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영토권, 대마도의 영토권 저자 신용우 | 문화영토론 10강 | 동북공정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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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5. 15. #우리역사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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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바로알기#신용우#영토론#문화영토론#영토문화론#만주#영토권#동북공정#고조선#부여#진국#고구려
안녕하십니까 신용 문화형 토론 오늘
열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고구려 그
건공 연도를 악용해서 우리가 그
기원전 3년으로 삭감된 왜서 삭감된
거는 제가 초기에 말씀을 드렸어요 세
번째 시간인가네 번째 시간이 왜냐면
신라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하다
보니까 신라 우선주의에 사로잡혀서
신라를 기원전 57년 고를 기전
37년 그리고 백 기전 이렇게 그 거
연도를 삭감했다 그게 이제 그
증거들은 뭐 나중에 말씀드리겠다 그때
그랬었는데 그 기원전 37년이라는 걸
이용해서 현동은 기원전 10년에
생겼으니까요 그러니까 108년 기원전
10년에 한상훈이 쳐들어와서 견전
이제 1년 있다가 현동을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고구려에서
고구려가 발전한 것이니까 고구려
역사는 중 역사고 그 고구려가
생성되던 모든 그 땅은 문화와 사가의
주인이 영토의 주인이니까 우리
중국이다라는게 바로 동정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문제는 자기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자기들이 기록한
역사서에 고구려가 있어서 고구려 현이
생겼다는 실증 기록들이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씀이냐면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기원전 37년에 생겼다는
고구려는 그게 아니고 이미 그 전부터
있었던 것을 삼국사기 편찬자 인
김부식이 신라 우선주의에 사로잡혀서
역사를 삭감한 거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어요 물론 이건 저 혼자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많은 학자들이 그
얘기를 해요 단지 신체 손님을
비롯해서 많은 학자들이 그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후한서 동의 열전
고구려에 보면 무제는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어서
현대에 속하게 하였다고 돼 있습니다
즉 무죄 멸 조선이 고구려 위현 사속
현도 이렇게 돼 있어
근데 여기서이 고구려 위현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었다
해요 그리고 송나라 문신 서긍이
기록한 선화 봉사 고려도 권일권 건국
책봉에 연원에 보면 한문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현으로 삼아
현도군 소속시켰다 한문제 멸 조선
이구려 위현 속원 도군 이렇게 돼
있어요 즉 고구려가 존재했으니
고구려를 현으로 만든
거죠 그럼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었다는
고구려를 한문제가 멸망시켰다는
말입니까 그거는 추구 문제예요 왜
이냐 아니냐는 나중에 얘기하더라도
이미 고구려가 있었다는 거는 여기서
증명해 준 거잖아요 그죠 고구려를
현으로 만들었다 그서 고구려라는 현을
만들었다 고구려라는 행정구역을
만들었다 고구려라는을 고구려 현을
새로 만들었다 고구려 현을 만들었다가
아니라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현을
만들었다 그랬어요 고구려를 현으로
속하게 했다 그러니까 이미 고구려
있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후한서 동의 열전
예에 소재 10원 5년에는 임금과
진본을 폐지하여 낙랑과 현도의
합병하였다 현도는 다시 고구려로
옮겼다 현도 복사 거구 려하고 돼
있어요
그러면 기원전 82년에 고구려는
존재했던 거예요 그렇죠 다시 고구려로
갔다 그랬잖아요 그 고구려라는게 저기
있는 거야 거기서 이렇게 왔다가 다시
간 거예요 그렇죠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로 만들었다면 고구려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러니까 멸망한게 아니야
어떻게 고구려가 멸망했다 다시
고구려로가 그럼 고구려 땅으로 가어
고구려 땅이라
그래야죠 말이 안 되는 거죠 기원전
107년 현도군 설립 당시에는
고구려는 이미 존재했고 현도군
고구려라는 이름을 차용한 고구려 현을
만들었을 뿐이라는게 이거 두 개에서
나와요 그렇죠 근데이 두 개 말고도
삼국 주의서 동일전공 so 후한서
동의 열전 동옥저 보면 뭐라고 돼
있냐면이 두 군데 다 있는 거예요
함함 산국제 돼 있고 후한서에 돼
있고 무제 2년에 조선을 정벌하여
위만의 손자 우거 죽이고 유만 조선이
멸망했다 그랬잖아요 번 조선이 치
우거 죽이고 저기 우거 유만 주선의
거예요 그 지역을 분할하여 사군을
설치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한사군이 설
자리도 어디예요
위만조선
자리예요 평양 그런 데가 아니라는
거예요 튼 어쨌든간에 자 그러 아
조금 있다 그 한 사고기 나중에
하시고 우선 옥교 이으로 현도군
삼았다 뒤에 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에 서북 쪽으로 옮겼다 그랬어요
그 맥은 누구예요
동이족 또는 맥족이라고 부는 우리 한
민족이에요 고구려왕 부여를 말하는 예
그렇죠 이거는 고고랑 부요 뭐
한반도에 있는 진국이 거기까지 가서
이렇게 도와줬다 그건 조금 오버하고
이맥 이러면 고구려나 부요를 말하는
거거든요 맥의 침략을 받아 군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다 그랬어요
9년에 조선을 정보서 만선 무고를
주고 이렇게 했는데 기원년 75년에
임매 개칭을 받아서을 고구려의 사복
쪽으로 그 고구려가 있다는 얘기 아니
거기 그렇죠 고구려가 없는데 어떻게
고구려 사북 쪽으로 옮겨 지금의
이름바 현도의 고부라는 곳이 바로
그것이다 그럼 어떻게 고가 없는데
서북쪽으로 옮겨요 그까 기원전
17년에도 이미 있었고 기원전
75년에까지도 있고 또 기원전
82년에 있고 요전에 기원전 82년에
있었다 그랬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기원전 년에도 있고 82년에도 있고
75년도 있으면 이거는 고를
멸망시킨게 아니라 고구려라는 이름을
차용해서 고구려 현을 만들었다는 거죠
그죠
그리고 현동은 밖에 고구려가 있었다
그거 어떻게 증명이 돼요 고구려
서북쪽으로 옮겼다 다시 고구려로
갔다이 고구려 고구려가 현동 안에
있는 거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그죠
기원전 75년에 고구려가 존재했으니
현동원 살립 당시 고구려는 고구려를
멸망하고 세운게 아니라 고구려라는
이름을 차용한 것을 증명하는 거예요
고인을 이맥 이렇게 부른 건 이미
제가 말씀을 드렸고 또 후소 동
고구려의 고구려는 일명 맥이라고
부른다 그랬는데 그 책 이름이 동의
전이야 동이족 이맥 그 고구려 또는
부유를 말하는 거잖아요
그죠 결국
현도는 고구려의 치유를 받아서 고구려
서북쪽으로 이동한 거예요 그러니까
고구려가 고구려에서 시작해서 번창했음
한족 중국 역사라는 동북공정은 기부터
모순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도려
건국대가 기원전 37년이 아니라
기원전 107년 이전이라는 것만
증명해낼 수 있다면 동북공정은 아무
의미도 없는 거예요 중국 변사 연구
홈페이지에 보면 바로 동북공정의
기저의 1번이 고구려는 고구려 현에서
출발해서 성장한 나라임 중국
역사다 그리고 3번인가 4번 제가
정확히 번호까지 기억 안 나는데 그게
바로 고구가 망하고 나서 그 민족은
번일 거예요 그 민족은 전부 한족에
흡수되었다라고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바로 그 1번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러면 동북공정의 기전은 처음부터
무너져서 동북공정은 의미를 잃어버리는
거라는 거예요 이래서 고구려 건국
연도를 올바르게 만들 필요가 있는
거예요 고구려 공도를 올바르게 만들기
위해서 고구려 공연도 올바르게
정립되면 두 가지 문제가 저절로
해결돼요 첫째는 동의 기저가 붕괴되는
거예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구려가 현군의 고구려에서 시작되요
번창하다 패망한 후에는 그 유민이
한족에
동화되었다 것을 규명해 낼 수 있는
거예 그다음에는 한사군 영역을 통한
만주의 문화 주권자가 정의되는 거예요
기전 108년의 고려 영역에 따라서
한사군의 위치나 치가 서적이나 아니면
한반도 평양이나 결정되는 거죠 우리가
흔히 한반도 평양이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렇죠 조금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물론 나중에 다시 해게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좀금 마가도 이게
나왔잖아요 위만의 손자 우거 주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사군을 설치하였다
그러면 위만조선이 지금 평양에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러므로 한사군의 위치가 유아
서적이라는 거를 또 증명해 낼 수
있는 방법도 되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한족은 만주의 영토 문화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문화
주권자는 우리 한민족 토이고 우리
한민족이 문화 주권자이자 영토는
영토권을 우리 한민족의 거라는 영토
문화에 의한 문화영 토론인 통해서
만주의 영토 권자가 우리 한민족이라는
거를 증명해 낼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러면 반주에 중국 문화도
많은데 그거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문화 토론에는 반드시 영토화
론이 동반돼야 된다 완주에 지금
중국문화 많죠 당연히 중국이 지금
자기들이 강점하고 거기다 자기
문화들을 많이 갖다 심어 놨으니까
그러니까이 문화가 전래되어온 문화야
아니면 그 그 지역의 영토 문화를
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토
문화론 문화 주권자를 가지고 영토를
규명할
때는 시 문화영 토론의 영토 문화론이
동반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뭐 요즘에는 제가 뭐
엊그저께 어떤 사람한테 그 얘기를
들었는데 그 어떤 사람이 논문을
이렇게 써서 보냈는데 보니까 문화영
토론에서 어쩌 어쩌 썼는데 거기
영토문제에 제 그 눈문하러 들었기
때문에 보니까 절대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아 이거 문제가 있다라고
얘기를 했다라고 그래요 그 얘기를
제가 들었어요 왜 지금 말씀드린 대로
단 그냥 눈에 보이고 지금 눈에
보이고 지금 또 행해지고 이런 문화를
갖고 문화영 토론에서 영토권을
규명하려 그러면
그거는 전에 제가 말씀드렸죠 LA
한인 촌에서 우리 한민족의 문화가
성행하게 레가 우리 땅이다 뭐 이렇게
되는 거라니까요 큰일 나는
거예요 단순히 눈에 보이고 단순히
이런 문화는 얼마든지 전래된 문화일
수도 있어요 그니까이 문화가 영토
문화 아니냐 영토 문화의 문화
주권자가 그 영토의 영토 권자는 걸
밝혀내는게 문화영 토론이 그든 근데
그 영토 문화의 문화 주권자를
밝혀내는게 영토 문화론 이거든
그러니까 문화영 토론을 갖고 영토권을
규명하려면 반드시 영토 문화론 같이
동반해야 되는 거예요 지금 만주의
한족이 만주에 즉 한사군이 만주에
들어와서 살았냐 안 살았냐 이게 왜
중요하냐 바로 지금 제까지 제가
말씀드린 그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영문화 영향을 쳤느냐 안
쳤느냐 영토 문화는 뭐예요 영문은 그
영토와 호흡하는 고대부터 해서 정착
시대까지 농경 시대까지 그 영토의
영향을 끼쳤나 전래된게 아니라 거기서
자기들이 개척하고 자기들이 살면서
거기에 문화를
심었냐고 이게 되니까 만약에 한사군이
만주에 있었다거나 아니면 지금의 까지
있었다면 아 평양에 한사군이 있으면
당연히 만주는 뭐 저 주원이랑
연결돼야 한상훈이 있는 거니까 그거는
한족이 점령하고 있었겠죠 그러니깐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이게 그게 아니라 유아
서쪽이라 한사군이 그럼 걔들은 만주
아무런 영향도 못 끼치고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이 생활하던 우리 민족의
문화 우리민족의 그 영토 문화니까
영토 문화에 의해서 문화 주권자는
우리민족이 되는 거고 문화 가 우리
민족이니까 문화형 토론에 의해서 그
영토는 우리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단제 신초
선생님은 뭐라 하셨어요 고구려 연도가
기원전 190년 그 전으로 다 자간
이렇게 매 늦춰졌는데 그 늦춰진 거
때문에 우리는 고력 공대를 찾아야
된다라고 시작해서 남북의 많은
학자들이 고구려 공대가 신라보다
앞서야 물 했는데도 한국사기 김부식이
신라 우월성을 강조해서 고려를 역사를
삭감했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그 많은
분들이 단재 신체를 돼서 많은 분들이
약 200 여년을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내세운 이론이 첫째는 광계토
평환 호태 능비 광계토 능비 비문
기록이에요 광계토 대항이 추모에
17세 선으로 되어 있는데 삼국사기는
13세 혹은 12 이라고도 그래요
저도 12세 손이라는데 이제데 거는
시조를 넣냐 안 넣냐 차인데 그
12세 손으로 기록되 있다는 점에 그
문제점을 삼으시고 둘째는 6국
900년 소리예요 당나라 시어사 가안
충이 단 고종에게 고구려 비기의
고구려는 900년이 되지 못해서 80
대장에 망한다고 되어 있는데 고구려가
건한지 900년이 됐다 그래요 그리고
이거는
어사가 똑똑하 가운이 똑똑하다는게
아니라 제가 드리 말씀은 가운이 그런
왕한테 그런 보고 할 때는 고구려를
침략하는 중이니까 고구려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한 결과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거는 고구려 900년의
사실이 900년이 한지 900년이
되었다라는 보고 자체가 9년에
망한다는 거는 뭐 그렇다고 대거는 뭐
떠도는 말이라고 치더라도 고에 기니까
건한 900년이 되었는 그 보고자 는
맞는 거라는 거죠 그럼 고구려가
건국한 668년 900년의 가까웠을
거라는 거예요 그다음에 삼국사기
사론의 고구려는 기원전 진한 동북
모퉁이에 끼어 있었다고 돼 있어요
김부식이 기원전 37년에 고구려가
이제 거 됐다고 해놓고 나서는 맨
뒤에 자기가 이제 그 편찬자가 그
사로를 쓰는데 거기다 이렇게 써놓은
거예요 실수한 거죠 왜 이게 사실인
거죠 고구려는 는 진한의 동북 무통에
끼어 있었다 그럼 진나라는 기원전
221년에 기원전 2006년까지
있었고 한나라는 기원전 2016년에서
기원전 22년까지 있었어요 만약에
정말 기원전 37년이라는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생겼다가 668년에
망했으니까 진나라를 쓸 필요가 없죠
그냥 고구려는 한나라 동북 무통에
끼어 있었다면 돼요
그렇죠 그러 기운전 206년 이전에
생겼기 때문에 저 진나라를 썼을 거
아니에요
그죠 그 진나라 중국 대위를 통일한
기원전 2021년에서 멸망한 기원전
206년 사이에 고려가 됐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다음에 기원전 10년에
현동을 세우면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고구려
현이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기에 고구려
현을 만들었다는 거죠 즉 제 얘기는
한족 중국이 추한 거마냥 고구려 현이
발달해서 고구려가 게 아니라 오늘
계속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고구려 현이 생겼다는 거죠
그 이름을 따서 제 생각에는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제가 지금 그쪽을
연구하고 있는데 고구려 현에는 아마
그 번조선 즉 위만조선의 유민들 하고
또 그 이렇게 전쟁을 하다 보면 유만
조선을 멸망시키고 딱 거기서 딱
끝나지 않고
고려 랑 유만 국경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거기에서 아마 일부
고구려인들이 포로로 잡혔 수 있을
거예요
특히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한무제 때
고려한 9년 전쟁을 했다 그래요 대무
신앙 때 그 대무 신앙 때가 고려
역사를 고구려를 건대를 바로 잡아서
따져보면 대충 그 그때가 대무 신앙
때거든요 그 한무제가 들어올 때가
그러니까 그렇게 180년 앞당기고
고구 역사를 앞당겨서 이렇게 하면
대충 그때요 그러니까 어쩌면 단재
신사님 학설이 맞을지도 몰라요 근데
유일하게 그분 혼자 주장하는 거예요
저기 대무신왕 때 한무제 전쟁을
했다는 거는 유일하게 단재 신 혼자
주장하시는 거라 제가 뭐 사실이다라고
얘기하기가 지금 뭐해서 제가 저도
정확히 연고를 못 해서 말씀을 못
드리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만약에 그랬다면 고구려
유민들이 잡혔을 거 아니에요 고구려
포로들이
그리고 설령 단재 말이 100%
맞는게 아니라도 유만 주선하고
고구려가 붙어 있었으니까 그 유만
주선의 그 포로들을 수용하거나 그
유민들이 살게하는 그 행정 구역을
고구려 현이라고 했던게 아닐까 일부
고구려 사람도 있지만 망한 조선이
아니라 지금 옆에 있는 고구려를
이름을 따서 고구려 현이라고 했지
않았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만 그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히 그런데 중요한 거는
제가 그 뭐 그런 개인적인 그 연구
그 현재 연구하고 있는 그거보다
중요한 거는 한적 중국은 고구려에서
고구려가 시작되었으므로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해서 동북공정을 기조로
활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빨리 고구려 연대를 고구려
관국 연도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그 고구려 관국 연대를 제자로
돌려놓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연구를
했는데 그중에서 북한 손정이 기
27년 서를 발표하면서 북한은 지금
고구려 공도가 기원년
277이라고 교과서에 싣고 그리고
교육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자 이번
시간에 여기까지 하고요 다음 시간에
소정의 기원전 217 77년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음악]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