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젊은 남녀 조선 청년들을 팔아넘겼던 당신이 모르는 충격적인 여성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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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여성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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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 돋보기입니다 흔히들
우리가 친일파를 떠올리면 아마 대부분
남성들을 떠올릴 겁니다 이완용 박재순
박영효 서정주 이광수 박흥식 노덕술
등등 전부 남자죠 그렇다면 여성
친일파는 없었을까요 단 안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적지도 않았습니다 과연 여성 친의
파들로는 누가 있었을까요 먼저 배정자
있니다 배정자의 아버지는 경남 김해의
아전이 있는데 배정남의 아버지가
명성왕후 민씨의 적대적이었다 봅니다
흥선대왕군 하여 후 그의 행적과
바른들이 문제가 되어 대구에서
사용되었죠 그 충격에 배정자의
어머니는 맹인이 되었습니다 배정자는
어린나이에 천민으로 강등되었고 맹인인
어머니를 모시며 전국을 떠돌아
유랑하다 기생이 되기도 하였죠 비참한
3을 도저히 버티지 못했던 배정자는
차라이 비구니가 되어 버렸는데 3년
후 그녀의 정체가 탄로나 절에서 도적
겨났습니다 이후 죽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동래부사 정병화 보호를 받았다고
하는데 역대 동래부사 목록에는 그런
이름이 없어서 실존 여부가 의심되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배정자는 정병화
도움으로 조선을 탈출해 일본 본으로
넘어갔는데 정병화 존재는 신빙성이
떨어지지만 그녀가 일본으로 간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때 다른 조선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진 났지만 남편은
일찍 죽고 배정자는 과부가 되죠
배정자는 일본에서 안경수 아는이
갑신정변의 참여했던 인물과 만나는데
안경수 도움으로 배정자는 여학교에
입밖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경 수를 통해 김옥균 그지
배정자는 알게 되었고 김옥균의 중재로
이투 히로부미를 만났다고 하는데 이투
히로부미가 호색 칸으로 또 유명하죠
배정자의 미모가 눈에 띄어 배정자가
이투 히로부미의 수양딸이 되어 이주
히로부미는 배정자를 첫 부원으로
키웠죠 이주 히로부미는 배정자를
고정의 통역관으로 임명해 배정자는
사다코는 이름으로 귀국하였고 이때부터
고종을 모시면서 배정자는 온갖 고종의
정보들을 이초 히루 보미에게
전달했다고 하죠 일제 강점기 후에는
일본군 한병 대에서 일을 하다가
만주로 넘어가 하빈 주제 일본
영상관에서 근무했는데 그녀의 본업은
만주와 블라디보스토 근에 퍼져 있던
첫 부원들을 관리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여기서 독립운동가들 색출 및 체포
화물을 담당하기도 했죠 또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군 위안부 징진 및
파견 를 도맡기도 했습니다 해방 후
반민 투기에 체포되었지만 반민 투기
해산으로 석방되었고 1952년 한국
전쟁 도중 서울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배정자는 명백한 친일인이긴 하지만
그녀와 관련한 것들 상당수가 검증이
되질 않았고 이초 히로 보의 수영
달리라는 것도 일본측 기록엔 아예
없습니다 그녀의 이름도 거론 되지도
않죠 하지만 반민 치기가 체포한 친일
여성들 중 가장 먼저 체포한 사람이
배정자 있 것으로 보아 악질 친일
이능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음은 김
환란 있니다 바로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 김 환란은 처음부터 또 친을
파였던 것은 아닙니다 본디 민족 교육
운동가 그리고 여성 운동가였던 이화
학등 출신이었던 김 할라는 1926년
순종황제가
붕어한마리 만곡을 해 경찰서에 연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1927년에는 좌우
합적 운동의 일환으로 전국적 규명의
여성 단체 근우회 설립에 참여했으며
1932년부터 이화 여자 전문학교의
교사로 제직하였고 하지만 김알라
1936년부터 총독부 소속의 단체에
가입하며 변절자 읽기를 걸었습니다
일제가 정신대를 모집하면서 터는
김말란 라는 이화 여자 전문학교의
여학생들을 정신대로 보내 버리거나
정신대를 찬양하는 결들을 기고했고 기
말라는 정신대에 자원하는 것이야말로
여성으로서의 가구라고 묘사를 했는데
그 글들을 보면은 8현 치이 그지
없습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고 감격이 왔다 허둥지둥
감동에 빠지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지만
어떨지를 모르고 눈을 휘둥그래 뜨고
갈래를 못 찾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반도 여성은
그저 내 아들 내 남편 내 집이라는
범위에서 떠나 보지를 못했다 떠나볼
기회가 없었다 이제 우리에게도
국민으로서의 최 의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 시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알 수 없다이 감격을
저버리지 않고 우리에게 내려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1941년에
조선임전보국단이라고이 친을 인사들
그리 조직한 조선 총독부의 황국
신민화 정책과 민족 말살 정책을
홍보해 주던 단체가 있었는데 이듬에
1942년 김한란 박마리아 모윤숙
노천명 박순찬 등 조선임전보국단 친일
여성들끼리 조직한 조선 임전 보국단
부인 대를 만들어 친인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김말란 해방 후
1946년 이화 여자 전문학교를 이화
여대로 전환시키며 이화여대의 초대
총장이 되었습니다 김말란 그 비슷한
친해 파로 황신덕이 있습니다 와세다
대학교를 졸업해서 국내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황신덕 그 김말란 럼 의외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고 여성 교육
운동에 힘썼습니다 황신덕 오느 날
중앙여중 중앙 여고의 전신이었던 경성
가정 여수을 창립했던 황신덕이 학교의
여학생들에게 징병 및 정신대를
격려하고 내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정신대로 차출된 학생이 있으면
학생에게 일장기 머리띠를 두게 하고
차출되고 전에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황신덕 학생들의 속에
정신대로 보내버린 도저히 선생님이라고
할 수도 없는 파렴치 안이었고 훗날
해방 후 학생들이 노년의 황신덕
찾아와 원망하니 미안하다고 후회한다고
할 뿐이었다죠 김말란이 조직했던 친일
여성 단체 조선 임전 보국단 부인대
멤버들 중 또 모윤숙이라는 친일파가
있습니다 모윤숙 이화여자 전문학교와
비록 졸업은 못했지만 경성 제대도
입학을 했을만큼
지식인이었다 있 문학가로 활동했습니다
글을 꽤 잘 썼다는 것일 텐데요이 글
실력을 징병 정신대 학병을 격려하는
글을 쓰 데다 썼죠 모현숙 기말로
못지않는 대표적인 여성 친을
파였습니다 그녀의 신화 수필 소설
칼럼의 제목들이 아주 가관인데 몇
가지 살펴보자면 어린 날개 히로오카
소년 학도 병에게 지원 병에게 여성도
전사다 군국의 어머니 등 등이랍니다
비슷한 사람으로 여성 시인 노천 명이
있는데 그녀 역시 시인으로 유명했지만
승전의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노래하자
하를 등 이따위 친일 시들을 연 거프
발표했답니다 다음은 오현주 있니다
오현주 본디 김마리아 여사와 함께
민족운동과 여성 운동에 힘쓰던
독립운동가 출신입니다 1919년 3일
운동 직후 서대문 형무소로 끌려간
남편들의 오빠라이를 해주기 위해
오현주 오현관 이정숙 등이 모여
혈성단 부인회를 조직했습니다 이후
다른 여성 단체였던 대조선 독립 애국
부인회와 단체를 하나로 합쳐서 만세
수위를 부추기고 임시정부 자금 확보에
나섰죠 이때 회장이 바로 오현
주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삼일운동이
열기도 줄어들다 작시한 김마리아를
비롯한 17인이 조직 쇄신에 나서서
1919년 10월 대한민국 애국
부인회를 창설했습니다 회장에는
김마리아 여사가 선출됐고 선임
회장이었던 현주는 고문 역할을 맡았죠
그러나 결국 현주가 대한민국 애국
부인회를 배신해 버리는데요 오연주는
자신과 남편 그리고 언니 오현 관의
안전은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조직을
조선 총독부에 밀고 하여 김마리아
여사를 비롯해 대한민국 애국 부인의
간부 상당수가 체포되어 끔찍한
고문들을 당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애국 부인의 사건이죠 오연주는 밀고를
한 덕에 3,000원이라는 거액의
포상금을 받았습니다 남편 강남군대
악질 친일 파였는데 해방후 반민
투기의 체포되자 남편의 강요로 인한
어쩔 수 없는 밀고 였다면 발병
했다죠 반민 투이 해산과 더불어
처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 조각가 김복진의 아내이자
카프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허하은
총후 부인의 가구라는 기고를 통해
조선 청년들의 징병 및 징용을
환영한다면서도 있고 오늘날 성신여대의
전신을 설립한 교육자 겸 화가였던
이숙 종은 태평양 전쟁 당시 젊은
여성들도 전쟁에 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글들을 바포였으며 심지어는
공출 및 백업으로 조선인들의 불만이
쌓이자이 숙종은 쌀이 부족해 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건강을
위해 죽을 마시고 소화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채소를 먹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더욱더 맑고 상쾌한 기분으로 능률
있게 일하기 위해서 아침은 옆차만으로
때우는 것이라 생각하자는 망언을
하게도 했습니다 홍승원 럼 아예
처음부터 친일 여성인 경우도
있었는데요 홍승원 ey 아버지부터
조선 총독부의 중추원 출신이었고
홍승원 노골적인 친일 여성 단체 조선
부인 문제 연구의 창리 멤버였으며
조선 총독부가 정신대 동원을
하고부터는 아예 국민 정신 총동원
조선 연맹의지도
위원이었던 젊은 조선인 청년들을
보면서 황군이 행군하며 환우 소리를
듣는 듯 하다라는 개소리를 하기도
했죠이 외에도 여성 친일파들을
찾아보면 훨씬 많은데요 처벌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상당수가
초기 교육 운동과 여성 운동에
힘쓰다가 변절한 경우라서 그들의 의가
부각됨에 따라 그들의 친해 행각은
묻히는 감이 있는데요 누구든 자신이
이룬 의는 의고 잘못은 잘못으로
나누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들로부터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녀들의 의의가 어찌됐든 그녀들의
친일 행각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겁니다 그럼 역사 돋보기 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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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까지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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