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기만 한 오키나와의 비극적인 역사, 동아시아에 숨겨진 통일 국가 류큐 왕국의 역사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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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숨겨진 국가, 류큐 왕국의 역사 1부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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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돋보기입니다.
우리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국가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에 편입되어있지만 역사 적으로는 엄연히 일본과 별도의
독립적인 국가를 수립했었던 류큐 왕국입니다.
류큐 왕국이 생소하시다구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일본의 오키나와 를 여행하신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오키나와는 일본의 영토이긴 하지만 일본보다는 대만에 더 가까운 섬
과 제도들로 바로 이 오키나와가 한때는 류큐 왕국이 있었던 곳이
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이지만 류큐 왕국은 대만의 영향과 중국의 영향과 일본의
영향을 모두 받으며 류큐만의 독재적인 역사와 문화를 읽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어쩌다 류큐 왕국은 오키나와가 되었을까요?
언제부터 오키나와 섬과 그 부근 제도들에서 사람을 살기 시작했는
지는 알 수 없으나 3만 2천년 전의 인골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키나와에서는 일본의 신석기 시대 토기인 조문토기와
일본의 청동기 시대 토기인 야요이 시대의 토기도 발견되었는데 이로
발미 아마 신석기 시대부터 오키나와 는 일본 본토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가 있는데 언뜻 생각해보면 교류방향이 일방적으로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로 내려 갔을 것만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조문토기들이 오키나와 에서 나오는건 분명 일본 본토의
문화가 내려온건 맞지만 일본의 언어학자들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앞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북상하여 일본으로 어느정도 건너
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 일본어는 일본의 북쪽 즉 고구려와 백제어가 내려온 언어에
동중국해 남중국해 필리핀해 이 바다 영역권에서 탄생한 남방의
언어가 합쳐져 만들어진 언어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때 남방에서 영향을 받은 남방 의 언어를 전파한 사람들이 오키나와
인들로 보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토착인들이 일본으로 가서 정착을 했는지 그 외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오키나와를 거쳐 서 일본으로 갔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오키나와의 현지어였던 즉 류큐인들이 사용했던 언어와 일본어는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류큐인들이 사용했던 그들의 언어 와 일본어는 완전히 다르긴 해서
지금에야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일본 본토의 일본인들은
오키나와 현지인들의 전통어는 알아듣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역사 속 류큐인들의 언어와 일본어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단어
들이 굉장히 많고 무엇보다 문법 구조가 동일하다고 합니다.
반면 류큐인들의 토착 언어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더 가까우면서도
중국어의 문법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하죠.
따라서 일본어와 류큐인들의 토착 언어는 언어적 조상이 같다고 일본어
학자들은 보고 있답니다.
다만 문명이 만들어지고는 오키나와의 일본인 도레인과 중국인 도레인들이
물밑듯 들어오면서 선진 문물을 전파하고 오키나와 여러 제도의
섬들에 성곽을 쌓으며 각 지역별로 정치공동체를 형성해가기 시작합니다.
오키나와 제도 내 여러 섬들엔 수많은 성곽도시들과 정치공동체들 이른바
성읍도시들이 난립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체제가 계속 유지가 되었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통일왕조가 먼저 들어서질 않고 각 지역별로 성벽
을 기준으로 한 도시들이 먼저 형성 되면서 오키나와에는 각 지역별로
호족들이 흥기했는데 이 호족들을 아지라고 부른답니다.
오키나와는 이 아지라는 호족들을 기반으로 지역별로 연합해가며
국가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14세기경이 되면 오키나와는 세
왕국으로 정리가 됩니다.
각각 북쪽 가운데 남쪽에 있다고 하여 세 세력을 북산 중산 남산
으로 부르며 이 시기를 삼산시대 라고 하죠.
이중 남산의 사시키라는 곳의 아지 였던 쇼하시가 반란을 일으켜 자신의
측근을 남산의 왕으로 옹립하고 쇼하시는 남산의 실권자가 되었
죠.
그리고 1406년 그는 중산을 공격해 중산을 멸망시킨 뒤 자신의 아버지
를 중산의 국왕으로 추대하며 본인 은 섭정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수도를 지금의 오키나와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나하시 그
당시 이름으로는 슈리로 천도합니다.
1416년에는 북산도 멸망시켜 통합 했죠.
142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쇼하시가 중산의 국왕
이 되었고 1429년 남산까지 통합하면서 바야흐로
오키나와에는 통일왕조가 들어섰 습니다.
이 통일왕조를 쇼하시의 성을 따 와 쇼시왕조라고 하는데 쇼하시
왕은 국제적으로도 승인을 받고 싶어 중국의 명나라에 조공과 책
봉을 요청했고 명나라의 황제 선덕제 가 쇼시왕조에 류큐라는 국명을
내리면서 비로소 류큐왕국이 탄생 하였답니다.
참고로 고려의 삼벨초 자녀세력 이 항쟁 실패 후 오키나와로 내려가
서 류큐왕국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계유년에 고려인 장인 이 기화를 만들었다고 적힌 기화
가 발견되기도 하였고 삼벨초가 진도에서 항쟁할 때 건설했던 용장산성의
기화와 오키나와 슈리성의 기화 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삼벨초의 항쟁은 13세기 후반 이고 류큐왕국이 오키나와를 통일
했을 시점은 15세기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많이 나서
하나의 학설에 불과하답니다.
류큐왕국은 이후 명나라와 조공 관계를 맺으며 조공 무역을 통해
선진 문물과 경제적 이득을 취했 고 명나라 외에도 우리 조선에게
도 조공관계를 맺었죠.
조공 무역 외에도 명나라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를 이으며 중개 무역
을 통해서도 큰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류큐왕국의 상인들이 활동했던 범위가 일본을 포함해 조선의 부산
명나라의 푸저우와 광둥등 동남 해안도시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굉장히 넓 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류큐왕국을 거치지 않으면 동남아를 갈 수 없을 정도
였다죠.
다만 16세기에 들어서 명나라의 해금정책이 강화되고 조선도 잦은
외교들의 침략 그리고 이 외교들이 자꾸만 류큐 사절단으로 위장하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조선도 류큐 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이러면서
류큐왕국의 중개 무역은 쇠퇴하게 됩니다.
여기에 일본은 도요토미 히드시 의 통일정권 나아가 도쿠가와 가문
의 에도마쿠 시대를 접어들고 중국에서는 명나라와 명나라에 이은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류큐왕국 은 중간에 낀 존재로 두 국가 사이에서
엄청난 외교의 부담을 안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류큐왕국은 중국은 우리의 아버지요 일본은 우리의 어머니
이다라며 양측과 모두 조공측분 관계를 맺었는데 이를 일지양속
체제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류큐왕국의 절체절명인 위기가 찾아옵니다.
일본의 에도마쿠 시절 현 일본의 가고시마 현에는 사스마번이라는
번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사스마번은 에도마쿠 시절 대표적인 항구도시이자 무역도시였습니다.
다만 에도마쿠는 상업을 억제하려 던 정부로 유명한데 역설적으로
상업이 발달하고 있으니 사스마번 은 제갈길 알아서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특히나 사스마번은 청나라와의 무역을 강렬하게 원했으나 청나라와
무역 터기가 어렵자 류큐를 통해서 청나라와의 무역을 시도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류큐가 워낙 해상요충지 에 자리하고 있어서 류큐를 정확
하면 엄청난 범위의 바다 무역망 을 확보하는 곳이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과거 임진왜란 당시 사스마번 에서 전쟁을 핑계로 류큐왕국으로
보다 다량의 군량매를 강요한 전례 가 있어서 류큐왕국에선 사스마번
을 대단히 경계하고 있었는데 이에 1609년 사스마번의 시마즈 가문
이 군대를 이끌고 류큐왕국으로 들어가 류큐왕국을 정복해버렸
습니다.
류큐왕국의 쇼네이왕은 사스마번 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사스마번
은 류큐왕국을 없애버리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사스마번의 직할령이 되어
사스마번을 류큐왕국으로부터 막대한 자원을 수탈했습니다.
특히 사스마번이 수탈했던 류큐 왕국의 자원은 사탕수수였습니다.
당시 설탕은 국제무역상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사탕수수는 매우 귀한 자원이었는데 사스마번은 류큐왕국으로부터
헐값에 사탕수수를 사들이고 국제 적으로는 높은 가격에 되팔면서
막대한 수익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사탕수수로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 사스마번은 류큐왕국의 모든 농민
들에게 사탕수수 재배만을 강요 했고 그들이 먹을 식량으로는 본
토에서 값싸게 사들인 저렴한 곡물 들을 류큐왕국에 수출해주는 말
그대로 식민지나 다름없었죠.
류큐왕국의 농민들은 노예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해야만 했고요.
아울러 류큐왕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에도막부에 대한 충성심을 보이고
자 사절단을 보내야만 했는데 이를 에도노보리라고 합니다.
일종의 조선통신사 같은거죠.
류큐왕국은 사스마번의 식민국가 로 전락하기는 했지만
에도막부는 류큐왕국의 일본식 풍속을 금지시키고
에도노보리를 보낼 때는 류큐인들에게 중국식 문화로 오게끔 하였습니다.
류큐인들을 통해 청나라의 소식과 정보를 접하는 등
에도막부는 류큐왕국을 완전히 별개의 국가로 이식하고 있었다는 뜻이죠.
이렇듯 에도막부 자체도 류큐왕국을 별개의 국가로 이식을 했는데
류큐왕국은 어쩌다 일본인 오키나와 현으로 편입되었을까요
2부에서 계속됩니다.
그럼 역사돋보기였습니다.
저희 역사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