠.
그래서 야와타 제철소를 1901년도에 만드는데 청일전쟁에서 받은 자금의 상당 부분을 여기서 씁니다.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이 1차 산업혁명을 완성하거든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중공업 완성을 하잖아요. 그러면서 청일전쟁 때 받은 배상금으로 만든 야와타 제철소를 통해서 무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러일전쟁까지 승리를 하게 돼요.
그러니까 전쟁을 통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또 전쟁을 해서 그 전쟁에서 이기게 돼요.
그런데 제가 지금 야와타 제철소 말씀드렸잖아요.
이 야와타 제철소가 1934년에 일본 제철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꿉니다.
일본 제철로 이름을 바꿔요. 그런 다음에 무기를 만들어내죠.
군함도 만들어내고 그러다가 일본이 어쨌든 세계대전에서 패했잖아요.
패하고 나서 일본 제철이 미국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에 경제력 집중 배제법이라는 걸 미군이 만들어요.
이게 뭐냐면 너네 특정 재벌 기업들, 너네 재벌들이 군부하고 협력해서 전쟁을 일으켰다.
이 재벌들을 해체를 하게 됩니다. 큰 재벌들은 경제력이 집중되는 곳을.
그래서 이 야와타 제철소도 그때 분리가 돼요.
그래서 미군정화에서 야와타 제철소하고 후지 제철소하고 두 개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2012년도에는 신일본 제철이 스미토모하고 합병을 해서 신리테츠 스미토모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거든요.
제가 길게 얘기하는데 제가 왜 이렇게 길게 얘기하냐면
2019년도에 다시 이름을 바꿔서 일본이라는 이름을 가져와요.
그래서 일본 제철회사로 가져와요.
이걸 제가 왜 길게 얘기를 하냐면
1901년도에 야와타 제철소가 현재 일본 제철이라는 이름인데
아까 1934년도에 일본 제철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 이름을 가져왔는데
2018년도 우리나라 10월에 대법원에서 판결을 하기를
강제노동 동원된 분들이 소송을 내보내 할아버지가 걸었을 때
그때의 강제동원된 기업이 바로 일본 제철이에요.
그래서 여기에서 배상을 하라고 판결을 한 것이
일본 정부가 관여를 하면서 2019년도에 우리가 수출규제까지 오게 되고
결국 일본 제철이 지금까지 배상을 안 하게 되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일본 제철이 우리나라가 1965년에 일본과 한일수기를 맺으면서
받은 무상 3억, 유상 2억, 상업차 간 3억을 받은 돈의 상당 부분의 포항제철을 건설했지 않습니까?
그때 기술을 전수한 게 바로 이 기업이에요.
그리고 현재 포항제철의 지분은 3%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가 이렇게 흘렀다는 거예요.
청일전쟁을 통해서 받은 배상금으로 만든 기업에
우리 일제시대 때 강제동원된 할아버지들이 가서 일을 해서
노무비를 제대로 못 받고, 위로비를 제대로 못 받고
그걸로 인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수출규제로 인해서
상당히 오랜 동안 우리 역사에서 가장 어려운 험난한 한일관계가 지속이 됐고
그 비용을 아직까지 우리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어쨌든 그 일본 제철로부터 우리가 기술 제휴를 받아서
지금은 청출월함이 된 거죠.
포스코가 일본 제철보다 더 위로 앞서게 되는 과정이 있더라.
역사가 그렇게 흐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수님, 그래서 한일관의 근현대사는 저희가
시간을 길게 잡고 해야 될 주제니까 다음번에 하도록 하고
일본이 결국엔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서 무조건 항복으로 전쟁이 끝났지 않습니까?
그런데 약간 정치구조나 사회구조를 보면
우리는 어떤 군부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운동을 자생적으로 해서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인 반면에
일본은 미국 군정이 주입한 민주주의이다 보니까
여전히 봉건적 형태 혹은 정치인의 권력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 같거든요.
어떤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나요?
2009년도에 유시민 작가가 쓴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책이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서양에서 만든 민주주의를
우리가 상당히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든지
4.19라든지 이런 투쟁을 통해서 어쨌든 민주주의를 나중에 가져오게 된 거죠.
그런데 저는 이 후불제 민주주의가
저는 오히려 일본에게 적응이 돼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는 게 뭐냐면
일본은 아직도 지불을 하지 않았어요.
일본은 과거에 봉건시대에서 곧바로 제국주의, 군부시대를 거치면서
패전하고 나서 미 점령군 하에 있다가 독립을 한 나라잖아요.
그리고 나서 자민당이 55년 체제에서 지금까지 점령을 하고 있고
그러니까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서 일본 국민들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투쟁을 통해서 얻은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일본은 아직까지도 지불을 하지 않은 거예요. 민주주의를.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일본의 민주주의가 유사민주주의다.
비슷한 민주주의이지만 확실한 민주주의는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왜 그런가 저도 생각을 해보면
일본은 과거에서부터 산후공상 정확하게 신분이 제한이 되어 있었고
그런 신분 덕분에 일본이 어떻게 보면 장인정신도 거기서 나온 거죠.
내가 다른 직업으로 이동을 할 수 없다 보니 한 직업을 계속 갖게 된 것이
오늘날의 장인정신으로 이어지게 오게 된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세습 의원에 대해서도 여전히 일본 사람들은
3대건 4대건 정치 집안에서 자라고 어렸을 때부터 봤으니까
나보다 낫겠지라고 긍정적으로 본단 말이에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는 거예요.
그건 정치인들이 하는 거야. 나는 야구 잘만 하면 돼.
나는 그냥 우동 잘 만들면 되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까 정치에 대해서 상당히 무관심하죠.
그런데 이게 문제가 뭐냐면 이렇게 하다 보면 정치의 개혁을 이루지를 못하죠.
그래서 거듭 말씀드리는 것이 자민당이 거의 독재나 마찬가지인 것이
야당들이 그냥 나는 야당이구나 여기서 머무른단 말이에요.
정권을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두 번의 정치.
1993년 2008년도에 정치가 자민당에 잠깐 빼앗긴 것도
그 야당이 투쟁을 해서 얻은 게 아니라 자민당이 하도 못하니까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걸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든지 정권을 잡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본에서 이걸 1.5당제다 또는 1과 1분의 1 정당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
그런데 요번에 노다유시 입고 보니까 입헌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으려고 상당히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한 번 해봤잖아요. 맛을 알게 된 거죠.
민주주의의 지수는 우리보다 약간 높을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고 그렇게는 하는데
어쨌든 선진국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일본의 민주주의가 이렇게 멋지게 보이는 민주주의는 아니다.
교수님 그러면 저희가 마지막 질문으로 한일수교가 내년이 60주년이라고 들었습니다.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나 지금 중국의 부상 때문에 한미일동맹 아니면 북한 문제도 시끄럽고
우리도 지금 안보적으로 역사적 배경이 있지만 일본과 협력을 안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몰려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한일관계가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가기 위해서 양국이 무엇을 좀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내년이 한일수교 60주년의 해입니다. 상당히 의미 있죠.
그런데 이게 단순하게 어떤 선언적인 거로 끝나지 않고 어떤 액션 플랜이 같이 따랐으면 하는데
문제는 뭐냐면 양국이 모두 역사 문제에 함몰이 되어 있어서 진척되기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물론 정치를 하다 보면 국민들의 시각을 무시할 수는 없죠.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일본에 대한 역사 문제에서 좀 앙금이 남아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다 보니까 자꾸만 이야기하는 것이 1998년도에 김대중 대통령과 오브지 총리가 선언했던 김대중 오브지 선언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표준적인 것으로 나오죠. 왜냐하면 과거에 대해서 통절한 반성을 하고
그리고 나서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자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표준으로 한다고 한다면
좋다는 거예요. 다만 일본이 그것을 번복해서 과거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들어야 되겠죠.
그런데 그때 당시에 우리와 일본의 경제 상황은 사실 많이 격차가 있었죠.
그런데 올해 만에도 보세요. 아이유미프에서 올해 4월 달과 10월 달에 두 번 다 1인당 국민 gdp가 일본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거는 우리가 여유를 가질만 하죠. 그뿐만 아니고 많은 부분에서 일본과 대등하거나 비슷한 것들이 많이 생긴단 말이에요.
그러면 인심이 곳간에서 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정도의 마음에 여유가 있고
또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많은 부분에서 사죄를 한 부분들이 있어서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
비정치적인 부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서 특정 정치인들이 한일의원 동맹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물밑작업을 할 수 있는 좋은 바탕을 마련해 줄 수 있고요.
또 경제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일본의 계단 레인이나 우리나라의 과거의 정경령 같은
그런 경제 단체들이 연합해서 한국과 일본이 경제 협력을 했을 때 어느 정도 시너지 효과가 나온다.
이런 것들을 자꾸 정보를 제공을 하고 또 민간에서도 교류할 것들이 많이 있고
또 학술단체들도 여전히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양국이 그런 교류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 간의 설민 우호관계를 지속을 한다고 한다면
2025년이라는 해가 정말 좋은 해거든요.
아무 때나 그냥 우리 잘 지내자 이렇게 하는 것보다 기념비적인 일이 있을 때
이럴 때 한번 그런 기회를 삼아서 양국이 진짜 좋은 액션 플랜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고
또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 패권 문제
또 트럼프가 지금 한국과 일본에게 압박하는 문제들이 있어서
우리가 일본하고 같이 협력해서 미국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
협상을 할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낸다고 한다면 의미는 아니겠어요?
그래서 내년이 단순하게 이벤트성이 아니라 지금 트럼프 2.0 시대에
글로벌 공급망이 어떻게 재편이 될지 모르는 과정에서
우리가 좋은 교회인이 한번 협력해서
여기서 협력이라는 것은 사실 경제협력이 가장 국익에 부합하는 거죠.
이런 부분에서 좋은 액션 플랜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교수님 다시 모셔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하고 나서 우리나 일본에게 요구하는 게 있을 거잖아요.
그때 우리가 한일 협력 혹은 공동 대응을 통해서
서로 양국의 국익을 지키면서도 다시 관계를 도모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또 동시에 교수님을 통해서 아픈 근현대사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제대로 사죄하지 않거나 잘못하고 있는 게 있는지
잘 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