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공산군을 상대했던 미국의 비밀병기 '뱀파이어 특수부대'의 충격적인 비밀 [사건사고]

기묘한 밤
153 팔로워
기묘한 밤 서적 구매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124125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2616495
알라딘: http://aladin.kr/p/EqkF2
그날 밤, 전설 속의 존재가 되살아났습니다.
#미스터리 #뱀파이어 #미국 #필리핀
어두운 밤 순찰을 돌고 있던 반란군 병사는
나무에 기대 누워있는 동료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이런 후반까지 자본주의 미제놈들이 침투했을리는 없으니
눈앞의 동무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병사는
성큼성큼 다가가 동료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는데요.
곧이어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저앉고 말았죠.
싸늘하게 식어있는 동료의 시신은 온몸에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
마치 미라처럼 변한 상태였고
목에는 커다란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눈앞의 광경이 가리키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는데요.
바로 전설 속의 괴물 아스왕이었죠.
과거 동남아시아에는 각기 다른 특색을 지닌 왕국들이 여럿 존재했습니다.
이슬람, 중국 등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하며
해적, 용병, 상인 등의 거대 카르텔을 형성한 톤도 왕국
진주 채취와 중괴무역으로 축적한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이슬람계 해적 왕국 술로술탄국
풍부한 금강과 뛰어난 조선 기술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공유품들을 아시아 전역에 판매하며
막강한 경제력을 뽐냈던 불교계 상업 왕국 부투안 왕국
거대한 평야 지대에 대량의 노예를 풀어 생산한 농산물들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내정을 구축한 마긴 다나오 술탄국
복잡한 정치 체계와 더불어 정교한 경제 구조를 지닌
약 20여 개의 크고 작은 왕국들은
지역 내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있었는데요.
1521년 마젤란 원종들을 통해 해당 지역을 발견한 스페인 제국은
중남미 지역을 정벌했던 것처럼 이들 왕국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죠.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왕국들은
약 50년간 계속된 스페인의 정복 시도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지만
상업을 주 수입원으로 삼던 몇몇 왕국들이
스페인의 신하로 들어가는 것이 이득이다라는 판단하에
자발적으로 항복하며 상황이 급변하게 됩니다.
일부는 이웃 국가의 설득에 넘어가고
일부는 스페인 함대에 각계격파 당하는 식으로 식민지가 된 왕국들은
스페인의 국왕, 필리해 2세의 섬들이라는 뜻의
라스 이슬라스 필리피나스로 불리게 되는데요.
그렇게 필리핀이 탄생하게 되었죠.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저적인 자치권 및 군대 보유를 인정받은
필리핀의 왕국들은 이들이 처음 판단했던 것처럼
스페인과의 협력을 통한 무역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3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나폴레옹의 침공 등으로 스페인 제국의 국력이 크게 약해지는데요.
스페인은 살아남기 위해 식민지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의 양을 대폭 늘렸고
이에 커다란 부담을 느낀 필리핀은
때마침 스페인과 전쟁을 시작한 미국에 협력하며 독립을 시도했죠.
그러나 필리핀의 비극은 지금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이 스페인 대신 이들을 지배할 속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곧바로 필리핀 독립세력에게 전쟁을 성포한 미국은
배신감에 몸을 떠는 필리핀인들을 무참히 탄압하며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었죠.
미국은 갑자기 필리핀의 영웅들과
필리핀의 영웅들과 공격을 받았습니다.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의 태평양 함대는 쑥대밭으로 만든 일본 제국이
순식간에 필리핀을 점령합니다.
다짜고짜 도시를 폭격한 후 괴대정부를 수립한다는 일본의 방식은
필리핀인들이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극단적인 방식이었기에
당연하게도 어마어마한 반발이 일어났는데요.
심지어 일본 제국의 식민지 수탈은
오랜 기간 동안 식민지 생활을 했던 이들조차
경험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혹했죠.
곳곳에서 격렬한 독립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해적, 용병 등을 생업으로 삼아왔던 지역에서 조직된
민병대는 게릴라전에 도가 터있었고 이들의 지속적인 저항에
일본은 필리핀 48개 주 중 12개 주에서만
제대로 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필리핀의 지배에 애를 먹게 되는데요.
한편 잠자는 사제에 코토를 건드린 일본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죠.
미국의 막강한 생산력은 단기간에 대량의 군항, 전투기를 양산해냈고
일본의 전항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며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였고
마침내 필리핀은 미국의 승인하에 독립에 성공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 독립에 크게 반발한 이들이 있었죠.
항일국민군, 일명 후쿠발라합은
일제치하 당시 항일운동에서 큰 축을 담당한 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은 필리핀 공산당의 지도와의 결성된 게릴라로
토지개혁과 지주계급 타도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국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요.
필리핀 탈환에 있어 이들 항일 게릴라 조직이 매우 중요했기에
미군은 태평양 전쟁 당시 후쿠발라합과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었죠.
그러나 소련과의 체제 경쟁을 위해서
필리핀은 반드시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었습니다.
지정학적 위치상 필리핀이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면
리스크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는데요.
때문에 미국은 독립한 필리핀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고
후쿠발라합의 간부를 체포해 무장해제시키는 등
공산주의 활동을 단합하기 시작했죠.
또다시 뒤통수를 맞았다는 배신감과 토지개혁 등
약속했던 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후쿠발라합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과거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주화할 때 내걸었던 명분이
필리핀의 민주화였기에 반감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요.
후쿠발라합의 세력은 빠르게 불어났죠.
친일 행위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친일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죄값을 치르기는커녕
여전히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농민들이 정부에 대항하는 게릴라에 참여하도록 만들었고
이 기회에 필리핀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속셈을 품은
이었고 수만명의 커다란 세력으로 성장한 후쿠발라합은
미국은 선거를 조작하는 것도 모자라
언론까지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요.
협조한 민간인을 몰살하는 극단적인 당시까지 사용했던
일본군들도 당해내지 못했던 후쿠발라합의 게릴라에
미군은 크게 고전할 수밖에 없었죠.
깊은 유착관계에 있는 반군과 지역주민들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맹한 병사들
미국 본토와 필리핀 사이에 물리적 거리는
후쿠발라합과 미국 사이의 전쟁을 장기화시켰습니다.
골머리를 썩히던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밀병기를 필리핀에 투하하게 되는데요.
그 비밀병기는 바로 에드워드 렌즈데일이라는
한 명의 남자였죠.
에드워드 렌즈데일, 그는 넷슬레, 리바이스, 웰스파고 등
내놓으라 하는 거대 기업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던
광고 전문가였습니다.
진중한 공습에 분노해 군복을 입은 수많은 젊은이들처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자신의 명성과 지위를 버리고
탁월한 광고 전문가를 일개 보병으로 소모할 생각이 없었던 군은
렌즈데일을 미국 전략사무국에 소속시켰죠.
군이 기대했던 대로 렌즈데일은 자신의 마케팅 기술을 활용한
각종 선전, 선동을 구사했고
이곳은 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 전략사무국이 중앙정보국
일명 CIA로 이름을 바꾼 후에도
렌즈데일의 임무는 계속되었는데요.
1950년 후크 발라압의 게릴라에 신음 중이던
필리핀의 렌즈데일이 도착합니다.
그의 대외적인 공식 신분은 대통령에게
여러 조언을 주는 고문 자격이었는데요.
공산주의의 천병인 후크 발라압이 무력으로
필리핀 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막는 데에 필요한 모든 도움을
필리핀 정부에 제공할 것.
CIA로부터 부여받은 진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렌즈데일은 필리핀에 도착한 그 즉시 심리전을 시작했죠.
전통적인 군인들은 심리전을 적에게 항복을 호소하는
전단지나 방송 따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심리전이 그보다 더 광범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먼저 렌즈데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일본군에게 사용했던 심리전을
기반으로 한 작전을 펼쳤습니다.
지휘관을 맡은 적군 장교의 이름을
확성기로 개별 방송하는 이 심리전은
적이 항복할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던 바 있는데요.
적이가 집단이 아닌 개인을 향했을 때
대상이 느끼는 공포가 극대화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게릴라에게 협조한다고 의심되는 마을 주민들의 집에
한밤중 몰래 공포스러운 모양의 눈을 그려놓을 것을 지시했죠.
이 사악한 눈알 상징은 다음 날 아침 집에 그려진 그림을 본 주민들을
아주 냉정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현지인들과 게릴라 간의 연결을 약화시킨 렌즈데일은
특수부대 요원들과 함께 반군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의 미신들을 철저히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필리핀 지역에는 악마나 귀신 따위의 민간 전승이 다수 존재하며
주민들은 이를 제법 깊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요.
그 중에서 렌즈데일이 주목한 것은 아스왕이라는 이름의 뱀파이어였죠.
필리핀 전역에서 널리 알려진 아스왕은
인간을 습격해 피를 모조리 빨아먹는 무시무시한 괴물입니다.
늑대, 아름다운 여성, 세로로 된 동공을 지닌 마녀,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구울,
상체와 하체를 분리할 수 있는 날개 달린 괴물 등 여러 형태로 구존되는데요.
본성 자체가 사악하여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습격한다고 전해지는
이 흡혈 괴물을 렌즈데일이 주목한 이유는 아스왕이 가지고 있는 3가지 특징에 있었죠.
첫째, 아스왕은 인간으로 위장해 특정 공동체에 소속된 후
자신의 동료들을 습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둘째, 아스왕은 햇빛에 매우 취약해 묘지나 숲과 같은 그늘에 몸을 숨기며 주로 밤에 활동한다.
셋째, 아스왕은 필리핀인에게 있어 어떤 미신보다도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실제로 오랜 세월동안 필리핀인들은 나는 인간이며 아스왕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인산말로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간략화된 타오포라는 말이 신뢰합니다.
혹은 누구 계세요 정도의 의미로 굳어 지금까지도 보편적으로 사용될 정도인데요.
조사를 마친 렌즈데일은 즉각 작전을 시행했죠.
CIA에서 철저한 훈련을 받은 심리전 부대는 렌즈데일의 명령에 따라
반군이 활동하는 지역의 숲에 아스왕이 출몰한다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소문이 충분히 퍼져나가기를 기다린 후에는 특수부대원들로 구성된 뱀파이어 부대의 차례였는데요.
미리 파악해둔 후크팔라베 순찰루트로 이동한 뱀파이어 부대는
완벽하게 은원표를 마친 뒤 밤이 될 때까지 대기했죠.
한밤중 게릴라들이 나타나자 뱀파이어들은 조용히 활동을 개시했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은 대열의 가장 마지막에 선 후크팔라반군을 조용히 잡아챈 다음
그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숙달된 솜씨로 목숨을 거두었는데요.
그 후 외진 곳으로 희생자를 끌고가 목에 두 개의 커다란 구멍을 뚫은 후
발꿈치를 잡고 시신을 거꾸로 들어올려 피를 전부 빼냈죠.
작업을 마친 뱀파이어 부대는 마치 아스왕에 당한 것처럼
창백하게 변해버린 시신을 원래의 순찰루트에 돌려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라졌던 동료를 발견한 반란군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졌는데요.
렌즈데일이 기대했던 대로 후크팔라합은 게릴라 사이에 아스왕이 숨어들어 있다는 착각에 빠진과 동시에
한밤중 혹은 숲속과 같은 외진 지역에 활동하는 것에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죠.
심리전의 효과는 대단했습니다.
반란군들은 더 이상 서로를 믿지 못했고
게릴라전의 필수적인 야간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는데요.
또 무엇보다도 성가셨던 숲에서 활동하는 게릴라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죠.
게릴라들에게 있어 아스왕은 공산주의보다 몇 배는 뿌리깊게 자리잡은 굳건한 믿음이었으며
이는 사상적 교육으로 감히 이겨낼 수 있는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반군의 게릴라 활동은 그렇게 서서히 힘을 잃어갔고
한때 7만 명에 이르렀던 후크팔라합의 세력은 어느덧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1954년 반란이 실패했음을 깨달은 후크팔라합의 지도자
루이스 타르크가 투항하며 길었던 반란이 종식되었죠.
비록 반란이라는 중재를 저질렀지만
게릴라전을 통해 일본군을 소탕했던 전과를 인정해
루이스 타르크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한다.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후크팔라합 반란을 진압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에드워드 렌즈데일의 뱀파이어 부대는 세간에 그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도 황당하고 기괴해 관련 문서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단순히 뜬 소문이나 도시전설로 치부되었기 때문인데요.
1991년 렌즈데일의 회고록이 출판되며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게 된 이 심리전은
아직까지도 그 특이함과 잔혹함으로 회자되고 있죠.
달빛도 비추지 않는 깊고 어두운 숲속
반란군들이 느꼈을 아스왕의 공포는
그 무엇보다도 생생하고 끔찍했을 것입니다.
기묘한 밤이었습니다.
