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정신치료 강의 4장의 13번째 주제에서 7번째, 8번째, 9번째 소주제를 요약하겠습니다.
일곱 번째 주제는 공평하게 살기입니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공평함에 민감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듯이 남을 존중하는 것 즉 나와 남이 공평한 것이 인간 관계의 근본입니다.
여덟 번째 주제는 인간 관계를 단절하지 않기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삽니다. 또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는데 그 사람 중에는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멀게 느껴지거나 안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시간이 지나면 내가 바뀌거나 다른 사람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같이 이처럼 사람은 복합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감정이나 판단을 근거로 관계를 끊으면 큰 손해가 올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불편할 때는 그 불편과 함께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불편해 하는지 잘 살펴보고 그 불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걸 없애려고 하거나 거기에 저항하면 제가 복잡해집니다. 그냥 지켜본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봅니다.
아홉 번째 주제는 지혜의 기르기 입니다. 이는 앞에서 많이 다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지혜는 관찰을 통해 생겨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첫번째 질문 : 나와 남을 같이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공평함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세요. 두번째 질문 : 가족들간의 공평함은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요? 세번째 질문 : 인간관계와 국가간의 관계에 있어서 관계를 단절하면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불교정신치료관이 4장의 13번째 주제에서 7번째, 8번째, 9번째 소주제를 요약하겠습니다.
7번째 주제는 공평하게 살기입니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공평함에 민감합니다.
자기 중심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듯이 남을 존중하는 것,
즉 나와 남이 공평한 것이 인간관계의 근본입니다.
8번째 주제는 인간관계를 단절하지 않기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삽니다.
또 우리는 여러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는데 그 사람 중에는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고 멀게 느껴지거나
후자일 경우에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시간이 지나면 내가 바뀌거나 다른 사람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언제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같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복합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감정이나 판단을 근거로 관계를 끊으면 큰 손해가 올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불편할 때는 그 불편과 함께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잘 살펴보고 그 불편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걸 없애려고 하거나 거기에 저항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그냥 지켜본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봅니다.
아홉 번째 주제는 지혜의 기르기입니다.
이는 앞에서 많이 다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지혜는 관찰을 통해 생겨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첫 번째 질문인데요.
공평함이 나왔는데 공평함은 상당히 민감한 주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되게 나는 이만큼 해줬는데 쟤는 이만큼 밖에 안 해준다.
이런 걸로 많이 서운해하고 억울해하잖아요.
그래서 본문에서 내 중심이 아니라 나와 남을 같이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공평함에 대해서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를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든다면 공평하지 않기는 어쨌든 자기 중심이 좀 끼어드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서 내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갔어요.
가서 어떤 동창 이야기를 했어요.
그 동창은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중심이고 어디서 돈도 잘 안 된다 그랬어요.
그러고 난 뒤에 내가 화장실을 갔어요.
화장실 갔다 오면서 보니까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럴 때 내가 나도 아까 그 친구 이야기했듯이 당연하지 이러면 공평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없는 데서 그런 이야기하면 어떡해 이러면 공평하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렇게 해요.
그러니까 공평이 제일 중요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나 정말 공평하게 보나
이런 게 누구나 관심사잖아요.
좀 부당하게 대하면 싫어하잖아요.
그러니까 공평하다는 건 아까 말씀하신 대로
자기 입장에서 내가 이래해줬는데 제가 그럴 수 있나 그건 좀 곤란해요.
우리가 공평하려면 내가 참 저 사람한테 공평하게 대한다.
그런 말할 때는 그 사람이 대봐야 돼요.
그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이 사람이 참 쟤는 나한테 공평하게 한다.
그러면 공평하게 하는 거지.
내가 이래하는 것이 공평해.
그러니까 너는 받아들여.
이게 공평한 거야.
마치 자기가 무슨 규칙을 제어하는 사람처럼
그러면 공평 안 할 확률이 굉장히 높아요.
공평하다는 건 그 사람이 입장이 돼서 그 사람을 존중하고
또 그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고
그렇지만 공평하다는 게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된다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 사람도 다 상황을 보고 있잖아요.
그런 가운데 이 사람이 느끼기를 참 나를 존중하고
나한테 해줄 수 있는 만큼 하고
저 사람 입장에서 나를 보거나 대하거나 처리하거나 이런 게 아니라
참 내가 저 입장에도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마음이 들 때 이 사람은 참 공평하다 이런 마음이 들겠죠.
그러니까 공평하기 위해서는 기본 전제 조건이
우선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돼요.
존중이 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그 사람의 어떤 입장에서
그 사람의 처지에서 그 사람의 뭐를 충분히 배려하는
그렇지만 지나치지는 않는 거예요.
지나치지는 않고 충분하게 하여튼 배려하고
또 내가 저 사람이면 어떻겠다.
그런 가운데 뭔가를 한다면 공평한 것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럼 지금 제가 듣기에는 그 공평함이 상대방이 결정하는 건가요?
내가 공평하다는 거는?
근데 이런 건 있죠.
아까 예를 들면 내가 이렇게 참 했는데
누가 그럴 수 있나처럼 그 사람이 그거를 또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는 건 있을 수는 없죠.
나와 남이 정말로 어떤 공통된 합의하에서
아 이것이 순리다 할 때가 되지
공평해 그거는 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죠.
예를 들어서 그 사람이 나한테 이래야 되는 거 공평하잖아 하면
그때 이 사람이 충분히 이래 이래해서 이렇고 다 할 수 있는 걸 했다.
그럼 이 사람이 마음이 열린 사람 같으면 그래 그럴 수밖에 없네.
그래 공평한 거다.
이래야 될 수 있겠죠.
모든 게 이 사람의 그건 아니죠.
그러면 약간 추가 질문이 있는데
이 공평함이 문제가 되는 게
자녀를 키우다 보면 첫째, 둘째, 셋째가 다 자기를 공평하지 않다고 그러나요?
그럴 때는 누구의 입장에서 공평함을 얘기해야 될까요?
그거는 내가 볼 때는 그때 중요한 거는 아버지가 어머니라 칩시다.
어머니가 자기 문제에 걸리면 안 되죠.
자기 문제에는 걸리지 않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얘가 말하는 것이 충분히 타당하면
그 입장도 정말 타당하다.
그렇지만 얘가 뭘 해달라 할 때는 다른 애가 관계될 수 있잖아요.
그러면 그거는 참 네 입장에서는 맞지만
이거는 또 얘가 요래 느낄 수도 있고
요건 요랄 수도 있다 하는 그런 시각을 넓히겠죠.
그렇게 되면 불만은 별로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옛날 황의정성 이야기 있잖아요.
그게 어떤 사람이 와서 이렇습니다 하니까
그래 네 말이 일리가 있다 그러고
또 누가 와서 이렇습니까?
아니 여도 일리가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 말이 또 일리가 있다.
그런 마음이 있는 거 그리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어떤 사람이 이 사람만 딱 관계될 때는 이 사람의 입장에서 하면 좋죠.
그런데 이 사람이 다른 사람하고 관계된 걸 요구할 수도 있고
이럴 때는 또 시각을 넓히는 게 필요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자기 문제에 안 걸려야 돼요.
자기 문제에 걸려서 좋고 싫고 또는 요건 요래야 돼 이게 뭐 정의다.
이러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거죠.
네 두 번째 질문인데요.
그래서 어려서는 형제 간에 부모가 공평하지 않다.
이렇게 불만을 갖고 자라다가
이제 커서 시집 장가 가게 되면 법적인 가족들이 생기잖아요.
그럴 때 예를 들면 며느리들이 항상 느끼는 게
시댁에서 너무 공평하지가 않다.
이 집 식구들은 다 앉아서 밥 먹고 있는데 나는 뭐 일만 한다든지
그런 이제 서운함이나 공평하지 못함이 있잖아요.
또 이제 최근에는 사회들도 그런 얘기 많이 하시거든요.
너무 서운하다. 공평하지가 않다.
나만 계기다 이런 얘기는 하시는데
그래서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관계에서 그래서 법적인 관계로 묶인 가족들 간에서
자기 중심이 아니면서 좀 공평한 존중하는
그런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렇죠. 그런데 법적인 관계라니까
영어 표현이 참 많네요.
뭐 daughter-in-law, 며느리, 법으로, 딸.
어쨌든 daughter라는 사실, 딸이라는 사실이 참 중요하다고.
며느리가 아니잖아요. 딸이잖아요.
daughter, son-in-law, father-in-law.
그 말도 상당히 의미가 있네요.
어쨌든 내가 볼 때는 그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선 존중이 필요해요.
존중하면서 그 사람의 입장이 됐을 때
그 사람이 느끼는 거, 이런 걸 충분히.
그건 서로 간에 돼야 되겠죠.
예를 들어서 며느리가 있다.
그러면 이쪽에서는 시부모가 있겠죠.
시부모가 이래 생각해야 될 부분이 있고
또 며느리가 또 이래 생각해야 돼요.
며느리에 온통 맞추면 곤란해요.
만약에 시부모가 며느리를 생각할 때는 이래 되겠죠.
참 남의 집에 귀한 딸이잖아요.
딸이고 그다음에 우리 아들하고 하여튼 서로 사랑해서 인연이 된 거 아니에요.
인연이 되고 법으로 맺어졌잖아요.
그런데 쟤는 우리 집은 모르잖아요.
우리 집에 가족이 되니까 우리 집에 왔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낯설 수 있잖아요.
그리고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집마다 문화가 있잖아요.
문화도 모르잖아요.
그런 가운데 얘 입장이 돼 보면
어떻게 보면 되게 활발하고
인간관계가 이런 사람은
새로운 걸 경험해서 좋다, 새로운 나라 여행하듯이
그런 사람은 얘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잖아요.
뭔가 좀 신경이 쓰일 수도 있고 잘 모를 수도 있고
또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게 될 수 있잖아요.
그런 거를 충분히 배려하면 참 좋겠죠.
그래서 잘 보고 뭔가
그러니까 그때는 며느리의 마음을 잘 읽어야 될 거예요.
약간이라도 불편한 게 있으면 그걸 잘 해결해주고
그다음에 잘 가르쳐주고
그다음에 되도록이면 며느리도 처음부터 일을 많이 시키는 건
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난 그 문화는 나도 남자지만은
그 문화는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들어와서 제일 처음에는 좀 같이 하고
나중에 또 익숙해지면 따로 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사람을 편하게 해줘야 돼요.
그리고 그것이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한테 가려도
그렇잖아요.
그리고 내가 볼 때는 아들을 또 잘 이용해야 돼요.
왜 그러냐면 이 둘은 서로가 모르는 관계였어요.
아들을 매결해서 맺어졌잖아요.
아들은 이쪽도 잘 알고 이쪽도 잘 알아요.
그래서 이 아들을 잘 이용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어쨌든 이 사람이 들어와서
아 참 나에 대해서 참 존중하고 배려도 있고
참 일에 모르는 것도 가르쳐주고
뭐 이런 거 한다면 이 사람이 되게 편안할 거예요.
편안하고 좋게 생각하고 이래야 될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는 오해가 제일 안 좋아요.
자칫하면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오해가 막 커지면 극작을 할 수 없어요.
만약 며느리 입장에서는
아까는 시부모 입장에서 한 거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이래 생각해야 되겠죠.
내가 말한 그런 마음을 가지기는 쉽지는 않아요.
어쩌면 좀 기득권자잖아요.
그러고 들어왔잖아요.
그리고 또 좀 안 좋은 건 어떤 사람들은
아 우리는 이런 며느리를 바랬는데
그에 좀 못 미치는 사람이 들어온다든지
우리 아들은 이런 사람하고 결혼하면 참 좋은데
좀 못하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그러면 그런 것들이 막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러면 그건 진짜 안 좋아요.
그건 문제가 막 생길 수 있어요.
어쨌든 간에 며느리 입장에서는
시부모가 볼 때 방금 내가 말한 대로 하는 시부모는 쉽지는 않아요.
누구든지 오면 자기 집을 맞춰서 살기를 바랄 수도 있잖아요.
바랄 수도 있고 또 아들한테 잘해주길 바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그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거에 있다는 건 알고는 있어야 돼요.
그런 걸 잘 파악해야 돼요.
그리고 그게 잘못된 건 알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거를 알면서
그렇지만은 또 시키더라도 할 수는 없는 거고
그래서 해줄 수 있는 건 해주지만
또 어려운 거는 또 이제 좀 오해가 안 생기게끔
이야기도 하고
또 여도 마찬가지로 자기 남편을 잘 이용해야 돼요.
그냥 양쪽을 잘 아니까.
그래서 하여튼 오해가 안 생기도록 해야 돼요.
그리고 제일 좋은 거는 이거예요.
아까 시부모도 마찬가지고
이 며느리가 생각할 때
하여튼 이런 시부모에서 참 좋다 이런 마음이 들어요.
어쨌든 간에 참 좋다.
또는 이제 이 며느리 입장에서는 볼 때는
시부모가 이 며느리가 들으니까 우리 집이 너무 좋다.
이제 그래.
그런데 그걸 뭐 억지로 할 수는 없는 거고
그렇게 된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좀 해요.
그리고 이제 제일 좋은 거는
만약에 어떤 부모 밑에 아들, 딸이 있다.
그러면 제일 좋죠.
며느리가 들어오면
우리 딸이 그 집에 갔을 때 생각하는 거죠.
우리 딸이 그 집에 갈 때는
그 집에서 어떻게 해주길 바랄 수 있잖아요.
그걸 여기다 해주면 되는 거예요.
또 아들 같으면 사위로 갔다.
그럼 하여튼 그렇게
그 딸 같으면 며느리 생각하고
또 그 다음에 아들 같으면 그 집의 사돈집에서
아들을 어떻게 대해줬으면 바라는 거 있잖아요.
그거를 이제 사위한테 하면 되겠죠.
그러니까 자기 입장에서
그러니까 여기서도 이제 자기 문제가 좀 없어야 돼요.
우리 집은 이런 집이야.
우리 집의 법도를 뭐 빨리 익혀야 돼.
그 뭐 이런.
하여튼 자기 문제는 걸리지 않고
어쨌든 이 사람들이라는 건 거대한 세계예요.
그 엄청난 데이터와 네트워크가 있는
그거를 이제 잘 소중해서
좀 더 서로 잘 사는
그걸로 만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자기 문제 안 걸려야 돼요.
그래서 지금 들으면서는 자기 문제 안 걸리고
그 다음에 자기 중심이 아니라
이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렇게 좀 봐야겠네요.
네, 그렇죠.
말은 쉽지만 쉽지 않죠.
근데 어쩌면 그 길밖에 없어요, 길이.
그게 살 길이에요.
네, 다음 질문인데요.
요즘에 손절이나 손절 각이라는 게
되게 많이 쓰는 표현이더라고요.
원래 주식에서 손해보더라도 빨리 팔아버린다.
뭐 이렇게 쓰던 용어인데
인간관계에서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근데 지금 본문에
단절하지 않는다와는
이 말은 굉장히 좀 삼충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왜 인간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은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셨으면 좋겠고요.
비단 이게 사람 관계만이 아니라
국가 간에도
너무 국민들이 싫어하는 나라가 있잖아요.
그리고 또 막 싫어하는 나라인데
무슨 사건이 터지면
긴장이 막 고조된다는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막
그런 나라는 완전 단절해보자 이러는데
그러면 또 국가 간에도
이런 원리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우리는 언뜻 한 사람을 보면
공간적으로 한 1m 70, 80, 60, 70, 80
그런 아주 조그마한 공간을
그만큼밖에 점유할 수 없는
아주 어떤 작은 존재로 보는데
인간이라는 건 자세히 보면요.
엄청나게 안에 데이터도 많아요.
데이터도 많고 인간관계도 많고
그래서 엄청난 존재들이에요. 사실
국가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혼자 살 수가 없어요.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데
한 사람이 줄 수 있는 도움이
생각보다 엄청 많아요.
그래서 그 도움을 받으면서
물론 나도 도움을 주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돼요.
살아가야 되는데
이제 손절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자기를 좀 힘들게 하니까
그걸 끊는 수가 있어요.
그런데 잘 안 봐봐요.
힘들게 한다 끊는다는 거는
길거리 간 사람하고 끊지는 않잖아요.
모르는 사람하고 끊지는 않잖아요.
어쨌든 관계된 사람이에요.
관계됐다는 건 회사를 같이 다닌다든지
또 친구라든지 친구의 친구라든지
또는 가족이라든지 이런 건데
그걸 잘 보면 어쨌든 서로가
회사가 되면 이 회사를 서로 필요로 하는 거예요.
나도 이 회사가 필요해서 왔고
이 사람도 필요해서 왔고
그래서 만난 거예요.
만났는데 잘 보면
정말로 정확하게 알고
오랜 교류를 해가지고
느끼는 감정들이 아니에요.
보통은 보면
그냥 그동안에 살아오면서
가졌던 감정들이 많아요.
유사한 사람이나
또 어떤 유사한 상황이나
이런 데서 많았기 때문에
좀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내가 볼 때는
어떤 회사로 치면
회사에 들어갔을 때
왠지 어떤 사람은 가깝고
어떤 사람은 멀잖아요.
그거는 그게 있을 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그리고 어쨌든 아까도 내가 얘기했듯이
회사가 나도 필요하고
이 사람도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그거는 그냥 있을 수밖에 없이
잘못된 건 난 아니라봐요.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러니까 그걸 뭐
좀 별로 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다 가까이 할 필요도 없고
가까이 인사는 멀리 할 필요도 없고
그 관계대로 하다 보면
회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해요.
그런 가운데 또 돕게 된다냐 하면
또 관계화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되게 가깝게 느끼지만
실제 이 사람의 어떤 본질하고
하고는 다르게
다른 어떤 감정에서 온 거기 때문에
그건 또 멀어질 수 있어요.
자세히 알면은.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좀 이래 감정에 따라서 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지금 있는 그 어떤 거리감
이런 것은 있을 수밖에 없고
거기서 또 하면서
나도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고
이러다 보면 그게 또 달라질 수도 있고
문제는 손절하잖아요.
그러면 엄청난 피해가 와요.
회사에서 누구를 손절한다면
그 회사 갈 수가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하면 아무리
회사라는 건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아무리 저 사람하고 인사도 안 하고 하지만
부딪힐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내 어떤 생존을 위협해요.
인간관계 그러니까
하여튼 적절하게
그건 어떤 거리감
적절한 관계는
그건 잘못된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건 얼마나 바뀔 수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해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잘 지혜롭게 해야 돼요.
또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국가도 보면은
이 개인도 엄청나다면
그 개인들이 모인 게
국가이기 때문에
그건 엄청난 거예요.
우리가 도움받으려면
엄청나게 받을 수 있고
또 그것이 접으로 됐을 땐
또 엄청나게 피해를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우리가 북한이다.
그럼 그쪽은 공산주의잖아요.
집단체제, 공산주의고
이러기 때문에 우리하고는 다르죠.
다른 건 다른 거고
또 서로 좀 접촉할 수 있는 건
접촉하고 오해 없이
그런 걸 계속해야 돼요.
그리고 하나의 국가라는 건
국가 생존을 위해서도
다른 나라가 어떻게 돌아간지
면밀히 관찰하고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다른 나라의 영향이
우리나라에 와요.
그러니까 특히 이제 가까운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나라들하고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뭐 아프리카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그걸 전담하는 그게 있어서
각 나라가 지금 어떻게 되고 있고
그 나라와 우리가 서로
어떻게 도울 수 있고
또 오해가 생기든 어떻게 풀고
이게 우리의 생존에
엄청난 영향을 줘요.
그래서 하여튼 뭐든지 정확하게
보고 적절하게 하면
이 타인을 굉장히 소중하고
대단한 존재로 보고
그에 맞게 적절하게 하는 게 필요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시야가 좀 넓어요.
시야가 맞아요.
이제 앞에 질문이랑
이제 연결된 두 번째 질문인데요.
그래서 손절이 아니라 단절이 아니라
이제 멀면 먼 대로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관계를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고
유지해 가야 하는데
때로는 그럴 때
내가 이렇게 불편하지만
뭐가 불편한가를 보면서
그 불편한 걸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쉽지가 않을 때가 있어요.
특히 구체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예를 들면 형제 집안에
뭐 동생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사업 잘 되면 갚아준다 그러더니
잘 된다, 안 된다도 말도 없이
또 돈 언제 준다고 해도 말도 없이
이러면 진짜 괴롭잖아요.
특히 이제 나만 있으면 괜찮은데
배우자가 있으면 되게 눈치 보이고
민망하고 속상하고 막 이제 이런데
분명히 뭐 안 되니까 그렇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그러나 물어보면 또 서운해할까 봐
말도 못하고
마음은 막 구부글구부급했는데
여러 사람 같이 있고
그럴 때 내가 이 불편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인다
이런 게 어떤 걸까요?
그러니까 이제 그런 고통이 없으려면
고아가 돼야 돼요.
그리고 또 자기가 가난하게 살면
그런 또 위험도 없어요.
우선 형제가 있고
자기가 좀 잘 살고
그러면 그런 게 당연히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는데 이제 거기서
또 적절하게 하는 게 필요해요.
그리고 이 형제라는 게
형제도 있지만 아까 말했듯이
결혼을 하게 되면
부인도 있고 애들도 있고
또 뭐 이래 형제는 좀 불만이 있을 만하고
또 부모님에 대해서는 참 잘해주고 싶고
뭐 이런 마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근데 그래야 될 때
이 관계가 잘못되면
다른 관계에 영향을 미쳐요.
그래서 그리고 이제 예를 들어서
자기는 좀 잘 됐어요.
동생은 잘못되면 돈을 빌리잖아요.
빌리면
그리고 사실은 줄 때는
또 갚을 줄 알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형편이 안 되면 못 갚는 거죠.
동생도 형편이 됐으면 갚았겠죠.
그리고 또 빌리더라도
보통은 형한테 빌릴 정도면
또 다른 사람한테도 빌려요.
그리고 돈 갚을 때는
형은 안 갚아도 법적인 문제가 안 생기니까
제일 뒤에 갚을 수밖에 없죠.
사람의 심리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미 돈은 빌려준 거고
못 받는 거고
거기다가 더 나쁜 일이 안 생기도록 해야 되죠.
그리고 내가 어떤 가족 모임이나
명절 때 갔을 때
또 내가 좋아하는 부모님도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조카는 또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런 관계에 여기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고
이러면 영향을 미치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런 적절한
사실은 제일 좋은 거는
그때 동생의 입장이 충분히 되면 제일 좋죠.
동생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다.
그래서 잘 보면 다행일 수도 있어요.
안 그래요?
다행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로 하여튼 잘 보고
거기서 오는
그리고 또 부인이 좀 불만일 때
불만이면 불만 간유는 당연한 거죠.
그럴 때 적절하게 이해도하고 하면
또 부인도 두들두들 하는 거지
관계가 깨지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찌 보면 불만이 있을 때
불만을 당신이 참 그런 마음
하여튼 드는 건 당연하다는 마음으로 하면
또 여기도 편안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불만을 나타내면
더 크게 반응하면
부인이 더 힘들 수 있어요.
그러니까 부인은 뭔가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만 되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고
상황은 다 알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속에서 제일 좋은 거는
그냥 그런 관계에서도
그냥 편안하면 제일 좋겠죠.
그렇지만 그건 쉽지는 않은데
좀 불편한 게 있을 때
그 불편한 것도 불편한 거지만
또 다른 관계도 생각해서
요거를 요것대로 그냥 잊고
또 다른 오래간만에 본 조카나 부모님 또 기쁘게도 하고
뭐 이게 막 중심이 안 되도록 하는 게
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이게 이제 아까 그냥 말씀하셨지만
고아가 아니고
돈을 빌려줄만한 조건이었고
그다음에 이제 빌려간 조건에서
이게 더 나빠지지 않게
좀 있는 그대로 보고
또 배우자가 좀 힘들어하면
그 소리를 이제 그 사람 입장에서
내 입장이 아니라도
들어주면 좀 되겠네요.
그리고 동생도
돈 빌려간 동생도 얼마나 잘 살려고 노력하겠어.
그게 뭐 잘 안 되니까 그런데.
네 알겠습니다.
네 다음 질문은요.
세상에 많은 지혜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뭐 지혜 하나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지혜가 많은데
특히 종교에서는 참 지혜를 중요시하는 것 같아요.
보면 경전이나 뭔가 기도문들이나 이런 거 보면
지혜에 대한 말이 많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또 철학이나 이런 거에도
좀 많이 나오고 그러는데
제 질문은 왜 이렇게 종교에서는
지혜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지.
그러니까 이제 지혜란 말이
딱 이것이 지혜다 하는 정의가 좀
확실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혜란 말이
좀 모호하게 많이 쓰이는 것 같아요.
이제 그런데 종교에서는 지혜를 가장 중요시해요.
왜 그러냐면
진짜 종교가 생긴 거는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에
생긴 거 아니에요.
그 욕구란 거는 뭐냐면
개인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
그것이 깜깜하게 안 보이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내가 어떻게 태어났지?
내가 이 집에 왜 태어났지?
또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지?
죽으면 어떻게 되지?
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의문이 이제 종교를 찾게 되잖아요.
그럴 때 종교에서는
그런 거에 대한 답을 다 제공해요.
그러니까 종교의 어떤 창시자 내지는
또 기독교 같은 경우는
신의 어떤 개시를 받은 사람이
세상은 이렇다 하고
세상은 이런 곳이고
어떻게 태어났고 죽으면 어떻게 되고
행불행은 어디서 온다.
그런 데 대한 설명이 종교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지혜의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종교는 지혜를 중요시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거
보통 사람 알기 힘든 거
그거를 제시하는 거죠.
그래서 종교에서는 지혜가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여러 가지 질문이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어떤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서
해결을 해주는 거니까
지혜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말씀이시죠?
그리고 또 어떻게 살아야 되나 하는 지침이 되니까
그러면 불교에서도 지혜가 있는데
당연히 있겠죠.
그런데 불교정신치료를 지금
지혜치료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랬을 때 불교에서 말하는 그 지혜랑
지금 우리 불교정신치료를
지혜치료라고 했을 때
이 둘의 어떤 관계의 의미는 어떨까요?
그러니까 그곳에 조금 더 세분하게 나아가면
내가 세운 불교정신치료
이거는 불교도 석가문희 부처님이
부처님 되셨잖아요.
그러고부터 한 2600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그 시간도 흐르고 사회도 변화하고
또 지역적인 특성도 있고 하다 보니까
오늘날의 불교는 거의 세 가지라고 볼 수 있죠.
부처님 당시의 불교,
그것을 쭉 이어온 초기불교,
그 다음 대성불교,
그 다음 티벳불교 이래 있는데
내 경우는 불교정신치료를 만들 때
초기불교에 입각해 있어요.
대성불교, 티벳불교에 입각해 있지 않고
그래서 초기불교는 보면
지혜가 상당히 과학적인 지혜예요.
관찰을 통한 지혜예요.
관찰을 통해서 관찰해봤지만 이렇다.
그건 창시자인 석가문희 부처님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도 해보니까 똑같더라.
그래서 초기불교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말이 똑같아요.
틀린 말이 하나도.
왜냐하면 다 관찰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말이 똑같잖아요.
그런 점에서의 어떤 지혜예요.
관찰을 통한 지혜.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관섭적으로
눈, 귀, 코, 혀, 몸,
통상적인 정신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게 있고
그게 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 한계를 벗어나서 산매란 걸 얻어서
지혜의 눈으로 관찰하는
궁극적인 신체를 보는
그 두 가지가 초기불교의 가장 핵심이에요.
그래서 봤더니만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고
또 죽으면 어떻게 되고
여기에 행, 불행은 태어나서부터 어떤 먹과
그것도 있더라 하는 걸
나름대로 완벽하게 설명하는 거예요.
근데 내가 세운 불교정신치료는
그 중에서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래서 지혜 중에서도
관섭적인 지혜는 말하면 다 통해요.
다 통하고 실제로 보면 되는데
궁극적인 실제에 대한 것은
조금 여러 가지 작업이 필요하죠.
이거는 수행자가 경험하면 이렇고
이건 나뿐만 아니라 석감문이 부처님 이래로
다 하면 이렇고 문헌의 일에 나와 있고
또 우리가 이런 걸 좀 알 수 있는 방법도
또 이런 게 있다.
뭐 그래가지고 접근하는데
기본적으로 하여튼 관찰에서 나온 지혜예요.
그거를 쓰는 게 불교정신치료고
그래서 지혜치료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세 번째 질문은요.
세상에 많은 종교나 철학
거기서 말하는 지혜 또는 다른 지혜들의 지혜와
지금 방금 설명해 주신
불교정신치료에서의 지혜는
좀 어떤 관계일까요?
근데 불교정신치료라는 건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
또 정신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괴로움이 있는 사람을 치료하는 데
지혜를 이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종교에서도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와
일치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또 보면.
왜 그러냐면 어떤 게 일치하냐면
다른 사람이 우리한테 영향을 주고
또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세상은 밝아진다.
하는 거는 불교든지 뭐든지
똑같은 거 아니에요.
그다음에 또 우리 마음이
어떤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있으면 힘들다.
그래서 그걸 정화해야 된다.
하는 거는 다른 종교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어떤
꼭 불교만의 지혜
불교의 지혜만 다른 종교에도 있는 지혜다.
그리고 치료받는 사람이 다른 종교 베이스다.
하면 거기에서 확실한 거 있잖아요.
그걸 또 이용할 수도 있는 거죠.
이용할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좀 이래 생각해요.
이 세상의 모든 종교, 사상, 철학 또는 무소
이런 것들이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에요.
세상을 설명하고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인데
내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초기 불교, 특히 초기 불교죠.
초기 불교의 어떤 괴로움의 해결이
어떤 지혜의 바탕을 뒀지 않나.
진리의 바탕을 뒀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죠.
어쨌든 내 입장에 볼 때는
올바른 건 다 불교에요.
그리고 올바른 것들은 다 우리가 배우고 습득해서
우리 거로 해서 우리도 좋고 이 사회도 좋고
다른 사람도 좋은데 써야 돼요.
그런 점에서 우리 서로 만날 수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 불교정신치료의 기둥이랄까
그래서 나, 세상, 지혜로 이어지는
이런 원리들로 불교정신치료가 구성되어 있는데
이 불교정신치료를 한마디로
지혜의 의미를 담아서 정의를 내린다면
어떻게 하실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많은 것들을 보잖아요.
우리 자신도 보고
그럴 때 정확하게 보는 거예요.
정확하게 그것도 순간순간 정확하게 봐서
순간순간 우리한테 이익되게 하고
또 남도 이익되게 하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익되게 해서
내가 좀 편안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것을 하도록 도와주는 게 불교정신치료다.
내가 세운 불교정신치료다.
그러니까 정확히 보고
정확히 보는 거죠.
그다음에 이익되게 하고
네, 내한테 손해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좀 편안함을 갖는 것이
그렇죠. 남도 좋게 하고
알겠습니다. 여기까지요.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