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역사에 빠질 수 없는 노예 취급을 받은 홋카이도의 원래 주인, 아이누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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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원래 주인, 아이누족의 역사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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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사돋보기 입니다.
여러분 아인우족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주 생소한 이름은 아닐거라 생각이 듭니다.
아인우족은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존재했던 동아시아의 또다른 중요한
소수민족으로 현재는 일본인으로 규정됐지만
그들이 살았던 지역이 일본으로 편입된건 그렇게 오래된 역사는
아니랍니다.
일본 사이에 있어서 조연처럼 등장하는 아인우족이지만
사실은 일본 사이에 있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아니 과장족은 보태 동아시아 역사 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는 소수민족
이랍니다.
이 아인우족의 역사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아인우의 어원을 설명드리자면 아인우족은 그들의 애니미즘적
신화에 따라 세계가 신적 존재들과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데
이때 아인우족은 신들을 카모이라고 부르고
인간을 아인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고유어 아인 우어라고 일본어와 별도로 따로
있었습니다.
현재 일본 내 아인우족의 인구수는 약 2만 5천명 정도이며
아인우족은 일본의 남부 사할린 섬 쿠릴열도 후카이도
그리고 일본 본토의 도호쿠 지방 일부에 걸쳐서 분포하고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아인 우족도 구분이 된다고 하죠.
원래 일본에서는 후카이도를 애 조치라고 불렀는데
애조치란 아인우족의 땅이란 뜻 이랍니다.
아인우란 민족명칭은 아인우족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러달라고 요청한
공식명칭이며 옛날엔 일본 본토 인들은 아인우족을 애조라고 불렀
거든요.
일본 역사의 시작은 신석기시대 즉 조문시대부터 시작합니다.
보통 다른 나라의 신석기시대는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섬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농경은 신석기시대 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일본의 신석기시대 조문시대 에서는 토기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산이 많은 일본에서는 채집이 주된 경제생활
이었고 이 채집된 열매 혹은 식물 들을 조리하고 저장하면서 토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농사를 하지 않았 더라도 신석기시대로 분류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일본은 농경 전에 토기가 먼저 제작된 아주 독특한 신석기
시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 시절 미국의 동물학자 에드워드 모스가 일본의 오모리
에서 최초의 신석기시대 토기를 발견했는데 이 토기에 줄무늬가
있어서 일본의 신석기시대를 줄무늬 시대를 이려 발음으로 한 조문시대
라고 하는 겁니다.
일본 조문시대의 주요 유적지의 분포들을 보면 전부 일본의 북동부
해안가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즉 아인우족의 터전이었던 곳들 이죠.
일본의 조문시대를 이군 주체는 아직 일본이 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빙하기 시절 북방에 사람들이 내려 와 지금의 사할린섬과 후카이도
이후 빙하기가 끝나면서 일본열도 가 대륙에서 분리되자 이들에 의해
조문토기를 만들며 신석기시대로 확장시켰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아인우족이 일본의 신석기시대 를 개창시킨 장본인들이라고 할
수 있죠.
농경기술은 없던 아인우족이 일본의 신석기시대를 열었기 때문에 농경
이 선행될 수 없기도 했고요.
이후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라는 최초의 고대 국가가 들어섰습니다.
이 당시 야마토 정권 즉 일본 본토 인들은 아인우족을 모인이라고 불렀
습니다.
털 모짜르소서 모인이라고 불렀 는데 아마 추운 지역에 사는 아인우족
이기에 지금처럼 두꺼운 털옷을 입고 다녀서 붙여지는 이름이 아니
었나 추정합니다.
이후 일본이 나라시대와 해안시대 를 거치며 점차 일본 북동부쪽
으로 영토를 팽창했는데 이 영토 팽창 과정이 바로 아인우족과의
전쟁이었으며 마치 중국사로 비유 하면 북방의 이목민족이 끊임없이
중국왕조를 괴롭히고 약달했듯 아인우족 역시 일본 본토인들을 시시
뜻대로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11세기경 결국 해안시대의 일본 정권은 일본 본토 북동부까지
전부 장악했고 일본 본토 북동부 에 살던 아인우족은 일본 정권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다만 여전히 아인우족이 대다수 였던 호카이도는 일본 본토인들
에게 외지의 섬처럼 인지되었죠 .
호카이도의 아인우족은 목축 어업 등을 주된 경제생활로 삼으면서도
일본 본토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쌀 등 그들에게 부족한 자원들을
수입해오기도 했죠.
그런데 일본 본토가 사무라이 시대 즉 막부시대로 접어들면서 막부
정권 내에서 끊임없이 내전이 벌어 지자 내전에 패배하여 도주한 세력
들이 정착하기 가장 만만한 곳이 호카이도였고 막부시대를 거치며
일본 본토인들이 서서히 호카이도 남부 끝자락의 오시마반도로 몰려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막부 역사 초기에는 막부 정권이 오시마반도 곳곳에 여러
작은 성들을 축성했는데 이러한 성들을 다테라고 불렀습니다.
호카이도의 하코다테라는 도시 에서 볼 수 있듯 아직까지도 다테라는
명칭은 남아있죠.
그럼 당연히 현지 원주민들인 아이누 족과의 경쟁이 있을 수 밖에 없겠죠
이 대표적인 가문이 다케다 가문 입니다.
한때 일본 본토의 간토지방을 석권 했던 가히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
하지만 다케다 신겐과 그의 아들 다케다 카스요리 둘 모두 교토 재패
권을 두고 오다 노부나가와 싸우 다가 패배한 뒤 다케다 가문이 몰락
하고 말았는데요.
이후 몰락한 다케다 가문은 역시나 호카이도의 남부 끝자락을 이동
했고 이 과정에서 다케다 가문 잔당 을
이끌던 다케다 노부 히로가 1457년 고샤마인 전초를 통해 아이누 족을
토벌했고 오시마 반도를 장악했습니다.
이후 다케다 노부 히로는 성을 가키자키 로 바꾸고 훗날 그의 후손이 1593년
돌토미 히들슈로부터 호카이도 전체를 관할하고 다스리라는 직책
을 부여받았고 1604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스의 에도
막부로부터 호카이도의 무역 독점 권까지 부여받았습니다.
가키자키 가문은 호카이도 남부 의 지역 유지 겸 호족으로 군림
가키자키 가문이 가문의 성실을 마스마에 로 바꾸면서 호카이도
남부 지역은 에도 막부 시절 마스마에 번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아이누 족은 호카이도 중북부로 더 내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말로 일본의 역사에서 에도 막부 시대까지도 호카이도 남부
에만 일본 본토 세력이 있었을 뿐 그 외 호카이도 전 지역은 일본의
용토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1860년 러시아 제국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통해 연해주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
를 할양받으며 극동항에 대한 욕심 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다만 건너면 사할린 섬이고 호카이도거든요
.
당연하게도 러시아 제국은 사할린 섬과 호카이도를 진출하려고 했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에도 막부 정권은 호카이도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 사업 끝에 호카이도를 직할 영으로 삼기로 합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누 족을 마스마에 번의 관할 소수민족으로 편입하였
죠.
그리고 호카이도의 하코다테를 가장 중요한 행정적 중심지 도시로
삼습니다.
원래 호카이도의 행정중심지는 사포로 이전의 하코다테였죠.
1868년 근대화를 원하며 친덴노파 였던 메이지 정부의 세력과
구 에도 막부 세력을 유지하려는 세력 사이에
보신전쟁이라는 내전이 발발하였 습니다.
끝내 구 에도 막부 세력에 패배 하고 말았는데
이들은 메이지 정부에 항거하며 호카이도로 넘어와
애조공화국이라는 나라를 별도로 만들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막부 세력의 패전병들과 잔당들은 전부 호카이도의 하코다테로 모여
들었고
하코다타에는 막강한 해군이 있었 죠.
이에 메이지 정부의 세력도 해군 을 조직해 호카이도 상륙을 감행
했고
미야코만에서 정부군과 막부군 사이의 해전이 발발
구 막부 세력의 해군인 승리엘 이라 예상했지만
악천후로 막부 해군의 전함 한 척이 엔진 고정이 나는 바람에
해전에서 패전
1869년 봄 메이지 정부군이 호카이도 하코다테에 성공적으로 상륙합니다.
하코다테에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으나
막부군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고
막부 잔당의 지도자였던 에노모토 다키야키는 고료 카쿠까지 후퇴
하여 최종 황전을 벌였습니다.
다만 도저히 희망이 없던 에노모토 다키야키는
결국 1869년 5월 항복을 해버리면서
보신전쟁도 끝이 납니다.
애조공화국 멸망 이후 호카이도 는 완전하게 일본 직항령이 되었고
이때부터 일본은 호카이도 섬을 애조치가 아닌 호카이도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영상 초반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애조치란 아인우족의 땅이란 뜻으로
더불어 그가 호카이도의 행정중심지였던 하코다테가
지나치게 남쪽에 치우쳐있다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새로이 호카이도의 행정중심지를 챙겨줄 계획도시를
호카이도 중부지역에 만들기로 했고
그래서 만들어진 도시가 사포로입니다.
아울러 메이지 정부는 호카이도에 있는 아인우족들에게
아인우어를 금지시키고 그 외 모든 전통과 풍습을 금지시키는가 하면
아인우족의 이름들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본토인들을 호카이도를 이주시키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했으며
이에 아인우족은 그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갔죠.
그렇게 강제로 일본인으로 만드는 정책들이 시행됐으나
그렇지만 정작 일본 본토인들은 아인우족에게 인종차별을 하며
아인우족도 비극적인 시기를 겪어야만 했죠.
당시 호카이도를 방문한 기획문에 따르면
아인우족은 호카이도를 이주한 일본 본토인들에게
거의 노예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로 사할린 섬을 일본이 가져가면서
사할린 섬의 아인우족도 일본인으로 편입되었죠.
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지음으로
호카이도와 사할린 섬에는 각종 탐광 및 공장들이 세워졌고
이때 아인우족도 꽤 많이 강제 동원되고 희생되었습니다.
다만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사할린 섬과 쿠렐 열도는 러시아령이 되었고
이에 사할린 섬과 쿠렐 열도에 사는 아인우족은
역시나 고유의 전통과 문화는 파괴되고
강제로 러시아인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90년대에 이르러
호카이도에 사는 아인우족에 대한 차별 및 포갑적인 정책들이 철회되었고
늦었지만 아인우족도 사라진 그들의 문화를 부활하고
보존하려고 노력 중이랍니다.
2012년에는 아인우민족당이라는 정당도 만들었죠.
아인우족 역시 비극적인 역사를 겪은 민족이지만
그들의 조상은 일본의 신석기 시대를 가져다 준 초기 조문인이며
대륙문화의 전파라는 측면에서
동아시아의 또 하나의 중요한 민족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럼 역사돋보기였습니다.
저희 역사돋보기가 멤버십 가입 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