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과 마르가리타" by 미하일 불가코프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표적인 작품인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입니다.
* 출판사 : 열린책들
00:00 인트로
1:33 등장인물
1:56 주요줄거리
6:29 감상평
#불가코프 #우크라이나문학 #거장과마르가리타 #북튜버 #책리뷰 #책요약 #책소개
오늘 여러분의 손에 쥐어드릴 작품은
미아일 불과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작가 미아일 불과코프는
1891년 당시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키에프에서 태어납니다.
원래 의사였지만 작가로 전향한 특이한 케이스죠.
러시아 혁명과 이어진 내전을 직접 경험하면서
작품에 대한 풍부한 소재를 얻었다고 합니다.
불과코프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인데요.
그러다 보니 소련 정부의 검열과 탄압을 받게 되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고집했죠.
생전에 작품을 출간하지 못하다가
그가 사망한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발표되어 주목을 받았습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야말로
미아일 불과코프의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자
걸작이라 할 만합니다.
1928년부터 불과코프가 사망한 해인 1940년까지 집필한 작품이죠.
1966년이 되어서야 처음 출간되어 빛을 보게 된 소설입니다.
나름대로 유명한 작품이긴 합니다만 사실 쉬운 소설은 아닙니다.
현실과 환상이 자유롭게 뒤섞인 데다가
여러 시대와 공간을 오가며 복잡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소련 사회의 부절이와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사랑, 예술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 번쯤 접해볼 만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을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은 이반이라는 이름의 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베를리오즈라는 친구가 있죠.
두 사람은 우연히 흑마술사 본란드를 만나게 되는데
본란드에게는 고양이 백애모트 등의 부하가 있습니다.
한편 본디오빌라드에 대한 소설을 쓴 작가 거장과
그의 내연녀인 마르가리타라는 여자도 등장하죠.
이 작품의 주요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솔리트라는 작가 옆의 회장인 베를리오즈와
그의 친구인 시인 이반은 모스크바의 한 연목과의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이반에게 예수그리스도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했고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한 남자가 접근해오죠.
외국인 같은 외모에도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그는 자신을 흑마술 교수라고 소개하며
베를리오즈가 그날 있을 협회 회의에 참가하지 못할 것이며
목이 잘려 죽을 거라는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또 그는 예수그리스도는 실존했으며
자신이 그를 십자가형에 처한 본드오필라도 총독을 만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죠.
이반은 내심 그가 정신병자라고 생각하지만
베를리오즈는 그가 심상치 않은 존재임을 느끼게 됩니다.
베를리오즈는 기차를 타고 마솔리트 작가협회 회의에 참석하려고 하다가
그만 플랫폼에서 미끄러져 진입하던 기차에 의해 목이 잘려 사망하고 말죠.
한편 그를 떠나보낸 이반은 사고 소식을 듣고
그것을 예언한 교수를 찾아내 그를 당국에 넘기려 하지만
그는 갑자기 나타나 또다른 남자, 두 발로 걸어다니는 고양이와 함께 사라져버립니다.
이반은 작가협회가 열리는 장소로 뛰어들어가
밑도 끝도 없이 베를리오즈의 죽음과 이상한 교수
그리고 그의 동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사람들에게는 이반이 이상해 보였고
결국 그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는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베를리오즈와 이반에게 나타난 그 흑마술 교수란자의 이름은 본란드였고
그는 모스크바의 공연 총감독인 스초파에게 나타납니다.
본란드는 자신이 흑마술 공연을 하기로 했다며
스초파가 서명한 계약서를 내밀는데
물론 그것은 본란드가 흑마술로 만들어낸 것이었죠.
뭔가에 홀린 듯이 본란드 일행에 대응하던 스초파는
그들이 권한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고
모스크바에서 한참 떨어진 얄타에서 깨어납니다.
본란드와 그의 교수 파고트, 고양이 베게모트는
스초파의 아파트에 당분간 지내게 되었다며
아파트 조합장을 속이고 거기에 눌러앉습니다.
파고트와 고양이 베게모트는 신출 귀몰 이곳저곳을 누비며
공연 담당자들을 속이거나 협박해서
본란드의 흑마술 공연을 기정사실로 만들죠.
얼마 후 결국 본란드의 흑마술 공연이 열리고
사실 악마그 자체인 그는 대단한 기교를 선보여 관객들을 사로잡습니다.
그는 관객들에게 16불짜리 수표를 뿌려야 하는가 하면
여성 관객들을 홀려 명품옷으로 갈아입혀주기도 합니다.
본란드의 공연은 대박이 났고
그 다음 날 모스크바 사람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되는데
놀랍게도 그가 뿌려낸 수표는 사실 쓰레기 종이조각이었고
여자들이 입고 간 명품옷도 사라져버린 것이 알려지죠.
한편 정신병원에 감금된 니바는
이웃방에 감금된 자칭 거장이라는 사람과 만나게 되는데
소설가인 거장은 과거 본듀 빌라드에 대한 소설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설은 평단의 혹평을 받았고
낙지만 거장은 원고를 태워버리고
내연녀인 유부녀 마르가리타라와 헤어져
정신병원에 스스로 들어온 것이었죠.
그 사이 본란드와 그 일당들은 각가지 마술을 통해
공연계 사람들과 아파트 주민들을 골탕 먹이고 있었습니다.
본란드의 부하 중 하나인 아자젤로는 거장의 내연녀 마르가리타를 찾아가
본란드가 주최하는 무도회에 그녀를 초대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르가리타에게 크림을 건넸는데
그 크림에는 사악한 힘이 있었고
그것을 몸에 바른 마르가리타는 관능미를 얻어 마녀화됩니다.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모스크바 상공을 날아
본란드의 무도회의 안주인의 자격으로 참석하고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내죠.
흡족해진 본란드는 마르가리타에게 소원을 묻고
그녀는 자신의 애인 거장을 구해주고
다시 작가로서 살아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 즉시 자리에 거장이 나타나고 마르가리타와 눈물의 제외를 하는데
고양이 백예모트가 거장이 태워버린 본듀오 빌러드에 대한 소설을 되살려내
그에게 돌려주고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사라집니다.
그때 당국이 수상한 본란드 일행에 대해 체포를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액구존 아파트와 식당 등이 화제를 입고 말죠.
본란드 일당은 모스크바에 모쳐 있었는데
갑자기 사도 중 하나인 마테가 나타나
본듀오 빌러드에 대한 소설 때문에 거장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전합니다.
본란드는 거장과 마르가리타에게 나타나 독주를 먹여 그들을 살해하고
영혼을 데리고 가는데 도중에 거장은 이반에게 나타나 작별을 구합니다.
본란드 등이 사라진 모스크바는 평화를 되찾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모든 사건이 잊혀지는데
이반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교수화되어 살아가죠.
그는 밤마다 예수를 십자가형이 처하는 본듀오 빌러드의 꿈을 꾸며 괴로워하는데
그러다 어느 날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환상 중에 만나 치유를 받습니다.
이 작품의 감상평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듀오 빌러드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복잡하고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거장이 쓴 본듀오 빌러드에 관한 소설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거장의 소설이기도 하면서
악마인 본란드가 2000년 전에 직접 목격한 사건이라는 이중적 특성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본듀오 빌러드는 이 작품에서 소설 속 소설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실존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사실 이 소설은 본듀오 빌러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듀오 빌러드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2000년 전 유대의 로마 총독이었던 빌러드가
이 작품에서 어떤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빌러드 총독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에 처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죠.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도 빌러드는 마치 최초의 인간으로서
선악과를 먹어 죄를 세상에 들여온 아담과 같은 죄인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빌러드는 십자가 사건 이후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 속에 나오는 거장의 소설도 십자가 처형 이후로 끝나버렸기 때문에
빌러드는 계속 고통받는 처지가 됩니다.
그랬던 그가 이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본란드의 배려 아닌 배려로
거장이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소설을 마무리함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되죠.
그런데 이 작품에서 빌러드 총독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빌러드의 그 의미가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대표자로서의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에서 본란드 일행이 떠나고 한참 후 교수가 된 이반은
매일 밤 꿈에서 빌러드의 꿈을 꾸며 괴로워하죠.
그때 거장과 마르가리트가 나타나 마치 거장이 쓴 소설의 완결을 통해 빌러드를 해방시키듯
이반을 반복되는 고통에서 해방시킵니다.
유대의 다섯 번째 총독인 잔혹한 기사 본듀오 빌러드도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죠.
결론적으로 이 작품에서 본듀오 빌러드는 죄의식으로 인해 영원히 반복적으로 고통받는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다음으로 이 작품 속 곳곳에는 소련의 사회주의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는 겁니다.
미하일 불가코프는 구소련에서도 활동한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는 소련의 사회주의 모습이 많이 반영되어 있죠.
그뿐 아니라 그의 저작의 출판이 금지될 정도로 반체제의 인사로 분류되기 때문에 당시 사회 체제에 대한 풍자가 이 작품 속에 다양하게 드러납니다.
악마인 본란드는 모스크바 사람들 앞에서 흙맛을 공연하면서 심로블 상당의 수표를 뿌려 대는데 사람들은 눈이 뒤집혀 이를 줍는 데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이를 사용하고 보니 사실 그 수표는 쓰레기나 다름 없는 종이 조각이었고 사람들은 큰 혼란을 겪습니다.
이 모습은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풍자한 것이기도 하고
당시 구소련에서 발행하고 있는 화폐가 사실 쓰레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운영 중에 말하는 것 같기도 하죠.
그런가 하면 본란드가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외화를 몰래 넘겨주는 건 역시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국은 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을 범죄와 취급을 하며 체포를 하는데 당시 소련은 자국민들이 가진 외화를 몰수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벌써 여기에 한 달 반이나 앉아 계시면서도 나라가 외화를 몫이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 수중에 남은 외화를 내놓는 걸 고집스럽게 거부하시는군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외화를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범법자를 만드는 소련의 반자유적 체제를 보여주고 있죠.
한편 본란드가 흑마술 공연을 하기 위해 모스크바 공연위원회의 허가를 얻어낸 과정 역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공연 하나를 하기 위해 본란드가 손을 써야 했던 당국자들은 워낙 많아 왜곡된 관료제도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죠.
또 그들이 본란드가 위조한 문서에 자신이 서명했는지 여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은 무능한 소련 관료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통해서 작가 미아일 불가코프가 그의 심혈을 기울인 이 작품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지필한 이유를 알법하죠.
사슬펄은 공산 독재체제의 하에서 정색하고 이를 비판한 작품을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환상적인 방식을 이용해 우회적으로 풍자한 것 같습니다.
중남미에서 마술적 리얼리즘 사조가 발달한 이유 중 하나로 강압적인 독재체제를 꼽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인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통해 미아일 불가코프는 불멸과 영원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죠.
작가라면 누구나 불멸의 대작을 남기고 싶을 것이고 미아일 불가코프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작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가 죽지만 그들이 남긴 가치있는 문학작품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고양이 베기모트는 대문호 도스토이프스키가 이미 죽었다는 한 여자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 있죠.
작가로서 불가코프가 도스토이프스키처럼 몸은 죽었어도 영원히 남는 고전을 남긴 불멸의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작품 속 이름을 알 수 없는 작가인 거장은 본듀오 빌라드에 대한 작품을 남기고 본란드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됩니다.
하지만 몸은 죽었으나 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영원한 불멸의 존재로 변모하며 이 소설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본듀오 빌라드에 대한 소설이라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거장은 그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죠.
한편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남긴 작가에게는 역시 불멸하는 독자, 팬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도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마르가리타가 이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녀는 거장과 함께 똑같은 불멸의 존재로 변하게 되죠.
그분은 또한 거장을 사랑했고 그리하여 고통을 받았던 여자도 너희들이 데려가기를 부탁하신다.
소설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듯이 마르가리타는 작가인 거장의 가장 중요한 독자이자 팬입니다.
거장의 작품에 대해 혹평을 남긴 평론가에게 복수를 할 정도로 열성적인 그녀는 불멸의 작품을 남긴 불멸의 작가에게 있을 영원한 독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작품의 제목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본란드가 아니라 거장과 마르가리타라고 한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작가는 두 사람을 통해서 몸은 죽었어도 영원히 존재하는 불멸의 거장으로 남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것 아닐까 싶죠.
더불어 악마인 본란드의 힘을 빌어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설정은 설령 악마의 힘을 빌더라도 후세에 길이 남길 만한 작품을 쓰고 싶다는 작가로서의 열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거장과 마르가리타 주필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