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이야기를 알고보면 소름끼치는 "인간증발 사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호주 군인들이 대규모로 증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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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s :
Producer- Jin, Lee.
Editor- Pil, Choi.
Author- PS.
Narrator- Hyunjoon, Ha.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0월 9일.
벨기에 플랜더스에 위치한 숲, 캘틱 우드에서 한가지 특별한 사건이 발생 합니다.
당시 호주 1사단 10대대에 소속된 병사 85명은 상부로 부터 캘틱 우드를 방어하고 있는
독일군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요.
전투에 참여 했던 10대대 병사 대부분이 말 그대로 소멸 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인데요.
캘틱 우드의 짙은 안개에 삼켜진 이 병사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채 영원히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과연 이 병사들의 실종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지월 9일 벨기에 플랜더스의 위치한
숲 켈틱 우드에서 한가지 특별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호주 1사단 10대대
소속된 병사 85명은 상부로부터
티드를 방어하고 있는 독일군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요이 격은 독일군의 경관
방어에 막혀 실 끝났지만 그보다는 또
다른 사실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게
됐습니다 바로이 전투에 참여했던
10대대 병사 대부분이 말 그대로
소멸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인데요 케티 구드의 짙은 안개에
삼켜진이 병사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영원히 우리의 앞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과연이 병사들의 실종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티드 전투는 1세계 전이
진행되는 동안 펼쳐진 수많은 소규모
작전 중
하나입니다 연합국의 이원으로 전쟁에
참여한 포주는 벨기에 지역에서
독일군에 맞서 영국군과 합동 작전을
펼쳤는데요 비교적 적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호주군은 주로
전투에서 조적인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호주 제 10대대 또한 독일군의 대한
기한 작전의 일환으로 티드 전투에
참여하게
됐는데요 연합군 지부는 는 호주군
10세대가 켈티 구드에 자리잡은
독일군의 관심을 붙잡고 있을 동안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는 영국군
11단을 반대 방향에서 투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의 방문은
예상보다 훨씬
경고했습니다 1917년 10월 9일
호주군 10대대 병사 85명은 새벽을
틈타 켈티 구드의 동북 지역을
급습했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켈티 구드 주변에는 1m 앞도
분간 든 심한 안개가 껴 있었다고
하는데요 병사들은이 안개를 방패삼아
자신들보다 몇 배나 많은 적군에게
돌격을
시도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투
초반에 부상을 입은 일곱명의 병사 중
다섯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요 그러나 안개 너로 진격한
나머지 78명의 병사는 그대로 사라져
오늘날까지도 그 행적이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실종은 부상만이나
흔한 사고 중
하나입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격렬했던 전투 중 하나인 소물
전투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2만 명이
넘은 군인들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사례도 존재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소물 전투와 같은
대규모 전면전이 불러 일기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실종된 병사들은 증원
청취나 포로명단 조사 발굴을 통해
전후에 그 실종의 원인이 파악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켈티 우드 사건은
대규모 전 전과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닌 켈티
우드라는 작은 숲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이라는게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인데요 호주는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은 물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진 10대대 병사들을 추적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호주 정부 및 군
관계자들은 전투 보고서와 일지
목격자들의 증언을 검토하여 실종된
병사들이 전투에서 이탈하여 벨기에
다른 지역에 몸을 숨겼을 가능성을
검토했는데
하지만 호주 정부는 사라진 78명의
병사 중 그 누구도 켈티 구드 전투
이후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을뿐 더 이상의
정보는 밝혀낼 수
없었습니다 크리스 헨시 ey 같은
호주의 역사학자들은 실종자들의 흔적을
독일군의 군사 기록에서 찾기도
했는데요 헨시 이렇게는 10대대
급습에 관한 기록은 발견할 수
있었지만 전투 기록과 포로 명단에서는
10세대의 병사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독일군의 이에
나포된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발생한
군인들의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은 켈트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전 프랑스의
앙크르 지역에서도
발생했는데요 앙크르 실종이라고
불리는이 사건은 당시 독일군과 마소
싸우기 위해이 지역의 주둔해 있던
영국군 서퍽 대대에서
일어났습니다 약 400명의 병사들로
구성되 있던 서퍽 대대는 호주 대대와
마찬가지로 앙크르 지역의 짙은 안기를
이용해 독일군을 급습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이들 또한 안개
속으로 진격을 시도한 후 대부분이
복귀하지 못했으며 전투가 끝난 후에도
이들의 행방이나 운명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초자연 현상
전문가들은이 같은 군인들의 실종
사건이 유럽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안개와 관련된 전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데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안개
속으로 납치하는 것으로 알려진
브로켄의 유령이나 안개 속에서 영원히
길을 잃게 만드는 위로 위스프 짙은
안개가 낀 날에만 나타난다고 알려진
안개 속의 마을에 관한 전설은 안개가
현실과 다른 차원을 이어주는 하나의
초자연적 현상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안개
속에서 실종된 군인들이 지금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가 아닌 가능성 속에서
존재하는 다중 우주 중 하나로 이동한
곳이 아닐까하는 가설을 세워 보기도
했
그러나 또다른 학자들은 두 실종 사이
모두 독일의 한 과학자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학전의 선구자로 알려진 프리츠 하버는
화학 변기를 최초로 개발한 사람 중
한
명인데요 그는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하버 보수 공정을
개발함으로써 독일군이 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을 유하게 진행하 움을 준
인물이었습니다 그 전 당시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발한 염속 가스와 겨자
가스는 지금도 군사적인 사용이
규제되고 있을 정도로 인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이 같은 화학무기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것이 처음으로 등장한 1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비인도 적이라는
이유로 국제적으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우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번은 신경 가스나
눈물 가스 피부를 완전히 손상시키는
화상 가스 등 수많은 군인 들을
순식간에 몰살시킬 가능성이 있는
다양한 화학 무게들을 개발하고
실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혼란스러운 전항 속에서 점차
독일이 폐색이 짙어지던 1917년에
발생한 두권의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은
안개라는 독특한 기상 현상 속에서
일어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이
안개가 일반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프란츠 하부가 은밀하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던 독일군의 새로운
화학무기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있는데요이 강력한 가스의 정체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학자들은이 가스에 희생당한 군인들이
새로운 무기에 대한 기밀 유지와
국제적인 비난을 대비해 은밀한 장소에
집단적으로 매장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과연 켈틱 우드 사건과
앙크르 사건에서 목격된 안개는 프란차
보가 새롭게 고한 화학
무기였고 안개를 통해 현실과 연결 된
또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일까요 오늘은 1차 세계 대전 중에
발생한 군인들의 실종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여러분들은 안개 속에서
미지의 물체와 마주친 적이
있으신가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오늘도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