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by 한강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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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손해에 지들 작품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입니다
작가 한강은 1970년 광주
광역시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인 한승원
역시
작가죠 서울로 이주한 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는데요 대학제
시절부터 시와 초설 창작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시로는 190
서울의 겨울 등 내편의 작품으로
소설로는 1994년에 붉은 다치라는
작품으로
등단 이름인 한강은 필명이 아니라
본명입니다 작가 자신도 마음에 드는
이름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죠 이전부터
문학성을 인정받던 그녀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아마도 2016년에
채식주의자로 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하면서 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에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직한 작품들을 남기며 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작가 최초의 수상자가 되면서 한국
문학의 경사가
되었죠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단행
번호로 출간된 작품이지만 사실
2004년 2005년에 각기 발표된
바 있는 연작 소설입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그리고 나무불
것이라는 부로 구성되어 있죠 각기
따로 발표된 작품이긴 하지만 일관된
흐름과 지향점이 있어서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를 함께 놓고
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2016년에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해서 국내에서도 관심이 상당히
높았던
소설인데요 하지만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작품인데다가 담겨진 내용의
수위가 높아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진입 장벽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대표적인
데다가 문학성을 인정받는
소설이니만큼이 작품을 놓치고 지나갈
수 없겠죠
워낙의 상징적인 구성과 표현이 많은
작품이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미
수많은 해석 영상과 글들이 넘치고
있습니다만 제 영상을 하나 더 얹어
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이 소설의 주인공은 영이란
이름의
여자입니다 그녀의 언니 인해가 있고요
영예는 정서방이 남자와 결혼을 했고
해 역시 영상 예술가인 남편과 결혼을
했습니다 해와 영의 자매의 아버지가
등장하죠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인공인 영예는 평생
특별할 것도 특이할 것도 없는 삶을
살아왔고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한지
5년이 된 평범한
여자입니다 그녀의 남편 정서방
자신에게 딱히 원하는 것 없이
집안일에 소홀해 하지 않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아내에게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정서은 새벽에 일어났다가 영 가
거실에 있는 냉장고를 빤이 쳐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고 꿈을 꿨다는 알지
못할 말을 듣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영애는 냉장과 있는 모든 고기류
생선류 심지어 달걀이나 제품까지도
모두 버리고 있었고 놀란 서방은 일단
늦은 출근을
합니다 그날 저녁에 영예는 남편에게
채식을 선언했고 그 이후 수개월 동안
정서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만큼은
채식을 하며 살아야 했죠 그러면서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던 는
갈수 밤잠도 줄여가는 등 특이 행동을
보이며 체중도 급속하게 빠져갑니다
얼마 와에 정서은 직장 상사들의
부부동반 모임에 초청을 받았고 영예와
함께 참석하지만 거기서 그녀는
채식주의 자임을 드러내죠 영예가
보이는 특이한 행동과 말 때문에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정서은 마음이 상합니다
그날밤 정서방 처가에 전화를 해
영예의 근황을 알리죠 영예의
친정식구들은 여러 차례에 그녀를
설득해보려 만 별 소용이 없었고 얼마
후에 영예 어머니의 생신이 되어
가족들이 모이게 됩니다 그날 역시
영예는 육식을 거부했고 다혈질인
아버지가 억지로 입을 벌려 고기를
넣어 주지만 영예는 보기를 베고
괴성을 치르며 칼로 자해를 합니다
영예는 응급실에 입원을 했고 가족들은
그녀를 걱정하지만 정작 영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며칠 후에 정서은 아내를
시키러 원에 갔다가 그녀가 상위를
타이한 채로 사람들이 다니는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목격하죠
가까이 다가간 그는 영예가 죽은
동박에 겨진 사체를 켜주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경악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이혼을 하고 말았고
영예는 혼자 원룸에서
살아가죠 한편 영 언니 이내는 영상
예술인 남편과 결혼에 지라는 이름의
아들을 두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이네 영예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고 예술과
남편은 직업의
상은은 과 밤샘을 하며 작업에
골몰하며 살았죠 이내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처제인 영애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아내로부터
그녀의 엉덩이에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심취하게
됩니다 그는 고립된 삶을 살라하고
있는 처제와 상담을 한다는 명목으로
영예를 찾아가 자기 작품에 출연해 줄
것을
요청하죠 그 작품이란 나체인 상태로
온 몸에 꽃과 식물을 그린 후 그
육체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담는
것이었습니다
영예는 그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자기 몸에 식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이내의 남편은
성적인 장면을 연출하고자 합니다 그는
후배인 제일을 섭외해 그의 몸에도
꽃과 식물을 그리고 영예와 함께 여러
포즈를 짓게 하며 영상을 찍지만 성에
차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고 영예의 방에서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마침 동생이
걱정되어 찾아온 이에게 걸리고 맙니다
이내와 남편이 언을 버리고 있는
잠에서 깨어난 영예는 나체 상태로
베란다에서 햇빛과 바람을 받고
있었습니다이 충격적인 일로 인해 결국
내의 가정도 깨어졌고 영예는 축성
정신병원이라는 곳에서 이번 치료를
받게 되죠 하지만 영예의 이상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도려
자신을 식물로 여기며 식음을 전하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영예의 친정
식구들도 하나둘 그녀와 연락을
끊어가는 와중에 그녀를 돌아보는
사람은 언니인 해가 유일했고
이내는 어떻게든 영예가
채식이라면
그녀는 자신의 고집을 끝내 꺾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이내는 어린 시절
영예와 같이 산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자기 자신도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 때문에 건강을
잃어갑니다
얼마 후에 병원에서는 식사를 거부하는
영애에게 관을 삽입해 미음이
공급하려는 시술을 하지만 격렬하게
정하는 통해 출혈이 발생하고 말죠
결국 병원에서는 영예 이번 치료를
포기하고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했고
이내는 동생과 함께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며 상념에
잠깁니다이 작품의 감상평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주인공 영예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채식주의자 때문에 흔히
영예가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이유가
무엇인지 채식주의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채식주의자에 이어지는 몽고반점
나무 불꽃까지 전체를 조망해 보면
영예가 지하는 것이 채식주의자 자체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선언하는데이는 육식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채식을 하는 인간이 되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후에 형부에 의해
온몸에 꽃과 식물을 그리는 퍼포먼스에
참여하고 나서부터는 아이 스스로를
식물로 인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영이는 정신병원에서 마치 자기가
나무라도 된 것처럼 땅을 짓고
물구나무를서는 행동을 하는데이는
그녀가 채식을 하는 인간을 넘어서
식물 자체를 지함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내가 알게 되는지 알아 꿈의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잘하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
들었어 그 후에는 아예 식음을 전하고
죽음을 바라는듯한 행동을 하고 있어
그녀의 종 지향점은 바로 인간도
식물도 아닌 존재임이 확인됩니다
그녀는 음식을 먹지 않는 자신이
죽을까봐 걱정을하는 언니 이에게
이렇게
하죠 죽으면 안 되는
거야 품의 주인공인 영예가 궁극적으로
무존재 지향하는 이유는 무존재 말로
다른 존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육식은 다른 생물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인간
사회에서는 육식을라는 인간이 가장
평범하고 정상적인 인간으로
주되 영예의 남편이 정서도 자기
아내가 채식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그녀에 대해 특별한 부분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 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작가 한강은 육식을 평범하고
정상적으로 여기는 모습을 통해서
폭력과 착취가 만연되어 있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고발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영예가 처음에 채식을 선언한
이유를 자신의 꿈에서 찾고 있는데 그
꿈의 내용이 피비린내가 만연한
폭력적인 내용이라는 점이이를
암시하지 그리고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무존재
지향하는 영예를 통해서 그러한 세상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겁니다
다음으로이 작품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인 영예와 그원인
이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 사람 모두 전통적인 순종적 내상을
보여주는 인물들이라는 것이죠 두 사람
모두 저마다 남편에게 헌신적이며
그들의 어머니 세대가 그래왔던 것처럼
마치 그림자같이 남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뒷발 아자 합니다 반면에
이들과 대조적으로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되게 폭력적이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이내와 영예 자매의 아버지는 다혈질로
젊은 시절부터 가정 폭력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묘사되며 두 자의 막내
동생인 영호 역시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이내의 남편은 자신의 성적인 욕구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영예의
남편 정서방이 경우에는 강한 출세
욕을 드러내죠 흥미로운 점은이
소설에서 해와 영예는 이러한 남성들로
인해서 고통받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는
겁니다 영의 엉덩이에 남아 있는
몽고반점이 그녀의 형부에게 욕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 폭력과
욕망의 대상화가 된 여성의 이미지를
예시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고통은
피흘림이 것을 통해 선명하게
시각화되고 있는데 이내는 하이라
형태로 영예는 자해를 통해서 피를
흘리죠이는 채식주의자 챕터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예가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동박의 사체에 선명한 붉은 혈이
있었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한면 작가 한강은 성의
이미지를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비폭력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인은 채식을 선언한 이후에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서 특히
가슴을 가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데
여기서 여성의 가슴은 비폭력을
상징합니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
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을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영예가
자신의 나치를 계속해서 드러내려고
하는 이유는 여성이 육체에 부여된
비폭력의 상징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인
것 같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이
작품에서 여성은 고통당하는 피해자인
동시에 비폭력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영예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에 어떤 의도가
있는가 하는
겁니다이 소설의 주인공은 영예 힘이
틀림 없지만 사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죠
채식주의자 챕터에서는 영예의 남편의
시점으로 몽고반점 챕터에서는 의
점으로 나무불꽃 챕터에서는 언니의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입니다 영예가이 소설의 주인공이며
그녀의 이야기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작가 한강은 일부러 그녀의
목소리를 줄이거나 음소거 시키고
있습니다 중간중간 영예의 말이나
생각이 나오긴 하지만 매우 제한적이며
채식주의자 챕터에서 나오던 영예의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버립니다
오로지 그녀의 짤막한 말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나올 뿐이죠
이때문에 자들 입장에서는 타자의
시선으로 영예를 바라볼 수밖에 없으며
알게 모르게 그 시선의 영향을 받아
그녀의 행동을 판단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처음에 영예는 갑자기 채식을
선언하고이를 고집하는 저항적 존재로
보였다가 몽고 반점에 꽂힌 형부의
요구에
수능하루전
있 인물로 비춰집니다 분명 같은
인물이며 앞서 말했듯이 일관된 흐름에
따라 자신의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지만
영예는 챕터마다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되는 셈이죠 대부분의
독자들이이 소설을 읽으면서 답답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주인공인 영예의
의도나 생각을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예뿐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진짜 내면의 모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남의 시선을 통해서
규정되고 하죠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복잡한 존
기도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복잡해
보이기도 합니다 영예의 경우는 세
사람의 시각에서 관찰되기 때문에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채식주의자라는 제목 영예를
규정하는듯한이 제목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여기까지
채식주의자 줍줍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