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도연명(陶淵明)이 낙향한 이유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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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비디오 조회수·2026. 4. 28.
문화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오늘 보고픈, 어쩌면 그리운 시인 한 분 만나실까요?
아마 싫지 않으실 겁니다.
강나라보다 이전 동진 시대인이 그야말로 옛날 옛적 시인인데요.
이 시인이 긴긴 세월 사랑받는 요인이 좀 특별합니다.
관직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그 행적이 유명하거든요.
그게 어떻게 유명해졌을까요?
바로 그 일에 대해 스스로 시를 써두었기 때문입니다.
역시 시인은 시 자체로 남는 모양입니다.
역사서에서 그를 언급하지 않았어도 그 자신의 시가 그를 존재하게 합니다.
이름은 도참. 연명은 그의 호입니다.
도연명이죠.
뜰 앞에 버드나무 다섯구를 심었다 하여 오류선생이라고도 불렸어요.
젊은 시절 십여년간 지방 관직을 전전했고요.
마흔한살에 행택혈령으로 근무하던 시절 당시 월급이 쌀 다섯마리였다고 하니
참 박봉이었을 겁니다.
이게 어느정도 금액이냐면
여러분이 월급을 받고 마트에 가서 쌀 십키로 사면 땡 끝입니다.
그것도 잘 못사요.
그런데 어느 날 감찰사가 온다고 예복 갖춰입고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말에
그는 성질이 났어요.
머리를 꿋꿋이 들고 요즘 말로 하자면 사표를 던져버립니다.
쌀 다섯마리에 고개를 숙이진 않으련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 부분의 심회를 시로 남겼습니다.
그의 대표작 귀거래사 첫 줄이 바로 그겁니다.
귀거래해 전원장무 호불귀
우리말로 대략 하자면 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요.
이 부분이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에밀레 범종 때리듯 땡 울려줬던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쌀 다섯마리 너무 박봉이라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고향의 전원을 기억하시나요?
거기가 황폐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보잘것없는 감각적 욕망에 오고 가며 칠정유격에 끄달려 다니는 동안
우리 생명의 고향은 자풀이 키를 넘도록 무성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문득 고개 돌려 고향쪽을 바라보았을 때
누군가는 그걸 느낍니다.
돌아가자.
너무 오래 한눈팔았고 너무 오래 놀았거든요.
그래서 돌아가는 그 일을 반본귀진이라 합니다.
또 한 명은 지금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일 겁니다.
바로 우리 옆에 서서 칠을 흥얼거리며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