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의 설교] 네가 믿느냐?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의 참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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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마가복음 9장 23~24절을 본문으로 전한 말씀. 그는 이 설교에서 믿는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지,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영상은 복있는사람이 출간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설교집]에 수록된 내용으로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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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큰 소리로 외쳐 말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마가복음 9장 23절 24절. 인간적인 눈으로는 도무지 희망이 없는 처지에 놓인 한 사람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을 수 있으면 그러면 너는 좌절하지 않고 이 자리에 서서 너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이 말씀은 아이가 불치병에 걸려서 그 아이를 돕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했지만 그저 무력하게 그 불행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 아버지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찾아갈 때까지 모든 길을 다 걸어본 상태였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누구든 처음에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단 하나의 길만 남아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이상하게도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이 길보다 다른 모든 길을 더 즐겨 걷는 것일까요?
어째서 우리는 이 길을 피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중대한 물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물음은 이렇습니다.
너는 믿을 수 있느냐? 내 평생의 삶이 하나님에 대한 큰 신뢰와 모험이 될 정도로 믿느냐? 너는 좌우를 보지 않고 하나님에게만 눈길을 두며 네가 해야 할 일을 할 정도로 믿느냐?
너는 하나님에게 복종할 정도로 믿느냐? 너는 믿을 수 있느냐? 네가 믿을 수 있다면 이미 도움이 임했을 것이고 너에게는 어떤 것도 더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 제가 순전하게 믿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지난 주간에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 연극을 관람했던 것처럼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다간 한 사람의 생애를 보게 된다면 우리는 이 길이 힘써 걸을 가치가 있다고 확신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라신대로 살고 그 결과로 우리 개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개일치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가 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습니다. 제 생에 모든 것이 정말로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불가능한 일은 조금도 없을 것입니다. 저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곧 그리스도를 통해서 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온갖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 권력, 우리 자신, 다른 사람들을 믿습니다. 우리는 인류를 믿고 우리 민족을 믿고 우리 종교 공동체를 믿습니다. 우리는 이념도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넘어 한 분이신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이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다른 능력들을 빼앗아 불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을 믿는 믿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른 어느 것도 믿지 않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무너져 소멸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어느 것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신 분, 모든 것을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듣기에 자기 자신을 믿는 인간, 이 땅의 이념을 믿는 인간이 승리를 거머쥐고 심지어 초인적인 것, 불가능한 것까지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유령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얼마나 더 큰 승리를 얻겠습니까?
예수께서 일으키신 이적은 다만 그분의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루어낸 일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우리의 생에 마음을 쓴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아, 우리가 그저 믿을 수만 있다면?
어째서 우리는 믿을 줄 모를까요? 어째서 믿음 없는 사람이 존재할까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여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종교적 은사가 불충분하게 있기 때문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괴로운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끌어다 댈 수 있는 이유는 넘치고 넘칩니다. 설령 다른 모든 것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 이유는 결단코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째서 우리는 믿으려 하지 않습니까? 라는 이 물음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감정부터 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믿으려고 수백 번 시도했고, 지금도 그러려고 하지만 정말로 단순하게 믿을 수 없게 된 것이 우리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는 믿으려고 온갖 애를 썼던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하면 최선의 믿음에 속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신을 버리고, 우리를 더는 바라보지 않는 길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을 인정하며 신뢰하고 과감히 그분을 상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곤혹스러운 것은 버리면서도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믿음이란 무조건 신뢰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건만 우리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갖 조건들을 내세우려 했고, 그래서 다른 모든 일이 잘못되고 부실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이 성서에 기대어 하나님께서 믿지 못하도록 정해놓으신 자들, 천한데 쓸 그릇이 되도록 정해놓으신 자들이 그 자신임을 입증하려고 해도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고자 합니다.
그 말씀이 맞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일들 추게 든다고 감히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어디서 그렇게 알게 되었나요? 누가 당신에게 그것을 말해주었나요?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변함없이 부르시는 곳에서 믿기를 거부하지 않았나요? 그 거부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데 도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만약 당신이 잘 믿고 싶다면 그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나님만을 신뢰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당연히 믿어야 하고 능히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저 믿지 않고 싶은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믿으려고 하지 않지만 예수께서는 네가 믿을 수 있다면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에는 다음과 같이 애타는 마음과 자비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대가 평생토록 떼려고 했으나 떼지 못했던 걸음을 떼기로 마음 먹이면 그대가 그대의 개인적인 모든 것을 내어드려 예수께서 그대를 다스릴 수 있게 한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통해 실제로 극복된 한 불치병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막다른 길에서 돌파구를 모색할 때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니 그 모든 것으로도 안된단다. 다만 믿음과 하나님으로만 될 거야.
모든 일, 영적인 일에 정통한 자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적용하는 영적 법칙, 곧 영적 영향력을 떨어뜨려서 그를 다른 방향으로 데리고 가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절망적으로 우리의 약점들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죄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더 절망적인 일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죄 아무리 완고하고 완강한 죄인이라도 일단 믿기만 하면 그는 새로운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됩니다. 믿을 수만 있다면 죄 아무리 우울한 사람도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죄 아무리 소심한 사람도 열린 사람이 되고 죄 아무리 냉담하고 미지근한 사람도 새로운 열정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 말씀을 믿고 싶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당신의 뜻이라면 우리를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으나 도움이 오지 않고 우리의 간청대로 되지 않았던 때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 이 말씀은 참말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을 항복시킬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요?
그래요.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탄식과 한탄과 근심과 한숨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항복하신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이는 신성모독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정말 신성모독일까요? 진정한 믿음은 정말 하나님의 뜻에 인접해 있지 않을까요? 믿음이 우리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 이외의 것에 공간을 허용하려고 할까요?
하나님의 뜻인데도 불가능한 일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 민족에게, 우리 교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게 하려고 시도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예수께서 믿음에 관하여 주신 약속이 아이의 아버지가 자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그에게 강한 믿음을 요구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믿음을 강하게 요구하십니다. 내가 믿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을 내가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약속이 진리임을 내가 믿습니다. 나는 주님을 중히 여기면서 나 자신도 중히 여깁니다.
사랑하는 주님,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불신이 나를 엄습하고 모든 것, 이성, 역사, 세계, 경험이 주님의 약속에 반발합니다. 나의 믿음 없음이.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지 물으시며 우리의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아, 네가 믿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
우리가 이 말씀에 주목하여 내가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 말고 무슨 고백을 할 것이며 우리의 본성에 비추어 주님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무도 이 분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네가 믿느냐? 내가 믿습니다.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십시오.
날마다 불신이 내 주변에 있습니다. 매 순간 유혹을 경험하고 직면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믿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담대히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이십니다. 우리도 아니고 우리의 믿음도 아니고 주님이 그리하십니다.
주님께는 어떤 일도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주님, 믿음 없는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