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로 당해버린 역대급 최악의 패전, 중국사 굴욕의 나라 송나라의 호수천 전투 중국전쟁사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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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수 도포입니다 중국
전쟁사 대표적인 전투를 소개해 드리는
중국 전쟁사 시리즈 7부 있니다 이번
역사에서 다룰 전투는 송나라의
호수천국 10이 약한 것으로 유명했던
송나라 이런 송나라를 괴롭혔던 정보
광주들은 거란족의 요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몽골족의 원나라가 있죠 한
국가가 더 있습니다 바로 탕구트 족의
서하라 국가인데요 이번 영상에서 다를
호수천국
우선 송나라의 군사력과 국방력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이민족이 침략을
받은 중국 왕조가 굉장히 많은데 대체
송나라는 왜 약하다고 하는 걸까요
송나라는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군사력과 국방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나라는 절도사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절도사 특정 지방을
방위하는 군 사령관을 말합니다 중국은
워낙 땅덩어리가 넓다 보니 특정
지방의 군 사령관을 임명하면
일반적으로 중앙정부의 귀속 되기를
꺼려하는 군벌로 나아가는 경향이
큽니다 당나라 말기 군벌 된 절도사의
난립하여 당나라를 지리면 찢어 놓았고
결국 절도사의 난으로 당나라가
멸망했을뿐 아니라 5대 19국
시대라는 분열 시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이 5대 국을 통일한 국가가
송나라 있는데 송나라를 건국한 송태조
조광윤 절도사 출신이었습니다
송나라도자기 버리는 그런 국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절도사 제도로 손을
봐야만 했죠 송태조 조광윤은 절도사의
군사권 행정권을 철저하게 분리시켜서
절도사 관직도 명칭만 남아 있지 절대
군벌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였죠
송태조 조광윤은 외부 이민족의
위협보다 내부 군부 세력의 위협을 더
크게 여기고 군대의 대부분을 수도
방어와 황제의 직속 부대 근위 부대인
금군의 몰빵하고 지방군의
축소시켰습니다 절도사의 힘을 전부 빼
버리긴 했지만 국가의 군사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었다는 부작용이 있었죠
황제 거는 강화되지만 국방력은 볼품
없어지게 된 겁니다 런의 송나라 초기
북방 거란족의요 나라에게 번 그렇게
털렸죠 송나라를 털었던 건 비단
북방에 거란족이 아니라 서쪽에 탄구
투 족도
있었고요 탕구트 족은 티베트 계열에
한 분파로 오느 날의 간수성 칭하이
성일 때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탕구트
족은 그들 스스로 미냐 혹은 미약이
아고 불렀다고 하며 원숭이를 상했다고
합니다 탕구트 족의 시조격인 사람이
탁발 사공 있니다 닭나라 말기 탁발
사공이 탕구 투족을 데리고 당나라에서
벌어졌던 황소의난 일부 세력을
진압하는데 공을 왔는데이 공을
인정받아 탁발 사공은 당나라
황실로부터 황족의 성씨인 이성을
하사받아 탁발 사공은 이공이 됩니다
그 자손들도 대대로이 시성을 쓰다가
당나라가 거의 마비 지경에 이르렀던
말기 그리고 중국의 세 번째 분열
시대인대 19국 시대 틈을 타 간수성
칭하 성일 때에 완전하게 터전을
잡았습니다 1038년 그의 후손이었다
이원호가 현재의 닝샤 회족 자치구
인천시인구 수도로 삼고 스스로 상제를
칭했습니다 국호는 하였는데 중국사에
워낙 한나라가 많다 보니 탄구 투족
이원호가 수립한 한나라를 서하라 구분
서하의 건립은 당대 중원의 새로운
주인이 된 송나라에 대단히 위협적일
수밖에
[음악]
없었습니다 송나라는 탕구트 족이
이원호가 서하의 황제를 칭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두 나라 사이는
냉랭해진 그리고 서하가 송나라의
국경지대를 공격하며 소규모 국지전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는데요 서하를 손볼
필요 가 있다고 여긴 송나라는
101년 서하 토벌에 나섭니다 당시
송나라의 황제는 4대 황제 송인종 송
인종은 한기와 범중엄게 두 갈래에서
서화를 공격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한기는
송 인종에게 이전부터 서화를 토벌
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강경파이기도 했습니다 범중 검도 서하
토벌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너무
섣부르게 나서지 말고 충분한 준비
기간을 통해 완벽한 작전을 수립하고
전투 장비들로 완전하게 갖추어지고
나서 공격하자는 쪽이었습니다 범주
검을 제한 이 처음에는 논이 되나
싶더니 이미 송 인종과 송나라 조정은
하루빨리 서화를 토벌하러 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었죠 전투
준비 기간을 충분히 갖는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에게도 시간을 주는
것이고 행위나 준비 중에 국경지대에서
서화의 공격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면
모든 것들이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탕구트
족의 황제 이원호는 10만 대군을
모아놓고 송나라와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원호는 닝샤 회족
자치구의 호수천국 근거지로 삼고
송나라 군이 발견되었다는 곳마다
병사들을 선발 쪽으로 보내 송나라
군을 괴롭혔어 서하의 연속적인 공격을
받으며 송나라 군도 서하의 본대가
호수천국 있다는 정보를 파악합니다
송나라의 한계는 임복 장군에게 1천의
병력을 주고 호수천국 격파하라
지시합니다 한기는 인복 정군에게
서하구 규모가 크니 전면전을 치르기
보다는 천천히 진군하고 산세를 이용해
매복 전수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인복 전구는 호수 촌으로
진격하면서 가는 길에 발 쪽으로
존재하던 서하의 군대를 발견 즉시
격파하며 출발 3일 만에 호수천국
하지만 송나라의 승리는 호수촌
도착하기까지였습니다이 3일간 송나라
군에게 서하구이 격파당한 건 전부
서하의 유인 책이었죠 서하구 호수천국
3에 매복 중이었는데 송나라 그이
호수천국 때 거대한 상자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수백마리의
비둘기 때들이 날아가는데 그
비둘기들에게 달려 있어서이 비둘기
때들이 하늘로 날아가자 피리 소리가
허공을 채웠다 라고 합니다 박사에
매복 중이던 서하구 피릿 소리가 난
곳으로 서서히 이동하며 송나라 군은
어느새 이미 서하구게 포위되어
있었습니다 포위되어 있음을 인지했을
때는 너무 늦어버린 때였습니다 목은
이대로 도주하면 오히려 후미를 공격
당에 더 큰 피해가 날 것을 우려해
차라리 싸우면서 포위를 풀 예정이었죠
서하구 우선 기병대를 먼저 투입해
송나라 군의 전혀를 흐트려 놓았습니다
송나라의 인복 장군은 반드시 산으로
올라가 박사의 고지대를 선점하라
지시했지만 이미 박사에 서군이 매복을
하고 있었고 박산로 올라가던 송나라
군은 서군의 매복에 기습을 당하거나
절벽에 떨어져 엄청난 피해를 입었죠
이미 전세가 뒤바꿀 수 없을 정도로
기울었고 송나라 군은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할 뿐이었습니다 송나라의
장군들은 인복에 철수해 목숨이라도
부지하고 했으나 인복은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겠다며 끝까지 전선에서
싸우다가 화살 세례를 받고 창에 찔려
가면서 전사했습니다 인복의 송나라
군이 포위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기에 빠르게 기병 지원병을
투입시켰다이 기병대가 도착했을 때는
상황이 거의 다 끝나 있었으며이
기병대조차도 서군의 반격을
받아버렸습니다 임복 정군이 처음에
데려왔던 1천의 군사 거의 대부분이
전멸하였다 범중엄이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호수천국 지원을 오자 서군은
군대를 물렸어이 전투가
호수천국 유능한 송나라 장수들 태반이
싸우다 전사하기 해서 호수촌 전투의
패배는 송나라에 타격이 매우
컸습니다 호수촌 전투 이후 서하의
황제 이원호는 송나라 수도까지
진격하다 송나라를 겁박했고 실제로
여러 번 공격을 감행했지만
범중엄이 송서하 국경지대를 우주
방호하고 있는 바람에이 송나라 내륙
진출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2044년 두 국가는 경량의 화의를
체결해 송나라는 서하의 국가를
정식적인 국가로 인정하고 매년 막대한
양의 세를 바치기로 합니다 비록
굴욕적인 강화를 체결했지만
호수천국 침공을 막은 건
범중엄이었습니다 범중엄 50이 넘은
나이에 송서하 국경지대를 지키며
백성들에게 큰 신망을 받습니다 그저
인기만 많을뿐만 아니라이 범중엄 여러
가지 군사 훈련 및 군제 개편을
통해서 범중엄이이 지역이 없어도
알아서 서하의 침공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고 갑니다 범중엄
선비란 마땅히 천하의 근심을 나보다
앞에 둬야 하고 그 이후에 내 근심을
해야 하며 천하의 기쁨을 앞에다 두고
그다음 내 기쁨을 뒤에 둬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대표 사대 보이면서
개형 론자 있습니다 송서아
국경지대에서 나름 국방의 시스템을
마련했던 범중엄 이후 송나라 조정에
제상이 되어 이제는 송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군사력 강화 농업 지능
부정부패 척결 등 가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 조장의
대세 여론은 개혁을 지양하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팽배했고 범중엄 개혁은
진행되는 둥 많는 둥 흐지부지
끝나버립니다 나중엔 범중엄 뜻을
이어받은 왕한석이 군사력 강화를
포함한 신법 개혁 을 주장하지만 역시
보수측 반발에 막혀 버립니다 만약
범중엄 왕안석의 개혁이 추진되어
송나라가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면
나중에 여진족의 금 나라에게 수도를
뺏기고 난방으로 도주해야 했던 그런
굴욕은 안 당할 수 있었겠죠 본디
개혁은 저항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개혁은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그
어떤 정책이나 그 어떤 제도나 그
어떤 습관도 변화가 없으면 시간이
흘러 취지의 본질을 잃고 고이기
마련이죠 다만 그 익숙함에 대한 관성
때문에 그 변화를 추진하거나
받아들이는게 쉬운 일만은 아니죠
하지만 그럴수록 끊임없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법이 중요하다는 걸 송나라의
역사가 말해 주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럼 역사 돋보이 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