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해본 부처님 "너넨 고생 말라" 깨우친 뒤 알려주신 정각 직행 코스 | 범일스님의 '니까야에서 본 불교' | 6 정각에 이르는 길 (2) | 석가모니 자성 출가 고행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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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오늘은 저번
시간에이어서 정각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정각에 이르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우치시고
전에 사문
타마라는 이름으로 닦아 나가면서 을
이신 길이 있어요 그걸 저번 시간에
우리가 토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정각을 이루신 사문
고타마 깨우치신 분이 되셔서
어 그 이후에 제자들한테 이렇게
이렇게 닦아 나가면 정각에
이르라고 가르쳐 주신 그 방법이
있어요 그 두 개가 이제 그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길이거든요
오늘은 정각을 이루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정각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우치시고 전에 스스로 가서 깨우쳤던
길과 그리고 그렇게 해서 깨우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한테 가르쳐 주신
길하고 그게 얼마나 서로 같고 얼마나
서로
다른가 그리고 이렇게 깨닫기 전에
스스로 이렇게 시행 착오를 겪 겪어
가면서 깨달음에 잃었던 길과 그리고
깨우치시고 난 다음에 가르치신 길은
시행 착오가 필요 없거든요 그 시행
착오 필요 없이 곧장 갈 수 있게끔
가르킨 것 이게 두 개를 서로
비교하면서 공부해 보는 것은 재밌을
것 같습니다 저번 시간에는 사문
고다마 그서 어 정각에 이르는 길을
살펴봤어
오늘은 그
이후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비구들
가르쳐줬던 그 방법과 서로 어 이렇게
비교해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짚어 갈
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 많은 가르침을
펼치 그 모든 가르침은 정각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신 거예요
이르는 길과 관계 없는 것은 하나도
가르치지
않으셨어요 모든
가르침은 정각에 이르게 다양한
사람들이 누구든지 이렇게 닦으면
정각에이를 수 있게끔 가르친 내용이
전체 법이에요 전체 가르침에 해당이
돼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정각에 이르는 길을 상세하고
세밀하게
공부하려면 님께서 깨우치시고 난
다음에 가르치셨던 모든 가르침을 다
배워야
돼요 그게 가르침에 이르는 길에
관련되 있는 모든
가르침이 그렇게 보는
것이 세밀하게 가장 세밀하고 이렇게
그
어 정밀하게 보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을 어떻게 이제
경전에는 그걸 하느냐면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 모든 가르침을 다 이렇게
어 설명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
그것을 받아들여서 따라가 가면은
정각이 이르는데 그것을 뭐라고
하느냐면 사성제를 바르게 보고
안다라고 이해를 해요 그렇게 표현을
해요 그래서 사성제를 배운다 사성제를
이해한다 사성제를 보고 안다라는 뜻은
무슨 말이냐면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을 이해한다는 뜻으로 표현이 된
겁니다 그렇게 이해를 하셔야 돼요
그다음에 그렇게 그러면은 그렇게 하면
좋지만 그 가르침이 방대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조금 간추려서 말을
하면 정각에 이르는 길을 좀 간추려서
중간 정도로 간추려서 얘기하면은
37도품이라고
해요 그 많은 중에서 이렇게
37도품이라는 것만 뽑아서 이것이
정각에 이르는 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가르침만 뽑아 놓은 것이
37도품이에요 근데 거기서 더 압축을
해서 더 간략하게 해서 그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이렇게 그 오늘 같이도
같은 시간에도 그걸 다 커버를 못
하거든요 그걸 좀 더 압축해서
간하게 정각에 이르는 길을 한마디로
딱 하면은 그게 팔 정도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정각에 이르는 길은 상세하고 크게
보면
사성제 조금 더 이렇게 간략하게 보면
중간 정도로 간략하게 보면
37도품 아주 매우 간략하게 해서
설명을 하자면 8
정도입니다 이렇게 이제 그 할 수
있어요 근데
이것이 부처님께서 깨우치시고 난
다음에 많은 시행 착오를 겪고 많은
아니지만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정각에 이르시고 난 다음에
그 최초에 오비구
찾아가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정각에
이르는 길을 설명을 해 줘요 맨 처음
가르쳐줬던 경전 그것이
초전법륜경이에요 초전 경에 이것이 잘
나와 있어요 부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은 정각에이를 수
있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초전법륜경 오늘은 잘
이렇게 그거 어 따라가서 공부를
하면서 부처님께서 정각을 깨우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한테 정각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가르쳤는지 그것을 문꽃
다마게 정각에 이른 길과
비교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이해하는게
좋겠어요
37도품 뭐냐 하면은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면 염초 사정근 4여의족 12개조
그다음에 어 5근 5력 그러니까
2개죠 8정도 30개 7각지 37
개요
이것을 37도품이라고 합니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우리가 오늘 팔정도로 공부할
건데
4는 그 어떻게 수행을 해 나가느냐는
아주 기본적인 그 선정 수행을 어떻게
닦아 나가는가 하는 것에서 이론적이고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 줘요 모든 이론
책예요 그리고 정근과 정근은 오늘도
팔정도 안에 들어가는 내용이거든요
이거는 이제 어떻게 부지런히 매번마다
매 순간마다 닦아 나가느냐 하는 걸
설명하 거고 4 여적 근 력은 이런
이론과 이렇게 부지런히 하는 것과
이렇게 이론적인 그 길 그다음에
칠각지 어 이걸 장비를 갖추어서 이런
근 근력과 근력 이렇게 머을 근력을
키우고 힘을 이렇게 갖춰서 이런 걸
해 나가야 된다라는 뜻이에요 장비를
갖추고 그 근력을 키우고 어 이렇게
저 힘을 키워서 갖춰서 이렇게 해
나간다는 뜻이거든요
각지는
아 그 깨달음의 관점에서 보고 설명을
하는 거예요 깨달음이라는 나무에서
나무에서 그 큰 큰 가지가 일곱 개가
나오는데 그 뿌리가 그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어떤 가지를 타고
들어오든지간에 뿌리로 들어올 수
있어요 그래서 염지 시작해서 사각지
맨 마지막이 제일 큰 그게 사각지
사자는 는 버릴 자예요 그래서 버리는
것을 계속 버려
나가면서 이루는게 이제 전각이라는 그
이제 그 내용 중에 하나거든요
그래서이 버린다는 것을 잘 이렇게 그
아셔야 되는데 아 정각을 이루는 길
맨 처음부터 어 출가하면 터 다
버려요 집을 버리고 저기 그 친구와
가족을 버리고 아 사회에서 이렇게
벌어놓은 돈과 재산을 다 버리고 다
버리면서 다 이렇게 나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최초에서 출가할 때부터 버려서
계속
나아가면서 정각에이를 때까지 버리는
건 말고 하는게 없어요 계속 버려
나가는 거예요 이제 이런 이런 것들을
이제 이해를 하는 건데 이게
37도품이에요 부처님께서 아 저번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출가해 맨 처음에
아 미틸라 있는
음 바가와 선인 테서 고행 수행을
배워요 고행 수행을 배우는데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거 최대한으로 다
배우지 않고 어 어느 정도 충분히
배우고 나서 거기를 떠나요 왜냐하면
거기서 원하는 것을 다 배운다면 죽을
때까지 해야 되니까 어 어느 정도
해서 성취를 하고 난 다음에 아 떠나
떠납니다 떠나서 외산리 있는 알랄라
알리마 소인한거위불선
그래서
이렇게 우라 있는 지역에 강 옆에
조그만한 이렇게 그 마을이 있는데
마을 마을에서 이렇게 가까운 그 강에
있는 숲 숲과 연결되 있는 그
지역에서 이제 홀로 수행을 해요 홀로
수행을 하는데 맨 처음 뭐를 하느냐
하면은
어 고행을 해요 고행을 하는데
가지가지 이렇게
그고 와 인한테 배웠던 고행 중에서
끝까지 해보지 않았던 것 마지막으로
해보지 않았던 것 아주 지극한 고들을
거기서 다 해봐요 다 해보면서 어
회의를 여요 어떻게 어떻게 생각을
했느냐 면은
아 이렇게 지극하게 고행을 하는
사람은 과거에도 그 누구도 없었을
것이고 현재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지극 하게 고행을
했지만 내 나는 아직 정각을 이루지
못하고 성스러운 경지를 이루지 못하고
나한테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이 길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정각에 이르는 다른
길은 무엇이 있을까라고 생각을 해요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세 가지
나무토막의 비유입니다 저번 시간에
설명을 드렸죠 그렇게 하면서 이제 그
나무토막의 비유를 생각하면서 문득
오르면서 이제 그거 어음 고행에
대해서 마음을 내려놓고 그리고 난
다음에 그 그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해요 그럼이 길 말고 정각에 있는
다른 길은 무엇이
있을까 사유를 합니다 이제 고행은
끝났죠 끝났지만 어 몸을 일으키지는
안 았죠 그러니까 바깥에서 보면은
계속 고행을 하는 중으로 보이겠죠 어
이건 아니라는 걸 알 알았지만 다음
단계를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나면은 성급하지아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사유를 해요 그래서 시간의
역순으로 지금부터 과거로부터 계속 아
스스로 이렇게 모든 들었던 것
기억했던 것 배웠던 것 그 모든 것을
다 검토를 해요 검토를 해 나가면서
어기 이 정각에 이르는 길이 무엇이
있었을까라고 사유를 합니다 그러다가
어릴 때의 기억까지
쫓아가요 어릴 때 기억에서 쫓아가서
농경제
때 그때 초선정 들었던 것을 기억을
해내요 조선장 들었던 그 잠깐 들었던
건데 그걸 기억해 내고 그것이 정각에
이르는 바른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돼요
근데 그렇다면은 의문이 드는게 왜
그럼 어렸을 때 정각의 그 초선 정에
들었는데 왜 그것을 계속 발전시키지
못했는가 하는 소리예요 왜 왜 그
세월 동안 중단되는 하는 소리예요
그거는 왜냐하면은 어릴 때 어릴 때
아주 이렇게 나무 밑에서 어 초선정
들었는데 초선정 들면서 희락이 막
생기는 거예요 기 처음 느껴본 기쁨과
행복이 막 샘솟 치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그래서 그 어린 나이 어떻게
생각을 했느냐면 어
두려워했어 자기도 모르는 어떤 기쁨과
행복이 막 샘솟아 치니까 이것이
자기로부터 자기를 어떻게 이렇게
타락시키다 그렇게 해서 그때부터 그
그 희락을 멀리 했어요 두려워하고
멀리 했어요 어릴 때 그렇게 마음을
정했어요 모르니까
그렇게 했던 것을 지금와서 그거를
기억에 되살려 보니까 그때 희락은
감각적 욕망 감각적 오욕에
상관이없고 가에도 상관이 없었는
없었는데 내가 왜 그것을 두려워하고
멀리
했던가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멀리하지
않으리라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이 정각에
이르는 바른 길이라는 것을 확신을
가져요 그러면서 생각을
해요
자 그렇다면 어렸을 때 내가 그걸
느꼈던 초선정 들어서 느꼈던 희락을
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지금의
몸으로는 몸 상태로는 그것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어나서 몸을
추스려야겠다 건강을 추스리지 않으면
그것을 그 희락을 다시 얻기란
어렵다라고 생각을 해서 일어서서
모욕을 하고 이제 그 수자 타가 준
우유죽 드시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몸을
회복하고 그다음에 음식을 이렇게
들면서 몸을 회복하고 같이 고행을
하던 비구들은 그걸 보고 저기 고행을
멈췄나 타락했다고 하면서 떠나 버려요
다들 홀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몸을
추스리고 난
다음에 추리고 추스리면서 이제 그거
다시 이게 이제 그 어 공부해
들어가죠 닦아 들어가는데 이때까지요
지점까지 뭐냐 하면은
어 고행을 버리는
거예요 고행은 바른 길이 아니다라고
자각하고 고행을 버리는 거예요 그
고행을 버리면서 어 바른 길 정각에
이르는 바른 길을 알아낸 거예요
깨달은 거예요 알아낸
거거든요 그래서
그 어 저기 초전법륜 경에 어떻게
나와 있냐 면은 자기를 괴롭히고 어
자기를 괴롭히는 그런 그 몰 자기를
괴롭히고 괴롭히는데
몰두하는 그런
고행을 버려라 거기에 의지하지
말라 거기 거기에 가까이 하지 말라
출가자 너희들은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합니다 이제 그 어 고행 주의를
버림으로 버리면서 발견한게 이제
중도에 중도인 그러면은 이게 그
정각을 르는 바른 길 바른 길을
이렇게 그 발견했는데 고행 주의를
버리고 쾌락주의를 버리면서 발견한게
중도인 중도를 어떻게 설명하느냐
men 중도는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어 고유함과 최상의 지혜와 정각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정도는 중도는 근데 여으로 고행
주인은 안목을 만들지 못하고 지혜를
만들지 못하여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정각과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라고 아신
거예요 이게
중도에 그리고 그렇게 해서 부처님께서
이제 그 저기 몸을 추스려서 그다음에
이제 그 어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는
양극단 할 때 쾌락주의를 이렇게 이제
벗어나는 수행을 하거든요데 그거를
어떻게 하느냐면 저번 시간에 했죠 두
가지 사유 경에서 감각적 욕망에 의한
사유를 계속 버려 나가요 버려 나가서
감각적 오욕을 떨쳐 버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면 아 부처님께서
뭐 이렇게 그 어 그 고행을 이렇게
그만뒀지만 뭐 이렇게 그 술 먹고 뭐
그렇게 뭐 놀고 춤추고 뭐 이러는
쾌락을 탐탐탐 탐닉한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걸 왜 쾌락 주의라고
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쾌락 주의하고
사회에서 말하는 쾌락 주의하고 완전히
달라요 사회에서 말하는 쾌락 주의는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것을
그런 것을 쾌락 주의라고 얘기할지
모르지만이 불교에서 말하는 쾌락
주의는
아 보고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맞고 맛보고이
접촉하는이 자체 인간으로 태어나서 느
이렇게 그 그 선천적으로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거 보고 듣고 하는이
다섯 가지이
자체를 감각적 오역이라 그러는데이
이것에 탐닉하고 이것에 빠져 있는 거
자체를 쾌락 주의라
그래요 근데 이것에 탐닉 하면은
거기에
락도 있고 고도 있어요 그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는 일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걸 다 다
통틀어서 감각적 오역을 탐닉하는
락이라 그래요 락에 빠져 있다 그래서
그걸 쾌락 주의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고행주의 쾌락주의를 버리고 그
중간의 길 중간의 길을 걷다가는
뜻으로 중도라는 거로 번역이 돼
있어요
근데이 중도라는 개념이 상당히 이렇게
쉽지 않아요 중도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을 해 볼게요 중도라는 것은 아
양극단을 버리고 여위고 여위고
이렇게음 그 중간을 간다라는 글자의
뜻이 있지만 그게음 중간이
아니고요 그
열반 정각을 목표로 해서 가는 거예요
정각을 목표에서 가는데 중도를
[음악]
가는데음 열반에 도달하기 전까지
열반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사유를 다 여유 되는 거예요 다
버려야 되는
거예요 그게
중도에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지금
단계에서 쭉 이렇게 그 어 의식
세계를 이렇게 공부해 나가다가
이지 반에 이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된다는 뜻이에요
그
과정에서 그게 중도 그든 그래서
중도라는 것을 조금 더 이렇게 저
엄밀하게 얘기를 하면 그릇된 것
그릇된 것을
버리고 바른
것을 수용하는 것 른 것을 확립하는
것 이렇게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열반에 도달하는데 아 열반에
도달하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열발이 이르도록 도와주는 모든
것들을 그 그 모든 것들을 따라서
가는 것 자체가 중도에 그러면
중도라는게 처음에 그 고행 주의와
쾌락주의를 버리고 아 이렇게 이제
갔어요 갔는데 그러면은 그 이런 이런
것만 있느냐 안 그래요 더 있어요
이게 고락 중도라고 하거든요 1 2
중도에 1 2 중도라는 것은 뭐냐면
하나 다를 자거든요 그러니까 몸이
나다 몸은 내가
아니다 영혼이 내다 영혼이 내가
아니다 이런 생각들 이런 생각들도 다
버려라 거예요 그다음에 단상 중도
사람이 죽고 나면
죽고 나면 내가 영원히 존속 존속한다
아니다 죽고 나면 끝이다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극단도 버려라
거예요 이걸 버리는 것을 단상 중도라
그래 자 내가 내가 예를 들어서
극락에 간다 내가 뭐를 해서 스스로
극락에 가는가 아니면 어떤 다른것
다른 그 무엇이 부처님이나 뭐가
나를게
내가 스스로 짓는 것인가 아니면 남이
해주는 것인가 하는 문제예요 예를
들어서 천당에 간다 천당에 다른
종교에서는 천당에 가면은 누가 보내
주느냐는 내가 스스로 가느냐 아니면은
나를 창조해 준 신이로 데리고 가느냐
하는 문제예요 깨닫는 것도 내가
스스로 깨달아서 내가 깨달음에
이러느냐 아니면은 누군가 나를
깨달음으로 이끌어 이 그 깨닫게
깨달음에 이르게 해 주는가이 자작
타장 문제예요 이런 이런 생각도
극단도 다 버려라 유무 중도 내가
있다 내가 없다 이것도 유무 중도라
그래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무화라고 얘기할 때 어 나는 없다라고
생각을 하는 무아를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건 유무 중도에 떨어졌다 이렇게
생각 말을 해요 유무 중도에 유와
물을 다 버려야 되는데 그 버리지
못하고 한쪽 극단 생각을지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지고 있으면 유무
중도에 떨어졌다고 하고 그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서 중도를 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럼 중도를 가지 못하면은 어
열반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예요 이런 개념으로 이렇게 그
중도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자 그 정도가 뭐냐는
거예요 정도가 뭐냐고 하냐면
그 는 어떻게
나왔냐면 가자들은
고주를 버리고 쾌락주의를
버려라 가까이 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 고행주의 주의는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정각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그러면 어 그
부처님께서 나는 중도를 발견했다 나는
중도를 발견했는데 그 중도는 열반으로
인도한다 반으로 인도하는데 그중 뭐냐
중도는 곧 8
정도다라고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사제가
쭉 나와요 그게 초전법륜경 이거든요
그러면은 중도가 뭐냐라고 했을 때
스스로 대답을 하시기를 정도다라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럼 왜 중도가 팔
정도냐는
거예요 그것을 잘 이렇게 보셔야 돼요
그래서 중도의 관점에서 이제 팔정도를
이해를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
보십시오 아 중도가 뭐냐고 하면은
어 열반에 이을
이르는데인 이르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견해를 다 버리는 거거든요 견해를
버리는 거 그걸 사연이라 그래요
사자는 기울어졌다는 거거든요 우리가
향하는 목표에서 목 목표에서 조금
기울어졌다 그래서 그걸 따라가면
목표로 못 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견을
버리고 정견을 이렇게 그 목표에 이을
수 있는 그 길로 따라가는 것을 이제
정견이 그러는데 그 어 사견을 버리고
정견을 갖춘다 그러면 사견을 버리고
가만히 있느냐 하는 소리예요 양
극단을 버리고 가만히 있느냐 그거는
중도 중도지킴이
자 정견이 뭐냐 하면은 바른 이렇게
정견을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깊이
이렇게 경전을 읽지 않으신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면 그냥 바르게 보는
거 아니야 이렇게 바르게 보는 거
그럼 바르게 보는게 뭐냐고이 물어보면
있는 그대로 보는거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가끔 봤어요 그게
아니에요 보는 거 아니에요 어 견해
견해
견해 안목 견해
우리가 사물을 보는 그런 뜻으로 견가
아니에요 견해를 가진다는 뜻이에요
그럼 무슨 견해를 가지는 거냐 열반에
대한 해예요 열반에 대한 반 열반에
대한 견해 열반에 이르는 그 길에
대한 견 어떻게 하면 열반에 나아갈
수 있는 그 바른 길을 바른 길에
대한 견해를 아는 거예요 그럼 바른
길이 아는 것은 사견인데 사견은 다
버리는
거예요 고 그러면은 깨끗하아요
거기에서 정견을 세우는 거예요 정견을
세우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따라 들어가면
그러면은 열반으로 나아갈 수 있다라는
거예요 자 그래서 그래서 팔
정도다라고 하면서 그다음에 성제가
나와요 사성제를 설명을 하시거든요
사성제 설명은 좀 양이 많아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어렵고 말씀드리기는 어렵고
아 이제 이렇게 그냥 생각을 해
보세요 자 정견을 갖춰야 된다 그럼
정견을 무엇으로가 갖추느라
그러면은 열반과 열반에 이르는
길을 배워야 되잖아요 배워야 그
견해를 갖출 수가 있어요 그래서 그걸
그거를 가르치 그 그것을 가르키는
거예요 사성제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그것을 가르쳐요
그것을 가르치면 열반과 열반에 이르는
길을 길에 대한 견해를 확실히 알아요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아이
길이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일로
가면은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길이다라고 보고 아는
거예요 됐죠 자 그러면은 우리가 바른
견해를 가졌어요 배워서
알았어요 배워서 알았다고 쳐요 그러면
배워서 알았으니까 아 이제 다 배웠어
그리고 이제 내팽겨치고 딴 짓
하나요 그러면은 그러면은 저기 뭐야
바른 견해를 가졌지만 바른 견에
따라서 가지를 않잖아요 딴 짓을
하니까 그러지 않고 딴 생각을 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진 바른 견해를
계속 유지를 해야 돼요 사유를 하면서
그래서 바른 견해를 자기가 배우고
익힌 그래서 갖춘 바른 견해를 계속
사유로 유지시키는
거예요 이것이 정
사회예요 근데 딴 생각을 하면 자기가
배우 익혀서 갖춘 어 이렇게 정견을
놓쳐 버려요 그걸 놓쳐 버리고 딴
생각을 한단 말이야요 그럼 그건
사연이에요 저기 어 저기 정 사유가
아니에요 그거는 그릇된 사유에 그래서
자기가 이렇게 획득한 정견을 사회로서
계속 유지를 시켜야 돼요
이 정 사유로서 됐습니까 그런데 어
사람들이 말을 하잖아요 말을 하는데
사유로서 정 사유로서 정견을 유지를
하는데 말은 다른 말을 하는 거예요
잡담을 아는 거예요 말을 다른 말을
하면 하면서 사유를 그걸 유지시킬 수
있어요 못하죠 이것은 그릇된 말이에요
그러면은 정견을 유지시키는 정 사유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하려면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어요 정견에 대한 얘기를 하면은 정
사유를 유지시킬 수 있죠 그죠 그게
정
어에요 자 정견을 유지시키는 정
사유를 하면서 그 말을 할 때 말을
할 때도 정 사유가 깨지지 않아요
그런 말을 정언을 해요 근데 가끔
말을 하는데 또 가끔 몸을 움직여야
될 때가 있어
몸을
움직이는데 말은 정 사유를 하고
정견을 유 유지를 시키는데 행동은 딴
짓을 해요 탁구를 친다든지 예를
들어서 그러면은 그 그 행동을 하는
동안에는 정 사유를 할 수 없고
정견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그것은 정
사유를 유지시키는
정어 깨뜨리지 않는 행위 행동을
정업이라 그래요 업은 행위 행동을
말하거든요 사람 몸을 움직이면서 행위
행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행위
행동 그릇된 행위 행동을 하면 정를
깨드려요 그리고 정사를 하지 못해요
그래서 정견을 놓쳐 버려요 그런 행위
행동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행동을 하고
말을 하고 사유를
하는데 먹어야 되잖아요 먹고 살야
되아 생계를 유지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생계를 유지할 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어 바른 행위 행동을 하지 않고 바른
말을 하지
않고 바른 사유를 하지 않고 정견을
깨뜨리는 일을 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건 바른 생계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게 바른
생계가 바른 생계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 돼요 출가
스님들도 먹고 살아야 되는데 생계를
유지해야 되는데 그 생계를 유지하는
동안 바른 행위 행동을 깨뜨리지 않고
바른 말을 깨뜨리지 않고 바른 사유를
깨뜨리지 않고 정견을 유지하는 생계를
유지하라는 거예 그런 방법 법으로
생계를 유지해라 이것이 바른
생계 그것이 뭐냐 하면 탁발하는
거예요 하루에 한끼 가서 얻어 먹는
거예 음식을 가지고 와서 절에서
요리해서 먹는
것은 정명이 해당되지
않아요 요리하는 동안 정업 지킬 수
없고 정어 지킬 수 없고 정 사유를
지킬 수 없고 정견을 유지시킬 수
없어요 그리고 이제 생계 바른 생계가
유지가 됐어요 그러면은 바른 정진을
할 수
있어요 그제서야 바른 정진을 할 수
있어요 그럼 바른 정지는 뭐냐 이것은
사 정근을 얘기를
해요 저는 이거를 정진으로 번역하는게
좋은데 옛날 사람이 이렇게 번역해
놔서 어쩔 수 없어요 자 정이
뭐냐면은 어 유익하지 않고 건전하지
않는
상태 근데 아직 발생하지
않았어요
나한테서 아직 발생하지 않은 어
유익하지 않고 건전하지 않는 상태를
아직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억누르는
거예요 그거 억누르 노력하라는 거
내가 지금음 이번 주말에 술 먹고 막
이렇게 저기 그 과식하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돈을 허비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요 아직 하지
않았는데 주말에 근데 하고 싶은
생각도 있고 어떤 누가 이렇게 또
전화가 와서 같이 가자 그러면은 내가
움직일 수도 있어요 근데 그걸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지 말라는 거고 그리고 이미
발생한 유익하지 않고 건전하지 않는
상태는 버려라
거야 내가 어쩔 수 없이 깜빡 있고
그런 현장에 갔다면 버리고 돌아서서
집으로 가라는 거예요 그게 휩쓸리지
말고 그다음에 유익하고 건전한 상태가
아직 발생하지 않는게 있다 그럼
일라는 거야
계속음 도서관에 가서 저기 그 놀러
가지 말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라는
거예 그 아직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면
도서관으로 가라는
거예요 됐습니까 그리고 유익하고
건전한 상태가 이생 한 것은 그것을
자주자주 해라는 거야 정장 시키라는
거예 이게 사 정근이 그러면 이건 매
순간마다 매 단계마다 해 나가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면 유익한 것을 무엇을
유익한 하고 어 건전하다고 하는
거냐면 열반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건전한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 유익하고 건전한
것이에요데 열반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 장애가 되는 것 그것이
유익하고 불건전한 거라고 얘기를
해요 자 그래서 정정진 있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이게 되어야 매
순간마다 조금이라도 한 발자국이라도
열반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는 노력을
할 수가
있어요 됐죠 그리고 난 다음에 이거
이게 저기 그 정염을 닦 정념은 어
새계 선정을 닦는 거예요 이거는 아까
초에서 우리가 공부를 하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에요
정정은 무색계 선정을 당 무색계
선정을 닦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열반에 도달해요 누구든지 누구든지
이와 같이 닦아서 가면 누구든지
열반에 이을 수 있어요 이게
부처님께서 가르치시는 어 깨우치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한테
가르치시는여 정각에 이르는 길이에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고 난 다음에
제자들한테 그 가르치신 그 정각에
이르는 길은 누구든지이 팔 정도를
따라서 나아가면 누구든지 정각에 이룰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그래서
방금 제가 설명해 드린
방법으로이이 팔정도를 이해를 하면은
이게 중도의 관점으로 이해를 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나중에 그 부처님께서
이렇게 그 이렇게 세월이 좀 흐르고
난 다음에 그 비구 럼 아 수행을
출가해서 수행을 열심히 많이 한
사람들한테 가르친 방법이에요 팔정도를
그렇지만 나중에는 부처님께서 널리
알려지고 난 다음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와 가지고 출가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해요 그니까 막
다른 곳에서 이렇게 수행하다가 오신게
아니라 처음 집을 떠나서 막바로
출가하고 온 사람들이 생겨요 그런
사람한테 지계의 관점에서 정도로
설명해요이 두 가지 관점으로 팔정도로
설명하신 내용이
있는데 한 가지만 더 이렇게 중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자 그러면은
이게 왜 그러면은 이거 어 중 중도
하는 거야 중도를 발견했는데 중도가
곧 정도다 그럼 이게 뭐냐면 중도의
시작이 정이고 중도의 완성이 반이에요
이게 무슨 소리냐면 어떤 사람이 출
했어요 출가를 해가지고 이제 어 개를
이렇게 이렇게 지켜라 그리고 이렇게
그 가르침을 배우고 정견을 닦아
가면서 개를 배우고 계를 지키면서
그다음에 선정을 닦 공부해 가면서
선정을 이렇게 하나씩 닦아 가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 어떤 사람이
자기는 걔만 계속 지키는 거예요 걔는
굉장히 잘 지켜요 근데 걔만 계속
반복적으로 지키고 그다음을 나가지
않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그
개금에 떨어졌다 라고 표현을 해요
나아가지 않고 그러니까 개를 개를
이렇게 그 어 지키기 전에 개를
배워서 지켜야 할 사람들은 개가 개가
저기 그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에 그
바른 바른 가르침에 해당이 돼요
정견에 해당 돼요 그렇지만 개를 다
완성시키고 난 다음에도 그 다음에
나가지 않고 개에 머물러 있으면 그
개가 뭐가 되느냐하면 사견이 되어
버려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삼선에 이렇게 이뤘다 이거 삼정에
도달하니까 너무 좋은 거야 그래서
나는 사선정 가고 싶지도 않아 삼정에
머물러 있어 버려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삼정에 머물러 있는 몸으로
해서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잖아요 그럼 삼성정 자체가 그
사람한테는 사견이 되어 버려요 버려야
할 건데 버리지
못했거든요 그러면은이 에 있는
사람한테서는 선정이 정견이
돼요 정견이 되잖아요 왜 나아가야 할
것이니까 그래야 그 삼선을 거쳐야
열반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삼성정
사람은 선정으로 나가지 않고 삼선
정에 계속 머물러 버리면 여기가 더
좋다라고 생각 나는 여기서
만족한다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한테서는
선정이 사견이 돼요 그래서이 중도라는
개념이 쉬운게 아니에요 굉장히
역동적이 그든 그래서 중도를 중도를
이렇게 그 어 저기 글자로 보면은
굉장히 단순한 의미인 거 같은데
내용으로 보면 쉽지 않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중국에서이에 초전법륜경 환경으로
번역할 때 초전 법륜 경에 해당하는
그 경에는 중도가 빠져
있어요 중도를 확 빼버렸어요 그
사람들이 무슨 그것도 한번 잘이 그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부처님께서 깨우치시고 전에 스스로
이렇게 그 정각에 이루는 그 길과
그다음에 그렇게 깨우치시고 난 다음에
비구들 테 어 가르치시는
가르치셨던 깨달음에 이르는 길 정각에
이르는 길이 두 가지를 비교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네 그래서 팔정도를 이렇게
그 어 이해하는 것이 두 가지
방법으로 중도의 관점으로 지계의
관점으로 있는데 오늘 한 것은 중도의
관점으로 이해를 한 겁니다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데 정견 정사유
정견을 이어가는 사유 정견을 놓쳐
버리면 정 사유가 아니에요 그리고
정어 말을 할 때 정을 놓쳐 버리지
않게 행동을 할 때 정을 지 않게
그리고 생계를 유지할 때 정을 놓쳐
버리지 않게 하는
건까지 근데 이까지는
어
까지가 이루어져야 매
순간마다 열반으로 향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조금이라도이 노력을
여기서도 계속 하거든요 여기서부터
이제 노력을 집중적으로 해
들어가는데이 정 이 어 탁발 이잖아요
그래서 제 과자들 테서는 이게 그게
여기서 끊겨
버려요 여기서 이게 이제 나아가지
못해요 그런데 여기서 끊겨 버렸음도
불구하고 이렇게 선정 수행을 하시는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나갈 수
있느냐 그렇지 않아요 이게이어서
나가야 돼요 그 팔 정도가 이렇게
이게 어떻게 돼 있느냐면
그 정견이 쭉 있고요 여기 열반이
있어요 정견이 반까지 딱 이어져 있고
그다음에 정견 위에 조금 있다가 정
사유가 쭉이어서 열방까지 나아가고
그다음에 어가 쭉 나아가고 정이
나아가고 그다음에 정명이 나아가요
이렇게 해서 정정진 정염 정정이
이렇게 나가거든요 그래서 열반에 이을
때는이 여덟 가지가 같이 들어가야
돼요 그 되 있어요 그렇게 그렇게
되어 있는 개념이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은 이것이 열반에 이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은 여기서 막바로
간다든지 여기서 막바로 열반으로
간다든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래서 이제 정
정진을 아까 전에 어 정정진
사정이라고 말씀을
드렸고요 그면 은 정이라는 것은
사인데 사띠를 이렇게 경전에서는
어떻게
표현면 정의는 내리지 않았 정의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근데 설명하는 거
띠가 이런 거라고 설명해놓은 것은
뭐냐면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슬픔과
비탄을 뛰어넘게 하고 고통과 고뇌를
소멸하게 하고 팔정도를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뭐가
띠가 를 어떻게 번역했나 염으로
번역했어요
지금 마음이죠 지금 마음인데 그
이거는 기억하다 어 생각을 기억하다
기억하다 그다음에 유지하다 생각을
유지하다 이런 뜻 뜻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염으로 번역을 했어요 영어로는
마인드풀니스 아고 번역하기도 하고
한글로는 어 여러 이렇게 초창기에
초기 불교가 초창기에 나왔을 때
여러 사람들이 여러 문에서 여러
가지로 번역을 했어요 알아차림
마음챙김 마음 지킴 주의 깊음 마음
깨어 있음 이런 식으로 이렇게 번역을
많이 했는데
어 저는 그냥 사띠를 그 음력에서
사띠 그냥 그렇게 사용하는게 어떨까
생각을 해요 띠의 의미는 뭐냐면 아
온전한 주위를 기울여서
대상을 관찰하여 선명하게 알아차리는
거예요 그 간단하게 얘기하면 주위에
의한 암 우리가 주위를 기울이면
알잖아요 알아주죠 어 아기가 이렇게
뭐 이렇게 그 컨디션이 안 좋다 그럼
아기의 주의를 기울이면 아기가 어디가
안 좋다라는 걸 알 수가 있잖아요
그렇게 어떤 사물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면 그걸 알 수가 있듯이 그래서
주의를 기울여서 아 알아 알아지는 것
이걸 띠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면은
대상은 어떤 것을 해야 하느냐 아무
대상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아무
대상이 하는게 아니라
신수심법이네 가지만 대상으로 해야
돼요 근데 이것도 차례대로 신을 하고
술을 하고 심을 하고 법을 하는 거예
이렇게 사띠 대상으로 해가면서
어 새계 선정을
닦습니다 새계 선정을 닦아 가거든요
그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
정염이에요 근데 대상을 아무거나
잡는다 예를 들어서 뭐 이렇게 그
바깥에다 점을 하나 찍어 놓고 그걸
점을 바라본다 촛불을 켜놓고 촛불
끝을 바라본다 이러는 것은 대상이
아니에요 여기 속해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그런 대상을 이렇게 그거
주를 기울여서 어 정념을 하는 것은
바른 염이 아니에요 그건
그릇된에요 정이에요 그걸 아셔야
되고요 그다음에 맨 마지막에 사마띠
있는데이 사마띠 것은 고요 평온
고요한 것는 지혜라는 뜻이거든요
그래서 의미가 뭐냐면 고요에 의한
선명한 암 그러니까 고요에 의한 암
고요해지면
고요해지면
알아줘요 알아요
하면 상대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고요해지면 아주
지극하게 고요해지면 알아지는게 생겨요
고요에 의해서 알아지는 것을 사마띠
그래요 그 사마띠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번역을 했느냐면 음력은 삼매
삼마지 삼마의 삼매는 많이 들어봤을
거예요 이렇게 번역했는데 삼매가 이제
그거 나중에 정착이 됐죠 의역을 하면
정이에요
정 그래서 아까 전에 저기 그 정
정이라고 번역을 한 이유가 그래요 정
3매 하지 않고 정 정이라고 한
이유가 의역은 정으로 번역을 했어요
그래서 정정이 되는
거예요 발동돼 정정 그렇게 해서 정
정진을 하고 정염을 닦아서 새계
선정을 닦고 그 무색게 선정을 닦으면
열반에 도달한다 누구든지 이와 같이
닦아 가면 이게 팔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번 시간에는 부처님께서 어
깨우치시고 전에 그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길에 대해서 설명을 했고 오늘은 어
그렇게 깨달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정각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가르치셨는데 대해서 주로 어 팔정도를
중심으로 해서 설명을 해 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러면은 우리가
토론한이
내용들을 어떻게
점검하는 우리가 확인해 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냥 무조건음 저 스님이
얘기했으니까 저렇게 얘기했으니까
무조건 받아들이냐 그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받아들이라고 하지 않아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
마저도 점검을 해라라고
가르쳐요 스스로 어떻게
점검하느라 그것을 어떻게 수호하는
유지시키는 하는 것들에 대한 가르침을
같이 토론해 보시겠습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