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방송) 제2강 조선을 묶고 있던 종의 멍에(왕정제도 1st) (알기쉬운 한국근현대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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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4.
우리은행 1005 -204- 476779 (예금주 :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역사전쟁)에 후원하실 분은 후원해 주세요. 다음 프로그램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기원" 입니다.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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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께서 내어주신 후원금으로 제작한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의 시작'은 7월 3일(월)부터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매주 월 저녁 8시에 방송 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해서 제작을 하다보니 제작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1주일에 한 편씩만 내보내고 있습니다.
대한역사문화원,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글로벌디펜스뉴스 홈페이지에서 지난 방송을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hiskeepers.or.kr/news/section.html?sec_no=100 [대한역사문화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 시작 과거영상 보러가기
http://www.k-cia.kr/news/section_list_all.html?sec_no=109 [인도태평양전략연구원] 이승만과 자유민주주의 시작 과거영상 보러가기
[음악]
대한민국의 근연 대사를 성경적
세계관으로 알리고 전하는 대한역사
문화원의 한국 근현대사 바로알기
특강입니다
자 이제 우리가 조선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정말 자유가 없었던 땅
특별히 조선 후기의 상황들이 어떤
삶이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는 조선왕조 500년이라는
말을 정말로 많이 하죠이 조선왕조
500년 중에 우리는 19세기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요
19세기는 정조대왕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18년이
되었을 때 조선의 22대 왕이었던
정조대왕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정조대왕이 사망하고 난 이후에 왕으로
던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왕들이
있습니다 그래서이 어린 왕이 지위하다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없는이 어린
왕을 앞에 세우고 뒤에서 일가
친척들이나 아니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의해서 세도 정치가 시작이
되는 거죠 정조대왕 이후에 순조로 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약 60년 동안
안동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조선의 19세기
중후반은 계속된 세도 정치로 나라가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세도정치의 영향으로
삼정이 문란해 있는데요이 정이라는
것은 세 가지 세금을 말하는 거죠
조선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이 아주
아주 무거운 세 가지 세금은 바로
전정 정
곡이었습니다 땅에 먹기는 세금 또 군
가는 대신에내는 세금 국민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달래기 위해서 곡식을
빌려주고 싼 값으로 다시 되갚을 수
있게 해주는 사실 어찌 보면 되게
좋은 제도 같아 보이지만 이것들이
세도 정치에 의해서 완전히 퇴색되면서
오히려 백성들에게 무거운 집만
지어주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했던 거죠
예를 들면 전전 같은 경우에 땅에다
먹기는 세금인데 옆집 사람들 죽거나
사라졌을 경우에 그 땅의 세금을 다른
사람이 지게하는 것 터이 없는 그리고
장부들 막 조작해 가지고 세금을 막
천정 부지로 올려 놓는다든지 그리고
군정은 한 살짜리 아이에게도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 할아버지에게 군정을
내라고 하는 그런 상황들 이런 상황들
속에서 많은 백성들은 스스로 노비가
되는가 하면 어 산으로 올라가서
화적이 되는 그런 상황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던 거죠 백성들의 삶은
점점점 어려워졌고 조선의 경제는
파탄의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던
겁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농민은 난이
계속해서 발생하게 되는데요 1811년
홍경래 난을 시작으로 해서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농민의 반란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 거죠 이것은
정치의
이 정치 상황 가운데에서 나만 아니면
된다라고 하는 아니란 태도가 바로
이런 상황들을 불러오게 됐다는
거죠이 흑계 땅 조선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흑계 땅 조선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아이
그림을 보니까 소 위에 큰 나무틀이
씌어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것을 우리가 멍라 부르죠이
멍라 것은 밭을 갈 나 아니면 물건을
싣고 갈 때 밭을 가는 기구나 또
마차 같은 것을 끌고 가는 힘을
지지해 주기 위해서 소나 말에 목에
거는 지지대를 말하는데요이 지지대의
무게는 뭐 적게는 20km 이상
아니면 40kg 넘는 것도 있다고
하죠 사실이 멍에 하나만지고 있는
것으로도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 같아요
어 이것은 짐승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조선시대의
백성들에게도이 종의 멍에가 매워져
있었다는 거죠 도대체 조선 백성들에게
씌워진 종의 멍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왕정 제도가 있을 거고
신분제도 또
우상숭배 음란과 여성 천대 질병과
가난 무지와 문맹 사실 이것보다도 더
많은 종애 멍에가 존재했을 거예요
지금이 시간에는 왕 제도의 멍가
도대체 백성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멍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은 왕이 주인인
나라였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죠
그래서 우리가 뭐 사극을 보거나
역사적인 영화를 보고 그럴 때 우리는
그다지 불편함이 없이 그 영화들을 볼
수 있어요 왜냐면 우리는 우리가
바로이 나라의 주인이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냥 옛날에는 저랬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사실 조선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만 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거죠 태조부터 시작해서 고종에
이르기까지 여명의 왕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이 태조부터 시작해서 고종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가
있는데요 그 공통점은 바로 성씨가
이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2조
500년 뭐 그렇게 이시 500년 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한마디로 말하면이 왕의 지위는
세습되는 왕이었다는 걸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어 아버지가
아들이었으면 아들이 당연히 왕이 되는
그런 구조였다는 거예요 능력 있는
사람이 통치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버지가 왕이었고 때문에 아들도
손자도 그다음 때도 왕이 됐었다는
그리고이 왕들의 마음속에는이 나라가
절대로 백성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나
자신 왕을 위한 나라라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이 왕이 선하고 훌륭한 생각을
가진 왕이라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러나 간혹 정말 악한 왕들이 많이
많이 등장하잖아요 그런 왕들이
세워졌다고 생각하면 그 고통은
고스라니 백성의 시 된다는게 문제였던
거죠 1864년 1월에 어 철종이
사망을 하게 되고 대원군과 조대비의
계략으로 흥선 대원군의 둘째 아들인이
명복이 철종의 양자로 입적 왕으로
추대되고 되죠 바로 그가 고종이
왕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그니까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일대 황제로
주의하게 되는이 고정은 11살의
나이에 왕위의 직위를 하게 되는데요
처음부터 그가 정치를 한 것은
아니었고 그 당시에 약 10년 동안은
아버지였던 흥선 대원군이 그 당시에
조선에 흐르고 있던 여러 가지 부패한
상황들을 개혁하면서 10년을 대리
통치하는 기간을 가지게 되죠 세국
정책이나 기독교를 탄압하는 것 등에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던
흥선대원군이 사실 그가 조선의 꿀이
깊은 여러 가지 폐습을 개선해 나간
것은 사실이었어요 아버지의 그런 점은
좀 닮았으면 좋았을 뻔 했는데 고종은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고종은
1873년 11월 4일에 친정을
선언하게 되죠 아버지를 밀어내고 내가
진짜 왕의 지위에 오르겠다 라고
하면서 내가 친정을 선언한다라고 하며
드디어 왕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사람의 속마음에는
그죠 내가 제대로 된 정치를 해
보겠다라는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할
거야라는 마음들이 훨씬 더 컸던 거
같아요 통치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에 따라서
많은 무게의 짐을 짊어져야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삶이 왕의 삶이라고
착각했던 것이 바로 고정이라는
왕이었습니다 고종에 대한 평가는 이런
것들이 있는데요 군사와 국방 정세에
무능한 왕이었어요 그래서 흥선
대원군이 열심히 국방력을 강화했던
것을 다 허물어 버리는 그런 왕이
되어 버렸죠 그리고 국가의 안위보다
정권의 안위가 훨씬 더 우선이었어요
나라가 어찌 되던 말던 나만 편안하면
돼라는 그런 생각을 고정이라는 왕이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또 경제 무능
어 정말로이 경제적으로 어떻게이
나라를 잘 먹고 잘 살게 할까 그런
거엔 관심도 없었고 사치가
어마어마했죠 그래서 그 사치를 메꾸기
위해서 관직을 팔아먹는 왕이 바로
고정이었음 있던 민씨의 일가 친척들을
등용하면 정말이 민시 세력에 의해서
나라를 파탄으로 끌고 갔던 왕 결국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했던 왕 왕은
부자였는데 나라는 가난한 구조 그런
구조가 바로 고종이 만들어낸 조선
말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을 망국으로
이끌어갔던이 고종 그런데 참으로
놀랍게도 지금 대한민국 안에는이
고종을 향한 또 민비를 향한 이상한
판타지가 있는 거 같아요 2000년대
초반부터 명성황후라는 뮤지컬이 막
시현되고 또 몇 년 전에 방영했던
미스터 선샤인이 하는이 드라마에서
보면 뭐 민비 얘기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고정에 대해서 어 정말 나라를
엄청나게 걱정하는 임금처럼 뭔가
의협심이 있는 그런 임금처럼 묘사되고
있죠이 명성우 이런 드라마들에서
이들을 보는 관점은 조선을 위해서
목숨을 받친 왕비 또 그리고 운의
개혁군주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라의 뺏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상황들이이 드라마 속이나
영화속 뮤지컬에서 엄청나게 많이
퍼트려 있죠 명성왕후는 드라마로도
나왔었는데 내가 조선의 모다라 하면서
작렬이 죽어가는 그런 장면들 근데
사실 그게 진실이었어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정과 민비는 나라를
망하게 만들었던 주범들이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왜 이런 거짓말들이
떠돌고 있을까요 이유가 무엇이냐면
대한민국의 정당성 대한민국의 존엄성을
훼손해서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자들의 거짓말과 선전
선동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코미디 같은
현실이 바로 이런 드라마들 나타나게
되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하면서 역사를
바로 잡아 나가야겠습니다
고정과 민비는 사치가 엄청나게
심했어요 그래서 그 사치를 배우려고
매관 매직을 했고 그러면서 민씨
일과들을 막 등용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민씨의 세력이 국가 관리의 70%
차지할 정도로 민씨의 천국이 되었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원성이 자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정은 그 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죠 저 민시 때문에 백성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왕은 귀를 막고 있었어요 한
예로 신문고를 치면서 지금 우리의
이렇게 힘든 상황을 봐달라고 하는
그런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고 고종이 한 대답은 궁궐에 경비를
더 강화하라라는 말을 했다고도 합니다
이게 바로 종이었고
비였습니다 몇천 황현의 글을 보면
왕과 왕비의 사치 또 매관 매직이
얼마나 심했었는데 잘 보여 주는
대목이 있는데요
1874년 세자가 탄생한 이후 궁중
기도와 제사가 절제함이 없어 8도
명상지도 제사를 올렸다 세자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하게 구판을
벌리고 제사를 지내면서 산이란 산 다
돌아다니면서 돈을 낭비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고정도 마음 로
놀이와 잔치를 들겨 참석자들에게 상을
줄 경비가 모자랐다 얼마나 잔치를
많이 했으면 어 사람들한테 나눠줄
음식의 경비가 모자랄 정도로 모든
재정이 바닥 나가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죠 왕과 왕비가 하루에 천금을
소모하니 왕실 돈만으로는 지탱되지
않아서 호조와 선해 공금을 공공연히
가져다 썼다 완전히 지금으로 말하면
당장 잡혀가고 탄핵될 어 까이 있죠
1년도 안 되어서 대원군이 10년
동안 쌓아둔 저축이가 동이났다
대원군은 사실이 저축 미를 잘 모아
가지고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이것들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했었어요 그런데 고종이
즉위하고 1년도 되지
않아서 모든 모아두었던 저축이가 다
동인 날 지경으로 다 돈을 써
버렸다는 거죠 그래서 그것을 메꾸려고
뭘 했냐 관직을 팔고 과거 합격증을
파는 매관 매과 단이 발생하게
됐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뒤어서 민 시들이 집권한 뒤로 나라가
완전히 망해 같다라고 지금 말하고
있죠 그래서 매달 지급해야 할 병사의
급료를 걸핏하면 빼먹는지가 벌써 몇
회째 이어져 원망과 욕설이 자자했다
자 지금이 마지막 락에서 보고 있는
병사들의 급료를 걸핏 하며 걸핏하면
빼먹는 바람에 일어났던 사건이 바로
이모 군란이라고 하는 사건입니다 어
군대가 난을 일으킨 거예요이 당시에
고종은 신식 군대와 구식 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신식 군대는 군고
수비하기 위해서 그냥 고종의 친의
부대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고종의 친의
부대에게 새로운 뭐 무기 새로운 옷
뭐 여러 가지 뭐 월급도 제때제때
주고 그랬지만 어 원래부터 있던
국방을 지키던이 90 군대에게는
제대로 된 무기도 지급하지 않을
뿐더러 월급도 수개월째 밀려 가지고이
군인들의 불만이 막 끌어 오르고 있는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 일어난이 난이
이모 군란이라는 난이 있어요 사실이
이모 군란 평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렇게 성난 군사들에게
제대로된 월급을 지급해 주면
그만이었던 거죠 그러나 고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청나라 나라한테 도움을
요청해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서이
모란을 일으킨 자신의 백성들을 죽이게
했던 거죠 이게 어떻게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으로서의
역할이겠죠
성경에서도 의 직분이 뭐냐면 바로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 백성들을
지키는게 왕의 직분이 걸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거든요 그런데
고정이라는 사람은 그런 직분을 전혀
수행하지 못한 아보 같은 왕이었다고
밖에 표현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때 약 3천명의 청나라 군대가
진입을 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조선은
더욱더 청나라의 속국이 되어 있는
상태가
되었어요 청나라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조선 땅을 누비면서 왕 행세를 하고
어 계속해서 조선의 백성들을 못 살게
구는 그런 상황들이 되어 버리게 된
거죠 이런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일으켰던 난이 바로 갑신
정변이 여기에 보이는 박용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홍영식 같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일으켰던 난이 바로
갑신정변이 였는데요이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노론의
엘리트들이 이들은 더 이상은이 중국의
속박 속에서 살 수 없다고 느꼈고
왕에게 제안을 하죠 민시 일가와 민시
세력들이 지금이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
왕이시여 제발 우리와 함께 저들을
몰아내고 정말이 나라가 온전한 나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힘을 보태
주십시오 보정이 뭐라고 했을까요 안
된다고 했을까요 아니에요 그래 내가
자네들의 뜻을 따라 주겠네라고 이제
말을 했던 거죠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이거였어요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하자
부패 정권을 타도하자 그런데 이게 좀
잘못됐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하자
그래서 민시 일과들을 완전히 숙청하고
궁궐 전체가 피바다가 되는 그런
사건들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물론
민비는 도망을 치게 되죠 왕들을 본
고종은 너무 겁을 먹고 어떻게 하게
되냐 바로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이게
되는 거죠 고종의 배신으로 청나라
군대가 들어오게 되고이 갑신 정변은
3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데이 갑신정변을 도왔던 사람들이
누구였냐는 바로
일본이었다이 청나라와 일본이 작은
충돌을 할 수밖에 없게 됐죠 어이
갑신정변이 끝나고 난 이후에 일본과
청나라는 조약을 하나 맺게 되는데요
그 조약의 이름이 바로 텐진
조약이었다 조약의 주요 내용 중에
하나가 바로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무슨 이유로든지 들어오게 되면 일본도
들어올 거야라고 하는 거였어요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잘 감안해서 정치를 잘해
나갔어야 되는데 고종은 그것을 잘하지
못했죠 결국이 텐진 조약으로
말미암아서 청일 전쟁에 빌미를
제공하게 됐던 거예요 알렌 선교사는
고종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말리를 다니고 상하 4천년 역사를
받지만 대한제국 황제와 같은 사람은
처음이다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 걸
보면 고정 가까이에서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렇게 최악의 사람은
처음이다 하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 일이 아닐 수
없죠 어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는가 했지만 결국 백성들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어요 탐관오리들의 문제가
너무나도 심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이
탐관오리들의 문제가 너무너무 심각해서
일어났던 난이 바로 동학 농민
란이었습니다 동학 밀란 어 사람들이
요즘에이 동학란 대해서 마치 동학을
무슨 혁명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다른 역사가 아니라 관 오리의 아주
못된 정치의 행각 때문에 일어났던
동학 밀란이 밀란을 해결하자면 방법은
아주 단순했어요 탐관 노리를 다내어
쫓으면 그만이었는데 고종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는 아주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데 청나라 군대를
불러서 백성들을 잡으라고 말한 거예요
그리고 그들을 향해서 수다라는 표현을
어 쓰고 있죠 그래서 라 군대가
들어오게 되죠 조선 땅으로 그런데
아까 조금 전에 우리가 텐진 조약
얘기를 했었잖아요 그 텐진 조약에
따르면 청나라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면
일본 군대도 조선에 들어온다 일본
군대 역시도 조선에 들어와서 일어난
전쟁 바로 이것이 청일
전쟁이었죠이 청해 전쟁에 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고정이다 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텐진 조약에서 청나라
군대가 조선땅에 들어오는 순간 일본
군대도 들어온다고 하는 그런 조약의
사항들이 있었다면 국제 정세를 잘
살펴서 어떻게 우리가이 나을 진압할
것인지 스스로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고종은 그러지 않았던 거죠 이게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보종의 실체였다 걸 우리가 기억했으면
[음악]
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