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던 땅에서 어떻게 초강대국이 되었을까? 한편으로 몰아보는 미국 역사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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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 총정리 몰아보기 통합본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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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역서 도보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최강국이함은 천조국의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미국 일텐데요
미국이 처음부터 강대국은 아니었죠
미국은 그저 유럽에서 파생된 국가로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미국사
시작합니다 1620년 영국의 종교
개혁을 피해 떠나기로 한 잉글랜드
청교도를 포함해 잉글랜드인 102명이
탄 메이플라워 호가 미대륙 동부의
메사추세츠주 플리머스의 도달한 이후로
영국을 포함해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 유럽 여러 국가의 유럽인들이 북미
대륙으로 넘어옵니다 메이플라워 홀을
타고 메사추세츠 플리머스에 도착한
이들을 필그린 파더스 아고 부릅니다
흔히들 메이플라워 호가 미 대륙을
방문한 최초의 유럽인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실제 최초는 메이플라워 호보다
약 13년이 앞선 1607년
잉글랜드인 그이 버지니아주의 제임스
타운이라 마을을 건설하면서
부터였습니다 제임스 타운이라는 지명도
당시 영국의 왕인 제임스 1세였다이고
메이플라워 호는 두 번째이 자
집단이었고 당시 북미 대륙은 누구의
땅이라는 공식적인 합의가 없었기에
그저 먼저 가서 깃발 꽂는 국가가
임자 있고 주로 프랑스가 캐나다를
영국이 미국 동부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며 식민 사업을 전개합니다
1732년 정도가 되면 영국은 미대륙
동부 지역에 13개의 식민지 주를
운영하게 됩니다 처음엔 영국과
아메리카의 13개주 식민지들은 호해정
있 관계이긴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점점 아메리카 13개조 식민지에
영국과 아메리카는 별개의 세계라는
배타적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 합니다
결정적으로 1756년에 1763년
유럽 대륙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상대로
벌린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막대한 재정적 피해를 받고이
적재 재정을 메꾸기 위해 아메리카
13개주 식민지에 막대한 세금을
부과하였습니다 13개주 식민지
대표들은 그 유명한 대표 없는 곳엔
과세도 없다라고 외치며 영국의 과세에
반감을 표시했습니다 특히 동부
해안에서 상단을 운영하던 해상
상인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1773년 영국은 홍 법을 제정해서
중간에 타국의 브로커들로부터 중국의
차를 수입하던 기존과는 다르게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직접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하도록 하였는데 차 상담 브로커들
가운데 미국인들이 많았고 가뜩이나
세금 문자로 영국에 대한 불만이 많을
때 매사 추세츠 주의 보스턴 항구에서
백인 민병대가 인디언들을 위장하고
보스턴 한구에 정박한 영국의 동인도
회사 선박을 급습하여 그곳에 있던 차
상자를 전부 바다에 빠뜨려 버려
버렸습니다 1775년에 역시
보스턴에서 보스턴 민병 대와 영국군
사이에 렉시트 콘코드 전투라는 충돌이
터져 버렸고 13개주 식민지 대표들은
대륙 회의를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에 나서기로 합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을 줄 알았던
보스턴 차 사건이 결국 독립 전쟁으로
이어진 거죠 13개주 식민지의
독립군을 대륙군이 불렀고 대륙군의
사람과는 과거 영국 7년 전쟁에도
참전한 적이 있던 버지니아주 출신의
조지 워싱턴이 있습니다 이때 13개주
식민지는 엄연한 정부도 아니거니와
정식 군인도 아닌 각 지방별 민병대가
전부였던 지라 영국 정규군과 과의
전투는 계란으로 바위치이었습니다
초기엔 매우 열악했지만 1776년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사기를
올렸고 벤자민 프랭클린이 유럽에서
열심히 사교 활동을 한 덕에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내었고 1781년
요크타운 전투의 승리로 독립 전쟁은
끝이 나고 1783년 영국은 13개주
식민지 독립을 승인합니다 1783년
영국이 13개주 식민지의 독립을
승인한 일에 정식적인 미국 정부가
출범한 건
1789년이었습니다 6년간이나 정보를
수립시기 않았다는 건데요 그건 독립한
주들 전체를 아우르는 중앙 정부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주들이
꽤 있었다는 겁니다 중앙 정부가
생기면 영국 정부와 다를 바가 뭐냐며
독립의 의미가 없어지지 않냐고 그냥
각 주들이 각자 알아서 갈길 가자는
쪽도 상당히 많았죠 하지만 중앙정부를
만들자는 의견으로 합의가 이루어졌고
대신 강력한 중앙 정부라 보다는
연방정부의 형태를 뛰며 군주제가 아닌
공화정을 채택하기로 합니다 따라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중앙 정보가 수립이
되고이 중앙정부가 지방 행정을 구획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나뉘어져 있던
주들이 연합해서 중앙정부를 만든 연방
정부인 겁니다 1787년 미국 최초의
필라델피아 헌법이 제정되었고
1789년 조지 워싱턴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는 세계 최초의 대통령
공화 정보가 수립되었습니다 의회는
대외적인 외교와 국방에 관한 업무를
다루는 상원과 세금 징수는 탄핵권 등
대내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하원의
양원제를 채택합니다 첫 미국 정부는
당연히 미국 동부의 국한된 영국
식민지 관할 구역만 독립했던 겁니다
13개주 시작한 미국은 오느 날
50개주의 이르기까지 이후 몇 년에
걸쳐 조금씩 영토를 확장해 나가며
오늘날 미국 영토를 점진적으로 완성해
가는데요 미대륙 동부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men 중부 지역은
프랑스의 식민지였습니다 1803년
미국의 3대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은 프랑스로부터 미국 중부지역을
가리키는 루이지애나를 매입했습니다
원래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일부만
매입할 예정이었는데 당시 경제적으로
매우 심각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에게 루이지애나
전체를 헐값에 팝니다 나폴레옹이
제시한 가격은 15만 달러 루이지애나
면적이 한반도에 일곱배 한반도에 일곱
배에 달하는 영토를 고작 175억
원에 매입한 겁니다 루이지애나 구입은
미국 역사상 가장 현명했던 구매라고도
하죠 5대 대통령 제임스 멀루 제임
시절에는 미국 남단 플로리다주의 급진
연 부족 세미놀 족을 토벌하면
플로리다를 침공했고 당시 플로리다는
스페인 명이었는데 스페인도 플로리다를
미국에 팔아 넘기죠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와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대선 경쟁에서 각각 미국의
휘그당 그 민주당을 창당하며 미국의
정당 역사가 시작합니다 한편
1835년에 1836년에 미대륙
중남부 텍사스에서 멕시코로부터 독립
전쟁을 벌리고 텍사스 공화국을
세우는데 1845년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 정부에 병합하기 합니다 멕시코는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지
미국으로 병합은 인정할 수 없다며
미국의 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
제임 겼었던 1846년에 1848년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멕시코 전쟁이
발발 미국이 승리합니다 1848년
2월 미국과 멕시코 대표들은 과달루페
이달고 ES 모여 미국에서 제시한
헐값의 한반도에 15배나 되는 영토를
팔게 되는 조약에 서명합니다 이로써
미국은 캘리포니아주 유타주 애리조나주
네바다주 뉴멕시코주 등 우리가 흔히
서브라고 하는 곳들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무한적 미국인들의 개척 정신을
찬양하고 우상화하는 사조를 프론티어
정신이라고 합니다 서부를 얻은 미국은
프론티어 정신에 입각하여 멕시코 전쟁
이후로 대대적으로 서로 넘어가
불모지에 불과한 사막 지대를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구이
1850년대부터 1890년대 아지를
흔히들 서부 기척 시대라고 합니다 또
누가 서부에서 뭐 금을 채굴했던
소문이 퍼지니까 다들 한탕 해보겠다고
짐싸들고 서으로 이동하니 이름 바
골드러쉬 있죠 골드러시로 인한 인구가
무려 25만 명이 육박했다고 합니다
이중 실제 금을 찾아내는데 성공해서
부자가 된 경우는 1% 안팎이었던
대부분은 금을 찾지 못한 채 그저
서으로 와서 농경 목축업에 종사하면서
살았습니다 농경을 하는 농경민 이냐
목축업을 하는 카우보이로 나누어
그들끼리 매우 살벌하게 경쟁했고 서부
계측 시대에 서부와 동부를 잇는 대륙
횡단 열차가 깔리기도 하면서 뉴욕
월스트리트 주식 시장도 들 끓고
투자도 활성화되고이 월스트리트 규모가
매우 커지죠 하지만 이렇게 서부의
주돌이 데거 들어오자 그간 해결 짓기
어려워 미루던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바로 노예제 있데요 미국이 북부는
노예제가 미국의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면 폐지하고자 했고 미국의
남부는 플랜테이션 농업 특히 모화
재배가 절대적인 경제 생활인지라 흑인
노예들이 필요로 했습니다 그동안은
노예 천성주 노예 반대주 따로 정해서
정확히 반반 그 숫자를 유지했는데
서부의 주들이 대거 새롭게
유입되면서이 새로운 주들을 노예 찬송
주로 할 것이냐 노예 반대주 할
것이냐도 미국 갈등의 점화가 붙습니다
링컨은 휘그 당에서 노예제를 반대하는
의원들끼리 따로 세력을 만들어
1858년 지금의 공화당을 만들죠
지금의 공화당이 링컨 때부터 시작한
겁니다 1861년 16대 대통령으로
노의 반대론 자였던 링컨이 당선되자
붕괴한 남부의 11개의 주들이 연방을
탈퇴해 버리곤 그들끼리 남부 연맹을
새롭게 수립해 버립니다 1861년에서
1865년 남북 전쟁이 터졌고 승자는
북부 있죠 남부는 다시 연방으로
들어왔으며 북부의 승리로 미국의
중앙정부는 매우 강력한 힘을었습니다
링컨은 헌법상 노예제 자체를
부정하겠다는 노예제에 관한 헌법 조항
제 13조를 수정하도록 하였습니다 단
미국 수정 헌법 제 13조가 발표되기
전 링컨은 극장에서 암살 당했고
링컨이 암살당한 그 해 수정헌법 제
13조를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었습니다 남북 전쟁은 미국 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연방정부의 중앙 권력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집니다 남북 전쟁 이전까지는 서부
계척 시대가 시작되면서 많은 투기가
행해지면서 금융계에 거품이 쌓기
시작했고 1857년 철도 회사부터
시작해 거품이 싹 꺼지자 수백개의
은행들이 파산했습니다이 디플레이션이
남북 전쟁으로 해결이 됩니다 우선
전쟁을 하니까 공장들이 많이 돌아가야
됐고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그도 그 많은 공장들은
계속 운영이 되니 일자리는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전쟁 도중 식량을
증대시키면서 곡식 수량까지 내자이를
수출하면서 무역 수지도 흑자였던
말이죠 남북 전쟁도 중이었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은 화폐 기억을
단행했습니다 통화량을 늘리기 위해
1863년 1월부터 미국 역사상
최초로 지회가 발행되었습니다 당시
집회의 뒷면이 초록색이어서이 집회를
그린 백이라고 불렀다고 하죠 현 미국
달러 집회의 시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867년에는 링컨의 뒤를 이은 1체
대통령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 알래스카
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 지역을
720만 달러 현재 기준 약 2조원의
가격으로 사드렸습니다 오늘 날에는
알래스카의 자원적 가치를 인정받아
알래스카를 미국에 판 러시아를
조롱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알래스카
자원 매장량에 대한 지식이 없던지라
미국 내부에서는 그 얼음 밖에 없는
불모지를 왜 사 드리냐면 욕을 왕창
먹었답니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마크 초인은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부터 세계 1차대전 이전까지를
도금 시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남북
전쟁 이후 미국 경제가 호황을 맞자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수많은
기업인들이 탄생했는데요 물론 마크
트웨인은 물질 만능주의로 돌아가는
세태를 풍자하기 위해 도금 시대라고
묘사 하였지만 이때 미국이 훗날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남북 전쟁이 끝이 날 때쯤
뉴욕 증권 거래소의 거래량은 런던에
배에 달했다고 하는데요 1864년에
65년 월스트리트가 막 활성화될 때
JP 모건이 영국의 자본을 가지고
와서 미국의 투자 시장에 뛰어들어
세운 금융 회사가 JP 모건
체이스랍니다 이어트 투자가 활성화되니
많은 기업들이 성공에 가능성을 품고
거대 기업하고 되는데요 남북 전쟁
이전에 선박 왕이라 불릴 정도로 선박
법기를 크게 운영했던 코넬리우스 밴더
빌트는 남북 전쟁을 기점으로 철도
사업에도 뛰어들어 철도 왕이라는
별명도 갖게 되었으며 석유왕이라고
불리는 존 데이비스 록펠러도 남북
전쟁 당시 분수 회사를 통해 번
자금과 투자를 바탕으로 정유 회사를
차린 후 미국 최대 석유 재벌이
되었고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남북
전쟁 때 철강 사업으로 크게
확장시켰습니다 밴더빌트 록펠러 카네기
셋 모두 아주 가난하거나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결국 재벌로
자수 선거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미국
은 자수 성가한 기업인들을 내세우면서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기도
했죠 이런 호황인 경제력에 비단
기업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기술
발전에도 투자가
활성화되었다 그레이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공으로 국제적인 과학상을
수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벨이 동료
연구자의 아이디어를 베겨 본인이 먼저
만들어 놓곤 특허를 먼저 신청한
거라고 하죠 에디슨이 활동했던 시기도
바로이 도금 시대입니다 1878년
에디슨은 전기를 이용한 기계들을
시중에 파는 사업을 하기 위해 회사
를 차립니다 자동 발신기 추금 gu
전화 송신기 전구 냉장고 티크 테이프
등을 개발해 냈고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를 설립한 후
1880년대에 전차를 실험하고 심지어
발전소를 건설합니다 에디슨이 이처럼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던 배경엔
JP 모건에 적극적인 투자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20세기에 갓 넘어서
미국에선 영화 산업이 태동하기
시작하였고 1912년 LA 할리우드가
탄생하기도 했죠 1898년에는 미국
스페인 전쟁에서 미국이 이김으로써
필리핀 과 푸초 이코 쿠바를 식민지로
삼기도 합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도금 시대는
정말이지 오늘날 미국의 원형을 만들어
놓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이런 금융의 거대화를 따른 폐단을
맡고자 미국의 28대 대통령 우드르
윌슨은 특정 시장을 독점한 회사들의
무작위적인 가격 제정을 금지하는
반독점법을 제정하고 불공정 경쟁
행위를 관리하고자 연방 거래 위원회
법을 제정했습니다 연방 거래 위원회는
담합 과대광고 무분별한 m& 등을
관리했습니다
1913년에는 월스트리트의 합리적인
금융 거래와 불황에 나 인플레이션
발생 시이를 구조할 수 있도록 미국의
중앙은행인 미연방 준비 은행을
[음악]
만들었죠 1914년 유럽에선 1차
세계 대전에 일어났습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전쟁은
미국을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열쇠에
몰린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1915년 루시타니아
호라는 여객선이 독일 유보트 어뢰에
맞아 침몰하여 승객 1900명 중에
1200명이 사망합니다 문제는
루시타니아 호에 128명이 미국인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는 거죠 독일은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에게 사과하고
배상금지 지불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줄 알았으나 1917년 1월 독일의
외무장관 치어만이 멕시코에 있는 독일
대사에게 만약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하면 독일이 지원하겠다는 전보가
유출되자 침범한 전보 사건에 분노한
미국은 1차 세계 대장에 참전하기로
합니다 사실 그 이전부터 민간
차원에서는 미국의 재벌 기업들과 금융
기관에서 영국 프랑스 등의 협상국에게
돈을 빌려주며 1차 세계 대전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1917년 4월 미국이 선전 포고를
하기까지 미국의 금융 기관들은 유럽
국가들에게 약 21억 달러가 넘는
돈을 대출해 주었습니다 선전 포고
후에는 미국 정부가 나서서 경제적으로
원조하다 100억 달러를 협상국 이게
지원하기로 합니다 뭐 물론 미군도
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라고 할
수 있는 10일 전투에서는 참전을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에 승리는 협성
국이었고 전후처리 문제를 두고 전승국
대표들이 모여 파리 강화 회의를
개최를 했고 파리 강화 회의의 결과를
베르사유 조약 그리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진행된 당시 국제 질서를
베르사유 체제라고 한답니다 다만
베르사유 체제로 독일이 갚아야 하는
전쟁 배상금이 도무지 독일의 역량으로
지불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1924년 미국 도스 재무 장관의
계획 아닌 도스안 그리고 1929년
미국의 금융과 0의 계획 아닌 영안을
통해 독일이 지불해야 하는 전쟁
배상금의 부담을 줄여 주었죠 1차세계
세계대전 이전 도금 시대로 맞이한
미국의 경제 호황은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그 정점을 찍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화려한 전성
시대를 재즈 시대라고 하는데요 과도한
사치와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개념입니다
재즈 시대의 미국은 말도 안 되는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뭘 해도 다 되는
시기였습니다 단기간 내에 갑부가 되는
졸부들의 수가 기하급수 쪽으로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사치 문화도
팽배해 그동안 세계 경제를 드라이브
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뭐 산업 시설도 파괴되고
인명 손실도 심각하고 미국에게 빌린
차관이 어마어마하여 고꾸라져
버렸습니다 1차 세계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 모두 자국내 금 준비금이
99% 불과했습니다 영국의 파운드와
프랑스의 프랑의 똥값이 되어 버리니
미국 달러의 가치가 그야말로 떡상하고
전쟁터는 유럽이다 보니까 미국
영토내의 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있는 힘
없는 힘 영혼까지 싹다 끌어 모아
공장을 돌렸기 때문에 전쟁 이후로도
공장들의 생산력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일자리도
주구장창 늘어났습니다 사치 문화가
너무 심각하여 청년들의 도덕성이
망가지고 있다며 1919년 일시적으로
금주법이 제정되어이 마피아들이
생겨나기도 했죠 자 그렇지만 이런
경제적 호황은 1929년 무너져
[음악]
버리죠 전간기 제지 시대의 경제적
호황은 미국 경제에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사치 문화로 미국인들은 구매력도 없는
주제에 무한정 소비를 했고 공장들은
생산품을 무한정 찍어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거품은 언젠가 꺼지는 법
미국인들 유효 수요의 허상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지만 금융가에서 여전히
채권과 어음이 판을 쳤습니다
은행에서는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고객들이 계속 나오고 있었고 은행은
돈이 없어지고 그렇다면 은행에 예금을
해둔 고객들이 돈을 못 받는 상황까지
오죠 주식 시장의 하락도 점점
심해지더니 1929년 10월 29일
화요일 월 스트리트에는 단 하루에
1600만 주가 나가 버리는 역대
최악의 기록을 세워 버립니다 바로
문화요일 대공황의 시작이었죠
1929년부터 33년 돈이 없어서
파산한 은행이 1만 개 은행에 가도
대출을 못 받고 주식 시장에서
투자금도 못 받아 파산한 기업이
14만 개 실업률 30% 1차
세계대전 이후로 유럽은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었기에 미국이
무너지니까 와르르 다 같이 무너지는
겁니다 이렇게 미국의 대공황이 세계
대공황으로 번져 나갔죠 미국은 26대
시어도 루즈벨트 대통령에 취임하며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 초빙해 케 의
수정 자본주의를 적극 받아들이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합니다 유럽의 영국
프랑스 등은 보호 무역을 강화하며
대공황을 극복한 반면 이탈리아 독일
일본은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파시즘의 전체주의가 태동하는
최악의 결과로 치달았습니다 결국 세
국가는 동맹을 맺고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죠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도
처음엔 유럽의 전쟁의 불간섭 도선을
고수했습니다 하지만 루즈벨트 대통령은
연합군에게 물질적 지원은 해주고
있었습니다 1941년 5월 루즈벨트
대통령은 무기 대화법을 통해
연합군에게 미국의 군수물자를 대열을
해주고 전쟁이 끝나면 군수물자를
돌려받거나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
돈으로 환산해서 받기로 합니다 무기
대화법은 당시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중국 국민당 정부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데 중국 국민당 정부에 미국의
군수 물자가 들어가니 분기한 일본은
동남아로 진출해서 자원도 확보해야
되겠다 1941년 12월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고 동남아시아
전체를 다 차지합니다 진주만 공습을
받은 미국은 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하고 유럽과 태평양 두
전선에서 전쟁을 주도하였습니다 유럽
전선에서는 북아프리카를 통해
이탈리아로 넘어가 이탈리아를 가장
먼저 굴복시켰다 1944년 노르망드
상륙작전을 통해 유럽 본토로 진입
1945년 4월 30일 독일의
히틀러가 권총 조사를 하고 5월
독일은 항복해 버렸습니다 태평양
전선에서는 메가도 육군과 니미츠의
해군이 주도권을 두고 경쟁을 하긴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미군이 태평양의
곳곳을 차지하였고 1940 13년
6월 오키나와까지 미군이 차지하면서
이제 일본 본토만다복 됩니다 이탈리아
독일이 전부 무너졌음 일본이 항복하지
않차 미국은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자 폭탄을
떨어뜨렸고 결국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외치면서 2차 세계 대전을 끝이 났죠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의 발발 원인이
결국 불안정했던 세계 금융
때문이었다며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있던 1944년 미국은 뉴햄프셔주
브레턴 우주의 44개국의 대표들을
불러 모아 브레튼 우주 회의를 가졌고
브레튼 우주 회의에 의 결과 미국의
달러를 세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집회인 기축 통화로 삼기로 합니다
2차 세계대전도 미국의 캐리가
절대적이었다 프랑스는 불만이 있어도
표출할 수가 없었고 이로써 미국은
유럽을 앞지르는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합니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으로 황폐해진
영국과 프랑스 대신 세계 국제 질서를
주도하며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양차 대전이라는 인류가 자행한 끔찍한
대사건을 겪 며 인류적인 화두가
떠올랐고 평화에 대한 담론도
이루어지며 미국이 주도적으로 나서려고
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는
워싱턴 군축 조약으로 강대국들의
해군력 강화의 리미트를 걸었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는 1945년
국제연합 유을 창설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 전쟁의 원인은 금융위기
때문이라는 분석 화에서 브레턴 우주
조약으로 결성된 국제통화기금 IMF
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부터
업무를 시행했고 커트는 이렇게 평화를
주장하긴 했지만 모두가 다 아시다시피
2차 세계대전 직구 평화는 빚좋은
개살 고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전 세계는 이념에 따라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로 다니어 콜드워 이른바 냉전
시대가 개막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미국은 전후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을 매우
경계하였다 이후부터 미국의 적은
소련이 되었습니다 1947년 미국의
33대 대통령 헨리 트루먼은 이레바
트루먼 독트린 선언으로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든
자유면을 지원해야 한다며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봉쇄의 조치를
시작하였습니다 소련의 공산주의 확산의
가장 첫 표적이 되는 국가는 지리상
터키와
그리스였더라면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하며 공산화를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소련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소련은 동유럽으로 진출하며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공산화 시켰고 독일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었다 1949년
미국은 북대서양 조약기구 일명 나토로
조직해 서방의 자유주의 국가들끼리
군사동맹을 체결했습니다 냉전 시대 때
각 진영의 국가들은 서로 궁비를
확정하는 등 궁비 경쟁을 통해
직접적인 전쟁이 터지진 않았지만 언제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까 늘
노심초사하는 긴장감이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이념에 따라 터신 한국 전쟁을
생각하면 냉전으로 인한 전쟁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죠 1955년에는
공산주의
국가권익위 국가권력 나토에 대항하고자
바르샤바 조약 기구라는 공산권
국가들끼리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1950년대는 이념 대립에 따른
국제적 분위기가 매우 설설 발했는데
미국에서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공
사상이 험 할 정도로 구져서
1950년대 극단적 반공 사상의
패러다임을 메카시즘이라고 한답니다
메카시즘 이란는 단어는 공화당의 상원
의원 조샘 맥카시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그는 국회 의원들 상당수를 공산주의로
몰아간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맥카시는 실제 공산주의자들을 색출
있다기보다는 반대파 정적들을 내치는
명분으로 활용한 것인데요 이처럼
메카시즘 공산주의 아니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냥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면
공산주의자로 몰아갔던 광풍을 의미하는
개념이니다 fba 창설한 제이에드가
후보의 악명이 정점을 찍었을 때도이
시점이었죠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죽고
집권의 흐루시초프의 시절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까지 이러한
험악한 국제 관계를 완화해 보고자
했는데요 때마침 1961년 미국에서는
35대 대통령으로 존 F 케네디가
취임하였습니다 존 F 케네디에
대해서는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과 거품이라는 입장이 극명하게
갈려서이 존네프 케네디 한 명만
다뤄도 한편의 영상으로 부족한
수준인데요 어찌됐든 존네프 케네디가
긍정적인 의 평가를 받는 이유
쪽에서는 소련의 흐르 초프 냉전의
긴장 관계를 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등 평화를 위해 힘 썼기 때문입니다
다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나
1961년부터 미국이 개입하기 시작한
베트남 전쟁을 고려해 본다면
흐루시초프 캐네디 사이 그 이면에는
여전히 팽팽한 냉전 대립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과 소련
사이 일명 우주 전쟁이라는 누가 더
우주 산업에서 성과를 보이느냐에
경쟁이 정점을 찍을 때도이
식이었습니다 물론이 경쟁 덕에 존에
케네디는 우주 산업의 사화를 걸어 그
덕에 존에프 케네디 사후에 일이지만
1969년 닐 암스트롱이 아는
우주비행사가 인류사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도 했죠 그러니까이 시기는이
냉전의 대리비 절정을 찍은 시점인
동시에 냉전이 완화되는 서문 같은이
과도기라고 해석할 수 있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고 여전히 같은
민주당 기여의 존스 대통령의 정권 때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활약이 없고 오히려 미국 청년들의
피해만 커지자 미국에서는 유래없는
반전 운동이 전개되었고 1968년에는
일명 68 운동이라고 베트남 천전
반대 운동과 더불어 인종 성별 계급을
넘어선 청년들의 자유를 부르짖는
대규모 혁명이 퍼졌습니다 이때
생겨난게 미국의 히피 문화죠 결국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민주당의
지지도가 급격하게 낮아져 1969년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취임하며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1973년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하기로 결정 전 미군이 베트남에서
빠져 나옵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닉슨의 취임과 함께 냉전은
본격적으로 완화되기 시작했는데요 일명
닉슨 독트린이 아고 앞으로 미국은
베트남 전쟁 등 아시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고 1972년에는 닉슨이 소련과
함께 양대 공산권 국가였던 중국을
방문해서 1979년에는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이전까지는 상상도
하지 못할 수교가 이루어졌습니다
닉슨과 마우저의 국교 수립이 에
베트남 전쟁 때도 외교적으로 활약했던
헨리 키신저와 저원 라이의 실무적
회담 덕이 컸고 그 이전에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이 미국 선수단을
베이징으로 초대해 극진이 대접해
주었던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꿈도꾸지 못할 미중의 친선
외교를 탁구 경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하여 핑퐁 외교라고 합니다 더불어
미국은 소련과 전략무기 제한 협정을
맺으며 냉전은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냉전의 완화를 전문 용어로
대상트 아고 부립니다 80년대에
접어들면 전반적으로 서국원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이 우경화되는
1981년에서 1989년 미국 40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유명한
반공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전
70년대 1973년과 1979년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매우 휘청거리고
힘들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레이건
대통령의 레이건 믹스라는 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상당히 경제를
회복하는데 그덕에 전반적으로 우경인
분위기가 상승합니다 또 소련에
대해서도 강경한 노선을 취하며 디라
부르는 미사일 방어 체제를 구축해
혹시모를 핵전쟁을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군비를 더 강화하고 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전략 방침이
실행되는 등 다시 분위기가 험악해진
그러나 소련에서 1985년
고르바초프가 취임하며 레이건 do
소련의 우호적인 외교를 보였고이를 신
대상트 아고 합니다 1989년에는
몰타에서 미소 정상 회담을 가져 아예
냉전의 공식적인 종언을 고합니다 이후
공산권 국가는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인
경제정책으로 자체 붕괴를 해버려
1991년 수련이 해체되어 버리죠
그리고 미국은 독보적인 세계
최강국으로
[음악]
군림했고 냉전이 끝나며 이제 미국은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가 하면
그렇다고 하긴 힘들죠 이만 타일 냉전
시대라고 하는데 1991년 미국은
중동의 걸프 전쟁에
개입하였다 미국은이 냉전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중
중동전쟁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고요
냉전은 끝나도 중동의 그 복잡하게
얽힌 전화는 끝을 몰랐습니다
2018년부터는 중국과 무역 전쟁의
또 한창이죠 현재의 미국이 20세기
중반에 미국과 비교하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미국이 점점 하락세를
걸으면 정당의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도 미국은 갈수록 보수화
경향이 짙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전쟁
패배 외국인 비난 미국 이익 보호
고립주의 알고리즘이 미국 정치사의
전형처럼 굳어졌다고 하죠 동시에
고립주의 미국 제일주의를 더
부각시켜서
고립주의이면서도 계속 세계 곳곳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추측하자 현재
미국은 그 과도기에서 있는 듯한데요
앞으로 미국은 어떤 역사를 써내려
가며 어떤 세계사를 만들어 낼까요
그가 미국사 시리즈 시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럼 역사
덕이었습니다 저희 역사 돋보기가
멤버십 가입을 시작했습니다 멤버십
가입을 해 주신 분들 덕분에 영상
제작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재미있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