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과정속에서 수행하는 툭담 : 죽은 이후에도 시신이 부패하지않는 신비 [티벳불교의 숨겨진 이야기 3회]

불광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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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비디오 조회수·2024. 12. 29.
안녕하세요. 불광미디어 콘텐츠 실장 유원준입니다.
티벳 불교의 숨겨진 이야기 세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지난번 부타비 퀘스천에서 티벳 불교에서 배우는 죽음의 지혜라는 주제로
툭담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는데요. 툭담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오늘 박은정 선생님께 그 얘기를 자세하게 여쭤보고자 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가 저희 불광미디어 스튜디오인데요.
여긴 처음 와보시죠?
네, 처음 와봅니다. 좋네요, 아늑하고.
아주 훌륭하지는 않아도 조그맣게 저희가 촬영을 하기 위해서 준비한 공간인데요.
지난번에 저희랑 강연을 하실 때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잖아요.
그런데 설명을 해주시면서 질문 올라오는 것들 보고
반응들 온라인에서 보면서 느꼈던 게
이게 조금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냐면 티벳 사자에서 죽음, 바르도의 과정을 거치면서
죽음의 과정에서 잘 수행을 하면서 넘어가면 즉시 해탈할 수 있다는 게
자칫 잘못하면 잘못 살아도 그 시간만 잘 한다면
이렇게 해탈할 수 있다는 이런 생각으로 오해를 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은 그 티벳 사자에서나 티벳 불교에서 가르쳐 주시는 게
죽음의 과정에 대한 생생한 이해를 통해서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선하고 잘 살고 잘 수행해라라는
그런 메시지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거든요. 어떠십니까?
그렇죠.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는
사실은 밀교의 경전에서 주로 나오는 얘기고요.
근데 사실은 달라이라마께서도 법회 때나 이런 때에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 많이 언급을 하시거든요.
근데 죽음의 과정을 이해하게 되면 죽는 순간에 내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그리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그냥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죠.
내가 예측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래서 죽음의 두려움이나 어떤 불안 이런 것들을 좀 해소할 수 있고
그리고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런 특이한 현상은
밀교 수행이 전제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가능한 것은 아니고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다음에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그런 툭담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데
그것은 현생에 수행을 오래 해야지만 가능한 것이고
단박에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실 티백불교를 공부를 해보면
내일이 먼저 올지 내 생이 먼저 올지 모른다.
죽음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생에서 수행했던 이 수행의 결과
그 수행의 공덕이나 혹은 수행력에 대한 것 밖에는 가져갈 수 있는 게 없다.
네. 선업하고 수행력이죠.
그러니까 열심히 수행해서 착하게 살아라.
네. 맞습니다.
그래서 일반 불자들도 가능하면 수행이라는 게 꼭 스님들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든지 수행을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이게 수행이라는 것이 뭔가 라고 했을 때
어쨌든 티베트불교에서 이제 티베트불교라고 뭐 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티베트불교는 인도불교에서 온 거기 때문에
인도불교 나란다불교에서 얘기하는 수행이라는 것은 선에 대한 습관을 드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에는 선업을 지어라 라는 말은
결국에는 이제 거기에 담겨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져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에는 매 순간순간 본인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어떠한 행위를 하느냐
그것이 쌓여서 죽는 순간에도 그것을 결정하게 되고
그것이 다음 생을 또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죠.
그래서 마지막 죽는 순간에 어떤 특별한 어떤 행법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질 수도 없고요.
그 다음에 그거에 대한 어떤 큰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씩 잠에 들기 전에
꿈이나 잠이라는 것도 바르도라고 설명을 해 주시잖아요.
그런데 자기 전에 꿈 명상이나 이런 것들을 좀 해보려고
자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면
실제로 꿈 속에 들면 그게 잘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죽어도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꿈이나 잠조차도 그런데 사람이 죽었을 때
자기 의지대로 어떤 뭔가를 컨트롤하고 한다는 것은
정말 진짜 높은 수행력이 아니면 거의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제 저희가 오늘 툭담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툭담 생소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조금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툭담이 뭔지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 주십시오.
툭담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밀교를 수행한 수행자가
죽음의 마지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는
가장 순수하고 미세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 정강명.
그런 정강명의 의식이 마지막 죽음의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거든요.
그런 순수하고 가장 미세한 의식의 상태에서 수행을 하는 것을 툭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반드시 밀교 수행을 오래 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일어나지 않는 현상입니다.
그러니까 죽는 과정에서조차도 수행에 들어 있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데
이게 불교적인 설명은 그렇고
실질적으로 의학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사람이 죽으면 바로 사망진단을 할 때
일단은 심장이 멈추고 그 다음에 뇌파가 사라지고
그래서 뇌사와 심장이 멈추는 두 가지를 동시에 측정을 하면
사망진단을 내리게 되는데
사망진단을 내리고 나면 인체가 나타내는 현상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사후강직 현상이 나타난다든지
신진대사가 멈추면서 시신이 부패한다든지
그 다음에 체온이 떨어지고 여러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이 툭담에 든 스님들께서는
그런 징후가 수행을 하는 동안에는 멈춘다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제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
지난번에 비타비 캐스턴에서도 제가 간락하게 설명을 드렸는데요
마지막에 말씀드린 것처럼
죽음의 광명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단계가 있습니다
그 마지막 단계라고 하는 것이
방금 말씀드렸던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장 미세하고 순수한 의식이 드러나게 된다
한자 용어로는 현행된다고 표현하거든요
현행된다는 것은 드러난다, 표면화된다는 의미가 있는데
그게 왜 일어나게 되냐면
불교에서는 마음과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과정에서
먼저 몸의 4대 요소가 무너지는, 해체되는 과정이 있잖아요
우리가 지수, 화풍 이래서 지대가 먼저 해체되고
그 다음에 수대, 그 다음에 화대, 그 다음 풍대가 무너지는데요
이 풍대 안에서도 보통 풍대가 무너지는 것은
의학적으로 호흡이 끊기는 거
호흡이 끊기는 걸로서
방금 말씀하셨듯이 심장이 정지되고
호흡이 끊기고 뇌파가 더 이상 측정되지 않고
이런 것들로 인해서 의학적인 사망 진단을 내리는데
풍대가 해체될 때 불교에서는
풍대를 거친 풍대와 미세한 풍대의 해체를 얘기를 하거든요
거친 풍대의 해체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호흡의 멈춤, 정지를 얘기하고요
미세한 풍대의 해체는 의식의 해체와 함께 일어나게 됩니다
미세한 풍대가 해체될 때
의식, 다양한 어떤 계층의 의식들
거친 의식과 미세한 의식으로 해체가 일어나는데
마지막에 거친 의식이 다 해체된다는 것은
풍대가 모두 해체된다는 의미예요
마음이라는 것, 의식이라는 것은
이 풍대의 기반을 두고 존재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 몸에 있던 미세한 풍대까지도 다 해체가 되게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거친 의식이 모두 사라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거친 의식이 모두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가장 미세한 의식이 이렇게 표면화 되는 거예요
드러나게 됩니다
근데 이게 죽음이라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거거든요
근데 이 거친 의식들이 모두 사라지고
미세한 의식들이 드러나게 될 때
그때 이제 수행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이런 정강명이라는
가장 순수하고 미세한 의식이 드러날 때
이것을 알아차리기 어렵고요
그 다음에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그 정강명의 상태에서 머무는 것이 불가능해요
대체적으로 그 정강명의 상태에서
바로 완전하게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고
그 다음에 죽음으로 바로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제 수행자들은
현생에 오랫동안 수행한 수행력으로 인해서
그러니까 습관을 들였기 때문에
그런 수행력에 의해서 정강명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특히나 공성을 관찰해요
무화 공성을 관찰하게 되므로 인해서
거기에서 윗바사나 우리가 지관수행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적어도 공을 관찰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는
정강명이라는 마음의 의식을 대상으로 해서
집중해서 삼았다를 성취하거나
아니면 정강명의 의식 상태에서 공성을 관찰하여서
윗바사나를 성취하게 되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거죠
그게 말하자면 툭담의 상태에 들었다
산매의 상태에 들었다라고 보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상태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굉장히 오랫동안 현생에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반인들한테는 거의 희유한
거의 희귀한 할 수 없는
그러니까 자꾸 이제 그러면 안 그래도
댓글 얘기하셔서 저도 생각이 나는데
깔람바 말람바 그다음에 이런 죽음의 가정
그다음에 마지막에 광명의 상태에 머무는 거
그거 3일 정도는 누구나한테
그리고 그런 가정 누구나에게 이겨낼 수 있다는
그런 뉘앙스로 댓글을 다신 분이 계셨어요
그거는 밀교 수행 원리상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물론 3일은 누구나 있어요
그러니까 죽음의 가정을 우리가 시간적으로 말씀을 드린다면
평균 3일이 걸려요
그래서 우리가 아시아에서는 3일장을 대부분 하잖아요
그것이 굉장히 밀교 입장에서는
굉장히 합리적인 방식이거든요
합리적인 지혜가 바탕에 깔려있는
그래서 3일은 반드시 둬야 돼요
3일 동안은 사실 죽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그러니까 불교적 입장에선 아직 죽지 않은 상태죠
과정에 있는 상태지 죽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말씀드릴 수 있고
3일 이후에 여전히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그런데 환경적인 요인도 봐야 돼요
아까 대만의 어떤 스님은
폭염의 날씨에 시신이 부패할 수 있는 조건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썩지 않고
계속 관찰했을 때 4일, 5일이 지나도
여전히 그건 사실은 죽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직 살아계신 것이죠
불교의 입장에서는 죽음이 아니고
의학적으로는 죽었다고 얘기를 하겠지만
불교, 밀교의 입장에서는 죽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것들이 가능한 것이죠
사실 일반인들이 호기심을 갖는 부분들은
어떻게 사람이 죽었는데 시신이 썩지 않을 수 있어
이런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의 궁금증, 호기심
이런 것들이고
실제로 몽골이나 티벳이나
스님들께서 툭담에 드셨다는 소식들이 전해질 때마다
외신에서 토픽으로 다루는 이유가
그런 호기심이나 흥미, 이것 때문에 그런데
실제로 그건 일반인들의 시각이고
그걸 흥미로 바라보지 않고
사실 불교적으로 저희가 이해해야 되는 측면이 있다고 보이는데요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일반 티벳인들에게 톡담이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이게 외부 세계와 접촉하면서
이게 특이한 현상이 된 것이죠
달라이라마께서 1959년 티벳을 떠나서 인도로 망명하시면서
서방 세계와 접촉하게 되고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고
서양인들, 특히나 과학자들에게
수행자들에게 나타나는 이런 현상들이
그들에게는 사실 믿기 어려운
그들의 입장에서는 죽었기 때문에
너무나 신기한 현상인 거예요
그런데 과학자들이 연구나 조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달라이라마께서 그것에 대해서 흔쾌히 허락을 하고
그 다음에 도움을 주시거든요
지원을 해 주시는데
이번에 저희가 그 북답이 캐스션에
제가 그 죽음의 가정에 대해서 강연하고 나서
쉬는 시간에 청중 한 분이 달려오셨어요
그래서 저한테 질문을 주셨는데
왜 그렇게 얘기하세요, 톡담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사람들한테
떠들썩하게 얘기할 게 제 문제냐
왜냐하면 한 수행자가 스님이
죽음의 가정에서 그런 현상을 보이시는 것을
그냥 그것을 존중하고
조용히 지켜봐드리는 것이 예인데
막 사람들한테 뭐 이런 현상이 있었고
며칠이 뭐 시신이 썩지 않았고
막 이렇게 얘기를 해야 되냐 굳이
그렇게 질문하셨어요
저희가 얘기한 건 아닌데 보도가 나온 거지
네 근데 제가 톡담에 대해서 설명을 하니까
그분이 그렇게 느끼셨어요
근데 저는 그 질문이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불자이시고
어떻게 보면 수행자의 마지막을
조용히 지켜드려야 되는데 존중하고
귀한 현상이 있다고 해서
그걸 막 세간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
굳이 그렇게 얘기를 해야 되느냐라는 게
그분 질문이었어요
근데 저는 그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고요
그 질문을 좀 대중들, 청중들과 같이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저희가 너무 시간이 없어서 질리 시간이 없었잖아요
근데 이 질문을 똑같이 달라이라마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달라이라마하게
아니 그 기존의 일상이 써왔던
그 수행자들의 마지막 모습이고
이제 그거를 굳이 그렇게
과학자들의 연구를 돕는다는 이유로
사실 어떻게 보면 약간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톡담에 관련해서 연구를 하기 위해서
돌아가시고 있는 분의 몸에다가
막 갖가지 장치를 다 하거든요
막 이렇게 기계적 장치를 부착하고
막 이렇게 하기 때문에
이게 왜 그렇게까지 굳이 하셔야 되느냐라는 질문을
달라이라마께도 할 수 있죠
근데 여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린다면
기존에 우리가 어떤 세계나 현상을 볼 때
대부분은 유문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물질이 근본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제 그것에서 이차적으로, 부차적으로, 부수적으로 생기는 것이
정신, 의식, 마음이라고 보는 것인데
불교는 그거와 정반대의 입장에 있어요
불교는 정신이나 마음이 근본이라고 보고
여기에서 이제 부차적으로 물질이라는 것이
성립되고 존재한다고 보잖아요
근데 이러한 불교적인 어떤 관점, 철학들을
증명해내고, 보여주고
그 다음에 설명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소스가 바로 톡담인 거예요
과학자들은 유문론과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문론자들이죠
그렇죠
과학자들은 결국에는 물질에 국한해서
이제 조사하고 실험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이제 물질에 기반하지 않는
정신이나 마음은 인정하지 않아요
결국에는 물질이라고 했을 때 브레인, 뇌죠
뇌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는
정신, 마음이라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모든 신체적인 활동이
그리고 내가 더 이상 활동을 하지 않고
내가 정지되면
그 이후에는 마음이나 정신이라는 게 없는 것이죠
근데 이제 불교의 입장에서는
물론 물질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의식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감각기관으로 인해서
눈으로 어떤 것들을 인식하는
이런 안식, 이식, 비식, 설식
뭐 이런 것들도 인정하지만 불교에서도
그렇지만 물질에 기반하지 않은 정신과 의식이 있다라는 것을
얘기해 줄 수 있어야 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톡담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어떤 예가 되는 거죠
그런 차원에서 달라이라마께서
과학자들에게 어떤 전통적인 지원이나
도움을 주시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의 질문이 공개적으로 나왔으면
제가 이 대답을 했을 겁니다
아마 했을 텐데
그런 입장에서 이제 톡담이 중요한 것이지
그분 말씀 맞아요
조용하게 불교의 입장에서는
조용하게 고인을 보내드리는 것이 예의죠
예의인데
근데 그렇다면 이제 불교적으로는 어떤 가치가 있냐라고
이제 물어보셨기 때문에
불교적으로는 뭐냐면
수행을 하는 수행자의 입장
물론 밀교, 탄트라가 불교의 가르침이냐 아니냐라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거든요
학계에서는 대승불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냐 아니냐에 대한
그런 논의도 하고
그다음에 거기다가 이제 탄트리즘
이제 탄트라, 밀교가 부처님의 가르침이냐 아니냐를 얘기를 하는데
탄트라가 불교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힌두교에도 탄트리즘이 있습니다
근데 이제 우리가 항상 오류를 봄하는 게
겉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라고 해서
그걸 모두 동일시하는 그런 오류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불교에서 얘기하는 밀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정확하게 이제 알아야 될 필요가 있고요
어쨌든 제가 그 죽음의 가정에서 이제 말씀드렸듯이
밀교 수행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부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에요
근데 성부를 왜 앞당겨야 될까요
그거부터 먼저 말씀을 드려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가 그러면 필요하고요
대승불교와 그다음에 우리가 이제 초기불교
이제 소송불교라고 한때는 얘기했던
이 두 불교의 차이점에 대해서 먼저 또 아셔야 되고요
많은 것들에 대해서 불교라는 전체 틀 안에서
이제 부처님이 말씀하신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는데
우리가 이제 초기불교에서는
우리 각자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잖아요
아란과를 얻는 거
근데 이제 대승불교의 목적은
나 개인의 해탈은 물론이고
나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나 개인의 해탈은 당연히 있어야 되고
이게 해탈이라는 것이 불교에서는 궁극적인 목표예요
개개인의
왜 궁극적인 목표냐 하면
해탈은 참된 행복이라고 보는 거거든요
윤회가 고통의 온상이라고 보고
윤회 안에서 물론 즐거운 일이 많죠
소소한 즐거움들이
꼭 뭐 많다고 보기에는 그렇고
하여튼 뭐 가끔 있죠
근데 이제 명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그러한 세속에서 겪는 소소한 각가지의 행복들을
행복이 아니라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걸 행복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걸 참된 행복이라고 보기엔 어렵다는 거죠
참된 행복이냐 아니냐라는 것은
변화하냐 아니냐를 의미하거든요
우리도 사랑이 어떻게 변해
결국에 변하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그냥 세간에서도 얘기하듯이
참된 행복이라는 것은
잠깐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뭔가 행복감을 주는 거
만족감을 줘야지만
그것이 참된 행복, 진정한 행복이고
그랬을 때 해탈이라는 것이
불교의 입장에서는 진짜 행복
참된 행복이라고 보는 거예요
이제 그게 테라바다에서
이게 아라한과라는
아라한이 되면 그런 참된 행복
해탈이라는 것을 성취하게 되는 거죠
근데 이게 나만 행복하면
나만 참된 행복을 성취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그렇죠
우리도 가족 중에 한 명이 굉장히 크게
큰 부를 먹게 됐을 때
그런 막대한 부를 나누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이 참된 행복을 먹게 해야죠
그게 이제 대승의 시각이에요
그래서 나 혼자만 행복하지 말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연관된 모든 존재들이
이 참된 행복을 같이 누려야 된다라는
그런 출발점, 그런 시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거를 이제 다른 말로
중생제도, 이타구연, 중생제도라는 게
결국에는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해탈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거든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내게 능력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 참된 행복
해탈이라는 것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거예요
결국에는 그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붓다가 되는 겁니다
테라바다에서는 붓다가 될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내 개인이 참된 행복을 성취하면 되기 때문에
붓다가 될 이유가 없거든요
근데 대승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나만 행복하면 뭐해
같이 행복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것을 이제 불교적 용어로
보리심이라고 표현하는데요
그런 보리심을 일깨운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고
그래서 이제 그런 생각을 시작으로 해서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능력을 갖춰야 되는데
그런 능력은 이제 성불, 붓다만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불교에서 얘기하는 이상, 중생제도라고 하는
완벽한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 성불이에요
성불이 개인적인 성취가 아니고요
대승의 실질적인 목표는 중생제도예요
모두 같이,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궁극적인 행복, 참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게 목표예요
근데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내가 실현하는 나 자신이 능력을 갖춰야 되고
그런 능력이 일체의 종지, 일체 지혜라는
그런 지혜를 갖고 있는 붓다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붓다가 돼야 되는데
붓다가 늦게 되면 늦게 될수록
내가 이들에게 행복을 빨리 가져다 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밀교는 중생에 대한 깊은 사랑
그러니까 삼계라는 그 윤회의 세계에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그런 중생에 대한 지극한, 지독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보살이 성부를 앞당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수행이 밀교예요
그런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내가 최고의 깨달음을 얻고 싶어
채도의 깨달음을 내가 빨리 성취하고 싶어서
밀교를 수행해 라고 하는 사람은
밀교를 수행해서 성취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불교의 수행 원리상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밀교를 수행하면
빨리 성취할 수 있다라는 게
근데 그만큼 리스크가 딸라요
굉장히 위험해요
그리고 밀교의 수행은 반드시 비밀이라는 말을 쓰듯이
비밀로 붙여야 되고요
근데 비밀 수행을 할 때 여러 가지 리스크들이 있는데
그 리스크들의 위험성을 비유하는 다양한 비유들이 있거든요
배고픈 암사자와 장난치는 것 같다
이런 표현들이 있어요 경전에 보면
그만큼 위험해요
그리고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하면
잘못될 수 있는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밀교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나와서
함부로 하는 것도 좀 쉽지 않은 부분이 있고요
오해를 불러일으키면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지점이 있는데
어쨌든 제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밀교의 수행을 빨리 하게끔 만드는
그 중심에는 정광명이 있습니다
정광명 얘기를 하려고 제가 이렇게 빌드업을 한 건데
천천히 다음 시간이나 다른 주제를 잡아서 하기로 하고
그래서 정광명을 수행으로 드러내게 하는 것이
밀교 수행의 핵심이에요
그래서 조국의 가정에서도 제가 정광명에 대해서 얘기를 했는데
정광명을 가장 순수하고 순도가 높은
가장 순수한 미세의식이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수행을 하게 되면
현교에서 얘기했던 3대 아승직업이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정광명을 현행시키는 밀교 수행을 하는 것인데
그게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게 죽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굉장히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죠
그런 수행적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아까 참된 행복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제가 예전에 한번
불교의 어떤 가장 근본적인 목표가
번뇌를 소멸시키고 참된 행복 혹은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경전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쫙 찾아봤어요
한역경전에서
한역경전에서는 행복이라는 말이 검색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저는 그래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
행복이라는 말이 어떤 지극한 복
지극한 복락 이런 개념으로 저희가 쓰고 있는데
비슷한 용어로 한역경전에서 쓰인 단어들이 뭔가 이렇게 찾아봤더니
대체적으로 평안, 안락 이런 용어로 쓰이더라고요
그쵸 옛날에는 행복이라는 것은 현대적으로 표현되는 용어이고요
이게 흔히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고통과 반대 개념의 어떤 즐거움이나 어떤 쾌락
이런 걸로 생각하는 그런 개념들이 좀 있어서
행복이라는 말을 불교에서 쓰는 게 좋을까
계속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네 맞습니다 굉장히 좋은 지적이세요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행복이라는 것이 즐거움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행복이 실제로 불교에서 얘기하는
그러니까 행복이라는 것 자체가 현대어이고
불교에서는 찾아보셨다고 하듯이
행복이라는 지금 현대에 쓰는 이 말 언어를 쓰진 않습니다
근데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니까 현대의 행복이라고 하는 것이
편안한 안자를 쓰는데
결국에는 고통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거든요
그래서 행복의 범위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냥 즐겁다라거나 이제 쾌락적으로 느끼는 어떤
그런 느낌을 벗어나서 굉장히 넓은 자원으로 해석해 이해해야 돼요
맞습니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그래서 다시 좀 이제 좀 툭담의 얘기로 좀 돌아보면
저는 달라라마 스님께서 이 툭담 연구를
흔쾌히 이렇게 허락하시고 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말 그대로 진짜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만
현대사회는 정말 유물론이
거의 모든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정말로 물질에 근거한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그 유물주의가 과학과 결합하면서
모든 것들이 물질로서 설명되는
이런 현상 속에 저희가 살아가고 있는데
실제로 불교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정신문명에 대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 정신과 이 마음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설명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들을
끊임없이 파고 들어간 게 이제 사실 불교라고 보는데
이거를 사실 어떻게 보면 종교적으로 보면
야 이 신성하고 뭔가 이렇게 설명하기 어렵고
말론을 하기 어려운 거기 때문에
이거 설명해도 알겠어?
그런데 달라라마스님께서는 흔쾌하게 과학으로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신 거거든요
사실 이런 경우는 거의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달라라마스님께서 명상연구라든지
혹은 툭담 연구 이런 거에 대해서 문호를 열어주시고
실제로 지금 여러 가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외신을 통해서 보니까 러시아 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달라 해서
남인도에 있는 하겐스님들 혹은 수행하시는 분들을
오가면서 계속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얘기를 좀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시죠
저도 티베트의 뉴스 소식을 통해서 들었고요
달라라마 존자님께서는 제가 통역관으로 한참 활동할 때
툭담에 대한 얘기를 굉장히 많이 언급을 하셨어요
거의 수십 차례 언급을 하셨던 기억이 있고
그래서 저도 물론 일교 관련해서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도 있지만
존자님께서 이렇게까지 공개적으로 툭담을
얘기를 하시는 이유가 뭔가라고 했을 때
아까 말씀드린 어떤 그런 게 있고요
과학자들이 조사하고 연구하는 어떤 방식이
어쨌든 그 과학자들의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되는 그런 사실들을 사람들이 인정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이제 불교가 얘기하는 그런 정신이나 마음에 대해서
사람들이 과학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는
그런 어떤 입장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러시아 관련해서는 제가 듣기로는
이제 티베트 뉴스에서 대대적으로
거기에 대해서 이제 뉴스 보도가 됐었습니다
됐었는데 그러니까 죽음에 관련해서만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가서 이제 연구를 해요
세라 쪽의 남인도에 보면 따시림보라는 사원이 있어요
거기에 스님들을 몽골에 파견해가지고
적극적으로 이제 그 연구조사에 참여하게끔 했었어요
그래서 남인도에 있는 스님들 또 수행하는 스님들을
이제 그 연구단을 꾸려가지고
같이 협업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신 걸로 제가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게 단순하게 이제
그 툭담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수행하고 있는 수행자들에 관련해서도 연구를 하고
그리고 그것이 이제 죽음의 어떤 과정에서
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걸 연결해서 이렇게 연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달래라마 스님께서
혹은 이 티베트의 여러 스님들께서
이렇게 과학 연구에 협조하시는 과정들을 이렇게 보면
저는 어떤 생각이 들면
아 이건 굉장한 자신감이다
그렇죠
이 자신감 없이는 이게 사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민규류림포체나 마티우리카르 스님 같은 경우에
직접 그 fmri 다 저기 부착을 하시고
그 이제 측정에 이제 임해주시고
또 측정을 통해서 보여주는 결과가
정말 전 세계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뭐 이런 얘기까지 들을 수 있는 거는
사실 스스로의 삶에 대한 어떤 그 순결함
혹은 뭐 자기 수행에 대한 어떤 철저함
이런 것들에 대한 자신감이 없이는
사실 쉽게 나올 수 없는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과학과 관련해서 이제 그
외국 기자분들이 질문
달라이라마께 던진 질문 중에 되게 인상적이었던 게 있었는데
불교에서는 이제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생을 얘기하잖아요
삼생을 얘기하는데
보통 이제 이런 우리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현생밖에 없고
그 다음에 전생이라든지 아니면 내생에 대한 것들은 알 수가 없어서
종교적인 영역으로 치부해버리죠
근데 이제 제가 인도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TV 격론을 보면서 느꼈던 게 뭐냐면
아 이게 종교적인 영역에서
그냥 영역이라고 해서
그냥 그냥 뭐 그냥 믿어야지라고 생각했던
그런 부분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내려는
그런 노력이 있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됐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불교의 논리학을 인명학이라고 부르는데요
그 인명학의 내용이 뭐냐면
물론 사성제에 대해서
이제 논리적인 어떤 증명을 하려고 하기도 하지만
전생과 현생과 내생이 있다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해낸 내용이 인명학에 있어요
그래서 이제 그런 것들을 보면서
아 이게 그냥 막연하게 종교적 영역으로
치부했던 것들을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또 사회화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그 외국 외신 기자의 질문은 어떤 거였냐면
전생이나 내생이 없다는 것을 과학자가 증명해내면
달라이라마께서는 그걸 인정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었어요
근데 달라이라마께서 조금 이렇게
좀 당황하셨어요
왜냐하면 이제 불교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삼생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이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받아지는데
외부에서 이게 없다라는 것을 증명하면
당신은 그것을 인정하겠느냐
굉장히 도전적인 어떤 질문이기 때문에
한 몇 초 잠깐 생각하시더니
만약에 증명해내면 인정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게 뭐냐면 자신감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제 불교를 하는
티베트나 인도 불교의 태도가 뭐냐면
논리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
그런 것
그다음에 이제 검증되지 못한 것을
무조건 받아들인 걸 굉장히 경계해요
그래서 그것이 과학자들로 인해서 검증된다면
우리 입장에서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라는 거죠
그것이 이제 티베트 불교
인도 불교가 보여주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달라이라마 스님을 비롯해서
이제 티베트 불교가 과학에 대해서 취하는 태도를 보면
과학적으로 보면
사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이렇게 학문적으로 발견되기 전까지는
고전역학에 의해서만 세상을 다 봤잖아요
입자는 입자고 파동은 파동이고
시간과 공간은 이렇게 흐르고
인력은 이렇게 작동을 하고
이런 정도만 생각을 했지만
불교에서는 늘 그렇지 않다라고 얘기를 해왔잖아요
그 전까지는 사실 과학자들이 증명을 못한 거지 않습니까
근데 사실 양자역학이 이제 발견이 되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들이 밝혀지면서
다른 생각들을 또 하게 됐고
또 어떤 의미에서 과학은 늘 잠정적이지 않습니까
실험을 통해서 발견된 것까지만
인정을 하고 증명을 할 뿐이지
그 이후에 어떤 논리와 과학을 통해서
방법론을 통해서
무언가가 발견될지는 사실 예측하기 어려운 거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런 것들을 이렇게 흔쾌하게 받아들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거는 정말
그건 정말 굉장한 자신감과
신뢰를 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그렇죠
근데 티베트 불교가 말씀드린 것처럼
이 정신과 마음에 있어서
이제 과학이 하고자
과학적이라는 말을 할 때
그 과학적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어쨌든 조사와 실험을 통해서
검증된 것만 증명된 것만 인정한다는
기본 어떤 자세의 태도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이제 불교에서도 그런 태도
그러니까 인도불교, 티베트 불교도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는
굳이 우리가 물러서거나
주저할 이유가 없다라고 보시는 것이죠
사실 과학자들이 그런 얘기들 많이 하거든요
인문학 전공하신 분들을 비판을 할 때
과학자들은 정말 칼날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실험과 증명을 통해서
내가 주장했던 어떤 논리가 깨지면
바로 내려와야 되고
그 칼날 위에서 자기 몸을 베이게 되는
상황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인문학자들 같은 경우에는 증명을 한다는 게
사실 논리적인 증명밖에 없으니까
근데 그런 면에서
불교가 인문학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만
불교 지도자들이나
달라라마 스님을 비롯한 이런 분들께서
그런 것들을 스스로 칼날 위에 올라가시겠다고
선언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거는 정말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어떤 태도 때문에
서구에서 티베트 불교가 인정받게 된
가장 주된 원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나중에 인명학 관련해서
또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겠지만
사실 토론과 논리 증명을 통한
어떤 지적인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교만이 갖고 있는 어떤 특별한 전통이라는 생각을
저희가 늘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툭담 관련해서
계속 연구가 진행되기 때문에
연구가 언제 이렇게 좀 정리가 돼서
증명할 날이 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한 가지 궁금한 게
혹시 남방의 수행자들이나
동아시아 전통에 있는 분들 중에도
이런 툭담이라고 표현하진 않지만
툭담이라고 볼 수 있을 만한
이런 것들 얘기 혹시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들어본 적이 없네요
들어본 적이 없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제 반드시 밀교 수행이 전제돼야 돼요
그래서 불을 피우지 않으면 연기가 나지 않잖아요
이게 툭담이라는 현상은
밀교 수행이라는 불가분의 인과관계에 있기 때문에
밀교 수행을 하지 않은 사람이
우연하게 툭담이 일어난다?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물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3일 정도는 죽음의 과정에 있기 때문에
누구나 3일 정도는 있고요
4, 5일이 넘어서
말씀드렸듯이 시신이 부패하지 않고
살아있는 것처럼
심장과 호흡이 멈춰있지만
다른 부분들은 살아있는 것 같이
그런 특이한 현상이 있어야지만
툭담이라고 우리가 얘기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다른 전통이나 다른 문화에서는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이걸 왜 여쭤보냐면
미얀마나 윗바사나 사마타 수행처에 가서
수행을 하셨던 분들 중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호흡수의 수식관 수행을 하면서
계속 단계가 높아질수록
호흡이 빛으로 보이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얘기를 하세요
정말 호흡이 거의 멈추기 직전까지의 상태가 되면
호흡이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순간에
빛으로 느껴진다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런 현상들이 혹시
이런 티베프에서 얘기하는 정광명이나 이런
그거랑 전 다르죠
정광명은 죽음의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그거하고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특담이나
특담말고도 사실
티베프 불교에 신비한 현상들이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뚠모 수행 같은 경우
일종의 몸 안에 열이
그 마음으로 만든 열이
육신으로 증명이 된다고
연구했다는 결과가 있지 않습니까
근데 뚠모 수행은 불교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
아까 탄트리즘 탄트라가
불교에만 있지 않고
힌두교에도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나라의 단전호흡 같은 경우
네 단전호흡도 그렇고
단전호흡도 이렇게 단전에 집중해서
이렇게 호흡을 하게 되면
아래 단전이 따뜻해지는
그런 경험은 너무나 많은 분들이 경험하시는 거고요
이제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이제 뚠모는 내부 혈을 수행하는 건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정강명을 현행화시키기 위해서
표면으로 드러내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 중에 예비 단계거든요
이 뚠모 수행이
근데 뚠모만으로 무조건
그 정강명을 표면화시킬 수 있냐
또 그것만은 아니에요
그것만은 아닌데
그것은 이제 힌두교나 다른 수행에서도 있고요
이거와 관련해서도 실험 많이 했습니다
과학자들이
그래서 많이 해가지고
수행자들 눈이 오고
영하 20도인가
거기에 거의 뭐
옷도 아무것도 입히지 않은 채로
실험하기도 하고
냉장고에 수행자를 넣기도 하고
막 그러잖아요
실제로 체온이 올라가는 걸 측정하기도 하고
저는 그거 보고 좀
아 너무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냉장고에
냉동실에 큰 이런 컨테이너처럼 생긴
그 냉동실에 수행자들이 들어가서
젖은 담요를
담요를 몸에 이렇게 씌워서
생각만 해도 춥지만 추운데
그래서 이제 문을 닫아버리는
그 다음에 이제
이후에 열어보니까
담요가 말라 있는 거예요
뽀송뽀송하게
그 내부열로 인해서
그런 거 어떤 게
밀교수행의 하나의 어떤 현상으로 일어나는데
그걸 뭐 그렇게
그 밀교수행 안에서는
그렇게 특이한 현상은 아니고요
어쨌든 그런 뚠모나 이런 것들은
불교에만 있는 수행 방식은 아닙니다
네 뭐 뚠모 수행을 얘기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이제 나중에 한번
뭐 저희가 그 뚠모 수행만 가지고
이제 좀 한번 얘기도 좀 해보고 싶긴 한데
오늘은 이제
툭담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우리가 과학적으로 증명해내지 못한
신비한 현상을 볼 때
어떤 태도를 가진 것이 좋을 것이냐
그 다음에
툭담이라는 거를 자꾸
이렇게 흥미 위주로 보지 말자
그리고 죽음이라는
우리가 반드시 겪어야 될 이 과정을
어떻게 넘어가야 되는가라는
어떤 삶의 태도를 좀 연결시켜서
이제 보자라는 의미에서
사실 툭담을 좀 제대로 좀 이해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오늘 말고도 사실
툭담 관련해서는
아까 말씀하셨듯이
이제 뭐 밀교의 수행, 성불의 앞당김
그 다음에 이런 여러 가지 수행과 관련된 얘기로
이제 확장을 해나가면
툭담이 주제가 아니라
사실 불교 전체를 이제 가해야 되기 때문에
그 얘기는 이제 좀 천천히 해 주시기로 하시고요
그래서 이제 오늘 툭담 관련해서
좀 이야기를 정리를 좀 해보자면
결국은 우리가 이제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생각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죽음
전에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
제가 강연할 때도 잠깐 말씀을 드렸는데
죽음을 관찰하는 것
특히 죽음의 무상간에 대해서
관찰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죽음의 무상간을 하지 않으면
수행이 시작이 안 되고요
결국에 이제 수행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은
현생의 어떤 행복
현생의 행복을 누구나 추구하는 거잖아요
근데 현생의 행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곡닥쳐올 우리의 미래나
아니면 이 생의 어떤 유한함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지만
이 현생이 유의미해지는 것이죠
헛되이 함부로 보내지 않고
그런 측면에서 죽음에 대한
어떤 사유나 관찰은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리고 말씀하셨듯이 죽음의 과정
죽음의 과정에서 툭담 이런 것들을 통해서
나의 죽음의 과정에서 일어날 것들을
미리 우리가 알고
약간 미리 준비한다는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고요
그다음에 수행자들에게 일어나는
그런 툭담의 현상으로 인해서
물질이 다가 아니고
물질에 의지하지 않은
그런 정신과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라는 그런 어떤 이해에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흔히 일반인들 중에서
이제 티베사자에서 쉽게 읽었던 분들 중에
그런 얘기들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의학적으로 죽고 난 다음에 3일간
완전히 죽지 않은
그리고 이제 그 바로 직후에 찾아오는
바르도에서 하얀 빛을 쫓아가면
뭐 해탈할 수 있다
무슨 빛을 쫓아가면 안 된다
이런 식의 이해를 좀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툭담을 다루고
저희가 죽음을 다루면서도 계속 드는 생각이
언제 죽을지 모르고
내일 죽어도 사실 이상한 게 아닌데
영원히 살 것처럼 집착하고
터묵 뿌리고 하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내려놓는
그런 교훈을 얻는
그런 개념에서
이 죽음이나 툭담을 좀 바라봐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네 오늘은 툭담에 대해서 좀 알아봤고요
저희가 티벳불교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서
좀 흥미 위주의 이야기도
이제 저희가 좀 많이 이야기를 나누겠지만
사실 중요한 거는
저희가 재미를 삼기 위해서
영상을 녹화하는 건 아니고
우리가 이제 불자로서 생각해봐야 될
여러 가지 주제들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티벳불교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저희가 존경에 맞지 않는
달라라마 존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이런 이제 좀 교훈을 얻는 시간으로
계속 이 녹화를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세 번째 녹화신데 어떠셨습니까?
아직 해야 될 말이 많은데
빨리 끝나는 듯한 느낌
좀 아쉬움이 좀 있고요
어쨌든 여러분들이 이제 보시고
또 궁금한 부분이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시면
또 거기에 반영해가지고
여러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기 중심으로 해서
또 의미 있는 그런 내용들을
전달해드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댓글과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이 불교 관련된 콘텐츠나 이런 쪽에는
댓글이 사실은 안 좋은 댓글이
가끔 올라오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그 안 좋은 댓글의 사례가 어떤 거냐면
영상을 다 보지 않으셨는데
덮어놓고 이거는 이런 거야라고
마치 자칭 도사 같은 이야기를 하시거나
혹은 비아냥거리시거나
혹은 일방적인 어떤 비하나 혐오
이런 댓글들은 저희가
아무 경고 없이 바로 삭제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댓글들은
사실 저희가 이야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댓글을 통해서 정당하고 진지한 어떤 질문이나
이런 것들은 저희가 대환영인데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뭐 이런 일방적인 얘기를 통해서
저희가 전달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댓글은 사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도
좋은 댓글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래서 얼마든지 진지하고
어떤 불교를 공부하는 불자로서
우리가 나눠볼 수 있는 댓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환영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댓글 많이 남겨주시고요
오늘 툭담 시간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릴게요
댓글과 관련해서도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 법기를 얘기하는데요
법기의 첫 번째 요건이 뭐냐면
열려있는 마음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물론 부족할 수 있지만
저희의 얘기나 답변들이
일단 열려있는 마음이 있어야지만
우리가 좋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런 좀 열려있는 마음으로
콘텐츠 내용들을 좀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100% 공감하고요
이 영상을 통해서
그동안 조금 덜 알려져 있거나
그동안 대중들에게 좀 덜 소개됐던 것들을
조금 더 알리려고 하는
그런 취지에서 기획이 된 거니까
계속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라겠고요
그다음에 박은영 선생님께
질문하시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얼마든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제가 대신 질문 드리고
또 다음 시간에 반영해서 녹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시간, 오늘 서울에서 녹화를 했는데요
경주에서 이제 학회와 강의 때문에
친히 서울까지 올라오셨는데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티벳 불교의 숨겨진 이야기
세 번째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는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