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인트로 00:20 구독자 인사 00:40 구독자 사연 01:41 엄마가 너무 싫습니다. 그래서 연을 끊고 싶어요 08:48 부모가 너무 미운데, 미워할 수 없는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4:23 정작 상처준 부모님은 기억을 못할 때 사과를 받아야 할까요? 17:41 “부모는 자녀의 OO다” 자녀들이 원하는 부모의 역할?
상처를 많이 주신 부모님이 만약에 있다고 해봐요.
내가 그때 참 미안했다.
너한테 사과할게.
그렇게 하는 부모님이 몇이나 될까요?
오히려 더 상처가 도지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우리 사연자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신 게 아니라요.
평생 비용을 안 받기 위해서 사신 겁니다.
그럴 때의 해결 방법은 뭐냐?
구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있는 이헌주입니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입니다.
다양한 고민과 사연을 바탕으로
지나쳤던 감정들을 해석해드리는
인간사용설명서 첫 번째 시간을 준비해봤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미성숙한 부모들의 특징입니다.
원장님께서 사연을 한번 읽어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20대 후반의 여자입니다.
저희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신 뒤
혼자서 저를 어렵게 키우셨어요.
언제나 엄마는 너 때문에 살아.
내가 내 전부야.
라며 일고수일 추적을 감시하셨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완벽한 딸로 살아야 했습니다.
9시 통금을 1분이라도 어기면
일주일간 외출 금지였고
독립도 취업하고 나서야 할 수 있었죠.
얼마 전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가니
엄마가 연락도 없이 집에 와 있었습니다.
저녁을 차려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더라고요.
이미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고 했더니
엄마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준 게 얼마인데
부모한테 감사할 줄도 모른다라면서요.
그 순간 저도 쌓이고 쌓였던 화가 폭발했습니다.
감정이 좀 가라앉고 생각해보니
엄마에게 너무 심한 말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엄마가 너무 싫은데
엄마를 싫어하는 제 자신의 죄책감도 느껴집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연자가 보일 때는
굉장히 지금 부모의 어떤 집착이라든지
통제 때문에 좀 괴로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네, 그렇게 보입니다.
일단 우리 사연자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신 게 아니라요.
평생 부모님한테 미움을 안 받기 위해서 사신 겁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본인을 미워해서 화를 내시면
그거를 내가 부모님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께서 사연자를 통제하는 거는
사실은 통제 자체가 우리 어머님의 기질일 거예요.
그래서 이혼하게 된 것도
어쩌면 우리 사연자 아버지와의 그런 부분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저 부분에는
굉장히 커다란 불안이 있는 것 같아요.
불안이 있으니까 일찍 들어와야 되거든요.
나가면 안 되고.
그리고 본인을 갖다 떠나면 안 되니까
독립한 다음에도 가끔씩 확인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런 다음에 사연자의 요소가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겁이 많은 분 같습니다.
또 세계 누구랑 갈등을 갖고 싸우는 거를 무지무지 싫어하는
착하고 선한 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연자가 이 정도까지 부모님이랑
갈등이 있게 된 이유는요.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뭔가 힘을 되찾았기 때문이에요.
또 어머님께서는 사연자가 계속 저렇게 힘을 갖춰가서 멀어질까 봐
중간중간에 확인 과정을 거치시는데요.
오늘이 그 확인 과정의 날이었지요.
그러면서 저는 어쩌면 부모님과 사연자 두 분 다
착한의 우울증이 있지 않는 생각을 해봐요.
부모님 같은 경우에는 우울증이 있고
아무도 나한테 사랑을 안 주잖아요.
내가 남한테 사랑을 주면서 내가 기쁨을 얻거든요.
오늘 그 기쁨의 날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연자는 착한의 우울하고 지쳐있는 게 아니잖아요.
평소처럼 잘 참았을 거예요.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우울증은 참 나쁘고 괴롭지요.
그런데 우울증이 딱 하나 제대로 된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내가 우울하지 않으면 참고 견뎌야 될 관계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해줘요.
그래서 가끔 우리는 우울할 때
진짜 나를 괴롭히는 배우자와 헤어지기도 하고요.
사장한테 얘기하고 회사를 그만두기도 하고요.
나를 힘들게 하는 부모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하게 되기도 하지요.
사실 저도 원장님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부분이
내 남자가 이것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고
독립과 의존 사이의 갈등을 겪고 있기도 하고
또 이 엄청난 애증의 역사 속에서
지금 고민을 보낼 만큼 괴로운 상황이 있다면
어떤 면에서는 그것은 자기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다.
이런 생각도 좀 들기도 합니다.
사실 어머니 입장에서 보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 이혼하고 모든 에너지를 다 투입해서
사실은 이 삶을 겪어내신 거잖아요.
근데 이렇게 하셨던 부모의 경우에는
아이가 독립을 하게 될 때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내가 뭔가 뭐 하나를 크게 잃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에게 계속 찾아가서
지금 뭔가 밥을 내가 차려가지고
이 아이를 다시 먹이게 하는 것이
이전까지 어머니의 방식이었잖아요.
집에서 내가 아이를 밥 먹이고 아이를 내가 챙기고
근데 이 아이가 갑자기 나가보니까
그럼 나는 뭐지? 도대체 나는 어떻게 된 거지?
이 안에서 그 어머니의 깊은 어떤 공허, 허무함,
탕실과 얽혀진 어떤 증후군들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맞습니다.
이분의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뭔가 하면요
그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실질적으로도 이분의 가장 커다란 어려움은
부모님 눈치를 너무 많이 봐야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옷을 사건
남자친구하고 굉장히 행복한 시간을 보내건
모두 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엄마가 알게 됐을 때 굉장히 골치 아플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마 하지 못하는 것도 많을 테고
엄마한테 숨기는 것도 굉장히 커다랗고
결국은 우리의 인생은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야 되는데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기가 어렵게 되지요.
결국은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바뀌고 싶을 때
어머니를 넘어서야 되는 시점에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될 수 있지요.
핵심적인 한마디로 갈등과 싸움이 없이
결국은 모든 집에서 보면
결국은 자식이 이겨요.
왜냐하면 부모님은 끝없이 자녀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자녀는 계속 나가라고 하거든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요
자식이 나가라는 말이 무서워서요
자식 방에 안 들어가고 계세요.
그러나 못 들어가기 전까지는
결국 그걸 만드는 건 자녀의 행동이지요.
계속 싫다 싫다 하니까
부모님 입장에서는 두 개의 고통이 있거든요.
하나는 이거를 확인하지 못하면
참는 게 고통이에요.
그러나 확인하게 되면
싫은 얘기를 들어야 되는 게 고통이에요.
싫은 얘기를 듣는 고통이
참을 때 느끼는 고통보다 더 커지게 되잖아요.
그냥 참는 고통을 감수하게 되시는 거예요.
많은 부모님들이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결국은 자녀가 계속 치니까 바꾸게 되지요.
네 저도 동의합니다.
결국 그런 거 같아요.
내가 독립하려고 해도요
문제는 뭐냐면
어렸을 때부터 자율성이 많이 박탈되고
내가 온전히 서지 못하게 되면
사실 내가 독립을 해도 좀 줄였거든요.
그래서 다시 의존하게 되고
또 의존하게 되면 또 독립하고 싶고
그래서 독립과 의존이라는 게 반복되는 경우들이 있죠.
그래서 자기 스스로 굳건히 서가는 연습
심리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이것을 계속 훈련을 거쳐야 되는 부분도 필요하고요.
또 두 번째는 부모님이 내 경계를 자꾸 침범해서 들어올 때
혼절을 하고 엄마하고 싸우고
꼭 그러라는 뜻이 아니라
어느 정도에서는 조금은 너르게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엄마가 불안이 고조돼서
전화를 하는 패턴이 있단 말이에요.
그럴 때는 조금 전화를 뒤늦게 받는다든지
혹은 내가 엄마랑 통화할 때
내가 지금 이 시간부터 이 시간까지 좀 어려우니까
이 시간에 좀 통화해줬으면 좋겠어라고 해서
자신의 영역을 넌지시 이야기한다든지
이렇게 조금은 시간에 기대어서
자신의 어떤 경계를 지켜나가는 연습도 필요하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 사연을 보면
부모님이 뭔가 굉장히 통제적이고 그런 면은 있어도
서로가 이렇게 알뜰살뜰하게 서로 대화하고 연락하고
그런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모르고 갔는데 밥을 다 차려놓고
또 왜 안 먹니? 나는 먹었어요.
막 이러면서 지금 싸우고 있는 걸 보면
평소에 대화 자체가 별로 없는 가능성도 있어서
내가 많이 찾아뵙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부 인사, 안부 문자, 안부 통화가 굉장히 중요할 수 있어요.
그래서 물리적인 거리를 내가 줄인다 하더라도
오히려 통화의 횟수를 좀 늘려서
내가 엄마 좀 멀리 있지만
엄마를 내가 멀리 떠나는 거 아니에요.
내가 엄마 곁에 항상 있어요.
라고 하는 부분들을 넌지시 보여주는 부분도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사연자는 부모님한테 따뜻한 사과의 말을 원하는 것보다도
더 저는 사연자가 원하는 거는
부모님이 아무 말도 안 하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따뜻한 사과의 말을 하잖아요.
그 따뜻한 사과의 말은 결국은 화해를 의미하기 때문에
또 부모님은 말의 형태만 바뀔 뿐이지
계속 사연자한테 접근을 해요.
그래서 사연자가 부모님한테 가장 듣고 싶었을 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편안한 침묵이에요.
좀 자기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본인의 공간을 존중해 주는 거예요.
지금 사연에서 이야기한 것 중에는
제가 좀 다뤄보고 싶은 건 이겁니다.
분노와 죄책감인데요.
집착하고 통제하는 엄마
나를 지금도 뭔가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엄마에게
엄청나게 분노가 올라오죠.
근데 분노가 올라오면
바로 거기에 들어서는 게 죄책감이란 말이에요.
엄마한테 그러는 건 아니야.
엄마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키웠는데
이것 때문에 분노를 또 억압한단 말이에요.
그럼 이 죄책감으로 또 누르고 있으면
또다시 분노가 올라온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감정을 보통 혼합된 상태라고 하는데
맞습니다.
이럴 때는 보통 감정을 하나씩 하나씩 다뤄요.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엄마에 대한 분노를 다룰 때는 분노에 집중을 합니다.
그래서 분노를 충분히 좀 쏟아낼 수 있게끔
왜냐하면 진짜 가서 하는 게 아닙니까?
이 안에서 분노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끔 도와줄 때요.
죄책감이 같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 죄책감은 우리가 이후에 다루니까
먼저 분노에 우리가 집중해도 괜찮다.
그래서 분노를 다루고
그 다음에 죄책감을 다뤄요.
그러면 하나하나를 분리해서 다뤘잖아요.
그 다음에 이거를 통합하는 시도랍니다.
내가 엄마를 사랑하지만
내가 엄마의 품에 지금도 있을 수는 없다는 거
이 아픈 현실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거
이런 부분이 저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사실 나는 이미 컸고
나는 내 삶을 살아가야 되잖아요.
여전히 부모님의 어린아이로 멈춰있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그건 부모님을 위해서도 건강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부모님이
지금 모든 걸 여기다가 다 몰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님도 여기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단 말이에요.
보통은 부모님도 여가가 필요하고요.
부모님에게도 다른 활동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이 필요하죠.
일할 때가 있어야 일을 하지 않냐
그렇게 얘기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실제로는 봉사활동 같은 것을 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식을 위해서 지금 내가 쏟았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해보는 것도
그 사람을 위해서 좋지만
나의 심리적인 어떤 안정감을 위해서
되게 좋을 수 있거든요.
사실은 죄책감이라고 얘기하잖아요.
상당수의 분들은 죄책감이 아니라 무서움이에요.
부모님을 미워해요.
그런데 미워하는 감정 때문에 싸우게 되면
부모님이 나한테 힘들게 하는 게 만만치 않거든요.
사실은 죄책감의 일부는 걱정인 거예요.
죄책감은 부모님의 입장이 되어서
고통에 대해서 공감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제 나의 마음이 귀찮음, 지긋지긋해, 괴로워
하는 양가 감정이 있다 그러면
나는 부모님이 미워요.
그런데 부모님을 미워한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끔찍해요.
그러다가 보니까 내가 부모님을 미워하지 않으면
그 끔찍한 걸 겪지 않아도 되니까
나의 미워하는 감정을 없애고 싶어하는 거지요.
그럴 때 해결 방법은 뭐냐
결국은 부모님을 보면 볼수록
더 두렵겠지요 이제.
그래서 이게 무슨 답이냐
그럴지 모르지만 잘 피해다녀야 돼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게 필요하고
그러나 진정 죄책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어요.
타고 태어날 때부터 남을 미워하지 못하게 태어나는 분이 있어요.
이분들은 부모님만 미워하지 못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을 미워하지 못해요.
그러면 이때 이 사람의 마음은요
자기 스스로 책을 읽거나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이 안 돼요.
나는 우리 부모님을 너무너무 미워할 수 없어 했을 때
옆에서 얘기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해요.
야 너 정도면 미워하는 게 아니야.
내 생각에 네가 부모님을 미워해도 되는 것 같아.
이거는 사람으로 인해서 받은 상처이기 때문에
그거를 해결해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친구, 연인,
반려동물 혹은 상담가가 필요하지요.
결국 이거를 해결할 수 있는 거는
어떤 방법과 어떤 결단이 아니에요.
계속 나의 지치고 소모되는 에너지를
누군가의 위로와 사랑으로 받아야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보면은 그 모든 감정을 감담할 수 있게 돼요.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뭔가 나의 행동과 나의 말이 바뀌게 되고요.
부모님도 그러면 바뀌게 되고요.
그래서 결국은 뭔가 간절히 원하면
간절히 원하는 방향으로 가요.
내가 부모님과 거리를 두는 게
내가 진짜 간절히 원하는 방향이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되고요.
그러면 또 많은 분들이 거기에서
그게 실질적 행동으로 이어져 먼 데로 가버리세요.
그래서 이분도 사실 간단한 해결 방법은요.
진짜 미안하지만 좀 옮기세요.
그리고 나서 부모님이 하는 전화도요.
째깍째깍 받지 마세요.
받았다, 안 받았다.
그냥 내가 안 받으니까 너무 겁나고 미운하면 또 하고요.
겁나고 미안해서 했더니 너무 질리면은
또 며칠 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우리가 마음이 단단해지고
언젠가는 틀림없이 해결이 돼요.
그리고 내가 부모님에게 뿌리 깊은 어떤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라는 건
그것을 우리가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내가 그만큼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증거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존재에게 많은 죄책감을 느끼거든요.
그런데요.
그런 사랑이라는 과업을 우리가 달성하는 지점에서도
관계의 재구성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내가 지금 7살 어린아이가 아니잖아요.
엄마가 해준 밥 먹으면서
엄마, 나는 엄마 사랑해.
이러고 있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
이제는 어른으로서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그 방식
또 사랑을 주고받는 그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식이
어떤 면에서는 조금 더 달라지는 관계의 형식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원장님이 아까 말씀하셨듯이
조금은 내 공간을 만들고 내 경계를 세우는 게
엄마를 내가 단절하고 그런다기보다도
엄마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어떤 과정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 사연자 분께서 굉장히 사실 괴롭고
또 여러 가지로 죄책감도 들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이런 마음도 들을 수 있지만
사실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 모든 것들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사연자분이 옳다라고 하는 인식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아픈 이야기지만은
부모가 상처를 많이 주신 부모님이 만약에 있다고 해봐요.
과거를 막 꺼내서 부모님한테 얘기를 하면
부모님 내가 그때 참 미안했다.
내가 진짜 너한테 사과할게.
그렇게 하는 부모님이 몇이나 될까요?
사실 그렇게 할 정도였으면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상처를 주지 않았겠죠.
그러면 차라리 2년 끊자.
이러면서 오히려 싸우게 돼서
오히려 더 상처가 도지는 경우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렇게 얘기를 해요.
부모님한테 지금까지 쌓인 거 다 가서 푼다.
그거 참 어려울 수 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요.
저는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에 물이 꾸정물이 흐른다고 생각하면
그 원료에 있는 꾸정물을 다 어떻게 제거하고
그런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새로운 물고를 트는 거
그 물고를 틀어서 다른 곳으로 가면
그 물은 좀 깨끗해지는 곳으로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으로서 상처가 만약에 100점이다.
그러면 오늘 이 순간부터 맛있는 음식 먹고
좋은 대화 나누고
지금까지 정말 100의 안 좋은 경험만 했다면
조금씩 내가 좋은 경험들을 해나가는 거.
그러다 보면 또 아빠가 갑자기 옛날 얘기 꺼내면서
오히려 본인이 자기 방어하거나
넌 도대체 왜 그러니? 이러면서 탓하려고 그럴 수 있어요.
그러면 또 붙어서 싸우지 않으시는 것도 괜찮고요.
결국은 저게 자꾸 지금 생각이 나는 이유는
그게 현재의 삶에 무한 반복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과거를 들추는 거는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인 거예요.
옛날에도 이랬어.
그때도 이렇게 나한테 상처 줬어.
라고 함으로 인해서
앞으로 나한테 상처를 주지 말라는 거를 갖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때 저런 얘기가 돼요.
그거는 얘기해야죠.
어렸을 때 부모님이 날 때렸어요.
맞은 사람 기억 분명하지요.
때린 사람 기억해요.
그런데 안 때렸다 그러는 거예요.
그건 얘기해서 사과받아야죠.
그거를 어떻게 누가 나만 참을 수 있어요.
못 참아요.
그런데 실제적으로 이런 경우도 있어요.
언니랑 나랑 있는데
언니는 학원에 보내줬어요 뭐 하라고
나는 안 보내줬어.
그래서 되게 내가 그때 속상했어.
그때 엄마는 기억을 못 하는 거예요.
약간 이런 경우는 애매하지요.
그러나 그때 역시 마찬가지인 거지요.
왜냐?
결국은 여기에 밑에는
현재도 어머니가 언니와 나를 차별하기 때문에
나한테 그건 중요한 거지요.
그리고 틀림없이 내 기억이 맞으면
엄마가 기억을 못 하더라도
나의 말을 인정해 주기를 원하는데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거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때 역시 진짜 죄송하지만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이 돼요.
그러나 얘기하는 게 맞지 않은 경우는
딱 한 가지 경우가 있어요.
그 문제를 다시 줄쳐서
부모님한테 그 얘기를 했을 때
그 부모님의 반응이
나한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때는
한 번 충분히 준비된 다음에 해야 돼요.
만약에 부모님이 어렸을 때 나를 때렸어요.
그 얘기를 했더니 부모님이
그러면 진짜 그때는 뭉개지거든요.
그래서 저렇게 들쳐서 짚고 넘어가야 되는 거는
고민이 아니라요.
어느 순간 눈빛과 분위기와
사람들의 얘기가 오가는 순간
그냥 뻥하고 터져나와요.
그때는 그걸 내 의지로 막을 수도 없고
안 될 수도 없어요.
그리고 그날은 진짜 미안하지만
끝까지 가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뻥 터지잖아요.
그때는 더 큰 상처로 무너지지 않아요.
저는 부모는 아이의 방패가 된다고 생각해요.
창이 아니라
많은 부모님들은
아이의 창이 되려고 노력해요.
좋은 대학에 가고
뭐를 하고 뭐를 하고 그래서
성공을 위해서 적을 무찔러야 되는
창을 아이한테 주려고 노력하지요.
그러면서 본인들도 아이하고 확 움직여서
창을 찌르면서 전진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가
잘 되냐 안 되냐가 참 불확실해요.
그리고 결과가 안 좋잖아요.
그냥 다 무너지는 거지요.
그러면 이제 방패는 어떻게 다르냐 하게 되면요.
어렸을 때 아이가 넘어져서
어디 굴러떨어지지 않게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거
아이의 방패가 되어주는 거지요.
그리고 동네나 학교에서
어떤 아이한테 막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면
그거를 해결해주는 거
부모는 아이의 방패가 되어주는 거지요.
그러면서 방패 뒤에서
같이 신나고 웃고 재밌게 지내면서
즐거운 기억을 많이 주면 좋은 것 같아요.
미래는 항상 불확실해요.
우리 부모님들은 너무 많은 부모님들이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 현재 자녀를
공부로 괴롭히면서 합리화해요.
이렇게 내가 쟤를 괴롭히지만
이로 인해서 쟤는
나중에 더 커다란 성공을 해서
엄청난 기쁨을 얻을 거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미래는 알 수가 없어요.
자식이 엄청나게 잘 살게 됐는데
부모를 보기 싫어할지
그렇기 때문에
당장 즐겁게 지낸다는 거는 분명해요.
그래서 방패까지만 되어주면 돼요.
그런 다음에 웃고 떠들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의 행복은 무조건 이루어지는데
미래의 성공은 안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의 행복을 선택해야 된다.
그게 자녀를 정말 잘 키우기 위해서
부모가 해야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아주 초기에 탄생했을 때
참 부모님의 영향이 중요하다는 게
참 많이 우리가 알려진 사실이잖아요.
근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라는 존재를 내가 태어났을 때
내가 거울을 보면서
어 내가 이렇구나
이런 느낌을 내가 발견한다기보다는
우리 엄마가 나를 어떻게 바라봤는지에 따라서
예를 들어서
넌 진짜 왜 이러니
진짜 애가 진짜 너 엄마 짐인 거 아니?
약간 이렇게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아이가 내가 뭔가 무과차구나
내가 뭔가 사랑받지 못한 존재구나
이런 거를 그 부모의 관계 속에서
자꾸 확인을 하게 되는 부분이죠.
그리고 이런 지점은 어떤 면에서는
나의 성인기에도
굉장한 압도적인 영향을 주는데
그 이론이 바로 애착이론입니다.
애착이론을 뭐라고까지 표현을 하냐면
내적 작동 모델이라고 그래요.
안에서 작동하는 모델이 있다는 거예요.
마치 공장처럼
여기에는 세 가지의 순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을 받는 겁니다.
내가 먼저 사랑을 받으면
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면
나는 가치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 두 번째
나는 가치가 있는 존재야
라고 나의 거울을 부모의 얼굴 속에서
확인하는 거죠.
그리고 세 번째
세상과 타인과 협력할 수 있어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어
라는 인식이 구축되는 겁니다.
근데 만약에 반대로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그러면 나 자체를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무가치한 존재로
내가 여긴다는 거죠.
그럼 내가 사람들하고
뭔가 의사소통법 배우고
여러 가지 심리적인 거 많이 배우고
막 그래도
언어는 굉장히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한테 뭔가 내가 미움받지 않을까?
저 사람 뭔가 나 이용하는 거 아닐까?
항상 이런 부분 때문에
조바심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있어서 줄 수 있는
영향력은 너무나 강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이러한 콘텐츠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우리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마
가장 큰 부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거를 어떻게 담아서
아이 양역에 활용할지
또 우리 아이와 관계를 돈독하게 할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달려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다.
그리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 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오늘도 이현진 교수님의
따뜻하면서 현명한 얘기가
사연자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옆에 최명기도 있었으면
잊지 마세요.
지식인사이드 네이버 카페에
여러분의 고민과 사연들을
올려주세요.
저희는 최대한 분명하면서
따뜻한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이렇게 한 번
아 이런 거?
이런 거 되게 잘 못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