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을 살려낸 고려 최고의 충신, 고려거란전쟁에서 지채문은 어떤 활약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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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현종을 살려낸, 고려 최고의 충신 지채문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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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서 도포입니다 외세의
침입이 찾았던 고려 시대에는 여러
영웅 명장 충신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고려 초기 고려 최초의
침입이 있던 고려 거한 전쟁에서는
특히 2차 때 절체 절명의 위기였고
그만큼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노력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양교가 있겠죠 하지만 양규
외에도 2차 거한 침입 당시 공을
세웠던 이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이번 영상에서는 어쩌면 생소하실
지체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고려 최고의 명군으로 8대왕
현종을 꼽는데 만약 지채문이 없었으면
현종은 일치감치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110년 11월
거란족 요나라의 황제요 성종이 직접
친정에 나서 무려 40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습니다 제 2차
고려 거연 전쟁이었죠 실제 40만
아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황제의
친정이 있으니 병력 수가 적지는
않았을 겁니다 거란군은 양기가 있던
흥화진 함락시키지 못하고 통주 강조의
30만 대구는 물리쳤지만 정작 통주
성도 함락하지 못 못하고 고려와의
국경지대 강동육주 중 곽주은 함락한
채 나머지 다 패싱하고 남아 합니다
그리고 고려 제 2의 수도였던 서경도
함락하지 못하고 무작정 수도 개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수도 집공은
전형적으로 거란군이 발해를 멸망시킬
때 썼던 전술이 그때를 맹신하고
똑같은 전술을 사용했던 겁니다 고려
조정은 다수가 항복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었습니다 다만 강감찬 등의
일부 주전파 상황이 마냥 불리하지
않으며 현종이 잠깐 남쪽으로 피난해
가서 시간만 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죠 현종은 강감창 등
주전파의 의견에 따라 수도 개경을
나와 지금의 전남 나주까지 피난기를
떠났습니다 나주까지 피난을 간 건 그
사이 어느 한 군대에서도 정착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아닌게 아니라 현종이
나주까지 가는 피난길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험난했습니다 타령하는
병사는 물론이거니와 현종을 호종하여
일수였죠 세기도 힘들만큼 곳곳에서
산적과 도적대장정
도적대장정 기 힘들죠 고려는 여전히
지방 분권적 사회였습니다 중앙정부의
집권화가 완벽하지 않았던 체제에
국왕은 궁궐에 있을 때나 절대적
존재이지 다급하게 궁궐로 나온 구강이
다른 지역에서도 환영 받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죠 경기도 양주에서 아전
정도가 현종에게 왕께서는 나의 이름과
얼굴을 아시겠습니까 라면 모욕을
보이고 또 난동을 부리기도 하였죠
현종은요 나라에서 도망치는 동시에
국내 지방의 호족과 유지에게 도망쳐야
하는 눈물겨운 피난길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적이라고
기록된 자에 공격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공주에 이르렀을 때 공주의
호족이 있던 김은부 극진이 현종을
모셨습니다 성상께서 산과 물을 지나고
서리와 눈을 무릅 쓰시며 이렇게
지극한 상황에 이르신 줄 어찌
생각하였 있습니까라며 현종은 물론
호종하여 잘 곳과 음식을 대접했고
이때의 감사함에 현종은 훗날 전쟁이
끝나고 김은부 새 딸과 모두 혼인하여
김은부 왕의 장인 어른으로 삼았습니다
새 딸이 원성 왕우 김씨 원혜 왕우
김씨 원평왕후 김씨로 마언니 원성
왕우 김씨 사이에서는 9대왕 덕종
10대왕 정종을 낳았고 원의 왕우
김씨 사이에서는 11대왕 문종을
나왔으니 김은부 무려 새 궁강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영광을 누렸죠
그러나 공주에서의 대접이 끝이었습니다
현종이 전주에 이르렀을 땐 전주
호족이 주상께서는 행차하심 마소서
아며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현종은 겨우겨우 나주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현종의 피난길에서 모두가
현종 곁에 떠날 때 끝까지 옆에 있어
준 신화가 바로 지채문이었습니다
지채문 현종을 습격한 괴한으로부터
목숨 걸고 현종을 지켜 주었으며 싫은
소리 없이 현종의 손과 발이 되어
개경에서 나주까지 언제나 현종을
호종하여 지채문 황해도 봉산 출신으로
강조의 정변으로 현종이 지휘했을 때
지채문 무관직 중 하나인 중랑장
임명되었습니다 이차 고려 거라 전쟁이
터지고 거란군이 서경에 이르렀을 때
지채문이 군대를 이끌고 서경을
구원하라 임무를 맞습니다 지채문이
군사를 이끌고 서경에 왔을 땐 이미
서경 내에서 거란군의 항복할 수순을
밟고 있었습니다 지체는 거한의 황제요
성종에게 항복하려 던 표문을 중간에
가로 친뒤 불태워 없애 버렸고 군사를
석경의 남쪽 문에 주둔시켜 전투
준비에 돌입합니다 때마침 동북면에서
탁사정 이끄는 군대가 석영으로 구하로
도착했습니다 탁사정 지체의 지휘하에
고령군은 공격해 오는 거란군을
물리치며 싸움에 연전 연승하 있습니다
그러나 지체는 거란군의 반격에 패퇴해
버렸고 거란군은 그대로 서경을 포위해
버렸습니다 겁을 이기지 못한 탁사장
야밤 중에 서경을 탈출해 혼자
도주하였고 거란군의 반격에 패퇴한
지체 는 수도 개경으로 복귀하였습니다
서경에서 강민첨 등
한정파밍 호위하기로 합니다 이때부터
영상 앞에 말씀드린 현종의 고생길이
시작하는데요 파주에 이르렀을 때
무장한 군조 경영이 파주 부근의
사람들과 함께 활을 겨누며 현종의
일행을 습격했습니다 지채문이 말을
타고 활로 그들을 내쫓았다 다시
그들의 뛰쳐 나와 길을 막자 지채문이
다시 활을 쏘아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경기도 양주에 양 주의 어떤 향리가
사람들을 무장시켜 한밤 중에 왕의
처소를 습격했습니다 이때 신화들과
환관 궁녀들이 모두 현존과 왕실 곁을
지키지 않고 도망가 버리거나
숨어버립니다 극소수의 신들만이 현종
곁에 있었고 지채문 남은 병사들로
현종을 지키고 있자 적도의 감히
접근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새벽이
됐을 때 지체는 두 왕 호들을 먼저
북문으로 도망치게 해주고 일부
신하들과 함께 현중을 지키면서 현종도
피신 시켰습니다 지체는 진상 파악을
위해 적도를 추격해 보겠다고 하자
현종은 지채문 도망가는 줄 알고 못
보낸다고 했죠 이러자 지채문 신이
만약 주상을 배반하여 언행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필시 저를 죽일
것입니다고 하고 적도을 저는
체포했습니다 그런데 미리 피신시켜
두었던 두 왕후를 찾지 못하자
지채문이 나가서 찾아 왔죠 이후로
내려가는 내내 일부 신하들은 왕후들의
안전을 위해 고향으로 보내는게
어떻겠냐고 하자 지체는 왕후들
떨어지는게 더 위험할 수 있다며
반대했습니다 왕 후두를 고향으로
보내자고 한 신하들은 결국 다
도망칩니다 타령하는 병사들 과
신하들이 너무 많자 지체는 현종에게
지금까지 남은 병사들에게 상을 내려
사기를 올리라고 제안해 현종은
병사들에게 관직을 하사해 주었죠
전주를 지나칠 때 전주 호족이 현종의
행렬이 전주로 들어오는 것을 막자
별수 없이 전주부근 장공 역에서
노숙하다시피 했고 이때 또 조용경
등이 난리를 피우자 지채문이 군사들을
집결시켜 현종을 호위해 주었습니다
지채문이 지키고 있다는 소식에 난리를
피운 적도 그도 지리멸 찢어졌어
현종은 나주에 겨우 도착해서 나주에
행궁에 머무르고 있는데 거란군이
나주까지 당도했다는 거짓된 정보가
퍼진 겁니다 놀란 현종이 또
도망치려고 하자 지채문 주상의 행차가
밤중에 나가면 백성들이 놀라 동요할
터이니 행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제가 염탐하고 뒤에 움직이시고 늦지
않습니다라며 현종을 심 시켜 주고는
알아보니 거짓된 정보였다 오히려
개경에 있던 거란군이 철수하였다
소식을 듣고는 현종도 개경으로
복귀하였습니다 복귀하는 길에 현종은
지채문게 짐이 피난을 떠나 먼길에서
낭패를 보고 있을 때 호종하여 오조이
뿔뿔이 도망가 버렸다 오직 지채문만이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말 고비 잡는 수고를 사양하지
않았고 끝내 송죽 럼 절개를 지켰다
그 빼어난 공군을 생각할 때 어찌
특별히 은급 내리지 않겠는가라며
관직과 많은 상을 하사했습니다 이후
계속 승진한 지채문 정 이은 벼슬까지
팠습니다 지채문 거라는 3차 치유까지
끝난 훨씬 이후에 사망하지만 3차
침입 당식 지채문 행적이 기록된 반은
없습니다 다만 나중에 현종의
아들이었던 9대왕 덕종 은고 상장군
좌복야 지채문 선왕께서 남쪽으로 파천
아셨을 때 홀로 충절을 온전히 지켜
으뜸가는 공훈을 세웠으니 이제 그
공훈을 조목별로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권장하나 아라는 조사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훗날 고려의 8대왕
현중은 지옥의 피할길 경험을 토대
삼아 지방 행정 구역 개혁을 완수해
고려의 중앙 집권화 완성시켰습니다
만약 지채문이 없었다면 현종도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모르고 지채문이 목숨
거고 현종을 끝까지 지켜내 준 덕에
현종은 완성 된 군주로 거듭날 수
있었죠 그럼 역사 돋보기 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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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