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외계인이다 #우주다큐 #과학다큐 They are aliens, UFO Sightings

우주여행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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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란 무엇인가 00:00
프로젝트 블루북 02:51
워싱턴 UFO 목격담 등 13:40
최근 목격된 UFO 26:02
UFO에 관한 미공군의 공식 성명 36:13
그들이 외계인 41:00
UFO가 없다고,
외계인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목격자들의 진술을
믿지 않는 이들,
혹시 그들이
외계인이지 않았을까요?
이런 조사들이
너무 거북했던
외계인 스파이이였던 건
아닐까요?
궁굼하시면
영상을 보세요
#우주다큐멘터리
#과학다큐
외계인은 영어로 엑스트레 인텔리전스로
이티 또는 우주인 혹은 외계 지성체
불리며 지구 이외에 천체에 산다고
상상되는 사람과 비슷한 지적인 존재로
외계 생명체 중 지성을 가지고 있는
생물체의 총칭이며 현재 지구인들
사이에는 외계인의 존재 유무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외계인은 현재 공식적으로
발견된 적은 전혀
없습니다 많은 공산 과학 영화에서는
외계 생명체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동안 나왔던 SF 영화
작품으로는 이티 에이리언 스타워즈
등이 있고 최근에 개봉한 영화로는
베놈 라스트 댄스가
있습니다 그 스토리는 주로 외계인들이
지구를 찾아오는 내용이거나 인간으로
변태하는 영화였습니다 외계인들은
대부분 인간을 좋지 않게 보 데다가
인간보다 월등이 진보된 기술을 활용해
지구를 정복하거나 지구의 자원을
뺏으려고 한다는게 대다수의
줄거리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외계인은 인간처럼
팔다리가 달려 있고 인간과 전체적으로
비슷하게 묘사되지만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거나 새로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가끔 등장하고 있어 인간과
완전히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외계인은 주로 파충류를 닮은
피부에 커다란 눈 가느다란 팔다리
등으로 묘사됩니다
과연 우주에 지적 생물체가
존재할까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을
둘러싸고 물리학자 엘리코 페르미의
페르미 역설로 외계인에 대한 관심이
더
가중되었습니다 그러나 드레이크
방정식의 매개 변수를 우리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가정한다면
지구인과 접촉 가능한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지구인이 먼 우주로
붙어 방문한 지적 생명체와 결코
접촉할 수 없다는 우주적 넓이와
광대한 거리가이 만남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외계인이 있다고 하면
긴 우주의 역사에서 인류보다 몇만 년
혹은 수억년 앞선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들도 있을 수 있으므로
그들이 지구를 탐사하고 방문할 만한
시간과 기회는 충분히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이 지구상에서 우주에서 온 지적
생명체를 목격하거나 만났거나 실존을
증명할 만한 그 어떤 확실한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인류가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외계 생명체를
찾고자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프로젝트 블루북 UN
1952년 3월부터 1969년 12월
17일까지 미국 공군에서 진행되었던
미확인 비행 물체에 대한 조직적 연구
프로젝트에 대해 붙여진 암호명
있니다 오하이오주의 라이트 패턴은
공군기지에 본부를 두고 에드워드 루펠
대위가 지위를 맡아 이전 작전 들인
1947년의 프로젝트 사인과 더불어
1948년의 프로젝트 그러지 비슷한
임무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블루북 UFO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체인과 판가름하는
한편 UFO 관련 자료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연구
모임입니다이 프로젝트를 통해 수천권의
UFO 대한 관련 보고서들이 수집되어
분석되고 분류되었으나 UFO 연구가
의미 있는 과학적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콘돔 보고서와 그 보고서를
감정한 전미 과학 아카데미의 소견에
따라 프로젝트 블루북 1969년에
결국
종결되었고 는이 조사에 대한 결론을
요약집으로 내놓기도
했습니다 다음 내용은이 조사에 대한
결론 요약입니다
UFO 관련 보고와 조사와 평가에
있어 공군은 이것이 국가 안보의
위협이 된다는 단 하나의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보고되거나 수집된 미확인으로
분류된 목적들에 있어서 현재의 과학적
지식을 넘어서는 발달된 기술이나
원리의 존재를 보여주는 그 어떤
증거도
없었다 미확인으로 분류된 목적들에
있어 그러므로 이것들이 외계의
물체라는 증거 또한
없었다 프로젝트 블루북이
종결되는 총
12618 보고들을 수집했고 이들
대부분이 자연현상 혹은 구름이나 혹은
해성 등이었으며 일반 비행기들을
잘못본 것들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국에 따르면 많은 목적들이 이전에는
기밀이 있던 비밀 정기인 유 2와 a
12를 오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한편 매우 엄격한 분석 후에도
71개의 보고가 설명 불가로
분류되었습니다이 UFO 보고서들은
분류되어
저장되었지만 모든 목격자들의 이름이나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들은 모두
삭제되어 있습니다 미공군이 공식적으로
UFO 연구를 개시한 것은 1947년
프로젝트 사인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UFO 목적들을 추적
조사했습니다 프로젝트 사인은 공군
지위 통제의 수장이었던 네이선 트위닝
장군의 주도하에 시작되었는데 라이트
패턴은 공군기지를 거점으로 하였고
이후 다른 여러 공적인 UFO 조사가
이곳을 통하여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프로젝트 사인은 여러 목적들에 원인을
규명함 있어 공식적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블루북 첫
책임자였던 에드워드 주니어 루펠
대위에 의하면 1948년 여름에
작성된 프로젝트 사인의 최초 정보
판단은 비행 접시는 실제 비행 물체로
소련이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외계에서 온 것일 가능성이
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이 판단은 이후 미공군
참모총장인 호이트 반덴버그 장군에
의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거부되었고 반덴버그 장군은 결국
프로젝트 사인을 해산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프로젝트 사인은 1948년
말에 프로젝트 그러지
이되었고 관목들이 모두 오류임을
증명하는 것이 주 업무라는 비판을
입니다 루펠 대인은 프로젝트 그러지가
미공군 UFO 조사의 암흑 시대였다고
회고했습니다 프로젝트 그러지 모든
UFO n 자연 현상이거나 혹은
오해라고 결론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례 23% n 설명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에드워드 주니어 루펠 대위에
따르면 1951년 말 매우 영향력
있는 고위급 공군장군 몇 명이
미공군이 그동안 벌려 온 UFO
조사에 불만을 품고 프로젝트 그러지를
탈퇴하고 1952년 3월에 프로젝트
블루북 가동시켰다 합니다 이들 중 한
명이 찰스 p 케벨
장군이었습니다 중대한 변화가 온 것은
윌리엄 갈랜드 장군이이 프로젝트에
합류하면서였습니다 그는 UFO
관련하여 엄중하고 철저한
조사가이야 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자신 또한
UFO
목격자였다 프로젝트의 새로운 이름인
블루북 미국에서 대학교에서 시험칠 때
사용하는 파란색 작은 공책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루펠 대위에 의하면 이런
이름을 지은 이유를 보면 고위급
간부들이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UFO 연구하는 것이 마치
대학교에서 기말고사를 치는 것과 같이
그 중요한 이름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또한 블루북 위해 새로이
항공 현상 부서를 신설하면서 그
위상이 그러지 다 훨씬 향상되었다고
합니다이 프로젝트의 수장이 루펠 2
대위였다이 풍부한 공군
조종사였던 C 미육군 항공단 소속으로
활약하며 많은 전공 훈장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 항공학 하기를 받았다고
합니다 비행접시 등과 같은 표현을
공식적으로 유라고 명명한 것도
그였습니다 그는 미확인 비행 물체가
더 중립적이고 정확한 표현이라고
여겼으며 공군에서 전역한 뒤 미확인
비행 물체에 대한 보고서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는 미 공군에서
1947년부터
1955년 지
진행했던에 대한 연구 조사들이 일부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과학자인 마이클 워즈는
펠트는 UFO 조사에 진심을 다해
노력했던 마지막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펠트 대위는 여러가지 새로운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는 우선 UFO 목격을
보고하는 방식을 효율적으로
바꾸었는데이는 목자들이
거짓말쟁이라는을 쓰거나 조롱을 당하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하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목격자들의 진술을
받기 위한 표준 질문서를 개발하여
통계 분석이 용이하게 반영하도록
했으며이를 위해 바텔 연구소에
의뢰하여 여러 사안에 맞는 질문서를
만들고이 데이터를 전산화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례 보고들을 전산화한
데이터를 통해 바텔 연구소는 미공군이
보유한 모든 UFO 사례들에 대한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방대한 연구를
진행하였고이는
1954년에 프로젝트 블루북 특별
보고서 14번이라고 그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프로젝트 사인이 내부 안력
다툼으로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루펠 2는 사인의 참가자들이
UFO 외계에서 온 것인지에 대하여
지지자와 비판자로 갈렸던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결론이 열려 있는
추측성 결말을
켰 펠트는 자신의 임무를 매 진지하게
여겼으며 스텝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들 중에 누구라도
지나치게 회의적이 혹은 확신으로
치우칠 경우 프로젝트에서 제외시켰다고
마이클 홀은
회고했습니다 미클 홀은 자신의 책에서
펠트는 프로젝트 초기에 세명을
고했는데 그들이 지친 지지나 반
입장을 라고
했습니다 그는 여러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구했으며 정기적으로
언론 브리핑과 메달 군정보 기관의
기밀 보고를
올렸습니다 미공군 기지마다이라촌
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례없는 권한은 블루북
프로젝트가 얼마나 진지하게 여겨졌는지
보여준 사례일
것입니다 루펠 2의 지도하에 블루북
프로젝트는 다수의 유명한 UFO
사례들을 조사했으며이 중에는 러벅
불빛 사례 및 1952년 레이더
관측과 다수의 목격자들을 비롯하여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워싱턴 DC
그래의 사례 등이 있습니다
자크 벨리에 의하면 루펠 2는 이후
블루북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없는 방향성을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UFO 착륙에 관한
것이나 그 안에 타고 있는 이들과의
접촉에 관한 다수의 사례들의 경우에는
진지한 고려나 조사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천문학자인 제 알렌 하이넥
박사는이 프로젝트의 과학 고문으로
프로젝트 사인과 그러지도 참여했습니다
그는 프로젝트가 마감될 때까지
함께했으며 오늘날 미지와의 조우라는
분류법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초기에는 단호한
회의론자 있으나 연구를 진행하면서
설명이 불가능한 소수의 UFO 사례를
접한 이후 그러한 확신이 흔들렸다고
합니다 루펠 2는 1953년 2월
블루북 잠시 사임하였다 몇 개월 후
돌아왔는데 명 이상이었던지 이
두명으로
감소되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펠트는 방공 사령부를 UFO 연구에
참여시킨다는 안을 내기도
했습니다 1952년 7월 그 이전
달에 워싱턴 DC 수백명의 UFO
목격자가 나온 이후 워싱턴 DC
내셔널 공항 가까이에서도이 목격과
합치되는 레이더 탐지가
[음악]
잡혔습니다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 CIA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물리학자인 h p 로버트 박사를
필두로 한 물리학자 기상학자
엔지니어들과 한 명의 천문학자로
구성된 패널을
꾸렸습니다 로버트슨 패널은 UFO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이 폭발적이었던
시기인 1953년 1월 14일에
처음으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펠트 을 비롯한 구성원들은
블루북 수집해 온비디오 등을 포함한
최고의 증거 자료들을
제출했습니다 6년간에이 데이터들을
12시간에 걸쳐 검토한 로버트슨
패널은 대부분의 UFO 목격 사례들은
일상적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며 더
조사를 벌리면 모든 사례들이 설명
가능하다고 보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일
가치는 없어 보인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보고서에서 로버트슨
패널은 엉터리 같거나 증거 불충분한
UFO 사례들로 인해 국가의 정보
라인의 과부화가 걸리면서 정말 중요한
위협들을 놓쳐버릴 위험성이 있음을
강조하며 공군에서 UFO 관련하여
너무 많은 군사력을 낭비하지 말 것과
실체를 알려서 대중들에게 알려주는
캠페인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이들은 월트 디즈니를
포함한 대중매체와 학자 천문학자
연예인들을 통해 이러한 현상들을
조롱하고 일상적인 설명을 제공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민간 UFO
그룹들에 대해서는 대중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며 명백한 무책임과
그러한 그룹들이 국가 전복을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로버과 자들의 이러한 결론은 방송
매체와 스파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론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권장
사항들을 통해 UFO 연구에 관한
공군 정책을 그때뿐 아니라 현재까지
이루어지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집니다이 이후 패널의 권고 사항이
그 이후 최소한 20년 정도까지
수행되었다 증거도
존재합니다 1953년 12월 해공군
합동 규정 제 146호 의해 미국
군인이 승인되지 않은 사람과 UFO
관련 기밀 보고서 내용을 논의하는
것은 범죄행위로 규정하고이를 어길
경우 2년형과 1만불 이상이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펠트는 자신의 책에서
로버트슨 패널의 결론이 블루북
직원들의 사기를 꺾었으며 자신들의
조사권한을 박탈 당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로버트슨 패널의 권고 사항을 기반으로
1953년 2월 미공군은 즉시 공군
기지 장교들은 그동안 해결이 되었다고
결론지어진 경우를 제외한 모든 UFO
관련 미해결 사건들에 대한 기밀
유지와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200-2 조항을
만들었습니다 같은 달 새롭게 조직된
방공사령부 46002 항 정보
중대이준서
사례들만 처리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1947년 프로젝트 사인을
창단했다 나단 트위닝 장군이 이 공군
참모총장이 되어 1954년 8월
육공이 aiss 업무에 관련하여
200-2 규정을
보강하였습니다 또한 UFO 그 성능
공기 역학적 특성 또는 특이한 특징에
의해 현재 알려진 항공기 또는 미사일
유형과 일치하지 않거나 친숙한 물체로
확실하게 식별할 수 없는 모든 공중
물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음악]
UFO 관련 조사는 국가 안보를
위함이며 기술적 측면 이을 명백히
하게 되었습니다 200-2 조항에서
제차 강조한 것은 블루북 UFO
사례가 일반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경우에만 대중 매체에 공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정체가 미확인 되었을
경우에는 미디어에게 상황을 분석
중이라고 하도록 했고 미확인의 수치를
최소화하라는 지시가 블루북 하달되었다
이 모든 것은 비밀리에 진행되었으며
공적으로는 블루북이 계속하여 공군의
UFO 조사 업무를 만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사실상 그 핵심적 역할은
축소되어 중요성이 있는 사례를
조사하는 경우는 매우 적었고
점차적으로 그 업무는 대외적으로
UFO 사례들을 일반 현상들로
설명하는 것들로 국한되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예로 1956년의
경우 미해결 사건들의 수치는 0.4%
떨어졌는데 그 이전 몇 년간은 그
수치가 20% 30%
정도였습니다 결국 루펠 2는 재배치를
요청했는데 그가 프로젝트를 떠날 주민
1953년 8월에는 직원들은 10여
명에서 그 자신과 두 명의 직원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임시로 글을 대체한 이들은
하사관들이 루펠 2를 이어 블루북
책임자로 임명된 이들 대부분은 UFO
대해 무관심하거나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자금과 공식 지원의
부족으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UFO 연구자들은 루펠
2가 담당했던 짧은 기간이 미공군의
공적 UFO 조사에 있어 그 정점에
있었다고를 증언합니다
그 당시 UFO 연구자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높은 수준의 지원을
받았으며 루펠 2 이후 프로젝트
블루북 다시금 암흑 시대로 떨어져
버렸고 많은 UFO 연구가들은 그
이후 다시 원상으로 회복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루펠 2는
나중에 UFO 특별할 것이 없다는
블루북 관점을 받아들였으며 이에 대해
우주시대 신화라고 이름 붙이기까지
했습니다 1954년 3월 찰스 하딘
대위가 블루북 책임자로 명되 대부분의
UFO 조사는 46002 부대에서
담당했고 이에 대해 하디는 이일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펠트는 하인에 대해 그는
UFO 관심이 있는 이들은 정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이들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55년 공군은 블루북
목표를 UFO 사례들을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미확정된 UFO 보고들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규정
1956년 말에 이르러 사례들의
미확인 처리 숫자는 루펠 2가
담당했던 시기의 20% 25%이던
목격 보고가 1% 미만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조지 그레고리 대인은
1956년 블루북 맡게 되었는데
클라크는 그에 대해 무관심했던 하딘
대위 보다도 더 강력한 반 UFO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합니다
46002 부대는 해산되었고 1066
항공정보 서비스 중대가 UFO 조사를
담당하게 됩니다 UFO 보고 사례들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매우 적거나
없었고 그레고리 대위 시절 수정된
200-2 규정은 설명 불가한 UFO
사례를 최소화하라는 내용만 더
강조되게
되었습니다 그레고리 대가 다수의
설명불가
사례들을 축소시킨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재분류 방법을
통해서였습니다 가능성 있는 경우는
개연성으로 개성은 확실성으로
분류하였으며 이러한 논리를 따라 해일
가능성은 성일 개연성으로 성일
개연성은 단호하게 해성을 잘못 식별한
것으로 분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풍성 같은
특이한 물체를 목격했을 경우 북에서는
분 조사나 적절한 근거 없이이를
풍선을 목격한 것으로 분류했으며
이러한 업무 절차들은 이후 이어진
블루북 모든 조사들 있어서 표준이
되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프랜드 중령은
블루북 책임자로 1958년
임명되었습니다 프랜드 중령은
프로젝트의 방향을 1954년 이전으로
돌리려는 몇 차례 시도를
했는데요 클라크에 의하면 프렌드 중은
여러 관찰된 통계를 통해 목격 보고
파일과 카탈로그를 업그레이드하려고
시도했지만 재정과 정부 협조의
부족으로 좌절되었다
썼습니다 프렌드 중령의 노력에 감동한
하이넥 박사는 1959년 처음으로
블루북 atic 인사들의 회동을 몇
차례 성사시켰으며 하이넥 can 과거
몇몇 UFO 사례 보고들 경우 알 수
없는 범주에서 확인된 주로의 재평가를
제안했지만 그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프랜드 중명 시절
atic 블루북 다른 공군 기관
산화로 넘기려고 했지만 공군 연구
개발 센터나 공군 정보국 모두 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1960년 UFO 관한
의회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민간 UFO 연구 그룹인
nicap UFO 증거를 은폐한
혐의로 블루북 공개적으로 기소했으며
미 의회에서도 몇몇이 동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블루북 의회와
CIA부터 조사를 받았으며 특히 민간
UFO 그룹인 nicap 등은 블루
북이 과학적 연구로서 부족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반응하여 atic
n 총 세 명의 군 인사와 한 명의
민간인 비서로 구성하는 인원을
보강했고 블루북 예산을 증가했습니다
이 조처로 블루북 대한 비판이 어느
정도 진정된 듯이 보였지만 잠시
뿐이었고 수년 후 비판은 더욱 거세지
됩니다 1963년 프렌드 중령이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날 지음 그는 블루북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며 해산되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이러한 조치가 대중에
반발을 살지라도 해산되어야 한다고
여긴
것입니다 헥터 퀸 타닐 소령은
1963년 8월에 블루북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대부분 UFO
일상적 현상의 착오라는 이전의 전략을
지속했지만 는 대놓고 퀸 타일라
소령이 과학적인 면에서나 조사를
수행하는데 있어 능력이 부족하다라고
선언했습니다 한편 맥도날드 박사는
퀸타 넬라가 윗선에 의해 직책에
임명되었을 뿐이며 블루북 운영지침에
따랐을 뿐이기에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UFO 사례들에 대한 블루북
설명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일부 과학자들을 포함한 비판
세력은 프로젝트 블루북이 의심스러운
연구를 수행했거나 혹은 은폐를
자행하고 있다고
몰아붙였습니다 이러한 비판은
1960년대에 들어 더욱 강력해지고
확산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965년에 미국 중서부와 남동부에서
주로 밤에 발생한 많은 UFO 목격
사례를 살펴보면 텍사스의 한 목격자는
여러 세계 불빛과 달걀이나 다이아몬드
처럼 생긴 거대한 비행 물체를 보았고
오클라호마의 고속도로 순찰 때는
오클라호마 시티 근처에 팅거
공군기지에서 네개의 UFO 추적하고
그중 몇 개가 대략 22,000
피트에서 4천 피트로 몇 초만에
급강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이는 당시 비행 기술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캔사스 위치타의
기상학자인 존 쇼클리는 주정부 기상관
레이더를 통해 이상한 비행물체가
6천에서 9천 피트 상공을 비행하는
것을 관측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목격 사례들은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습니다 프로젝트 블루북
목격자들이 목성이나 다른 밝은 별들
즉 겔이나 베텔게우스 같은 것을 잘
못 본 것이라고 공식
결론지었습니다 이러한 블루북 해명에
대한 비판이 거세고 오클라호마 과학
예술재단 문관의 디렉터인 로버트
라이저는이는 진실과 너무나도
다르다 이러한 별들이 행성들은 그
당시 오클라오마 시티에서 볼 때 지구
반대편에 위치해 있었다라고 하며
프로젝트 블루북 대한 호된 비판을
했는데이는 대중들에게 널리 회자되기
되었습니다 리치몬드 뉴스 리더 신문의
편집진은 프로젝트 블루북이 목격
사례에 대해 일하려고 내놓은 해명은
미스테리를 해결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공군 측에 우리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의혹을 고조시킬
뿐이다라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한편 위치 타에 있는
미국 국제 합동 통신사 기자는 보통의
레이더는 행성이나 별들을 감지하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로북이 비난을 받았던 또
다른 사례로 소위 포티지 카운티의
UFO 추적 사건이라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1966년 4월 17일 새벽
5시 경에 오하이오 라벤나 근처에서
당시 경찰이었던 데일 스파와 윌버
네프는 둥근 형태의 음빛 물체가
아래쪽에서 밝은 빛을 내면서 대략
1,000 피트 상공이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들은이 물체를
추격했지만 이 추적은 85마일 가량
떨어진 펜실베니아 프리덤 근처까지 약
30분간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UFO 추적은 전국적으로
보도되었고 경찰측에서는 상세한
보고서를 블루 북에 제출했습니다 5일
후 다수의 민간인 목격자들은 배제하고
경찰 중 한명과만 짧게 인터뷰를 가진
뒤 블루북 책임자인 헥터 퀸 타라
소령은 경찰들이 처음에는 통신위성을
따라가다가 나중에는 금성을 추적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러한 해명은 결국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경찰은이를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하이넥 박사는 반대되는
결론을 내리며 블루북 결론이 터이
없다고 했으며 오하이오 하원 의원인
윌리엄 스텐트는 공구는이 지역
사회에서 신망을
잃었다 공공의 복지를 담당해온 이들이
더 이상 사람들이 진실을 믿을 수
없게 만들면서 대중들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했습니다 1968년 9월 하이넥
박사는 미공군 해외 기술처 레이몬드
슬리퍼 대령에게 편지를
받았습니다 슬리퍼 대령은 하이넥
박사가 블루북 조잡한 과학적 영향에
대해 공식적으로 비난했을 알고 있다며
어떻게 하면 과학적 조사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구했습니다
이 편지에 대해 하이넥 박사는 공군의
과학 자문으로 20년간 관계를
가져오면서 처음으로 UFO 문제에
대해 비판과 조언을 공식적으로
요청받은 첫 번째 사례였다 나중에
수레
있습니다 하이넥 박사는 1968년
10월 7일에 편지에 대한 자세한
답을 하면서 블루북 개선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다음은 그중 일부
내용입니다 블루북 a 두 가지 임무인
UFO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가에
대한 것과 블루북 수집한 과학적
데이터들의 이용에 대해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블루북 소속 직원들은 그
숫자에 있어서도 또 과학적 훈련에
있어서도 모두 엄청나게
부적절했다 블루북 폐쇄적 구조로
인하여 외부의 과학계와 대화가
단절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블루북이 차용한 통계적 방식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다 중대한 UFO 사례들에 대해
주의를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고 미미한
일상적 사건들과 지역적인 홍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해 있다 한 달에
40에서 이계의 사례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루는 대신 과학적 중요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한두 건의 사례들에
집중해야 했다 블루북 유입되는 정보들
또한 매우
부적절했다 지역 공군기지에 있는
UFO 관련 장교들이 적절한 정보를
보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또한
블루북 처리하기에 불가능할 정도로
부화가
걸렸다 블루북 사건에 대한 접근
방식과 태도는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이다 과학 자문 또한
부적절하게
사용되었다 프로젝트에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례들만이 자에게
제공되었다 과학 자문의 활동 범위에
대해 지속적인 방해가 있었고 종
흥미로운 사례가 블루북 보고된지 한두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되곤
했다 하지만 슬리퍼 대령의 비판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이넥 박사의 논평
중 어떤 것도 블루북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퀸 타일라 소령이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임했는지 UFO 공군의 딜레마다 아고
한 그 자신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이 글을 1975년에 썼는데 그가
사망한 이후인 1998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퀸타나는 인간만이
우주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자신의
개인적 믿음을 그 그를이 책에
남겼습니다 블루북 대한 비판은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
증가했습니다 nicap 회원수는
15,000 여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은 UFO 증거를 은폐한 혐의로
미국 정부를
기소했습니다 미의회 청문회에 이어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인 과학 기구인
콘돈 위원회가 1966년 설립되었으나
일부 회원들이 에드워드 콘돈 디렉터가
편견을 갖고 있다고 고발하였고
비판가들은 콘돔 보고서의 타당성과
과학적 엄격성 의문을 제기하게
됩니다 결국 콘돈 위원회는 UFO
대해 특별한 점은 없으며 소수에
설명되지 않은 사례가 있지만 보고서를
통해이를 위한 추가 연구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콘돈 위원회의
결과에 따라 공군 장관 로버트 시멘스
주니어는 블루북이 곧 종료될 것이라고
하며 추가로 재정을 지원하기에는 국가
안보나 과학적 유익의 근거가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블루북이 공식적으로 활동한 마지막
날은 1969년 12월 17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블루북 파일들은 알라바마
맥스웰 공군기지 내의 기록 보관소로
되었는데 데이비드 시어 소령은 맥스웰
기지로의 이관에 대해 그곳이 접근
가능하지만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기
때문이라고 나중에 부연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프로젝트 블루북
목 사례들이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고 밝히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가벼운 형태의
집단 히스테리 둘째 사기나 홍보를
목적으로 목격 사례를 조작한 개인들
셋째 정신병자 넷째 다양한 물체들의
오인 2003년 4월 미공군은
공식적인 정부의 UFO 연구
프로그램을 재개할 즉각적인 계획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12월 aatp
아는 새로운 기밀 UFO 연구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2천만 달러
이상의 자금이 지원되었다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다음은 미공군의 자료
95-3 조항에 명시된 UFO 관한
미공군의 공식 성명입니다
1947년부터
1969년까지 공구는 프로젝트 북을
통해 미확인 비행 물체를
조사했다이 프로젝트는 오하이오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에 본부를 주었었고
1969년 12월 17일로
종료되었다 프로젝트 블루북 보고된 총
12618 사례 보고 중에 70개가
미확인으로
남았다 UFO 조사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과학
연구라는 제목이 콜로라도 대학교
보고서에
기반했다이 보고서와 1940년부터
1969년까지 공군에서 조사한 UFO
보고서들을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검토하였다 이러한 조사들 연구 그리고
1948년부터 UFO 사례들을 조사해
온 경험의 결과 프로젝트 블루북
결론은 다음과
같다 공군에 의해보고
조사및 평가결과 UFO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의 징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미확인으로 분류된 목격
사례들이 현재의 과학적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 발전이나 원리를 갖고
있다는 증거가 공군에 제출되고
발견되지
않았다 미확인으로 분류된 목격
사례들이 외계 물을 나타내는 증거는
없었다 프로젝트 블루북 종료와 함께
UFO 조사 고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수립하고 통제하던 공군 규정은
폐지됐습니다 이전 블루북 조사
기록들은 군 사령부의 국립 문서
기록원으로 연구 이관되었습니다 공개
검토 및 분석이
가능합니다 많은 대학과 전문과학
단체들은 UFO 현상에 대해 정기적
모임이나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행 현상들에 관심
있는 민간 단체들은 개일 리서치에서
발행한 협회 백과 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간 단체들의 UFO
관련하여 나온 자료들을 정기적으로
점검하여 과학계에서 중요한 증거들을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UFO
목격하고 보고하고자 한다면 지역의
법집행 기관에 연락하도록 조언하고
있습니다 프로트 블루북 보고된 목격
사례들을 색상 횟수 관찰시간 밝기
모양 속도의 섯 지 특성으로 분류한
다음 이런 것들을 확인 사례와 미확인
사례들 간해 비교하여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
확인했는데요 이러한 통계 분석의 주요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례에 약 69% 알려지거나
확인된 것으로 판단되었고 이중 38%
결정적으로 확인된 것으로 간주된 반면
31%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설명이
붙어 있
약구 퍼는 불충분한 정보로 분류되었고
공군 연구에서 분류했던 알수 미
확인이 28% 있던데 비해 22%
감소되었습니다 확인 범주의 경우
86% 항공기 풍선 또한 천문학적
현상으로 설명되었고 전체 사례의
1.5%이 심리적 혹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로
판단되었습니다 기타 는 88% 있으며
여기에는 사기 행위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수한 사례들의 경우
미확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우수 사례들의
35% 미확인으로 분류된 반면 분량
사례들의 경우 18%이
그랬습니다 한편 바텔 연구소의 최종
보고서의 요약 부분을 보면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보고들 중 현재
지식의 범위를 벗어난 발전된 기술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브루스 맥카이 박사를 비롯한
여러 연구가들은이 보고서를 몇밀리
검토하였는가 240개 차트와 표
그래프 지도를 통한 자체 통계와
이상스럽게도 상반된다고
평가했습니다이는 아마도 자신들의
결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거나 아니면
로버트슨 패널 이후 블루북 내의
새로운 정치적 분위기를 충족시키는
결론을 내렸다고 추측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1955년 10월 공군이
마침내 특별 보고서 14번을
공개했는데이는 UFO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이 주장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은이 보고서가 실제로 확인이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미하게 확인과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으며
공구는 실제로는 미인이 22% 에도
불구하고 3% 뿐이라는 잘못된 주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완전한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면 그 나머지 3%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례들은
이미 정보부족 범주로 분류되었다 점과
확인과 미확인 범주에 속한 것들은
충분한 정보들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었다 사실을 무시했다고 반박을
당했습니다
또한 미확인의 경우들은 보통 우수한
사례들이 경향이 있었으며 더 우수한
정보와 목격자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이 기념비적인 바텔 연구소의
결론은 1979년 프랑스 GPA
보고서에 반영되었는데 거기서 면밀한
조사를 거친 1600개 이상의 UFO
사례들 중 4분의 가량에 대해 일정
부분 실제적 의문이 제기된다고 합니다
GPA 뒤를 이은 sapra
2004년 문을 닫기까지
5,800원 사례들이 분석되었고
설명할 수 없는 미지수의 비율은 약
14% 떨어졌으며 sapra
책임자였던 장자크 벨라스코 박사는이
설명 불가한 사례들 중에서 매우
설득력 있는 외계의 기원의 증거를
발견했다며 2005년에 책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이넥 박사는 UFO
허구라는 것을 밝히려 한 로버트슨
패널의 준 회원이었는데 수년 후
하이넥 박사의 UFO 관한 견해는
바뀌었고 패널이 미해결 미스테리들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정부의 UFO 연구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했던 유일한
과학자로서 그는 프로젝트 사인 그러지
블루북 대한 독특한 시점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과학 조사의 망을 가졌지만
그는 블루북 점점 더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공군의 무관심 무능 조잡한
연구에 대해
비난했습니다 블루북 조사하지 않고
설명하는 이들로 비난을 받았다는
사실을 그는
기억했습니다 블루북 처음 펠트
대로부터 하인 대위 그레고리 대위
프렌드 소령 그리고 마지막으로 헥터
퀸 타라 소령이 책임을
맡았었습니다 이들 중 하이넥 박사는
루펠 2와
프렌드에게 2에 대해서는 그와
함께하면서 나는 그가 현상 전체에
대해 정직하고 진지하게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으며 프렌드의
경우 블루북 함께 일했던 모든 장기들
중 프렌드 소령을 나는
존경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완전한
실용적 현실주의자였다
프로젝트의 한계를
인식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몇몇
블루북 책임자들이 보여주었던 과격함
없이 존엄성을 가지고 행동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이넥 박사는 퀸 타넬
소령에 대해서는 퀸타 방식은
간단했습니다 자신의 가설에 반대되는
증거들은 무시했다며 낮게 평가하며
퀸넬 소령이 블루북 책임자로 재임하는
동안 센스라는 깃발이 높이 휘 고
했습니다 또한 하이넥 퀸 타넬 부하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무디 상사가
재판도 있기 전에 유죄 판결을 내리는
방식을 전화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은 가차
없이 정신병적 범주에
넣었다 즉 또라이라고
표했습니다 하이넥 박사는 무디 상사가
UFO 목격 사례를 철저히 조사하기를
거부했던 일에 대해서도 밝히며 그는
가능성의
대왕이다 풍선일러스트
혹시 그들이 외계인이지
않았을까요 이런 조사들이 너무
거북했던 외계인 스파이였던 건
아닐까요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안녕
[음악]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